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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월 25일 우크라이나 대선에서 율리아 티모센코가 아닌 페트로 포로셴코가 대통령에 당선됐다. 우크라이나 최대 올리가르히 중 하나인 포로셴코는 유명한 초콜릿 회사 로셴의 회장이다. 지역당과 조국당(바티키프쉬나)의 두 날개를 이용해 우크라이나를 공고히 지배해온 올리가르히가 정치의 전면에 나섰다. 그는 야누코비치 실각 전 EU와 러시아 사이에서의 좌충우돌에 가장 큰 피해를 입은 올리가르히다. 야누코비치가 러시아에 맞서려 할 때 푸틴은 포로셴코의 로셴 수입을 전면 금지했었다. 2009년 러시아와의 수상쩍은 가스 협정에서 보인 티모센코와 바티키프쉬나의 우유부단함과 갈팡질팡은 포로셴코가 전면에 나서게끔 했을 것이다. 그 사건으로 감옥에 갖힌 티모센코는 (주로 EU와 서방 정치인들에 의해) 야누코비치 독재에 맞선 저항의 상징으로 떠올랐지만 다른 한 편 그녀 또한 부패한 정치인의 일부라는 증거로 대중에게 받아들여졌을 것이다. 티모센코의 '의외'의 추락은 이미 '예상'됐던 것 중 하나다.

포로셴코의 당선으로 러시아와의 충돌 가능성이 낮아질 것이라는 예상이 확산되고 있다. 실제로 러시아는 우크라이나 국경 인근에 배치한 군대 4만여명의 대부분을 철수시켰다. 도네츠크 인민공화국 등 동부의 반란 세력이 러시아와의 연관성을 공공연하게 밝히고 있는 것과 달리 러시아는 그 관계를 부정하고 있다. 5월 30일 있었던 EUㆍ우크라이나ㆍ러시아 3자 에너지 협상에서는 가스 공급을 둘러싼 갈등에 어느정도 해결의 실마리가 잡혔다.

그러나 동부에서의 군사적 갈등은 5월 2일 오데사에서의 충돌 이후 더 강화되고 있다. 애초 대중의 운동이었는지는 의심스럽지만 형식상 대중운동 사이의 충돌이 현재는 군사적 충돌로 비화하고 있다. 이 끔찍한 충돌의 한 편인 '도네츠크 인민공화국'을 반파시스트 운동의 일부로 받아들이는 사람도 있다. 박노자 교수는 동부의 운동을 "반미 반파쇼 투쟁"이라고까지 말한다. 따라서 이 운동은 "나름의 진보적 함의와 가능성"을 지녔고 박 교수에게 러시아 좌파의 임무는 "그들을 도와주고 양쪽 계급동맹을 구축하는 것"이다.

그러나 이는 매우 위험한 주장이다.

첫째 도네츠크 인민공화국을 비롯한 동부의 운동을 '반미 반파쇼 투쟁'의 일부로 부를 수 있다면 푸틴 또한 '반파쇼 투쟁'의 일부로 봐야 할 것이다. 크렘린궁의 공식적 부인에도 불구하고 러시아의 퇴역군인 내지 정보국 요원들의 개입 증거가 제시되고 있다. 러시아 파시스트 운동의 대부 알렉산드르 데긴과 동부 민병대들의 연관성도 폭로되고 있다. 동부 운동을 '반미 반파쇼 투쟁'으로 고려하는 건 말도 안되는 것이다. 둘째 러시아 좌파가 도와야 한다는 것은 무엇일까? 동부의 '독립 운동'을 돕는 것을 뜻한다면 매우 위험한 얘기다. 이는 우크라이나 노동계급의 단결을 파괴하고 친러시아 민족주의와 친우크라이나 민족주의의 충돌을 전국으로 확산시키는 결과만 낳을 것이다. 셋째 "양쪽 계급동맹의 구축"은 매우 모호하다. 왜냐면 동부에서 노동자들은 계급으로서 운동에 참여하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그들은 오직 개인으로서, 파시스트적 애국주의에 매몰된 개인으로서 운동에 참여하고 있다. 즉 이러한 계급동맹은 현실에서 친러시아 애국주의 세력과의 동맹으로만 가능하다. 실제로 러시아 파시스트는 이러저러한 방식으로 우크라이나 동부의 '반파쇼 투쟁'에 연관을 맺고 있다.

5월 우크라이나 동부에서의 충돌을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될 글 세 편을 옮긴다.

이 세글에는 각자의 정치적 입장에 따라 약간의 차이가 존재한다. 가장 큰 차이는 우크라이나 외부의 좌파인 드림디퍼드의 첫 글과 다른 두 우크라이나 내 좌파의 글 사이에 있다. 드림디퍼드(www.dreamdeferred.org.ukㆍ링크)는 키예프 정권(포로셴코 집권 전)을 파시스트 군사정권 취급한다. 하지만 우크라이나 내 좌파인 좌익반대파(gaslo.infoㆍ링크)와 자율노동조합(avtonomia.netㆍ링크)은 서부와 중부의 파시스트 위협은 과장됐거나 진정한 사정을 잘못 파악한 것이라고 본다. 좌익반대파 활동가는 서부보다 동부가 더 파시스트에 가깝고 거의 확실한 군사정권이라고 주장한다. 자율노동조합은 파시스트가 야누코비치 시절인 2012년경부터 확산되기 시작했다고 말한다.

하지만 이 글 세편은 모두 "늑대는 문 밖, 우크라이나 외부에 있"고 외부의 "이 제국주의 경쟁 체제에서 좋은 제국주의란 없다"는 점에 같은 입장을 취하고 있다. 드림디퍼드는 우크라이나가 분할된다면 "노동계급 인민이 큰 값을 치러야 할 것"이라고 말한다. 자율노동조합은 이 둘로부터 독립적인 "혁명적 노동운동과 파업을 조직하는 것, 바로 이것들이 우리를 이용하는 전쟁에 맞서 싸울 무기"라고 힘주어 말한다. 좌익반대파는 좌파에 "협조가 부족했기 때문"에 실패했다며 노동계급 운동 건설을 위해선 좌파의 공동행동이 필요하다고 강조한다. 이러한 주장들은 우리가 사태의 전개에서 놓치지 말아야 할 열쇠다.

포로셴코가 대통령에 당선된 상황에서 추가적인 사건의 추적과 분석이 필요할 것이다.

①[드림디퍼드] 내전으로 향하는 우크라이나: 반동적인 전투에서 어느 편도 지지할 수 없다
②[좌익반대파] 오직 노동자 운동 만이 우크라이나에 이는 전쟁의 불꽃을 멈출 수 있다(링크)
③[자율노동조합] 키예프 정권과 동부 군사정권 모두 반대한다!(링크)

※의역이 많고 오역이 있을 수 있습니다. 잘못된 번역에 대한 지적은 언제든 환영합니다. 대괄호 안은 이해를 위해 추가한 것입니다.


내전으로 향하는 우크라이나: 반동적인 전투에서 어느 편도 지지할 수 없다
드림디퍼드|타시 시프린|2014년 5월 5일ㆍ링크


친우크라이나 시위대가 오데사의 노동조합 건물에 화염병을 던지고 있다. 건물 안의 반마이단 시위대 수십 명이 불에 타 숨졌다. [Reauters]

5월 2일 친러시아 '반마이단' 시위대와 친우크라이나 유로마이단 활동가 사이에 광범위한 충돌이 벌어진 이후 우크라이나 남부 오데사의 사망자 수가 46명에 다다랐다.

친우크라이나 시위대가 반마이단 활동가들이 점거한 건물에 화염병을 던져 불을 지르면서 끔찍한 결과에 직면한 것이다.

이후 반마이단 시위대가 장악한 동부 슬라뱐스크에서 우크라이나군이 통제권을 되찾으려 하면서 최소 수십명이 더 목숨을 잃었다.

충돌의 무시무시한 확대는 우크라이나를 갈래갈래 찢어놓을 것처럼 보인다. 거울로 마주본 것 같은 반동적 전투는 경쟁적인 두 반동적 제국주의의 지원을 받는 양편에 이를
[우크라이나의 분할] 강제하고 있다. 우크라이나는 내전의 위기에 처해 있다.

러시아가 몇 주 동안 4만 명의 병력을 국경에 배치해놓고 있으면서 전면적인 침략 가능성이 점점 높아지고 있다. 미국도 이에 대한 대응으로 국제적 긴장을 증가시키는 개입을 확대하고 있다.

입증

지난 2월 빅토르 야누코비치 전 대통령의 실각과 뒤이은 키예프의 새 정부 구성 이후 우리가 드림디퍼드에서 제시한 분석이 최근의 암울한 사건으로 입증되고 있다.

그 분석에서 우리는 내전 위험을 경고했다. 실제로 우리는 2월의 그 글로 되돌아가 우크라이나 위기의 이번 단계가 시작된 지점과 당시 이미 내전 가능성을 걷잡을 수 없이 키우던 사태 전개를 살펴볼 가치가 있다.

▶2014년 2월 야누코비치 퇴진 직후의 분석
야누코비치 실각에 슬퍼하지도, 새 정부와 파시스트를 응원하지도 말라(링크)


우리는 러시아에 뿌리를 둔 키예프의 새 친EU 정권에 반대하는 '반마이단' 운동의 시작을 보고했다. 그리고 유로마이단이 준군사조직 결성으로 타락한 것과 마찬가지로 우크라이나 남부와 동부의 반마이단 시위가 이미 그들 자신의 준군사조직을 어떻게 조직하고 있는지 전했다.

유로마이단이 우크라이나 민족주의 영향을 받은 것과 마찬가지로 반마이단 운동은 러시아 국기와 지역 또는 옛 소련의 깃발을 들었다.

이 두 개의 추한 민족주의는 상처받은 우크라이나 노동계급에게 오직 더 큰 분열만 내놓을 뿐이다. 이러한 상황은 양편 모두에서 조직된 파시스트와 낡아빠진 인종주의, 반유대주의 반동에게 유리한 환경이었다.

우크라이나가 크림반도를 잃을 가능성과 나라가 피투성이로 해체될 위험성을 우리는 2월에 지적했었다.

현재 사망자 수가 증가하면서 키예프 정부는 남부와 동부 친러시아 준군사조직과의 전투를 위해 징집병을 복귀시키고 있다. 핵심에 파시스트를 포함한 유로마이단 준군사조직, 소위 '자기방어' 조직인 사무보로나(Samooborona)의 일부는 새로운 방위군, 실질적으로 특정 정파와 당파의 권력인 군의 일부로 통합됐다.

프라비 섹토르(Pravy Sektorㆍ극우파 연합)의 독립적인 파시스트 대원들 또한 우크라이나 '민족 혁명'을 위한 전투에 열정적으로 그 자신을 내던지고 있다.

분열과 파괴

그러나 우크라이나 보통 사람들에게 오직 분열과 파괴만을 가져올 유혈 충돌의 양편을 후원하는 것에 그 누구도 끌리진 않을 것이다.

유로마이단을 진보 또는 반자본주의로 파악하고 이에 대한 지지를 주장했던 몇몇 좌파가 있다. 시위대 다수가 더 나은 민주주의를 진심으로 바랐고 경제위기에 진정 분노했음에도 운동으로서 유로마이단은 진보적이지 않다고 우리는 드림디퍼드에서 주장했다.

대개 우크라이나어를 사용하는 서부와 중부 지역으로부터 주로 지지를 받아온 친EU 유로마이단 운동은 남부와 동부 노동자와 손잡을 수 있는 노동계급 요구를 제기하지 않았다. 그 대신 운동은 우크라이나 민족주의의 외피를 썼고 이 운동에서 파시스트의 역할은 논쟁의 여지가 없다.

그래서 우리는 유로마이단 시위의 확대, 특히 준군사조직의 발전에서 파시스트가 해온 중요한 역할을 드러냈다. 우리는 주류 언론보다 앞서 키예프 정부에 파시스트가 장관으로 입각했음을 폭로했다.

현재 또 다른 좌파는 광범위한 친러시아 그룹 또는 '분리주의자' 시위대와 그들의 경쟁자인 유로마이단을 모방한 준군사조직이 정부 청사를 점거하고 검문소를 세우면서 이들에게서 어떤 구원을 찾기도 한다. 그들은 자신들에 대응하기 위해 군대를 파견한 키예프 정부와 군사적 대결을 시작했다.

양편 모두 아니다

나는 이 암울한 전투에서 양편 어디든 지지하는 것에 맞서야 할 것이라고 주장했다.

키예프 정부의 합법성을 믿지 않으며 프라비 섹토르와 다른 유로마이단 준군사조직으로부터 위협을 느낀 그 지지자들 다수의 진정한 두려움과 분노에도 불구하고 동부의 운동은 자신의 거울 이미지인 유로마이단보다 더 이상 진보적이지 않다.

유로마이단과 마찬가지로 반마이단 시위는
[지역간] 분열을 넘어 지지받을 수 있는 종류의 정치적 노동계급 요구를 명확히 표명하지 않았다.

그 대신 반마이단에는 종종 스탈린주의의 그늘 아래 있는 러시아 민족주의가 만연하다. 러시아ㆍ소련 깃발이 눈에 많이 띄고, 검은색과 주황색 줄무늬로 된, 2차 세계대전 당시 소련이 수여했던 훈장에 사용된 성조지의 리본
[Ribon of St. Georgeㆍ현대 러시아에서 군사적 용기를 상징하는 것. 소련은 2차 세계대전 승전을 기념하며 수여된 훈장의 리본으로 사용됐다]이 운동에서 단결의 상징으로 사용된다. 이는 우크라이나를 편입시켰던 위대한 러시아 제국의 나날들을 상기시키는 것이다.

반마이단을 주도하는 친러시아 또는 러시아 민족주의 정치는 파시스트 단체에 최적의 조건이다. 반마이단 운동의 보다 혼란스러운 조건에서, 유로마이단에 존재했었던 것과 같이 세력을 규합한 파시스트를 알아보기란 쉽지 않다. 그러나 그들이 그곳에 존재하는 것은 분명하다.

우크라이나의 가장 큰 파시스트 단체 스보보다와 프라비 섹토르를 구성한 단체들은 우크라이나 민족주의에 뿌리를 내리고 있다.

파시즘과 반동

더 작은 규모긴 하지만 우크라이나에는 러시아 나치인 러시아민족통일당(Russian National Unity Party)과 연관된'슬라브족의 단결(Slavic Unity)'과 같은 러시아 민족주의에 바탕을 둔 파시스트 단체가 있다. 러시아에 뿌리를 둔 이들 파시스트 단체 몇몇은 지난해 11월 우크라이나 동부 도네츠크에서 행진을 벌이기도 했다. 그 직후 유로마이단 시위가 폭발했다.

지금 그 단체들이 반마이단에 집중하고 있을 수 있다. 왕정 지지자들의 검정과 황금ㆍ백색 깃발이 우크라이나 남부와 동부를 통합한 '새로운 러시아' 또는 우크라이나와 벨로루시를 장악한 '대러시아'라는 구호와 함께 극단적 러시아 민족주의자들에게 인기를 끌고 있다.

그리고 반 유대주의 흐름이 또다른 인종주의ㆍ동성애혐오주의 요소와 함께 반마이단 운동 구호를 오염시키고 있음을 쉽게 발견할 수 있다.

반마이단 운동은 스스로를 '반파시스트'라고 칭하길 선호한다. 그러나 이는 반동적인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을 '반파시스트'라고 부르는 것 만큼 매우 허황된 소리일 것이다.

진정한 반파시스트 운동은 그 경쟁자인 민족주의자 또는 배타적 애국주의자 이념을 촉진하는 것으로 건설되지 않는다. 일일이 셀 수 없이 많은 무장 준군사조직을 구성한 청년들의 작은 단체들에 의해서도 아니다. 이는 오직 스보보다와 프라비 섹토르 세력의 거울 이미지만 만들어낼 뿐이다.

특히 가짜 '반파시스트' 수사와 진짜 반유대주의의 일그러진 조합은 프라비 섹토르의 나치가 유대인 또는 유대인이 조정하는 조직이라는 잘못된 생각을 만들어낸다.

반마이단 운동에서는 유로마이단의 지도자들과 같은 잘 알려진 정치적 인물이 부족하다. 몇몇 도시에서 반마이단 시위가 매우 크게 벌어졌지만 통일된 요구안 또는 키예프 독립광장('마이단'의 원본)과 같은 저항의 중심은 불분명하다.

적ㆍ청ㆍ흑 깃발을 든 '도네츠크 인민공화국(People's Republic of Donetsk)'이라고 알려진 것을 포함해 돈바스 인민의용군(the Donbass People's Militia), 동부 전선(the Eastern Front), 남동부 군대(the South-Eastern Army) 등 일련의 단체와 민병대가 동부와 남부의 주들에 등장했다.

이들은 이전에 잘 알려져 있지 않은 사람을 지도자로 내놓았다. 투표로 뽑은 것도 분명 아니다. 그들은 비도덕적으로 보이는 패거리다. 과거에 피라미드 사기꾼이었지만 도네츠크 인민공화국의 '의장'에 앉은 데니스 푸실린도 거기에 포함된다.


돈바스 인민의용군(the Donbass People's Militia) 지도자 파벨 구바레프(Pavel Gubarev)가 과거 파시스트 준군사조직 러시아 민족단결단(Russian National Unity)과 함께하고 있다. 앞줄 왼쪽에서 셋째다(뒷쪽 문의 문양은 러시아 파시스트의 상징으로 쓰인다). [Pauluskp]

돈바스 인민의용군은 파벨 구바레프(Pavel Gubarev)가 이끈다. 그는 파시스트 준군사조직 러시아 민족단결단(Russian National Unity)과 우크라이나 진보사회주의자당(the Progressive Socialist Party of Ukraine)의 전 회원이었다. 우크라이나 진보사회주의자당은 이름과 달리 러시아 파시스트 알렉산드르 두긴의 영향력 아래에 있는 유라시안 청년동맹(the Eurasian Youth Union)과 동맹을 맺었다.

슬라뱐스크 '시장' 비야체스라프 포노마리오프는 소련의 아프가니스탄 전쟁에 참전했던 퇴역군인이고 비누공장의 전 경영진이다. 그는 자신의 민병대 지지자들을 '의심스러운 사람'이라고, 특히 우크라이나어를 사용하는 이들을 그렇게 불렀다고 알려졌다. 그리고 어떤 무명의 무장 강도는 4월 포노마리오프의 명령으로 로마인
[집시] 가족의 집을 공격해 도둑질 했다고 주장했다.

우리는 친우크라이나 활동가들이 프라비 섹토르 전투원들과 함께 5월 2일 오데사의 참혹한 충돌에 연관이 있다는 것을 알고 있다. 다수가 축구 훌리건 집단 '울트라'인 이들은 전투를 계획하기 위한 예행 연습으로 축구경기를 이용했다
[4월 27일 하리코프에서 드니프로와 메탈리스트의 경기에 모인 훌리건 5000여 명은 프라비 섹토르 활동가와 함께 키예프 정부에 항의하는 시위대 300여 명의 평화로운 행진을 공격했다ㆍ링크]. 파시스트 단체들은 자신의 회원 중 한 명의 죽음을 애도하고 있다.

그리고 오데사 반마이단 단체 '남부 전선(Southern Front)'은 5월 2일 '걱정스러운 거주자들'이 '오데사 방어에 함께' 참여해줄 것을 재촉하는, 러시아 파시스트들이 사용하는 검정과 황금ㆍ백색 깃발과 마스크를 쓴 전투원을 그린 이미지를 배포했다.


5월 2일 반마이단 활동가들을 동원하기 위해 사용한 이미지. 러시아 파시스트 집단이 선호하는 검정과 황금ㆍ백색으로 된 깃발이 담겨있다.

진정한 분노

중요한 것은 이것이 반마이단 운동을 지지하거나 심지어 거기에 참여하는 이들 모두 혹은 대다수가 파시스트라는 걸 말하는 게 아니라는 점이다. 당연히 다수는 파시스트가 아니다. 5월 2일 참혹한 죽음을 맞이한 반마이단 활동가 가운데는 스스로 반마이단 운동에 참여한 주요 정당 지역당(Party of Regions) 소속 오데사 지방의회 의원과 조그만 주변부 좌파 단체인 보로트바(Borotba) 활동가도 있다.

반마이단 지지자 다수는 유로마이단 지지자 다수와 마찬가지로 경제 붕괴와 부패한 정치 제도에 대한 진정한 분노 때문에 움직였다. 덧붙여 키예프국제사회연구소(the Kiev International Institute of SociologyㆍKIIS)가 우크라이나 남부와 동부 여덟 개 주에서 4월 둘째 주 실시한 여론조사에 따르면 이 지역에서 새 정부가 합법적이라고 믿는 사람의 수는 기껏 세 번째였다.

놀라운 일은 아니다. 키예프 정부는 유로마이단 여파로 집권했다. 그런데 운동은 러시아어 사용 인구가 집중돼 있고 문화와 경제에 있어 러시아와 강하게 연관돼 있는 우크라이나 남부와 동부 지역에서 약간의 지지만 얻었다.

준군사조직이 핵심 건물을 점거하는 것에 대해 이 조사의 12% 만이 지지했다는 것은 별 의미가 없다.

사실 조사에서 표현된 가장 큰 걱정거리 두 개는 '약탈 확대'(43%)와 경제 붕괴(39%)였다. 내전 위협(32%)과 월급ㆍ연금의 미지급(25%)이 그 뒤를 따랐다.

이러한 두려움은 서부와 중부 인민들 역시 공유할 법한 것이다.

또한 눈에 띄는 것은 여론조사가 우크라이나의 경제와 정치인 대다수를 조정하는 소수의 올리가르히와 실질적으로 대결하고자 하는 욕망을 드러냈다는 점이다. 24%가 올리가르히 재산의 국유화를 지지하고 또다른 41%는 올리가르히가 '불법적으로 벌어들인' 재산의 국유화에 찬성한다는 사실도 드러났다.

그러나 동부에서 유로마이단과 친러시아 운동 모두는 우크라이나 전역의 노동자를 단결시킬 수 있는 정책과 요구를 제시하지 않았다.

견고한

그들은 전통적인 정치적 분할속에 견고하게 자리잡고 있다. 이는 예전에 우크라이나 올리가르히의 두 날개로 동맹을 맺은 정당들에 대한 투표로 표현됐다. 그중 한 편은 이익이 EU에 달렸고 다른 한 편은 러시아에 밀접하게 연관돼 있다.

현재 이 출구 없는 정치는 군사적 활동으로 대치되고 있다. 이는 그 자신의 동학을 지니고 있다. 형식적 국가구조가 어찌할 도리 없이 그 내부로부터 붕괴되는 것으로 겉잡을 수 없이 확대되고 있다.

유로마이단 운동은 야누코비치 실각 이후 흩어졌지만 자위를 위한 준군사 조직과 프라비 섹토르 세력은 해산하지 않았다. 몇몇 도시에서 그들은 경찰이 있든 없든 '순찰'을 하고 있고 거기에 강도질을 벌이고 구타와 침입을 자행하며 인종적 공격과 정치인ㆍ정부 관료에 대한 습격을 하고 있다.

인권단체 '개인에 대한 범죄정보 그룹(the Information Group on Crimes Against the Person)'은 지역 신문에 보도된 이런 사건들에 대한 목록을 수집해 왔다. 이들은 또한 지금까지 반마이단편에 의해 자행된 폭력적 공격행위의 수가 더 적은 데 주목한다.

우크라이나 서부와 동부에서 정부 청사와 경찰서는 어느 쪽 단체에 의해서든 그들을 포위 공격한 이들에 의해 손쉽게 점령돼 왔다. 키예프 정부는 동부에서의 상황을 통제할 수 없다는 것을 인정한다.

워싱턴도 모스크바도 아니다

늑대는 문 밖에, 우크라이나 외부에 있다. 러시아를 한편으로 하고 미국과 EU를 한편으로 하는 주요 제국주의 세력은 오랫동안 제국주의 전장으로 피흘려온 우크라이나에서 경쟁을 벌이고 있다.

워싱턴과 모스크바는 우크라이나 인민에게 도움이 될 어떤 제안도 하지 않았다. 양편은 오직 그 자신의 자본주의 블록의 이익을 위해 평범한 사람들이 비용을 치를 세계의 분할에만 관심을 갖고 있다.

우크라이나는 러시아에 전략적ㆍ경제적으로 훨씬 더 중요하다. 그래서 러시아는 대규모 군사적 개입을 준비하고 있다. 4만여 명의 병력을 국경에 모아 언제든 침략할 수 있게 준비하는 것으로 대규모 파괴와 참혹한 전쟁의 위협을 가하고 있다.

미국과 EU 편은 주로 러시아의 확장을 저지하는 것에 관심을 모으고 있다. 그곳이 어디에 있든 자신의 제국주의 '뒷마당'이라는 것이다. 우크라이나에서의 이해관계 수준에 맞춘 미국과 EU의 지금까지 개입에서는 주요 무기로 탱크보다는 약간의 제재를 이용한 부드러운 방법이 사용됐다. 물론 이는 위기가 고조되면, 특히 러시아가 움직인다면 바뀔 수 있는 것이다. 북대서양조약기구(NATO) 국가의 사회주의자들은 미국 또는 EU가 군사적 행동으로 방향을 튼다는 신호에 맞춰 저항을 준비해야 할 것이다.

공연하게 지지했었다. 우리는 스보보다의 파시스트 올레흐 티아니보크를 포함해 유로마이단 지도자들이 EU 관료, 미국 고위 대변인과 함께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EU 외교안보 고위대표 캐서린 애슈턴(Catherine Ashton)이 올레흐 티아니보크, 비탈리 클리츠코, 아르세니 야체뉵과 함께 찍은 사진(링크)

▶미국 국무부 대변인 빅토리아 눌런드(Victoria Nuland)가 올레흐 티아니보크, 비탈리 클리츠코, 아르세니 야체뉵과 함께 찍은 사진(링크)

그리고 서방의 권력은 새 정부를 재빠르게 인정했다. 우크라이나 인민 대다수가 그 정부를 불법적이라고 여기고 있음에도 상관없이 말이다.

새 정부의 집권은 그 즉시 국제통화기금(IMF)의 270억 달러 차관 지원으로 축하받았다. 키예프 정부에 따르면 5월 1일부터 가스 요금 50% 인상을 포함한 긴축정책의 완료와 함께 지급될 차관이다. 우크라이나 노동자들이 대가를 지불하게 된 것이다.

미국은 역시 군사적 행동을 포함시켰다. 존 브래넌 CIA 국장은 4월 키예프를 공공연하게 방문했다. 서방 언론에서는 부정적 언급 없이 취급했지만 말이다. 미군 공수부대가 폴란드에서 훈련을 실시하고 추측건대 미국은 우크라이나 군대에 '비군사적' 지원을 제공하고 있다.

이라크에서 전쟁이 자신들에게 좋은 것이라고 여겼으면서도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략에 반대하는 미국과 유럽 지도자의 위선에 그 누구도 넘어가지 않을 것이다. 마찬가지로 러시아가 개입을 핑계로 내놓은 덫에도 빠져선 안 된다. 이 제국주의 경쟁 체제에서 좋은 제국주의란 없다.

대립하는 양측이 경쟁하는 제국주의의 지원을 받으면서 우크라이나 내 전투 사망자 수가 증가하면 선전 전쟁은 강화될 것이다.

그러나 선택할 수 있는 좋은 편은 없다. 반동적 준군사조직과 그들의 후원자이고 경쟁하는 제국주의인 워싱턴과 모스크바 모두는 분할 혹은 그 이상의 유혈사태라는 위협과 다른 어떤 것을 제안하지 않는다.

우크라이나 전국의 평범한 노동계급 인민은 나라가 분할된다면 큰 값을 치러야 할 것이다.

Posted by 때때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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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근혜는 대통령 선거를 준비하던 2012년 8월 서울 청계천 전태일 다리를 찾았다. '과거와의 화해'를 위해 전태일 동상 앞에 헌화를 하겠다는 것이었다. 쌍용자동차 해고자 김정우 지부장이 거세게 항의했지만 그는 아랑곳하지 않고 미소만 지었다. 그와 김 지부장은 마치 보이지 않는 벽으로 나뉜 서로 다른 공간에 존재하는 것처럼 보인다. [사진 뉴시스]

5월 9일 KBS 길환영 사장이 사과하고 김시곤 보도국장이 사임함으로써 세월호 피해자가족들의 청와대 앞 20여 시간 농성이 마무리 됐다. 또 하나의 요구였던 대통령 면담을 청와대가 완강히 거부했음에도 말이다.

박근혜는 왜 그리 강경하게 유족들과의 만남을 거부하는 것일까. 국정을 돌보느라 시간이 없어서? 그런데 바로 그 시간 청와대 안에서 박근혜는 세월호 사건 때문에 위축된 소비심리를 살려내야 한다며 긴급 민생대책회의를 열고 있었다. 세월호 참사가 청와대와 박근혜에게 '중요'하게 고려되고 있다면 민생대책회의가 아닌 유족들과의 면담을 우선했어야 할 것이다. 사고 후 수습과 구조 과정에서 보여준 정부의 무능과 무관심에 사람들은 경악하며 한국이라는 사회에서 살아남는 법을 고민하게 됐기 때문이다. 소비심리의 회복과 경제생활의 정상화는 바로 이러한 불신과 불만을 어루만지는 데서 시작했어야 한다. 그렇지만 박근혜는 유가족이 청와대 앞에서 경찰 수천 명에 고립돼 있는 동안 대한상의 상근부회장, 한국여행업협회장, 대한숙박업중앙회장, 한국관광협회중앙회 부회장, 현대ㆍLG경제연구원장을 만났다. 결국 그가 어루만지려는 국민, 그가 소통하려는 국민은 이 나라의 자본가들이었다. 이는 '시간'의 문제가 아니라 결국 선택의 문제다. 그리고 그의 선택은 우리 편이 아님을 스스로 입증했다.

박근혜는 자신이 선택하지 않은 국민 다수와 사이에 투명한 벽을 쌓고 있다. 팽목항을 처음 찾았을 때 경호원에 둘러싸인 박근혜는 자신 앞에 무릎 꿇고 오열하는 유가족 앞에서 굳은 표정으로 서있었을 뿐이다. 그는 자신이 계획한 대로만 움직인다. 4월 29일 안산시 화랑유원지에 마련된 정부 합동분향소를 찾았을 때 그는 가짜 유가족을 앞세워 우아한 워킹으로 사진과 영상을 위한 촬영에만 최선을 다했다. 경호원에 의해 박근혜에게 접근하는 것이 가로막힌 '순수' 유가족이 거센 목소리로 정부의 무능력에 항의하는 중에 말이다. 이런 모습은 처음이 아니다. 대통령 선거를 준비하던 시절인 2012년 8월 28일, '과거와의 화해'를 시도한다며 서울 청계천 전태일 다리를 방문해 헌화하려 했을 때 쌍용차 김정우 지부장이 거센 항의를 눈앞에 두고도 그는 의미를 알 수 없는 미소만 짓고 있었다
(박근혜, 전태일 유족 반발에 발길 돌려ㆍ뉴시스ㆍ링크).

세월호 사고 초기부터, 아니 취임 전부터 일관되게 보여왔던 박근혜의 어떤 모습을 보면서 나는 그의 개인적 기질에 관심을 갖게 됐다. 아마 나뿐만은 아니었던 것 같다. 정희진은 경향신문 칼럼
(위로하는 몸ㆍ4월 23일자 13면ㆍ링크)에서 이렇게 적었다.

"박 대통령의 경직된 얼굴은 국민의 고통에 대한 무감각, 판단력 부재, 평소의 나르시시즘(독재성)이 합쳐진 결과다. 이런 상황에서 '이성을 잃은 미개한 민초'들이 울부짖으며 달려들자 그의 몸은 자신도 모르게 불쾌감으로 대응했다. 굳은 얼굴, 위로하는 역할을 해야 할 사람이 화가 난 것이다. 뻔뻔스러움조차 넘어선 '마리 앙투아네트'의 몸이다."

이 구절에 크게 공감할 수밖에 없었다. 비록 내가 떠올린 인물은 '마리 앙투아네트'가 아닌 러시아 제국의 마지막 짜르 니콜라이 2세였지만 말이다. 트로츠키는 러시아 혁명사 4장 '짜르와 황후'에서 지배계급 개인의 특성이 역사의 운동과 어떻게 연관을 맺는지 매우 설득력 있게 그려낸다. 물론 역사에 대한 유물론적 관점을 옹호하는 나는 개인의 특성이 역사를 움직인다는 주장에 동의하지 않는다. 대신 "역사의 거대한 동력은 그 성격상 개인의 한계를 초월한다"는 트로츠키의 주장에 나는 전적으로 동의한다. 그럼에도 역사는 그러한 개인들을 매개로 움직인다. 따라서 트로츠키의 주장대로 "개인의 영역이 끝나고 집단적 역사가 시작되는 부분을 엄밀히 확인할 필요가 있다".

박근혜에게 관심을 쏟는 것도 마찬가지여야 한다. 그는 지금 분노의 초점이고 정국의 핵심이다. KBS 본관 앞에 울고불고 매달려도 꿈쩍 않던 사장과 보도국장이었다. 청와대는 공개적으로는 KBS의 사과와 보도국장 사임에 대해 할 수 있는 게 없다고 말했었다. 그렇지만 유족들이 청와대 앞에서 농성을 이어가자 더 이상 버티지 못하고 사과와 사임을 한 것이다. 이는 국영방송국을 움직이는 핵심 권력이 청와대에 집중돼 있다는 걸 보여준다.

그렇다고 박근혜의 권력을 강력한 것이라고 두려워할 필요는 없다. 지난해 12월 철도노노조의 총파업은 박근혜 정부를 위기로 몰아갔다. 나는 지난해 12월 이 블로그에서 노동자들의 단호한 집단행동이 박근혜정부와 새누리당의 분열을 일으키기 직전까지 몰아부쳤고 중도층을 박근혜정부로부터 분리해내기 시작했었다고 주장했다. 물론 민주노총이 물러섬으로써 그 기회를 놓쳤지만 말이다
(민주노총, 흔들리는 정부ㆍ새누리당 앞에서 후퇴하다ㆍ링크). 이와 비슷한 일이 KBS를 둘러싸고 다시 벌어졌다. 조금 작은 규모지만. 김시곤 국장은 사임 의사를 밝히면서 길환영 사장이 청와대만 바라보고 있다며 사장도 물러나야 한다고 주장했다. 규모 있는 집단적 행동의 부재에도 불구하고 언론과 SNS로 표출되는 대중의 불만과 분노 만으로도 지배계급은 균열을 드러냈고 청와대도 둔하지만 조금씩 움직였다.

'고통에 대한 무감각, 판단력 부재, 평소의 나르시시즘'에 가득찬 박근혜와 청와대는 둔하게만 움직일 수 있다. 트로츠키가 그린 러시아 제국의 마지막 황제는 역사의 파도에 "멍청한 무관심으로 일관했다". "자기가 살고 있는 시대와 이 시대에 대한 그의 인식 사이에는 투명한, 그러나 결코 침투할 수 없는 어떤 매질(媒質)이 버티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내가 박근혜의 무감각으로부터 떠올린 것은 바로 이 짜르와 역사 사이의 침투할 수 없는 '매질'이었다. 그리고 이러한 매질이 만들어낸 박근혜의 무감각이 대중의 분노를 부추기고 있다.

이 '매질'은 역사의 파도로부터 짜르를 보호해주지 못했다. 박근혜의 경우 이 '매질'이 분노를 자아내고 대중을 움직이고 있다. 5월 10일 안산에는 2만여 명이 모였다. '엄마들의 노란손수건' 대표 김경래씨는 "서로 책임을 떠넘기고 조작하고 은폐하는 정부, 국민을 책임지지 않는 정부는 필요없다"며 국민과 사이에 투명한 매질로 벽을 쌓는 박근혜정부를 비난했다. "우리가 나라를 바꾸겠다"는 주장에 크게 동감하는 것이 나 만은 아닐 것 같다
("잊지 않겠습니다" 안산 거리 가득 메운 촛불ㆍ경향신문ㆍ링크). 우린 좀 더 자신감을 갖고 행동에 나설 필요가 있다. 우리가 원하는 대로 역사가 움직이진 않을지라도 말이다.

트로츠키가 쓴 러시아 혁명사 4장 '짜르와 황후' 일부를 아래 발췌해 옮겨놓는다. 최규진이 옮기고 풀무질에서 발행한 책이다.

역사의 거대한 동력은 그 성격상 개인의 한계를 초월한다. 짜르 왕정도 이 역사의 동력 가운데 하나이다. 그러나 이 동력은 개인들을 통해 작용한다. 그리고 왕정의 작동원리는 개인과 분리될 수 없다. 역사발전 과정 중에서 짜르는 혁명과 마주쳤다. 따라서 역사발전의 한 고리인 짜르의 개인적 특성에 관심을 갖는 것은 정당하다. 더욱이 최소한 부분적이나마 짜르 개인의 영역이 끝나고 집단적 역사가 시작되는 부분을 엄밀히 확인할 필요가 있다. ……

니콜라이 2세는 자기 아버지로부터 거대한 제국은 물론이고 혁명마저 물려받았다. 그런데 그는 제국은 고사하고 지방의 주(州)나 군(郡)을 통치할 자질도 물려받지 못했다. 궁전 대문 앞으로 갈수록 가까이 다가오고 있는 저 역사의 파도를 이 마지막 로마노프는 멍청한 무관심으로 일관했다. 자기가 살고 있는 시대와 이 시대에 대한 그의 인식 사이에는 투명한, 그러나 결코 침투할 수 없는 어떤 매질(媒質)이 버티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

러시아군이 … 러일전쟁에서 패배했을 때 … 10년 후 러시아군이 갈리치아 전선에서 후퇴했을 때, 그리고 다시 2년 후 권좌에서 쫓겨나기 직전 측근들 모두가 침울, 경악, 충격을 느꼈을 때였다. 그러나 짜르 혼자만 평정을 유지했다. … 이것의 핵심은 기질적 무관심, 정신력의 빈곤, 의지력의 허약함이었다. ……

두 번의 전쟁과 두 번의 혁명을 거치면서도 짜르의 시각은 전혀 바뀌지 않았다. 그의 의식과 사건들 사이에는 항상 무관심이라는 매질이 버티고 있었다. ……

이 둔하고 평온하고 "교육을 잘 받은 인간"은 잔인했다. 그러나 그의 잔인성은 역사적인 목표를 추구하는 과정에서 이반 뇌제나 표트르 대제가 보였던 적극적 잔인성이 아니었다. 니콜라이 2세가 이들처럼 역사적 목표라도 가질 수 있었겠는가? 늦게 태어나 자기 운명에 대한 공포심에 사로잡힌 비겁한 잔인성에 지나지 않았다. … 검은 양처럼 마음이 악한 이 왕은 온 정성을 다해 인간쓰레기의 대명사인 흑백인조 깡패들을 가까이 했다. 국가예산에서 이들에게 돈을 듬뿍 집어주었을 뿐 아니라 이들의 무용담을 즐겨들었다. 이들 중 누가 야당의원 살해에 우연히 연루되었을 경우에는 사면조치를 내렸다. ……

니콜라이 2세는 야만적인 중세의 미신마저 선대로부터 물려받았다. 한편, 지난 몇 십년간 나라는 계속 변화하여 문제들은 더 복잡해졌으며, 문화수준은 더 높아졌다. 그런 까닭에 짜르 주위로 모여든 인간들의 문화수준은 일반인들보다 훨씬 처져 있었다.

짜르 왕정은 외부의 강제 때문에 새로운 사회세력들에게 양보조치들을 허용하였다. 그러나 내적으로는 전혀 현대화되지 못했다. 이와 반대로 자기 안으로 계속 움츠러들 뿐이었다. 적대감과 두려움이 더욱 커짐에 따라 조정의 중세적 미신은 더 큰 힘을 발휘했다. 그리고 마침내, 나라 전체를 뒤덮는 구역질나는 악몽이 연출되었다. ……

구 체제의 신봉자인 참의원 의원 타간체프는 이렇게 말했다. "만약 라스푸틴이 없었다면, 그와 같은 인간을 만들어내는 것이 필요했을 것이다." 이 말에는 타간체프 자신이 생각한 것보다 훨씬 더 많은 진실이 담겨있다. 사회 밑바닥을 구성하는 반(反)사회적 기생집단의 극단적인 행동을 깡패짓이라고 한다. 그렇다면 라스푸틴의 행패는 사회 최정상에서 왕을 끼고 한 깡패짓이라고 규정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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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okcom 2014.05.11 20:43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제가 바보둘님 글을 칭찬한단 게 무슨 의미인지 모르겠으나 그럼에도 저는 페북부터 시작해 세 개의 버전(!) 모두 인상 깊게 읽었습니다. 여러 차원에서 생각할 거리를 던져주네요. 감사합니다.

    • 때때로 2014.05.11 21:11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일개 블로거지만 칭찬은 글을 쓰는 큰 힘이 됩니다. 실은 '박근혜 퇴진'이라는 구호를 둘로싼, 제가 예전부터 매우 싫어했던 사람이 쓴 글 때문에 고민하게 된 문제인데 너무 에둘러 썼나 싶은 생각도 듭니다.

  2. 때때로 2014.05.12 01:35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드라마 '정도전'에서 이성계 일파가 선위를 도모하려는 회합 자리(34화, 5월 4일 방영분)에 우왕이 직접 참여해 군왕의 위엄을 보여 선위를 거부하라는 포은 정몽주의 말에 우왕 비 이씨는 이렇게 말했다. "대감이 아니 되는 것을 주상이라고 되겠습니까. 저 어린 주상이 그 위험한 곳에서 말이나 제대로 할 수 있겠느냔 말입니다." 결국 포은이 대신 나서 회합 장소인 흥국사로 향한다. 나는 고려 말과 조선 건국의 역사를 모른다. 그저 드라마를 보며 이것저것 생각해볼 뿐이다. 그렇지만 이 대사는 참으로 잘 쓴 것 같다.


나토(NATO)는 2000년대 동진 정책을 강화했다. 1999년 폴란드ㆍ체코ㆍ헝가리가 가입했고 2004년에는 러시아의 목 아래인 발트3국(에스토니아ㆍ라트비아ㆍ리투아니아)를 비롯해 7개 나라가 동시에 가입했다. 2009년에는 크로아티아와 알바니아가 가입했다. 1991년 소련 해체 후부터 계속된 나토의 동진 정책과 유럽연합의 지속적인 확장은 공공연하게 러시아의 고립을 목적으로 했다. 2000년대 러시아의 군사적 재무장과 옛 러시아 제국 부활의 꿈은 일차적으로 이에 대한 반발로 이해해야 한다. [그래픽=위키피디아]

우크라이나 사태 초기 반러시아 정서가 시위대를 지배했다. 2008년 조지아에서와 같은 러시아의 개입은 처음부터 주요 두려움이었다. 천연가스라는 목줄을 쥔 러시아는 몇 차례 가스 공급을 중단함으로써 자신들에 유리하게 우크라이나를 조정해 왔다. 대중은 자신의 빈한한 삶을 현재 러시아의 지속적 개입과 그들이 과거 남겨놓은 유산, 옛 소련의 유산 탓이라고 생각할 가능성이 컸다. 공공연하게 러시아 제국의 부활을 도모해온 푸틴의 모습도 이러한 이미지를 굳혀왔다. 이는 서방 언론에 의해 더 강화돼 왔다.

그러나 평화롭게 살고 있는 우크라이나와 옛 소련 공화국들을 푸틴이 제국 부활의 꿈을 위해 위협해 왔다는 것은 그림의 한쪽 편만 보는 것이다. 미국을 두목으로 한 서방제국주의 진영은 1991년 소련 해체 이후 지속적인 동진 정책을 펼치며 이미 패배한 옛 제국 러시아에게 모든 것을 내놓으라고 위협했다. 나토(NATO)는 군사 측면에서, 유럽연합은 경제적ㆍ정치적 측면에서 러시아를 고립시켜 위협해 왔다.

먼저 나토를 살펴보자. 1990년 소련은 통일 독일에 나토군이 주둔하는 것이 서방의 군사적 동진의 신호탄이 될 것을 우려했다. 그해 2월 고르바초프 소련 대통령과 제임스 베이커 미국 국무장관, 헬무트 콜 독일 총리의 협약은 소련의 이런 우려를 불식시키기 위한 것이었다. 당시 베이커는 "나토 관할지는 동부를 향해 1인치도 이동하지 않을 것"이라고 약속했고 콜은 "당연히 나토는 영토를 확대시킬 수 없다"고 보증했다.

그러나 미국의 이런 약속은 몇 년 지나지 않은 1994년부터 공공연하게 파기됐다. 1991년 바르샤바조약기구 해체 후 집단안보체제의 부재에 불안을 느끼던 중동부 유럽 국가들에 나토는 1994년 나토-PFP(Partnership for Peace)를 제안했다. 소련 해체 후 미국과 관계 개선에 힘써왔던 옐친 러시아 대통령은 나토의 이 정책에 우왕좌왕 했다. 하지만 1995년 나토가 확대정책을 공식화하면서 러시아의 서방제국주의에 대한 반발은 강화되기 시작했다. 2004년 발트3국(에스토니아ㆍ라트비아ㆍ리투아니아)의 나토 가입은 러시아 입장에서 서방으로부터의 위협에 쐬기를 밖는 꼴이었다. 이미 1999년 코소보 사태 당시 나토는 세르비아를 옹호하며 평화적 해결책을 모색하던 러시아를 무시하고 폭격을 감행해 러시아의 적대감을 키운 바 있다. 세르비아 폭격 후 서방에 반발한 민족주의가 러시아 정치권을 휬쓸었다. 2000년 푸틴의 집권과 '강한 러시아' 정책은 1995년, 1999년, 2004년의 잇따른 나토의 확대에 대한 반발의 과정 속에서 이해해야 한다. 푸틴의 개인적 성향을 결정적인 것으로 볼 수 없다. 2008년 조지아와의 전쟁은 서방의 동진 정책에 대한 러시아의 대응이었다.

유럽연합의 확장도 마찬가지다. 소련 해체 후 유럽연합의 경제적 영향력은 중동부 유럽으로 꾸준히 확장되고 있었다. 그 결정적 국면은 2004년 발트3국을 포함한 중동부 유럽의 유럽연합 가입으로 시작됐다. 우크라이나도 2003년 유럽연합 가입을 신청함으로써 유럽의 경제영토 확장과 포위라는 위협은 소련에게 현실적인 게 됐다. 유럽연합도 확장 정책에서 자신의 주요한 목표 중 하나가 러시아의 포위와 고립이라는 것을 숨기지 않았다. 2003년 우크라이나의 가입 신청 당시 유럽연합은 그 조건으로 이후 전개될 러시아의 경제구상에 참여하지 않을 것을 내걸었다. 물론 2013년 우크라이나 정부의 우왕좌왕과 마찬가지로 당시 우크라이나 정부도 유럽연합의 그러한 조건에 한 발 물러서긴 했다. 재밌는 것은 당시 총리가 이번에 쫓겨난 야누코비치였다는 것이다. 즉 야누코비치를 일관된 친러시아파로 보는 것은 우크라이나가 처한 현실을 제대로 보지 못한 분석일 뿐이다.

이러한 서방의 군사적ㆍ경제적ㆍ정치적 동진, 러시아 포위ㆍ고립 정책은 2008년 경제위기 이후 위기를 현실화 시켰다. 유럽연합은 2009년부터 우크라이나를 포함해 몰도바ㆍ벨로루시ㆍ조지아ㆍ아르메니아ㆍ아제르바이잔 여섯 개 나라와 유럽연합-동부 파트너십 프로그램을 펼치면서 동진 정책을 공식화 했다. 자신의 두 수도, 상트페테르부르크와 모스크바로부터 그리 멀지 않은 곳까지 진출한 서방 세력에 러시아가 위협을 느끼는 것은 당연하다. 물론 그렇다고 러시아 제국주의를 옹호할 순 없다. 하지만 지금의 우크라이나 사태에서 러시아를 유일한 악의 축으로 모는 것은 문제의 진정한 핵심이 아니다.

막강한 군사력을 지닌 제국주의 열강의 다툼에 무력감만 느낄 필요는 없다. 유럽연합은 자신의 확장 정책에 의식적으로 신자유주의적 정책을 강조하고 있다. 공기업 민영화, 공공 서비스의 축소, 노동시장 유연화는 유럽연합이 자신의 가입 조건으로 빼놓지 않는 것들이다. 그들은 우크라이나에게도 마찬가지로 가스와 난방 요금 인상, 공공 서비스의 축소를 요구했다. 이러한 정책은 노동계급 대중의 사회적 불만을 자극할 것이다. 실제로 이번 우크라이나 사태의 이면에는 이에 대한 대중의 광범위한 불만이 자리잡고 있다. 야누코비치는 가스요금 인상 시도, 노동법과 연금제도 개악, 의료 서비스의 공공성 약화로 대중에게 큰 불만을 사왔다. 그리고 이러한 유럽연합의 정책은 중동부 유럽을 벗어나서 유럽 전체에 크나큰 반란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최근 가장 중요한 사례는 민영화로 인한 고통에 맞선 보스니아의 혁명이다. 1995년 민족주의적 갈등으로 참혹한 전쟁을 겪은 이 나라의 노동계급은 지금 민족과 국경을 넘어선 계급적 단결을 도모하고 있다. 즉 친유럽이냐 친러시아냐라는 오도된 갈등으로부터 독립적인 대안을 제시할 수 있다면 우크라이나 인민은 진정한 대안을 찾을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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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때때로 2014.03.18 11:35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크림자치공화국 주민 84%가 투표에 참가. 96.8%가 러시아 귀속에 찬성표. 일단 이 결과에서 '부정선거' 여부는 논외로 해도 될 듯. 물론 유럽연합 등 서방측 조사단의 입국이 거부되긴 했으나 시퍼렇게 눈 뜨고 있는 미국도 '우크라이나 헌법'에 맞지 않아서 '불법'이라고 주장할 뿐, 투표 자체의 부정성은 언급하지 않은 듯싶다. 미 백악관은 "이번 주민투표는 우크라이나 헌법에 위배되는 것이므로 국제사회는 이를 인정하지 않을 것"이라고 밝혔다. 물론 러시아군이 주요 시설을 점거하고 있는 가운데 치뤄진 선거가 온전히 자유로운 선거일 수 있느냐는 논란이 될 수 있다. 실제로 오바마 미 대통령은 푸틴과의 전화 통화에서 "이번 주민투표는 우크라이나 헌법을 위반하고, 러시아군 개입에 의한 협박하에 치러졌기 때문에 미국과 국제사회는 절대 인정할 수 없다"고 말했다고 한다.

    그럼에도 상당히 높은 수준의 투표율을 고려하면 당분간은 이 투표 결과를 크림반도 주민의 집단적 의사로 인정해도 될 듯하다.

    크림반도 지역의 러시아계 주민이 58%정도라는 걸 고려하면 키예프 과도 임시정부에 대한 반발이 예상 외로 큰 것 같다. 이러한 결과엔 유력한 대선 주자인 티모셴코와 그의 당인 바티키프쉬나(조국당)가 올리가르히와의 부패한 연관에서 자유롭지 못하다는 것도 한몫 한 것 같다. 과도 임시정부는 올리가르히를 도네츠크 주지사로 임명하기까지 했다 . 거기에 노골적인 반유대주의적 행보를 보이는 극우 파시스트들을 입각시키기도 했다.

    우크라이나와 크림반도의 주민을 희생양 삼아 자신의 야망을 달성하려는 러시아 제국주의의 태도도 역겹지만, 1991년 소련 해체 후 20여년 이상 지속돼 온 서방의 러시아 고립ㆍ포위 정책에 침묵하는 주류 언론은 더 역겹다. 보수 언론만 그런 건 아니다. 경향신문과 한겨레조차도 이번 사태를 푸틴의 야욕과 연관시킬 뿐 서방의 동진 정책에 대해선 침묵하고 있다.

    ●[중앙일보] 크림 "집으로 돌아간다" … 오바마, 푸틴 측근 등 11명 제재: http://joongang.joins.com/article/155/14182155.html?ctg=13

    ●[경향신문] 크림 의회, 러시아에 귀속 요청: http://news.khan.co.kr/kh_news/khan_art_view.html?artid=201403172159055&code=970205

    ●[한겨레] 크림반도 주민투표…러 합병 찬성 97%: http://www.hani.co.kr/arti/international/europe/628658.html

아래 글은 3월 6일 참세상에 기고한 글이다. 글이 공개된 후 유럽연합과 미국을 한 편으로 하고 러시아를 다른 한 편으로 한 갈등이 크림자치공화국의 지위를 중심으로 더 격화되고 있다. 나토(NATO)는 폴란드에 F-16 등 전투기를 배치하고 미국은 알레이버크급 이지스 구축함을 흑해에 파견했다. 러시아도 대규모 군사훈련을 반복하며 군사적 긴장 강화의 한 축을 담당하고 있다. 따라서 우크라이나 국내의 긴장도 친유럽연합이냐 친러시아냐를 중심으로 커져가고 있다. 2000년대 이후 나토는 꾸준히 러시아 국경을 향해 동진해왔다. 발트3국(에스토니아ㆍ라트비아ㆍ리투아니아)의 2004년 나토 가입은 러시아에게 결정적 위협으로 다가왔다. 상트페테르부르크와 모스크바 바로 앞까지 서방의 군대가 진격한 것이다. 유럽연합의 경제적ㆍ정치적 확장도 마찬가지다. 유럽연합은 2009년부터 우크라이나를 포함해 몰도바ㆍ조지아ㆍ벨로루시ㆍ아르메니아ㆍ아제르바이잔 6개 옛 소련 공화국과 유럽연합-동부 파트너십 정상회의를 개최하고 있다. 이전 발트3국과 중동부 유럽 국가들이 유럽연합에 가입할 때와 마찬가지로 이 협상에서도 유럽연합은 러시아가 추진하고 있는 경제구상에 가입하지 않을 것을 요구하고 있다. 즉 러시아와의 적대 관계를 분명히 밝히고 어느 편에 설것인지를 결정하라고 강제하고 있는 것이다.

아래 글에서 밝히고 있듯이 우크라이나에서의 국내적 갈등은 제국주의 갈등을 빼놓고선 이해할 수 없다. 제국주의 열강의 대립하에 정치적 선택의 여지가 좁은 국내 정치인들의 우유부단함이 대중적 불만을 촉발시켰다. 물론 대중적 저항의 배경에는 신자유주의적 경제 개혁에서 비롯한 광범위한 불만이 존재한다. 최근 우크라이나 야권(현 과도 임시정부 세력)이 2월 18~19일 사이 100여 명의 목숨을 앗아간 저격의 배후라는 폭로가 있었다. 같은 저격수들이 시위대와 경찰 모두를 공격했다고 한다. 여기서 어떤 음모, 특히 미국을 중심으로 한 음모가 떠오를 수밖에 없다. 하지만 유로마이단이 야누코비치의 실각으로 이어질 수 있었던 것, 극우파가 단호하게 거리에서 전투를 지속할 수 있었던 것은 광범위한 대중적 불만과 저항에 대한 지지가 존재했기 때문이다. 그 저항이 극우 파시스트에 의해 납치됐다고 할지라도 말이다. 음모를 밝혀내는 것은 그 나름대로 중요하겠지만 지금도 가장 중요한 것은 우크라이나 사태가 제국주의적 갈등을 배경으로 진행되고 있다는 것이다. 현 과도 임시정부를 구성한 정치세력도 이 갈등에서 독립적이지 못하다. 따라서 이들도 우왕좌왕할 것이고 그 과정에서 내부의 갈등이 표출될 것이다. '유럽'으로 표현됐던 대중의 광범위한 사회적 불만을 이들 정치세력이 해결해주지 못할 것도 뻔한 이치다. 따라서 우크라이나 사태 1막에서 큰 역할을 하지 못했던 좌파에게 기회는 아직 남아있다. 여전히 과제는 유럽연합과 미국의 서방제국주의와 러시아의 동방제국주의 둘 모두에 독립적인 대안을 건설하는 것이다.

참세상에 기고한 글을 그대로 다시 옮겨놓는다.


제국주의 변경 우크라이나, 세계를 흔들다
참세상 3월 6일

지난해 11월 말 시작된 우크라이나 위기가 2월 22일 야누코비치의 실각 이후 흑해를 중심으로 한 세계적 위기로 발전하고 있다. 우크라이나는 1991년 소련으로부터 독립 후 세계경제의 일원으로 편입됐다. 그에 따라 세계경제의 위기로부터의 영향도 강해졌다. 옛 러시아 제국의 회복을 꿈꾸는 푸틴과 러시아 지배계급도 우크라이나의 상황을 규정하는 중요한 힘이다. 우크라이나 지배계급이 친러시아와 친유럽을 시계추처럼 오락가락 하게 만든 것이 이 두 조건이다. 이 과정에서 소비에트 몰락 후 형성된 과두지배계급 올리가르히는 우크라이나 정치를 자신의 뜻대로 주물러왔다. 장기판의 졸처럼 제국주의 세계경제와 자국 내 올리가르히의 지배에 시달려온 우크라이나인들은 자신의 독립적인 정치적 대안을 건설하지 못했다. 이는 과거 소비에트 시절 지배 세력인 공산당이 현재는 민족주의적 정치에 굴복하고 대중의 진정한 열망에 아무런 관심도 없는 것과 관련이 있다. 불행히도 키예프의 거리로 나선 우크라이나인 다수는 '좌파'를 공산당과 연관지어 생각한다. 다른 좌파는 정국에 영향을 미치기에는 너무 약하다. 지난 세 달 간 우크라이나의 위기에서 극단적 민족주의 세력, 파시스트가 정국을 주도한 이유다. 하지만 이들도 게임의 최종 주재자는 아니다. 러시아의 군사적 개입은 우크라이나를 세계적 경쟁의 주요 격전지로 만들고 있다. 결국 3개월을 이어온 싸움은 현재 야누코비치가 쫓겨난 후 러시아와 서방의 국제적 분쟁으로 발전하고 있다. 1853~56년 자본주의 성장을 주도하던 프랑스ㆍ영국은 오스만투르크를 부추겨 우크라이나 크림 반도에서 옛 제국 러시아와 전쟁을 벌였다. 제2차 세계대전 땐 독일과 소련이 맞부딪힌 전장이었다. 우크라이나는 다시 한 번 제국주의 국가들 사이의 전장이 될까? 2013년 11월 이후 우크라이나 위기의 배경과 전개를 살펴본다.



1월 22일에서 23일 사이 키예프 거리의 바리케이트. 1월 16일 집회와 시위를 강력하게 규제하는 11건의 '반시위법'이 의회에서 통과된 후 거리 시위가 다시 격화됐다. [사진=Ilya Varlamov]

배경 1 충돌사고 일으킨 야누코비치의 방향전환

2013년 11월 30일 새벽, 빅토르 야누코비치 대통령이 유럽연합(EU)과의 협력협정 체결을 중단한 것에 항의하는 키예프의 마지막 시위대는 기껏 400여 명정도로 알려졌다. 그러나 무언가에 쫓긴 듯 야누코비치는 이 시위에 경찰 특수부대 베르쿠트(Berkut) 2000명을 투입해 강제 해산시켰다. 주로 학생인 시위대는 베르쿠트의 진압봉에 맞아 거리에서 피를 흘리며 쓰러졌고 33명이 체포됐다.

21일부터 열흘째 이어오던 시위는 1일 정권과의 정면 충돌로 발전했다. 경찰의 강경진압에 분노한 키예프 시민은 독립광장으로 모여들었다. 이전 열흘 간 수만명 규모였던 시위는 순식간에 수십만명 수준으로 늘어났다. 언론에 따라 35만~50만명이 1일 시위에 참여했다고 보도했다. 광장에는 텐트가 설치됐고 시위대 일부는 시청 등 정부 건물들을 점거하기 시작했다. 연병장 또는 광장을 뜻하는 '마이단(Maidan)'은 이 때부터 이 운동의 이름으로 불리게 됐다.

마이단, 또는 유로마이단으로 불리는 이 운동이 시작된 것은 2013년 11월 21일 우크라이나 정부가 EU와의 협력협정 체결 중단을 발표하면서다. 그리고 이러한 정책전환은 현기증이 느껴질 만큼 급격한 것이기도 했다. 다름 아닌 야누코비치 스스로에 의해 유럽화 만이 우크라이나가 살 길이라는 선전이 협정 중단 직전까지 계속됐기 때문이다. 당연히 여기에는 이유가 있다. EU와의 협력을 추진했던 것도, 그것을 포기한 것에도 모두.

2008년과 2010년 두 차례 IMF로부터 차관을 지원받을 만큼 우크라이나 경제상황은 안좋다. 실업률은 준수한 편으로 나타났지만(2012년 7.5%, 세계은행) 실제로는 일자리를 찾아 해외로 떠나는 사람이 늘고 있었다. 독일의 옛 동독지역으로 일자리를 찾아온 외국인 중 우크라이나인의 수는 네 번째로 많다. 러시아의 산업지역에서도 부족한 생산인력을 우크라이나인이 주로 메꾸고 있다. 조지아ㆍ폴란드와 비교했을 때 GDP의 변화는 가장 급격해 불안정한 우크라이나 경제상황을 그대로 보여준다. 경제위기 여파로 2009년엔 1인당 GDP 증가율이 -14.4%까지 떨어졌다. 같은 해 조지아는 -4.37%, 폴란드 1.53%, 전 세계는 -3.25%였다. FTA까지 포함된 EU와의 포괄적 협력협정은 이러한 경제불안의 탈출구로 제시됐다.

EU와 협력을 강화하려는 야누코비치의 노력이 위선은 아니었다. 협상을 시작한 후 러시아 정부의 간섭이 계속됐지만 충돌을 불사하고 추진됐다. 2013년은 첫날부터 우크라이나와 러시아의 가시 돋친 설전이 펼쳐졌다. 러시아 외무부 경제협력국 알렉산드르 고르반 국장이 "우크라이나는 두 마리의 토끼를 동시에 잡으려 하고 있다. 자기들을 그렇게 반기지 않는 EU에 가입하려 애쓰면서 동시에 (러시아가 주도하는) 관세동맹에도 자신들에게 유리한 조건으로 참여하길 원하고 있다"고 지적하며 이를 "조금만 임신을 하는 법은 없다"고 비꼬았다. 다음 날엔 우크라이나 외무부 공보국 올렉 볼로쉰 국장은 "우크라이나는 (러시아 주도의) 관세동맹은 물론 EU를 비롯한 모든 국제기구와의 협상에서 전적으로 자국의 이익을 추구하고 있다"고 반박했다. 우크라이나의 이러한 정책은 독립국가로서 당연한 권리라는 것이다.

이러한 갈등은 2013년 내내 계속됐다. 7월 말에는 러시아가 우크라이나 제과업체 '로셴'의 제품 수입을 금지했다. 8월 22일에는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직접 나서 "우크라이나가 EU와 경제협력을 맺는다면 관세동맹 국가들으 그에 따른 보호조치를 취할 것"이라고 경고했다. 우크라이나의 반발도 만만치 않았다. 11월 11일 우크라이나는 러시아로부터의 가스 수입을 전면 중단했다. 비록 일주일만에 수입은 재개됐지만 그동안 천연가스를 목줄로 우크라이나를 압박해온 러시아에게는 예상치 못한 역습이었다. 2012년부터는 러시아에서 유럽으로 수출된 천연가스를 적은 규모로 역수입하면서 우회로를 찾고 있었다. 천연가스 공급가를 놓고 2005년과 2009년 두 차례 갈등이 있었지만 매번 우크라이나의 항복으로 끝이 났었기 때문이다.

최근의 언론 보도와 달리 야누코비치를 뼛속까지 친러시아파로 몰기에는 그의 집권 후 행보가 많이 다른 것을 알 수 있다. EU와의 협정을 성사시키기 위해 감옥에 갇혀있던 그의 정적 율리아 티모센코 전 총리를 석방하는 방법까지도 진지하게 고려했었다. EU는 협력협정의 조건으로 티모센코의 석방을 요구하고 있던 터였다. 비록 그렇게 되지는 않았지만 10월 17일에는 "현재 우크라이나에는 티모센코가 외국으로 나갈 수 있도록 허용하는 법률이 없"지만 "의회가 이문제를 해결해 관련 법안을 승인하면 나도 서명할 것"이라고 밝혔었다.

그러나 EU와의 협정 체결이 효과를 낼 때까지 기다리기에는 상황이 급박해졌다. 신흥국들을 중심으로 퍼져나가기 시작한 금융위기 징후에서 우크라이나도 자유롭지 못했다. 지난해 8월 영국 파이낸셜타임스에 의하면 우크라이나의 외환보유액은 5~7월 10% 가까이 감소했다. 당시 미콜라 아자로프 총리는 국제통화기금(IMF) 추가차관 지원 조건도 EU와의 협정을 포기한 이유로 꼽았다. 그는 IMF가 가스ㆍ난방비 40% 인상, 월급 및 최저임금의 현 수준 동결, 에너지 분야 보조금 인하 등 우크라이나 정부가 받아들일 수 없는 조건을 제시했다고 밝혔다. 실제로 시위가 격화된 12월 2일 야누코비치는 메지히리야에 있는 자신의 별장에서 가진 인터뷰 시간의 4분의 3을 가스가격 등 경제문제를 설명하는 데 할애했다. 여기에 러시아의 압박으로 우크라이나는 더 궁지에 몰렸다. 야누코비치의 지역당 원내 대표 알렉산드르 예르레모프는 지난해 가을 3개월 간 러시아와의 교역 감소로 50억 달러의 손실을 입었다고 주장했다. 천연가스라는 목줄을 쥐고 있고 관세 보복까지 언급하는 러시아에 맞서기엔 유럽이라는 희망은 너무나 불투명했다. 야누코비치는 수출의 21.2%, 수입의 28.4%를 러시아에 의지하고 있는 우크라이나가 홀로 서기에는 너무 약하다고 판단했을 것이다.

전투 1 주먹과 대화, 오락가락 야누코비치

야누코비치가 EU와 협상을 중단한 것 자체가 결정적인 것은 아니었다. 야당과 일부 학생의 시위를 키예프 시민 전체의 반란으로 발전시킨 건 11월 30일 새벽의 강제진압이다. 키예프-모힐라 대학의 미하일로 비니츠키 교수는 "토요일 이른 아침 폭동진압경찰에 의해 독립광장의 시위대 농성장이 공격당하면서 상황이 바뀌었다"고 증언한다. 정부는 법원을 움직여 1일 시위를 금지했지만 2004년 오렌지 혁명 이후 최대 규모의 사람들이 거리로 쏟아져나오는 것을 막을 순 없었다. 화염병과 돌멩이가 하늘을 가르고 몽둥이와 경찰의 방패가 충돌했다. 우크라이나의 반란을 전 세계에 알린 대통령 관저를 향해 돌진하는 불도저의 사진이 찍힌 것도 이날이다.

시위가 격화된 후에도 야누코비치의 오락가락은 멈추지 않았다. 12월 1일 시위를 금지하고 경찰 특수부대 베르쿠트를 투입하는 한편으로 야누코비치는 그날 긴급 성명에서 "EU와의 협정체결을 위해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하겠다"고 밝혔다. 그러나 이미 12월 1일 시위에서부터 "우크라이나의 거리로 쏟아져 나온 사람들은 더 이상 EU 통합을 요구하지 않고 있다. 그것을 요구할 때조차 지엽적인 요구일 뿐"이라고 비니츠키 교수는 지적했다.

12월 3일 야당은 여당인 지역당이 불참한 가운데 의회에서 내각 불신임암을 표결에 부쳤지만 부결됐다. 이날 아자로프 총리는 의회에서 강경 진압에 대해 사과했지만 광장에서의 시위는 계속됐다. 9일 야누코비치는 야당과의 협상, 체포된 시위대의 석방 등 유화책을 제시하는 듯싶었다. 10일 전직 대통령 3인을 만난 자리에서 그는 법률 위반 정도가 심하지 않은 이들을 석방하라고 "빅토르 프숀카 검찰총장에게 지시를 내렸"다고 말했다. "야권 시위에 강경하게 대응해야 한다는 주장을 지지하지 않는다"고도 밝혔다. 그러나 바로 그 날 경찰은 키예프 독립광장의 시위대 농성장을 습격해 바리케이트 해체를 시도했다.

냉탕과 온탕을 오가는 야누코비치의 혼란은 새해에도 계속됐다. 1월 16일 의회는 집회와 시위를 강력하게 규제하는 11건의 법률을 통과시켰다. 이들 반시위법엔 정부 건물 출입을 차단하면 최대 10년형, 공공장소에 무대와 앰프ㆍ텐트를 설치하면 최대 15일 구류, 마스크와 헬멧의 착용 금지 등이 포함돼 있다. 이 법의 통과는 끟는 물에 기름을 부은 게 됐다. 거리에서의 전투는 다시 격렬해졌다. 21일에는 시위가 시작된 후 첫 사망자가 나왔다. 이튿날에도 두 명이 목숨을 잃었다. 야당은 두 번째, 세 번째 희생자가 경찰 저격수의 총을 맞고 숨졌다고 주장했다. 야누코비치는 다시 물러서야 했다. 24일 종교단체 지도자와 만난 자리에서 내각 개편과 반시위법의 개정을 암시했다. 25일에는 바티키프쉬나(조국당) 대표 "야체뉵이 총리직을 받아들이면 바로 내각 총사퇴 결정이 내려질 것"이라며 양보안을 내놓았다. 대통령 권한을 축소시키는 헌법 개정도 언급했다. 주먹과 대화를 오락가락하던 야누코비치는 결국 2월 18일의 충돌 이후 19일 양보안을 내놓았지만 이미 때는 늦었다. 이후 21일까지 계속된 거리 전투는 최대 100여 명이 목숨을 잃는 참극으로 이어졌다. 결국 야누코비치는 수도에서 쫓겨나 자신의 정치적 고향인 도네츠크로 도망쳤다. 22일 알렉산드르 투르치노프 의장이 대통령 대행으로서 이끄는 임시정부가 들어서면서 마이단의 1막은 내려졌다.



마이단의 준군사조직 모습. 정면을 바라보는 사람의 헬멧에 있는 문양은 울프스앵글로 파시스트의 상징 중 하나다. 극우파는 거리 전투를 주도하며 마이단을 극단적 민족주의 이데올로기로 납치했다. [사진=Giles Clarke]

배경 2 마이단, 사회적 불만의 민족주의적 왜곡

지난해 11월 마이단이 처음 시작됐을 때는 바티키프쉬나와 비탈리 클리츠코의 민주개혁동맹(UDAR), 학생들이 시위를 이끌었다. 12월 1일 전국적인 투쟁으로 확산되면서 우크라이나 곳곳에서 키예프로 시위대가 모여들었다. 키예프에 방문하고 있는 제4인터내셔널 러시아 활동가 일리야 부드라이츠키스는 "마이단에는 억압받고 있는 서로 다른 사회적 집단의 사람들, 노동자, 실업자, 빈민과 학생들"이 함께 투쟁하고 있다고 설명한다.

EU와의 협정 중단, 경찰의 강경진압이 계기가 됐지만 그 배경에는 더 광범위한 불만이 도사리고 있다. 우크라이나자율노동조합(Autonomous Worker's UnionㆍAWU) 활동가는 "경제위기와 사회적 불평등, 부패, 공공 서비스의 쇠퇴, 가난, 실업"이 "사람들을 오늘날 거리로 나오게 만들었다"고 강조한다. 야누코비치가 2010년 대통령 자리에 오르면서부터 밀어붙인 신자유주의 정책이 배경에 있다는 것이다. AWU 활동가 데니스에 따르면 야누코비치 정부는 천연가스 요금을 올리고, 완전 보장을 포기한 의료보험을 도입하려 했고, 노동법을 개악시키려 했으며, 여성의 연금 수령 연령을 높이려 시도했고 철도 민영화도 추진했다. 물론 이 정책 다수는 중단되거나 철회됐다. 그러나 데니스는 이렇게 말한다. "노동계급의 복지나 일반적인 경제상태는 사람들이 원하는 것보다 못한 수준에 머물러 있다. 사람들이 더 나은 삶의 기준을 요구하는 것이 마땅한 상황이다."

이러한 사회적 불만은 유럽에 대한 환상으로 표현됐다. 데니스는 사람들이 유럽을 "매우 유토피아적인 이상, 부패 없는 사회, 높은 임금, 사회보장, 법에 의한 지배, 정직한 정치인, 미소 띈 얼굴, 깨끗한 거리"로 받아들이고 있다는 것을 이해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야권은 물론 야누코비치 자신에 의해서도 지속적으로 유럽에 대한 환상이 유포됐었다는 것을 떠올리면 이는 어쩌면 당연한 일이다.

유럽에 대한 환상은 러시아에 대한 두려움과 연결돼 있다. 부드라이츠키스에 따르면 "버스를 타고 키예프로 와 시위에 참여"한 서부 우크라이나인들은 "러시아에 지배받는 것을 두려워" 한다. 그들은 야누코비치가 "우크라이나를 다시 러시아 식민지로 되돌리려는" 것으로 여기고 있다. AWU 활동가는 이러한 상황을 "유럽연합은 그들의 모든 희망이 집약된 신화다. 세계에 대한 이 신화적 관점에서는 러시아가 모르도르(영화로도 만들어진 소설 '반지의 제왕'에 등장하는 어둠의 군주 사우론의 왕국이 있는 땅) 취급을 받고 있다"고 설명한다. 두 차례의 가스 공급 중단, 반복되는 경제적 압력, 크림반도 세바스토폴의 흑해함대 주둔 등의 상황을 고려하면 이들 마이단 사람들이 푸틴의 러시아를 증오하며 두려워하는 것은 이해할 만하다. 특히 러시아와의 갈등도 불사하며 친유럽 정책을 추진하던 야누코비치가 11월 말 갑작스럽게 친러시아로 돌아선 상황에선 이 모든 사태의 배후로 푸틴을 떠올리지 않기가 오히려 더 이상하다.

바로 이 틈을 노리고 개입해 성공을 거둔 것이 스보보다와 프라비섹토르(Pravy Sektor, Right Sectorㆍ극우 파시스트 단체의 연합)다. 이들이 떠오른 것은 거리에서 경찰과 격렬한 충돌이 벌어지면서부터다. 이들은 가장 전투적이고 적극적으로 거리 시위를 주도했다. 특히 스보보다는 12월 8일 레닌 동상을 쓰러뜨리는 장면, 1990년대 초반 동유럽 소비에트 체제가 무너질 때를 연상시키는 모습을 연출해 주목을 받았다. 스보보다는 지난 2012년 총선에서 12%의 지지를 받아 의회에 처음 진출했다. 프라비섹토르는 스보보다 더 급진적인 네오나치 전투 조직들의 광범위한 연합이다. 이들은 사제 군복과 무장을 갖추고 경찰ㆍ티투슈키(Tituskhisㆍ야누코비치가 고용한 정치깡패)와의 싸움에 가장 앞장선다. 자신의 천막에 침구와 난방시설ㆍ주방을 갖춘 이들은 서부에서 온 젊은이들을 수용해 전투에 앞장설 수 있도록 했다. 이들은 운동에 개입하기 위해 자신의 이데올로기를 위장하기도 했다. 이들은 동성애자 인권과 같은 가치를 유럽적 퇴폐로 규정해 유럽연합에 반대해왔다. 하지만 지금은 이 쟁점이 중요치 않다는 듯이 '야누코비치와 맞서 싸우는 게 중요하다'고 말하며 회피한다. 때론 '자율'과 같은 좌파적이거나 아나키스트적인 용어를 사용한다. 아나키즘을 표방하지만 남성우월주의와 외국인 혐오를 앞세운 조직도 있다. 물론 이들 극우파 단체들이 완전히 단결해 있는 것은 아니다. 켈트십자가, 울프스앵글, 독수리 문양, 가운데 세 손가락 등 다양한 상징들을 사용하는 이들은 그 상징의 숫자 만큼이나 서로 갈라져 경합하고 다툰다. 프라비섹토르는 스보보다의 합법적 지위와 주도력을 욕심내고 있고 스보보다는 준군사조직을 포기하지 않고 프라비섹토르와 경쟁한다.

극우파가 성장한 비옥한 토양은 마이단 이전에 이미 풍부하게 존재했다. 여야를 막론하고 민족주의적 레토릭은 우크라이나 정치에서 가장 중요한 수단이었다. 2004년 오렌지 혁명의 결과로 대통령에 오른 빅토르 유센코도 예외는 아니다. 부드라이츠키스는 유센코가 "제2차 세계대전 기간 우크라이나 SS(나치 친위대)가 실제로는 애국자였다고, 왜냐면 그들이 외국 소련의 지배에 맞서 싸웠기 때문에 애국자였다고 주장했다"고 지적한다. 실제로 유센코는 퇴임 직전 SS의 가장 중요한 지도자 중 하나였던 스테판 반데라에게 영웅 칭호를 내렸다. 현재 우크라이나에는 20여 개의 스테판 반데라 동상이 세워져 있다. 2014년 1월 1일에는 그의 탄생을 기념해 1만5000명이 횃불과 그의 초상화를 들고 시위를 벌이기도 했다. 야누코비치가 그의 실제 정책과 달리 확고한 친러파로 받아들여진 것도 마찬가지다. 러시아어를 모국어로 사용하는 그는 대선 당시 러시아어를 우크라이나어와 함께 공식어로 만들겠다고 약속했다. 하지만 AWU 활동가 데니스에 따르면 "선거 후에는 아무 것도 하지 않다가 2012년 총선 전에야 이 법을 통과"시켰다.

전투 2 주도권을 쥔 극우파, 기 못펴는 좌파

우크라이나의 정치 지형은 극단적으로 오른쪽으로 기울어져 있다. 위에서 예로 든 야누코비치와 지역당, 유센코 뿐 아니라 최근 마이단 시위에서 스타로 부상한 클리츠코도 그렇다. 그 중 가장 자유주의적인 정당의 지도자인 그는 최근 "두려워 말자, 우리는 우크라이나인"이라는 운동을 선포했다. 그런 그는 강한 러시아어 억양을 사용한다.

우크라이나 공산당의 역할은 더 결정적이다. 이들은 야누코비치의 충실한 협력자였다. 1월 16일 반시위법에도 찬성표를 던졌다. 만약 이들이 반대표를 던졌다면 이 법은 통과되지 않았을 것이다. 공산당이 마이단의 민족주의에 비판적이긴 하다. 그렇지만 부드라이츠키스는 "국제주의적 관점에서 그런 건 아니다. 그보다는 러시아 애국주의에 대립하기 때문에 반대한다. 이건 비열한 짓"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우크라이나노동조합연맹(the Confederation of Free Trade Unions of Ukraine)은 뒤늦게 '마이단 시민 위원회' 구성에 참여하며 자유주의적 대안 건설에 뛰어들었지만 결코 좌파적이진 않았다. 이들은 운동 초기에 중립을 지켰다. 물론 애초 노동자들의 집단적 참여는 눈에 띄지 않았다. 12월 몇몇 기업에서 임금 등의 문제와 관련한 쟁의가 있었지만 마이단과 연결되진 못했다. AWU 활동가에 따르면 지방정부는 이들 쟁의가 확대되는 것을 막기 위해 최우선적으로 밀린 임금을 지급했다.

지극히 불리한 환경에서 마이단에 개입하기 시작한 좌파는 우파와의 물리적 충돌을 감수해야 했다. 시위 초기 마이단에 있던 노동조합 활동가들의 텐트는 극우파에 의해 '앞잡이'라고 지목받아 공격받았다. 붉은 유럽 깃발을 들고 무상의료ㆍ무상교육 등 좌파적 구호를 외치던 이들도 폭행당했다. 좌파와 아나키스트가 마이단을 방어하기 위한 연합 조직을 만들려고 모인 자리에 극우 파시스트가 난입해 훼방을 놓기도 했다. 몇몇 좌파는 극단적 민족주의를 핑계로 마이단과 거리를 뒀다. 그러나 데니스는 이러한 태도는 "정부 지지자들을 지지하는 것처럼 보인다"고 지적했다.

1월 16일 반시위법의 통과는 극적이진 않지만 좀 더 적극적인 좌파의 참여를 이끌어냈다. AWU 활동가는 "좌파 활동가 또한 저 법들에 의해 극심한 위험에 처할 수 있기 때문에 1월 19일 이후 좌파 대부분이 시위에 참여"했다고 말했다. 우크라이나 좌익반대파(Left Opposition)의 지도적 회원이자 경제학자인 자카르 포포비치는 어려운 상황에서도 조금씩 활동의 폭을 넓혀가고 있다고 1월 중순 이후 좌파의 상황을 설명했다. 좌파는 "조직적으로 우크라이나 청중들에게 개입하고 있다. 좌파의 책과 소책자들, 우리가 발표한 선언인 10가지 테제 수천 부를 마이단에 배포하고 대중적 토론에 참여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러나 마이단 대중의 의미 있는 일부를 끌어들이기엔 좌파는 여전히 너무 약하다. 단지 다수의 좌파는 인도주의적 개입의 일환으로 병원의 부상자들을 경찰의 체포ㆍ연행으로부터 보호하는 활동을 펼치고 있다.

좌파가 고군분투하는 사이 우파는 새로 구성된 임시정부에서 중요한 자리를 차지해 마이단의 결실을 나눠가졌다. 스보보다 36명 의원 중 한 명인 올렉산드르 시치는 부총리에 임명됐다. 스보보다는 환경부 장관과 농업부 장관 자리도 차지했다. 그보다 전에 검찰총장에 임명된 올렉 모흐니츠키도 스보보다 소속 의원이다. 더 중요하게는 마이단의 준군사조직 사무보로나(Samooborona) 지휘자였던 안드레이 파루비가 국가안보위원회 위원장에 임명됐다. 그는 바티키프쉬나 의원이긴 하지만 파시스트다. 그는 과거에 스보보다 현 대표 올레흐 티아니보크와 함께 파시스트 단체 우크라이나민족사회당(the Social-National Party of Ukraine)을 만들었다. 단지 과거인 것만은 아니다. 파루비는 그의 대변인으로 프라비섹토르의 핵심 지도자인 드미트로 야로쉬를 지명했다. 드림디퍼드(dream deferred) 사이트의 타시 쉬프린은 새 임시정부의 이런 성격을 "사실상 신자유주의자들과 파시스트의 동맹"이라고 설명한다.



우크라이나를 관통해 유럽으로 가는 러시아산 천연가스. [그래픽=AFP]

배경 3 올리가르히의 마리오네트 인형들

새 정부는 신자유주의적 보수파 바티키프쉬나가 주도하고 스보보다와 프라비섹토르가 보조를 맞춰 운영하고 있다. 그러나 올리가르히를 빼고는 우크라이나의 정치적 변동을 설명하기 어렵다. AWU 활동가 데니스는 야누코비치가 위기 전 그의 후원자인 올리가르히와의 관계가 소원해진 것을 주목해야 한다고 말한다. "올리가르히 권력의 애완견"에 불과했던 야누코비치 스스로 2010년부터 스스로 사업가로 변신하면서 그의 후원자였던 리나트 아흐메토프, 드미트리 피타쉬와 싸우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아흐메토프는 150억 달러의 재산을 가진 거부다. 슈피겔지에 의하면 "30만 명의 노동자를 고용한 100개의 회사를 거느린 SCM홀딩스(System Capital Management Holdings)의 수장"이다. 그가 거느린 회사엔 "철강과 파이프 공장, 은행, 부동산 업체, 휴대전화 회사와 거대 언론사"가 포함돼 있다. 슈피겔은 그를 '돈바스(우크라이나 동부의 산업지대)의 지배자'라고 설명했다. 피타쉬 또한 아흐메토프에 필적하는 거부다. 그의 기업들은 천연가스 수송에 특화돼 있다. 물론 피타쉬 또한 아흐메토프처럼 거대 언론기업을 소유해 우크라이나의 언론을 통제하고 있다.

이 둘은 야누코비치 정권에서 중요한 자리를 자신의 사람들로 채워왔다. 슈피겔지에 의하면 야누코비치 정권의 경제장관은 아흐메토프의 사람이고 천연가스 담당 부총리는 피타쉬와 가까운 사이다. 야누코비치가 이끈 지역당 의원의 상당수도 이 둘의 친구들로 채워져 있다. 그러나 야누코비치가 이 위기를 해결하지 못할 것이라는 확신이 들면서 이 둘이 소유한 방송국의 보도 태도는 극적으로 변했다. 마이단 시위를 객관적으로 보도하기 시작했다. 슈피겔지에 따르면 자신이 후원하는 지역당 의원들을 탈당 시켜 다른 당으로 이적하게 했다. 바티키프쉬나와 UDAR 등 다른 정치적 대안도 모색했다. 아흐메토프는 티모센코의 후계자인 아르세니 야체뉵을 지원하기 시작했고 피타쉬는 마이단의 스타 비탈리 클리츠코를 지원하고 있다. 바로 올리가르히가 우크라이나의 정치를 마리오네트 인형처럼 조정하는 방법이다. 부드라이츠키스는 스보보다조차 올리가르히의 후원이 없었다면 그렇게 성장할 수 있었다고 주장한다. 실제로 키예프의 반파시트 활동가 미라는 프라비섹토르가 상당한 후원을 받아 그들의 조직원들 모두에게 새로운 유니폼을 맞춰줄 수 있었다고 말한다. 우크라이나 좌파 활동가 포포비치는 올리가르히가 이러한 힘을 이용해 세금을 한 푼도 내지 않는다고 고발한다. 야누코비치의 실각 후 언론은 메히지리야에 있는 그의 화려한 별장을 샅샅이 훑으며 우크라이나의 국고가 빈 책임을 그에게 돌리려 했지만 포포비치는 올리가르히에게 그 책임을 묻는다. "올리가르히가 정치권을 움켜쥐고 있는 결과 대기업들은 세금을 한푼도 내지 않고 있다. 모든 세금은 노동자와 작은 회사들이 내고 있다. 나라에 충분한 자원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정부의 금고가 텅비어 있는 것은 그 때문이다".

물론 이들 올리가르히의 이해관계가 완전히 일치하는 것은 아니다. 야누코비치의 두 후원자 중 아흐메토프는 유럽과 좀 더 가깝고 반대로 피타쉬는 러시아와의 관계가 그의 사업에 더 중요하다. 슈피겔에 의하면 바티키프쉬나에 대해 아흐메토프가 유화적인 데 반해 피타쉬는 2009년의 협정, 바로 티모센코를 감옥에 갇히게 한 바로 그 러시아와의 협정 때문에 더 적대적인 태도를 지녔다.

전투 3 상처받은 러시아, 쩔쩔매는 서방

아흐메토프와 피타쉬의 차이, 친유럽과 친러시아의 간극은 국제관계에서도 그대로다. 우크라이나가 EU 협력협정을 추진하면서부터 끊임없이 압박을 가해오던 러시아는 3월 1일 전격적으로 우크라이나에 무력개입을 개시했다. 이미 2월 27일 친러시아 무장세력이 정부청사ㆍ주의사당ㆍ공항등 주요 시설을 점거했고 1일에는 러시아 상원이 우크라이나 내 군사력 사용에 대한 푸틴의 요청을 승인했다. 상원은 그 즉시 푸틴의 요청을 승인했고 그는 6000명의 병력을 크림반도에 배치했다. 그와 동시에 우크라이나와의 접경 지대에서의 대규모 훈련도 진행됐다. 푸틴이 직접 훈련을 참관하기도 했다.

2012년 세 번째 대통령 임기를 시작한 푸틴은 서방의 동유럽으로의 확장에 맞선 옛 소련권의 재통합을 최우선 외교 과제로 삼았다. 옛 소련권 국가의 관세동맹, 유라시아경제공동체, 집단안보조약기구가 그 세 축이다. 2000년대 라트비아ㆍ리투아니아ㆍ슬로바키아ㆍ루마니아ㆍ불가리아가 잇따라 나토에 가입하면서 러시아의 두려움은 커져갔다. 2008년 조지아와의 전쟁은 압하스와 남오세티야의 러시아 주민 보호를 내세웠지만 사실 서방의 군사적 포위에 대한 응전이었다. 우크라이나는 조지아와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중요한 지역이다. 2월 소치 겨울올림픽을 핑계로 흑해에 대규모 군사력을 배치한 것은 서방과 흑해 연안 국가들에 대한 경고이기도 했다. 소치는 우크라이나와 조지아 사이에 위치해 있는 흑해 연안 도시다. 더구나 우크라이나 크림반도에 있는 세바스토폴은 러시아 흑해함대가 주둔하고 있는 중요한 군사기지다. 중동과 중앙아시아 지역에 대한 개입을 강화하고 있는 러시아로서는 뺏길 수 없는 전략적 거점이다. 압하스와 남오세티야처럼 러시아계 주민이 60%나 된다는 것은 좋은 핑계 거리다. 게다가 크림반도엔 크림자치공화국이 상당한 자치권을 누리고 있었다.

푸틴 입장에서는 온전히 맘에 들진 않았지만 그나마 제어할 수 있다고 여겼던 야누코비치의 실각은 심각한 위협이었을 것이다. 특히 러시아가 유럽으로 수출하는 천연가스의 80%가 우크라이나에 있는 가스관을 통과한다는 걸 고려해야 한다.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잃는 것은 막대한 손실이 될 것이다.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압박하는 한편 벨로루시를 경유하는 가스관으로의 수출을 늘리고 흑해를 관통하는 가스관 건설에 착공한 것은 천연가스 수출에서 우크라이나의 역할을 줄이기 위한 것이다. 물론 흑해를 통과하는 가스관이 완공되고, 만약에 상당량의 천연가스가 흑해 가스관으로 수출된다고 할지라도 흑해에 대한 러시아의 통제권을 유지하기 위해 크림 반도와 우크라이나는 여전히 중요할 것이다. 그러나 아직 우크라이나를 우회할 만한 여건이 조성되지 않았다. 실질적인 군사적 압력에도 불구하고 푸틴이 3월 4일 기자회견에서 러시아군을 파병하지 않았다고 잡아뗀 것은 우크라이나의 지배자들을 달랠 필요도 있기 때문이다. 물론 좋은 관계를 유지하는 것이 꼭 대화일 필요는 없다. 푸틴은 과거 그래왔듯이 언제든 주먹으로 대화하는 카드를 꺼낼 수도 있다.

러시아 개입에 대해 미국은 연일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오바마 미국 대통령은 러시아의 크림 반도 군사개입이 '국제법 위반'이라고 비판했다. 존 케리 미 국무장관은 직접 키예프로 날아가 "빠르면 이번 주부터 미국은 러시아에 대한 포괄적인 제재를 시행할 것"이라고 주장했다. 케리는 야체뉵 임시정부 총리와 만나 경제적ㆍ기술적 지원도 약속했다고 한다. 위기 전 까다로운 자금지원 조건을 내세웠던 IMF도 우크라이나에 실사단을 파견에 구제금융 지원을 위한 준비를 하고 있다.

그러나 유럽의 반응은 뜨뜨미지근 하다. 3월 4일 영국 언론에는 영국 정부가 "당분간 무역 제재나 대러시아 금융기관 폐쇄안을 지지하지 말 것"이라고 적힌 기밀 서류가 포착돼 보도됐다. 우크라이나 동서 분열 가능성이 떠돌고 있지만 앙겔라 메르켈 독일 총리와 러시아 푸틴 대통령은 야누코비치가 실각한 후인 2월 24일 일찌감치 우크라이나의 영토적 통합성 유지에 뜻을 모았다. 물론 러시아는 우크라이나 전체에 대한 영향력을 놓치지 않겠다는 뜻일 것이다. AFP에 따르면 천연가스 36%를 우크라이나를 통해 러시아산을 수입하는 독일로서도 러시아의 심기를 거슬리긴 어려울 것이다. 미국은 연일 강경한 말을 쏟아내고 있지만 상황은 여의치 않다. 중앙아시아에서의 실패로 전체 병력을 줄이며 중국의 부상에 대응하기 위해 동아시아 지역에 집중하고 있기 때문이다. 알렉스 캘리니코스의 지적처럼 "제국주의는 단지 미국의 지배로만 환원될 수 없"으며 "제국주의는 선진 자본주의 열강들이 경제적ㆍ지정학적 경쟁을 벌이는 체제다".

경제적 이해관계가 복잡하게 맞물리고 제국주의 체제가 다극화 되면서 자본주의 선진국들 사이의 경쟁은 더 격화되고 있다. 우크라이나의 상황은 제국주의의 최근 국면을 전형적으로 보여준다. 세계경제의 위기는 우크라이나 국내에서의 정치적 격변으로 이어졌다. 세계의 지배자들과 우크라이나의 민족주의 정치인들은 이 국내의 위기를 제국주의 국가간 충돌로 비화시키고 있다. 전쟁 위협이 가시화되면서 우크라이나의 소수 좌파와 아나키스트는 "민족을 위해선 단 한방울의 피도 흘릴 수 없다"며 러시아와 서방의 개입을 비판하고 있다. 국가ㆍ민족 간 전쟁을 계급 사이의 내전으로 전화시키자는 레닌의 공식이 이들 좌파에 의해 다시 제기되고 있다. 1막에서 기회를 놓쳤던 좌파가 제국주의 전쟁과 갈등이라는 2막에서 기회를 잡을 수 있을지 주목해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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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월 2일 러시아 정부의 우크라이나 군사 개입에 반대하는 상트페테르부르크 시위대를 경찰이 체포하고 있다. 이날 모스크바와 상트페테르부르크 등의 도시에서 수백명이 전쟁 반대를 외치며 거리를 행진했다. 당연하게도 푸틴 정부는 경찰을 동원해 시위대를 공격했다. [사진 Revolution News]


야누코비치가 쫓겨난 후 크림반도를 중심으로 러시아의 개입 조짐이 확산되고 있다. 2월 27일에는 친러시아 무장세력이 크림자치공화국의 수도 심페르폴의 정부청사ㆍ주의사당ㆍ공항 등 주요 시설을 점거했다. 3월 1일 러시아 상원은 푸틴의 우크라이나 내 군사력 사용 요청을 만장일치로 통과시켰고 푸틴은 그 즉시 6000명의 군대를 크림반도에 배치했다. 오바마 미 대통령은 푸틴과 긴급하게 통화를 해 즉시 철군할 것을 요청하며 흑해 북안의 군사적 긴장이 높아져가고 있다. 4일에는 존 케리 국무장관이 직접 우크라이나로 날아가 지원방안을 협의하겠다고 밝힌 상태다. 그러나 이러한 전쟁은 우크라이나 노동계급의 삶을 파괴할 뿐 민주주의의 도입과는 아무런 연관도 없다. 그것은 지금 다시 노동계급 스스로 새로운 사회 건설에 나선 보스니아-헤르체고비나 인민이 20년간 온몸으로 입증해온 것이다. 우크라이나 인민의 더 나은 삶을 위해선 러시아와 미국, 두 제국주의 국가로부터 독립적인 대안의 건설이 필요하다. 민족주의는 결코 해답이 될 수 없다. 아래 우크라이나를 비롯한 동부 유럽 좌파의 선언 두 개를 옮긴다.


우크라이나 전쟁에 반대하는 국제주의자의 선언
IWA(International Workers Association) 러시아 지구 KRAS|우크라이나ㆍ러시아ㆍ몰도바ㆍ이스라엘ㆍ리투아니아의 국제주의자들|몰도바 아나키스트 연맹|혁명적 사회주의자들 (우크라이나) 지부, March 2 2014

전쟁에 맞선 전쟁을!
'민족'을 위해선 한 방울의 피도 흘릴 수 없다!


올리가르히 파벌 사이의 권력 투쟁이 국제적 무장충돌 위협을 고조시키고 있다. 러시아 자본주의는 그들의 오랜 제국주의적ㆍ팽창주의적 열망을 실현하기 위해 경제와 금융, 정치적 이해관계가 탄탄한 크림반도와 우크라이나 동부에서 우크라이나 국가권력을 분할하려 한다.

러시아 정부는 임박한 다음번 경제위기를 배경으로 성장하고 있는 노동자들 사이의 사회ㆍ경제적 관심, 열악한 임금과 연금, 붕괴하는 건강보험 제도와 교육, 기타 다른 공공 서비스 등에 대한 주의를 돌려 러시아 민족주의로 대체하려고 한다. 민족주의적이고 군사적인 수사의 어지러운 함성들 속에서 반동적이고 보수적인 가치, 억압적 정책에 기반한 기업과 권위주의적 국가의 결합을 완수하는 건 쉬운 일이다.

우크라이나의 극심한 경제적 정치적 위기는 '구파'와 '신파' 올리가르히 파벌 사이에 점증한 대결의 결과다. 전자는 키예프에서 쿠데타를 위해 극우파와 극단적 민족주의자를 포함한 집단을 이용했다. 크림반도와 우크라이나 동부 정치 지배자들은 자신의 권력과 부를 키예프에서 권력을 잡은 이들과 나누려 하지 않는다. 그들은 러시아 정부의 도움에 의지하려 하고 있다. 양편 모두 우크라이나어와 러시아어를 사용하는 이들 모두에 만연한 민족주의적 광분에 호소하고 있다. 그 결과는 무장 충돌과 유혈 사태일 뿐이다. 서구의 권력자들도 자신의 이해관계와 열망에 따를 뿐이다. 현재의 대립에 대한 그들의 개입은 제3차 세계대전으로 이어질 수 있다.

늘 그렇듯이 전쟁을 벌이는 지배 권력의 파벌들은 자신의 이익을 위해 우리 평범한 사람들을 싸우게끔 강제한다. 임금노동자, 실업자, 학생, 연금 수령자 등 우리의 진정한 필요와 이익을 잊게 하기 위해 그들은 우리를 민족주의라는 마약에 취하게 만들어 서로에 맞서게 한다. 우리는 저들의 '민족'에 관심을 갖지도 가질 수도 없다. 우리는 지금 필수적이고 긴급한 문제를 중시한다. 그것은 저들이 만든, 우리를 노예적으로 탄압하는 체제를 어떻게 끝을 낼 것인지 하는 바로 그것이다.

우리는 민족주의적 열병에 굴복하지 않을 것이다. 저들의 국가와 '민족', 깃발과 사무실을 지옥으로! 이 전쟁은 우리의 것이 아니다. 우리는 이 전쟁에 참여하지 않을 것이며 저들의 궁전과 은행 계좌를 위해, 안락한 의자에 앉아있는 권력자들의 기쁨을 위해 우리의 피를 쏟지 않을 것이다. 그리고 만약 모스크바와 키예프ㆍ리보프ㆍ카리프ㆍ도네츠크ㆍ심페로폴의 지배자들이 전쟁을 시작한다면 우리의 의무는 모든 가능한 수단을 이용해 이에 맞서 싸우는 것이다.

'민족'들의 전쟁을 계급투쟁으로!


러시아 개입에 관한 AWU 성명
우크라이나 자율 노동조합(Autonomous Workers' UnionㆍAWU), March 2 2014

2014년 2월 27일 크림자치공화국의 친러시아 민족주의자들이 폭동진압경찰 베르쿠트(Berkut)와 러시아 흑해 함대의 지원을 받아 군사 쿠데타를 저질렀다. 바로 지금 악쇼노프[크림자치공화국 총리]를 수장으로 한 '러시아 통합' 운동의 정부가 단지 크렘린 정권의 애완견일 뿐임은 이미 분명해졌다.

우리는 영토의 보전, 그 경계의 불가침성과 같은 가치에는 관심 없다. 우리는 크림반도의 폭력적 '화해'에 맞서고자 하는 것이다. 그렇지만 우리는 크림반도의 지위가 소수 민족 타타르족의 의견을 충분히 고려해 결정돼야 한다고 생각한다.

최근의 사건은 푸틴이 크림반도의 합병까지 고려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제국주의적 크렘린 정권의 목표는 러시아의 영향력을 우크라이나 영토 모든 곳으로 확장시키는 것이다. 결국 붕괴 전 소련 영토였던 곳에서 러시아 정부는 프롤레타리아트 이해관계의 주된 위협임이 입증됐다.

우리는 전쟁과 군국주의에 반대한다. 우리는 이 상황에서 계급의식적 프롤레타리아는 자신을 제외한 그 누구에게도 의지할 수 없다고 생각한다.

나토(NATO)의 '구조'를 기대해 봤자 소용없다. 우크라이나 민족주의 정치인들은 기껏해야 단지 영토 일부분의 방어를 준비할 수 있을 뿐이다. 전쟁은 모든 나라의 프롤레타리아가, 무엇보다 우크라이나와 러시아의 프롤레타리아가 푸틴의 범죄적 정권에 함께 맞서는 것을 통해서만 피할 수 있다.

우크라이나와 러시아 프롤레타리아, 모든 진보적 민주세력의 공동행동은 푸틴 정권을 끝장낼 것이다. 또한 그것은 현재 우크라이나의 신자유주의적 민족주의 정권의 종말을 뜻하기도 할 것이다.

서구의 좌파와 아나키스트에게는 미국에 맞서 푸틴정권에 대한 지지를 표명해온 소위 '반제국주의'와의 연관을 끝장낼 절호의 기회다.

'민족'들의 전쟁을 계급투쟁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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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Revolution News]

급한 불은 끄게 된 것일까. 우크라이나에서 정부와 여야의 타협안 소식이 들려온다.

●[연합뉴스] 우크라 정부-야권 유혈사태 해법 담은 타협안 서명(종합2보)

요지는 조기 대선 실시와 대통령 권한을 대폭 축소하는 헌법 개정이다. 현재 운동의 초점이 야누코비치 대통령 퇴진에 맞춰졌던 걸 고려하면 지금의 유혈사태를 진정시킬 어떤 돌파구가 될 수도 있는 것처럼 보인다.

여기서 우리는 이 운동의 별명이 '유로마이단'이라는 걸 다시 떠올릴 필요가 있다. 생디칼리스트인 키예프의 한 노동조합 활동가에 의하면 시위 초기 거리에 나선 우크라이나 인민에게 유럽은 "부패 없는 사회, 높은 임금, 사회적 안전, 법에 의한 지배, 정직한 정치인들, 미소 짓는 얼굴, 깨끗한 거리 등"을 뜻했다. 여기에는 단지 대통령의 과도한 권력, 정치적 지배구조의 문제만 포함돼 있지 않다. '높은 임금'이 상징하듯 여기엔 우크라이나 경제에 대한 사회적 불만이 배경으로 깔려있다. 지난해 유럽연합과의 협력협정을 추진했던 것도, 그리고 시위를 촉발시킨 그 협정의 중단도 모두 경제적인 배경에 놓여 있다(거기에 유럽연합과 러시아의 제국주의적 갈등으로 연결됐다).

실제로 마이단에서 목숨을 걸 각오를 서슴지 않고 말하던 한 사람, 아마도 파시스트일 가능성이 큰 무장 사수대 한 명은 "저는 10년 전 떠나 상선의 선원이 됐습니다. 저는 그것을 견딜 수 없었습니다. 이제 저는 되돌아와 제 아이들과 함께 살고 싶습니다. 제가 여기서 투쟁하는 것은 그 때문"이라고 말했다. 그런데도 연합뉴스에 보도된 합의안에는 바로 이 문제, 우크라이나의 평범한 노동자와 농민, 청년들의 경제적 삶에 대한 언급이 빠져 있다(이는 상대적으로 시위가 격화되면서 거리에서의 물리적 충돌 자체가 쟁점이 된 때문이기도 하다).

따라서 이 타협안으로 거리의 사람들을 진정시키고 이전의 일상으로 돌아간다는 것은 어불성설에 가까울 것이다. 게다가 이 합의에는 스보보다(자유)도 포함돼 있다. 극우 파시스트인 이들은 합법정당이지만 불법적인 준군사 조직을 운영하고 있기도 하다. 18일 유혈 참극의 두 주범 중 하나다(다른 하나는 야누코비치 정부다). 거리에서 무장하고 일정 지역을 자신의 통제하에 두던 이들 파시스트를 새로 구성된 정부에서 완전히 무시하진 못할 것이다. 저들은 합법적으로 어떤 권력을 공유하게 되면 더 기고만장해져 거리를 활보할 것이다. 마치 1930년대 독일 나치처럼 말이다.

유럽연합과 러시아 정부로서는 우크라이나에서의 갈등이 자신들이 바랐던 것 이상으로 격화되는 데 놀랐던 듯싶다. 속보에 의하면 이번 타협에 이 둘 모두 참여했다고 한다. 그것은 중요한 석유와 가스 송유관이 지나고 흑해 북안의 중요 산업지대인 우크라이나가 내전으로 갈라지거나 파괴되는 것이 그들에게도 이익이 될 것처럼 보이지 않아서였기 때문일 것이다. 물론 유럽연합과 러시아 정부의 군사적 충돌 가능성이 아예 없지는 않다. 조지아에서처럼 러시아 정부는 러시아계 주민 보호를 이유로 군사적 개입을 감행할 가능성이 크다. 유럽연합도 과거 발칸 반도에서 그랬던 것처럼 마찬가지다. 그렇지만 바로 옆 소치에서 열리는 겨울올림픽을 핑계로 흑해에서 군사 시위를 벌이고 있는 러시아에 당장 맞서는 것은 유럽연합으로서는 부담스러운 일이었을 것이다. 러시아 정부로서도 현 야누코비치 대통령이 유럽연합과 러시아를 비교하는 것은 물론 중국과도 자신을 비교하며 상황을 재고 있는, 즉 우크라이나 내 친러시아 세력의 규모나 역할이 불분명한 상황에서 군사적 개입이 어렵다고 판단했을 수 있다.

더 큰 국내적ㆍ국외적 충돌을 준비할 여유 시간을 갖는 것, 아마도 이번 타협의 첫번째 가능성은 바로 이것일 것이다. 그보다 더 나은 상황으로 떠올릴 수 있는 것도 파시스트의 활보와 권력 강화라는 끔찍한 것 뿐이다.

그러나 아직 다른 가능성이 남아있다. 키예프 시내에서의 격렬한 물리적 충돌에도 불구하고 대규모 노동계급은 아직 본격적으로 행동에 나서고 있지 않다. 생디칼리스트 활동가의 지적처럼 키예프를 벗어난 "다른 지역에서 기업 활동이 아무런 방해 없이 평상시처럼 계속 진행"되고 있다. 우크라이나 노동조합연맹은 중립을 지키고 있다. 임금과 관련된 소수 작업장에서의 저항도 "정치적 저항과 연결되지 못하고 있다". 한편으로는 바로 이러한 사정이 거리에서의 충돌을 격화시키고 시위대에서 파시스트의 주도력을 강화시킨 원인이기도 했다. 결국 적은 가능성이지만 노동계급의 단결된, 그리고 유럽연합과 러시아 둘 모두로부터 독립적인, 파시스트와 정부로부터 자유로운 행동 만이 우크라이나를 구할 것이다. 이는 최근 혁명을 시작한 보스니아 인민이 온 몸으로 보여주고 있는 바다. 불과 20여년 전, 민족ㆍ종교 간 참혹한 내전을 치뤘던 보스니아 인민은 노동계급 투쟁을 통해 민족과 국가ㆍ종교의 경계를 뛰어넘어 단결하고 있다. 우크라이나 활동가들이 이로부터 보다 큰 영감을 얻어 과감한 행동에 나설 수 있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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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때때로 2014.02.23 23:56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2월 21일 뉴스 -----

    밤 사이 우크라이나 소식.

    유럽연합과 러시아가 중재에 나선 가운데 정부와 야권이 타협안에 합의했다는 소식이 먼저 들려왔다. 그러나 이후에도 긴장은 가시지 않고 있다.

    우선 유럽연합과 러시아가 중재에 참여했었다는 소식에도 불구하고(물론 그 수준은 이후 좀 더 확인돼야 한다) 제국주의적 긴장은 여전하다: 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4&oid=001&aid=0006770523

    먼저 러시아는 우크라이나가 유럽연합과 협정을 중단한 후 지원하겠다고 밝힌 차관 지원을 무기한 연기하겠다고 밝혔다: 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1&oid=001&aid=0006770405

    미국에선 우크라이나 여야의 합의에도 불구하고 상원이 나서서 제재안을 추진 중이다: 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4&oid=001&aid=0006770442

    그러는 동안 정부와 야권의 타협안에 서명한 우크라이나 의회(최고 회의, 라다)는 티모셴코 전 총리 석방안을 통과시켰다: 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4&oid=001&aid=0006770546

  2. 때때로 2014.02.23 23:56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2월 22일 뉴스 -----

    정부와 야권이 타협안에 서명한 후 우크라이나 정국이 요동치고 있다.

    우선 야권은 단독으로 동부로 몸을 피신한 야누코비치의 퇴진을 기정 사실화 하고 새 정부 구성에 나섰다: 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4&oid=001&aid=0006772127

    그러나 수도 키예프에 대한 통제권은 사실상 스보보다와 프라비 섹터(라이트 섹터, 극우파 집단)에 있는 듯싶다. 이번 시위로 석방된 율리아 티모셴코 전 총리는 광장의 집회에서 연설해 환영받았다. 하지만 이후 광장을 벗어나려던 그는 시위대에게 검문당해야 만 했다. 그를 검문하는 시위대는 "누가 혁명을 성공하게 했는지를 잊지 말고 국민을 배신하지 말라"고 경고했다: 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0&oid=001&aid=0006772493

    실제로 야권에서 새로 임명한 정부 내각 중 정부의 강제력 중 핵심 부서라고 할 검찰 책임자로 극우파 스보보다 의원을 임명했다: 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4&oid=001&aid=0006772522

    그러나 야권이 새로 임명한 정부 내각이 상황을 진정시킬 가능성이 그리 크진 않다. 무엇보다 러시아와 실질적 이해관계를 지닌 동부 산업지대의 대자본가들이 새 정부에 얼마나 협조할지는 의문이다. 야누코비치가 동부로 몸을 피신한 것도 자신의 지지기반을 단도리하기 위해서일 가능성이 크다.

    이는 한 편 조지아에서와 같은 러시아의 개입으로 이어질 수도 있다. 러시아는 2008년 남오세티아 공화국의 러시아계 조지아 주민들이 분리독립을 선언한 후 조지아 정부가 이를 공격하자 러시아계 주민을 보호한다는 명목으로 조지아를 침공한 과거가 있다. 우크라이나 동부지역에는 러시아어를 사용하는 상당수의 러시아계 주민이 거주하고 있다. 19세기 러시아 제국이 신흥 영국ㆍ프랑스 제국주의에 패권을 넘겨줘야 했던 크림전쟁이 일어난 전장인 크림반도에는 러시아계 주민이 다수고 이들은 상당한 자치권을 누리고 있다.

    이미 소치 겨울올림픽을 핑계로 흑해에서 무력시위를 하고 있던 러시아로서는 자신의 이해관계를 유지하기 위해 우크라이나에 군사적으로 개입할 가능성이 크다. 상당수의 핵발전소가 우크라이나와 러시아 경계에 위치해 있고, 가스와 석유 송유관이 지나는 우크라이나 동부 산업지대를 자신에 적대적인 독립국의 손에 놓아둘 가능성은 그리 크지 않다. 즉 러시아로서는 최소한 드네프르강 동쪽의 우크라이나 동부지역을 자신의 영토로 편입시키든, 아니면 자신에 우호적인 독립국으로 유지해야 할 충분한 이유가 있고 그럴 의사를 이미 많이 보여줬다. 우크라이나 상황이 점점 최악으로 치닫는 듯싶다. 러시아도 서방도 아닌, 독립적인 노동계급 투쟁이 그 무엇보다 절실한 때다.

  3. 때때로 2014.02.24 10:46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2월 24일 뉴스 -----

    "반정부 시위가 불을 뿜자 러시아와 국경을 맞댄 동부 쪽에선 ‘음모론’이 횡행했다. 유럽과 미국 등이 반정부 시위를 부추기고 있다는 주장이다. 야누코비치 대통령이 ‘피신’한 하리코프에서 22일 모인 동부 지역 주지사들이 의회의 결정을 받아들일 수 없다고 밝힌 것도 같은 맥락에서다. 이들은 성명에서 “상황이 원만하게 해결될 때까지 헌법 질서 유지와 시민의 권리 보호, 안보와 영토를 지키기 위한 법적 책임을 중앙정부에 맡기지 않고 자체적으로 수행할 것”이라고 주장했다."

    "야누코비치 대통령는 ‘위험한 줄타기’를 벌이고 있다. 그는 22일 의회의 탄핵 결정을 ‘쿠데타’라고 비판하는 방송 연설에서 “지지자들을 만나러 남부 지역 순회 방문에 나설 것”이라고 밝혔다. 그는 이날 연설을 우크라이나어가 아닌 러시아어로 했다. <가디언>은 “우크라이나 남동부 흑해 연안의 크리미아는 주헌법이 따로 있는 자치주로, 러시아 해군기지가 있을 정도로 친러 성향이 강한 지역”이라며 “야누코비치 대통령의 이 지역 방문이 불길해 보인다”고 짚었다."
    -한겨레 2월 24일 17면: http://www.hani.co.kr/arti/international/europe/625495.html

    상투적인 톱 기사와 달리 서브로 실린 이 기사가 더 인상적이다. 러시아어를 사용하는 주민 비율을 제시한 지도 그래픽과 함께.

    일단 러시아와 독일은 하나의 국가를 유지한다는 데 뜻을 모았다고 한다.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과 앙겔라 메르켈 독일 총리는 이날 전화통화를 통해 우크라이나의 동서 분열 가능성을 우려하면서 영토적 통합성이 유지돼야 한다는 데 견해를 같이했다고 독일 정부 대변인이 밝혔다."
    - 연합뉴스: 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0&oid=001&aid=0006772675

    그러나 이는 동상이몽일 가능성이 크다. 러시아는 통째로 먹겠다는 심보일 것이고, 유럽연합(독일)으로서는 보스니아 문제도 있는 상황에서 우크라이나 개입이 쉽지 않은 상황이라 일단 레토릭으로 제시됐을 가능성이 크다.

    유럽연합(특히 독일과 프랑스의 성장)의 성장이 무섭지만 제국주의 세계질서에서 주요 갈등 축은 여전히 러시아와 미국이다.

    세르게이 라브로프 러시아 외무장관이 우크라이나 야권을 '폭도'로 규정하자

    "케리 장관은 23일 라브로프 장관에게 다시 전화를 걸어 "미국 정부는 우크라이나 의회가 정치와 경제상황을 안정시키려고 신속하게 움직이는 것을 강력히 지지한다"며 "미국은 러시아가 우리와 유럽연합(EU) 회원국들, 다른 유관 국가들과 동참해 우크라이나가 새로운 장(章)을 열도록 도와주길 희망한다"고 말했다."

    "케리 장관은 특히 "우크라이나의 주권과 영토적 통일성, 민주적 선택의 자유는 모든 국가에 의해 존중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는 러시아가 우크라이나 내전의 어느 한편에 개입할 경우 국토의 '분열'로 이어질 수 있음을 경고한 것이다."
    -연합뉴스: 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4&oid=001&aid=0006772855

    대외정책에서 동아시아로 집중해온 미국으로서는 다시 전선이 넓어지는 게 탐탁지는 않을 것이다(북아프리카와 중부아프리카의 경우 프랑스가 미국을 대신해 개입하고 있다). 그렇다고 두고볼 수만 있는 것도 아닌 상황. 푸틴의 강한 러시아 정책은 꽤 오래 지속돼왔다. 푸틴과 러시아 국가자본들이 그리 쉽게 포기할 상황은 아니다. 다른 곳도 아닌 우크라이나니까.

혁명은 무엇보다 목소리를 잃은 사람들의 귀환을 뜻한다. 자신에 대해 말할 수 있는 기회를 되찾는 것. 그것은 새로운 사회를 건설할 노동계급의 가장 기본적인 소양이다.

보스니아 반란 ① 끝나지 않은 내전, 민영화
보스니아 반란 ② 플리넘, 인민권력이 싹트다
보스니아 반란 부록 - 인민의 목소리, 당신은 얼마나 배고픈가?


한 남성이 한달 30유로인 자신의 연금 명세서를 보여주고 있다.

보스니아-헤르체고비나 인민은 자신의 목소리를 키우기 시작했다. 그동안 자신을 무시해 왔던 지배자들과 세계를 향해서 말이다. 2월 7일 시위에 참여했던 니콜라 추파스는 반란에 나선 이유를 아래와 같이 설명한다.

"이번 일요일 쿠르셰바츠[세르비아에 있는 도시]는 잠잠했습니다. 주목할 만한 일은 일어나지 않았죠. 사람들은 아마 선거운동이 시작되길 기다릴 것입니다. 우리가 배운 것에 따르면 선거운동은 정치인들이 사람들에게 거짓말과 약속의 매우 큰 보따리를 팔러 다니는 것을 뜻합니다. 항상 이 약속들은 가능한한 사람들의 가장 폭넓은 이해관계에 맞춰져 있습니다. 그런데 이 모든 것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여전히 적자와 청구서, 가난, 실업에 시달리는 우리 모습을 발견하곤 합니다. 그렇다면 사람들은 자신을 위해 어떻게 싸워야 하나요?

2월 5일 수요일 350㎞ 떨어진 크루셰바츠에서 드리나강을 넘어 온 수 백명의 노동자와 투즐라 주민들은 투즐라 주청사 앞에 모여 시위를 벌였습니다. 이 시위는 아마 다른 시위들처럼 정부당국이 과거의 비슷한 계획에 따라 다루면서 끝을 맺을 것입니다. 빠르게 해결책을 찾겠다고 약속하면서 말이죠. 정부당국이 그 어떤 준비도 하지 못한 예상치 못한 일이 일어난 것을 제외한다면 그렇습니다.

시위대는 많은 지지를 얻고 있습니다. 마치 자연의 역습처럼, 다른 노동자ㆍ실업자ㆍ학생들은 자신을 약탈하고 부당하게 대해 왔던 체제에 맞서 투쟁에 연대하기 위해 거리를 가득 채우고 있습니다. 그들은 사회 정의를 위한 싸움을 선택했습니다. 뒤따라 보스니아-헤르체고비나의 모든 사람들이 깨어났고 반란은 나라 전체로 확산됐죠.

스르프스카 공화국 당국은 국경 밖에서 시위를 반-세르비아 캠페인으로 전환시켜 이른바 민족적 단결을 유지하려는 노력을 시작했습니다. 그러나 그들의 행동은 오직 이 지역에서 그들이 인민에 관해 얼마나 적은 관심만 쏟는지, 현재의 상황과 민족 부르주아지의 지배를 유지하는 것을 얼마나 중요하게 느끼는지 보여줄 뿐입니다. 이 투쟁은 어떤 민족ㆍ인종ㆍ종교 또는 국가적 관념도 초월해 있어요. 사람들은 배고픔 때문에 거리로 나섰죠. 배고픔 때문에 사람들은 정의를 위한 싸움에 나선 것입니다. 그러나 계급이 존재하는 동안에는 어떤 정의도 불가능합니다! 억압자와 피억압자, 착취자와 피착취자, 배고픔을 모르는 사람들과 굶주린 사람들이 있는 동안에 정의는 불가능하단 말입니다. 보스니아-헤르체고비나의 권력자들은 확실히 배부른 사람들이 가난한 사람들의 생각을 아주 조금만 알고 있음을 그 자신의 행동으로 보여줬습니다.

고통받는 사람들의 분노와 그들로부터의 위협을 느낀 권력자들은 시위대를 진압하기 위해 거리에 경찰을 풀었다. 최루가스와 고무탄이 사용됐고 구타가 이어졌지만 사람들은 강도질과 도둑질을 해온 지배계급과 대결하겠다는 굳은 다짐으로 함께 버텨냈죠. 최소한 지금까지는 말입니다. 그들은 투즐라 주청사를 점거했습니다. 비하치의 경찰은 훌륭하게도 시위대와 함께했습니다. 그들은 체제를 지탱하기 위해 자신을 조종하는 체제에 고분고분 따르는 것을 그만두고 노동계급과 함께하기로 선택한 것입니다.

지난 주 보스니아-헤르체고비나의 사건은 우리에게 교훈을 줍니다. 지배자들은 노동 대중이 단결의 주먹을 치켜들었을 때 실제로 얼마나 큰 힘을 지녔는지 알게 됐습니다. 그들은 또한 지배 정치기구가 노동계급의 단결을 얼마나 많이 두려워하는지 보여줬죠. 저는 어떤 것도 에둘러 말하진 않겠습니다. 저는 빈곤ㆍ실업ㆍ괴로움ㆍ착취ㆍ부패ㆍ도둑질 등에 대해 늘어놓으며 떠들고 있지 만은 않을 것입니다. 저는 오직 하나의 질문만 할 것입니다. 당신은 얼마나 배고픕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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혁명으로 나아가야만 하는 보스니아 반란은 필연적으로 새로운 권력이 필요하다. 성공했거나 성공에 가까웠던 모든 반란이 그랬듯이 말이다. 플리넘(Plenum)은 인민권력의 씨앗이 될 수 있을까.

보스니아 반란 ① 끝나지 않은 내전, 민영화
보스니아 반란 ② 플리넘, 인민권력이 싹트다
보스니아 반란 부록 - 인민의 목소리, 당신은 얼마나 배고픈가?


민영화 정책 재검토 등 일곱 개의 요구안을 들고 있는 시위대.

투즐라와 제니차 주지사는 7일 시위가 격화된 후 사임했다. 몇몇 자치주들로 이 사임의 물결이 확산됐다. 정부가 조기총선 카드를 빼들었지만 노동자와 반란에 나선 인민은 멈추지 않았다. 이들은 '플리넘(Plenum)'이라고 부르는 인민 의회를 건설했다. 시작은 역시 투즐라였다. 9일 투즐라에서 첫 플리넘이 열린 후 전국의 모든 반란 도시에서 플리넘이 개최되기 시작했다. 다미르 아르세니이에비치는 플리넘을 이렇게 설명한다.

"투즐라주 시민 플리넘은 우리 모두의 이익을 위해 우리 자신의 미래를 스스로 결정하도록 만들어졌습니다. 플리넘은 토론을 위한 공개적인 공간입니다. 플리넘은 어떤 지도자와 금기도 갖지 않습니다. 결정은 대중의 투표를 통해서 이루어집니다. 플리넘은 정당이나 NGO, 독단적인 협회가 아닙니다. 플리넘은 현실적이고 유일한 민주주의입니다. 플리넘은 국가의 모든 권력기구에 제출할 요구안을 자신의 선언으로 만들고 채택합니다. 선언은 우리 모두의 말이고 우리 모두의 요구이기에 모두가 선언에 함께합니다. 국가의 권력기구를 향한 모든 다른 행동들은 부패, 정당의 도둑질, 개인적 이익의 추구와 인민을 약탈해 부유하게 되는 것들을 향해 계속될 것입니다."

이는 2011년 미국 뉴욕 오큐파이 운동의 '제너럴 어셈블리'보다 한결 발전한 모습이다. 오큐파이 운동의 제너럴 어셈블리는 저항운동 내의 이러저러한 문제를 처리하는 기관ㆍ과정ㆍ절차에 불과했지 권력에 도전하는 기관은 아니었다. 그러나 이 플리넘은 혁명의 실제적 요구들, 즉 권력에 대한 것을 다루기 시작했다. 12일 사라예보 첫 플리넘에서 결정된 플리넘의 기본원칙을 살펴보면 더 확실해진다.

플리넘이란 무엇인가: 플리넘은 참석한 이들 모두의 의회입니다. 이는 토론을 위한 공간입니다. 결정은 공개적으로 이루어집니다.

왜 플리넘인가: 그것은 모두에게 공개돼 있기 때문입니다. 모두가 투표할 권리를 가지고 있고 모두가 참여할 권리를 가지고 있습니다. 각 개인은 한 표를 행사할 수 있고 이 공간은 비폭력적인 모두에게 열린 곳입니다.

플리넘의 원칙, 모두는 평등하고 동등한 권리를 갖습니다: 각 개인은 하나의 투표권을 갖습니다. 발언을 하고자 하는 사람들은 그 혹은 그녀의 이름 또는 성(family name)을 말할 필요가 있습니다.
모든 결정은 다수결의 원칙을 따라 과반수 이상의 찬성으로 이루어집니다.
존중하는 마음으로 당신 동료 시민의 발언을 들으며 당신의 발언 기회를 기다립니다.
플리넘은 규칙과 의제를 낭독하는 것으로 시작합니다.
그런 다음 제안과 추가발의가 진행됩니다.
이는 투표 없이 발언된 순서에 의해 의제에 덧붙여집니다.

플리넘의 진행: 플리넘은 지도자 없이 단지 토론을 용이하게 하거나 발언자들에게 주어진 시간을 관리하는 사회자만 둡니다. 사회자는 발언자가 주제에서 벗어날 때 원래 의제로 되돌아오도록 지적할 권리를 갖습니다. 한 명 또는 그 이상의 사람이 발언을 위해 손을 든 참가자를 확인하고 기록합니다.
한 사람은 플리넘 후 공개적으로 발표될 회의록을 기록합니다.

토론: 의제의 각 항목은 의제에 제기된 순서에 따라 토론합니다. 모든 논평은 그 항목에 연관된 것이어야 하며 질의는 바로 토론합니다.

투표: 논의되는 의제의 항목과 질의에 대한 토론을 시작한 후 최대 30분 내 투표를 시작합니다.

기본원칙이 플리넘을 다른 무엇보다 앞서 '토론을 위한 공간'으로 정의하고 있지만 운영 규칙을 담은 아래의 항목은 무엇보다 '결정'을 위한 과정을 정하고 있다. 만장일치의 합의제로 토론을 위한 토론으로 그 역량을 소모시켜온 오큐파이 운동의 제너럴 어셈블리와 가장 대비되는 부분이다. 그리고 여기서 채택된 첫 선언은 ①헌법에 기반한 시위에 참여한 사람들에 대한 안전보장 ②새로 선임될 지방정부 책임자에 대한 헌법적 권리 인정 ③3월 1일까지 새로운 전문가 정부의 선임을 요구하고 있다. 이 요구들은 아직 혼란스럽고 모순적이기까지 하지만 분명히 권력의 문제를 제기하고 있다. 총선을 운운하며 시간 끌기에 나서려 했던 정부의 계획을 일축하고 인민의 힘에 의해 새로운 국가를 만들려 하고 있다.

이뿐 아니다. 노동조합ㆍ방송 등 사회의 모든 것을 다시 만들려고 하고 있다. 에미나 바보비치는 기업과 정부에 협조해왔던 '황색 노동조합'을 대체할 새로운 노동조합을 만들자고 제안한다.

"오늘날 많은 사람들이 '어째서 노동조합의 역할에 관해선 말하지 않는가'라고 제게 묻습니다. 많은 노동자가 노동조합을 부끄러워하고 있고 저는 개인적으로 디타(Dita)에서 소위 '황색' 노동조합이라고 불리는 조합이 정부를 위해서 일한 것을 부끄럽게 생각합니다. 노동조합은 노동자의 목소리를 듣는 대신 기업의 이익을 지켜 왔습니다. 노동조합 지도자는 사람들을 '매수하고' 있습니다. 그들은 시위가 시작됐을 때 스스로를 대중과 격리시켰습니다. 지금 그들은 의회와 협상하는 단체로 부상하고 있습니다. 이스메트 바히라모비치[노동조합 지도자 중 한 명인 듯싶다. 정확히 찾아보진 못했다.-옮긴이]가 저를 대표할 수 없기에 몇 가지 제안을 하려고 합니다. 저를 팔아버린 카타 이베리히치가 저를 대표하도록 놓아둘 수는 없죠. 저는, 그리고 많은 수의 노동자들은 투즐라에서 독립적인 노동조합을 만들어야 한다고 제안합니다. '황색' 노동조합은 [플리넘에-옮긴이] 참여할 권리가 없습니다. 또한 저는 침묵할 수 없는 노동자들이 용기를 가지고 목소리를 높여 저들을 두려움에 떨게 만들었으면 좋겠습니다. 우리가 투지와 용기를 가졌고, 우리가 단결했음을 저들에게 보여줄 필요가 있습니다."

아미라 시지크는 기업이 자행하는 온갖 비리와 부패를 밝히기 위해 인민의 방송국을 만들자고 제안한다.

"저는 우리가 TV 방송을, 최소한 공공 라디오 방송국이라도 만들었으면 좋겠습니다. 우리는 이 방송을 위해 기부금을 모을 수 있을 것입니다. 그 방송에서는 정치인들이 메인 뉴스로 나오지 않겠죠. 그 방송은 인민이 말할 수 있는 장소가 될 것입니다. 불평등을 직접 경험한 목소리, 이를테면 어떤 교수가 자신의 의견 때문에 상관으로부터 공격받거나 직장을 잃을 걱정 없이 우리와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 그런 방송이 될 것입니다. 밝혀져야만 하는 많은 이야기들이 있습니다! 직원들에게 식대로 50달러를 주면서 250달러를 받았다고 서명하라는 회사도 있어요. 우리는 이러한 모든 회사들을 공개해야 합니다! 사람들은 자신의 언론을 가져야만 합니다."

발전 도상에 있는 플리넘, 약점은 극복될까

'헌법'을 여전히 자신들이 행동하는 근거로 삼으며 기존 의회를 대체하는 것이 아니라 그들과 협력하려 하는 것, '전문가 정부'를 대안으로 요구하는 것은 분명 모순적으로 보인다. 이미 투즐라와 제니차 등 몇몇 주에서는 주지사 등 정부의 책임자들이 사임했고 주의회는 플리넘의 결정에 따르겠다고 발표했다. 즉 최소한 몇몇 지역에서는 실질적 권력이 거의 플리넘에 있는 것이다. 그런데도 기존의 허울뿐인 헌법과 의회를 존중한다는 것은 의외의 모습이다. '전문가 정부'를 요구하는 것도 그렇다.

"금융 특혜와 사라예보 주 모든 기업의 민영화에 대한 개정 사항, 2월 7일 시위에서 정부청사에 불이 났을 때 무슨 일이 일어났었는지에 대한 독립적인 보고서를 몇 주마다 보고하는 전문가들의 정부를 시민들은 원합니다."

사라예보 플리넘에서 아심 무이키치의 발언이다. 시민들에게 보고함으로써, 시민들의 통제를 받는 정부는 분명 발전된 전망이다. 그러나 이 전망이 노동계급 스스로의 정부와 같은 것은 아니다. 소위 전문가들이 겨우 '몇 주마다의 보고'만으로 시민의 통제에 온전히 순종할 것이라고 보기는 어렵다. 그러나 이 운동이 이제막 시작된, 7일의 불꽃으로부터 겨우 열흘 지난 상황에서 제기된 것들이란 걸 고려하면 '아직은' 결정적 약점이라고 보긴 어렵다. 보스니아-헤르체고비나에 통신원을 파견해 반란의 소식을 전하고 있는 레볼루션 뉴스는 "그리스와 이탈리아에서 선출되지 않은 신자유주의적 '기술관료'의 정부를 경험해 본 이들에겐 순진한 소리로 들릴 것"이라고 이를 지적한다. 그러나 플리넘이 요구한 '전문가 정부'는 "선거를 치를 때까지의 임시정부"일 뿐이라고 설명한다.

"[보스니아-헤르체고비나 인민은] 수십 년 간 대중과 먼 세 '민족' 정파의 오만한 과두지배를 경험해 왔기에 '인민권력'의 형태로 제안한 공적 감독 요구가 분명 소위 '기술적' 정부 요구에 앞서 제기된 것입니다."

프랑스 혁명, 러시아 혁명, 1968년의 세계적 반란 등 역사적 경험은 이것 말고도 다른 플리넘의 약점들을 눈에 띄게 한다. 그들 스스로 인지하고 있듯이 너무나 분명한 투쟁의 계급적 성격에도 불구하고 플리넘이 '시민'의 의회로 '모두'에게 열린 공간으로 간주되는 것이 첫째 약점이다. 지금까지는 오직 '개인'으로서만 플리넘에 참여하는 것으로 이 약점을 극복하고 있지만 민족주의적 우파와 지배자들이 조직적으로 대응할 때 플리넘의 이 약점은 치명적이 될 수 있다. 둘째 약점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아직까지 이 플리넘은 '무장'의 문제를 제가히자 않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반란이 확산되면서 베니치의 경찰이 시위대와 참여했지만 무장한 정부의 힘은 만만한 게 아니다. 게다가 유럽연합과 국제사회는 이 반란이 '악화'되면 군사적으로 개입하겠다고 천명한 상태다. '보스니아 평화협정 이행 국제사회고위대표부(OHR)'의 발렌틴 인즈코 대표는 이렇게 말했다.

"오스트리아는 보스니아-헤르체고비나 주둔군 병력을 늘릴 것입니다. 만약 상황이 확대되면 아마 나는 유럽연합 군대를 파병하는 것을 고려하겠죠. 그렇지만 지금은 아닙니다."

이는 과거 1차 세계대전이 바로 보스니아-헤르체고비나의 수도니 사라예보의 사건에서 촉발됐듯이 이번 반란이 주변국에 미칠 영향이 적지 않기 때문이다. 당장 옛 유고 연방이 영향을 받고 있다. 내전의 한 축이었던 이웃 나라 세르비아 베오그라드에서 연대 시위가 이어지고 있다. 베오그라드 경찰 노동조합은 반란이 국경을 넘어 확산돼도 진압에 나서지 않을 것이라고 선언했다. 조란 밀라노비치 크로아티아 총리가 반란 직후 보스니아-헤르체고비나로 날아와 크로아티아계 주민들에게 시위에 참여하지 말 것을 호소한 것도 보스니아-헤르체고비나 반란의 영향력을 반증하는 것이다. 내전을 치뤘던 옛 유고 연방의 독립국들은 혁명의 확산을 막기 위해 [내전을 재개하는 방식으로] 손을 잡거나 보스니아-헤르체고비나가 아직 완전한 주권을 갖지 못한 상황을 이용해 NATO의 개입을 요구할 가능성이 높다.

2011년 이후 PIGs라고 불리는 포르투갈ㆍ이탈리아ㆍ그리스 등 남부 유럽에서 반란의 불길이 터져나와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다. 2013년 이 불길은 터키ㆍ우크라이나로 이어졌다. 보스니아-헤르체고비나의 격변은 바로 아래 그리스 또는 옛 사회주의권 국가의 동료인 우크라이나의 반란과 영향을 주고받으며 세계를 흔들 격변의 시작점이 될 가능성이 높다. 지중해-흑해를 잇는 반란 벨트가 형성될 수 있는 것이다. 보스니아에서의 저항은 2011년 이래 세계에서 일어난 반란 중 가장 발전된 형태의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그것이 대안적 형태의 권력을 '형성'한 단계에까지 이르진 않았지만 여러모로 그 가능성을 매우 충분히 보여주고 있다. 세계는 정말 다른 시대로 진입하고 있다.(끝)

보스니아 반란, 더 볼 만한 글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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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스니아-헤르체고비나 북동부 도시 투즐라는 유럽에서 유일한 염호로 유명하다. 터키어로 소금을 뜻하는 '투즈(Tuz)'에서 이름이 유래하기도 했다. 이곳은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 시대부터 유고슬라비아 시절까지 대표적인 산업지역이었다. 지금도 보스니아-헤르체고비나에서 세 번째로 큰 산업도시다. 1992~1995년 내전은 10만여 명이 목숨을 잃은 참혹한 재앙이었다. 전쟁이 끝난 후에도 투즐라와 보스니아-헤르체고비나 전역의 노동자들에게 재앙은 끝나지 않았다. 자본주의 시장경제 재구축 과정에서의 민영화는 전쟁으로 많은 것을 잃은 노동자들에게 남겨진 얼마 안되는 것들까지 약탈해 갔다. 보스니아-헤르체고비나에서 다시 시작된 내전, 이번엔 계급전쟁인 내전에 대해 살펴보겠다.

보스니아 반란 ① 끝나지 않은 내전, 민영화
보스니아 반란 ② 플리넘, 인민권력이 싹트다
보스니아 반란 부록 - 인민의 목소리, 당신은 얼마나 배고픈가?


보스니아-헤르체고비나는 세르비아계의 스르프스카 공화국, 무슬림과 크로아티아계의 보스니아-헤르체고비나 연방 두 개의 체제로 이뤄져 있다. 보스니아-헤르체고비나 연방은 10개의 주로 나뉘어 있다. 민족과 종교에 근거행 지역과 인민을 분할한 지금의 보스니아-헤르체고비나 정치체계는 1995년 내전을 종식시킨 데이턴 협정에서 비롯했다. [그래픽 自由魂]

"[내전이 진행되던] 그 때 저는 전쟁 때문에 전기를 사용할 수 없었고 난방도 못했습니다. 그런데 지금 저는 임금을 받지 못해 전기와 난방을 사용할 수 없습니다."

19개월 째 임금을 받지 못한 무네베라 드루고바치가 AP와의 인터뷰에서 한 말이다. 그녀는 옛 유고시절 국영기업이었던 페로엘레크트로(Feroelektro)에서 1984년부터 일해왔다. 10년 전 재계의 거물 고란 스타니치가 이 회사의 지분 60%를 100만 유로에 사들이면서 그녀의 삶은 악화되기 시작했다. 회사는 민영화되자 마자 임금을 삭감했다. 스타니치는 회사의 가장 값어치 있는 건물을 담보로 은행에서 240만 유로를 빌려 자신의 개인적인 석회 공장을 건설했다. 회사가 은행 빚을 갚느라 허덕이면서 노동자들에게 임금을 지급하는 것이 중단됐다. 그녀는 19개월 째 일을 하고 있지만 임금을 받지 못하고 있다.

"제 남편은 전쟁 때 목숨을 잃었죠. 저는 평화로운 이 시기 고란 스타니치에 의해 목숨을 잃어가고 있습니다."

드루고바치에게 닥친 참사는 투즐라의 디타(DITA) 노동자들에게도 비슷하게 다가왔다. 세제공장인 디타의 소유주는 2007년 회사를 사들인 후 막대한 은행 빚을 갚기 위해 노동자를 위한 연금과 건강보험료 지급을 중단했다. 노동자들은 1년 넘게 임금을 받지 못했다. 어떤 이들은 임금이 50개월이나 체불됐다고 말한다. 같은 지역의 Konjuh, Resod-Gumig, Polihem, Poliolchem에서도 비슷한 일이 벌어졌다. 새 기업주들은 스타니치처럼 노동자들의 임금 떼먹고 기업의 자산을 팔아 자신들의 잇속을 챙기기 바빴다. 민영화 과정을 관리감독하는 정부 기구도 무능하기 짝이 없었다. 법적 절차가 진행되는 기간은 기업주들이 자산을 팔고 회산의 파산을 신청하기 충분한 시간을 마련해줬다. 민영화는 노동자들과 인민의 공공자산 약탈을 부르는 다른 이름에 불과했다.

파업을 하던 노동자들은 2012년 12월부터 거리 시위를 시작했다. 보스니아-헤르체고비나를 휩싼 반란의 불길이 투즐라에서 시작된 것은 어찌 보면 당연하다. 옛 유고 연방 시절 보스니아-헤르체고비나 사회주의 공화국은 공장 굴뚝을 국장으로 사용할 만큼 산업화된 지역이었다. 민영화와 그에 뒤이은 기업주들의 공공자산의 약탈은 불이 붙기 만을 기다리고 있었다.

실업률 28%, 20년간 쌓여온 분노의 폭발

"이 봉기는 10년, 아니 20년 전, 공장과 설비가 없어지기 시작했을 때, 노동자들이 살아갈 기회를 잃게 됐을 때 일어났어야 합니다. 시위대에게는 정부를 불태우는 것 말고 어떤 길도 남아있지 않습니다."

사라예보의 한 은퇴 노동자의 말이다. 그렇지만 시위가 처음부터 격렬했던 것은 아니다. 2월 5일 평화롭게 시작된 노동자들의 시위에 학생들이 합류했다. 정부의 무능 때문에 유럽연합의 학생교환 프로그램인 에라스무스플러스(the European Erasmus+ program) 혜택을 받지 못하게 된 학생들은 분노했다. 이미 압도적으로 높은 청년실업률 때문에 화가 쌓일 만큼 쌓인 상태였다. 세계은행이 발표한 공식 실업률은 28.1%다 이는 그리스 23.2%, 스페인 25%보다 훨씬 높은 것이다. 장기실업률은 더 심하다. 2012년 그리스와 스페인의 장기실업률이 각각 14.4%, 11.1%일 때 보스니아-헤르체고비나의 장기실업률은 25.4%에 달했다. 청년실업률은 언론에 따라 57.5%에서 60%까지 추정한다. 투즐라 학생 하멜 세이라노비치는 이렇게 말한다.

"사람들은 분노를 20년 간 쌓아왔습니다. 우리는 평화적으로 시위를 해왔지만 누구도 우리에게 귀기울이지 않았죠. 이 모든 일이 일어난 이유가 바로 이것입니다. 전 단지 학생입니다. 하지만 부모와 친구들이 형편 없는 임금을 받는 동안 정치인들이 우리를 약탈하며 돈과 더운밥을 누리고 있는 상황은 알고 있습니다. 사람들은 시위대가 (정부청사에 불을 질러) 악화시켰다고 말하지만 전 아닙니다. 정치인들이 이해하게끔 하려면 이 방법 밖에 없었기 때문입니다."

5일 시위는 노동조합과 실업자 연맹이 조직했다. 노동자와 실업자ㆍ학생 들은 주지사와의 면담을 요구했지만 그는 나타나지 않았고 대신해 나온 경찰은 시위대를 폭력적으로 진압하기 시작했다. 굴복하지 않은 시위대는 거리에서 항의를 계속했다. 사흘 째인 7일 시위대는 주청사로 진입해 집기를 들어내고 건물에 불을 붙였다. 건물 밖의 시위대는 경찰의 진입을 가로막았다. 1년 넘게 항의를 지속해왔지만 그 누구도 그들의 목소리를 들어주지 않았었다. 이 순간 전 세계는 그들의 목소리를 듣게 됐다.

반란은 곧 보스니아-헤르체고비나 전국으로 확산됐다. 1995년 내전을 종식시킨 데이턴 협정이 보스니아-헤르체고비나 전국을 민족에 따른 두 개의 공화국으로 분할하고 다시 보스니아-헤르체고비나 연방을 10개의 주(Canton)로 나누었지만 이 강제된 경계는 노동자 투쟁의 확산을 막지 못했다. 사라예보는 물론 크로아티아계가 다수인 모스타르, 세르비아계가 다수인 스르프스카 공화국의 수도인 바냐루카에서도 노동자들의 연대와 항의시위가 벌어졌다. 시위 초기 '보스니아인들의 반란'이라며 민족적 분열을 부추기는 지배계급의 꼼수는 아직까지 큰 효력을 내지 못하고 있다. 반란의 불꽃이 민족의 경계를 넘어 순식간에 전국으로 확산될 수 있었던 데는 투즐라가 보스니아-헤르체고비나 전국에서 가장 다민족적인 곳이라는 것도 한몫 했을 것이다.

게다가 정치인들은 무능하기 짝이 없다. 지난해 무슬림계 가족에게서 태어난 베리나 하미도비크의 죽음은 이를 극적으로 보여줬다. 병든 하미도비크는 치료를 위해 세르비아로 가야했다. 하지만 의회에서 정치인들의 민족적 갈등으로 통과되지 못한 시민권법 때문에 아이는 제때 치료를 받지 못해 결국 목숨을 잃었다. 민족으로 갈라진 의회가 새로운 시민권에 '종교족ㆍ민족적 정체성'을 포함하는 것을 두고 해결책을 내놓지 못했기 때문이다. 게다가 정치인들은 무능할 뿐만 아니라 탐욕스럽기도 하다. 한달 평균 임금이 350유로를 넘지 않음에도 의원들은 한달에 3500유로를 받고 있다. 보스니아-헤르체고비나 인민이 자신의 요구를 실현하기 위해선 기존 정치인들을 뛰어넘을 필요가 있다. 이들의 반란은 혁명으로 나아가야만 했다.(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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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월 22일에서 23일 사이 키예프 거리의 바리케이트. 1월 16일 집회와 시위를 강력하게 규제하는 '독재법'이 의회에서 통과된 후 거리 시위가 격화됐다. [사진 Ilya Varlamov]

지난해 11월 우크라이나 정부는 유럽연합과의 통상 강화 협상을 중단하고 친러시아 정책으로의 복귀를 천명했다. 대외정책 전환은 이후 3개월째 계속되고 있는 거대한 거리 시위를 촉발시켰다. 가라앉을 듯 보이던 시위는 새해에 다시 폭발하고 있다. 1월 16일 시위를 억압하는 강력한 법안들이 의회에서 통과하면서부터다. 바리케이트가 세워지고 화염병이 날라다니는 모습이 외신을 타고 있다.

그러나 우크라이나 시위는 지난해 터키ㆍ브라질ㆍ이집트와 달리 국제주의적 좌파에게 큰 관심을 받고 있지 않다. 시위 초기 외신을 탄 레닌의 동상을 쓰러뜨리는 모습 때문이었을까. 실제로 그 사진의 시위를 주도한 것은 스보보다
(Svobodaㆍ자유)라는 이름의 극우파 정당의 당원들이었다. 이후 거리에서의 시위를 주도하고 있는 것도 극우파다.

처음부터 극우파가 시위를 주도한 것은 아니다. 유럽연합과의 협상 중단에 항의하는 학생 시위가 지난해 11월 30일 경찰에 의해 잔인하게 진압당한 후 눈앞의 경찰폭력에 분노한 시민들이 거리로 나서기 시작했다. 12월 초 며칠 간 시위가 계속되면서 유럽연합과의 통합은 시위의 중요 의제에서 벗어났다. 이 저항이 여전히 '유로마이단'이라고 불림에도 말이다. 키예프-모힐라 대학의 미하일로 비니치키야
(Mychailo Wynnyckyj) 교수는 12월 1일 시위에 직접 참여한 후 "키예프의 상황은 매우 빠르게 발전하고 있다"며 "우크라이나에서 거리로 쏟아져 나온 인민들은 더 이상 유럽연합과의 통합을 요구하지 않는다. 그들이 그것을 요구할 때조차 지엽적인 것일 뿐이다"고 평가했다. 경찰의 폭력적 시위 진압에서 드러난 야누코비치의 권위주의적 통치, 임박한 경제위기에 대한 불안에 쌓여온 불만이 폭발했다(최근 미국의 양적완화 축소 이후 우크라이나는 모건스탠리에 의해 서든스톱 위험이 가장 높은 네 개 나라 중 하나로 꼽혔다).

야누코비치가 이끄는 동부 산업지대 기반의 지배집단은 지금의 위기를 통제할 능력이 없다. 그 배경엔 세계적 경제위기와 함께 러시아와 서방의 점증하는 제국주의적 갈등이 있다. 2010년 빅토르 유센코의 실각 후 다시 정권을 잡은 빅토르 야누코비치 대통령은 유럽연합과 러시아, 심지어 중국까지 끼어든 갈등에 갈피를 잡지 못하고 있다. 수출의 21.2%, 수입의 28.4%가 러시아와 사이에서 이뤄지고 있고 석유와 가스는 전적으로 러시아에 의지하는 나라에서 친서방 정책으로의 전환은 쉽지 않은 것이다. 실제로 러시아는 이러한 관계를 이용해 우크라이나의 친서방 정책을 견제해 왔다. 유센코가 집권하고 있던 시기인 2005년 말부터 2006년 사이 원유가격 갈등으로 러시아는 공급을 중단했고 우크라이나는 결국 두 배 인상된 가격으로 수입을 재개할 수 있었다. 지난해 우크라이나가 친유럽연합 행보를 이어가자 러시아는 8월부터 우크라이나로부터의 수입과 가스공급을 중단하겠다고 협박해 왔다
(지난해 시위가 시작된 뒤인 12월 17일 러시아를 방문한 야누코비치에게 푸틴은 150억 달러 지원과 가스가격의 33% 인하라는 '통큰' 선물을 전해주기도 했다. 이와 함께 야누코비치가 12월 초 중국을 방문하는 등 위험한 줄타기를 계속하고 있다는 것도 주목해야 한다).

드네프르 강 동쪽의 산업지대에 기반한 야누코비치로는 대외 관계는 물론 국내적 지지기반 때문에도 러시아와의 거리 두기가 쉽지 않다. 실업과 빈곤에 시달리는 우크라이나 젊은이들에게 야누코비치가 인기가 없는 이유다. 게다가 야누코비치가 러시아어를 모국어로 쓰는 상황은 서부 농업지대의 젊은이들이 극우파의 민족주의적 정서에 손쉽게 동질감을 느끼게 만들기도 한다. 이것이 극우파 성장의 첫 이유다.

극우파 성장의 두 번째 이유는 역사적 경험 때문이다. 동부의 러시아인들, 특히 크림반도의 러시아인들은 상당한 자치권을 누리고 있다. 산업을 주도하고 있는 동부에서도 자치를 요구하기도 한다. 우크라이나인에게는 소련 시절 옛 지배자들이 여전히 권력을 쥐고 있는 것과 마찬가지다. 과거 소련이 실제 정체와 상관없이 마르크스주의를 공식 이데올로기로 삼았다는 사정 때문에 마르크스주의적 좌파가 성장할 공간은 여전히 비좁다.

그렇다고 부르주아 민주주의적 야당이 대안으로 떠오르는 것도 아니다. 2004년 오렌지 혁명 때는 유센코라는 명확한 대안이 있었다. 그러나 2005년부터 2010년까지 이 유센코가 통치한 우크라이나가 지금의 우크라이나, 또는 과거의 우크라이나보다 더 나은 사회인지는 분명치 않다. 집권 1년이 채 지나지 않은 시점에서 급격히 하락한 경제성장률과 지지부진한 개혁 때문에 최악의 인기를 이어갔다. 유센코는 2010년 대선 땐 3위권의 군소호보로 전락했다. 2010년 야누코비치와 겨뤘던 율리아 티모센코 전 총리는 직권남용 혐의로 수감돼 있다
(그것이 진실인지는 알 수 없지만). 좌파가 부재한 상황에서 제도권 정당의 허약함은 극우파의 성장을 부채질하고 있다.

가능한 정치적 대안의 부재는 극우파 성장을 위한 비옥한 토대가 되고 있다. 여기에 권위주의적 통치에 맞서 가장 적극적으로 거리 시위를 이끌면서 이 비민주주의적 집단이 가장 '민주주의적' 집단으로 대중의 정서적 공감을 얻고 있다. 결국 극우파의 성장은 단호한 좌파 정치세력이 없기 때문이다. 우크라이나의 저항을 현재 극우파가 주도한다고 해서 좌파가 기권해서는 안되는 이유다. 게다가 1월 16일 독재법의 통과 이후 적은 규모지만 좌파 또한 거리 시위에 참여하고 있다. 우크라이나의 지정학적 위치, 역사적 경험, 정치 전통이 여러모로 좌파에게 불리하게 작용하고 있다. 그리고 이러한 조건들에서 우리와 비슷한 여러가지를 확인할 수 있다. 국외자로서 우리가 우크라이나 좌파의 분투로부터 적지 않은 교훈을 얻을 수 있는 이유다.

아래는 우크라이나 아나키스트의 인터뷰다. 마흐노 반란의 역사가 있기에 마르크스주의적 좌파와 손잡긴 힘들 것이다. 하지만 아나키스트와의 이 인터뷰는 사실은 부족할지언정 진실의 측면에서 많은 것을 들려준다.

※ 의역을 했기에 원문과 상당히 다릅니다. 오역도 많이 있으니 퍼가거나 인용하시려거든 꼭 원문을 참조하시기 바랍니다. 대괄호 []는 이해를 위해 덧붙인 것입니다.



1월 22일에서 23일 사이 키예프 거리의 바리케이트. 시위대가 힘을 합쳐 거대한 새총으로 화염병을 던지고 있다. [사진 Ilya Varlamov]


우크라이나 아나키스트와의 인터뷰
유로마이단 "우리는 당신 투쟁을 지지하지만 파시스트에 동의하지 않는다"
우크라이나, 레볼루션 뉴스, 2014년 1월 30일

키예프의 자율 노동조합(Autonomous Workers' Union) 조합원과의 이 인터뷰는 2014년 1월 28일 이뤄졌다. 이 인터뷰는 유로마이단을 둘러싼 사건들 몇 가지를 해명해준다. 저항 이면의 원인들, 대통령에 초점이 맞춰진 분노, '오렌지 혁명'과의 차이, 우익의 역할, 사회적 투쟁의 약점과 가능한 시나리오들을.

Q: 키예프의 사진을 보면 바리케이트에 모든 부류의 사람들이 모여든 것 같다. 그들이 함께 하게 된 이유를 당신은 무엇이라고 생각하나? 바리케이트의 사람들은 무엇을 하고 그 지지자들은 무엇을 토론하고 있나? 단지 경찰에 맞선 싸움이 실제 쟁점인가? 아니면 바리케이트와 그 밖의 곳에서 그들의 집회 또는 어떤 다른 형태의 토론 '조직'이 이뤄지고 있는 것인가?

A: 현재 벌어지고 있는 시위의 주요 동기는 극단적으로 인기가 떨어진 대통령에 있다. 물론 실제 원인은 경제위기와 사회적 불평등, 부패, 공공 서비스의 쇠퇴, 가난, 실업에 있다. 이러한 불만의 목록이 사람들을 오늘날 거리로 나오게 만들었다. 이건 좌파의 견해만은 아니다. 사람들은 이 모든 쟁점들에 대해 말을 하고 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이 부엌 구석에서 투덜거리기를 그만두고 큰 소리로 저항하게 된 것은 야누코비치 대통령에 대한 그들의 감정 때문이다. 대통령 사임 요구는 가장 근본적인 요구다. 유감스럽게도 이것이 사람들이 생각할 수 있는 가장 급진적인 것이다.

두 번째 이유는 경찰력에 대한 순수한 분노다. 그러나 또 한편으로 시위대는 단지 경찰의 잘못이라고 생각하지 만은 않는다. 이는 그들의 지도자 중 한 명인 유리 루첸코가 내무장관이었던 것과 관련이 있다. 베르쿠트
[우크라이나의 특수 경찰]와 다른 특수 경찰력이 늘 그래왔듯이 행동했을 때 루첸코 그 자신은 최루 가스를 사용해 시위 군중을 해산할 것이라고 발표했었다. 그래서 지금 역시 그와 같은 (이곳의 모든 사회 계급들 사이에서 악명이 자자한) 경찰에 맞선 시위는 비교적 무해한 방향으로 이어지고 있다.

내 생각에 대통령과 그의 정부, 경찰이 주요 토론 주제다. 시위대의 주요 목표는, 그들이 보기에 지역당
[야누코비치가 이끌고 있는 우크라이나 여당]을 몰아내는 것, 그것 뿐이다. 일부에선 헌법의 권력 균형을 대통령에서 의회로 바꿀 것에 대해 토론하기도 한다. 그러나 물론 주요 주제는 사실 최루 가스, 음식, 방패, 화염병, 거리 전투의 전술과 끝없는 루머와 목전한 국가비상사태 선포 위협, 스나이퍼, 폭동진압경찰(그들이 러시아인인지 아닌지, 그들이 얼마나 더 오랫동안 개입할 것인 지 등)과 같은 실제적인 것들이다.

집회에 관해서 말하자면, 난 아무 것도 모른다. 내 생각에 상황은 매우 역동적이고 불안정해 어떤 일이든 일어날 수 있다. 그렇지만 현재 바리케이트에서 어떤 방식으로든 직접민주주의로 발달하는 기미는 확인하지 못했다.

Q: 정부 청사에 대한 많은 공격과 점거가 있는 것 같지만 도시에서 '일상적' 삶은 계속되고 있는 것 같다. 그런가? 키예프에서 사람들은 낮에는 일을 하고 밤에는 바리케이트로 가는 것인가? 시위대가 하는 다른 형식의 역할은 무엇인가? 내가 듣기론 점거된 대학교도 있던데? 이를테면 최근 임금 미지급에 맞서 작업장에서 어떤 다른 것이 진행되고 있는가?

A: 물론 그것은 사실이다. 다른 지역에서 기업 활동이 아무런 방해 없이 평상시처럼 계속 진행되는 동안 키예프 중심가만 시위의 영향을 받고 있다. 전국적인 정치 파업 선언 시도가 있었지만 불행히도 실패했다. 반대파는 이를 위한 어떤 수단도 가지지 못했고, 어떤 정치조직도 작업장에 뿌리내린 전국적 조직을 갖지 못했으며, 단순히 인민 자신이 파업과 같은 경험이 전혀 없기 때문이기도 하다. 이론적으로 이를 실행할 수 있는 유일한 힘인 오래된 관료주의적 우크라이나 노동조합연맹(the Federation of Trade Unions of Ukraine)은 중립을 지키고 있다. 학생조합인 '직접행동(Direct Action)'은 학생 파업을 시도했지만 지금까지 오직 하나의 대학, 키예프-모힐라 대학에서만 부분적으로 가능했다. 네, 그렇게 사람들 대부분은 업무와 학업을 계속하며 그들의 자유시간 만을 바리케이트에서 보내고 있다.

아우토마이단이라고 불리는 자가용 소유자들의 모임은 그들의 차로 교통, 특히 중요한 정부청사 부근이나 권력자들의 주거지 인근의 교통을 차단하는 행동을 주도하고 있다. 근로자들이 벌이는 저항 형식 중 하나는 지역당 소속 자본가들이 만든 상품들에 대한 불매운동이다. 최소한 몇몇 보도에 의하면 이러한 운동은 비교적 성공적인 것으로 밝혀졌다.

지금까지 한 대학에서 점거가 있었지만 그것이 실제로 당신이 말한 것인지는 모르겠다. '직접행동'에 속한 우리의 동지는 모든 캠퍼스를 점거하고 그곳의 모든 활동을 중단시키려 시도하고 있지만 내가 알고 있기로는 여전히 실질적인 점거는 아니다.

임금 등과 관련된 작업장에서의 저항은 지금까지는 정치적 저항과 연결되지 못하고 있다. 일례로 도시 교통을 통제하는 공기업인 키예프패스트란스
(Kyivpastrans)의 노동자들이 12월 시위를 벌였고 몇몇 좌파 조직이 그들을 도왔지만 지금까지 그들은 준법투쟁(이탈리아식 파업 Italian strikeㆍ준법투쟁 내지 태업과 같은 형식의 노동쟁의를 이르는 속어)조차 시도하지 않았고 마이단에도 참여하지 않았다. 실제로 12월 말 지방정부는 최선을 다해 밀린 임금을 지급해 그들의 시위를 가라앉혔다.

Q: 우크라이나에서 최근 있었던 가장 거대한 시위는 '오렌지 혁명'이다. 오늘날과 비교했을 때 차이점은? 누군가는 그 '역사'를 고려하겠죠? 시위대는 '민주주의'에 대해 어떻게 말합니까? 그리고 유럽연합 가입을 원하는 것은 무엇 때문입니까?

A: 무엇보다도 '오렌지 혁명'은 매우 개인적인 것에 맞춰진 저항이었다. 사람들은 그들의 지도자인 빅토르 유센코를 대통령 자리에 앉히겠다는 구체적 목표에 집중했다. 유센코의 정치체제는 대중을 꽤 치밀하게 통제했고 모든 것을 매우 부드럽게 조직했다. 현재 야당 지도자 세 명은 시위대 다수에게 신뢰를 받지 못하고 있다. 그들은 대통령과의 협상에서 마이단을 대표하고 있지만 많은 사람들은 그들이 그럴 권한이 있다고 믿지 않는다. 예를 들어 지난 목요일[1월 23일] 그들은 군중으로부터 야유를 받았고 마이단은 그들이 야누코비치와 협상한 조건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정치인들은 화가 났지만 대중을 따라야만 했다. 일반적으로 사람들은 그들의 '대표자들'보다 더 급진적이다. 11월의 모든 시위는 그들에게 뜻밖의 일이었고 그 이후 그들은 사태를 통제하고나 이끄는 게 불가능했다. 이러한 진공상태는 곧 극우파에 의해 채워졌다.

또 다른 차이점은 2004년에는 토론되는 쟁점의 범위가 더 넓었다는 것이다. '혁명' 전체는 대통령 선거에 바쳐졌지만 여전히 좌파적 의제를 합법적으로 제안할 수 있었고, 사회적ㆍ경제적 쟁점을 토론할 수 있었다. 그런 점에서 과거의 저항은 현재의 시위보다 더 비주류적이었다. 현재는 오직 부르주아 정치에 관해서만 말할 수 있다. 당신이 다른 쟁점을 제기하고자 하면 당신은 곧 '선동가'로 딱지 부쳐질 위험에 처할 것이다.

나는 사람들에게 2004년의 사건과 현재 시위의 유사점을 떠올려보라고 말할 수 없다. 무엇보다도 당시 아동이었던 새로운 젊은 세대가 지난 10년 사이 등장했다. 그리고 지금 그들은 시위대의 가장 중요한 부분이다. 두 번째로 빅토르 유센코는 '오렌지 혁명'의 참가자 모두에게 커다란 실망감을 주었다.

당연히 시위대는 법치가 이뤄지는 진정한
(부르주아적) 민주주의 정부를 원한다고 말한다. 이러한 발상에서 그들을 구별해주는 유일한 것으로 빅토르 야누코비치를 떠올릴 뿐이다. 그리고 그들은 유럽연합 가입이 민주주의 또는 번영과 그 밖에 좋은 모든 것과 같은 뜻이라고 확신한다. 유럽연합은 그들의 모든 희망이 집약된 신화다. 세계에 대한 이 신화적 관점에서 러시아가 모르도르[반지의 제왕에서 사우론이 왕국을 세운 암흑의 땅을 이르는 명칭] 취급을 받는 동안 말이다.

Q: 우파 정당과 파시스트 그룹도 시위에서 역할을 하고 있다. 그들은 실제로 얼마나 중요한가? 그들은 많은 지지를 받고 있나? 다른 시위대는 그들과 어떤 연관을 맺고 있나?

A: 극우파 정당 스보보다는 시위를 이끌고자 노력 중인 세 개의 큰 정치집단 중 가장 조직적이다. 그들은 다양한 지역에 실질적 활동에 기반한 실제로 활동하는 세포조직을 지닌 유일한 정당이다. 그래서 세 곳 중 가장 조직적이고 이데올로기적인 조직으로서 그들은 가장 빠르게 성장하고 있다. 스보보다를 제외하면 네오나치 전투 조직의 광범위한 연합이 있다. 그들은 '라이트 섹터(Right Sector)'라고 불린다. 그들은 시위 초기에 형성돼 비정치적이고 자유주의적인 사람들로부터 지지를 받고 큰 명성을 얻는 성공을 거뒀다. 그들은 공개적인 전투성과 공격성으로 가장 큰 인기를 얻고 있고 대중은 이 기민하고 젊은 애국자들의 어떤 잘못도 보지 않고 있다. 최근 네오나치 훌리건들이 경찰, 친정부 폭력배와 맞서 싸운 주요 돌격대로 드러나면서 같은 형태가 반복되고 있다.

1월 19일 시위에 비정치적이고 자유주의적인, 심지어 좌파인 여러 부류의 다른 많은 사람들이 참여할 때까지 파시스트의 헤게모니는 의심할 여지가 없었다. 그것은 1월 16일 통과된 '독재법
[최고 5년형과 고액의 벌금형, 노동교화형을 시위 참가자에게 내릴 수 있게 한 11개의 법안. 이 법은 의회에서 찬성 450표, 반대 235표로 통과됐다]' 폐지로 시위 의제가 바뀌면서 그렇게 됐다. 그로 인해 극우파가 약간 후퇴했지만 결국 이 시위에서 누가 승리하든 극우파가 큰 이득을 얻을 것이라는 건 분명하다. 반대파가 승리할 경우 그들은 그들 자신을 위한 경찰력과 특수기구 등을 얻게 될 것이다. 만약 야누코비치가 이긴다면 그것은 나라의 절반이 극우파, 추측컨대 독재와 맞설 수 있는 유일한 애국주의적 급진파로서 극우파의 확고한 지지자가 될 것이라는 걸 의미한다.

좌파 활동가 또한 저 법들에 의해 극심한 위험에 처할 수 있기 때문에 1월 19일 이후 좌파 대부분도 시위에 참여했다. 그들은 자신의 역할이 비상병동에서의 간호와 같은 사회기반 활동들에 있다는 것을 발견했다. 그들은 경찰과 폭력배들이 부상자를 납치하는 것을 막기 위해 거기에 머물러야만 했다. 좌파가 활동하는 다른 영역은 위에서 언급했던 정치 파업 시도다.

Q: 외부에서 보기에 시위는 지난해 이스탄불과 많은 공통점이 있는 것 같다(물론 확실히 강도는 다르지만 …). 키예프 혹은 우크라이나 다른 곳의 시위대에게서 지난 몇 년 간 세계적 봉기와의 연관성을 볼 수 있는가?

A: 확실히 몇몇 비슷한 점을 발견할 수 있지만 주관적 관점의 우크라이나 시위대는 저 다른 시위대를 눈에 담고 있지 않다. 그들은 이 사건을 저항의 국제적 물결이 아니라 우크라이나 역사에 위치지우려 노력하며 순수한 민족적인 투쟁으로 바라본다.

Q: 마지막으로 앞서 말한 것에 덧붙여 질문하자면, 당신은 운동이 시작될 때부터 그것을 뒤따라왔다. 그리고 나는 당신이 발표한 몇몇 보고서를 읽었다. 당신이 시위에서 바라는 것, 당신이 상상할 수 있는 긍정적 결과는 무엇인가? 당신이 떠올리는 최악의 결과는 무엇인가? 당신은 우크라이나 외부에 어떤 종류의 지지를 바라는가?

A: 내가 말했던 것처럼 두 가지 가능성이 있다. 하나는 야누코비치의 승리다. 이는 1970년대 남아메리카의 독재를 닮은 냉혹한 권위주의적 체제로 이어질 것이다. 그러나 야누코비치가 나라를 다스리는 데 많은 문제가 있을 것이다. 그는 기껏해야 절반의 대중에게 지지를 받을 것이기 때문이다. 독재는 그와 같은 조건에서 살아남을 수 없다. 그래서 가능한 시나리오는 1980~90년대 북아일랜드 IRA와 다르지 않은 게릴라 운동 하에서의 군사적 대립의 증가다.

다른 결과는 야당의 최종적 승리가 될 것이다. 이는 허약한 부르주아 민주주의 공화국에서 정치적으로 불안정하지만 기본적 자유는 유지되는, 우크라이나에서 2005~2009년 사이와 비슷한 결과를 낳을 것이다. 여기까지는 파시스트가 권력의 전당과 거리 모두에서 더 강해질 것이다.

여기 세 번째, 아마도 최악의 하나가 될 시나리오도 있다. 그것은 한 편으로는 우크라이나 서부와 키예프를 포함한 중부 사이에, 다른 한 편으로는 남부와 동부 사이에 본격적으로 내전이 벌어지는 것이다. 사람들은 양편의 민족주의적 괴물을 위해 싸울 것이기 때문에 당연히 이는 최악의 참사가 될 것이다. 다른 한 편 우크라이나와 같이 거대한 산업국가에서 그와 같은 일이 벌어질 것 같지는 않다. 유럽연합과 러시아와 다른 세계적 권력들은 주요 가스ㆍ석유 송출관과 15개의 원자로를 가진 나라가 전쟁의 혼란에 빠지는 걸 보고만 있진 않을 것 같다.

내 생각에 그와 같은 조건에서 해외로부터의 최상의 지원은, 하지만 극우파와 연대하지 않는 지지는 우크라이나 정부를 물러서게 만들 수 있을 것 같다. "우리는 당신의 투쟁을 지지하지만 당신의 파시즘적 주장엔 동의하지 않는다"와 같은 메시지가 해외에서 압박을 가하기 위한 최선의 형태일 것이다.

Posted by 때때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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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때때로 2014.02.05 09:51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12월 시위 직후 우크라이나에 유화적 제스쳐를 취했던 러시아가 최근 우크라이나 정부의 시위대에 대한 양보 움직임에 다시 강경책을 내놓았다. 러시아는 우크라이나와의 국경 지대에서 통관을 중단시켰다. 러시아 정부 관계자는 공개적으로 우크라이나를 협박하고 있다. 푸틴 대통령의 경제자문관인 세르게이 글라제프는 야누코비치를 향해 "시위대를 제압해 국가의 위신을 지키거나, 권력을 잃고 국가가 혼돈에 빠져버리는 상황을 맞는 것" 중 선택해야 한다고 말했다.

    중앙일보는 러시아의 이런 강경책과 관련해 제국주의적 이해를 잘 요약한 기사를 오늘(2월 5일) 실었다.

    "러시아가 ‘내정 간섭’으로 여겨지는 무리수를 둬가며 우크라이나에 집착하는 이유는 이 한마디에 담겨 있다. “우크라이나가 없는 러시아는 일개 국가에 불과하지만 우크라이나가 있으면 제국이 된다.” 외교 전문가들이 러시아와 우크라이나의 관계를 정의하는 표현이다. 우크라이나가 러시아가 유럽으로 수출하는 가스 파이프라인이 지나는 허브이기 때문만은 아니다. 러시아는 우크라이나 남부 항구도시 오데사와 세바스토폴을 통해 흑해의 지배권을 확보하고 있다. 서쪽 바다는 영국에, 발틱해는 덴마크에, 동쪽 바다는 일본에 견제당하는 러시아에 지중해로까지 연결되는 흑해는 전략 요충지다. 특히 최근 시리아 사태 중재에 나서는 등 푸틴 대통령이 중동 해결사로 나서면서 경계에 선 우크라이나의 중요성은 더 커졌다."

    아마도 이보다 더 간략하게 러시아의 제국주의적 야욕에서 우크라이나의 지위를 잘 설명해주는 글은 찾기 어려울 것이다. 링크는 여기: http://joongang.joins.com/article/989/13806989.html?ctg=1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