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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집트 카이로 타흐리르의 2011년과 2013년. 아랍의 봄으로 무바라크를 권좌에서 쫓아낸 지 2년 만에 다시 광장으로 돌아온 이집트 인민들. 다시 출발한 이들이 도착할 곳은 어디일까. [사진 ROARMAG.org 페이스북]

6월 30일 카이로, 알렉산드리아 …. 이집트의 주요 도시 거리에 수 백만 명이 쏟아져나왔다. 이들은 이미 2011년 독재자 무바라크를 쫓아낸 경험이 있다. 그러나 무바라크가 떠난 자리에 오른 무르시와 무슬림형제단은 종교의 탈을 쓴 또 다른 독재자였을 뿐이다. 이집트의 동지들은 의기소침하지 않았다. 물론 일시적으로 그랬을 수도 있다. 그러나 이들은 다시 다시 일어섰다. 이 점이 중요하다. 애초 2011년 이후 미국의 점령하라 운동, 스페인의 분노하라 운동, 2012년 터키와 브라질 반란에 영감을 전해줬던 이집트 동지들이 다시 터키와 브라질 반란으로부터 고무받아 행동으로 나선 것이다.

다시 시작된 이집트의 운동은 전과는 다를 것이다. 전에 멈춘 곳에서 출발하게 된 운동은 그 결과가 인민의 승리든 패배든 더 격렬하게 지배자들과 충돌하게 될 가능성이 높다. 30일 시위 전날인 29일 로어매그(ROARMAG.org)에 실린 이집트 활동가들의 편지는 그점을 분명히 하고 있다. 스스로를 '카이로의 동지들'이라고 칭한 이들은 단지 "권리나 시민권 개혁을 위해 싸우는 게 아니"라고 분명히 밝히고 있다. "합법성에 대한 강조"가 체제의 진정한 핵심을 가리고 있다는 이들의 주장은 이번 행동이 보다 근본적인 것에 대한 도전으로 이어질 것임을 예고하고 있다. 물론 이들 스스로 지적하고 있듯이 이러한 목표가 거리로 나온 시위대 모두의 동의를 받은 것은 아니다. 그럼에도 기대 이상으로 많은 사람들이 참여한 어제의 시위는 이들의 주장이 허언 만은 아닐 것임을 보여주고 있다.

이들 이집트 활동가들의 공개 편지를 아래 옮긴다.

- - - - - - - - - - - - -

최루가스 속 탁심과 리우의 동지들에게
Roarmag.org 6월 29일ㆍ링크

우리와 함께 투쟁하는 당신에게,

우리에게 6월 30일은 2011년 1월 25일과 28일 시작된 반란의 새로운 단계로 기록될 것이다. 이번에 우리는 경제적 착취와 경찰 폭력, 고문과 살해의 더 심한 판본일 뿐인 무슬림형제단의 통치에 맞서 일어선다.

'민주주의'의 도입에 관해 말하자면 그것은 적절한 생계수단과 존엄의 [향상을 나타내는] 어떤 지표를 지닌 괜찮은 삶을 누릴 가능성과는 그 어떤 연관성도 없다. 선거 과정에서의 합법성에 대한 강조는 이집트에서 우리가 투쟁을 계속해야 만 하는 이유, 즉 얼굴만 바뀌었을 뿐 탄압과 긴축, 경찰 폭력의 원리는 그대로인 억압적 체제의 영구화로부터 눈을 돌리게 만든다. 정권은 여전히 공중에 대한 책임감이 부족하고 고위직은 개인의 권력과 부를 획득할 기회로만 이해된다.

6월 30일 다시 시작될 혁명의 외침은 이거다: "인민은 체제의 폐지를 원한다". 우리는 비겁한 권위주의나 무슬림형제단의 식민주의적 자본주의, 여전히 우리의 정치적 경제적 삶의 목을 죄는 군부에 의해 지배되지 않는, 무바라크 시대의 구체제로 돌아가지 않는 미래를 찾고 있다. 6월 30일 거리로 쏟아져나올 시위대 구성원들은 아직 이 요구로 하나가 되진 않았지만, 피의 과거로 돌아가는 것을 바라지 않는다면 그것은 반드시 우리의 입장이 되어야 한다.

우리 [활동가] 네트워크는 여전히 약하지만 최근의 봉기, 특히 터키와 브라질의 봉기로부터 희망과 영감을 받고 있다. 그것들은 각자 다른 정치적ㆍ경제적 현실에서 비롯했지만 우리 모두는 인민에게 도움이 될 것은 생각도 안하는 체제를 영구화하고자 하는 욕망을 지닌 최상층의 지배를 받아왔다. 우리는 2003년 브라질 바히아의 무상교통운동의 수평적 조직과 터키 전역으로 확산되고 있는 민중의회로부터 영감을 얻었다.

이집트에서 무슬림형제단은 지역화된 신자유주의 원리가 인민의 삶을 짓밟는 과정에 오직 종교적 허식만을 추가했을 뿐이다. 민간 부분을 공격적으로 성장시킨 터키의 전략은 반대자들과 진보적 계획에 대한 시도를 억압하는 주요 무기로서 경찰의 폭력적 지배와 같은 원리의 권위주의적 지배로 변화했다. 브라질에서 혁명적 전통에 뿌리를 둔 정부는 그들의 과거가 인민과 자연을 착취하는 자본주의적 지배에 협력하는 자신을 가리는 가면일 뿐임을 입증했다.

최근의 이러한 투쟁들은 보다 오래전부터 지속되고 있는 쿠르드족과 라틴 아메리카 토착민 투쟁의 영향을 받았다. 지난 10여 년간 터키와 브라질 정부는 생존을 위한 이 운동을 진압하려고 시도해왔지만 실패했다. 정부 탄압에 맞선 그들의 저항은 터키와 브라질 전역에 확산되고 있는 새로운 저항 물결의 선구자다. 우리는 각자의 투쟁이 중대함을 인식하는 것의 절실함을 알고, 새로운 공간과 주민, 공동체로 확산되는 반란의 양식을 찾아냈다.

우리의 투쟁은 국가들로 구성된 세계 체제에 맞설 수 있는 잠재력을 공유하고 있다. 무바라크와 군부, 무슬림형제단의 지배를 받고 있는 이집트에서는 위세를 떨치고 있는 위기 때 국가가 권력을 사용해 저들의 부와 특혜를 보호하고 확산하기 위해 [인민의] 재산을 빼앗고 권리를 박탈하고 있다.

투쟁하는 우리는 고립돼 있지 않다. 우리는 바레인, 브라질, 보스니아, 칠레, 팔레스타인, 시리아, 터키, 쿠르디스탄, 튀니지, 수단, 사하라 서부 지역과 이집트에서 공통의 적에 맞서고 있다. 이 목록은 계속 이어진다. 모든 곳에서 그들은 우리를 폭력배, 파괴자, 약탈자, 테러리스트라고 부른다. 우리는 경제적 착취, 적나라한 경찰 폭력, 부조리한 법질서에 이상의 것에 맞서 싸우고 있다. 권리나 시민권 개혁을 위해 싸우는 게 아니다.

우리는 지역 지배자들이 우리의 삶을 착취할 수 있게 하거나 세계적 권력이 우리 매일의 삶에 대한 통치권을 유지시킬 수 있게 하는 중앙집권적 억압기구로서 국가에 반대한다. 총탄과 방송, 그리고 그 둘 사이의 모든 것이 동시에 작동한다. 우리는 우리의 다양한 투쟁을 [억지로] 통일하려 하거나 동일시 하는 데 동의하지 않는다. 그러나 그 투쟁들의 배경에는 우리가 싸우고 해체해 쓰러뜨리려 하는 지배와 권력의 동일한 구조가 있다. 함께하면 우리의 투쟁은 더 강해질 것이다.

우리는 체제를 쓰러뜨리길 바란다.

카이로의 동지가.

※ 위 편지는 영어에 익숙하지 않은 제가 임의로 옮긴 것임으로 인용하거나 퍼가시려면 꼭 원문을 확인하시기 바랍니다. 잘못 옮겼거나 틀리게 이해한 데 대한 지적은 얼마든지 환영합니다.


Posted by 때때로


'파라오법'이라고 비판받고 있는 무르시 대통령의 새 헌법에 반대해 다시 타흐리르 광장으로 모여든 이집트 인민. [사진=RoarMag.org]

무르시와 무슬림형제단은 이스라엘의 가자 침공 후 휴전을 성공적으로 중재했다는 평가를 받고있다. 미국으로부터 자신들의 쓸모를 인정받은 무르시는 국내 정책에도 과감한 전환을 시작했다.

'파라오법'이라고 비판받고 있는 새 헌법은 무슬림형제단이 장악하고 있는 제헌의회와 상원(슈라위원회), 무르시 대통령에게 견제받지 않는 절대적 권력을 부여하는 조항을 포함하고 있다. 이는 아마도 2011년의 혁명적 열정이 충분히 식었다고 판단한 데서 비롯한 반혁명 시도일 것이다. 1979년 이란에서 호메이니가 그랬던 것처럼 말이다.

그러나 지난 몇 주간 타흐리르 광장에서 보여준 이집트 인민의 용기는 혁명이 무르시와 무슬림형제단의 마음대로 되지 않을 것임을 보여줬다. 물론 아직 어느 한쪽도 승리하진 못했다. 오랫동안 이집트의 가난한 사람들 사이에서 뿌리내려온 무슬림형제단은 설탕과 빵, 고기를 미끼로 빈민을 반혁명의 도구로 동원하고 있다. 군대의 움직임도 여전히 큰 변수다.

하지만 뉴욕타임스가 '끝나지 않는 혁명'이라고 표현한 이집트 혁명이 언제까지나 계속되진 않을 것이다. 나딤 페타이가 RoarMag.org에 기고한 아래 글은 이집트 혁명이 현재 직면하고 있는 과제를 설명하고 있다.

※ 아래 글은 제가 읽기 위해 한글로 옮긴 것으로, 상당히 많은 의역과 오역을 포함하고 있습니다. 반드시 링크한 원문을 참조하세요.


[RoarMag.org] 타흐리르, 파라오의 시작과 끝
2012년 12월 3일 나딤 페타이링크

이집트의 혁명가들이 타흐리르로 돌아왔다. 그들은 이번에야 말로 그들이 시작한 것, 파라오를 무릎 꿇리고 진짜 민주주의를 도입하는 것을 끝내려 한다.

1970년 사다트가 권력을 잡았을 때 정치적 자유의 성장 속에서 불법 단체였던 무슬림형제단은 정치 조직으로 성장했다. 그들은 그들의 관점을 공개적으로 표현할 수 있었고, 결과에 상관없이 그들의 이슬람 이데올로기를 확산시킬 수 있었고, 정부의 간섭 없이 아이들에게 [그들의 사상을] 주입할 수 있었고, 이집트의 가장 가난한 지역의 풀뿌리 조직에 퍼져나갈 수 있었다.

이로부터 40년이 지났다. 따라서 한 세대 이상 폭력적인 체제에서 유일한 야당이었다는 것, 무바라크 타도를 계기로 대의민주주의를 시행하게 됐을 때 의회와 대통령직을 수행할 능력이 있는 유일한 진짜 정당이었음은 분명하다.

2011년 1월 25일 혁명이 시작된 초기에 무슬림형제단은 저항에 동참하는 것은 도덕적으로 잘못된 일이라며 혁명에 참여하지 않았다. 그러나 이 운동이 승리 없이는 멈추지 않는다는 것을 깨달았을 때 그들은 인민의 편에 섰다. 모스크의 이맘(이슬람 성직자)들은 거리에서 충돌하고 있는 남자와 여자들의 이야기를 들으며 각각의 기도를 중단하기 시작했다. 어떤 흠결도 없는 아름다운 얘기로 들릴 것이다: 그러나 그것은 도덕적인 어떤 것이 아닌 정치적 결정이었다. 2011년 2월 11일 무바라크의 퇴진은 이집트 사람들이 본적 없는 빈 공간을 열어젖혔다. 무슬림형제단이 사태를 움직일 수 있는 시간이 왔다.

2012년 여름 이집트에서 첫 민주적 선거가 치러졌을 때 선택지는 서구의 우리 중 많은 이들에게 오랫동안 익숙했던 것이었다: 바로 차악을 선택하는 것. 그렇다. 구체제의 대리인인 아메드 샤피크와 무슬림형제단의 회원인 모하메드 무르시가 선택지였던 것이다. 구체제를 충분히 경험한 사람들은 무르시에게 투표했다. 그리고 그가 60년 만에 권력에 선출된 첫 대통령이 됐다.

이것이 이집트에서 일어났다고 여겨지는 믿음, 서구의 모든 이들이 듣고있는 이야기다. "혁명은 끝났다!"는 소식이 들려온다. 이것이 민주주의고 이것이 이집트 인민들이 싸워서 얻어내려고 했던 것이다고 말이다. 그러나 혁명의 무대 뒷편에서 진정한 선택권의 부족함에 불만을 표현하기 위해 선거를 거부한 많은 인민들은 계속되는 국가 탄압과 이슬람 정당이 요구하는 행정부로의 권력 집중에 맞선 투쟁을 결코 멈추지 않았다.

또한 이집트 혁명은 국제적 압력으로부터 동떨어져 있지 않다. 예를들어 국제통화기금(IMF)은 누가 권력을 잡든지 상관 없이 이집트의 경제 재건을 돕기 위한 수십억 달러의 원조를 약속하고, 긴급한 자금 지원에 대한 댓가로 극적인 신자유주의적 자유 시장 개혁을 요구하고 있다. 해마다 12억 달러 규모의 군사지원을 계속하겠다는 오바마의 약속과 짝을 이룬 이것은 매우 중요한 것을 보여준다: 무슬림형제단은 무바라크 체제와 그의 전임자들이 해왔던 것과 같은 세계적 군사력을 위한 또다른 애완견일 뿐이라는 것이다.

이집트의 지정학, 크기, 아랍 세계의 다른 부분에 대한 문화적 중요성은 서구ㆍ이스라엘과의 동맹을 중요하게 한다. 그렇기에 언론은 무르시를 그들의 동맹을 위한 이집트의 영웅으로 추켜세운다. 그들은 무르시를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의 휴전협상을 이끌어낸 사람이라고 찬양한다. 바로 그들이 사다트에게 대했던 것 처럼 국제사회는 무르시가 독재자가 아닌 책임감 있는 실용주의자이자 믿을만한 대화 상대라고 믿는다.

그런데 하마스와 이스라엘이 휴전을 발표한 며칠 후 바로 무르시는 이집트 인민뿐 아니라 국제 사회에 충격을 준 법령을 공표한다.


새 법령의 진실
자료:알자지라
-대통령은 국가기관의 정화를 목표로 한 법령을 말한다.
-새 법에 의하면 4년 간 대통령이 검사를 임명할 수 있다.
-무르시는 자신이 원하는 어떤 법도 제정할 수 있는 권력을 그 자신에게 부여했다.
-무르시의 법령은 사실상 현직 검찰청장을 파면할 수 있게 한다. 이는 어떤 권한으로도 대통령의 결정을 되돌릴 수 없다는 것을 뜻한다.
-무르시는 시위대 살해와 관련한 재판의 재심을 명령했다.
-무르시의 법령은 새로운 의회 선거 때까지 그의 권력을 유지한다.
-의회는 새로운 헌법이 제정되기 전까지 선출될 수 없다.
-무르시는 또한 새로운 헌법의 제안을 위한 기간을 늘렸다.
-무르시는 그 자신이 혁명을 수호하는 절대 권력이 되어야 한다고 말한다.




그 법령은 무르시의 절대 권력만 보장하는 것은 아니다. 그것은 또한 상원[슈라위원회]이 (새 헌법 제정을 담당한) 제헌의회와 마찬가지로 [사법부에 의해] 해산되지 않을 것임을 보장한다. [상원과 제헌의회] 둘 모두 동시에 무슬림형제단 대표자 다수에 의해 조정된다. 두 집단에서 몇몇은 저항에 참여하긴 하지만 그 과정을 중단시키진 못할 것이다.

지난 몇달 동안 새로운 법과 헌법의 일부에 의해 여성 권리가 억압받았을 뿐 아니라 끊임없이 이집트가 이슬람 국가로 변화하면서 두려움은 현실이 되고 있다. 많은 혁명가들이 인민의 혁명을 도둑맞았다는 의식이 확산되길 기대하며 몇 달동안 거리를 점거한 덕에 무르시는 점차 정당성을 잃어갔다.

몇몇 자경단은 여성에게 (언어와 육체적인) 공격을 가하는 폭력배를 찾기 위해 카이로 도심을 수색하고 있다. 여성이 안전해질 때까지 스스로를 폭력배와 여성 사이에 서있겠다는 그들의 태도는 평화적인 데서부터 더 폭력적으로 반응하는 것에 이르기까지 다양하다. 거리에서 여성을 학대한 남성의 눈에 페인트를 뿌리는 한 자경단을 볼 수도 있었다.

하지만 무르시가 새 법률을 밝히자 마자 많고 많은 사람들이 거리에서 충돌하기 시작했고 다시 한 번 분노한 사람들이 모여 악명 높은 타흐리르 광장에 횃불이 밝혔다. 상황은 무르시 얼굴의 절반은 무바라크의 얼굴을 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무함마드 무르시 무바라크". 그리고 그 안에 무슬림형제단의 실수가 있다: 그들은 대중의 혁명적 정신이 차갑게 가라앉을 만큼 충분히 기다렸다고 믿었다. 그들은 확실히 틀렸다.

지난 1년 반동안 이집트 사회는 전례 없는 정치적 자각 수준을 성취했다. 특히 무바라크 퇴진투쟁의 맨 선두에서 싸웠고 봉기에서 친구와 가족을 잃은 많은 사람들, 혁명가들 자신의 혁명적 정서는 특별히 강했다. 그래서 더욱 평범한 이집트 사람들이 무르시의 법률을 알게 됐을 때 그들은 자신의 투쟁이 소용 없었다는 생각을 하게 됐다. 그러나 그들은 포기하기보다 타흐리르로 돌아갔다. 그리고 또다른 점거를 시작했다.

하지만 이집트의 인민은 분열돼 있다. 무르시 지지자들과 비판자들 사이에 거대한 규모의 - 지금에서야 나타나기 시작한 - 종파간 분열이 성장했다. 한쪽에는 자유주의자, 좌파, 판사, 청년, 지식인, 혁명가들이 있다. 다른쪽에는 무슬림형제단 회원ㆍ동조자들과 설탕ㆍ빵 또는 (드물게) 고기에 매수당한 가난에 시달리는 사람들 - 18일간의 타흐리르 광장 점거 기간에 낙타를 타고 공격한 그 날 동원됐던 같은 사람들 - 이 있다.

거리는 다시 한 번 작은 전쟁터가 됐다. 경찰은 최루탄을 뿌리고, 무슬림형제단 민병대는 평화적인 반정부 인사들을 공격하고, 혁명가들은 돌멩이와 화염병을 던지고 있다. 이 모든 것은 우리가 안절부절 하면서 기다리던 군대가 제자리를 지키는 동안에 일어났다. 바로 혁명의 시작인 이러한 일들은 어느 방향으로든 저울의 균형추를 움직일 것이다. 만약 군대가 반정부 인사들의 편에 선다면 무르시가 오랫동안 인민의 반대편에 서는 것을 불가능하게 할 것이다. 그의 파라오법은 그것이 제기됐던 만큼 빠르게 종말을 고할 것이다. 그러나 이집트 군대가 무슬림형제단의 편에 서기로 결정한다면 내전이 벌어질 것이다.

2011년 11월 뉴욕타임스는 이집트 혁명은 끝나지 않는 혁명이라고 분명히 말했다. 그 시간, 그것은 진실이 됐다: 군사 최고위원회(SCAF)는 "과도정부" 형태로 권력을 잡았다. 이 기간 내내 시민에 대한 군사재판이 실시됐고 이집트 인민들은 단지 다른 사람들을 만나 하나의 억압적이고 전제적인 체제에 맞서기 위해 단순히 투쟁한 것 같았다. 체제 스스로 무너지진 않았다. 단지 얼굴이 바뀌었을 뿐이다. 무바라크로부터 SCAF로, 다시 무함마드 무르시로.

현재 우리는 느리고 고통스럽게 태어나고 있는 끝나지 않는 혁명의 마지막 무대를 목격하고 있다. 현실에서 대의민주주의적 과정에 포함된 내재적 오류에 대한 인식을 강화하고, 이집트 인민이 더 많은 무언가를 요구하며 봉기하는 게 가능할까? 세계 모든 곳에서 진정한 민주주의를 위한 봉기를 고무한 후 거의 2년이 된 이집트 사람들이 바리케이트로 되돌아와 그들 스스로 그와 같은 진정한 민주주의를 요구할 수 있을까?

이집트 군대의 [앞으로의] 결정을 포함한 이러한 질문들에는 단지 시간 만이 답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답변이 무엇이든 이 혁명이 시작된 후 거의 2년 지난 지금 그 끝이 가까워졌다. 끝나지 않는 혁명은 더이상 계속되지 않을 것이다. 이 혁명이 성공하든 실패하든 말이다. 따라서 지금의 사태들은 2011년처럼 단순하지 않을 것이다.

Posted by 때때로


"Egypt supports Wisconsin workers"

2월 11일, 무바라크의 항복 선언 이후 이집트의 저항은 아랍  세계 전체로 확산되고 있습니다. 리비아와 바레인에서는 경찰과 군대를 동원한 공격이 있었다고 합니다. 바레인의 왕세자는 강경한 시위대의 모습에 한 발 물러서 대화를 하자고 나섰지만 가다피는 더욱 강경하게 군대를 동원해 시위대를 공격하고 있습니다. 현대적 통신망을 마비시킨 리비아 정부 때문에 정확한 소식은 들어오지 않지만 무바라크가 이집트에서 시도했던, 깡패와 흉악범을 동원한 유혈사태 기도가 있었다고도 합니다.

이집트의 저항은 아랍 세계 전체로 확산되는 것과 동시에 국내적으로는 그 깊이를 더해가고 있습니다. 한국 언론에선 침묵하고 있지만 노동자들의 파업이 확산되고 있습니다. 이 노동자들은 또한 국가로부터 독립적인 노동조합의 건설에 나서고 있습니다. 주류 언론에서는 언제나 혁명의 예측할 수 없는 급작스러움과 신기술의 영향력을 떠들기에 급급합니다. 우리나라의 1987년 6월 항쟁을 돌이켜봐도 그렇습니다. 그 전해의 건대항쟁과 5ㆍ3 인천 항쟁, 다시 그보다 앞선 85년의 구로동맹파업과 일일이 거론하기 힘든 여러 싸움들이 1987년 6월 항쟁을 준비해왔음을 우리는 기억합니다. 이집트도 마찬가지죠. 이번 시위의 중심적 역할을 한 청년 운동인 4월 6일 운동은 2008년 4월 6일의 노동자 파업으로부터 시작됐습니다. 레디앙에 실린 문이얼의 '이집트 제2혁명 더 큰놈이 오고 있다'에서 이집트 노동자 투쟁의 역할을 온당하게 평가하고 있습니다.

사실 이번 이집트 혁명은 지난 몇 년 전부터 이집트 내에서 가열되기 사작한 좀 더 긴 과정의 클라이맥스였다고 할 수 있는데, 그 분기점은 2000년대 후반에 등장했던 이집트 노동자들의 파업이라고 할 수 있다.

2008년 4월 6일에도 또다시 파업이 발생하였다. 파업이 발생하고나서 수시간만에 파업 규모가 엄청나게 늘어나자 파업 참여자들은 무바라크의 포스터를 끌어내리고 이를 짓밟았는데, 급기야 파업 노동자들은 경찰과 충돌하는 과감성을 보여주기도 했다.
이런 장면은 무바라크가 통치한 지난 30여년 동안 한번도 볼 수 없었던 장면으로 이집트 정부 관계자들을 놀라게 했다. 이들 파업으로 파업 참여 노동자들은 또다시 보너스와 임금 인상 등의 양보를 획득했고, 이 파업을 지지하면서 활동하는 과정에서 새로운 청년운동인 '4월 6일 운동'이 탄생했다.
'이집트 제2혁명 더 큰놈이 오고 있다', 문이얼, 레디앙(링크)

노동자 투쟁이 중요한 것은 2008년의 경제위기와 연결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지난해 유럽은 2008년 경제위기의 영향으로 발생한 노동자 투쟁으로 몸살을 앓았습니다. 지금은 가라앉은 듯 하지만 그 투쟁이 언제 다시 터져나올 지 모르는 상태라는 것은 이집트 투쟁과 지난 며칠간의 위스콘신 노동자 투쟁이 보여줍니다.

이런 추세는 지난 2004년 이후 기업가들로 구성된 소위 '개혁 내각'이 국제통화기금이 제시한 개혁 노선을 밀어붙이면서 더욱 더 악화되었다. 이 과정에서 공직자들 사이에 부패가 만연했고, 인플레이션과 식료품 가격 상승으로 인해 이집트 서민들의 생활은 날이 가면 갈수록 곤궁해졌다.
'이집트 제2혁명 더 큰놈이 오고 있다', 문이얼, 레디앙(링크)

위스콘신주는 1959년 주 공무원의 단체교섭권을 인정하는 법률을 최초로 제정한 주이지만 지난달 취임한 공화당 스캇 워커 주지사와 주의회가 재정적자를 이유로 공무원의 단체교섭권을 사실상 박탈하고 연금 및 건강보험 혜택을 축소하는 내용의 공직사회 구조조정 입법을 추진했다.
'"공무원 단체교섭권 박탈" 법안에 위스콘신주 7만여명 찬반 시위', 한국일보(링크)

위 한국일보 기사의 제목은 참 재밌습니다. 저 제목만 보면 7만여명이 반으로 나뉘어 찬반  시위를 벌인 듯 하지만 사실 대다수는 반대 시위대입니다. 김낙호(트위터 아이디 capcold)씨가 트위터를 통해 전해오는 소식에 의하면 날로 연대가 확산되어 간다고 합니다. 네이버 백과사전에 의하면 위스콘신주 주도인 매디슨의 인구는 2006년 현재 22만7642명입니다. 인구 20만명의 도시에서 7만여명이 시위에 참여했다는 거죠. 서울로 치면 350만 명이 시위에 참여한 것과 마찬가지죠. 물론 이런 상황에서도 주지사는 '침묵하는 다수' 드립을 하고 있답니다.

중요한 것은 이들이 저항에 나선 이유가 하나의 사건에 기반하고 있다는 것이죠. 스티글리츠가 통렬하게 지적하고 있듯이 2008년 경제위기를 맞은 미국 정부가 기업 살리기(기업복지)에 나서는 가운데 더 가난한 다수의 삶은 내팽겨쳐지고 있습니다(물론 의료보험 등에서 부분적인 개선이 있었죠). 경제위기에 대응하는 유럽 각국의 대응도 이와 별로 다를 바 없죠. 재정적자의 위험성을 강조하면서 다양한 복지혜택 등을 축소하는데 골몰하고 있는게 지난해 노동자 투쟁의 원인이었습니다. 이집트와 아랍 세계 인민은 경제위기로부터 더욱 직접적인 타격을 받고 있습니다. 유럽 정도의 복지혜택을 누리지 못하는 이들에게 이러한 타격은 생존을 위협하는 더욱 직접적인 것입니다. 여기에 지난 몇 십년간 지배해온 독재자에 대한 분노가 결합된 것이죠. 사실 이 둘은 분리하기 어렵습니다. 어느 하나를 강제로 분리하려 했을 때 나머지 절반(정치적 민주화)도 기형적 변화의 길로 접어들 수 밖에 없죠.

아랍의 투쟁은 우리의 과거를 돌이켜보게 합니다. 1960년 4ㆍ19, 1979년 박정희 암살부터 12ㆍ12 쿠데타, 1980년의 5ㆍ17 쿠데타, 5ㆍ18 광주항쟁, 1987년의 6ㆍ10 항쟁과 이어진 7ㆍ8ㆍ9월 노동자 대투쟁 …. 아랍의 투쟁은 이제 시작일 뿐입니다. 비록 그 투쟁이 독재자의 총탄 앞에 스러진다고 할지라도 그 영향력은 아랍의 정치에 만만치 않은 영향을 미칠 게 틀림 없습니다.

가볼 만한 사이트
2011년 아랍 혁명 : 연구공간 L의 블로그, 아랍혁명에 관한 다양한 해외 소식을 번역해서 올리는 곳, 지젝ㆍ바디우ㆍ네그리의 글도 볼수 있다.
아이비스 에너지 전략 연구소 : 중동ㆍ이스라엘을 둘러싼 국제관계 분석 블로그. 아랍혁명에 관한 깊이 있는 분석을 제공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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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월 8일(현지시간) 이집트 수도 카이로의 타흐리르 광장에서 와엘 고님(왼쪽)이 시위대에 둘러싸여 연설하고 있다. 구글의 중동ㆍ북아프리카 마케팅 책임자인 고님은 지난달 27일 시위 중 경찰에 붙잡혔다가 7일 석방된 뒤 이집트 민주화 시위의 영웅으로 떠올랐다. 8일 타흐리르 광장의 연단에 선 고님은 "나는 영웅이 아니다. 이 자리에 있는 당신들이 영웅"이라고 말하고 "이념과 정파를 초월해 모두 한마음으로 이집트를 위해 싸우자"고 외쳤다. [중앙일보 카이로 로이터=뉴시스]

뉴욕타임스 "2주 만에 가장 많은 인파"

소강 상태로 접어들리라는 예상을 뒤엎고 8일과 9일 연이어 최대 규모의 시위가 이집트를 뒤흔들었습니다. AP 추산 25만명, 뉴욕타임스는 "2주 만에 가장 많은 인파", BBC는 "시위가 시작된 지난달 25일 이후 가장 큰 규모"라고 보도했습니다.

시위의 규모만 커진 것은 아닙니다. 9일 타흐리르 광장 주변에서 농성과 집회에 참여하던 일부 시위대는 의회로 행진을 시도했습니다. 의원들의 자진 사퇴와 의회 해산을 요구했죠.

이집트의 저항이 사그라들줄 모르자 이런저런 양보안을 내놓았던 술레이만이 시위대를 협박하고 나섰습니다. 9일 언론사 대표들을 만난 술레이만 부통령은 "경찰력을 동원해 문제를 풀길 원치 않지만, 시위사태의 장기화를 더는 견디기 어렵다"고 말했습니다. 또한 "정권이 뒤집히거나 무바라크 대통령이 당장 물러나는 일은 없을 것"이라며 "대화로 문제를 풀지 못한다면 남은 선택은 거대한 혼란과 쿠데타뿐"이라고 협박했습니다.

하지만 이집트 저항의 날로 급진화 하면서 그의 협박은 힘을 잃는 듯 합니다. 술레이만의 든든한 지원자로 보였던 미국조차도 '긴급조치 해제' '언론인ㆍ시민운동가에 대한 구타ㆍ폭력ㆍ체포 즉각 금지 및 집회와 표현의 자유 보장' '야권과의 대화' '정권이양 로드맵과 일정개발에 야권 인사 참여'를 촉구하고 나섰으니까요.

[조선일보] 수십만 시위대 재집결… 정부 "더이상 못 참아" 링크
[조선일보] 이집트 시위대 의회 앞 진출 … 해산 요구 링크


노동자의 시위ㆍ파업, 독립노동조합의 건설

특히 노동자들의 시위 진출이 이집트 저항의 중요 변수로 급부상 하고 있습니다. 100만 명 이상이 참여하는 시위에 당연히 노동자들도 포함돼 있었겠죠. 중요한 것은 그들이 '개인'이 아닌 '집단'으로서 정체성을 드러내기 시작한 것입니다.

텔레콤 이집트 노동자 300여 명이 임금 인상을 요구하며 시위를 벌였습니다. 이집트에서 가장 중요한 시설인 수에즈 운하에서도 노동자의 집단적 저항이 시작됐습니다. 수에즈운하당국 소속 5개의 서비스회사 소속 6000여 명의 노동자가 임금 인상과 노동조건 개선을 요구하며 8일부터 연좌시위에 들어갔습니다. 2000여 명의 섬유노동자도 노동권을 요구하며 시위를 벌였다고 하네요. 수도인 카이로에서는 공공부문 청소노동자 1500명 이상이 정부 중앙청사 앞에서 시위를 했습니다.

이러한 흐름은 독립적이고 민주적인 노동조합의 건설로 나타나고 있습니다. 이미 지난달 30일 독립노동조합연맹이 건설됐다고 합니다. 한국에서 1987년 6월의 대중시위 이후 노동자의 집단적 저항까지 한달이 걸렸죠. 그리고 노동자 대투쟁 이후 10년 가까이 흐르고서야 민주노총이 만들어졌다는 것과도 비교해보세요. 이집트의 상황은 무척 빠르게 발전하고 있습니다.

[참세상] 이집트 봉기, 도약하는가 링크


이집트 저항의 새 아이콘 '구글'?

특별한 지도자 없이 진행되던 이집트 저항에서 30살의 청년이 시위의 아이콘으로 급부상하고 있습니다. 그는 바로 구글의 중동ㆍ북아프리카 마케팅 매니저인 와엘 고님(Wael Ghonim)입니다.

지난달 27일 시위 중 체포됐었던 고님은 11일만인 8일 풀려나 타흐리르 광장의 군중 앞에 섰습니다. 그는 "나는 영웅이 아니다. 이 자리에 있는 당신들이 영웅"이라고 말하고 "이념과 정파를 초월해 모두 한마음으로 이집트를 위해 싸우자"고 외쳤습니다.

[중앙일보] 'SNS 영웅' 고님, 시위 다시 불붙이다 링크
[조선일보] '구글 청년' 고님이 떴다 … "시위 새 목소리를 얻다" 링크


이슬람 세계에 돌파구를 내다

중동의 정치지형을 지배해온 것은 이슬람 근본주의의 지배(사우디아라비아)와 테러(알 카에다), 시아파-수니파의 종파간 대립, 기독교ㆍ유대교와의 대결이었습니다. 이러한 상황은 서구 지배자들에게는 물론 좌파들에게까지도 이슬람 세계의 종교족 완고함이라는 이미지를 떨치기 어렵게 했죠. 일부 좌파도 중동지역 인민의 '민주주의적 자질'을 의심할 지경이었습니다. 물론 여기에는 강력한 탄압으로 인해 세속주의적 대안이 성장하지 못했던 이유도 있습니다.

그러나 이번 이집트의 저항은 이슬람 세계를 둘러싼 세계의 이러한 인식은 물론 무슬림 스스로의 인식에도 큰 균열을 나았습니다. 1979년 이란 혁명 이후 처음으로 종파간 대립을 뛰어넘는 '대중적' 저항이 가능하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죠. 이집트는 알 카에다의 2인자인 알 자와히리의 모국이지만 2주가 넘어가는 이번 저항에서 알 카에다는 그 어떤 역할도 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심지어 이란의 최고 종교 지도자인 하메네이조차도 지난 2월 4일 이번 이집트 혁명의 '세속적' 성격을 인정하면서 "30여년 전에 발생한 위대한 이슬람 혁명이 이집트나 튀니지, 기타 다른 이슬람 국가들에서도 똑같이 일어날 것이라고 기대하는 것은 현실적이지도, 논리적이지도 못하다"라고 말했다."
- '종교 뛰어넘는 단결, 새로운 저항운동', 문이얼(아이비스에너지전략연구소), 레디앙

이집트의 저항이 초기와 같은 열기를 계속 지닌채 전진할 수 있을지는 아직 의문입니다. 대중의 열기를 담을 용기(실린더), 즉 조직의 부재 때문입니다. 물론 대중적 기반을 지닌 무슬림형제단이 좀더 세속주의적으로 움직이려는 모습을 보이고 있긴 하지만 내부의 근본주의적 세력의 압력 또한 무시할 순 없습니다. 혁명의 전진이 꺾였을 때 퇴행적인 종교 근본주의적 압력은 다시 커질 가능성이 높습니다.

그럼에도 이번 이집트 혁명은 실제적인 결과를 낳고 있기도 합니다. 대중의 폭발적 저항에 놀란 이슬람 세계의 지배자들은 아래로부터의 압력에 밀려 위로부터의 변화를 꾀하는 듯 합니다. 심지어 그 완고한 사우디아라비아에서조차 말이죠. 알-파이잘 사이디 왕자는 지난주 5명의 국민을 불러 얼마전 발생한 홍수 사태의 수습을 위한 정부의 노력을 설명했습니다. 겨우 5명이라고는 하지만 그 중에는 정부를 비판해 2년간 감옥에 갇혔었던 반정부 블로거도 포함돼 있다는 게 중요합니다.

[레디앙] 이집트 중간결산 … 권력자 퇴진선언 이어져, 중동이 바뀐다 링크


굳은 벽에 균열을 내고 전진하기 시작한 이집트 인민에게 승리가 함께하길 바라며 오늘의 이집트 소식을 마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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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바라크 '상징적 장례식' |이집트 반정부 시위대들이 6일 수도 카이로의 타흐리르 광장에서 아랍어로 '나가라' '애도하지 않는다' 등을 적은 천을 들고 독재자 호스니 무바라크 대통령에 대한 상징적 장례식을 벌이고 있다. 카이로=AP연합뉴스


술레이만과 무슬림형제단의 타협(이집트 정부ㆍ야권 '개헌委 구성' 합의 링크)으로 이집트 혁명이 한 고비를 넘는 듯 합니다. 이 타협이 가능할지, 타협이 성사된다고 해서 분노한 대중을 만족시킬 수 있을지는 아직 알 수 없습니다. 진행되는 상황은 한국의 1987년과 비슷해보입니다.

그렇지만 이집트 내 정치적 대안세력의 현 상황은 지금의 타협을 어렵게 할 가능성이 크죠. 월러스틴("제2차 아랍 봉기 최대 피해자는 미국" 링크)의 지적 처럼 대안으로 부상하고 있는 세속적 자유주의 세력은 대중적 기반을 지니고 있지 못합니다. 대중적 기반을 지닌 거의 유일한 대안 세력인 무슬림형제단은 이집트의 지정학적 위치로부터 제한을 받고 있습니다. 그들은 아프가니스탄의 탈리반보다는 훨씬 세속적이지만 미국으로부터 여전히 '이슬람 근본주의' 조직이라는 의심을 받고 있습니다. 그리고 미국은 수에즈 운하가 있고 그동안 "급진 이슬람 혁명에 대한 방어진지이자 이스라엘의 이해와 공조"에 앞장서온 이집트를 자신의 통제권에서 놓아주려 하지 않습니다. 즉, 무슬림형제단은 탈레반과 같은 길(미국에 대한 적극적이고 군사적인 저항)을 걸을 의지가 없는 상황에서 집권의 꿈을 실현하기 위해서는 미국의 눈치를 안 볼 수가 없습니다. 이러한 상황이 바로 어제의 타협의 배경이 된 듯 합니다.

이집트 정부와 야당, 미국 등은 이와 같은 타협을 통해 이집트 혁명이 '연착륙'하길 바랍니다. 하지만 권영숙이 지적하 듯 처음부터 사회경제적 쟁점과 정치적 민주주의가 함께 제기되고 있는 상황에서 그 타협은 한국에서보다 더욱 불안정할 가능성이 큽니다.

"현재의 시위는 1)애초에 두 명의 빈민노점상의 분신항의에서 촉발했듯이 사회경제적인 성격이 강하다는 점, 2)그러면서 국영기업을 주축으로 한 '국가자본주의'적 성격이 강한 이 나라에서는 정치엘리트=경제엘리트(소위 state business elite)인지라, 무바라크등 소수 정치엘리트에 대한 공격과 경제적인 요구의 양자가 구분되기 어렵다는 점이 특징이다(예를 들어 이 국가는 군부가 방산업체 대부분을 경영하는 식이다). 토니 블레어, 오바마등이 그래서 이집트사태 해결에  '경제개혁'이 중요한 과제라고 이미 말했었다."
- 이집트 시위의 성격과 전망, 권영숙(링크)

게다가 이러한 쟁점은 국제적인 상황으로 인해 해결될 가능성이 낮습니다. 이집트 인민들의 경제적 어려움은 2008년 시작된 세계적 경제위기와 큰 연관성을 갖습니다. 곡물가격은 2008년 이후 다시 최고점을 찍고 있습니다(미국 '달러 풀기' 정책이 중동 혁명의 도화선? 링크). 미국의 양적완화는 개발도상국에서의 인플레이션을 더욱 자극하고 있죠. 게다가 여전히 회복되지 않는 경제 상황에서 원유가격의 급변을 원치 않는 미국과 선진국가들은 이집트의 불안을 좌시할 수 없습니다. 미국은 '믿을 만한' 세력이 지금의 상황을 최대한 빨리 통제하길 바랍니다. 그들은 이집트 군부와 술레이만 부통령이 야권과의 타협을 통해 최대한 빨리 '질서'를 회복하길 바라는 듯 합니다(미, 이집트 정책 점진적 개혁' 가닥 링크). 하지만 그들이 원하는 세력은 혁명에 나선 인민들이 원하는 세력은 아닙니다. 미국을 배경으로 상황을 통제하려 노력하는 술레이만은 무바라크 하에서 탄압에 가장 앞장섰던 인물이기도 합니다(중동의 가장 공포스러운 스파이 두목 … '미스터 고문' 술레이만 링크).

튀니지에서 시작된 아랍의 저항은 이집트에서 전세계적인 폭풍으로 확대되고 있습니다. 이집트 이전부터 저항의 물결이 일고 있던 알제리 등은 물론 오래된 화약고인 발칸반도에도 불이 옮겨붙는 듯 합니다. 두려움을 떨쳐내고 일어선 이집트 인민의 반란이 성공할지 실패할지는 아직 알 수 없습니다. 하지만 2011년을 연 이집트의 저항은 21세기 첫 10년에서 가장 중요한 사건으로 지금 현재도 계속되고 있습니다. 위대한 길을 향해 과감한 발걸음을 뗀 이집트 인민에게 승리가 함께하길 바랍니다.

●기타 참조할 만한 글(아이비스 에너지 전략 연구소)
- 튀니지 항쟁, 자본-국제기구가 격발
- 이집트서 미 제국 붕괴조짐을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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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바라크 타도"라고 적힌 푯말을 들고있는 이집트 소녀. [AP=연합뉴스]


튀니지에 이어 이집트를 뒤흔드는 아랍 봉기에 대해 월러스틴이 논평을 내놨습니다. 그는 이번 시위와 파업을 1916년 오스만트루크 제국에 저항한 샤리프 후세인 빈 알리의 봉기를 잇는 2차 아랍 봉기라고 부릅니다.

월러스틴의 글은 한 청년의 분신으로부터 시작된 이번 시위가 어떻게 지네 엘 아비디네 벤 알리 튀니지 대통령을 쫓아낼 수 있었느지에 대한 분석으로부터 시작합니다. 그리고 현재 상황에서 가장 큰 관심을 모으는 두 가지에 대한 분석과 전망을 내놓습니다. 첫 번째는 이집트 국내에서의 승자는 누가 될 것인가이고 두번째는 이번 봉기가 세계 체제의 권력에 어떤 영향을 미칠 것인가 하는 점입니다.

국내 상황은 복잡합니다. 그것은 지금 상황에서 권력을 잡을 의지와 열정을 지닌 조직된 정치 세력의 부재로부터 비롯합니다. 우선 무바라크로부터 권력을 이양받을 유력한 후보를 보유한 부르주아 자유주의자들은 그들의 의지와 달리 탄탄한 기반을 갖지 못했습니다. 1917년 볼셰비키가 그랬던 것과 같은 세석주의적이고 급진적인 세력은 존재하지 않습니다. 권력을 잡고자 하는 의지와 대중적 기반을 지닌 세력은 이슬람 급진주의자들입니다. 이집트에선 '무슬림 형제단'이 바로 그들이죠. 일부 사람들은 이들 무슬림 형제단을 탈레반과 동일시 하는 잘못을 하기도 합니다. 이들은 월러스틴이 지적했 듯이 샤리아 율법을 시행하고자 하는 극단적인 이슬람과 어느정도 세속적인 터키에서의 이슬람과 같은 세력의 중간에 위치해 있습니다.

월러스틴의 두 번째 분석은 국제적인 세력관계에 대한 것으로 이어집니다. 많은 이들이 지적하는 것 처럼 이번 봉기의 가장 큰 패배자는 미국일 수밖에 없습니다. 미국은 이전과 달리 상황을 전혀 주도하고 있지 못합니다. 그들은 이집트와 아랍 지역 내의 상황에 수동적으로 끌려다니고 있습니다. 월러스틴은 지적하지 않지만 쇠락하는 제국일지라도 그들의 개입능력을 우습게 봐선 안 될 것입니다. 이미 미국은 이집트 군부와의 채널을 가동시키고 있는 듯 합니다.

19세기 이후 외세에 자신의 운명을 맡겨와야만 했던 아랍 민중들이 스스로 자신의 운명을 결정하기 위한 위대한 여정에 나섰습니다. 이 운동은 그리 쉽게 패배하진 않을 것입니다. 하지만 대안적 정치세력이 부재한 상황에서 승리도 그리 만만한 것만은 아닙니다. 결국은 그들 스스로 운명을 개척하기 위해선 급진적 대안을 건설하는게 무엇보다 필요할 것입니다. 아래에 월러스틴 논평의 일부를 첨부합니다.


[월러스틴 논평] "제2차 아랍 봉기, 최대 피해자는 미국"

그렇다면 누가 승자이고 누가 패자인가? 튀니지와 이집트 아니 아랍권 전체에서 누가 권력을 잡게 될지 우리는 앞으로 최소 6개월간 혹은 그보다 더 오랜 시간 동안 알 수 없을 것이다. 자연발생적인 봉기는 1917년 러시아와 같은 상황을 만들고 있다. "권력은 길거리에 있다"는 레닌의 말과 같은 상황을 만들고 있다. 볼셰비키가 그랬듯 조직되고 결연한 의지를 가진 세력만이 권력을 잡을 수 있다.

아랍 국가들의 정치 상황은 각각 다르다. 볼셰비키처럼 강력한 조직을 가지고 있고 세속적이며(이슬람교 신정체제를 추구하지 않음 : 옮긴이) 급진적인 정당을 가지고 있어서 권력을 잡을 준비가 되어 있는 세력은 현재 아랍 국가 어디에도 없다. 주역이 되고 싶지만 탄탄한 기반은 거의 없는 부르주아적 자유주의 운동만이 다양하게 있을 뿐이다.

가장 조직화된 운동은 이슬람주의자들의 운동이다. 그러나 이슬람주의 운동도 하나의 색깔을 가지고 있지 않다. 그들이 추구하는 이슬람주의 국가의 형태는 매우 다양하다. 터키처럼 다른 세력들에게도 비교적 열려 있는 형태에서부터 (탈레반 정권 시절의 아프가니스탄처럼) 샤리아 율법의 엄격히 적용하는 가혹한 형태까지 다양하다. 이집트 무슬림형제단은 그 중간 정도에 있다. 어떤 체제가 될 것인지는 불확실하고 시시때때로 바뀌기 때문에 국내적인 차원에서 누가 승자가 될지는 너무나 불확실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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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집트 @중앙일보 연합뉴스

튀니지에서 시작한 저항의 물결이 이집트를 뒤엎고 있습니다. 내 코가 석잔데 머나먼 나라의 이야기까지 신경쓸 여유가 있을까 싶을 때도 있어요. 사람들을 열광시켰던 시위와 파업도 시간이 지나고 나면 별것 아닌 것처럼 보일 때도 많죠. 최악의 경우는 이란 혁명 처럼 혁명의 열매가 급진 이슬람주의자들에게 떨어지기도 하죠.

그럼에도 언제나 억압과 착취에 저항하는 시위와 파업은 큰 희망을 줍니다. 특히 지난해부터 이어져온 여러 투쟁들은 어떤 하나의 연관을 보여주고 있으니까요. 2008년 그 정체를 뚜렷이 드러낸 현재의 경제위기가 여전히 출구를 찾지 못한다는 데서 이 투쟁들의 중요성이 두드러집니다. 그리스와 프랑스, 스페인을 휩쓴 파업은 경제위기의 직접적인 여파죠. 이번 튀니지와 이집트의 저항은 경제위기를 극복하기 위한 서구 선진국, 특히 미국의 경제적 조치가 제3세계의 억압적인 정치체제와 만나는 지점에서 터져나왔습니다.

경제위기를 극복하기 위해 미 연준은 끊임없이 돈을 찍어내고 있습니다. 이른바 '양적 완화'죠. 이름은 참 멋집니다. 하지만 이 찍어낸 돈들은 미국의 경제를 부흥시키긴 커녕 다른 국가들로 흘러들어가 주식 거품을 키운다던가(한국 등 동아시아) 인플레이션을 악화시키고 있습니다. 게다가 2000년대 들어서 더욱 심해진 곡물과 원자재에 대한 국제적인 투기는 제3세계 인민들의 삶을 더욱 위태롭게 하고 있습니다. 튀니지에서 노점상의 자살로 이 시위가 시작됐다는 것이 이점을 분명하게 보여주고 있기도 하죠. 어떤 식으로 이 시위가 타협점을 찾을지 모르겠습니다. 더구나 이집트는 그 지정학상 위치 때문에 국내의 문제만으로 끝나기는 어려울 듯 싶습니다. 김세균 교수 홈페이지에 이와 관련된 글이 있더군요.

이집트 시위의 성격과 전망(링크)

이번 이집트의 저항은 지난해 프랑스 시위 이상의 격렬한 충돌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그 이유는 위에 링크한 글에서 지적하고 있듯이 사회경제적 이슈가 정치적 이슈와 분리되지 않는 이집트 정치사회의 특징과도 연결돼 있습니다. 즉, 패배든 승리든 이집트의 저항은 무척 큰 판돈을 놓고하는 도박과 비슷합니다. 프랑스와 같이 물밑에서 부글부글 끓는 것으로 가라앉기만 바라긴 쉽지 않다는 것이죠. 튀니지에서 시작된 불꽃이 지중해와 인도양을 잇는 이집트로 튀었습니다. 다음 불꽃은 어디가 될까요.



튀니지 @boston.com Getty Imag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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