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협동조합 '가장자리'의 격월간지 '말과활'이 창간됐다. 가장 눈에 띈 것 중 하나는 홍세화 선생이 머리말에서 '민중'이란 말 대신 '인민'을 사용한 것이다. 이는 의도된 것으로 보인다. 인민이란 말이 우리 언어 생활에 그리 익숙한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홍세화 선생은 왜 인민이란 말을 썼을까?

인민은 "국가를 구성하고 사회를 조직하고 있는 사람"을 뜻한다. 보통은 이와 함께 지배자에 대한 피지배자를 말할 때 사용된다. 비슷한 단어로 '민중'이 있다. 둘 다 특정한 정치적 함의를 지니지만 원래 그랬던 것은 아니다. 1970~80년대 민주화 운동 세력은 민중에 보다 적극적인 정치적ㆍ사회적 집단으로서의 의미를 부여한다. 이는 인민이란 단어가 남북 분단 상황에서 금기시 된 때문이다. "늘 친하게 어울리거나 함께 노는 사람"을 뜻하는 '동무'란 단어가 분단 이후 잘 쓰이지 않게 된 것과 마찬가지다. 즉 분단 상황에서 내면화한 반공주의의 영향으로 인민 대신 민중이 쓰이게 된 것이다. 내가 보통 민중 대신 인민을 사용하는 첫 번째 이유는 특정한 정세가 내 언어생활을 제한하는 것에 동의할 수 없어서다
(북한 정권에 동의하지 않고 북한 인민이 스스로 나서 지배자들을 타도해야 한다고 생각하지만 말이다). 홍세화 선생도 아마 그래서가 아니었을까? 홍 선생의 인민이란 단어의 사용이 반가운 것은 우선 그 때문이었다.

그러나 내가 민중 대신 인민을 사용하는 바로 그 이유와 연관된 다른 문제 때문에 홍 선생이 인민을 사용한 데 마냥 반가워할 수만은 없다. 인민은 피지배 계급 일반을 의미한다. 마르크스주의자는 노동자 계급의 중요성을 강조하지만 그들이 오직 노동계급의 조건 개선 만을 목표로 하는 것은 아니다. 노동계급을 강조하는 것은 피지배 계급 일반의 조건, 즉 자본주의 사회에서의 지배와 피지배의 조건을 결정짓는 핵심 고리에 노동계급이 위치해서다. 따라서 마르크스를 따르는 사회주의자는 인민 일반의 해방을 목표로 하지만 그 해방에서 노동계급이 핵심적 역할임을 결코 잊지 않는다.

민중 담론은 그렇지 않다. 이는 한편 위에서 지적한 내면화한 반공주의의 연장선에서 비롯한 것이기는 하다. '노동자'라는 말을 '근로자'가 대체한 사정과 같다. 그렇지만 더 중요하게는 민중 담론이 노동계급의 핵심적 역할을 부정하는 태도를 보이기 때문이다. 노동자ㆍ농민ㆍ학생의 연대를 강조하는 민중 담론은 이들 세 사회적 집단을 수평적으로만 파악한다. 핵심은 노동계급으로부터의 후퇴다. 홍세화 선생이 사용한 인민이란 단어가 불길한 것은 그것이 노동계급으로부터의 후퇴를 떠올리게 만들기 때문이다. 머리말에서 안개에 싸여있던 인민의 의미는 뒤이은 지젝과 이진경의 글을 통해 보다 분명해진다. 지젝은 이렇게 말한다.

"오늘날의 역사적 상황은 프롤레타리아나 프롤레타리아적 입장이란 개념을 포기할 수 없게끔 할 뿐만 아니라, 그와는 정반대로 마르크스가 상상했던 것을 훌쩍 뛰어넘어서 그 개념을 실존적 차원으로까지 급진화할 것을 요구한다. 우리는 프롤레타리아적 주체에 대한 더 급진적인 개념을 필요로 한다. 이 주체는 모든 실체적 내용을 제거한 데카르트의 코기토처럼 무상의 지점으로까지 환원되는 주체다. 이런 이유에서 새로운 해방의 정치는 더이상 특수한 사회적 행위자의 행위가 아니라 각기 다양한 행위자들의 폭발적인 결합이 될 것이다."

마르크스와 같은 단어를 쓰고 있으나 그 뜻이 다르다는 것은 분명하다. 지젝은 그것을 "마르크스가 상상했던 것을 훌쩍 뛰어넘"는 것이라고 표현한다. 그가 데카르트의 코기토를 비유로 들은 데서 알 수 있듯이 그의 주장은 마르크스 이전으로 후퇴하는 주장일 뿐이다. 무정형의, 단지 지배받는 집단으로서의 프롤레타리아로 말이다. 마르크스가 한 작업은 이 프롤레타리아라는 로마 시절로부터 비롯한 개념을 자본주의 사회의 운동 원리에 입각한 개념으로 바꿔놓는 것이었다. 그것이 현대 사회의 노동자인 것이다. 노동계급은 여러 사회적 집단 중 억압받고 착취받는, 지배받는 유일한 사회적 집단이 아니다. 자본주의적 지배 사슬의 핵심적 고리에 위치해 있기 때문에 주목한 것이다. 결국 지젝의 주장은 계급으로부터의 후퇴를 요구하는 것이다.

이러한 시도는 이진경에 의해 다시 반복된다. 이진경은 지젝보다는 덜 철학적인 언어로 노동계급으로부터의 후퇴를 분명히 한다. 마르크스를 떠올리게 하는 'M'이란 이름으로 말이다.

"제가 혁명성을 말했던 것은 노동자계급이라기보다는 프롤레타리아트였다는 것을 일단 상기해주길 바랍니다. …… 역사적 조건에 따라 누가 무산자인가가 달라지는 거지요. 16세기에는 토지 잃고 부랑하던 농민들이 무산의 프롤레타리아트였다면, 19세기에는 끔찍한 조건에서 노동해야 했던 산업노동자들이 프롤레타리아트였던 것이고, 당신(이진경)이 생각하듯이 안정적으로 노동하는 것조차 힘들게 되어버린 지금은 비정규직이나 실업자들이 새로이 무산의 프롤레타리아트가 되는 거지요."

마르크스가 현대의 프롤레타리아트로 노동계급을 바라봤다는 것은 아마 틀림 없을 것이다. 그는 '공산당선언'에서 여러 번 "프롤레타리아트, 즉 현대의 노동계급(the proletariat, the modern working class)"이란 표현을 사용한다. 마르크스는 당대 자본주의의 발전, 아직은 세계의 극히 일부분에서 일어나던 변화를 추적해 노동계급이 현대의 프롤레타리아트라고 주장했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이진경의 주장 대로 노동계급이 현재의 프롤레타리아트가 아니게 만드는 역사적 조건의 변화가 있었느냐는 것이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이진경은 마르크스를 사칭할 능력은 있을지 몰라도 그러한 역사적 조건의 변화를 추적할 능력은 없는 듯하다. 그가 기껏 내세우는 것은 인상주의적 비평에 불과하다.


"지금은 정규직이란 단어와 함께 유사하게 사용되는 '노동자계급'……은 바로 옆에서 똑같은 노동을 하는 비정규직 노동자들과 자신을 분리하고자 하고 있습니다. 자신이 속한 정규직 노동조합에 가입할 수 없게 차단하고, 그들이 옆에서 투쟁할 때 연대는커녕 방해하지 않으면 다행인 경우가 통상적인 게 되었죠."

정규직 노동조합 이기주의에 관한 비난에 불과한 것으로 마르크스의 현대 자본주의에 대한 분석을 대체할 수는 없다. 설사 그것이 대중의 상식에 부합하는 듯 보여도 말이다. 불길하게도 홍세화 선생은 이진경에게 동의하는 것 같다. 다시 들춰본 머리말에서 홍 선생은 이렇게 말한다.

"인민도 이제 하나의 인민이 아니고, 노동자도 이미 하나의 노동자가 아니다."

녹색평론 발행인 김종철과의 대화에서는 이렇게까지 말한다.

"주식투자를 하고, 부동산가치가 상승하기를 바라고, 비정규직 노동자들은 노조 가입조차 안 되는 현실에 대해 문제의식을 갖지 않은 노동자가 마르크스가 말한 의미에서 프롤레타리아인가, 더구나 이들이 자본주의와 다른 사회를 실현할 수 있는 주체인가에 대해선 지극히 회의적일 수밖에 없습니다."

여기서 홍세화 선생은 이진경과 공명한다. 물론 우리는 홍 선생 외에도 여러 사람들로부터 이런 주장을 들어왔다. 그런데 이게 새로운 것인가? 현대 자본주의의 새로운 경향인가? 우리는 마르크스 시절부터 이미 인민이 하나의 인민이 아니었음을, 노동자가 하나의 노동자는 아니었음을 떠올려야 한다. 프롤레타리아는 프롤레타리아트가 아니다. 영국의 노동자와 그 식민지 아일랜드의 노동자는 달랐다. 마르크스는 '자본론'에서 노동계급 남성이 어떻게 자신의 아내와 자식들을 자신의 노예로 삼으려 하는지 설명하고 있다.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노동계급 내 분열에 대한 인상주의적 비평이 아니다. 그 분열의 물질적 조건을 살피고 단결의 단초를 창출하려는 노력이 필요하다. 정규직 노동자들이 비정규직을 '안전판'으로 고려하게 된 조건, 그리고 그것을 벗어날 계기에 대한 탐구가 있어야 한다. 그런데 홍세화 선생과 이진경은 분열만 얘기할 뿐 그 역사적 조건에 대한 탐구는 인상주의적 비평으로 어물쩍 넘어간다.

현대 자본주의는 우리가 상상하는 것 이상으로 모든 곳에서 노동계급을 대규모로 만들고 재생산하고 있다. 전통적으로 가족과 여성, 지역 공동체가 담당하던 많은 역할이 점점 더 자본주의적 경제의 영역으로 편입되고 있다
(과거가 좋았다는 뜻은 아니다). 자본주의적 위계제는 마르크스가 설명한 방식 그대로 사회에 더 많은 위계와 복잡한 지배관계를 재생산하고 있다. 이러한 현실에 대한 파악을 도외시한 채 현실을 지양하는 새로운 공산주의 운동이 가능할까. 최근 잇따라 창간된 여러 진보 잡지들(월간 좌파, 진보신당-노동당 기관지 '미래에서 온 편지', 말과활)이 현재 세계를 휩쓰는 반란의 물결에 침묵하는 것과 함께 2008년 이래 6년째 계속되고 있는 경제위기에 대한 분석을 피하는 것은 불길한 조짐이다.

p.s.'말과활' 창간호에 실린 이진경의 글쓰기 방식에 대해 한마디 해야겠다. 마르크스는 신성한 이름이 아니다. 그는 누구보다도 역사적 한계를 강조했던 사람이다. 즉 역사적 조건이 달라지면 그의 주장은 틀린 게 될 수 있다. 마르크스를 따르고자 하는 사람은 그를 반복하는 게 아니라 그의 주장에서 변형되어야 할 부분과 이어받아야 할 부분을 구분할 필요가 있다. 그런점에서 이진경이 마르크스를 현대적으로 재해석하려는 시도 자체를 뭐라 하고 싶진 않다. 그러나 마르크스의 후예를 자처하고자 한다면 무엇보다 마르크스의 이름이 아닌 자신의 이름으로 마르크스를 수정해야 할 것이다. 마르크스의 이름 뒤에 숨는 것은 비겁한 짓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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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스트리트를 점령하라 운동이 날이 갈수록 성장하고 있다. 의적 로빈 후드 복장을 한 사람들이 10월 10일 시카고강에서 노를 저어 가고 있다. 이들은 미 선물산업협회ㆍ주택담보대출은행가협회의 특별회의 장소 앞에서 열리는 시위에 동참할 계획이다. [시카고=AFP연합뉴스, 경향신문]


1. 10월 9일 슬라보예 지젝이 뉴욕 주코티 공원의 월스트리트를 점거하라 운동 참가자들을 방문해 짧지만 긴 연설을 했습니다.

꽤 오래전 시위에 참여해본 사람들은 이른바 '소리통'이라는 것을 알겁니다. 마이크와 앰프 등 음향설비가 돼있지 않을 때 발언자가 한 말을 한 마디씩 앞에서부터 뒤로 반복하며 외쳐 전달하는 방식이죠. 월스트리트를 점거하라 운동은 점거 전술 중 하나로 마이크ㆍ앰프와 같은 음향설비를 사용하지 않는 것을 채택했다고 합니다. 음향설비가 없기에 하루에 두번 진행되는 가장 중요한 일정인 공개총회(general assembly)에서 우리의 '소리통'과 비슷한 방식을 사용합니다. 그것이 '마이크 체크(mic check)'라는 것입니다.

말 많은 철학자 지젝은 '마이크 체크'라는 지루하고도, 답답한 방식으로 30여분간 연설을 이어갔다고 합니다. 지젝은 "우리는 몽상가가 아니다. 우리는 악몽이 되어가고 있는 꿈(아마도 '아메리칸 드림'을 얘기하는 듯)으로부터 깨어나고 있다. 몽상가는 지금의 시스템(자본주의)이 영원히 계속될 것으로 믿고 있는 바로 저들, 월스트리트를 움직이는 자들이다"라고 지적했죠. 월스트리트로 상징되는 금융자본가를 만화에 자주 나오는 장면에 빗대 설명하기도 했습니다. 헐리우드의 만화에는 빠르게 달려가던 만화의 인물(혹은 의인화된 동물 캐릭터)이 벼랑 끝을 지나쳐서도 계속 달려가거난 걷는 모습이 자주 나옵니다. 발 아래 아무 것도 없다는 사실은 무시되죠. 그러나 발 아래를 보고 사실을 깨달았을 때 그 인물은 추락하게 됩니다. 지젝은 주코티 공원의 월스트리트를 점령하라 운동이 하는 일이 바로 이와 같은 것, 즉 "월스트리트를 움직이는 이들에게 "어이, 밑을 보라고!"라고 말하고 있는 것"이라고 주장합니다.

지젝은 그가 자주 사용하는 비유인 '카페인 없는 커피' '알콜 없는 맥주' '살 찌지 않는 아이스크림'(이른바 초콜릿 맛 변비약과 같은 비유. 초콜릿은 변비의 주 원인인데 이 원인을 치료하기보다는 치료제 자체를 병의 원인과 같이 만들어 건강한 해결책을 방해한다는 뜻으로 이해하고 있습니다)을 들어 겉으로 드러난 적뿐 아니라 '위선적인 친구들', 즉 조지 소로스, 워런 버핏과 같은 이 운동에 동감의 뜻을 보낸 이들도 주의할 것을 요청했습니다. 저들이 지목하곤 하던 (월스트리트의) 부패와 탐욕이 문제의 근원이 아니라 이 시스템 자체가 문제라고 강조했습니다.

월스트리트를 점령하라 홈페이지의 지젝 방문 소식(링크), 일부만 소개되어 있습니다.


2. 보스톤을 점령하라 시위대가 경찰의 공격을 받았습니다. 10월 11일 새벽 1시30분 수백명의 폭동진압경찰은 로즈 케네디 그린웨이에 평화적으로 머물던 시위대를 잔인하게 공격했습니다. 운동이 발전하면 할 수록 정부와 우익, 그리고 그들의 지팡이로서 경찰의 물리적 공격은 더 거세질 것입니다. '비폭력 저항' 원칙을 내세운 '점령하라' 시위대가 이후 자신의 '비폭력 저항' 원칙을 어떻게 발전시켜나갈지 궁금해지는 시기입니다.

보스톤을 점령하라 홈페이지의 경찰 폭력 소식(링크)


3. 미국에서의 '점령하라' 시위대의 원조라고 할 스페인의 청년 시위대들이 15일 세계적 '점령하라' 시위를 앞두고 유럽연합 본부가 있는 브뤼셀에 도착했습니다. 무려 1500㎞를 걸어서 온 것입니다.

● [한겨레] '유럽의 분노' 속속 집결 "직접민주주의 보라"


4. 장하준은 '착한 미국인'에 대한 칼럼을 경향신문에 기고했습니다. 아직 소수에 불과하지만 그동안 너무나 착하게도 소리내어 저항할 줄 모르던 미국 국민이 변하기 시작했다며 미국민 못지않게 착한 한국인들은 과연 어떻게 할 것인가 묻는 것으로 칼럼을 마무리 합니다. 인상적인 것은 "'월가를 점령하라' 운동이 현재 경제 상황에 불만은 많지만, 그 불만을 어디에 표출할지 몰라 '티 파티'로 몰려간 사람들 중 많은 수를 끌어들일 수 있다면, 그 영향력이 상당해질 수도 있다"고 지적한 부분입니다. 정치적 입장은 전혀 다르지만 슬라보예 지젝도 월스트리트를 점령하라 운동에 대해 이와 비슷한 지적을 했었죠.

● [경향신문 장하준 칼럼] 월가 점령 운동과 '착한' 국민의 각성


5. 한국에서도 월스트리트를 점령하라 운동에 대한 호응이 있습니다. 아직은 혼란스러운 모습입니다. 오늘(12일) 낮 시청광장에서는 이와 관련한 기자회견도 있었습니다. 오는 토요일(15일) 서울 시청광장에서 세계의 점령하라 운동과 함께하겠다는 내용이죠. 그러나 일부에서는 우리도 금융 중심지인 여의도에서 점령하라 운동을 펼쳐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습니다. 이미 계획돼 있던 시위 중에서는 '점령하라' 운동이라는 이름만 빌려 그대로 자신의 시위를 계획하고 있기도 합니다.

예전에 진중권이 발터 벤야민의 역사철학 테제를 인용해 장기를 두는 자동기계인형에 대해 말한 적 있습니다. 그는 '좌파'라는 '타이틀'에 집착하는 몇몇 좌파를 비판하며 이를 인용했었죠. 이 자동기계인형은 사실 그 안에 난장이가 들어가 있는 것이죠. 문득 이 이야기가 떠오른 것은 한국의 좌파 단체들의 섣부른 행동이 눈에 거슬려서입니다. 물론 저 테제가 역사유물론을 따르는 이들에게 음모가가 될 것을 요구하는 것은 아닙니다. 월스트리트를 점령하라 운동의 한 원칙(우리나라 희망버스 운동의 한 원칙과 마찬가지로)은 무엇보다 '공개적'으로 활동하는 것입니다. 그럼에도 이 시위가 시작되기까지 준비를 이끌었던 소수의 행동가들은 무척 조심스럽고 사려깊게 더 많은 이들을 동참시키기 위한 계획을 세웠습니다. 처음 운동에 참여하는 사람들이 낯설어하지 않게, 그들 스스로 이 운동을 만들어가고 있다는 자존감을 가질 수 있도록 여러 행동원칙들과 프로그램들이 만들어졌죠. 이것과 비교했을 때 요 며칠간 좌파 진영에서 이뤄지는 점령하라 운동의 한국판에 대한 논의는 실망스럽습니다.

물론 운동의 발전 과정에서 언제까지 비조직적인 방식이 유지될 수는 없습니다. 기존 좌파 정치조직과 지속적으로 거리를 둘 수도 없죠. 월스트리트를 점령하라 운동이 '조직이 아닌 개인'을 앞세우지만 노동조합의 시위 동참을 환영한 것이 한 예일 것입니다. 사회진보연대(PSSPㆍ링크)가 10월 11일 발행한 '사회화와 노동' 536호에서 지적한 것을 음미해볼 필요가 있습니다.

"기존 조직들은 월스트리트 점거 운동과 건설적인 관계를 맺을 수 있어야 한다. 이는 지금까지 기존 조직들이 수행해온 활동을 갑자기 포기하고 '축제'에 참여하는 것을 의미하지도, 월스트리트 점거가 기존 조직들의 요구를 공식 요구로 채택하도록 하는 것을 의미하지도 않는다. 그보다는 연대를 표현하고 호소하며 월스트리트 점거의 에너지를 빌려 자신들의 투쟁을 가시화하고 강화하는 것을 의미한다."
사회화와 노동 536호

한국에서 미국과 같은 운동은 불가능할 것입니다. 한층 높은 수준의 정부의 억압 하에서 시위와 점거ㆍ농성이 개인들의 자유로운 연대로 시작되기는 어렵습니다(정부가 강력한 경찰력을 동원한 억압적 체제를 유지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죠). 그럼에도 이번 월스트리트를 점령하라 운동은 우리에게 많은 과제를 던져주고 있습니다.

무정형의 축제를 문화적으로 모방하는 것을 넘어 개방성을 유지하면서도 경제위기와 자본주의의 근본적 모순을 제기하는 것이 우리의 과제다.
사회화와 노동 536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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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05.13 16:23

아이티와 아리스티드 대통령 이야기 2010.05.13 16:23

가난한 휴머니즘 : 존엄한 가난에 부치는 아홉 통의 편지
장 베르트랑 아리스티드 지음|이두부 옮김|이후


최근 몇년간 가장 인상에 남는 책이 '가난한 휴머니즘'입니다. 읽은 후 저자인 아리스티드에 대해 궁금해졌지만 '한글'로 된 정보를 찾긴 매우 어려웠습니다. 얼마전 아이티에 대지진이 온 후 언론에 잠시 아리스티드가 언급되긴 했죠. 남아프리카공화국에 망명 중인 그는 재앙이 덥친 조국으로 복귀할 뜻을 비쳤지만 미국은 '개인' 자격으로만 허락한다고 말했고, 프랑스는 강력하게 반대했죠. 물론 언론에선 '망명'이라고 쓰고 있지만 그는 자신이 미 해병대에게 '납치'됐다고 주장하고 있습니다. 그는 두 번 대통령이 됐지만 두 번 모두 미국이 후원한 것이 유력한 쿠데타를 통해 쫓겨났죠.

아이티는 세계에서 가장 가난한 나라 중 하나로 꼽히죠. 말 그대로 진흙 쿠키가 주식으로 이용될 정도입니다. 이 나라는 아프리카에서 강제로 끌려온 노예들이 세운 유일한 나라입니다. 노예반란의 유일한 성공 사례죠('블랙 자코뱅'이라는 책이 나와 있습니다). 하지만 반란의 성공은 200여년 간의 고통의 시작일 뿐이었죠.

최근 읽은 '민주주의는 죽었는가?' 8장에 이 아이티와 아리스티드 대통령에 대한 이야기가 소개되더군요. 무척 반가왔습니다. 지젝이 쓴 '민주주의에서 신의 폭력으로'라는 장이죠. 꽤 긴 '전제'를 해 출판사에게 약간 미안하긴 하지만 아이티의 간략한 역사를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될 듯해 옮겨옵니다. 얇고 값도 싸니 부담 없이 한 권 구입해서 읽어보시길 부탁드려요.



『민주주의는 죽었는가?』 8장「민주주의에서 신의 폭력으로」
슬라보예 지젝|난장|177~180pp. 186~187pp.


[민주주의가 경제발전의 조건이자 동력이 아닌 장애물일 수 있다는 가능성을 언급한 후] 그렇다면 민주주의의 이런 한계를 어디서 직접적으로 감지할 수 있을까? 이와 같은 국제적 압력을 겪어낸 정치해방운동의 이름이 라발라스(크리올어로는 '홍수')[1]라는 역설적인 사실을 놓쳐서는 안 된다. 라발라스는 빗장이 걸린 공동체를 흘러넘치는 징발당한 자의 범람이다. 이것이 바로 아리스티드 정권의 전복에 관한 피터 홀워드의 책 제목(『댐으로 홍수 막아내기』)이 상당히 적절한 이유이다. 이 책은 9ㆍ11 이후 곳곳에서 댐과 벽이 세워지는 전지구적 경향 속에 2004년의 아이티 사태를 새겨 넣으면서 우리로 하여금 '세계화'의 진실, 즉 세계화를 유지하는 내적 분할의 전선을 직면하도록 만든다.

아이티는 처음부터, 즉 노예제에 맞서 1804년의 독립을 이끌어낸 혁명투쟁 자체에서부터 예외였다. "오직 아이티에서만 인간의 자유에 대한 선언은 보편적인 일관성을 지녔다. 오직 아이티에서만 이 선언은 당시의 사회질서와 경제논리에 직접 맞서 모든 희생을 감수하면서도 유지됐다." 이런 이유로 "근대사 전체를 통틀어 지배적인 전지구적 사물의 질서에 대해 이보다 더 위협적인 함의를 지닌 단일 사건은 없다."[2] 아이티혁명은 진정으로 프랑스혁명의 반복이라는 칭호를 얻을 자격이 있다. 투생 루베르튀르가 이끈 아이티혁명은 분명히 '자기 시대를 앞선' 것으로서 '성급'하고 실패할 운명을 짊어졌지만 바로 그렇기 때문에 프랑스혁명 자체보다 한층 더 사건Event이었을지 모른다. 식민지의 반란자들은 최초로 식민지배 이전에 자신들이 지녔던 '뿌리'로 되돌아가기 위해서가 아니라 자유와 평등이라는 극히 근대적인 원칙을 위해 봉기를 한 것이다. 그리고 아이티의 노예반란을 즉시 인정했다는 사실이야말로 자코뱅 당원들의 진정성을 보여줬다. 아이티의 흑인 대표는 국민의회에서 열렬히 환영받았다(그리고 예측할 수 있듯이 테르키도르의 반동 이후 상황은 변했고, 나폴레옹은 즉시 아이티를 재점령하기 위해 군대를 파견했다).

이런 이유에서 일찍이 샤를 모리스 드 탈레랑은 "아이티가 독립해 존재한다는 바로 그 사실"에 담긴 위협을 이렇게 표현한 바 있다. 아이티의 독립은 "모든 백인 국가들에게는 무시무시한 광경"이라고.[3] 따라서 아이티는 다른 국가들이 동일한 경로를 택하지 않도록 단념시키기 위해서 경제 실패의 결정적인 사례가 되어야만 했다. '성급한' 독립의 대가(말 그대로 대가)는 참혹했다. 과거 식민지배 권력이었던 프랑스는 20년간의 봉쇄 이후인 1825년에야 무역과 외교관계를 정상화했고 아이티는 총 1억5천만 프랑을 노예 손실에 대한 '배상금'으로 지불하는 데 합의해야 했다. 이 액수는 당시 프랑스의 1년 예산에 거의 맞먹는 것으로서 얼마 뒤 9천만 프랑으로 줄어들었지만, 아이티의 경제적 성장을 끊임없이 저해하는 무거운 부담으로 작용했다. 19세기 말 아이티가 프랑스에 지불한 액수는 국가예산의 약 80%에 해당했고, 1947년에야 마지막 지불이 이뤄졌다. 2004년 독립 2백주년을 축하하면서 라발라스의 대통령 장-베르트랑 아리스티드는 이렇게 강탈한 배상금을 반환하라고 프랑스에게 요구했지만 그의 권리주장을 (레지 드브레가 그 일원이기도 한) 프랑스의 위원회는 단호하게 거절했다. 그래서 미국의 자유주의자들이 미국 흑인들에게 노예제에 대해 배상할 수 있는 가능성을 숙고하는 동안, 프랑스의 자유주의자들은 노예상태에서 벗어나 자유를 인정받기 위해 지불해야만 했던 엄청난 금액을 환불해달라는 아이티의 요구를 묵살했다. 처음에는 노예로서 착취당하고, 그 다음에는 힘들게 획득한 자유를 인정받기 위해 돈을 지불할 수밖에 없었다는 의미에서 이중으로 강탈당한 아이티의 요구를 말이다.

이야기는 오늘날까지 이어진다. 우리 대부분에게 즐거운 어린시절의 기억(진흙 쿠키 만들기)이 시테솔레이유 같은 아이티 빈민가에서는 절망적인 현실이다. 최근의 AP보도에 따르면 식량가격이 치솟자 공복감을 달래는 아이티인들의 전통적인 처방이 새롭게 힘을 얻고 있다고 한다. 그것은 바로 노란 흙을 말려서 만든 과자이다. 진흙은 오랫동안 임산부와 아이들의 제산제制酸劑이자 칼슘 공급원으로 귀하게 여겨졌고, 진짜 식량에 비해 훨씬 저렴하다. 지금은 5달러어치의 흙이 있으면 진흙 쿠키 1백 개를 만들 수 있다. 상인들이 아이티의 중앙 고원에서 시장으로 흙을 운반해오면, 여성들은 그 흙을 사다가 진흙 쿠키를 만들어 불타는 태양 아래서 말린다. 완성된 쿠키는 들통에 담겨져 시장이나 거리에서 팔려나간다.

흥미로운 사실은 아리스티드 정권을 전복하기 위한 미국과 프랑스의 공조가 2003년의 이라크 침공을 둘러싸고 양국간에 벌어진 공공연한 의견 대립 직후 이뤄졌고, 간헐적인 갈등보다 우선하는 양국의 기본적인 동맹관계를 매우 적절하게 재확인시켜준 사건으로 칭송받았다는 점이다. 심지어 안토니오 네그리의 영웅인 브라질의 대통령 루이스 이나시우 룰라 다 실바도 2004년에 벌어진 아리스티드 정권의 전복을 묵인했다. 그 와중에 신성하지 않은 동맹이 결성되어 라발라스의 정권은 인권을 무시하는 중우정치이며, 아리스티드 대통령은 권력욕에 사로잡힌 근본주의적 독재자라고 격하했다. 불법적인 용병 암살부대뿐만 아니라 미국의 지원을 받는 '민주전선', 인도주의적인 NGO, 그리고 정작 자신들은 미국의 돈을 받으면서 아리스티드가 IMF에 '항복'했다고 비난하는 '급진 좌파' 단체 등이 모두 이 동맹의 일원이다. 아리스티드는 급진 좌파와 자유주의 우파의 이런 중첩을 명쾌하게 설명한 바 있다. "어디에서든 어떻게 해서든 힘 있는 백인들이 듣고 싶어 하는 것을 말하는 데서 약간의 은밀한 만족감, 아마도 무의식적인 만족감을 느끼는 사람들이 있기 마련입니다."[4] 요컨대 지배이데올로기는 종종 좌파의 '자아-이상' 안에 남아 있기도 하다.

……

이제 아이티로 돌아오자. 라발라스의 투쟁은 원칙주의적인 영웅주의, 그리고 오늘날 할 수 있는 것의 한계를 보여주는 본보기이다. 이 투쟁은 국가권력의 틈새로 물러나 거기서 '저항'하지 않고 영웅적으로 국가권력을 장악했다. 자본주의적 '근대화'와 '구조조정', 그리고 탈근대적 좌파(룰라의 브라질 통치를 칭송했던 네그리의 목소리는 어디에 있었나?)의 모든 경향이 자신들에게 맞설 때, 그들은 자신들이 가장 불리한 상황에서 집권했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었다. '필수적인 구조조정'을 법제화하기 위해 미국과 IMF가 부과한 조치들에 제약당하면서도 아리스티드는 몇 가지 정확하고 실용적인 조치를 취하는 정책(학교와 병원의 건설, 사회기반시설 확충, 최저임금 인상 등)을 간헐적으로 터져 나오는 대중들의 폭력과 결합시킴으로써 군부 패거리들에 맞섰다. 아리스티드는 간혹 '페르 르브뢴(대중이 행사하는 일종의 자기방어로서, 불타는 타이어를 목에 걸어둬 경찰의 암살자나 정보원을 죽이는 행위이다. 얄궂게도 이것은 포르토프랭스의 타이어 판매업자 이름이었는데 나중에는 대중의 모든 폭력행사 형태를 뜻하게 됐다)'을 묵과하기도 했다. 첨예한 논쟁을 불러일으킨 이 사안으로 인해 아리스티드는 센데로루미노소[5]나 폴포트와 동급 취급을 당했다. 1991년 8월 4일 연설에서 아리스티드는 열광하는 군중에게 "언제, 그리고 어디서 폭력을 사용할지"를 기억하라고 조언했다. 그 즉시 자유주의자들은 라발라스의 대중적인 자경단(키메라Chimeres)과 악명 높은 뒤발리에 독재정권의 암살조직(통통마쿠트tonton macoutes)을 비교했다. 자유주의자들은 늘 좌파와 우파를 '근본주의자'라고 동급 취급하는 전략을 선호한다. 그렇게 하면 사이먼 크리츨리처럼 알카에다가 레닌주의 정당의 새로운 화신이라도 되는 양 말할 수밖에 없다.[6] 아리스티드는 이 자경단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그 이름(키메라)이 모든 것을 말해줍니다. 자경단에 소속된 사람들은 빈곤 속에서, 심각한 위험상태에서, 그리고 만성적인 실업상태에서 살아온 사람들입니다. 그들은 구조적인 불의, 체계적인 사호폭력의 희생자들이죠. …… 그들이 언제나 동일한 이 사회의 폭력으로부터 이득을 얻은 사람들에게 맞설 수밖에 없다는 사실은 전혀 놀라운 일이 아닙니다.[7]

[1] Lavalas. 1991년 당시 아이티의 대통령이었던 아리스티드(Jean-Bertrand Aristide, 1953~ )와 그의 지지자들이 사회민주주의에 근거해 "평등을 동반한 성장"을 목표로 결성한 정치운동. 이 운동의 활동가들이 주축이 되어 결성된 라발라스정치단체(Organisation Politique Lavalas, OPL)는 1994년 아리스티드가 미국 주도의 군부 쿠데타로 사임한 뒤 그 성격이 친서방적으로 변질됐고, 명칭을 투쟁하는인민들의조직(Organisation du peuple en lutte)으로 바꿨다. 1994년 망명지에서 아이티로 돌아온 아리스티드는 자신의 지지자들과 OPL의 활동가 일부를 규합해 1996년 판미라발라스(Fanmi Lavalas, FL)라는 새로운 정치단체를 결성했다. FL의 활동에 근거해 2000년 아리스티드는 다시 대통령에 당선됐으나 2004년 미국이 주도한 쿠데타에 의해 다시 망명할 수밖에 없었다. 그 뒤 FL는 일체의 선거에서 배제되는 조처를 당했다.

[2] Peter Hallward, Damming the Flood: Haiti, Aristide, and the Politics of Containment, London: Verso, 2008. p.11.

[3] 이 구절은 1805년 아이티에 대한 군사적ㆍ경제적 봉쇄를 부탁하기 위해 탈레랑(당시 프랑스 외무장관)이 제임스 메디슨(당시 미국 국무장관)에게 보낸 편지에서 봉쇄 이유로 제시된 말이다.

[4] Hallward, Damming the Flood, p.338.

[5] Sendero Luminnoso. 1969년 페루의 고원 지대인 아야쿠초에 위치한 후아망가대학교의 철학 교수 구즈만(Abimael Guzman, 1934~ )의 마오쩌둥주의에 동조한 일군의 공산당원들(붉은 깃발 Bandera Roja)이 페루 공산당을 탈당해 만든 단체. '빛나는 길'이라는 단체명은 페루 공산주의의 아버지라고 불리는 마리아테기(Jose Carlos Mariategui, 1894~1930)의 격언, "맑스-레닌주의는 혁명으로 향하는 빛나는 길이다"에서 따왔다. 1980년 3월 17일 무장투쟁 노선을 선언한 뒤로 이들은 현재까지 반정부 활동을 펼치고 있다.

[6] 크리츨리는 알카에다 같은 집단이 표명한 전위주의를 '신(新)레닌주의'라고 불렀는데(Simon Critchley, Infinitely Demanding: Ethics of Commitment, Politics of Resistance, London: Verso, 2005, p.146), 지젝이 그런 표현(또한 크리츨리의 논의 전반)을 비판한 뒤 둘 사이에 논쟁이 붙었다(Simon Critchley, "Crypto-Schmittianism", State of Nature, vol.1, no.2, Winter 2006). 지젝-크리츨리의 논쟁을 정리한 글로는 다음을 참조하라. Robert Young, "The Violent State", Naked Punch, no.12, Supplement, October 16, 2009.

[7] Hallward, Damming the Flood, p.336.

Posted by 때때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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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05.11 15:48

민주주의와 밥벌이, 책 몇 권 이야기 2010.05.11 15:48

민주주의가 밥 먹여주나?

많이들 묻는 질문이죠. 근데 생각할 수록 '민주주의'가 뭔지 모르게 되더란 말입니다.

단지 투표만 잘 하면 되는 것인가? 근데 그건 결국 4년 혹은 5년간의 '독재자'를 뽑는 것 아닌가? 우리 역사상 가장 '민주적'이었다고 불리는 지난 10여년 간의 정권에서도 경찰의 폭력과 검찰의 전횡은 여전했죠. 삼성을 앞세운 재벌의 통제받지 않는 권력의 힘은 더욱 커져만 갔죠.

결국 사람들은 각자도생(各自圖生)의 길에만 매달리고 있습니다. 부동산만 문제인가요. 펀드는 문제가 안될까요.

하지만 각자도생의 길에서조차 목숨 부치기에만 힘겨운 사람들이 있습니다. 시간당 4천원의 최저임금에 자신의 삶을 거는 사람들이죠. 한겨레21에서 '노동OTL' 시리즈로 기자들이 직접 식당 종업원, 마찌꼬빠 직원 생활을 경험하고 쓴 기사가 화제를 모았었습니다. 상도 받았죠. 이 기사가 책으로 묶여 나왔습니다.



4천원인생 : 열심히 일해도 가난한 우리 시대의 노동일기
한겨레21 취재팀|한겨레출판사


'코끼리를 쏘다'에서 조지 오웰이 부랑자의 삶을 경험하기 위해 일부로 경찰에게 체포되는 것을 보며 우리 언론에선 언제쯤이야 이만한 보도를 볼 수 있을까 생각했었죠. 한겨레21이 바로 그 시도를 하는 것으로 보입니다. 그 첫번째 결과물이 4천원인생이죠. 최근에도 영구임대아파트의 주민을 취재한 '영구빈곤보고서(링크)'로 관심을 모았었습니다. 이 시리즈도 책으로 만날 수 있길 바랍니다.

빈곤은 '부자나라' 일본에서도 예외가 아닙니다. 몇년 전에 '부자 나라 가난한 국민'이란 책도 나왔었죠. NHK에서도 '워킹푸어'에 대해 본격적으로 보도를 했더군요. 그 결과물이 책으로 나왔습니다.



워킹푸어 : 왜 일할수록 가난해지는가?
NHK스페셜 취재팀|열음사


분명 빈곤은 가난한 몇몇 나라들만의 문제는 아닙니다. 되레 다 같이 가난한 시절이 더 그리울 정도죠. 지금과 같은 격차는 없었으니까요.

문제는 이들이 스스로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가능성이 점점 낮아진다는 것이죠. 이들이 정치에 관심을 가져야 하고 개입해야 할 필요성이 높아지는 것은 그 때문입니다. 국가의 공적부조만이 이러한 악순환을 끊어낼 현재의 유일한 가능성이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최근 손낙구씨가 펴낸 '대한민국 정치사회 지도'에 의하면 가난한 자들은 그들의 처지 때문에 정치에 관심을 갖지 못하죠.

그뿐 아닙니다. 국가의 운영과 관련된 많은 것들은 점점 전문화된 관료의 책임으로 떠맡겨지면서 국가는 하나의 회사처럼 변질되어 갑니다. 이명박이 'CEO 대통령'을 자임하는 것, 점점 많은 나라에서 기업인 출신 정치인이 늘어가는 것, 아니 그것을 떠나 국가의 운영 원리 자체가 기업의 원리인 경쟁과 효율에 포박되어가는 것 자체가 이를 잘 보여줍니다.

누구나가 '민주주주의자'임을 자처하고, '민주주의'를 찬양합니다. 하지만 우린 되물어야 합니다. '민주주의 너는 누구냐?'라고.



민주주의는 죽었는가? : 새로운 논쟁을 위하여
조르조 아감벤, 알랭 바디우, 다니엘 벤사이드, 웬디 브라운, 장-뤽 낭시, 자크 랑시에르, 크리스틴 로스, 슬라보예 지젝|난장


8명이 이 질문을 다시 정식화 하거나 나름의 대답, 혹은 화두를 던집니다. 한국의 2008년 촛불을 언급한 자크 랑시에르의 인터뷰는 흥미롭지만 짧은 지문 속에서 단번에 어떤 '정답'을 찾기는 어렵습니다. 다른 사람들의 글도 마찬가지입니다. 옮긴이가 서두에서 말하 듯 이 책은 정답을 던져주는 글이 아닙니다. 부제 그대로 새로운 논쟁을 시작하기 위한 화두를 던진 것이죠.

그래서일까요. 책은 짧지만 술술 읽히진 않습니다. 중간중간 멈추고 생각에 빠질 때가 많습니다. 87년 6월 항쟁 이후 20여 년. 더 많은 고민이 필요할 때입니다.



p.s. 요새 마르크스가 좀 팔리나봐요. 특히 자본론. 여기저기서 책이 많이 나오네요. 국내외의 저자들이 쓴 마르크스주의 경제학 입문서를 비롯해 자본론 해설서가 그야말로 쏟아져나오는 듯 합니다. 거기에 자본론의 번역자인 김수행 교수도 한 손 보탰네요.


청소년을 위한 자본론
김수행|두리미디어


잠깐 넘겨봤는데(읽진 않았습니다 ㄱ-) '청소년을 위한'이란 표현 그대로 '참고서' 느낌입니다. 판형도 크고 곳곳에 다양한 그림ㆍ사진과 해설이 놓여있습니다.

Posted by 때때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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