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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03.10 19:08

통계로 본 한국사회의 성폭력 쟁점2018.03.10 19:08

서지현 검사의 성폭력 폭로 후 '미투 운동'이 활발히 전개되고 있다. 피해 여성은 물론 남성들도 '위드유'를 외치며 사회에 만연한 성폭력 문화 개선을 위한 운동에 팔을 걷어부치고 나섰다. 끝없이 이어지는 폭로를 보고 있자면 한국 사회의 성폭력 현실에 대해 한숨만 나오곤 한다. 이어진 미투 선언에 여권의 유력한 차기 대권 주자인 안희정 전 충남지사가 자리에서 내려왔다. 더불어민주당의 민병두 의원도 국회의원직을 사퇴했다. 사실에 대한 다툼이 이어지고 있긴 하지만 사회 전반에 만연한 성폭력ㆍ성희롱 현실을 보여주고 있다. 이미 지났지만 3월 8일 세계 여성의 날을 맞아 한국 사회 여성이 처한 성폭력 현실을 몇몇 통계로 살펴보겠다.


1. 한국 여성 10명 중 2명은 평생 한 번 이상 '신체적 성폭력'을 겪는다



여성가족부가 2016년 전국의 여성 5400명과 남성 1800명을 대상으로 한 '성폭력 실태조사'에 따르면 여성의 72.7%는 평생 동안 한 번 이상의 '성폭력'을 경험한다. 여기서 말하는 '성폭력'은 △강간·강간미수·성추행을 포함한 신체적 성폭력 △음란 메시지 △몰래 카메라 △스토킹 △성기 노출 △성희롱을 말한다. 이 중 '신체적 성폭력' 경험만 따져도 여성의 21.3%가 평생 한 번 이상 경험한다.



이러한 경험은 여성을 범죄 피해자가 될 두려움에 떨게 만든다. 여성부 조사 문항 중 성폭력과 관련된 6개 문항에 '전혀 그렇지 않다'를 1점, '매우 그렇다'를 4점으로 4단계로 나눠 점수를 매겨본 결과 여성의 두려움은 평균 2.5점이다. 남성 평균이 1.5점임을 고려하면 여성이 범죄 피해에 대해 매우 큰 두려움을 갖고 살아간다는 걸 알 수 있다. 특히 '밤 늦게 혼자 다닐 때 성폭력에 대한 두려움을 느끼나'라는 문항에 여성의 76.3%가 '약간 그렇다' 또는 '매우 그렇다'고 답했다. '안전한 대한민국'이란 여성에게 여전히 먼 나라 얘기인 것이다.


2. 성폭력 범죄는 줄지 않고 있다



여성의 성폭력에 대한 두려움엔 근거가 있다. 대검찰청의 '2017 범죄분석'에 따르면 4대 강력 흉악범죄(살인·강도·방화·성폭력) 중 '성폭력'만 꾸준히 늘고 있다. 인구 10만 명당 발생건수를 보면 성폭력의 경우 2007년 29.1에서 2016년 56.8로 꾸준히 늘어왔다. 같은 기간 강도는 9.1에서 2.3으로, 방화는 3.4에서 2.9, 살인은 2.3에서 1.8로 줄었다.

사회적 인식이 개선되면서 신고율이 증가했고, 기존 '성폭력'으로 다루지 않던 행위들이 '성폭력'으로 여겨지게 된 것도 영향을 미쳤다. 2010년 '성폭력 범죄 처벌 등에 관한 특례법'이 제정됐고 2013년엔 성폭력 범죄의 '친고죄' 조항이 삭제된 것은 물론 '성적 목적의 공공장소 침입'(현재는 '다중이용장소'로 개정)에 대한 처벌 조항이 신설됐다.

2016년 발생한 성폭력 범죄 2만9357건 중 '카메라 등 이용 촬영' 위반이 5249건으로 전체 성폭력 범죄 중 17.9%를 차지했다. 2007년 564건과 비교하면 10년 새 10배로 늘어난 것이다.



그렇다고 여성에 대한 성폭력 범죄의 증가가 '범죄'의 범위가 늘어난 것에만 원인을 둘 수는 없다. '폭행 또는 협박을 이용해 사람을 추행한' 강제추행부터 강간과 강간살인치사·강간상해치상·특수강도강간 등의 심각한 성폭력 범죄 만을 따져도 2007년 2659건에서 2016년 5412건으로 두 배 넘게 늘어났다. 2016년 전체 성폭력 범죄 중 강제추행 이상의 성폭력 범죄는 여전히 전체의 70.7%를 차지하고 있다.


3. 성폭력 범죄의 증가와 달리 법원에서의 판결은 가벼워지고 있다



성폭력 범죄가 증가하고 있지만, 이 범죄에 대한 법원의 판결에서 사형·무기징역·유기징역의 실형 판결은 점점 줄고 있다. '강간과 추행의 죄' '성폭력특례법' '성폭력처벌법' '아동·청소년보호법' 위반과 관련한 법원의 1심 판결 추이를 보자면 2007년 43.9%에 달하던 실형 비율은 2009년 45.5%로 정점을 찍은 후 꾸준히 줄어 2016년엔 28.0%에 그치고 있다. 집행유예의 비율도 같은 기간 44.0%에서 39.1%로 줄었지만 그 폭이 적다. 큰 차이를 보이는 것은 '재산형'의 비율이다. 성폭력 범죄에 대해 2007년 12.1%에 그치던 재산형의 비율은 2014년 39.8%로 정점을 찍고 이후 약간 줄어 2016년 32.8%를 기록했다. 법원의 판결은 한국 사회 여성이 겪는 경험과 정서적 두려움의 현실에 여전히 닿지 못하고 있는 듯 보인다.

'미투 운동'은 한국 사회의 '적폐'가 단순히 몇몇 정치 분야의 문제 만은 아님을 보여준다. 사랑하고 아끼던 '남성' 동료들이 한 순간에 '범죄자' 신분이 되는 상황에서 몇몇 남성들은 불만을 느낄 수도 있다. 하지만 남성과 여성 사이 폭력적 관계가 종결됐을 때 남성에게 부여된 불합리한 의무와 강제도 사라질 수 있을 것이다.


Posted by 때때로
2012.12.20 15:32

18대 대선, 보수파의 승리일까 쟁점2012.12.20 15:32


19일 대선 개표방송을 지켜보고 있는 민주당 지도부. [사진 한겨레]


어제(19일) 18대 대통령 선거가 치러졌다. 75.8%의 투표율을 기록하며 승패의 향방은 안개속에 숨은 듯 했다. 투표율이 17대보다 무려 12.8% 급증한 것이다. 유권자 수가 늘었다는 걸 고려하면 굉장히 많은 사람들이 적극적으로 자신의 정치적 의사를 표현한 것이다.

1. 17대 대선과의 비교 … 보수가 결집했는가

6시 투표가 마무리되고 출구조사가 발표되면서부터 야권에 어두운 그림자가 짙어지기 시작했다. 여론조사와 출구조사를 통해 '박빙'으로 예상되면서 밤 11시가 지나야 향배가 갈릴 것이라는 보도가 이어졌지만 결과는 의외로 싱겁게 드러났다. 대략 20%의 개표가 이뤄진 저녁 8시30분쯤부터는 벌어진 표차가 줄어들지 않았고 10시가 넘어서면서부터 방송에서는 박근혜 후보가 '당선확실'하다고 보도하기 시작했다.

안철수가 양보하고, 심상정ㆍ이정희와 같은 '진보 진영' 후보까지 사퇴해 표를 몰아준 상황에서 어떤 일이 일어난 걸까(김소연ㆍ김순자 후보의 표는 별 영향 없었다고 봐야 할 것이다). 한겨레는 이렇게 적고 있다.

"'똘똘 뭉친 보수의 위기의식과 박근혜 후보의 인물 경쟁력'. 박근혜 새누리당 후보가 1987년 대통령 직선제 도입 이후 처음으로 보수 진영과 진보 진영의 맞대결 구도로 18대 대선에서 승리한 요인은 이렇게 요약된다." - 한겨레ㆍ링크

한겨레는 보수의 결집을 박근혜 승리의 제1 요인으로 꼽고 있다. 그러나 막상 드러난 표를 보면 그리 말하기 어려울 것 같다. 2007년 17대 대통령 선거에서 이명박 한나라당 후보가 얻은 표는 1149만2389표다. 같은 보수 진영이라고 할 이회창 무소속 후보가 얻은 표는 355만9963표다. 이 둘을 합치면 1505만2352표로 이번 대선에서 박근혜가 얻은 1577만3128표보다 겨우 72만776표 적다. 여러 야권 후보들이 사퇴라는 방식으로 문재인 후보에게 힘을 몰아준 것을 진보의 '결집'이라고 말한다면 박근혜 후보 또한 16대의 이인제, 17대의 이회창과 같은 표를 갈라먹을 보수 후보가 없었다는 점에서 보수의 '결집'이라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새누리당은 박근혜를 후보로 선출하면서부터 예전과 달리 이러저러한 잡음을 일찌감치 제거했다. 문재인과 안철수의 단일화보다 훨씬 일찍부터 말이다. 즉 보수가 진보의 결집에 '위기의식'을 느껴 결집했다는 것은 말이 안 된다. 한겨레의 분석이 옳다고 하려면 이명박 정권의 낮은 인기에 위기의식을 느낀 보수가 일찌감치 결집해있었다고 주장해야 할 것이다. 이러한 주장은 궤변일 수밖에 없다. 경향신문은 이렇게 말한다.

"정부ㆍ여당의 승리가 아닌 '박근혜의 승리'라고 평가될 만했다. 정권교체 여론은 60% 가까이 됐지만, 대선 결과는 반대였다." - 경향신문ㆍ링크

애시당초 보수 진영이 이명박 정권의 위기에 동질감을 느꼈다면 '정권교체 여론'이 60% 가까이 됐다는 건 틀린 사실이 된다. 여론조사마다 조금씩 다르긴 하지만 매우 높은 비율로 정권교체 여론이 존재했다는 것은 거의 틀림 없을 것이다. 그래서 조선일보는 이렇게 쓰고 있다.

"지난 5년간 이명박 대통령과 갈등을 밎으면서 '여권내 야당'으로 자리매김했던 점도 작용했다. 특히 이 대통령의 세종시 수정 반대는 그 입장의 옳고 그름을 떠나 박 당선인의 대선 출발점이자 박 당선인이 신뢰의 정치인으로 평가받는 결정적 계기가 됐다." - 조선일보ㆍ링크

결국 이번 대선의 결과가 대한민국 유권자 정치의식의 '보수화'를 나타내거나 보수 진영의 '결집'을 보여주는 것은 아니다. 투표수가 698만8605표였음에도 박근혜가 이명박보다 더 가져간 것은 겨우 72만776표다. 즉 한나라당-새누리당은 지난 5년간 잃은 것도 없지만 얻은 것도 없다고 보는 것이 정확할 것이다(물론 당시 이명박ㆍ이회창에게 투표한 1500여 만 명이 이번에도 박근혜에게 투표했다고 말할 수는 없을 것이다).

그에 반해 문재인 민주당 후보는 1469만2632표를 얻었다. 이는 지난 17대 대통령 선거에서 정동영ㆍ권영길ㆍ문국현이 얻은 826만2300표보다 643만332표 더 많은 것이다. 이 수치는 이번에 늘어난 투표수 698만8605표에 육박하는 수치로 늘어난 투표수의 대부분을 문재인 후보가 얻었다고 말할 수도 있을 것이다(물론 이도 마찬가지로 지난 대선과 이번 대선에서의 투표성향 변화에 대한 추적조사가 이뤄지지 않아 그저 가정일 뿐이다). 16대 대통령 선거에서 노무현 후보가 얻었던 1201만4277표 48.91%의 득표와 견주어도 0.89% 덜 얻었을 뿐 이다.

결론적으로 박근혜와 새누리당은 '정권교체의 열망'을 받아안아 자신들의 지지를 지켰다. 문재인과 민주당은 진보정당의 표까지 합쳐 자신들이 얻을 수 있는 최선의 지지를 얻었다고 보인다.

2. 민주당이 얻지 못한 민심은 어디에 있을까

여기서 더 필요했던 건 새누리당과 박근혜 지지층을 분열시키고 그들을 야권의 표로 획득하는 것이었다. 그러나 민주당은 이러저러한 방법으로 안철수 지지자와 진보정당 지지자들을 획득할 순 있었지만 새누리당 지지자에 뿌리내리진 못했다. 왜그랬을까. 이를 위해서는 우선 박근혜의 지지자가 어떤 사람들인지 살펴봐야 할 것이다. 하지만 아직까지 추측일 뿐 정확한 연령별ㆍ계층별 투표 성향에 대한 자료는 존재하지 않는다. 조심스럽지만 '시사오늘'에서 12월 13일 '박근혜 지지율의 재발견 … 목소리 작은 사람들'(링크)이라는 기사에서 제시한 수치가 유용할 것 같다. 이 자료는 동아일보와 리서치앤리서치가 11일 조사한 것이다.

● 직업별 지지율
-농림 임업 어민: 朴 55.2-文 37.1%
-자영업: 朴 50.2-文 37.1%
-화이트칼라: 朴 32.7-文 53.5%
-블루칼라: 朴 43.1-文 48.1%
-가정주부: 朴 55.6-文 32.3%
-학생: 朴 27.9%-文 57.7%
-무직: 朴 60.4-文 19.3%

● 월(月) 소득별 지지율
-200만 원 이하: 朴 56.1-文 27.6%
-201만~300만 원: 朴 40.1%-文 47.6%
-301만~400만 원: 朴 43.5-文 47.3%
-401~500만 원: 朴 39.4-文 50.6%
-501만 원 이상: 朴 40.8-文 46.4%

● 학력별 지지율
-중졸 이하: 朴 63.9-文 23.5%
-고졸 이하: 朴 52.8-文 33.1%
-대재(大在) 이상: 朴 37.4-文 49.6%

노동자 계급 다수는 문재인을 지지하고 있음을 '화이트칼라'와 '블루칼라'의 지지율 성향에서 확인할 수 있다. 이를 '월 소득별 지지율'과 비교하면 '계급투표'의 현실을 확인할 수 있다. 노동계급 다수가 문재인을 지지함에도 월 소득 200만원 이하에서는 박근혜에 대한 지지가 압도적으로 높다는 것은 야권이 정규직 대기업 노동자에게는 지지를 받고 있지만 비정규직 중소기업 노동자에게는 지지를 받고있지 못하다는 뜻이다.

이는 통계청이 올해 3월 발표한 '근로형태별 부가조사 결과'를 통해 확인할 수 있다. 1~3월 정규직 임금근로자의 월평균 임금은 211만3000원, 비정규직 월평균 임금은 143만2000원이다. 같은 조사에 따르면 전년 대비 늘어난 비정규직 임금근로자의 대부분을 60대 이상 고령층이 차지하기도 했다. 60대 8만3000명, 50대 4만1000명, 40대 2만2000명이 늘었다. 즉 부가적으로 확인할 수 있는 사실은 50대 이상의 박근혜 지지와 박정희 향수는 현재의 경제정책 실패로 인한 불만에서 기인할 것이라는 것이다.(경향신문ㆍ링크)

여성에 대해서도 비슷한 사실을 확인할 수 있다. 8월 조사한 경제활동인구조사 부가자료에 따르면 여성 임금근로자 월평균 임금은 149만7000원이다. 이는 남성 임금근로자 월평균 임금 255만9000원보다 100만원 이상 적은 것이다. 게다가 절반 이상은 59.4%가 사회보험 혜택이 없는 비정규직 일자리에서 일하고 있다.(뉴시스ㆍ링크)

즉 민주당은 저임금 비정규직 노동자, 여성 노동자와 같은 더 소외되고 억압받는이들에게 지지를 얻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게다가 문재인 민주당 후보는 슬로건으로서는 철회했지만 거의 일관되게 '대한민국 남자' 컨셉트의 선거운동을 펼쳤다. 첫 선거광고에서는 일하고 있는 아내 옆에서 자고 있는 모습을 보여주기까지 했다. 남편의 실업, 자식의 불안한 일자리에 50대 여성은 가장 하층의 노동으로 밀려나고 있다. 편의점ㆍ패스트푸드점 알바, 식당 서빙, 건물 청소ㆍ관리, 파출 등. 이들에게 '박정희 향수'가 있다면 그것이 유지될 수 있는 것은 현실의 고통 때문이다. 정치적 억압에도 불구하고 이들은 70~80년대 실질소득의 증가를 경험했다. 삶의 질도 크게 변화했다. 단칸방에서 시작한 신혼 살림은 그것이 대출로 이루어진 것일지라도 번듯한 아파트 살림으로 이어졌다. 그런데 1997년 이후의 삶은 그들을 열악한 노동시장으로 내몰았다. 남편과 자식들을 도와 (또는 그들을 대신해) 소득을 얻는 데 몸을 던지지 않으면 안되게 됐다. 그럼에도, 아니 그렇기 때문에 더욱 남편은 가부장적 권위를 내세워 이들을 고통스럽게 한다. 그런데 박근혜를 독재자의 딸로 비난하며 자신을 민주진보 세력이라고 내세우는 후보와 그 정당은 바로 그 권위주의적 남편을 떠올리게 하는 내용을 첫 광고로 내보낸 것이다. 50대 주부들에게는 권위주의 정권 시절의 패악을 민주당이 이어받고 그 성과를 박근혜가 이어받았다고 보여질 수도 있는 것이다. 이들 50대 주부들이 이 광고 때문 만은 아니겠지만 가정주부의 절반 이상이 박근혜를 지지하고 문재인을 지지하는 것은 3분의 1이 안됐다는 것은 의미심장하다(물론 이는 하층 노동에 종사하는 50대 주부의 다수가 박근혜를 지지한다는 '가정'하에서 성립할 얘기다. 이 것을 길게 쓴 것은 선거 후 '못 배웠고' '시어머니 노릇 하려는' 50대 가정주부에 대한 비하와 비난이 비등하고 있기 때문이다).

3. 민주당으로부터 독립적인 대안이 필요하다

브루주아 민주주의 선거는 일반적으로 회고투표적 성격이 강하다. 즉 현재의 정권에 대한 심판의 의미로 표를 던지는 게 많다는 것이다. 이를 고려한다면 박근혜의 이명박 정권과의 선긋기, 즉 야당 전략이 성공적이었다는 것이다. 앞에서 인용한 부분에 나오 듯 조선일보 또한 박근혜의 '여권 내 야당' 전략이 주효했다고 평가하고 있다.

선거운동 막바지 그 본색을 드러내긴 했지만 '경제민주화'라는 쟁점을 선점한 것도 분명히 새누리당이었다. 박근혜 캠프의 권영세 종합상황실장은 조선일보와의 인터뷰에서 "박 당선인이 경제민주화와 복지 이슈를 작년 말부터 먼저 제기함으로써 민주당의 공세를 무력화한 측면이 크다"고 평가했다. 한편 이는 민주당이 이명박 정권의 반대편에서 현실적 대안으로 자신을 입증하지 못했다는 뜻일 게다.

종종 좌파들은 민주당의 '반성'을 요구했다. 이는 그들이 김대중ㆍ노무현 10년간 만든 현재의 사회에 대한 책임을 분명히 밝혀야 함을 말하는 것이다. 그러나 이번 선거운동 기간 한명숙이 강정에서 도망치 듯 떠냐야 했듯이 대다수의 이명박 정권 정책이 김대중ㆍ노무현 정권으로부터 비롯됐다는 점에서 그들은 그럴 수 없었다.

이는 민주당이 저임금 비정규직 노동자, 여성의 지지를 획득하지 못하는 데 결정적이었을 수 있다. 교수나 지식인, 문화계 종사자와 같은 중간계급에게 한나라당-새누리당 정권은 매우 끔찍한 것이었겠지만, 다수의 저임금 노동자에게 이명박과 노무현 정권의 차이가 분명치 않았을 수 있다는 것이다. 이것은 임금격차나 고용형태의 변화에 대한 간단한 자료로부터도 유추할 수 있다. 물론 정책 실행의 강도라는 측면에서 다를 수 있다. 그러나 이번 선거 결과가 보여준 것은 박근혜를 지지한 다수에게 그 차이는 크게 보이지 않았을 수 있다는 것이다.

따라서 안철수가 민주당의 오른편에서, 새누리당과 민주당 사이의 위치를 점했음에도 상당히 파괴력 있는 지지를 받을 수 있었던 것은 그가 민주당과 각을 세웠기 때문일 것이다. 그는 문재인 지지를 호소하는 위치에서도 결코 민주당과 한몸이 되려 하지 않았다. 그는 어제(19일) 투표를 마치자 마자 미국으로 떠났다. 투표의 결과가 승리가 되든, 패배가 되든 그것을 민주당과 함께하지 않겠다는 뜻일 게다.

그렇다면 진보세력의 과제는 민주당으로부터 독립적이고 통일된 좌파적 대안을 건설하는 것일 게다. 사실 이러한 사실은 이번 선거 이전부터 여러 곳에서 그 신호를 확인할 수 있었다. 하지만 민주당의 민주/독재 구도, 반MB 전략에 휘말린(또는 직접 주도한) 진보세력은 이명박 정권에 대한 '대중적 반감'을 이유로 속속 민주당에 몸을 의탁하고 만다. 진보세력의 이러한 태도는 민주당을 왼쪽으로 견인할 힘조차 상실케 했다.

좌파의 지리멸렬과 분열, 무능력에 대한 질타는 이러한 평가 이후에나 가능할 것이다. 다시 필요한 것은 독립적이고 통일된 좌파적 대안의 건설이다. 당장 내년이나 내 후년 세계를 휩쓸 경제위기의 파고에서 노동자 투쟁의 건설을 위해서도 이는 매우 시급한 일이다.

이를 위해선 뼈아프지만 살을 도려내야 할 것으로 보인다. 통진당과 진정당 또는 다른 진보세력이 민주당으로부터 독립된 대안의 건설에 동의하지 않거나 미적된다면 과감히 그들과의 연대를 배제해야 할 것이다. 시작은 이 대안에 동의하는 사람과 세력으로부터다.

Posted by 때때로
2011.09.07 14:42

진보정당은 복지정당이 아니다 쟁점2011.09.07 14:42

1. 네이버 사전에 의하면 진보란 "정도나 수준이 나아지거나 높아짐"이나 "역사 발전의 합법칙성에 따라 사회의 변화나 발전을 추구함"을 뜻합니다. 진보정치를 말할 때 '무엇'의 정도나 수준이 나아지는 것을 뜻하는지, '역사 발전의 합법칙성'이란 무엇인지를 뜻하는지 직관적으로 알아채긴 어렵습니다.

결국 '진보정치'는 단어 자체의 의미에서 정의되는 것이 아니라 한국 사회에서 역사적 경험을 바탕으로 정의할 수밖에 없습니다. 한국 사회에서 진보정치란 대개 더 '평등'하고 더 '민주적'인 사회를 만드는 것을 뜻하는 것 같습니다. 그리고 이러한 지향은 몇몇 정책에 의해 명확하게 표현됩니다. 무상급식으로 대표되는 '복지정책'들이 그 대표입니다.

2. 그렇다면 '복지정책'을 앞세운 정당들은 진보정당일까요? 그게 또 간단치 않습니다. 전 국민 의료보험ㆍ국민보험ㆍ고용보험 등의 기초적 복지정책의 많은 것은 보수 정당과 정치인들에 의해 만들어졌습니다. 박근혜도 '아버지의 뜻'을 잇는다며 복지를 얘기하고 있습니다.

아이러니하게 느껴지나요? 세계사를 살펴봐도 이러한 사례는 쉽게 찾아볼 수 있습니다. 현대사회 복지정책의 기초를 놓은 것은 독일의 재상 비스마르크죠. 그는 사회주의자들을 강력하게 탄압하는 반대편에서 복지정책의 확대를 통해 노동자 계급의 불만을 완화시키고자 애썼습니다. 한국 사회에서 쿠데타로 정권을 잡은 박정희, 전두환이 복지국가ㆍ정의사회를 앞세웠던 것은 자신에게 부족한 정치적 정당성을 대신하고자 한 것이죠.

3. 2008년 시작돼 지금까지 전 세계를 위협하고 있는 경제위기로 케인즈주의적  복지국가에 대한 관심이 부쩍 높아지고 있습니다. 그래서일까요. 진보정당이 주장했던 무상급식 정책이 자유주의 우파 정치인에게까지 받아들여지고 있습니다. 바로 몇년 전까지만 해도 '몽상적'이라며 비판했던 바로 그들이 무상급식을 자신의 정책으로 내세우고 있는 것입니다. 해외에선 버핏과 같은 이들이 자신과 같은 부자들에게 더 많은 세금을 걷으라며 나서고 있습니다.

여전히 바뀐 세상을 깨닫지 못하는 소수 보수 정치인들만 외롭게 고립된 듯 싶습니다. 승자독식의 경쟁 만이 유일한 대안이라고 주장하는 이는 찾아보기 힘듭니다. 대처(새처) 전 영국 총리의 "대안은 없다"는 말은 이미 잊혀진지 오래입니다.

4. 이러다보니 난감해진 것은 진보정당입니다. 모두가 복지를 외치고 있습니다. 홀로 복지를 주장하던 시절은 지나가고 모두가 복지주의자로 나선 지금, 그들은 누구보다 기뻐해야 할 듯 싶지만 그렇진 않습니다. 똑같은 주장을 한다면 차라리 힘있는 정당에게 표를 주는게 정책의 현실성을 높이는 길입니다. 진보정당의 지지율은 답보합니다.

그래서 나오는 얘기가 정책이 비슷한 정당들끼리 힘을 합치자는 겁니다. 진보 정치인은 어차피 복지 정책을 얘기할 것이라면 자신들이 훨씬 경쟁력 있다고 생각하는 것 같습니다. 그들에게 힘 있는 정당이라는 든든한 배경만 주어지면 자신의 이상을 맘껏 펼칠 수 있을 듯 보입니다.

5. 신자유주의적으로 조직된 경제의 세계적 실패 영향으로 케인즈주의 복지 국가가 재조명을 받고 있지만 막상 우리에게 필요한 곳에는 관심이 부족합니다. 다른 무엇보다 현재 실패한 것으로 드러나는 신자유주의적 자본주의가 케인즈주의적 자본주의의 실패로부터 비롯했다는 것을 주목할 필요가 있습니다. 물론 1960년대의 자본주의가 현재의 자본주의보다 다 낫다고 판단할 수 있습니다. 그럼에도 그것이 실패했다는 것, 그리고 그 실패의 원인은 여전히 주목받고 있지 못하다는 점에 문제가 있습니다.

노동자 계급의 조직된 힘이 정치적으로 중요한 것은 소수에 의해 운영되는 자본주의가 이러저러한 모습으로 변형될지언정 근본적으로 위기에서 벗어나지 못한다는 점에 있습니다. 복지정책은 구체적인 상황에 따라 얼마든지 변화할 수 있습니다. 그러한 변화에서 노동자 계급의 집단적 이익을 지켜내거나 게임의 규칙 자체를 바꾸는 것을 위해 노동자 계급은 정치적으로 스스로를 조직해야만 합니다. 민주노총이 건설되면서 '노동자 계급의 정치 세력화'를 최우선 과제로 내세웠던 것은 바로 그 때문입니다.

6. 정당은 공동의 정치적 목적에 의해 조직된 단체입니다. 정당의 정강ㆍ정책과 함께 물질적 기반을 살펴보는 것은 매우 중요합니다. 현재 민주당이 복지정책을 받아들이고 있지만 불과 얼마전까지만 해도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며 고개를 저었던 게 그들입니다. 권력을 잡기 위해 광범위한 대중의 지지를 받아야 하고, 그 대중의 다수를 차지하는 노동자 계급의 표를 얻기 위해 일시적으로 진보적인 복지정책을 받아들일 수도 있습니다. 그럼에도 지금까지 보여줬던 것은 그들이 무엇보다 자본가들 일 분파의 정당이라는 겁니다. 당을 대표하는 정치인들의 '출신', 정치자금의 '원천' 등 모든 곳에서 그들은 자본가의 영향을 받습니다.

정동영은 민주당 정치인 중 가장 적극적으로 지난 노무현 정부의 실패에서 교훈을 배워나가는 듯 합니다. 민주당 정치인으로서 낯선, 그리고 때론 적대적인 분위기로 가득한 노동자 집회에 꾸준히 참여하며 연대하고 있습니다. 그럼에도 그의 한계는 자신의 지역구인 전주에서 버스노동자들의 문제를 해결하지 못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제가 말하는 정동영의 '한계'는 그 '개인'의 한계가 아닙니다. 그는 그 누구보다 진심으로 노동자 투쟁에 연대하고 있죠. 꽤나 유력한 정치인(대통령 후보까지 지냈던)인 그조차도 자신의 지역구에서 같은 당 지역 정치인들을 통제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그가 속한 당의 지역 정치인(지자체장 등)은 정동영보다는 지역 자본가들의 편을 듭니다.

7. 진보정당의 통합이 길을 잃고 있습니다. 우리가 만들 '진보정당'이 무엇이어야 하는가를 돌이켜볼 시기입니다. 엇그제 이소선 여사가 돌아가셨습니다. 한 시대가 저문다는 느낌입니다. 전태일 열사는 '대학생 친구'를 원했습니다. 어려운 법률 용어를 이해하기 위해 그는 무엇보다 배움을 원했습니다. 자신의 모자름을 알기에 자신과 같은 이들을 모아 '바보회'라는 모임을 만들었죠. 지난 40년간 노동자 운동의 성장은 노동자들 스스로 '대학생 친구'가 되는 길이었습니다. '친구'가 아니라 동지를 만들어간 길이었죠. 그런데 우리는 진보정당 활동을 하면서 다시 '대학생 친구'의 역할로 돌아가는 길을 걷고 있었습니다. 역사를 거꾸로 걷는 길이죠. 노동자를 위해, 노동자에 의한, 노동자의 정당이 진보정당의 길이 되어야 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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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정치학 분야 출판에서 눈에 띄는 활동을 보여주고 있는 후마니타스 출판사의 박상훈 대표가 새 책을 내놨습니다. '정치의 발견 : 정치에서 가능성을 찾고자 하는 사람들을 위한 정치학 강의'가 그 책입니다.


정치의 발견 : 정치에서 가능성을 찾고자 하는 사람들을 위한 정치학 강의
박상훈 지음|폴리테이아



이 책은 박상훈 대표가 지난해 진행한 한 강의를 기초로 하고 있습니다. 심상정씨가 원장으로 있는 '정치바로 아카데미'에서 마련한 강의입니다. 강의의 대상이 됐던 이들은 우리 사회에서 주로 '진보'라고 불리는 진영에 속한 사람들입니다. 저자는 이 책에서도 일차적인 대상이 '진보파'임을 밝히고 서술을 시작합니다. 그렇기에 진보를 자처하는 이들에게 더 뼈아픈 비판이 곳곳에 자리합니다.

저자는 작정하고 진보파에 대한 고언을 준비한 듯 싶습니다. 이를 위해 그가 첫 교재로 택한 책은 막스 베버의 '직업으로서의 정치'입니다. 80년대 막스 베버 책을 들고 다니다가 '막스'와 '맑스'를 구분 못한 경찰 때문에 연행됐다는 선배의 우스갯 소리를 떠올리게 하는 대목이긴 합니다. 그렇다고 가벼운 농담거리로 채워진 책은 아닙니다. 저자가 '맑스(마르크스)'가 아닌 '막스'를 택한 것은 진보의 이상주의적 정치관을 깨뜨리기 위한 것이죠. 현실에서 정치는 권력을 다뤄야만 합니다. 진보가 채질적으로 두려움 혹은 거리감을 가진 경찰, 군대, 관료ㆍ공무원 등의 조직을 움직여 목표로 한 무언가를 강제해야 만 하는 것이 정치입니다. 이런 것들이 더럽다고 해서 외면하면 현대 국가의 강권력은 보수파와 기득권 세력의 손에서 벗어나지 못합니다. 따라서 정치인은 다뤄야만 하는 폭력, 권력, 권위 등을 외면할 것이 아니라 두려운 마음을 가지고 겸허히 존중할 줄 알아야 합니다.

"정치에 관련된 모든 윤리적 문제의 특수성은, 인간이 만든 조직에 내재해 있는 정당한 폭력이라는 수단 그 자체에 의해 규정된다. … 정치가란 모든 폭력성에 잠재되어 있는 악마적 힘들과 기꺼이 관계를 맺기로 한 사람이다."

그렇기에 정치가는 결과에 대한 책임 또한 외면할 수 없습니다. 아니 외면하면 안된다는 것이겠죠. 수단과 과정에서의 절대적 윤리가 결과의 실패를 옹호해줄 수 없다는 것입니다.

"사랑의 윤리는 '악에 대해 폭력으로 대항하지 말라'고 말하지만 정치가에게는 거꾸로 '너는 악에 대한 폭력으로 저항해야 한다. 안 그러면 너는 악의 만연에 책임이 있다'라는 계율이 더 타당하다."

한마디로 정치가는 진흙탕에서 뒹굴줄 알아야 한다는 것이죠. 이렇듯 이 책은 진보에서 가지고 있는 민주주의와 정치에 대한 순수한 이념에 일침을 가하는데 많은 노력을 기울입니다. 직접 민주주의에 대한 환상을 비판하고, 리더십ㆍ카리스마 있는 지도자에 대한 터부의 문제점을 지적합니다. 거리에서의 시위에 대한 순수한 신념이 그 목적과 달리 오히려 평범한 사람들의 정치적 참여를 저해한다는 주장도 머뭇거리지 않습니다.

저자는 공산주의, 혁명의 신봉자들에 대해 비판의 날을 세웁니다. 하지만 묘하게도 저는 이 책을 읽으며 레닌의 '무엇을 할 것인가'를 떠올리게 되더군요. 아마도 그에 대한 얘기는 다음에 할 기회가 있을 듯 싶습니다.

베버의 이야기로 시작한 이 책은 차례대로 사울 D. 알린스키의 '급진주의자를 위한 규칙', 버락 오바마의 '담대한 희망' '내 아버지로부터의 꿈', E. E. 샤츠슈나이더의 '절반의 인민주권', 셰리 버만의 '정치가 우선한다'를 교재로 정치가의 윤리, 정치의 실천, 민주주의에 대한 이해, 진보파의 실패한 과거를 짚어나갑니다. 저자는 '정치학 교과서'의 불가능함에 대해 여러번 언급하지만 이 책은 지금 시기에 진보진영에게 훌륭한 '정치학 교과서'가 될 수 있을 듯 합니다. 특히 2008년 촛불이 꺼진 후 무언가 답답함을 느끼며 어떠한 돌파구를 모색하고자 하는 분에게 도움이 될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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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년 11월 12일 DVDPrime '책 이야기' 게시판 작성>


우리는 '어떤 민주주의'를 선택할 것인가?

1. 한때 우리에게 '민주주의'는 '공산주의'의 반대말이었죠. 조금더 자란 어느 시기에 우리에게 '민주주의'는 '권위주의 독재'의 반대말이었습니다. 그리고 지금 우리에게 '민주주의'는 평범한 대다수 사람들의 삶과는 무관한 소수 직업 정치인들이 자신들의 이익과 기득권을 위한 쟁투의 대상으로만 비춰지고 있습니다.

1987년 우리에겐 꿈이 있었습니다.

"군부독재를 물리치고 민주 정부를 수립합시다. 그리하여 우리 모두의 기본 권리인 신체의 자유, 언론의 자유, 표현의 자유, 집회 결사의 자유, 사상의 자유를 누리고, 건강하고 기쁘게 일하고 자녀를 교육하고 문학적 혜택을 힘껏 누릴 수 있는 생존권이 보장된 사회를 만듭시다. … 함께 누릴 빛나는 새 세상이 목전에 임박하였습니다."
- 민주헌법쟁추국민운동본부(국본)의 성명서 中

해방 후 미 군정에 의해 민주주의가 이식된 한국은 다른 여러나라들의 역사와 비교했을 때 매우 쉽게 '보통선거'라는 민주주의의 기본적 원칙을 국가 운영의 기본 원리로 채택할 수 있었죠. 그러나 한국의 민중은 분단과 냉전, 한국전쟁의 기간에 공식 정치 영역에서 좌익은 배제되고 축출돼 보수 여당과 보수 야당이라는 매우 협애한 정당체제의 선택지밖에 가질 수 없었습니다. 그조차도 불법ㆍ부정 선거로 퇴색됐고 박정희의 군부 쿠데타 이후 기본적인 자유권은 억압당하기에 이르렀죠.

군부 정권 시기의 급속한 산업화는 여러 조건이 필요했지만 가장 중요한 것 중 하나로 노동기본권에 대한 초억압적 조처를 통해서만 가능했습니다. 재벌에 대한 혜택과 노동자들의 낮은 임금과 각종 권리에 대한 부정이 80년대까지 한국 사회를 특징지어 왔습니다. 민중들은 교육을 통한 개인적 계급 상승을 통해서만 자신의 비참한 처지를 벗어날 수 있었습니다.

1987년 6월 항쟁은 민주적 권리와 생존권적 권리의 요구가 함께 집단화되어 표출된 사건으로만 해석될 수 있습니다. 그로부터 20년이 지났습니다. 물론 김영삼ㆍ김대중ㆍ노무현으로 이어지는 당시 민주화 세력의 집권은 한국 정부의 권위주의적 성격을 약화시켰고 사회 전반에서의 민주주의적 의식의 성숙과 인권에 대한 보편적 인식의 확산은 한국 사회를 많은 부분 '민주화'시켜 왔습니다. 그럼에도 우리는 여전히 불안정한 정치체제 속에서 항상 어떻게 하면 '차악'을 선택할 것인가만 고민하는데 개인 정치 행위의 모든 것을 바치고 있습니다. 또한 여전히 사회적으로 하층 노동계급의 기본적 권리는 쉽게 유린당하기 일수며 집회와 결사의 자유 또한 완전하다고 볼 수 없을 뿐더러 최근 후퇴하는 조짐까지 보이고 있습니다.

이런 상황은 이명박과 같은 보수 정치인이 개인적 흠결에도 불구하고 압도적인 지지율을 유지할 수 있게 만들고 있고 퇴물 정치인인 이회창이 정계복귀를 하자마자 지지율 2위를 기록할 수 있게 하고 있습니다. 삼성을 비롯한 재벌 기업들의 정치적ㆍ사회적 영향력은 확대되고 있지만 서민들의 정치에 대한 영향력은 줄어들고 있으며 그와 동시에 정치에 대한 관심은 급속히 줄어들고 있습니다.


2. 이 모든 문제들을 우리는 어디서부터 풀어야 할까요? 현재의 정치개혁론의 주류적 방향에서 보자면 주된 해결 방안으로 '원내정당화' '정책정당화' '법치 민주주의' 등이 떠오르고 있고 그 방향으로 개혁이 진행되고 있습니다. 여기 이러한 주류적 접근법에 반대하는 세 사람의 책이 있습니다.


어떤 민주주의인가 최장집ㆍ박찬표ㆍ박상훈|후마니타스

민주주의의 기본 원리로서 선거와 투표를 통한 다수결의 원칙이 항상 옳은 결과만을 가져오진 않습니다. 플라톤의 국가론이 민주주의를 비판하는 출발점은 바로 여기죠. "여기에서 인민 다수의 결정이 공동체의 전체 이익을 위해 합리적 결정을 만들어 낼 수 있는가 하는 문제는 민주주의와 관련된 근본적 문제"(어떤 민주주의인가, 65p)입니다.

플라톤이 비판한 아테네에서의 민주주의는 노예와 여성을 배제한 성인 남성 시민들만을 대상으로 했습니다. 현대사회보다 단일한 사회적 집단에 의해 이루어진 민주주의 정치체제였죠. 그러했음에도 사회적 갈등과 균열은 다수에 의한 결정이 공동체 전체의 이익으로 귀결되지 못하게 하는 역할을 하곤 했죠. 현대사회는 고대 아테네와 비견할 수 없을 정도로 많은 인구와 다양한 사회적 집단으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당연히 사회적 균열과 갈등의 구조도 더욱 고도화 됐고 때론 결코 화해할 수 없는 지경까지 이르고 있죠. 이런 상황에서 '공동체 전체의 이익'을 내세우는 것은 대체적으로 전체주의나 파시즘적 흐름을 만들곤 합니다.

따라서 선거ㆍ투표에 의해 정기적으로 부정될 수 있는 합법적인 다수의 독점적 지배체제로서 민주주의의 중요성은 더욱 커졌다 할 수 있습니다.

"현대 자본주의 시장경제에서 사회는 전혀 동질적이지 않으며, 갈등이나 균열이 언제나 곳곳에 존재한다. 민주 정치란 이런 갈등적 이슈들을 민주주의 제도의 틀 안에서 해결하는 과정으로 이해할 수 있다."
- 어떤 민주주의인가, 12p

우리는 신문의 국제면에서 프랑스를 비롯한 여러 유럽 국가들에서 최소 몇 10만에서 100만 명 이상 참가한 파업 소식을 심심찮게 들을 수 있습니다. 그럼에도 우리는 그 국가들에서 정권이 무너졌거나 쿠데타 혹은 내전이 일어났다는 소식을 기대하진 않죠. 그러나 2차대전 이후(또는 구 소련의 해체 이후)의 신생 국가들에선 겨우 몇 천명에서 몇 만명이 파업과 시위를 벌였음에도 정권이 무너지고 쿠데타가 일어나고 내전이 발생했다는 소식을 쉽게 접할 수 있습니다.

계급ㆍ계층ㆍ인종 등에 의한 사회적 균열은 어느 국가에나 똑같이 존재합니다. 문제는 그 균열에 대처하는 정치체제의 문제인 것이죠. 집단적 갈등이 제도적으로 해결되지 못할 때 더 큰 갈등과 충돌, 사회 전체의 붕괴를 가져오곤 합니다. 현대사회에서 '민주주의'의 문제는 더이상 선택의 문제라고 하기 어렵습니다. 사회 전체의 생존이 걸린 문제라고 할 수 있죠.


3. 민주주의는 하나의 모습만 지니고 있지는 않습니다. 근대 민주주의 초기 명사들에 의한 과두독점적 지배체제도 민주주의(엘리트 민주주의)이고 대다수 교육 혜택을 받지 못한 흑인들이 선거과정 자체에서 배제되는 미국식 민주주의도 민주주의입니다. 이 책의 저자들은 단호히 이러한 민주주의를 배격합니다. 그리고 그 대안으로 정당이 중심이 되는 민주주의를 주장합니다.

"시민사회와 시장에서 강자의 위치에 있는 특수 이익들은 기본적으로 갈등을 사적인 영역의 일로 만들고자 한다. 사적 영역에서 그들은 압도적인 힘의 우위에 있기 때문이다. 이에 반해 민주주의는 갈등을 사회화하는 힘이며, 그 중심 메커니즘은 정당이다. 갈등의 사회화란, 사회적 자원이나 가치의 분배ㆍ재분배와 관련된 갈등적 이슈를 그 사회의 공적인 의제로 설정하는 것을 의미한다. … 시민사회에 존재하는 다양한 갈등적 이해관계를 표출ㆍ집약ㆍ대표하는 정당의 기능, 그것이 곧 갈등의 사회화인 것이다. 따라서 사회의 균열과 갈등을 동원하는 정당의 기능이 약화될 때 그 결과는 민주주의의 보수화가 될 것이다. 이는 이 책이 지향하는 정당 개혁의 방향과 정반대의 것이 아닐 수 없다."
- 어떤 민주주의인가, 263p

그동안 우리에게 정당은 부패한 정치의 핵심고리이고 퇴행적 지역주의를 조장하는 정치 모리배들의 집단으로만 비춰왔습니다. 당연히 정치개혁의 방향으로 정당의 '정책 전문가 집단화' '원내 정당화' 등이 추진돼 왔습니다. 그러나 저자들은 이러한 해결책이 대증요법이며 문제의 원인을 잘못 바라보고 한국 민주주의의 보수화와 퇴행을 부채질하고 있다고 말합니다.

김영삼ㆍ김대중ㆍ노무현 대통령 모두 집권 후 정당을 우회해 직접 대중과 관계를 맺으려는 모습을 보였습니다(집권 후반기 여당으로부터의 탈당 혹은 '당정분리'의 강조). 대중과 가까이 가려는 모습 자체를 부정할 순 없죠. 정당을 우회하려 할 때 대통령은 위임받은 통치권자에서 시혜자로의 모습으로 변해갑니다.

사회적 균열에 기초한 국민의 일부분으로서의 정당의 정책 집행보다는 국민 전체의 이익을 대표하려는 모습으로서 나타나고 이는 때때로 이들 민주화 세력 출신 대통령이 권위주의를 약화시켜 왔다는 성과에도 불구하고 이전 권위주의 시기 대통령의 모습을 띄게 만들곤 합니다. 즉 위임받은 5년간은 "국민이 노무현식으로 해 보라고 뽑아준 것 아니냐"는 식의 태도를 갖게 만듭니다. 이는 민주주의가 2500여년을 살아남을 수 있었던 핵심 덕목으로서 '자체 수정 능력'을 무시하는 처사일 뿐입니다. 애초에 총선에 두번 이상 연속성을 지닌 정당이 없는 상황에서 한 차례 밖에 할 수 없는 대통령을 국민이 '심판'할 수 있는 '회고적 투표'는 불가능하고 이는 민주주의에서 '책임'의 문제를 실종케 합니다. 대통령 선거가 40여일 남은 상황에서 이회창이 무소속으로 대통령 출마해 지지율 2위를 기록하고 있고 정동영과 이인제가 통합신당과 민주당의 당대당 통합을 합의할 수 있었던 것도 이와 무관치 않습니다.

올해 초의 개헌 논란도 마찬가지입니다. 개헌에 반대하는 말은 많았음에도 개헌의 핵심 내용이 대통령ㆍ국회의원 임기의 일치를 통해 대통령 권력의 강화에 있다는 점을 비판한 사람은 많지 않습니다. 현실에서 국회의원들의 개망나니 행태에 대해 욕은 많이 하지만 정작 국회의원이 뭔가 하려고 해도 할 수 있는게 없다는 것을 아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습니다. 헌법에서 3권 분립을 통한 수평적 견제와 책임을 말하고 있지만 실제로 대통령 권력이 압도적으로 강한게 현실입니다. 당시 노무현 대통령의 개헌론은 그렇지 않아도 강한 대통령 권력을 더욱 강화하자는 것이었지요. (대통령 권력의 강화가 꼭 권위주의의 강화를 뜻하진 않는다는 점에서 이에 대해선 선택 가능한 대안 중 하나겠지요.)

문제는 의회권력의 약화와 정당의 탈 정치화는 사회적 약자들의 이해관계가 공식 정치에서 반영될 가능성을 낮추게 될 것이라는 것이죠. 물론 사회적 약자에 대한 '사랑'이 아주 투철한 사람이 대통령이 된다면 달라질 수 있겠지만 그렇다면 차라리 철학 시험으로 대통령을 뽑는게 낫겠지요.

가뜩이나 정치에서 정당이 제 역할을 못하는 상황에서 정책 전문가 집단화는 정당의 사회적 대표의 기능이 약화되며 일부 엘리트 집단에 정치적 결정을 의지하는 결과를 낳기도 합니다. '정치 개혁'이 가져온 중간 계층 엘리트들의 정치 참여는 그 모델로 삼은 미국에서도 나타나듯이 사회적 약자의 목소리가 공식 정치에 반영되는 비율을 더욱 낮추고 있죠. 이는 노무현 정부가 삼성경제연구소와 어떤 관계를 맺는지를 보면 알 수 있습니다.

"국민소득 2만 달러 시대론에서 동북아 중심 국가론, 신성장 동력 개발론, 혁신 주도형 경제론, 산업 클러스터론 등의 개념도 모두 이들(삼성경제연구소와 재벌기업 연구소들)의 보고서를 통해 발전되었다. … 삼성과 노무현 정부의 긴밀한 관계를 가장 잘 보여주는 사례는, 정부 조직의 혁신을 기한다는 이유로 공무원들을 삼성인력개발연구원에서 연수를 받게 한 일이다. 맨 처음은 2004년 9월 국무총리실 과장급 이상 105명 … 같은 해 12월에는 통일부 과장급 이상 간부 99명, 이듬해 1월에는 기획예산처 4급 이상 70명 … 2월에는 외교통상부 혁신기회고간 15명 … 4월에는 공정거래위원회 과장급 이상 간부 60여 명, 금융감독위원회 국실장급 간부 50여 명, 기획예산처 서기관 이하 직원 250명 … 5월에는 재경부 부총리를 비롯한 3급 이상 국장급 간부와 주무과장 …"
- 어떤 민주주의인가, 316p

이 책은 10월 29일에 나왔습니다만 이 글을 읽는 순간 지금의 삼성 비자금 논란이 딱 생각 나더군요. 현재 한국 정치 현실에 대한 여러 분석과 진단, 그에따른 대안이 있을 수 있습니다. 최근 가장 왕성한 활동을 보이고 있는 노학자 최장집 교수가 대표 저자로 참여한 이 책은 그 여러 대안들 중 빼놓을 수 없는 것 중 하나입니다. 민주주의의 진전과 사회적 약자의 삶이 진전되길 바라는 분이라면 이 책을 통해 실천적 고민에 실질적 도움을 얻을 수 있으리라 봅니다.

짧은 글로 제가 소개한 내용보다 더 많은 내용이 이 책에 담겨 있습니다. 이 책을 당장에 읽기 어렵다면 책의 첫 부분 최장집 교수의 인터뷰편만 봐도 많은 영감을 받을 것입니다. 책의 마지막 구절로 글을 마치겠습니다.

"민주주의와 정치가 갖는 위대함이란 법이나 경제처럼 제도나 체계에 의해 지배되기보다, 혹은 추상적인 이론에 의해 계도되기보다, 그것을 초월하여 불확정적인 사회적 힘을 조직할 수 있는 실천적 능력에 있다. 오늘날 한국 사회는 이를 실현하기 위해 제2의 민주화 운동을 요구하고 있으며, 이를 앞서 개척할 선도적 지도부를 기대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 어떤 민주주의인가, 322-323pp



※ 마치려고 했는데 책 소개를 자세히 못했네요.

- 이 책의 문제의식은 민주화 이후 민주화 세력이 10년 이상 집권했음에도 민주주주의에 대한 대중적 환멸이 커져가고 있고 정치적 영역에서도 민주주의의 진전이 답보되고 있거나 퇴행하고 있다는 데서 출발합니다. 최장집 교수님이 최근 이어온 연구의 연장선상에 있습니다.

- 먼저 이 사회는 여러 집단적 갈등과 균열로 이루어져 있다고 봅니다. 그러한 갈등의 조절 모델을 정당 민주주의에서 찾습니다. 프랑스 혁명 이후 민주주의의 발전 경로 자체가 대중정당의 발전과 함께 해왔고 대중정당은 사회적 강자가 아닌 약자, 노동자 계급에 의해 발전해 왔습니다.

- 사회적 약자가 자신의 이해를 증진시키기 위해선 유일한 강점인 '수'(부자보단 가난한 사람이 더 많기 마련이죠. 하나의 사회적 집단으로는 노동자 계급이 가장 다수를 차지하고 있기도 하고요)를 이용해 정치과정에 집단적으로 개입하는 것이 필요합니다. 바로 그 과정의 연결고리가 정당입니다.

- 한국 사회에서 정당은 그 시작부터 매우 협애한 이념적 기초로 대중에게 사회경제적이념에서 차이가 있는 선택지로서의 대안을 제시하지 못했습니다. 권위주의 시기 보수 야당조차도 경쟁적 정당체제에 포함되지 못한 상황에서 87년 민주화는 경쟁적 정당체제로의 전환을 가져왔지만 여전히 협애한 보수적 이념체계 내의 정당체제는 변화시키지 못했죠.

- 이는 정당의 사회적 기반을 매우 약화시켜 운동에 의한 민주화라는 특징에도 불구하고 정당과 대중운동과의 연계는 매우 약해 한국 정치는 보수적 정치와 급진적 운동이라는 두 계기의 이중고리를 형성하게 됐죠. 이러한 상황은 보수 정당 내에서의 이념적 갈등을 더욱 격화시켰고(사회경제적 기반이 다른 이념적 갈등이 아닌) 이는 파당끼리의 다툼에 대한 대중적 환멸을 불러 공식 정치와 대중 운동 사이의 거리는 더 멀어지게 됐고 당연히 공식 정치에서 하위 계층의 이해가 의제화 되지 못하게 하는 효과를 불러왔죠. 더불어 보수적 정당들끼리의 쟁투는 대중들의 선택에서 지역주의를 강화하는 결과를 불러왔습니다(즉 지역주의는 결과지 원인이 아니라는 얘기죠).

- 이러한 현실 정치의 문제를 정책 정당화, 정치의 사법화, 국민 경선제, 원내 정당화(중앙당 축소와 지구당 폐지) 등의 방법으로 해결코자 하는게 현재의 정치개혁 방향인데, 이러한 방법은 그 모델이라고 할 미국에서조차 민주주의 정치과정에서 하위 계급 또는 계층의 참여를 축소 시켰고 공식 정치에서 사회적 강자들과 이익 집단 중심의 정책과 실천만 강화시키는 결과를 가져왔습니다. 한편 이러한 정책 전문가 집단으로서 원내 정당화의 주된 근거로 드는 탈물질적 사회로의 이행으로 인한 사회적 균열이 다양화되고 계급ㆍ계층간의 간격이 줄고 이동이 늘었다는 주장은 신자유주의가 불러온 결과를 봐도 결코 옳지 않다는 것입니다.

- 따라서 여전히 계급ㆍ계층에 기반한 대중 정당이 한국 민주주의의 발전에 있어서 중요한 대안으로서 필요하다는 것입니다. 이는 정치에서 중요한 두 축(위임과 책임) 중 하나인 책임의 문제를 더욱 강화시키고자 함입니다.

- 대표 저자인 최장집을 비롯한 저자들은 '사회민주주의'적 지향은 보여주지만 고전적 마르크스주의적 입장에서의 '계급문제'는 받아들이지 않고 있습니다. 그렇기에 이들이 얘기하는 대중 정당도 능동적 대중으로서 활동을 조직하고 동원하는 대중 정당이라기보단 수동화된 당원이 당내ㆍ외 정치 과정에서 선거ㆍ투표를 통해 참여하는 정당일 뿐입니다.

- 여기서 문제는 서유럽 사회민주주의 정당 역사의 초기를 보면 매우 급진적인 대중적 동원을 통해 능동적 당원을 충원하고 사회적 지지기반을 구성하는 과정을 거쳤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최장집과 저자들은 대중 운동과 정당의 관계에 대해서는 매우 적은 부분만 할애하고 있어 그 부분에 대해서는 좀더 구체적인 연구가 필요한 듯 보입니다. 제 생각엔 기존 좌익 운동 내에서의 비정치적 경향(이 책에서 지적하는)도 문제지만 동원 형태의 운동에 대한 경시도 마찬가지로 문제로 보입니다. 문제는 대중적 동원을 가능케 하는 운동의 힘을 어떻게 조직된 정당을 구성, 일상적 시기에 정치적 영향력을 발휘하는데 이용할 수 있겠느냐는 것이겠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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