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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11.14 23:24

조선일보의 꼭두각시, 한국의 야당 쟁점2016.11.14 23:24


2016년 11월 12일 광화문 광장 인근의 서울시내는 100만 촛불로 완전히 마비됐다. 사람들은 퇴진을 외치며 거침없이 청와대를 향했다. 청와대로 통하는 종로구 새문안로 작은 골목에도 분노의 목소리는 넘쳐났다. [사진 自由魂]

프랑스에서 1830년 7월 혁명의 결과 들어선 오를레앙 왕조는, 금융 대자본의 왕조였다. 이들은 국가 재산에 대한 거리낌 없는 투기를 통해 부를 쌓아 갔다. 이들의 전횡은 당시 성장하던 산업 부르주아지의 이해를 침범하기 일쑤였다. 철도 건설을 둘러싼 추문은 권력을 공유하지 못한 부르주아지 일부 사이에서 정부에 대한 불만을 급격히 고조시켰다.

'레미제라블'이 그려낸 1832년 봉기를 포함한 몇 번의 폭동을 통해 산업 부르주아지는, 당시 프롤레타리아트의 반란을 힘들지 않고 진압할 수 있다고 판단했다. 정부에 대한 불만이 고조되는 만큼, 프롤레타리아에 대한 우월한 자신감이 더 굳건해지는 만큼 그들의 정부에 대한 반란은 더 공식적이 돼갔고, 거침 없어졌다.

이들은 자신의 반란에 프롤레타리아트가 끼어드는 것에 거리낌이 없었으며 때론 부추기기도 했다. 1848년 2월 파리의 프롤레타리아트는 봉기로서 부르주아지의 반란을 성공시켰다. 그러나 이들 부르주아지는 거리에 널부러진 전사들의 시신의 체온이 채 식기도 전에 전리품을 나누는 데만 골몰할 뿐이었다.

이들 권력을 잡은 부르주아지들은 갑자기 공정한 심판자인척 하며 파리의 투사들이 아니라 프랑스 인민 전체의 의사를 물어야 한다며 공화국의 선포를 미뤘다. 프롤레타리아트의 위협 만이 이들 부르주아지에게 공화국을 선포하게끔 했다.

[1848년] 2월 25일 정오까지 공화정은 아직 선포되지 않았는데 각료직은 이미 임시 정부의 부르조아 분자들과 '국민'지의 장군들, 은행가와 법률가들 사이에서 분배되었다. 그러나 노동자들은, 이번에는 1830년 7월처럼 어떠한 속임수도 허용하지 않기로 결심하였다. 그들은 새롭게 투쟁을 개시하여, 무력으로 공화국을 쟁취할 각오가 되어 있었다. 이러한 메시지를 가지고 라스빠일은 시청으로 갔다. 빠리 프롤레타리아트의 이름으로 그는 임시 정부에 공화정을 선포하라고 명령하였다. 이러한 인민들의 명령이 두 시간 내에 집행되지 않는다면, 그는 20만 명의 선봉에 서게 될 것이라고 선언하였다. 전사자들의 몸이 아직 채 식지도 않았고 바리케이드는 아직 그대로 있었으며, 노동자들은 아직 무장을 해제하지 않았다. 그리고 노동자들에게 대항할 수 있는 유일한 힘은 국민방위군뿐이었다. 이러한 상황에 처하자 임시 정부의 정략적 고려도 법률적 양심의 망설임도 갑자기 사라졌다. 두 시간의 시한이 종료되기 전에 빠리시의 모든 벽에는 그 유명한 역사적 문구가 눈부시게 나붙었다.
프랑스 공화국! 자유, 평등, 박애!
-'프랑스에서의 계급 투쟁', 프랑스 혁명사 3부작, 칼 마르크스, 임지현ㆍ이종훈 옮김, 소나무, 46~47쪽

한국의 야당 정치인들은 프랑스의 공화주의자들보다 우유부단하며 반란을 일으킨 부르주아지보다 소심하기 그지 없다. 이들은 승리를 거두기도 전에 승리를 얻은냥, 그 작고 보잘 것 없는 '우세'를 놓치지 않기 위해 반란을 선동한 대자본의 언론 눈치를 살피기에 급급하다. 이들은 서울에서만 100만 명이 외친 '퇴진' 목소리보다는 질서있는 퇴각을 지시하는 조선일보와 중앙일보의 가이드에만 충실하다.

추미애의 독단적 영수회담 제안은 그의 개인적 성품에서 영향받은 것이기도 하겠지만 기본적으로 이러한 야당의 소심함과 착각에서 비롯한 것이다. 100만 촛불의 열기가 아직 거리에 가득했기에 이 제안은 결국 해프닝으로 끝나버리고 말았다. 그러나 이러한 해프닝은 다시 또 반복될 것이다. 저들의 우유부단함, 이러한 품성에 동전의 뒷편처럼 따라붙는 독단은 애초 저들이 대자본의 이해관계에서 독립적이지 못한 것에서 비롯하기 때문이다.

1848년 2월 프랑스에 공화국을 선포케 한 라스파일과 같은 담대함이 우리에게 절실하다.

Posted by 때때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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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01.10 17:36

간월암과 공세리성당 기록/기억2015.01.10 17:36

의도치 않게 뜨는 해를 보게 됐다. 엇그제 본 조선일보의 한 사진 때문이다. 새벽에 잠이 깨자 무작정 달려 도착한 곳은 충청남도 서산 간월암이다. 맑은 날씨였지만 지평선 근처 구름이 몰려 있어 맑은 해의 모습을 보는 건 다음 기회로 미뤄야 겠다고 생각한 순간이었다. 해는 주저하지 않고 모습을 드러냈다.


간월암과 육지를 잇는 길 사이에서 본 일출. [사진 自由魂]

간월암은 무학대사가 달을 보고 깨달음을 얻었다고 붙여진 이름. 해가 밝은 후에도 아쉬운 듯 한참 바다 위에서 머뭇거리던 달을 보니 그럴만도 하겠다는 생각이 든다.


여명이 아직 가시지 않은 하늘과 바다. [사진 自由魂]

일출은 금방이다. 고개를 내미는 듯 했는 데 어느새 중천에 뜨기 일쑤다. 여명이 아직 남아있다고 안심할 수 없다. 해와 간월암을 함께 바라보기 위해 간월항의 방파제로 내달렸다. 홍성쪽 능선 위로 떠오르는 태양과 간월암을 함께 사진으로 담던 몇몇 사진가들은 벌써 철수한다. 늦었지만 그래도 담아본다.


황금 빛으로 태양은 푸른 어둠을 몰아낸다. [사진 自由魂]


간월암은 아직 어둠에 잠겨 있다. [사진 自由魂]

해가 뜨고, 물이 물러나자 간월암은 육지가 된다. 따로 산문이 있긴 하지만 바다 자체가 산문이다. 사람의 의지와 달리 밀물이 들어차 간월암으로 가는 길을 사라진다. 간월암과 육지를 잇는 바닷길에는 커다란 바위가 네 개 놓여있다. 모양새가 꼭 사천왕이다. 옛 사진에는 안보이던 것. 사천왕을 대신해 가져다 놓았나보다.


완전히 열린 간월암. [사진 自由魂]


간월암과 주변의 모습들. [사진 自由魂]

해가 뜨자 방문객이 찾는다. 꽤 이른 시간 가족들은 함께 사천왕 사이를 지나 간월암에 들어간다. 수행자의 모습은 따로 보이지 않는다. 공양을 받는 이가 자리를 지키고 밥 짓는 연기가 난다. 바위가 사천왕을 대신한 것도 이채롭지만 장승이 산문을 장식한 것도 그에 못지 않게 낯설다. 밀물을 기다려보고 싶었지만 연 가게도 없고 있을 곳도 없어 차를 돌렸다.


간월암을 떠나 향한 곳은 공세리성당. 32명의 순교자를 모신 성당으로 1895년 설립됐다. 영조 때까지 충남 지방의 세곡을 모은 창고가 있던 자리에 연 교회다. 옛 공세창의 흔적은 마을과 성당 곳곳에 남아있다. 지금의 성당 건물은 1956년 신축한 건물이다.


한반도에서 근대에 세워진 성당의 전형적 모습이다. [사진 自由魂]

가장 아름다운 성당으로 꼽히는 공세리성당은 외관 만으로는 다른 근대 성당 건물들과 그리 다르지 않다. 전주의 전동성당, 횡성의 풍수원성당이 얼핏 떠오른다. 규모는 그 중간 정도. 전동성당보다 화려하지 않지만 더 정숙한 느낌이다. 그것은 아마도 성당 근처를 호위하듯 지키고 서 있는 여러 고목들 때문일 것이다.


수령 350년의 보호수 건너로 본 성모 마리아상. [사진 自由魂]

본당 건물 뒷편으로는 십자가의 길이 조성돼 있다. 조용히 산책하기 딱인 분위기나 실제로 그리 조용하진 않다. 가까이에 큰 도로가 있어 쉴새 없이 자동차 소음이 들린다. 이 소음만 없었어도 한참을 앉아 쉬다 돌아왔을 것이다.

Posted by 때때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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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탠리 큐브릭 감독의 영화 '닥터 스트레인지러브'의 한 장면. 영화에서 핵무기는 '억제수단'으로서 머물지 못하고 결국 사용된다.


북한 핵무장이 기정사실화 되면서 한국의 핵무장에 대한 논란이 확산되고 있다. 총대를 멘 것은 새누리당 정몽준 의원이다. 그는 조선일보 4월 15일자 31면에 실린 특별기고에서 "동서 냉전의 교훈은 핵무기는 핵무기로만 억제된다는 것"이었다며 북핵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한국의 핵무장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다(조선일보 4월 15일 31면ㆍ링크).

정몽준은 "국민의 3분의 2가 전술 핵이나 자체 핵무장에 찬성"하고 있다는 것으로 자신의 주장이 혼자 만의 돌출발언이 아님을 강조하고 있다. 그의 말마따나 한국 국민들의 핵무장 열망은 꽤 오래됐고 그 깊이와 폭도 넓다. 1993년 출간된 김진명의 '무궁화꽃이 피었습니다'는 핵무기에 대한 한국의 열망을 공개적으로 표출한 대표적 소설이다. 이 책은 1년 만에 600만 부가 넘게 팔리면서 이러한 열망이 소수의 것이 아님을 보여줬다.

2000년 초반 원자력연구소의 우라늄 농축 실험은 국제사회의 우려 속에 2004년 국제원자력기구(IAEA)의 사찰까지 이어졌다. 한국 정부는 핵무장과의 연관성을 부정했지만 다른 나라들의 입장은 아니었다. 영국 비비시방송은 "레이저를 활용해 무기급 우라늄을 추출해내는 기술은 민간용으로 활용할 수 없는 것"이라고 우려를 나타냈다. 미국 뉴욕타임스도 마찬가지 반응을 보였다. "한국이 밝힌 농축 우라늄 양은 0.2g으로 극미량이지만, 순도는 80% 가까이에 이른다"며 "이렇게 고농축된 우라늄은 핵무기 제조용을 빼고는 달리 활용할 방도를 찾기 어렵다"고 한국 정부의 해명을 비판했다
(한겨레 2004년 9월ㆍ링크).

당시 우라늄 농축 실험이 핵무장과 직접적으로 연결돼 있지 않다고 하더라도 그 경험은 핵무장에 대한 자신감으로 이어지고 있다. 서균렬 서울대 원자핵공학과 교수는 2011년 "한국도 마음만 먹으면 6개월 이내에 기폭장치와 투발수단을 갖춘 핵무장이 가능하다"고 주장했다. 2000년 우라늄 농축 실험에 사용된 레이저 기술은 "세계가 괄목할 정도의 경지에 이르렀고 유사시에 단기간에 핵무장을 할 수 있는 재정적ㆍ기술적 역량이 충분하다"는 것이다. 과학자가 '핵무장'을 운운하는 이유야 알 수 없지만 그의 전공과 소속을 고려할 때 완전한 허언은 아닐 것이다
(국민일보 2013년 2월 15일 3면ㆍ링크).

그렇다면 왜 정몽준이 핵무장 총대를 멘 것일까. 언론의 스포트라이트를 받고 싶어서는 아닐 것이다. 그는 가만히만 있어도 언론에 보도되는 7선의 여당 중진 의원이자 세계 1위의 조선 기업인 현대중공업 최대 주주 아닌가. 김의겸 한겨레 논설위원은 그 이유를 "정몽준이 군수업자라는 사실"에서 찾는다. 현대중공업이 "우리나라 방위산업을 떠받치는 기둥"이라는 것과 한국항공우주산업(KAI) 인수전에도 뛰어든 것을 근거로 든다. 한편 "요즘 한반도의 긴장을 격화시키면서 아파치 헬기 1조8000억원어치를 팔아먹고, 12조원 이상의 차세대전투기를 들이대는 미국 군사산업체의 판매전략이 그의 사업가적 상상력을 자극"했을 것이라는 추측도 내놓는다. 김의겸 논설위원의 주장은 군산복합체의 수장이 기업의 이윤을 위해 '핵무장'이라는 불놀이를 벌이려는 것 아니냐는 것이다
(한겨레 4월 26일 31면ㆍ링크).

정몽준의 제안이 '무기상'의 장삿속에 불과하다는 김의겸 논설위원의 분석은 지나치게 안이해 보인다. 그의 정치에 동의하거나 지지를 보내진 않지만 그는 대권에 도전해온 여당의 7선 의원이다. 그가 국회의원 자리를 어떻게 유지했느냐와 별개로 정치경력만 봐도 그를 단지 개별 자본의 이해에만 매여있을 것이라고 보는 것은 설득력이 떨어진다. 게다가 자본가들이 모든 행동이 이윤에 의해서만 결정되는 것은 아니다
[그런 사회는 오직 추상 속에서만 가능하다]. 정몽준의 아버지 정주영의 소떼 방북 퍼포먼스를 오직 장삿속 만으로 치부할 수는 없다. 정주영이 가장 아꼈다고 알려졌고 그래서 현대그룹을 물려받은 [사실 알짜인 현대자동차는 정몽구가, 현대중공업은 정몽준이 챙겨 속빈 강정에 불과했지만] 정몽헌과 그의 아내 현정은도 '돈 안되는' 금강산 관광사업에 '명분' 때문에 매달리고 있지 않는가.

아니나 다를까 정몽준은 바로 한겨레에 반론을 보내왔다. 민족과 국가에 대한 애국심을 늘어놓는 부분은 역겹지만 "미국 같이 전 세계를 상대로 하는 나라에서는 군수산업이 그야말로 산업으로서의 위상을 가질 수도 있다"는 그의 주장은 옳다
(한겨레 5월 7일 29면ㆍ링크). 세계 자본가 계급 내 그의 위치로 볼 때 정몽준이 AK-47소총, RPG-7과 같은 소형 무기만 팔아먹는 데 만족할 '로드 오브 워'의 유리 오로프와 같은 소매상을 꿈꾸는 것은 아닐 것이다. 그렇다고 전 세계를 상대로 무기를 팔아먹는 미국 수준의 군산복합체는 아직 어불성설이다. 한국 기업의 기술력이 지금과 같은 수준에 이르기 전에는 정부의 지원과 협력의 일환으로 군수산업이 기업의 기술발전에 도움이 됐겠지만 현재의 한국 대기업들은 정부 지원 없이도 충분한 기술력을 갖고 있다.

주목해야 할 것은 '군산복합체'가 원인이 아니라 결과물이라는 것이다. 미국에서 군산복합체가 성장한 데는 세계질서에서 제국주의 수장국이라는 배경이 중요하다. 미국에게 요구되는 군사적 역할 때문에 무기의 개발과 생산이 집중되고 발전할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물론 지금에 와서는 자신을 낳아준 정부를 압박할 정도로 성장했다는 측면에서 '군산복합체'에 대한 비판이 유의미하긴 하다.

그렇다면 우리는 어떤가? 잠시 이야기를 돌아가자. 1980년대 이후 '핵무장'에 대한 국민적 열망이 확산되지만 민정당-민자당-신한국당-한나라당-새누리당으로 이어져 오는 보수 우파들은 공개적인 핵무장 주장에 대해 조심스러웠다. 기본적으로 한국의 보수적 지배계급은 세계질서에서 한국의 지위를 소심하게만 파악하고 있다. 그것은 그들이 미국의 힘에 의해서 '대한민국'을 만들고 유지할 수 있었기 때문일 것이다. 그러한 태도는 '전시작전권'에 대한 태도에서 잘 드러난다. 전작권의 환수는 미국으로부터의 군사적 홀로서기라는 보수우파에게 두려운 미래의 현실화인 것이다. 노무현 정권시절의 대양해군 전략이 이명박 정권에서 폐기됐던 것도 마찬가지다. 보수우파에겐 오직 북한 만이 상대 가능한 것으로 보이는 것이다.

이와 달리 개혁적 우파들은 한국의 성장에 고무됐고 자신감도 있었다. 김대중과 노무현 정권시절 군 현대화 사업이 본격화되면서 군 전략이 바뀐 것은 이 때문으로 보인다. 노무현 정권시절인 2005년 마련된 '국방개혁2020' 계획에 따라 재래식 무기지만 첨단무기들이 도입된다. 2006년부터 2010년까지 5년 간 무기수입은 세계 3위에 달한다
(2011년 12월 8일 8면ㆍ링크). 그리고 그 무기는 북한 만을 상대하기 위한 것이 아니라 세계를 향한 것으로 보였다. 물론 이 과정은 이명박 정권시절 들어 중단된다. 국방개혁2020 계획은 재검토되고 2009년과 2010년 무기수입은 그 전의 절반 가까이 줄어든다.

정몽준은 7선의 중진의원이지만 한국의 전통적인 보수 지배세력에 속하진 않았다
[그는 상당 기간 무소속이었다]. 세계적 기업을 운영하는 자본가로서 언제나 미국에 주눅들어 있고 북한에만 방방 뛰던 보수우파와는 차이가 있을 수밖에 없다. 세계 10위권의 경제규모를 지닌 한국이 군사와 외교에서도 그 만한 역할을 하기를 바랄 수 있다. 노무현 정권은 그러한 열망에 충실히 따랐었다. 이는 미국의 바람이기도 하다. 중앙선데이는 박근혜 대통령의 이번 방미 기간 오바마의 관심사는 "시리아ㆍ이란 등 중동 문제에 대한 한국의 협조"라고 보도했다(중앙선데이 5월 5일 3면ㆍ링크). 이미 한국 정부는 아프가니스탄ㆍ이라크 등지에서 미국과 협력해왔다.

재래식 무기에 이어 핵무장까지 욕심내게 된 데는 미국의 힘이 예전만 못해보인다는 것도 큰 역할을 한 것으로 보인다. 정몽준은 조선일보 특별기고에서 "
[재래식 무기를 사용한 미국의] 무력 시위는 북한이 핵무기를 쓰는 것을 진정시킬지는 몰라도 북한의 핵무기를 폐기하는 데는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잘라 말했다. 게다가 미국이라는 '우방'이 보수우파의 바람 만큼 영원히 한국의 바람막이가 돼줄지도 의심스럽다. "아무리 긴밀한 동맹이라 해도 국가 이익이 100% 일치하는 것은 아니"라는 것이다. "미국과 정치적으로 가장 가깝다는 이스라엘이 핵무장을 한 것도 그런 이유 때문일 것"이라며 자신의 주장을 뒷받침한다(조선일보 4월 15일 31면ㆍ링크). 이는 구체적으로 미국의 대북정책 변화에 대한 불안이기도 하다. 그는 특별기고에 이은 조선일보와의 인터뷰에서 한미 관계를 이혼할 수도 있는 결혼한 남녀에 비유했다. 그는 미국이 중국과 함께 "현 상태를 인정하고 북한이 핵무기를 더 만들지만 말라고 할까 봐 걱정"이라고 말했다. 미국에게는 "현재 북한이 보유한 핵무기 숫자는 큰 위협이 안 될 것"이기 때문이다(조선일보 4월 22일 29면ㆍ링크).

정리해보자. 정몽준의 핵무장 발언은 일개 정치인의 돌출발언은 아니다. 단순히 '무기상'으로서의 이득을 바라는 것일 수도 없다. 이는 경제성장에서 비롯한 자신감을 바탕으로 제국주의 세계질서에서 상층으로 도약하고자 하는 새로운 지배계급의 열망이 표출된 것으로 보인다. 물밑에서 흐르던 핵무장 욕심이 북한의 핵무기 보유를 기점으로 고개를 내민 것이다.

한국 사회 좌파가 제국주의를 다시 검토해야 하는 지점은 이 부분으로 보인다. 이미 2000년대 초반 파병반대 운동 때부터 제기되기 시작했지만 더 이상 제국주의 피해자인 약소국가로만 한국을 바라볼 수는 없다. 한국군의 해외파병도 미국의 강제에 의한 것이라고만 볼 수도 없다. 한국군 해외파병은 베트남전 이후 한동안 중단됐다가 1991년 1차 걸프전을 계기로 다시 시작돼 2000년대는 보다 적극적이고 활발하게 펼쳐졌다. 2012년 11월 현재는 15개 나라에 1440명이 파병돼 있다
(문화일보 2012년 11월 2일 3면ㆍ링크). 핵무장을 포함해 한국 군사력이 미국으로부터 홀로서는 것은 앞으로도 부침이 많을 것이다. 주변에 강대국들이 가까이 있다는 것도 장애물 중 하나다. 그러나 정몽준과 과거 노무현 정권으로부터 확인할 수 있듯이 새로운 지배계급은 이전 지배계급보다 확연히 대외 지향적인 제국주의 노선을 추진할 것으로 보인다. 그것을 '평화'라는 말로 포장할지라도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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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다람쥐 2014.01.02 13:48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한국도 핵억제력을 확보해야 하는데 동북아시아의 평화가 영원할거라고 믿지 않습니다.

    • 때때로 2014.01.02 16:51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러시아, 미국, 중국과 같은 핵강국이 충돌하는 지역이고, 바로 옆 나라인 일본의 군사력도 무시할 수 없는 상황에서 한국이 핵무장을 하는 것은 섶을 지고 불로 뛰어드는 행위가 되겠죠. 무장을 통한 한반도 평화는 둥근 네모와 같은 불가능한 망상일 뿐입니다.


서울 삼성동 전력거래소의 모습. [강윤중 기자/경향신문]


1994년에 비견되는 폭염이 연일 계속되고 있습니다. 냉방용 전력 사용이 크게 늘면서 대규모 정전 사태에 대한 우려가 커지고 있죠. 입추가 지나면서 더위도 기세가 꺾였습니다. 일단 정전사태 가능성은 낮아졌지만 전력 공급 부족 문제가 큰 쟁점이 되고 있습니다.

정부는 전력 위기를 핑계로 8월 6일 고리원전 1호기를 재가동하겠다고 발표했습니다. 고리 1호기는 수명이 다하고 고장이 잇따라 안전성에 의문이 제기되고 있었지요.

한겨레신문과 경향신문은 8월 7일자 사설에서 나란히 고리원전 1호기 재가동 결정을 비판하고 나섰습니다.

● [한겨레 8월 7일자] 고리 1호기, 전력난 구실로 재가동 안 된다(링크)
● [경향 8월 7일자] 고리 1호기 재가동, 국민 신뢰 확보가 먼저다(링크)

두 신문 모두 안전성에 대한 검증이 충분히 이뤄지지 않았고 국민의 신뢰를 얻지 못한 고리 1호기의 재가동에 반대하고 있습니다. 전력 공급이 부족한 상황에서 과도한 전력 사용량이 문제가 되고 있습니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두 사설 모두 정부의 '전력난 구실'에 대한 제대로 된 반박은 없습니다.

한겨레는 우리나라의 "1인당 전력소비 증가율이 경제협력개발기구 국가 가운데 가장 높은 전력 과소비국"임을 지적하며 정부의 에너지 정책 전환을 요구했습니다. 하지만 에너지 정책이 어떤 방향으로 전환되어야 하는지는 불투명합니다. 전력 과소비의 책임이 누구에게 있는지도 애매하게 처리되죠. 문구 그대로 보자면 우리 국민 모두의 책임인 것처럼 보입니다.

특히 경향의 태도는 안타깝습니다. 경향은 전력 위기가 정점이던 8월 6일자에 '전력 수요 억제 위해 요금 현실화 불가피하다'는 사설을 실었습니다.

● [경향8월 6일자] 전력 수요 억제 위해 요금 현실화 불가피하다(링크)

경향은 이 사설에서 한겨레와 마찬가지로 에너지 정책의 전환을 요구하고 있습니다. 한겨레보다 분명하게 표현된 정책 방향은 제목에서처럼 '요금 현실화'가 핵심입니다.

"일반 국민 중에서도 요금 인상을 반기는 사람은 거의 없을 것이다. 국민과 기업의 부담 증가에도 불구하고 현재 원가의 87%가량에 불과한 전기요금은 단계적으로 현실화할 필요가 있다. … 전력 수요 증가세를 그대로 반영해 공급을 늘릴 것이 아니라 수요를 획기적으로 줄이는 쪽으로 방향을 틀어야 한다. 전력 낭비와 과소비를 막기 위한 최우선 대책은 요금 현실화다."
- 경향신문 8월 6일자 27면

물론 이런 입장은 중앙일보의 뜬금 없는 '공동체 의식' 운운보다는 낫습니다(8월 7일자 중앙일보 사설 '전력위기 공동체의식으로 극복하자'ㆍ링크). 하지만 경향의 입장은 (한겨레도 마찬가지지만) 중앙일보와 마찬가지로 전력 낭비의 책임을 국민 모두에게 지우고 있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요금 현실화' 요구는 대다수의 서민들에게 반발만 살 대안입니다. 월급만 빼고 다 오르는 현실에서 전기요금을 인상하겠다는 것은 끓는 물에 기름을 붓는 격이죠.

전력 과소비의 현실은 어떨까요?

수치만 보면 우리나라가 전력 과소비국인 것은 분명한 사실인 듯 보입니다. 2009년 기준 우리나라의 1인당 연간 전력소비량은 8092㎾h입니다. 이는 일본 6739㎾h, 독일 5844㎾h, 프랑스 7020㎾h 등보다 월등히 높은 수치입니다. 그렇다면 한겨레신문ㆍ경향신문ㆍ중앙일보가 함께 입을 모으듯 국민 모두가 책임지고 전력 소비를 줄이거나, 전기요금을 올려야하는 것일까요?

그러나 현실을 조금만 들여다보면 많이 다른 모습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조선일보 8월 8일자 사설에 의하면 1인당 가정용 연간 전력소비량은 1088㎾h로 일본 2189㎾h, 프랑스 2326㎾h의 절반에 불과합니다. 지난해 한국의 전력소비량 가운데 산업용은 55%지만 주택용은 18%밖에 안 됩니다.

조선일보는 8월 8일자 사설에서 이렇게 쓰고 있습니다.

"이런 상황에서의 절전 보조금은 기업들의 방만한 전기 소비 탓에 발생한 전력난을 해결하려고 국민 세금으로 기업들을 지원해주고 있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정부와 기업은 이 상황을 국민이 언제까지 납득해줄 것인가 하는 점을 생각해봐야 한다."
- 조선일보 8월 8일자 35면

위에 제가 인용한 수치들은 모두 이 사설(8월 8일자 조선일보 사설 '기업들이 電氣 더 아끼지 않으면 '전력 위기' 계속된다'ㆍ링크)에서 인용한 것입니다.

조선의 사설은 전력 소비구조와 함께 비정상적인 전기요금 체계의 문제도 짚습니다. 현재 산업용 전기요금은 ㎾h당 97원입니다. 이는 지난해를 기준으로 했을 때 전기생산 원가의 87.5% 수준이라고 합니다. 게다가 산업용 전기요금은 누진제 적용도 받지 않습니다. 이에 반해 주택용은 ㎾h당 128원에 "세계에서 가장 강력한 수준이라는 가중 누진제를 적용"받고 있습니다. 이는 경향이 생산 원가의 87%라고 애매하게 지적한 낮은 전기요금의 혜택을 국민 모두가 동일하게 받지 않음을 말해줍니다.

기업이라고 다 같은 것도 아니었습니다. 3300V 이상 고압 전기를 공급받는 대기업은 ㎾h당 96.6원의 전기요금을 내지만, 저압을 사용하는 중소기업은 ㎾h당 112.9원을 부담하더군요. 즉 대기업은 가장 많은 전기를 쓰면서도 가장 적은 비용을 치르고 있다는 것입니다.

에너지 과소비의 겉으로 드러난 '현실'만 지적하며 요금 현실화를 요구하는 경향, 모두 함께 아끼며 살자는 중앙보다 조선의 분석이 훨씬 구체적입니다. 이러한 분석은 전기 부족을 이유로 고리원전 1호기를 재가동하고, 추가적인 원전 건설을 추진하는 정부에 대응할 때도 설득력 있는 반대 근거로 제시될 수도 있을 것 같습니다.

기업들의 이익에 도전하지 못하는 중앙일보야 그렇다 칩니다. 하지만 한겨레와 경향의 사설 수준은 많이 아쉽습니다. 그들이 특히 특권과 부당한 권력 행사에 분노하는 시민들 편에 서기 위해 노력하는 신문이라는 점에서 더 그렇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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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월 6일 솔로몬ㆍ미래ㆍ한주ㆍ한국 4개 저축은행이 영업정지 됐습니다. 솔로몬저축은행은 업계 1위의 자리였기에 충격이 더 큽니다. 4개 저축은행에 예금을 맡긴 사람은 36만8000여 명에 달합니다. 금액은 7조4400억원에 이른다고 하죠. 조금이라도 나은 이자를 찾아 쌈짓돈을 맡겼을 서민들에겐 무척 충격적인 사건일 것입니다.

이 사건을 울지도 웃지도 못하게 만드는 것은 미래저축은행의 회장 김찬경의 해외 도피 시도 때문입니다. 서울대 법대생 사칭, 160억원을 연체한 신용불량자 …. 과거가 한꺼플씩 벝겨지면서 이러한 사기꾼이 '저축은행'의 회장까지 될 수 있었던 과정에 궁금증이 더해집니다. 궁금증을 해결하기 위해 오늘 주요 언론에 보도된 저축은행 관련기사를 엮어봅니다.


'은행'으로 신분세탁에 성공한 상호신용금고

중앙일보에 의하면 김찬경이 저축은행을 인수한 것은 1999년입니다. 당시는 아직 '상호신용금고'라고 불리던 때죠. 신용금고는 1972년 계와 고리대금업을 양성화하면서 만들어진 것입니다. 뿌리는 사채인 것입니다. 그러다보니 소유에 대한 규제가 상대적으로 약했죠.

번성하던 신용금고도 1997년 외환위기를 빗겨갈 순 없었습니다. 1998년 한해만 100여 개의 신용금고가 퇴출됐습니다. 공적자금을 아끼기 위해 금융당국은 인수자만 나타나면 그 자격을 검증할 겨를도 없이 넘기기에 급급했죠. 당시 금융시장 구조조정을 담당했던 사람은 중앙일보와의 인터뷰에서 "돈만 싸 들고 오면 상호신용금고를 인수할 수 있었던 것이 사실"이라고 털어놓습니다. "공적자금을 아끼기 위해서라도 인수자가 나타나면 자격을 묻지 않고 부실 금고를 넘겨야 했"기 때문이라고 설명합니다.

김찬경이 미래저축은행의 전신인 대기상호신용금고를 인수한 것도 이때입니다. 정부는 1999년 이후 신용금고 확대 정책을 이어갑니다. 2001년에는 예금자 보호 한도를 5000만원으로 늘려줍니다. 2002년에는 이름을 '상호저축은행'으로 바꿔주고 2006년엔 아예 '저축은행'으로 부르게 했죠. 법인 대출한도를 확대하고 인수합병도 적극 권장해 저축은행의 덩치 키우기를 도와줍니다.

그러나 규제는 저축은행의 성장을 따라가지 못합니다. 대주주에 대한 적격성 심사는 2010년에야 도입됩니다. 김찬경이 저축은행의 회장일 수 있었던 것은 이 심사가 시행되기 전인 2006년부터 이미 신용불량자였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소급' 적용할 수 없었기 때문이라는 것이죠.

한겨레에 의하면 대주주가 경영을 장악하는 구조는 여전하다고 합니다. 자산규모 1조원 이상의 경우 최대주주 지분율이 62.2%, 1조원 이하의 경우에는 70.4%에 다다른다고 합니다.

●[한겨레] 신용불량자도 대주주 … 지분 70% 쥐고 전횡
●[중앙일보] 6년째 신용불량자, 어떻게 저축은행 회장님 됐나


"부동산이 이렇게 될 줄 몰랐다"

이번에 영업정지된 4개 저축은행을 비롯해 지난해 퇴출된 저축은행들 모두 여지 없이 그 소유주들이 불법 행위가 드러나 더 충격을 주고 있죠. 이와 관련해 언론들은 한결 같이 금융당국의 규제ㆍ관리 부실과 저축은행의 잘못된 소유구조를 짚고 있습니다. 앞에 링크한 한겨레와 중앙일보의 기사가 대표적입니다.

하지만 더욱 궁금해지는 것은 그들의 성공 비결입니다. 프레시안은 "저축은행이 지금처럼 몸집을 키울 수 있었던 것"은 "PF 사업 때문"이라고 단언합니다. 2000년대 중반 이후 부동산 경기의 확장은 중소 건설사와 시행사까지 대규모 사업에 뛰어들게 만듭니다. 하지만 이들 중소 건설ㆍ시행사는 "낮은 신용도 때문에 시중은행 등 제1금융권과 거래하기 어렵고, 자본시장에서 PF 관련 자산유동화기업어음(ABCP) 발행도 불가능하기에 대출 이자율은 높지만 비교적 문턱이 낮은 저축은행에 손을 벌리" 게 된다는 것이죠.

정부에서도 부동산시장 부양을 위해 저축은행의 대출 확대를 도와줍니다. 2008년 금융위기 전까지 부동산시장의 끊임없는 확대는 이들 대규모 개발사업에 대한 투자가 황금알을 낳는 거위로 보이게 했죠. 저축은행들도 PF 대출에 앞다퉈 나서게 됩니다. 지난해 저축은행 퇴출과 관련해 열린 청문회에서 관련 당사자들이 "부동산이 이렇게 될 줄 몰랐다"고 입 맞춰 말한 이유입니다. 조선일보 송희영은 이에 대해 "역대 금융감독원장들 중 누구도 책임지는 발언을 하지 않았다"며 분통을 터뜨리기도 했죠.

그러나 하락하기 시작한 부동산시장과 함께 PF 대출은 대출은 준 쪽도, 대출을 받은 쪽에게도 부메랑으로 돌아왔습니다. PF 사업은 시중 은행보다 높은 대출이자 때문에 빠르게 사업을 마무리 지을 수록 이익이 남는 구조입니다. 이번에 문제가 된 파이시티 사업의 이자율은 연 17%였다고 합니다.

이런 상황에서는 이자를 무는 것보다 적당한 뇌물로 빠르게 인ㆍ허가를 받는게 훨씬 수지에 맞는 일입니다. 정부 관료들과 사업자ㆍ저축은행의 결탁은 바로 여기에서 비롯하죠. 게다가 부실한 저축은행 관리 체계에 안개에 가려진 특수목적회사(SPC)들은 뇌물과 부정을 위한 비자금 조성을 쉽게 해줍니다. 부패와 사기, 부정한 결탁, 저축은행의 부실화가 하나의 수레바퀴처럼 맞물려 돌아가게 됩니다.

●[프레시안] 문 닫은 저축은행, '그들'은 웃는다


소나기는 지나갔는가?

이번 영업정지 조치로 20여 곳의 저축은행이 퇴출됐습니다(아직 절차가 남아있긴 합니다). 업계 1위의 회사까지 영업정지 됐으니 이제 큰 위험은 다 해결한 것일까요?

그러나 불행히도 그렇게 보이진 않습니다. 문제는 자산관리공사(캠코)가 갖고 있는 저축은행의 부실 PF채권이 6조원 규모나 남아있다는 것입니다. 2008년 세계 금융위기에 국내 부동산시장도 타격을 받아 침체하게 됩니다. 대규모 PF 사업들도 좌초하게 되고 이 곳에 투자했던 저축은행들도 위기에 처합니다. 캠코는 484개 사업장 7조3863억원어치의 부실 PF대출을 저축은행으로부터 장부가격의 70%에 인수합니다.

저축은행은 숨통을 틔게 됐죠. 그러나 이것은 한시적인 조치일 뿐입니다. 캠코가 5년동안 이 부실 채권을 팔아보고, 안 팔리면 저축은행이 다시 되사야 하는 조건이었습니다. 조선일보 보도에 의하면 이 중 팔린 것은 1조5677억원으로 전체 부실 PF채권 규모의 21%에 불과합니다. 즉 여전히 부실 PF채권이 6조원가량 남아있고, 이것들이 내년까지 팔리지 않으면 저축은행들이 다시 인수해야 한다는 것이죠.

현재의 부동산시장 상황에서 내년까지 6조원의 부실 PF채권이 해결될 것으로 보이진 않습니다. 금융감독원에 의하면 3월 기준 전체 부동산 PF 부실채권 비율은 9.09%입니다. 이는 지난해 3월(18.09%)보다는 줄었지만 지난해 말(8.14%)보다는 높은 수치죠. 이명박 정부가 부동산 경기 부양에 그토록 애쓰는 데 이 것도 큰 몫을 차지하고 있지 않나 싶습니다.

게다가 부동산 만이 문제는 아닙니다. 한겨레에 의하면 PF 사업의 부실화로 새로운 자금운용처를 찾지 못한 저축은행들이 가계대출을 크게 늘리고 있답니다. 지난해 저축은행의 가계대출 증가율은 24.7%로 일반은행보다 4배 이상 높은 수치를 기록하고 있습니다. 가계대출 부실채권 비율이 5년 만에 최고치를 기록하고 있다는 언론보도가 잇따라 나오고 있는 상황이라 이러한 상황은 더욱 우려스럽습니다.

●[조선일보] 그래도 남은 PF 시한폭탄 6조
●[한겨레] 퇴로 막히고 출구 비좁고 … 남은 저축은행도 '불안'
●[서울신문] 가계대출 부실비율 5년만에 최고치


"저축은행 사태가 저축은행 울타리 안에서 끝나기만을 …"

김찬경 미래저축은행 회장의 사기 행각은 어이 없는 웃음을 자아냅니다. 한국사회의 허술함에 혀를 차게도 하죠. 그러나 이것을 꼭 한국 만의 후진국적 현상으로 볼 필요는 없을 것 같습니다. 2008년 미국 금융위기의 하이라이트는 버나드 메이도프의 폰지사기(돌려막기의 방법으로 새로운 투자자의 돈으로 기존 투자자에게 수익금을 지급하는 사기)가 장식했었죠. 메이도프의 사기극은 월스트리트 첨단 사기기법의 일례일 뿐입니다. 우리나라 저축은행 사태에서도 월스트리트 사기극의 주범들은 그대로 등장합니다. 부동산과 가계대출의 확대, 금융 당국의 안이함 또는 결탁, 신용평가기관의 신용 남발(경향신문ㆍ링크), 금융기관의 부정ㆍ부패 ….

지난해 5월 조선일보 송희영이 "저축은행 사태가 저축은행 울타리 안에서 끝나기만을 바랄 뿐"이라고 적은 것은 이 때문이죠. 1년이 지나 저축은행에 대한 구조조정은 일단락을 지은 듯도 싶습니다. 그러나 그 뿌리는 여전히 건재한 듯 보입니다.

노동자ㆍ서민의 고통도 그대로입니다. 예금을 맡긴 쪽도, 대출을 받은 쪽도 모두 고통받고 있습니다. 한푼이라도 더 벌어보려고, 당장의 생활비ㆍ학자금 마련을 위해 돈을 벌어보려고 그들은 저축은행을 찾았습니다. '저축은행'을 키워드로 검색을 하니 학자금 대출에 대한 학생들의 문의가 수없이 나오더군요. 솔로몬저축은행의 가장 큰 지점이 신촌에 있었다는 얘길 듣고 깜짝 놀라면서도 그럴만 하다고 고개를 끄덕인 것은 그 때문입니다.

우리나라는 다행스럽게도 (이명박에게는 정말 운이 좋게도) 2008년 세계적인 금융위기에서 재빨리 벗어날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금융부문의 위기가 정부부문으로 전가돼 유럽에서 다시 꿈틀대고 있듯이 위기는 아직 끝나지 않은 것 같습니다. 그리고 우리도 2008년 미국과 거의 비슷한 문제를 여전히 떠안고 있습니다. 저축은행 사태를 그저 몇몇 모리배들의 사기행각 만으로 바라봐선 안 될 이유입니다.

●[조선일보] 저축은행에서 나온 폭발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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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정규직을 구해낼 때 오로지 용단만 필요한 건 아니다. 누군가 비용을 부담해야 한다. 임금을 올려줘야 하고, 4대 보험도 들어줘야 한다. 유급휴가, 휴양 시설 사용 같은 복지 혜택도 똑같이 제공해야 한다. (중략)
이제 국내 기업들이 글로벌 생존 경쟁에 뛰어들면서 '회사의 이익이 바로 사원의 이익'으로 통하던 시대와는 결별했다. 어느 회사나 수시로 인건비 총액을 삭감한다. 회사와 종업원이 힘을 모아 회사를 키우고 사원 스스로도 커가면서 열매를 나눠 먹던 밀월 관계는 끝나가고, 회사와 사원이 한 지붕 아래 다른 방을 쓰는 사이가 됐다."
- 회사의 이익, 社員의 이익, '조선일보' 송희영 칼럼(링크)

조선일보 송희영은 정규직 전환, 확대는 비용이 든다고 말합니다. 그는 변화한 세계경제에서 더이상 회사의 이익과 사원의 이익은 일치하지 않는다고 옳게 지적합니다. 따라서 송희영은 정규직 전환 정책보다 비정규직에게 노동기본권을 보장하고 기업에게는 비정규직 채용의 권한을 늘려주어야 한다고 주장합니다.

사실 그에게 방점은 후자, 기업의 비정규직 채용 권한 확대에게 있을 것입니다. 비정규직 노동기본권 보장은 그에 뒤따르는 명분용일 뿐이겠죠. 그럼에도 불구하고 기업이 일방적으로 자신의 계급에게만 유리한 정책을 밀어부치지 못하는 상황을 반영한 주장이긴 합니다.

송희영이 미쳐 고려하지 못하는 것은 비정규직 노동기본권의 보장이 비정규직 부문에서 갈등 분출의 계기가 될 수도 있다는 점이죠. 전태일이 사문화됐었던 근로기준법 이정표로 삼았던 것처럼, 2010년 현대차 비정규직 노동자의 25일간 파업
(2010년 11월 15일~12월 9일)이 대법원의 판결에 기초했던 것처럼, 법적 제도적 권리의 확대는 노동자 투쟁에 큰 자심감을 부여할 가능성이 있습니다.

따라서 그가 원하는 변화가 이뤄지기 위해서는 (비정규직) 노동자 투쟁에 대한 강력한 탄압이 기본 전제로 필요합니다. 대처 시절 영국과 레이건 시절 미국에서처럼 말이죠.

송희영과 한국의 지배계급에게는 안타깝게도 그러한 강력한 국가 탄압을 실행하기 위한 조건은 부족하기 그지 없습니다. 특히 여권이 분열해 있고, 대중적 지지를 잃고 있는 상황에서 강력한 국가 탄압은 정권 자체를 날려버릴 수도 있습니다. 이명박과 한나라당은 대처와 레이건 만큼 사랑받지 못하고 있는게 문제인 것이죠.

다음 정권을 잡을 것이 확실해 보이는 민주통합당의 경우, 한국노총이 한 축을 이루는데서 보이 듯, 노동계급으로부터 완전히 독립적인 위치를 지니고 있지 못합니다. 한국노총이 우파 노조이긴 해도 이들 노동조합 세력의 (부분적인) 지지 없이는 완전한 정권 탈환을 기대할 수 없는게 민주통합당의 현실이죠.

결국 송희영(한국 지배계급)의 바람이 이루어지기 위해선, 즉 개선된 착취 체제를 만들어내기 위해선 어느 정당이 집권을 하든 '정규직 중심'의 한국노총과 민주노총 길들이기가 필수적일 겁니다. 이러한 길들이기가 (한국노총은 가능하다 할지라도) 가능할지는 의심스럽습니다. 설사 가능하다고 하더라도, 이는 공식 노동조합이 노동운동에서 지도적 역할을 잃게 할 가능성이 크죠. 사태가 이렇게 발전한다면 1930년대 미국에서 노동기본권이 확대되는 와중에 CIO(산업별노동조합회의)가 AFL(미국노동자협회)로부터 분리해 만들어졌던 것과 같이 제3노총이 만들어질 가능성도 있습니다
(미국에서 1935년 뉴딜 정책의 일환으로 만들어진 와그너법은 단결권ㆍ단체교섭권을 인정하고 최저임금제를 도입하는 내용을 담고 있습니다). 전국적 노동조합의 건설 없이 기업별 노동조합의 각개약진이 이뤄질 가능성도 있고요.

너무 먼 미래까지 나간 듯 합니다. 중요한 것은 한나라당이든 민주통합당이든 한국 자본주의의 '개선'을 과제로 삼는 한, 공식 노동조합에 대한 유화책과 함께 급진적 노동운동에 대한 강력한 탄압을 유지ㆍ강화하려는 시도를 할 것이라는 거죠. 이 와중에 정규직/비정규직에 대한 분리지배 전략은 더욱 기승을 부릴 겁니다. '비정규직 노동기본권' 보장과 함께 정규직에 대한 도덕적 공격을 기초로 일반적인 노동기본권 축소가 시도될 수도 있다고 봅니다.

조선일보의 지배계급 내 위상이 예전만 못한 상황에서 송희영과 조선일보의 구상이 얼마나 현실이 될지는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우파 언론인 중 가장 명민한 송희영의 주장은 꼼꼼히 따져볼 필요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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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젠 '자본주의 4.0'이다
한계 부딪힌 50년 한강의 기적… 다같이 행복한 성장으로 가야

1.0 자유방임 고전자본주의  2.0 정부주도 수정자본주의  3.0 시장주도 新자유주의  4.0 따뜻한 자본주의

8월 2일 조선일보 1면 톱기사의 제목입니다. 조선일보를 꾸준히 봐왔던 분이라면 이러한 논조가 낯설진 않을 것입니다. 편집국장과 논설실장을 거친 송희영 논설위원이 조선일보의 이러한 논조를 대표하죠. 쌍용차 옥쇄 파업을 거론한 칼럼에서는 한국의 사회안전망 부재가 격렬한 노사갈등의 원인임을 지적하기도 합니다. 부산저축은행 사태에 대한 글에서는 '신자유주의'적 최신 금융기법이 어떻게 '사기'를 쳐왔고 그 위험이 얼마나 큰지에 대해 지적합니다.

물론 그렇다고 이를 조선일보의 '회개'로 볼 필요는 없습니다. 조선일보는 언제나 한국 자본주의의 생존을 위한 자본가 계급 일반의 전략을 제시하고 이를 위한 의지를 모으는데 앞장서 왔으니까요. 그들이 보기에 (그리고 제가 보기에도) 한국 사회는 어떠한 임계점에 다다르고 있습니다. "해고는 살인이다"라는 구호는 '구호'가 아닌 '현실'이 됐죠. 매일 같이 수많은 사람들이 스스로 목숨을 끊고 있습니다. 저임금에 고통받고, 불안정한 일자리에 몸서리 칩니다.

사회의 진보적 미래를 꿈꾸는 사람들이 조선일보와 다른 점은, 이러한 임계점 직후 드러날 폭발에 대한 태도겠죠. 저들은 이러한 폭발을 두려움에 떨며 사전 제압할 것을 요구합니다. 여기서 우익 내부의 의견도  갈립니다. 중앙일보는 더 강하게 제압할 것을 요구하고, 조선일보는 '부드러운' 태도로 불만을 흡수할 것을 요청하죠. 중앙일보는 현재의 위기를 약간은 더 가볍게 바라보는 듯 합니다. 아마도 미래는 조선일보의 바람대로 될 가능성이 클 듯 합니다.

어쨌든 이야기를 계속하자면, 좌익은 이러한 폭발에서 현 사회의 뿌리깊은 고질병들을 원인에서부터 치료하자고 주장할 것입니다. 저는 거기에 동의하고 있는 바고요. 그런데 좌익의 현 상황은 그리 녹녹치 않습니다. 며칠전 3차 희망버스에서 만난 홍세화 선생. 그는 영도거리에서 만난 주민과 자본주의의 극복과 그 대안에 대해 토론하더군요. 열정적으로. 좌익의 젊은 활동가 중에 그만한 열정-거리의 주민과 자본주의의 극복과 대안에 대해 토론할-을 지닌 이가 얼마나 될지 의문입니다. 제 자신도 언제부턴가는 그렇고요. 그저 대안이랍시고 내놓는게 '복지국가' 정도입니다. 사실 예전 좌익이 서유럽의 복지국가에 대해 얼마나 많은 비판을 해왔던지를 돌이켜보면 이 변화는 정말 놀랍습니다. 물론 그런 변화조차도 성에 안차서 기껏 '복지국가' '진보의 독립적인 정치조직'을 주장하는 정도로 '혁명 놀이' 하는 어린애 취급받곤 하지만요.

조선일보의 자본주의 4.0 특집은 오늘도 이어졌습니다. 진보를 자임하는 사람들은 조선일보의 이러한 전략을 뛰어넘을 수 있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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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의 저축은행 문제는 여러모로 2008년 미국의 금융위기를 닮았습니다. 그것이 부동산 경기 위축과 밀접한 연관을 맺고 있다는 점, 정부ㆍ정치권의 부동산 부양책의 후유증이라는 점, 관련 저축은행과 기업ㆍ대주주의 '모럴 해저드'가 적나라하게 드러났다는 점, '첨단' 금융기법의 발달로 부실의 뿌리가 얼마나 깊은지 파악하기 어렵다는 점에서 그렇습니다. 조선일보 송희영 논설주간은 최근 두 칼럼에서 연이어 이 점을 지적합니다.

[4월 21일] 열린 국회 청문회에서도 역대 금융감독원장들 중 누구도 책임지는 발언을 하지 않았다. 모두가 혀를 교묘하게 굴리며 빠져나갔다. 신용금고에 '은행'이라는 고상한 간판을 달아주었던 사람들이나 저축은행도 은행이니 부동산에 펑펑 대출해주라고 물길을 터줬던 사람들이나 그때는 "저축은행은 믿을 만한 곳"이라는 메시지를 전했었다. 이제 와서는 입을 맞춘 듯 "부동산이 이렇게 될 줄 몰랐다"며 '예상 밖의 사태'란 방패 뒤에 몸을 숨긴다.
- 금융감독원장들의 '미끈한 혀', 송희영, 조선일보 2011년 4월 23일 26면(링크)

저축은행이 무더기 도산한 출발점은 부동산 경기 침체다. 부동산 불황(不況)이 길어져 거대 개발 사업에 대출해준 저축은행들이 큰돈을 물리고 말았다. … (중략) … 저축은행 대주주와 경영진이 죄인이라고 해서 할 말이 없는 것은 아니다. 그들은 권력자와 정치인을 믿고 따라갔다고 말한다. 노무현 정권은 기업도시·혁신도시로 바람을 잡았고, 이명박 정권 들어서는 뉴타운·보금자리 주택·4대강 개발로 부동산을 띄웠다. 시장·군수들은 너도나도 재개발 공약을 내놨다. … (중략) … 저축은행 사태가 찜찜한 이유는 더 있다. 그 안에 숨겨진 '폭발물'을 다 잡아낼 수 없다. 이번에 여러 군데서 이중장부가 나왔다. 특수목적회사(SPC)를 120개나 몰래 경영하면서 예금자 돈을 빼돌린 사례도 적발됐다. … (중략) … 감독 당국의 감시카메라를 피해 음지(陰地)에서 큰돈을 굴리는 경쟁이 국내 금융권에서 성행하고 있다. 서울 증권시장은 파생금융상품 거래에서 2년 연속 세계 최고 기록을 세웠다. 파생상품의 본가(本家)라는 시카고·뉴욕 시장까지 누르고 작년에 37억여건 거래가 이루어졌다고 한다. 한국 금융이 부쩍 성장했다고 뿌듯해 할 만한 징표는 결코 되지 못한다.
- 저축은행에서 나온 폭발물, 송희영, 조선일보 2011년 5월 7일 30면(링크)

저축은행 부실 문제는 부산저축은행의 부당 인출 사건으로 커다란 분노를 사고 있습니다. 이는 당장 금융감독 기능의 개혁 문제를 제기하는 듯 합니다. 금융감독 기구 쇄신을 위한 '금융감독 혁신 태스크포스(TF)'가 9일 출범했습니다. 금융감독원과 한국은행은 신경전을 벌이고 있죠. 하지만 금융감독 기구를 개혁(그것이 규제의 '강화'든, '효율'화이든)하면 이 모든 사태가 깔끔히 정리될까요?

조선일보의 송희영은 그렇게 보이지 않나봅니다. 그는 "말끔히 청소가 끝날 쯤이면 또 다른 탐욕과 무능, 천재성이 선량한 국민을 속이기 시작할 것이다. 어느 나라나 속이는 쪽과 속는 쪽은 정해져 있다"고 말합니다. 금융 시스템에 종사하는 '천재'들의 혁신은 그야말로 눈이 휘둥그레 돌아갈 정도의 속도로 각종 '첨단' 금융기법들을 선보이고 있습니다. 사실 그들 스스로 자신이 하는 일 전체를 '이해하고' 하는지 의심갈 정도입니다. 이러한 금융의 '혁신'을 사건의 발생 후 추적해가야 하는 '금융감독 기구'가 따라갈 수 있을까요?

스티글리츠는 2008년 위기 이후 금융감독의 강화를 핵심적 과제로 지적하면서 경제 전체에서 금융 부문의 비대한 성장을 함께 제한해야 한다고 강조하고 있습니다. 즉 현재의 금융 시스템을 그대로 둔체 감독기능만 강화한다고 2008년 위기를 불러온 문제점을 해결할 수 있다고 생각지 않는 것이죠. 송희영과 스티글리츠가 달라지는 건 이 부분일 것입니다. 송희영은 두 칼럼에서 저축은행으로 대표되는 한국 금융시장의 문제점을 지적하고 있지만 그것을 경제 전체에서 금융이 차지하는 위치에 대한 문제제기로 잇지는 않고 있습니다.

금융 시스템 내에서의 부정ㆍ부패, 도덕적 해이 만이 현재 저축은행 사태에서 문제가 되고 있는 것은 아닙니다. 저축은행 부실이 부동산에 뿌리를 두고 있다는 것 때문에 다른 경제 부문으로 부실이 확산될 우려가 강하게 제기되고 있습니다. 게다가 이번 저축은행 사태에서 부분적으로 드러난 '지뢰'들은 그 규모를 파악하기 어렵다는 것이 더 큰 문제입니다. 한국의 파생금융상품 거래가 세계 최고 기록을 세웠다는 송희영의 지적이 서늘하게 다가오는 것은 그 때문입니다. 그는 "경제 흐름에 나쁜 신호등 여러개가 동시에 깜박거린다""저축은행 사태가 저축은행 울타리 안에서 끝나기만을 바랄 뿐이다"라고 글을 마무리합니다. 그 바람에는 저도 기꺼이 함께합니다. 언제나 위기는 노동자와 하층민들에게 더 큰 어려움과 고통을 부과했기 때문이죠. 하지만 현재의 정부가, 현재 한국사회의 지배적 분파가 이 위기를 얼마나 효율적으로 관리할 수 있을지 의문입니다.

아마도 더 어려운 시기가 올 수도 있을 것이란 생각이 듭니다. 그 때를 대비하기 위해서일까요. 송희영은 그의 두 칼럼에서 연이어 정치권ㆍ금융권ㆍ정부관료 모두를 강하게 비판하고 있습니다. 모두에게 죄가 있기에 아무도 책임지지 않는 그러한 결말이 저들이 원하는 최선이겠죠. 하지만 지금의 비판이 그 자신과 현 정부ㆍ정치권의 면죄부가 돼서는 안될 것입니다.

Posted by 때때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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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월 26일 여의도 국회 앞 언론노조 총파업 결의대회 [경향신문]

MBC와 언론노조의 총파업이 정국을 뜨겁게 달구고 있습니다. 언론 노동자들이 과격한 것일까요?

흔히 우리의 과격한 투쟁이 정부의 과격한 대응을 불러온다는 오해를 하곤 합니다. 우리가 합리적으로 대응하면 저들도 합리적으로 대응할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MB야 워낙 막무가내에다가 불도저니 이런 오해가 많이 줄어들긴 했습니다. 하지만 촛불시위를 거치는 과정에서도 우리는 이런 주장들을 흔히 만나볼 수 있었죠.

전 우리의 과격한 행동에 불만을 가지신 분들에겐 조선일보의 칼럼을 주의깊게 살펴보라고 말하곤 합니다.

[강천석 칼럼] 대한민국 운명을 결정짓는 2009년을 향해

다시 케인스의 염려를 들어볼 차례다. "경제학자와 정치철학자의 생각은 옳고 그름을 떠나 흔히 짐작하는 것보다 훨씬 강력하다… 어느 미치광이가 하늘의 계시(啓示)를 들었다고 주장할 때, 그것은 흘러간 학자의 이론으로부터 새로운 광기(狂氣)를 만들어냈다는 뜻이다." 우리가 직장을 잃고 거리를 헤매는 사람들의 고통을 남의 일로만 대할 때, 그들의 피맺힌 목소리를 그냥 흘려 들을 때, 초라하게 세상을 떠났던 마르크스의 계시를 받았다는 무리들이 떼지어 서울 거리를 휩쓸게 될지도 모른다. 그런 의미에서 2009년은 '경제의 해'이자 대한민국의 운명을 결정짓는 '정치의 해'가 될 것이다.
(※ 클릭하시면 조선일보 '강천석 칼럼'으로 이동합니다.)

얼마전 정정길 대통령실장은 내년 2월 청년실업자들이 '폭동'을 일으킬 지 모른다는 두려움을 피력하기도 했습니다. 그리스의 시위는 이런 두려움에 불을 붙였을 겁니다. 그래서 조선일보 주필인 강천석은 "우리가 직장을 잃고 거리를 헤매는 사람들의 고통을 남의 일로만 대할 때, 그들의 피맺힌 목소리를 그냥 흘려 들을 때, 초라하게 세상을 떠났던 마르크스의 계씨를 받았다는 무리들이 떼지어 서울 거리를 휩쓸게 될지도 모른다"고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저들의 대안은? 키워드는 '정치의 해'입니다. 조선일보가 말하는 '정치'란 지금 국회에서 논란이 되고 있는 MB 법안들이죠. 집회와 시위의 자유를 근본적으로 침해하며, 인터넷과 오프라인에서의 표현의 자유를 원천적으로 제약하는 법안들을 무리가 따르더라도 강행 처리할 것을 요구하는 것입니다.

점거농성 중인 민주당에 의하면 본회의장 출입문들엔 이미 4중 5중의 철제 잠금 장치가 새로 설치돼 있었다더군요. 한나라 당직자쪽 방에선 사다리까지 발견됐다고 합니다. 민주당이 점거농성에 들어가기 전 이미 한나라당은 더 '과격한' 대응을 준비하고 있었던 게죠. 국회 사무총장인 박계동은 역대 그 어떤 국회사무총장보다 더 '과격'하게 민주당과 야당을 압박하고 있습니다.

MB는 연일 '돌파' '돌격' '속도전' '전광석화'같은 말을 쏟아내며 자신 이름이 붙은 악법들을 강행처리하려고 합니다. 저들은 '합법적'인 방법으로 민주주의를 후퇴시키려고 하는 것입니다. 지금 저들은 민주주의의 발전을 가로막는 '전봇대'를 세우려고 하는 것입니다. 4년 후, 설사 한나라당이 정권을 잃는다고 해도 이 '전봇대'는 오랜 기간 우리의 민주주의를 병들게 만들 것입니다. 이럴 때면 민주주의라는 제도가 얼마나 허약한지 뼈저리게 실감하곤 합니다. 하지만 우리가 민주주의를 오직 국회 안에서만 작동하는 장치라고 생각지 않는다면 바로 지금이야 말로 민주주의의 탄생지인 거리에서 민주주의를 되살리는데 함께 해야 할 것으로 보입니다.

MBC와 언론 노동자들이 그 길을 앞서가고 있습니다. 그 길에 더 많은 사람들이 함께 할 수 있다면 미래가 그리 어둡지만은 않을 것입니다.

Posted by 때때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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