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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년 4월 20일 작성> 새로운 혁명적 전위는 가능한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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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별과 억압에 반대하는 여성 활동가들의 행진. 1968 뉴욕.

오늘 소개할 책은 이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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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좌파의 상상력 : 세계적 차원에서 본 1968
조지 카치아피카스 지음|이재원ㆍ이종태 옮김|이후


자본주의 체제에 대한 주요한 반란 세력들에겐 항상 딜레마가 있습니다. 그것은 '자율성'과 '의식성'의 문제입니다.

'의식성'을 중요하게 보는 정치에선 사회의 객관적 조건과 운동을 지도하기 위해 사전에 조직된 혁명적 지도부의 존재를 강조하죠. '자율성'을 강조하는 정치와 실천에선 객관적 조건보다는 혁명 주체들의 '의지'와 대중의 자유로운 운동을 중요하게 봅니다. 쉽게 보자면 마르크스주의와 아나키즘의 차이라고도 볼 수 있는데 그리 간단치만은 않은게 마르크스주의 내에도 이런 갈등은 항상 내재돼 있었다는 점이죠. 대표적으로는 대중들의 운동과 파업을 강조했던 로자 룩셈부르크와 조직을 강조했던 레닌을 들을 수 있을 것입니다.

1968의 사건들은 무엇보다도 이 딜레마의 해결이 좌파들에게 시급함을 보여줬죠.

2차대전 후의 세계는 미국을 중심으로 한 서방 제국주의와 소련을 중심으로 한 동방 제국주의의 대립 속에서 사회운동은 시들어가고 있던 상황입니다. 노동자는 노동조합을 통해서 공식 좌파(사회민주주의 정당 혹은 소련을 추종하던 공산주의자들)에 메어있었죠. 사민주의와 공산주의는 당시 세계 질서의 어느 한 쪽을 지지함으로서 결국은 당시의 세계질서를 유지하는데 이해관계가 있었죠. 이들이 1968년 세계 곳곳에서 터져나온 반란의 목소리를 억압하는 데 가장 앞장서게 된 이유입니다.

급격히 확장된 대학교육과 전후 호황으로 인한 새로운 반숙련, 여성 노동자들의 확대는 이들 기존 좌파에 독립적인 새로운 세력을 만들게 됩니다. 이들은 기존의 권위(그것이 미국이든 소련이든)를 거부하고 제3세계 민중(특히 베트남)과 자신들을 동일 시 합니다. 체게바라가 1968의 상징으로 떠오르게 된 것은 이런 상황에서 비롯합니다. 체게바라의 포코(foco)이론은 반란의 조건을 기다리라는 기존 좌파들의 가르침과 달리 반란을 창출해낼 것을 요구했죠.

그러나 노동자들의 총파업이 없었다면 이들 학생 반란은 '일상적인 봄 축제에 불과했을 것'입니다. 학생들로부터 시작된 운동은 하층 노동계급을 거쳐 조직 노동자들 속으로 확산됩니다. 그러나 기존 좌파의 권위에 대한 반발에도 불구하고 그것을 뛰어넘진 못했죠.

"학생 봉기와 파리에서의 투쟁이 일어난 지 2주가 지나서야, 노동자 계급은 행동하기 시작했다. 노동자들은 학생들의 제안-새로운 사회 변혁-을 수행할 수 있는 사회적 위치에 있었다. 불행히도, 모든 것이 말해지고 행해졌을 때, 노동자 계급은 대다수 사람들이 노동자 계급의 역사적 임무라고 여겼던 것을 끝까지 수행할 능력이 없음을 보여줬다."
250p.

"학생들은 스스로를 자율적으로 조직할 수 있는 놀라운 능력을 보여줬지만, 투쟁이 전개되면서 지도력이 결여된 행동이 명백히 드러났다."
271p.

곧 이들 새롭게 급진화된 학생들은 잊혀졌던 과거의 역사와 이론 속에서 자신들의 길을 찾으려 합니다. 하지만 빠른 급진화에도 불구하고 정치적으로 충분히 훈련되지 못했던 이들은 기존의 실천과 이론을 비판적으로 재구성하지 못하고 오히려 자신들의 장점-모든 권위로부터의 자율성-을 버리고 빠르게 하나의 군사적 조직으로 스스로를 바꾸어갑니다. 그 결과는 미국의 웨더언더그라운드, 독일ㆍ일본의 적군파, 이탈리아 붉은 여단의 테러라는 비극을 배태합니다.

물론 이 모든 잘못에도 불구하고 1968년의 반란은 2차세계대전을 거치면서 끊어졌던 좌파의 맥을 다시 살려 지금까지 이어질 수 있게 했죠. 또한 발전된 자본주의 국가에서 반란과 혁명의 가능성을 보여줬습니다. 지배자들은 이전의 억압적인 방식에서 벗어나 '자율적'인 조직 방식을 그들의 정치와 학교, 사업장에서 흉내내야만 했습니다.

카치아피카스는 '의식성'보다는 '자율성'에 기울어 있습니다만 3부에서 1968의 유산을 살펴보면서 새로운 혁명적 전위를 제안합니다.

"대중운동의 자발적 행동, 혹은 상승 곡선을 그리는 파업과 연좌 농성 및 봉기 위원회의 자율적인 등장은 특정한 음모나 의지의 행위에 의해 현실화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이런 투쟁 형태는 그것이 출현하기 이전에는 결코 예측할 수 없는 것으로서, 이는 정치적 경험의 축적과 시시각각 변화하는 역사적 조건의 배치에 따라 구성되는 수백만 대중의 욕구에 달려 있다. 특히 1968년에 발생한 세계적-역사적 사건들의 여파 속에서, 계급 투쟁의 무기인 에로스 효과가 지녔던 예측할 수 없는 힘을 과소평가해서는 안될 것이다. …
하지만 이와 동시에, 대중적 의지를 표출해 주고 계몽을 통해 저항을 강화시켜줄 수 있는 조직화된 정치적 전위들이 존재하지 않는다면, 이런 위기는 반동적인 방향으로 나아갈지도 모른다. 억압의 다차원적인 측면들을 위협하는 전망을 갖춘 지도부-또한, 이런 측면들을 초월할 수 있는 수단들-가 존재하지 않는다면, 계몽과 사회 혁명보다는 카리스마적인 전제주의나 반동이 변화의 향방을 규정할 수도 있는 것이다. 역사적 변화는 무엇보다도, 에로스 효과가 출현하는 순간이 올 경우에는 타나토스의 세력이 자신의 패배를 준비할 시간조차 가지지 못할 것이라는 점을 증명해 주고 있다."
452p.

보다 자유롭고 민주적이며 평등할 수 있는 사회를 꿈꾸시고 그 실천에 몸담고 계신 분이라면 이 책을 한 번 읽어보시길 권합니다.

※ 이 네 번째 책에 대한 소개를 준비하는 중에 1968년 40주년을 기념하는 타리크 알리의 새 책이 나왔습니다. '1960년대의 자서전'입니다. 한국에선 40주년 기념으로 번역됐지만 원래는 1987년에 나왔던 책으로 제가 전에 소개했던 타리크 알리의 책보다도 10년 전에 나왔던 책이죠. 과연 올해가 끝나기 전에 1968년에 대한 책들을 다 정리할 수 있을지 모르겠네요.

Posted by 때때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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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년 3월 25일 작성> 모든 사회운동엔 끝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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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4년 미국 버클리 대학에서
자유언론 운동의 대표적 지도자인 마리오 사비오가 연설하고 있다.


1968은 흔히 '혁명'이라 불립니다. 이매뉴얼 월러스틴의 "이제껏 세계혁명은 단 둘뿐이었다. 하나는 1948년에, 그리고 또 하나는 1968년에 일어났다. 둘 다 역사적인 실패로 끝났다. 둘 다 세계를 바꾸어놓았다"는 말은 매우 유명하죠.

그런데 정말 이 세계적 사건은 '혁명'이라고 불릴만한 '자격'이 있을까요? 오늘 소개할 이 책은 그 의문에 답하고자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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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8운동  잉그리트 길혀-홀타이 지음│정대성 옮김│들녘


'혁명'을 단 몇 일 혹은 몇 개월 사이에 일어나는 '반란'과 '봉기'와 동일시 할 순 없습니다. 그것은 최소 몇 년에서 최대 몇 백년을 거치는 인간의 사회적 삶의 근본적 변화 과정이죠. 그렇기에 1848년 혁명은 사회의 자본주의적 혁명의 마지막 과정으로 고려할 수 있는 것과 달리 1968을 '혁명'으로 보기는 힘들 것이라 생각합니다.

1968은 (40년이 지난) 지금에 와서 돌이켜보면 미국 SDS의 지도자였던 톰 헤이든의 "나는 반역한다, 고로 우리는 존재한다"는 말에서 드러나듯 '개인적 해방 전략'으로서 사회 변혁 운동의 성격이 강해 혁명엔 미치지 못했다고 생각합니다. 물론 그것의 역사적 의의를 '운동'이었다고 해서 깎아내리고자 하는 것은 아닙니다.

그러나 68운동을 역사적으로 평가하는데는 꽤나 많은 어려움을 가질 수 밖에 없습니다. 우리 나라에서 1980년대 운동을 평가하는데 어려움을 겪는 것과 마찬가지지요. 그 첫 번째 이유는 무엇보다도 그 '운동'이 '패배'했었다는 데서 비롯합니다.

1968을 다룬 모든 책과 글들에서 빼놓을 수 없고 단연코 중심의 위치를 차지하는 프랑스에서의 운동은 그 치열했던 거리에서 투쟁의 나날들에도 불구하고 6월 선거에서 드골의 손을 들어줬죠. 가장 치열한 투쟁을 벌였던 독일, 이탈리아, 일본에서는 '적군파'를 비롯한 소규모 좌익 그룹들의 '테러주의'로 인해 대중 운동의 침체를 겪어야만 했고요.

"테러주의와 신좌파 사이에 가로놓인 이데올로기적인 거리가 68운동 활동가들의 자기 비판 속에서조차 여러 번 좁혀지는 동시에, 신좌파의 '비판의 무기'에서 테러주의의 '무기를 든 비판'으로의 이행이 인식론적 지향의 변화에서 나왔다는 점이 묵살되면서 … 게릴라전과 개별적 테러 행동으로의 행보는 68운동의 도덕적 토대를 파괴했고 … 운동 추종자들의 입장을 양분하는 결과를 낳았다."

이 책의 장점은 이 역사적 사건을 '혁명'으로 격상시키던 한 때의 해프닝으로 격하시키던 간에 우선 '사회 운동'으로 위치시켜 분석하고자 하는 태도에서 비롯합니다.

1968을 얘기할 때 빼놓을 수 없는 몇 가지가 있습니다. 베트남전, 체게바라, 프랑스 파리, 프라하, 히피 … 그러나 가장 큰 특징으로서 빼놓을 수 없는 것은 역시 '학생'이라는 것일 겁니다. 전 68 운동을 '학생 운동'으로만 치부하는 것에 반대하는 편이지만 그 시작이 무엇보다도 학생 들의 운동이었다는 점은 부정할 수 없습니다.

SDS. 두 개의, 두 곳의 SDS가 있었죠. 미국의 Students for Democratic Society와 독일의 Sozialistischer Deutscher Studentenbund입니다. 톰 헤이든과 루디 두취케의 이름으로 유명한 조직이죠. 이 책은 무엇보다도 이 두 조직의 이야기를 중심으로 진행합니다.

흔히 1968을 다룬 얘기들에선 그 이전까지 조용했던 세계가 갑작스런 폭풍을 만난 듯이 표현하곤 합니다. 하지만 그 이전에 아무론 조짐이 없을 순 없죠. 두 SDS는 1968 전부터 미국의 민권운동과 인종차별 반대 운동, 비상사태법 반대 운동을 통해 조직화하기 시작합니다. 물론 소수였지만 그 운동의 목소리는 1968의 폭팔적 운동의 목소리로 성장할 가능성을 내포하고 있었죠.

이 책은 무엇보다도 '사회운동론'적 관점에서 운동의 성장과 발전 그리고 쇠퇴를 그리고 있습니다. 그러한 서술이 약간은 무미건조하기도 합니다. 특히 반복해서 "~ㄴ다"로 끝나는 문장은 순조로운 독서를 더 방해하곤 합니다. 그렇지만 운동에 대한 '회고록적' 평가가 아니라 역사적 평가를 시도하는 이 책은 (물론 그 평가의 어려움을 토로하며 한계를 지적하지만) 다른 어떤 책들보다도 과거의 현재적 의미를 이끌어낸다고 보여집니다.

모든 운동은 그 자체만으로 사회의 변화를 이끌어낼 수는 없다고 봅니다. 최장집 교수의 말을 빌리자면 '운동의 제도화' 과정이 필요한 것이지요. 물론 저는 그에 전적으로 동의하진 않습니다. 문제는 운동의 제도화, 공식 정치 내에서의 영향력 확보 과정과 함께 그 운동의 초기 문제의식의 유지와 발전 문제일 것입니다. 그것은 한편 조직화ㆍ제도화 과정과 함께 새로운 운동으로의 전환으로의 과정도 필요할 것입니다. 그러나 그 과정은 많은 모순을 지닐 수 밖에 없고 우리는 아직 완전한 해답을 갖지는 못한 것 같습니다.

"운동의 활동가들이 허약하게 조직될 경우 지속적인 동원은 어렵다. 따라서 사회운동은 계속해서 해산과 붕괴를 위협받을 수 있다. 조직은 운동을 단단히 결속하기 위한 수단이다. 새로운 활동가를 얻으려는 잡지의 창간은 운동의 결속을 위한 또다른 수단이다. 하지만 사회운동의 결속은 동원된 집단들로 구성된 네트워크 내부의 의사소통을 긴밀하게 하는 하부문화의 형성이나, 운동을 대표하고 개인 역량으로 운동을 통일시키는 카리스마 있는 지도자를 통해서도 뒷받침이 가능하다.
그러나 이 모든 수단의 효과는 양면적이다. 운동을 분열시키거나 동원을 파괴할 수도 있는 것이다. 신좌파 지식인들이 스스로 신좌파 운동이라고 이해한 68운동의 붕괴 과정은 사회운동의 이 딜레마를 전형적으로 보여준다."

착취와 억압, 사회로부터 소외받는 대중들의 현실이 개선되지 않는 한 그에 저항하는 어떠한 '운동'은 아마도 계속될 것입니다. 그 운동이 보여주는 파급력의 규모에 상관 없이 '운동의 종말'에 대한 지배적 이데올로그들의 레토릭에도 불구하고 운동은 계속될 것으로 보입니다. 그러나 하나의 운동이 끝없이 계속될 것으로 기대하긴 어렵다고 봅니다. 아마도 '운동'으로서는 거의 최대의 규모와 영향력을 보여줬던 '68운동'이 그랬듯이 말입니다.

지금도 사회의 다양한 부문에서 새로운 희망과 삶에 대한 염원으로 행동에 나서는 많은 사람들이 있습니다. 저를 비롯한 그들에게 있어서 앞으로 우리의 행동은 어떠해야 할지, 아직 우리는 잘 알지 못합니다. 하지만 이 책은 그 작은 단초를 보여줄 것입니다.

마지막으로 아쉬운 두 가지는 이 책이 그러한 사회적 운동들이 어떠한 조건에서 비롯하는 지에 대해선 관심을 쏟지 않았다라는 것과 '68운동'이 파키스탄, 포르투칼, 그리스, 스페인, 브라질, 영국, 일본 등 그야말로 '세계적'인 규모에서 진행됐음에도 불구하고 미국, 독일, 프랑스를 비롯한 서유럽 정도에만 서술을 할애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물론 이러한 아쉬움은 다른 여러 책들을 통해 보충할 수 있을 것입니다.

원래 이 글은 1968 40주년을 맞아 제가 읽고 인상이 깊었던 세 권의 책을 소개하려 시작했었습니다. 하지만 다시 예전 책을 뒤적이다보니 여전히 보지 못한 책이 많고 알지 못한 것들이 많다는 생각에 몇 권의 책을 그간 더 구입해 읽고 있습니다. 오늘 소개한 이 책은 원래 계획엔 없었던 책입니다. 어쩌다보니 지난 번에 소개한 책(세계를 뒤흔든 1968)과 비슷한 결론(물론 차이는 크지만)의 책이네요.

다음엔 전혀 다른 정치적 입장에서 1968을 평가하는 책을 소개할 것입니다. 지금의 변경된 계획으로는 두 권 정도의 책이 남은 듯 한데 어찌될지 확언하기는 어렵네요. 그럼 오늘의 이 글은 마칠까 합니다.

"The Old Mole of history seems to be splendidly undermining the Sorbonne.
(telegram from Marx, 13 May 1968)
역사라는 늙은 두더지가 소르본느 밑을 멋들어지게 파고 있는 것 같아.
(맑스로부터의 전보, 1968년 5월 13일ㆍ1968 5월 파리의 낙서들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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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년 3월 23일 작성> 신좌파, 구좌파를 호출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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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 노동총동맹(CGTㆍ공산당 계열의 노동조합)이
1968년 5월 프랑스 파리 거리에서 행진을 하고 있다.


지난번에 소개한 책은 1968 30주년에 맞춰 나온 책이었죠. 오늘 소개할 이 책은 1968 20주년인 88년에 쓰여졌고 30주년인 98년에 개정판이 나온 책입니다. 물론 우리나라에 소개된 것은 2004년이죠.

오늘 소개할 책은 바로 이 책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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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를 뒤흔든 1968  크리스 하먼 지음│이수현 역│책갈피


먼저 글에서 소개했던 책이 1968 한해를 다뤘음에 반해 이 책은 60년대 전반부서부터 70년대 후반부까지를 대상으로 하고 있습니다. 그것은 무엇보다도 이 책이 '학생 운동' '학생 혁명' '히피 운동'으로 불려왔던 68운동에서 노동자 계급 역할의 복원을 목표로 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운동의 역사를 서술하는 여러 책들에서 '노동자 계급'의 역할이 무시되거나 축소되는 경우를 흔히 볼 수 있습니다. 대표적인 경우가 한국의 87년 6월항쟁에 대한 서술이죠. 민주화의 요구를 들고 학생운동이 분출했을 때 노동자 계급이 개별화된 존재인 '넥타이 부대'로 참여한 것엔 많은 이들이 큰 의의를 두면서도 7월 이후 9월까지 노동자 계급이 집단적으로 자신의 존재를 드러내 계급적 요구를 내세워 거리로 나선 사실은 그때 당시 많은 좌파들까지 포함해서 현재까지도 그 역할과 의의는 축소되고 있는 것이 현실입니다.

68혁명에 대해서도 마찬가지입니다. 매달 임금을 받으며 직장의 규율에 메어있는 노동자 계급이 운동의 시작 국면에서 급격하게 분출하긴 힘듭니다. 물론 물론 68년 5월 파리의 거리에서 노동자 계급은 매우 빠른 속도로 학생들과 합류하기도 합니다. 하지만 보통은 약간은 뒤늦은 출발을 보이죠. 그렇기에 68혁명에 대한 주류적 해설들이 68년 한해만을 다루며 학생들의 해로 다루지만 68혁명의 여진은 이후 69년 이탈리아 노동자들의 붉은 겨울, 73년 영국 노동자들의 투쟁 74년 포르투갈 혁명, 75년 스페인 파시스트 정권의 몰락으로 이어집니다. 이어지는 투쟁들에서 결정적인 역할은 노동자 계급이 했죠.

"이제 노동 계급은 쇠태해 가는 사회 세력이고 내적으로 분열돼 있으며 기성 체제 전복에 무관심한 '부유한' 부문이 점점 더 늘어나고 있다. 사회주의자가 할 수 있는 일이라곤 쇠퇴하는 노동 계급 조직들과 '신사회 운동' 그리고 중간 계급을 연결하는 동맹을 구축하는 것뿐이라는 게 그들의 주장이었다.
이 책의 목적 중 하나는 1968년과 1976년 사이에 서구의 일부 주요 국가에서 노동자들이 결정적 사회 세력으로 등장했다는 사실을 보여 줌으로써 그런 주장들을 반박하는 것이었다."

이 책에서 저자의 주장이 충분히 달성됐는지는 모르겠습니다. 분명 이 책이 쓰여졌던 88년 이후 세계는 또 한번 거대한 변화를 겪고 있는 것이 사실이기 때문입니다. 물론 이 변화는 부정적인 것과 함께 긍정적인 가능성도 함께 보여주고 있습니다. 중국의 노동자 계급은 단지 중국 뿐 아니라 세계 자본주의에 영향을 미칠정도로 거대한 규모로 형성되고 있습니다. 여전히 불균등한 모습을 보여주곤 있지만 2000년 이후 남미와 유럽에서 노동자 계급 투쟁은 분명히 이전에 비해 자신감을 되찾고 있죠.

그러나 이 책이 주장하고자 하는 다른 하나의 주장은 또한 노동자 계급의 투쟁과 함께 '혁명적 좌파'의 필요성에 대한 것입니다. 이 책은 조직 운동에 반감을 갖고 계신분이라면 약간은 거슬릴 정도로 좌파 조직들의 역할을 강조하고 있기도 합니다. 68혁명에 대한 많은 글들이 마르크스주의라는 구좌파에 대비되는 신좌파를 강조하고 있지만 이들 신좌파의 다수가 마오와 트로츠키, 체 게바라와 같은 '구좌파'의 일부분에서 자신의 대안을 찾았다는 것은 무시하고 있죠. 또한 이른바 68혁명 이후 신사회 운동의 발전과 함께 서구 유럽에서 고전적 마르크스주의에 기반한 '혁명적 좌파'가 성장했다는 사실은 바라보려 하지 않습니다. 그런점에서 과도하게 강조된 점이 없지않아 있지만 이 책이 혁명적 좌파의 역할과 성장을 강조한 것은 충분히 의미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이 책의 서술은 꼭 시간순을 지키진 않습니다. 그렇기에 1968년 혁명에 대한 기초적 사실에 대한 이해가 없으신 분들은 약간 혼란스러울 수도 있을 것입니다. 무엇보다 이 책은 68혁명에 대한 정치적 이해를 위해서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자신이 사회변화를 좌파적 행동에서 대안을 찾는다면 이 책은 작지만 의미있는 영감을 줄 것입니다.

프랑스 LCR(혁명적 공산주의자 동맹)이 부른 Bella Ciao

Posted by 때때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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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년 3월 9일 작성> 가련한 사람들, 소외된 사람들의 귀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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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8년 5월의 파리

록음악과 LSD, 베트남 전쟁, 히피, 비틀스, 바리케이트, 파업, 마오, 체 게바라, 폭동 진압 경찰.... 1968에 대한 수 많은 단어들. 이 모든 것들이 벌써 40년이나 지난 얘기네요.

다음달 4일은 마틴 루터 킹 목사가 살해당한지 40년이 되는 날이죠. 그 뜻을 기려보고자 세 권의 책을 정해 한권씩 소개하려 맘 먹고 진지하게 글을 써보려고 했습니다만... 역시나 부족한 필력에 그저 간단히 소개하고 넘어가고자 합니다.

첫 번째 책은 바로 이 책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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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8 희망의 시절, 분노의 나날   타리크 알리ㆍ수잔 왓킨스 지음|삼인


"1968년은 그해를 살았던 사람들에겐 그들의 정치적 지향이 어떠했든 간에 결코 잊지 못할 한 해였다. 1968년은 전세계의 모든 세대에게 흔적을 남긴 해였다. '세계화'(globalization)라는 말이 자유 시장 체제의 정치 문화에서 애용되는 단어가 되기 오래 전에 1968년의 사건들은 인간 조건을 변화시키려는 투쟁의 한 부분인 정치적 급진주의를 세계화한 바 있다. 1968년은 희망의 해였다. 그때 세계를 있는 그대로 인정했던 사람들은 자신들의 유산을 박탈당했다고 느낀 사람들이었다. 지구상의 가련한 사람들, 소외된 사람들이 그들의 유산을 되찾기 시작한 것이다."

이 책은 1968년 한 해동안의 사건을 다루고 있습니다. 물론 1968로 대표되는 사건은 짧게는 70년대 중반까지, 길게는 90년대 초반까지 세계적 상황에 결정적 영향을 미쳤죠. 그 운동의 물결과 함께 성장한 사람들은 이미 자신들이 저항했던 사람들의 위치에 올라있기도 하죠. 대표적인 인물이 룰라 이전의 브라질 대통령으로 신자유주의적 시장경제로의 체질 변화를 적극적으로 시도했던 까르도수는 1968년 당시에는 <뉴 레프트 리뷰>지에 종속이론을 발표했던 사람이었죠. 지금은 미국의 대통령에 도전하고 있는 힐러리는 당시 학생회 회장으로 운동의 중심에 있기도 했죠.

이 책은 단순히 '객관적 사실'의 서술에만 머물고자 하지만은 않습니다. 저자 스스로가 당시 급진화된 학생 운동의 중요 지도자적 위치에 있었고 당시의 이상을 여전히 간직하고 있기 때문이죠. 그러나 그가 이 책을 쓰던 1998년은 30년전 이상주의적 급진주의는 지상에 어떠한 흔적도 남기지 못하고 사라진 듯 했기에 그의 급진주의적 언사는 대체로 조심스럽게 이뤄지곤 있습니다. 물론 그가 이 책을 쓰고 1년 후, 사라진 듯 보였던 정치적 급진주의는 제국의 심장부 미국 시애틀에서 극적으로 부활합니다.

이 책은 1968년 1월 베트남에서 민족해방전선(NLF)의 구정공세로부터 이야기를 시작합니다. 2월, 3월로 이어지는 사건들은 미국과 프랑스, 독일의 선진 산업국가들은 물론 파키스탄, 브라질, 일본, 중국, 포르투갈 등을 거쳐 반란의 목소리를 전세계로 확산시킵니다. 월별로 구성된 책은 무엇보다 당시 실제로 있었던 사건들에 집중합니다. 당시 'Black Dwarf'라는 좌파 신문을 발행했었던 저자 타리크 알리는 40여년 전(이 책이 쓰여졌던 때로부턴 30여년 전)의 이야기를 마치 지금 벌어지고 있는 것처럼 생생하게 전합니다.

그러나 아쉬운 것은 실제 사건들을 통해 일관된 하나의 의견을 전하고자 하는 저자의 노력은 사건 자체의 파편성 때문에 그리 효과적으로 이뤄지지는 않은 듯도 싶습니다. 신화의 경지에 다다른 역사를 하나의 일관된 체계와 개념으로 설명하고자 할 때 흔히 할 수 있는 또다른 전설 만들기의 실수는 피했다고 보여지지만 그 이전과 이후의 사건과의 연관성 속에서 1968년의 사건들을 파악하기엔 한계가 있는 것은 사실입니다.

하지만 1968년의 사건들 자체에 기초가 없는 분들에게 이 만한 책도 없을 듯 합니다. 물론 정치적 급진주의가 불편하신 분들에겐 여전히 이 책은 과거의 불안했던 기억들을 떠올리게 만들기도 할겁니다.

마지막으로 다시 이 책의 한 구절을 인용하며 소개를 마칠까 합니다.

"우리가 우리의 집단적 자아(collective self)를 더 나은 미래를 위한 전망에 쏟아부을 수 있었을 때 우리는 행복했다. 우리 자신을 위해서가 아니라 전세계의 억압받는 사람들, 다시 말해 모든 사람을 위해 그럴 수 있었을 때말이다. 우리는 그러한 희망을 통해 무엇을 먼저 해야 할 것인지를 결정했다. 우리의 행복은 달콤한 행복이나 황홀경(어느 곳에나 있는 황홀경, 그리고 많은 장소들이 마리화나의 향기가 가득 찬 상태에 있는 황홀경)이 아니라 인간의 대의를 향상시킬 수 있다면 위험을 무릅쓰거나 자기 자신의 삶도 희생할 수 있는 행복이다. 이러한 느낌은 영국에서는 거의 표출되지 않았지만, 유럽 대부분의 나라와 사악한 제국의 중심 권력인 미국에서는 강렬했다."


※ 이 책의 원제는 '1968: Marching in the Street'입니다. 번역한 제목이 더 좋은 몇 안되는 책으로 이 책을 꼽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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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Across The Universe' 중 'Come together'

Posted by 때때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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