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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롭지 못한…
아래 글은 10월 20일 올린 '스티커를 붙이는 시민, 떼는 시민'을 다시 고쳐쓴 글이다. 페이스북에 처음 올린 글로부터 따지면 세 번째 글이다. 역사적 사례를 보충하는 데 중점을 뒀다. 논점도 살짝 달라졌다. "아마 여기가 지금까지 우리가 걸어 도착한 자리일 것이다"라는 문장을 "아마 여기가 우리의 촛불이 첫걸음을 시작한 자리일 것이다"라고 바꾼 부분이 이 달라진 논점을 가장 명확히 보여줄 것이다. 대중적 운동의 첫걸음에 좌파들이 불만을 갖는 일은 흔하다. 2004년 탄핵반대 촛불시위에 대한 좌파의 (지금도 달라지지 않은) 경계, 2008년 미국산 쇠고기 수입 반대 촛불시위에 대한 패배적 평가가 대표적이다. 좌파의 다수는 기존 체제의 지배적 이데올로기를 벗어나지 못한 운동에 대해 이러저러한 한계를 지적..
11월 19일 서울 광화문 광장에 밝혀진 촛불의 하나. 시민들은 스스럼 없이 노동조합이 준비한 촛불시위 용품을 자신의 의사표현에 사용했다. 서울지하철노동조합이 준비한 촛불을 든 시민. [사진 自由魂] 박근혜 퇴진을 위한 4차 범국민 행동이 11월 19일 있었다. 시위대의 평화시위와 질서 집착에 대한 비판이 이미 나오고 있던 상황에서 경찰버스에 붙인 항의 스티커를 제거한 일이 마음을 불편하게 한다. 하필이면 이날 전인권은 무대에 나와 애국가를 불렀다. 몇몇 젊은이들은 태극기를 들고 나왔고, 어떤 노인은 연사에게 '박근혜 퇴진' 외에 다른 얘기들, 이를테면 '사드'라든가 '한일군사정보보호협정'과 같은 얘기는 하지 말라고 소리지르기도 했다. 아마 여기가 지금까지 우리가 걸어 도착한 자리일 것이다. 가퐁 신부가..
생각의나무에서 의욕적으로 펴내고 있는 問라이브러리의 세 번째 책은 최장집 교수의 '한국민주주의 무엇이 문제인가'입니다. 은퇴를 전후해서도 의욕적인 활동을 펼치며 한국 민주주의에 있어 협애한 이념적 기반의 정당체제 문제를 지속적으로 제기해온 최 교수는 올해 상반기를 뜨겁게 달군 촛불시위를 경험하면서 한층 더 깊어지 통찰력을 이 책에서 보여줍니다. 급하게 준비된 느낌이 역력한 이 책은 문장과 논지의 전개에 있어서 최 교수의 이전 책들보다 덜 다듬어졌다는 느낌이 강하게 들지만 87년 6월 항쟁과 비견될만한 촛불시위가 한국 민주주의의 발전을 위해 어떻게 진화해야 하는지를 짧지만 강력하게 주장합니다. 10월 11일, 6월과 7월에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적은 사람이지만 수천 명의 무장한 전투경찰의 위협과 보수 언..
8월 15일 100회를 맞은 촛불이 숨고르기를 하고 있습니다. 지난 100일이 넘는 촛불은 참 많은 것들을 우리에게 상기시켜줬습니다. 경쟁 지상주의 교육의 폐해와 먹거리의 안전성 문제, 경찰의 폭력, 의료를 포함한 공공 서비스의 민영화, 비정규직 …. 이 모든 걸 하나의 범주로 아우르긴 쉽지 않을 겁니다. 편의를 위해서 일정한 개념을 제시하자면 그건 사회적 공공성에 대한 총체적 문제제기일 듯 싶네요. 촛불시위에서 가장 많이 불린 노래 '대한민국 헌법 제1조'는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다. 대한민국의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라고 외치고 있습니다. 여기서 아무래도 방점은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는 부분이겠죠. 이것은 민주주의의 기본 원리, 대의에 의한 위임권력의 근본적 한계와 한국적 현실..
경향신문에서 5월 2일부터 7월 5일까지 65일간의 촛불시위의 기록을 담은 책을 내놨습니다. 촛불 그 65일의 기록 경향닷컴 촛불팀|경향신문사 물론 촛불시위는 그 후 8월 15일까지 100일 간 타올랐죠. 16일에도 여전히 촛불을 드신 분들도 계시고 강남에서는 어제도 여전히 촛불이 밝혀졌습니다. 이 책의 첫 번째 한계는 7월 5일 이후의 상황을 담지 못했다는 겁니다. 물론 책의 제작을 위한 시간이 필요했기에 어쩔 수 없기도 했을 겁니다. 촛불이 다 꺼지길 기다려야 한다면 2MB가 물러날 때까지 미뤄야 했을지도 모르죠. 두 번째 한계는 경향신문에 실린 기사들로만 책을 만들었다는 점이죠. 물론 아고라의 몇몇 글들도 인용되긴 했지만 큰 분량은 아닙니다. 즉 이 책은 촛불이 타오르는 와중에 신문 지면을 벗어나서..
경향신문 기사 보러가기(클릭!) 전투경찰과 대치 상황에서 시위대는 흔히 그들도 우리의 아들이고 형제고 친구라며 경찰과 시위대 사이의 폭력을 중재하려는 노력을 하곤 한다. 전경과 시위대로 다시 만난 친구와 연인의 사연들은 알게모르게 신화와 같이 이어지고 있고 만화의 소재로 사용되기도 했다. 아마도 그만큼, 흔치 않은 건 사실이겠지만, 현실 가능한 일이기 때문일 것이다. 실제로 내 선배들 중에도 전투경찰로 근무한 경우가 몇몇 있다. 물론 그 선배와 내가 만난 적은 없지만. 어제(28일) 밤, 경찰들의 폭력이 폭우 속에서 자행되던 그 시간, 전경들이 말 그대로 자신들이 인간의 자식이 아닌 야수들임을 증거하는 사건이 발생했다. 위 링크의 경향신문 기사를 읽어보면 된다. 그 부분만 인용해보면 이렇다. 김경숙씨(4..
6월 28일 밤 종로1가 광화문우체국 앞 거리에서 경찰의 강경 진압에 맞서 팔짱을 끼고 있는 시민들. [연합뉴스] 어청수(라 쓰고 개색희라고 읽는)가 '80년대식 진압' 운운하더니 최루탄만 안나왔지 정말 그만큼 하는군요. 시청쪽 상황을 들어보니... 아예 작정하고 뒷 골목(조선일보 편집국 건물이 있는)쪽으로 진압 경찰을 투입했더군요. 제가 있던 교보 앞쪽은 9시부터인가 계속 쉬지 않고 물을 뿌려대더군요. 멀리서도 살수 소리가 들릴정도로 강한 압력으로 뿌려댔습니다. 계속 의료진을 부르는 소리가 이어지고... 아마도 그들은 이 상황에서 양보를 하면 앞으로 남은 4년 몇 개월을 식물 대통령으로 보낼 수 밖에 없다는 것을 두려워 한 것 같습니다. 이명박과 약간 거리를 두던 우파 세력들도 이명박이 무너지면 그들이..
최근 촛불시위에서 '흔들리지 않게'가 심심찮게 불려지더군요. 제가 운동에 참여한 90년대 중반 이후엔 많이 불려지진 않았어요. '흔들리지 않게'라는 자기 다짐은 한편 자신의 흔들림을 전제로 한 것이겠죠. 그래서 사실 이 노래를 그리 좋아하진 않았어요. 누구나가 강철과 같은 투사가 될 수 있는 것은 아니겠죠. 그럴 필요도 없고요. 자신과 가족의 건강권을 위해 거리로 나선 시민들이 느끼는 불안감, 없을 수 없겠죠. 이명박의 경비견 어청수는 연일 강경진압을 얘기하면서 심지어 '80년대 처럼' 해보고 싶다고도 말할 정도니까요. 그래서 그럴까요. 90년대 이후 잘 불려지지 않던 노래가 다시 집회와 시위 현장에서 널리 불려지는 것은. 가장 많이 알려진 것은 아마도 안치환이 부른 버전일 겁니다. 항상 그렇듯 그 자신..
어제(24일) 광우병국민대책위에서 주최한 두 번째 국민대토론회가 열렸습니다. 어제의 토론에서도 확인할 수 있었던 것은 기존의 시민단체와 좌파들보다 '네티즌'이라고 하는 사람들이 더 급진적이라는 사실이에요. 나명수씨와 이름을 기억할 수 없는 한 남성 분은 어차피 쇠고기고시 강행 할 것 이참에 빨리 해버리고 우린 정권 퇴진 투쟁에 나서자... 이런 식으로 주장했던 것으로 기억나요. 역시나 토론회장에서 청중들은 나명수씨와 고려대 김지윤 학생이 적극적으로 정권퇴진 투쟁에 나서야 한다는 주장에 가장 호응이 컸던 것 같아요. 그에 반해 박진섭 생태지평 부소장은 정권퇴진은 불가능하다, 이제 불매운동 등으로 방향을 전환해야 한다는 주장으로 야유를 받곤 했죠. 그러자 박 소장은 불쾌감을 표시하면서 "대중의 대다수는 정권..
촛불시위는 매우 온건하게 시작됐습니다. 그저 청계광장에 앉아서 촛불을 밝혔을 뿐이었죠. 얼마나 엉성했냐 하면 혹시라도 이명박의 심기가 상할까봐 종로 경찰서장이 집시법에도 없는 내용을 갖고 초기 촛불시위 주최자들을 협박했었고 그게 먹혀들기도 했습니다.. 어쨌든 여차저차해서 촛불시위는 계속됐고 결정적 고비 때마다 조금씩 행동의 수위를 높여갔습니다. 그때나 지금이나 일관된 구호 중 하나는 '비폭력'입니다. 그런데 이게 참, 어디까지를 비폭력이라고 부를 수 있을지는 매우 난감한 문제입니다. 사실 초창기만 하더라도 경찰 버스를 끌어내는 일, 그 위에 올라가는 일 자체를 '폭력'이라고 했었죠. 지금에 와서 많은 시민들은 그것은 퍼포먼스고 '평화적인 한도' 내에서 우리의 분노를 보여주는 '비폭력 저항'이라고 말하고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