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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의 자유ㆍ평등ㆍ박애 폭격

프랑스는 1월 11일 말리 내전에 전격적으로 개입했다. 공중 폭격을 실시했고 현재 군인 2150명이 배치돼 있다.

올랑드 대통령은 "프랑스는 아프리카 동맹국들과 함께 말리 정부의 요청을 받아들이기로 결정했다"고 말했다. 내전 개입이 프랑스의 독단이 아니라 말리 정부의 요청에 대한 선의의 답변이란 것이다. 그는 "우리가 철군했을 때 말리가 안전할 것과 합법적인 정부와 선거과정 그리고 그 영토 안에 더 이상 테러리스트의 위협이 없도록 보장하는 것"이 군사개입의 목표라고 밝혔다.

그러나 상황은 여의치 않아 보인다. 미국의 지원도 항공기를 이용한 프랑스군 부대와 장비의 수송에 그치고 있다. 독일은 입발린 말과 달리 프랑스군의 수송 지원 요청도 거부했다. '국제사회, 말리 내전 개입 속도낸다'는 기사가 잇따르지만 대개는 말리 주변국들이 파병하면 그에 대한 재정을 지원한다는 것에 불과하다.

프랑스가 개입한 지 열흘이 지나면서 전세가 역전되는 듯도 싶지만 아직은 백중세다. 연합뉴스에 따르면 "전문가들은 이슬람 반군이 프랑스ㆍ말리 군에 밀려 주요 거점도시에서 퇴각해 키달 인근 산악지역에 집결해 게릴라전에 대비하는 것으로 관측"하고 있다. 리비아와 북아프리카 지역의 혼란이 계속되면서 말리 북부도 이 분쟁에 편입되는 분위기다.


프랑스는 왜 개입했을까 1 근본주의의 확산? 말리 정부의 요청?

프랑스 군사 개입의 첫 이유는 그들 스스로 밝혔듯이 이슬람 근본주의 세력의 확산일 것이다. 말리 국민의 90%는 무슬림이다. 하지만 딱히 근본주의적이진 않았다. 2012년까지 세 번의 쿠데타가 있었지만 모두 세속주의적 세력이었다.

북부 투아레그족의 분리독립 요구라는 불씨에 근본주의 이슬람이라는 기름을 부은 것은 서방세계다. 서구의 경제ㆍ군사적 지원은 주로 소수민족 탄압에 활용됐다. "특히 2001년 9ㆍ11 테러 이후 미국이 테러와의 전쟁을 명목으로 말리 정부에 대한 군사 지원을 확대하면서 투아레그족은 더욱 어려운 처지에 몰리게 됐다."
[중앙일보] 궁지에 몰린 투아레그족은 이슬람 근본주의 세력과 손을 잡았다. 투아레그족 출신이 주도하는 '안사르 에디네', 비 말리 출신의 '마그레브 알카에다(AQIM)', 마그레브 알카에도 분리된 '서아프리카 지하드 통일운동(MUJAO)'이 그것이다. 이들과 세속주의적 투아레그족은 2012년 1월 '아자와드민족해방운동(MNLA)'를 조직했다. 운동은 곧 근본주의 이슬람 세력에게 주도권을 뺐겼다. 여기에 리비아 등 북부아프리카가 혼란한 틈을 타 무장한 채 되돌아온 망명 투아레그족이 결합했다.

주요 언론은 근본주의 이슬람의 확산으로 말리 북부의 인권침해가 심각한 상황에 처했다고 보도하고 있다. '인권을 지키기 위한 개입'이라는 오래된 수사가 다시 반복되고 있다. 근본주의 이슬람의 샤리아 율법을 따르는 가혹한 처벌 사례가 이어진다. 분명 인권침해가 상당수 발생하고 있을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인권침해는 근본주의 이슬람 세력만 자행하는 것은 아니다. 국제앰네스티는 지난해 7월 31일 발표한 보고서에서 "[2012년] 3월 쿠데타를 일으킨 군부에 충성하는 군인들이 반대자를 대상으로 즉결 처형, 고문, 성적 학대를 자행하고 있는 사례들을 공개하며 말리 정부에 진상조사를 요구"했다.
[경향신문]

북부 근본주의 이슬람의 인권침해가 문제라면 남부의 쿠데타 정부에 대한 개입도 이뤄져야 한다. 그러나 프랑스는 말리 정부의 요청이라며 북부 반군만 공격하고 있다. 여기서 말리 정부의 합법적 정통성 또한 의문이다.

2012년 3월 사노고 대위의 쿠데타는 말리 군부의 부패와 가혹행위가 계속되는 가운데 우연하게 일어났다. 신발과 무기도 지원받지 못한 채 북부에서 반군세력과 싸우던 수십 명의 부대가 전멸당한 사건이 결정적이었다. 말리 정부는 지난 10년간 미국으로부터 10억 달러 이상을 지원받았음에도 반군과의 싸움에서 군인들은 제대로된 지원을 받지 못했다. 이 쿠데타 세력은 지금도 말리 정부에 막대한 영향력을 발휘하고 있다. 12월에는 쿠데타군에 체포된 지 하루 만에 풀려난 총리가 곧바로 사임하는 일도 있었다. 북부 반군세력에게 합법적 정통성이 없다면 군사개입을 요청한 말리 임시정부 또한 합법적 정통성은 없다.


프랑스는 왜 개입했을까 2 차이나프리카의 견제

프랑스 정부가 인권과 질서의 양날개를 단 천사가 아니라면 군사개입 이유는 다른 데 있을 것이다. 군사개입은 무엇보다 '프랑사프리크(프랑스+아프리카)'라고 불릴정도로 오랜 관계를 맺어온 프랑스와 아프리카의 사이가 나빠진 상황에서 비롯한 것으로 보인다.

알제리ㆍ세네갈ㆍ말리 모두 프랑스의 식민지였던 나라다. 말리는 1958년 세네갈과 함께 연방으로 독립한다. 1960년 세네갈이 연방에서 탈퇴하면서 지금의 말리공화국을 세웠다. 독립한 후에도 프랑스의 영향력은 상당했다. 2006년까지 프랑스는 말리의 주요 수입국이었다. 프랑스 아프리카투자자협의회는 49개 나라 1000여 곳에 지사를 두고 있다. 아프리카 8개 나라와 방위협정을 체결하고 있고 특수부대를 세네갈 가봉, 중앙아프리카공화국 등에 주둔시키고 있기도 하다.

"아프리카 일대를 식민지배한 과거 프랑스 정권들은 '프랑사프리크'라 부르는 각국 정권과의 은밀한 후원 또는 결탁 관계를 바탕으로 아프리카에서 패권을 유지해왔다. 유럽 국가 가운데 유일하게 아프리카에 군사기지를 보유하며 지역 '경찰' 국가 역할을 자임한 나라는 프랑스뿐이다."[경향신문]

말리 등 아프리카 국가들과 프랑스의 사이가 멀어진 것은 2000년대부터다. 특히 사르코지의 반이민 정책이 결정적이었다. 사르코지는 2007년 세네갈 다카르에서 "아프리카인들은 역사에 제대로 들어선 적이 없다"는 발언을 해 아프리카인들의 분노를 사기도 했다. 이 틈을 중국이 비집고 들어왔다. 지난해 중국과 아프리카 간 무역규모는 2000억 달러를 넘어선 것으로 알려졌다. 아프리카 수입의 18%가 중국이다. 말리의 경우 무역의 25%가 중국과 이뤄지고 있다. '프랑사프리크'라는 말보다 '차이나프리카(차이나+아프리카)'라는 말이 더 익숙하게 됐을 정도다.

프랑스가 아프리카에서 약화된 영향력을 말리 내전을 계기로 다시 확대하고자 한다는 의혹이 강하게 제기되고 있다. 이는 최근 아프리카 지역에 대한 군사적 개입을 잇따라 확대하고 있기 때문이다. 2011년 리비아 내전에 가장 적극적으로 개입을 주장했던 나라가 프랑스다. 이어 코트디부아르의 대통령 축출에도 큰 역할을 했다. 국민일보는 이를 들어 프랑스는 "말리 군사개입이 잘못된 선택으로 끝날 경우 신(新) 식민주의를 시도했다는 비난을 면하기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고까지 보도했다.
[국민일보]


프랑스는 왜 개입했을까 3 방대한 천연자원에 대한 탐욕

프랑스가 아프리카 지역에 대한 정치적 영향력을 확보하기 위해 애쓰는 것은 이 지역에 방대한 천연자원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식민지와 같은 형태는 아닐지라도 프랑스에 우호적인 정부를 확보하는 것이 이 지역의 천연자원 수급에 유리하다는 판단이 작용했을 것이다.

말리는 세네갈-기니-가나-부르키나파소-니제르-카메룬을 잇는 '금광벨트'의 중심에 위치해 있다. 우라늄도 큰 이유다. 위키피디아에 따르면 말리의 우라늄은 모두 일본과 독점 계약돼 있다. 하지만 바로 옆 나라인 니제르는 프랑스의 주요 우라늄 수입국이다. 국영 원자력기업 아레바(Areva)는 니제르에서 우라늄을 조달해 왔다. 아프리카 지역에 강하게 남아있는 식민주의의 영향 때문에 말리의 혼란은 니제르의 불안으로 이어질 수 있다
[아프리카의 국경은 민족적ㆍ문화적 경계와 상관 없이 식민지 모국 사이의 이해관계에 따라 그어졌다. 말리 북부 반란의 주역인 투아레그족의 경우 말리는 물론 알제리ㆍ니제르 영토 내에까지 분포한다. 분리독립을 요구하는 투아레그족의 반란이 주변국들에 영향을 줄 수밖에 없는 상황인 것이다]. 프랑스의 원자력 의존률이 75%에 달하는 상황에서 말리 내전은 심각한 위기를 촉발할 수도 있는 것이다.

지난해 말리 정부는 쿠데타 직전까지도 자국 영토에 매장된 천연자원을 밝히며 서방 국가의 주요 기업들에게 개발권을 분배하고 있었다. 세계사회주의웹사이트(WSWS)가 프랑스의 군사 개입을 '2013년과 아프리카에 대한 새로운 쟁탈전'이란 제목으로 비판한 것은 바로 이러한 상황 때문이다.

"프랑스군의 말리 귀환은 알카에다와 이슬람 근본주의에 맞선 전투가 아니라 우라늄, 금광 그리고 아직 개발되지 않은 유정과 이웃나라를 손아귀에 넣고자 하는 조치며 올랑드 대통령이 얼마전 '미래의 대륙'이라고 불렀던 이 대륙에 대한 프랑스의 권한을 강조하기 위한 것이다. … 르완다ㆍ리비아에서 최근 프랑스의 잔인성이 드러난 것처럼 파리는 아프리카에 대한 식민정책을 결코 완전히 단념하지 않았다."[참세상]


프랑스 좌파의 오래된 한계

식민주의는 오랫동안 프랑스의 좌파에게 리트머스와 같은 것이었다. 알제리가 그랬던 것처럼 이제 말리가 다시 한 번 그 역할을 맡게 됐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프랑스 좌파의 식민주의에 대한 혼란은 계속되고 있다.

2012년 프랑스 대선에서 돌풍을 일으켰었던 장 뤽 멜랑숑이 속한 좌파전선(Left Front)은 모호한 태도를 취하고 있다. 민주공화좌파당(GDR)의 프랑수와 어센시는 16일 "좌파전선, 공산주의자와 공화주의자 대표자의 입장은 분명하다"며 "광신자의 야만 행위로 말리 민중을 포기하는 것은 도덕적인 실수일 것이다. 국제적 군사조치는 테러리스트 국가 설치를 막기 위해 필요하다"고 밝혔다. 좌파전선에 참여하고 있는 공산당(PCF)은 올랑드의 군사 개입을 더 적극적으로 지지하고 있다. 그들은 12일 성명에서 "PCF는 그들 국가 남부를 향하는 지하드 그룹의 무장 공격에 대한 말리의 우려를 공감한다. 여기서 말리 대통령이 요청한 도움에 대한 대답은 유엔 깃발 아래, 미국과 아프리카연합 후원의 뼈대 하에 만들어져야 한다"고 말했다.
[참세상]

다행스럽게도 반자본주의신당(NPA)과 좌파당(Gauche)은 반대 입장을 분명히 했다. 13일에는 반대 시위를 열었고 16일에는 반대 성명을 발표했다.

내전ㆍ전쟁이라는 상황, 근본주의의 성장이라는 위협에서 우리는 흔히 군사적 개입이라는 '쉬워 보이는 방법'에 못마땅하지만 지지를 보내곤 한다. 만약 군사적 개입이 말리와 북서부 아프리카 인민들이 겪고 있는 고통과 혼란을 개선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라면 부득이하지만 지지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아프가니스탄과 리비아에서 그랬듯이 서방의 군사적 개입은 혼란만 부추길 뿐이다. 이들의 개입은 근본주의 이슬람의 성장을 더욱 부채질 하고 있기도 하다. 우리는 이들 지역의 오래된 식민주의 기억을 잊지 말아야 한다. 과거 식민지 모국의 군사적 귀환은 오래전 식민지의 기억을 떠올리게 하기에 충분하다. 게다가 위에서 살폈듯이 프랑스의 이번 군사 개입을 '인도주의'적이라고 볼 근거도 희박하다. 정치ㆍ경제적 욕심이 군사 개입이라는 불장난으로 이끌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서방 국가의 아프리카와 아랍 지역에서의 군사적 모험을 중단시키는 게 이뤄지지 않는다면 다른 평화적 대안을 모색하는 것은 요원할 것이다.

● 주요 참고 기사
[중앙일보] 모범 민주국가였던 말리, 전쟁 수렁 왜
[경향신문] '말리 군사개입' 올랑드의 리더십 시험대에
[경향신문] 암울한 말리… 쿠데타군ㆍ반군 모두 인권유린 심각
[뉴시스] 20년 민주국가 망친 말리 쿠데타 주역 사노고
[참세상] 말리 반군 공습, "프랑스의 아프가니스탄 되나"
[국민일보] 中ㆍ美에 밀린 佛, 말리 개입으로 '阿영향력' 되찾기
[참세상] 말리 사상자 증가… 전쟁 반대 목소리 확대
[프레시안-월러스틴 논평] 아프리카 말리, 제2의 아프간 되나

Posted by 때때로

가난한 휴머니즘 : 존엄한 가난에 부치는 아홉 통의 편지
장 베르트랑 아리스티드 지음, 이두부 옮김, 이후



1492년 콜롬버스가 도착한 땅입니다. 아프리카에서 끌려온 노예들이 일한 사탕수수 농장은 18세기 프랑스 교역에서 가장 큰 부분 중 하나였습니다. 식민지 중 가장 부유한 곳이었죠. 식민지의 부는 인간이 아닌 노예에게는 그 어떤 혜택도 주지 않았습니다.

1789년 프랑스에서 혁명이 시작됩니다. 프랑스의 혁명가들은 모든 인간의 평등을 외치며 노예의 해방을 인정합니다. 프랑스 혁명의 영향을 받은 일군의 노예들이 그 반란에 동참합니다. 1791년의 일이죠. 투생 루베르튀르와 동료들은 13년 간 이어진 저항으로 1804년 결국 해방과 독립을 얻어냅니다.

유일하게 성공한 노예 해방 혁명의 역사는 이후 200년 간의 비극으로 이어집니다. 1804년 해방을 얻는 조건으로 지급하기로 한 1억5000만 프랑의 배상금이 문제의 핵심이었습니다. 이는 당시 프랑스의 1년 예산에 달하는 금액입니다. 이 배상금은 140여년이 지난 1947년에야 겨우 다 갚았죠.

독립 이후에도 미국의 개입과 끊임없는 군부 쿠데타, 독재로 고통받아왔던 아이티는 1986년 반란을 통해 민주화를 쟁취합니다. 민주화 이후 첫 대통령으로 1990년 장 베르트랑 아리스티드가 뽑히죠. 포르토프랭스의 신부였던 아리스티드는 민주화 이전부터 독재에 저항하고 가난을 극복하는 행동에 적극적이었습니다. 대통령궁에 입성한 그가 가장 먼저 한 일은 가난한 이들을 초청해 함께 식사하는 것이었습니다. 이게 부자들의 마음을 불편하게 한 것일까요. 그는 당선 7개월 만에 군부 쿠데타로 쫓겨나게 됩니다.

1994년 미국과 유엔의 개입으로 아리스티드는 아이티로 되돌아올 수 있었습니다. 그는 1년 정도 남은 임기 동안 가난 극복과 민주주의의 확산이라는 두 과제에 몰두합니다. 상황은 여의치 않았습니다. 군부 쿠데타 기간 가해자들에 대한 심판은 제대로 이뤄지지 않고 있었습니다. 국제 금융기구는 시장 개방과 민영화를 강요하고 있었죠. 그가 2000년 재선에 도전한 이유가 아마 그 때문일 것입니다. 그는 무려 92%의 지지율로 재선에 성공합니다. 하지만 이번 임기도 역시 순탄치 않았습니다. 2003년 이라크 침공을 두고 갈등을 빚고 있던 프랑스와 미국은 아이티에 대해서 만은 일치된 의견으로 개입하게 됩니다. 결국 그는 다시 아이티에서 쫓겨나 지금까지 돌아가지 못하고 있습니다.

그가 쫓겨난 건 아마도 제3의 길을 주장하기 때문일 것입니다. 그가 말하는 제3의 길은 앤서니 기든스의 공산주의와 자본주의 사이의 제3의 길과는 다른 것입니다. 그 길은 가난과 굴종 사이의 아주 좁은 길을 말합니다. 그는 라팡미 셀라비에 오는 여러 아이들에 빚대 그  길을 설명합니다. 콜라와 술 중에 무엇을 좋아하느냐는 질문에 "나는 주스가 좋아요"라고 답하는 아이. "기브 미 워터"라는 영어를 가르치는 선생에게 자신은 초콜릿을 원한다며 "기브 미 초콜릿"이라고 말하는 아이. 우리는 가난한 이들에게 도움을 주면서 굴종을 강요하곤 합니다. 고분고분하길 원하죠. 우리의 뜻에 따르길 바랍니다. 그것이 가난을 극복하는  길이라고 말합니다. 하지만 그게 진실일까요? 아이티의 사례는 그렇지 않음을 보여줍니다. 아리스티드가 '존엄한 가난'을 말하는 이유입니다. 가난한 이들에 대한 도움은 필요합니다. 하지만 가난을 이겨내는 가장 큰 힘은 바로 가난한 이들 스스로에게 있습니다. 그렇기에 '도움'이 아닌 '연대'가 필요한 거죠.

이 책은 아리스티드와 함께 가난과 굴종 사이 가늘게 난 '제3의 길'을 찾아 떠날 기회를 제공합니다. 그 길에 여러분을 초대합니다.

아이티와 아리스티드 대통령 이야기(링크)

Posted by 때때로

중ㆍ고등학교 시절 두 번째로 좋아하던 교과서가 사회과부도 였습니다. 세계 여러 나라의 지리ㆍ역사ㆍ문화를 지도에 종합해놓은 부도를 보는건 먼 나라로 떠나는 모험 여행과 같은 느낌이었습니다. 요즘도 종종 중고생 사회과부도를 하나 사볼까 생각하기도 해요. 그런참에 딱 맞는 책이 나왔더군요. 책과함께에서 낸 '아틀라스' 시리즈입니다. '아틀라스 세계는 지금' '변화하는 세계의 아틀라스' '아틀라스 20세기 세계 전쟁사' '위기와 분쟁의 아틀라스' 4권이 나와 있습니다. 이번에 읽은 것은 '위기와 분쟁의 아틀라스'입니다.


위기와 분쟁의 아틀라스 파스칼 보니파스, 위베르 베드린 지음|남윤지 옮김|책과함께

유럽ㆍ아메리카ㆍ아프리카ㆍ중동ㆍ아시아ㆍ러시아 주변국 등 세계의 분쟁 지역을 거의 다 포함하고 있습니다. 당연히 한반도도 나와 있죠. 페이지를 넘길 때마다 우리가 사는 세계가 이토록 많은 분쟁과 위기를 겪고 있다는 것에 놀라곤 합니다. 세계화니 국제화니 해도 여전히 민족과 국가, 종교에 따른 갈등은 끝이 없습니다. 과거 식민지 역사는 한반도 뿐 아니라 세계 곳곳에서 여전히 분쟁의 뿌리입니다. 가스와 석유 등 천연자원을 둘러싼 분쟁도 흔한 이유죠. 여기에 종교와 인종적 원인이 뒤섞입니다. 평화를 향한 꿈의 실현 가능성을 의심케 만들 정도로 많은 분쟁이 사람의 목숨을 위협하고 있습니다.

종교ㆍ인종 분포, 식민지ㆍ학살ㆍ강제이주 등 역사적 사실, 주요 난민 캠프와 교전지역, 석유ㆍ가스와 같은 천연자원 등 다양한 정보가 각 분쟁지역 별로 지도와 그래프로 표시돼 분쟁의 양상과 뿌리를 일목요연하게 보여줍니다. 때론 너무 다양한 정보에 한참을 들여다보고 그 의미를 돌이켜봐야 할 때도 있지만 이정도로 깔끔하게 각 지역의 분쟁을 도식화 하기란 쉽지 않죠. 지도 오른편의 짧은 글에선 분쟁지역의 역사와 현재ㆍ전망을 개괄합니다. 아쉬운 것은 이 글이 왼편의 지도와 그래프를 설명해주는 내용이 아니라는 점이죠.

이 책은 세계화 시대에도 분쟁의 주요 당사자는 여전히 국가와 민족임을 강조합니다. 당연히 그 해결책도 국가에게 있다고 주장합니다. 특히 미국ㆍ러시아ㆍ유럽연합과 같은 주요 국가들의 역할이 중요하다고 말합니다. 제3세계의 많은 국가에서 오바마 미국 대통령의 취임에 큰 기대를 걸었던 것 처럼 이 책의 저자들도 오바마에게 많은 기대를 하고 있습니다. 물론 그 한계도 직시하고 있죠.

144쪽의 얇은 이 책은 물리적 부피 이상의 정보를 담고 있습니다. 한 번 읽고 끝낼 책은 아닙니다. 뉴스를 추적하면서 과거 사실을 확인하고 때로는 새롭게 추가된 정보를 이 지도에 업데이트 하는 것이 이 책의 독자가 해야할 임무일 듯 싶습니다. 당장 눈에 띄는 것은 수단과 아이티에 대한 것입니다. 남부 수단은 최근 독립을 묻는 투표를 했습니다. 아이티는 작년 강한 지진을 겪었고 미국은 이를 계기로 결국 아이티에 군대를 파견했습니다. 최근 한반도의 상황도 빼놓을 수 없겠죠. 이 책에선 노무현 정부까지의 정책만 다뤘습니다. 이명박 정부의 대북 강경정책은 아직 담기지 않았습니다.

얇은 책이라 가벼운 마음으로 들었습니다. 하지만 마음은 더 무거워지더군요. 평화를 기원하는 이들에게 현재의 분쟁을 기록하고 기억하는 일은 필수적인 일입니다. 이 책이 그  시작이 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Posted by 때때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