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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젠 '자본주의 4.0'이다
한계 부딪힌 50년 한강의 기적… 다같이 행복한 성장으로 가야

1.0 자유방임 고전자본주의  2.0 정부주도 수정자본주의  3.0 시장주도 新자유주의  4.0 따뜻한 자본주의

8월 2일 조선일보 1면 톱기사의 제목입니다. 조선일보를 꾸준히 봐왔던 분이라면 이러한 논조가 낯설진 않을 것입니다. 편집국장과 논설실장을 거친 송희영 논설위원이 조선일보의 이러한 논조를 대표하죠. 쌍용차 옥쇄 파업을 거론한 칼럼에서는 한국의 사회안전망 부재가 격렬한 노사갈등의 원인임을 지적하기도 합니다. 부산저축은행 사태에 대한 글에서는 '신자유주의'적 최신 금융기법이 어떻게 '사기'를 쳐왔고 그 위험이 얼마나 큰지에 대해 지적합니다.

물론 그렇다고 이를 조선일보의 '회개'로 볼 필요는 없습니다. 조선일보는 언제나 한국 자본주의의 생존을 위한 자본가 계급 일반의 전략을 제시하고 이를 위한 의지를 모으는데 앞장서 왔으니까요. 그들이 보기에 (그리고 제가 보기에도) 한국 사회는 어떠한 임계점에 다다르고 있습니다. "해고는 살인이다"라는 구호는 '구호'가 아닌 '현실'이 됐죠. 매일 같이 수많은 사람들이 스스로 목숨을 끊고 있습니다. 저임금에 고통받고, 불안정한 일자리에 몸서리 칩니다.

사회의 진보적 미래를 꿈꾸는 사람들이 조선일보와 다른 점은, 이러한 임계점 직후 드러날 폭발에 대한 태도겠죠. 저들은 이러한 폭발을 두려움에 떨며 사전 제압할 것을 요구합니다. 여기서 우익 내부의 의견도  갈립니다. 중앙일보는 더 강하게 제압할 것을 요구하고, 조선일보는 '부드러운' 태도로 불만을 흡수할 것을 요청하죠. 중앙일보는 현재의 위기를 약간은 더 가볍게 바라보는 듯 합니다. 아마도 미래는 조선일보의 바람대로 될 가능성이 클 듯 합니다.

어쨌든 이야기를 계속하자면, 좌익은 이러한 폭발에서 현 사회의 뿌리깊은 고질병들을 원인에서부터 치료하자고 주장할 것입니다. 저는 거기에 동의하고 있는 바고요. 그런데 좌익의 현 상황은 그리 녹녹치 않습니다. 며칠전 3차 희망버스에서 만난 홍세화 선생. 그는 영도거리에서 만난 주민과 자본주의의 극복과 그 대안에 대해 토론하더군요. 열정적으로. 좌익의 젊은 활동가 중에 그만한 열정-거리의 주민과 자본주의의 극복과 대안에 대해 토론할-을 지닌 이가 얼마나 될지 의문입니다. 제 자신도 언제부턴가는 그렇고요. 그저 대안이랍시고 내놓는게 '복지국가' 정도입니다. 사실 예전 좌익이 서유럽의 복지국가에 대해 얼마나 많은 비판을 해왔던지를 돌이켜보면 이 변화는 정말 놀랍습니다. 물론 그런 변화조차도 성에 안차서 기껏 '복지국가' '진보의 독립적인 정치조직'을 주장하는 정도로 '혁명 놀이' 하는 어린애 취급받곤 하지만요.

조선일보의 자본주의 4.0 특집은 오늘도 이어졌습니다. 진보를 자임하는 사람들은 조선일보의 이러한 전략을 뛰어넘을 수 있을까요.

Posted by 때때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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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의 저축은행 문제는 여러모로 2008년 미국의 금융위기를 닮았습니다. 그것이 부동산 경기 위축과 밀접한 연관을 맺고 있다는 점, 정부ㆍ정치권의 부동산 부양책의 후유증이라는 점, 관련 저축은행과 기업ㆍ대주주의 '모럴 해저드'가 적나라하게 드러났다는 점, '첨단' 금융기법의 발달로 부실의 뿌리가 얼마나 깊은지 파악하기 어렵다는 점에서 그렇습니다. 조선일보 송희영 논설주간은 최근 두 칼럼에서 연이어 이 점을 지적합니다.

[4월 21일] 열린 국회 청문회에서도 역대 금융감독원장들 중 누구도 책임지는 발언을 하지 않았다. 모두가 혀를 교묘하게 굴리며 빠져나갔다. 신용금고에 '은행'이라는 고상한 간판을 달아주었던 사람들이나 저축은행도 은행이니 부동산에 펑펑 대출해주라고 물길을 터줬던 사람들이나 그때는 "저축은행은 믿을 만한 곳"이라는 메시지를 전했었다. 이제 와서는 입을 맞춘 듯 "부동산이 이렇게 될 줄 몰랐다"며 '예상 밖의 사태'란 방패 뒤에 몸을 숨긴다.
- 금융감독원장들의 '미끈한 혀', 송희영, 조선일보 2011년 4월 23일 26면(링크)

저축은행이 무더기 도산한 출발점은 부동산 경기 침체다. 부동산 불황(不況)이 길어져 거대 개발 사업에 대출해준 저축은행들이 큰돈을 물리고 말았다. … (중략) … 저축은행 대주주와 경영진이 죄인이라고 해서 할 말이 없는 것은 아니다. 그들은 권력자와 정치인을 믿고 따라갔다고 말한다. 노무현 정권은 기업도시·혁신도시로 바람을 잡았고, 이명박 정권 들어서는 뉴타운·보금자리 주택·4대강 개발로 부동산을 띄웠다. 시장·군수들은 너도나도 재개발 공약을 내놨다. … (중략) … 저축은행 사태가 찜찜한 이유는 더 있다. 그 안에 숨겨진 '폭발물'을 다 잡아낼 수 없다. 이번에 여러 군데서 이중장부가 나왔다. 특수목적회사(SPC)를 120개나 몰래 경영하면서 예금자 돈을 빼돌린 사례도 적발됐다. … (중략) … 감독 당국의 감시카메라를 피해 음지(陰地)에서 큰돈을 굴리는 경쟁이 국내 금융권에서 성행하고 있다. 서울 증권시장은 파생금융상품 거래에서 2년 연속 세계 최고 기록을 세웠다. 파생상품의 본가(本家)라는 시카고·뉴욕 시장까지 누르고 작년에 37억여건 거래가 이루어졌다고 한다. 한국 금융이 부쩍 성장했다고 뿌듯해 할 만한 징표는 결코 되지 못한다.
- 저축은행에서 나온 폭발물, 송희영, 조선일보 2011년 5월 7일 30면(링크)

저축은행 부실 문제는 부산저축은행의 부당 인출 사건으로 커다란 분노를 사고 있습니다. 이는 당장 금융감독 기능의 개혁 문제를 제기하는 듯 합니다. 금융감독 기구 쇄신을 위한 '금융감독 혁신 태스크포스(TF)'가 9일 출범했습니다. 금융감독원과 한국은행은 신경전을 벌이고 있죠. 하지만 금융감독 기구를 개혁(그것이 규제의 '강화'든, '효율'화이든)하면 이 모든 사태가 깔끔히 정리될까요?

조선일보의 송희영은 그렇게 보이지 않나봅니다. 그는 "말끔히 청소가 끝날 쯤이면 또 다른 탐욕과 무능, 천재성이 선량한 국민을 속이기 시작할 것이다. 어느 나라나 속이는 쪽과 속는 쪽은 정해져 있다"고 말합니다. 금융 시스템에 종사하는 '천재'들의 혁신은 그야말로 눈이 휘둥그레 돌아갈 정도의 속도로 각종 '첨단' 금융기법들을 선보이고 있습니다. 사실 그들 스스로 자신이 하는 일 전체를 '이해하고' 하는지 의심갈 정도입니다. 이러한 금융의 '혁신'을 사건의 발생 후 추적해가야 하는 '금융감독 기구'가 따라갈 수 있을까요?

스티글리츠는 2008년 위기 이후 금융감독의 강화를 핵심적 과제로 지적하면서 경제 전체에서 금융 부문의 비대한 성장을 함께 제한해야 한다고 강조하고 있습니다. 즉 현재의 금융 시스템을 그대로 둔체 감독기능만 강화한다고 2008년 위기를 불러온 문제점을 해결할 수 있다고 생각지 않는 것이죠. 송희영과 스티글리츠가 달라지는 건 이 부분일 것입니다. 송희영은 두 칼럼에서 저축은행으로 대표되는 한국 금융시장의 문제점을 지적하고 있지만 그것을 경제 전체에서 금융이 차지하는 위치에 대한 문제제기로 잇지는 않고 있습니다.

금융 시스템 내에서의 부정ㆍ부패, 도덕적 해이 만이 현재 저축은행 사태에서 문제가 되고 있는 것은 아닙니다. 저축은행 부실이 부동산에 뿌리를 두고 있다는 것 때문에 다른 경제 부문으로 부실이 확산될 우려가 강하게 제기되고 있습니다. 게다가 이번 저축은행 사태에서 부분적으로 드러난 '지뢰'들은 그 규모를 파악하기 어렵다는 것이 더 큰 문제입니다. 한국의 파생금융상품 거래가 세계 최고 기록을 세웠다는 송희영의 지적이 서늘하게 다가오는 것은 그 때문입니다. 그는 "경제 흐름에 나쁜 신호등 여러개가 동시에 깜박거린다""저축은행 사태가 저축은행 울타리 안에서 끝나기만을 바랄 뿐이다"라고 글을 마무리합니다. 그 바람에는 저도 기꺼이 함께합니다. 언제나 위기는 노동자와 하층민들에게 더 큰 어려움과 고통을 부과했기 때문이죠. 하지만 현재의 정부가, 현재 한국사회의 지배적 분파가 이 위기를 얼마나 효율적으로 관리할 수 있을지 의문입니다.

아마도 더 어려운 시기가 올 수도 있을 것이란 생각이 듭니다. 그 때를 대비하기 위해서일까요. 송희영은 그의 두 칼럼에서 연이어 정치권ㆍ금융권ㆍ정부관료 모두를 강하게 비판하고 있습니다. 모두에게 죄가 있기에 아무도 책임지지 않는 그러한 결말이 저들이 원하는 최선이겠죠. 하지만 지금의 비판이 그 자신과 현 정부ㆍ정치권의 면죄부가 돼서는 안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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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대근 칼럼] 우리는 조용히 죽어가고 있다(링크)
만약 20대라면 실업자일 가능성이 높고, 중년이라 해도 비정규직이기 쉬우며 큰 병에 걸리면 가정이 파탄나고, 늙는 것은 곧 가난해지는 것을 의미하는 사회에서 가난한 여자가 구원받는 길은 재벌2세의 여자가 되는 것이라는 환상을 퍼뜨리는 한 세상은 쉬 변하지 않을 것이다. 먹는 밥의 한 숟가락, 하루 중 단 몇 분, 번 돈과 노동의 일부라도 세상을 바꾸는 데 쓰지 않으면 죽음의 행진을 막을 수 없다. 내가 돈과 시간을 내지 못한다면 다른 사람도 못한다. 내가 그렇게 못할 사정이 있다면, 다른 사람도 사정이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내가 할 수 있다면, 다른 사람도 할 수 있다. 그래도 하지 않겠다면 죽음의 공포가 연탄가스처럼 스며드는 이 조용한 사회에서 당신은 죽을 각오로 살아가야 한다. 그렇게 해서 당신만이라도 살아남는다면 다행일 것이다.

기름값이 오릅니다. 우유값이 오릅니다. 수입 밀 가격도 급등하고 있습니다. 빵값도 곧 오르겠죠. 고기값도 오르죠. 모든 것이 오르는데 제 월급만 안 오릅니다. 잘리지만 않아도 다행이죠. 쌀값이나마 안 올라준다면 고맙겠습니다.

긴 얘기를 덧붙일 필요가 없는 칼럼입니다. 저라면 제목을 이렇게 달았겠습니다.

"당신만이라도 살아남는다면 다행일 것이다"

p.s. 한국사회포럼이 오늘(17일)부터 토요일까지 서강대학교 다산관에서 열립니다. 개막토론 주제는 '한반도 긴장, 진보적 관점과 대응'입니다. 이 토론에는 김하영(다함께), 박경순(민주노동당), 이대근(경향신문), 정욱식(평화네트워크)이 참여합니다. 이 밖에도 최근 쟁점이 되고 있는 주제가 두루 포함돼 있습니다. △삼성의 지배구조와 무노조 경영 △공정하고 효과적인 온실가스 감축방안을 위한 모색 △간접고용, 대안과 해결 방향이 기획토론회 주제로 잡혀 있습니다. 진보진영의 재편도 토론의 중요한 주제입니다. 토요일(19일) 오후 3시30분부터 시작되는 폐막대토론회에는 김장민(민주노동당), 박용진(진보신당), 신석준(사회당)이 발표자로 나서서 진보정치의 재구성을 주제로 토론합니다. 박용진은 진보신당에서 통합파에 가까운 사람인데 발표자로 나섰다니 좀 의외입니다. 결국 중앙당은 통합쪽으로 가닥을 잡은 듯 싶어요(이게 제 기우이기만을 바라지만).

오늘 내일은 평일이라 힘들지만 토요일엔 관심있는 분들의 많은 참여 바랍니다.
사회운동과 비전 2012 '한국사회포럼 2011'(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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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 5. 12. 10:09

한겨레의 과도한 민족주의 언론스크랩2010. 5. 12. 10:09

어제(5월 12일) LG가 한화의 류현진에게 대기록을 헌납했다. 한 게임 17K. 종전 9이닝 최다 탈삼진은 16개로 최동원, 선동열, 이대진이 갖고 있던 기록이 깨진 것이다. 그나마 다행인 건 이병규의 홈런 한 방으로 '완봉'은 면한 것. 그래도 9이닝 동안 124개의 공을 던지고, 17K를 잡은 류현진은 정말 괴물이다.

마침 오늘 한겨레에 '신의 선물 퍼펙트게임'이라는 김동훈 기자의 칼럼이 나란히 실렸다. 시의적절한 칼럼이다. 그런데 눈에 거슬리는 것.


김동훈 기자의 직선타구 신의 선물 '퍼펙트게임'(링크) 일부
1950년 6월 28일 일본 아오모리 시영야구장. … 후지모토 히데오(당시 32)는 … 선발 예정이던 다다 후쿠조의 복통으로 갑자기 마운드에 섰다. … 일본 프로야구 최초의 퍼펙트게임이 달성되는 순간이었다. 후지모토는 한국인이었다. 1918년 부산에서 태어나 3살 때 부모를 따라 일본 시모노세키로 이주한 이팔용이 그다.

내가 인용한 부분 중 마지막 두 문장. 칼럼의 논지를 따라가는데 아무런 필요도 없는 부분이다. 오히려 방해만 할 뿐. 그가 한국인이든 일본인이든 '퍼펙트게임'은 실력만으로는 불가능한 '신의 선물'이라는 기자의 논지엔 아무런 영향을 미치지 못한다.

게다가 1918년에 태어난 그가 한국인? 18년이면 이미 조선 혹은 대한제국은 몰락했던 때 아닌가? 설사 동시 불붙고 있던 독립운동과 임시정부를 논한다 하더라도 해방 후 두 개의 국가로 나뉜 상태다. 그 두 국가 중 어느 하나의 국호를 그에게 붙일 수 있단 말인가?

과도한 민족주의일 뿐. 이런 글은 눈살을 찌푸리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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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연풍청년 2013.02.20 17:32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한겨레는 조중동과 논고만 다를 뿐 사회적인 위치나 행동양식은 똑같습니다. 쉽게 말해 진보/민주계의 조중동인 것이죠. 80년대~90년대 중반 까지만 해도 진보적인 언론이었으나 새누리당을 보수, 다른 세력을 통칭해 진보라고 묶는 사회의 프레임을 그대로 흡수해 진보(온건보)쪽의 매체가 된 것입니다. 일용직 노동자 등 진보적인 보도를 하는 건 맞지만 진보정치세력이나 운동진영에 대한 보도를 할 때는 철저히 온건보수 정도의 입장을 견지합니다. 행동도 웃긴것이 김류미 글은 하루가 멀다하고 실어주면서 이산가족이나 통일 등 민감한 문제는 외면 합니다.

2009. 2. 5. 11:52

[경향신문] 용산 테러리스트 언론스크랩2009. 2. 5. 11:52

[경향신문] 용산 테러리스트|이대근 칼럼(클릭하면 경향신문 '이대근 칼럼'으로 이동합니다.)

어렸을 땐 신문의 오피니언 면을 거의 보지 않았습니다. 지금은 사회면은 건성으로 읽더라도 오피니언 면은 꼼꼼하게 읽으려 노력하고 있죠.

지난 후에라도 찾아보는 칼럼 몇몇이 있습니다. 경향신문 이대근 칼럼이 그 대표죠. 오늘 실린 칼럼의 제목은 '용산 테러리스트'입니다.

그는 이제 더이상 이명박 대통령에 대한 '조언'은 필요 없을 것 같다고 합니다. 아니, 사실은 필요 없는게 아니라 '소용'이 없는 것이겠죠. 이 대통령의 마이동풍 속도전, 죽은 자에 대한 최소한의 애도조차 표현치 않는 후안무치를 보며 그가 "이명박의 말대로 조언은 그만해도 될 것 같다"고 적을 때 가졌을 씁쓸한 심정에 공감하게 됩니다.

"마키아벨리는 말했다. ‘사람들은 흔히 군주가 현명하다는 평판을 듣는 것은 군주가 정말 현명해서가 아니라, 훌륭한 조언자들 덕이라고 하는데 그건 잘못된 견해이다. 군주의 지혜가 좋은 조언을 낳는 것이지, 좋은 조언이 군주의 지혜를 낳을 수는 없다.’ 이명박의 말대로 조언은 그만해도 될 것 같다."

'유전무죄 무전유죄'는 사회적 현실을 적절히 표현해 줄 지언정 진실을 설명해주는 말은 못됩니다. 재벌 회장들이 '사회적 기여'를 인정받아 죄를 '용서'받을 때 '밥벌이'를 지키기 위해 망루로 올라간 철거민들은 '법치'를 위협하는 '테러리스트'로 벌을 받고 격리되어야만 하는게 현실입니다. 사회를 운영하는 최소한의 규칙, 법이 공정성을 잃었을 때 민주주의적 대통령 선거는 5년에 한 번 '독재자'를 뽑는 선거가 돼버렸습니다.

"그러나 큰 죄를 진 재벌총수를 죄다 용서함으로써 법이 정의와는 무관한 기득권 보호 장치임을 전 국민에게 학습시켰을 때 법질서는 이미 무너졌다는 걸 알아야 한다. 그렇지 않다면, 철거민들은 벌써 법의 보호를 받았을 것이고, 한 명도 죽지 않았을 것이다. 그들이 테러리스트였다는 선전으로는 무너진 법이 회복되지 않는다. 그러기에는 법의 정신이 이 정권에 의해 너무 많이 훼손되었다. 어쩔 텐가. 이제는 국가의 이름으로, 법과 질서의 이름으로 복종을 강요할 수 없다. 국가와 시민의 사회계약은 거의 깨졌다."

깨어진 사회계약. 결국 우리는 이 야만에 길들여져야 하든가 새로운 사회계약을 위해 나서야 할 때가 온 것 아닌가 합니다.

Posted by 때때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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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 12. 27. 13:05

[언론파업] 2009년 거리 정치의 귀환 언론스크랩2008. 12. 27. 13:05

12월 26일 여의도 국회 앞 언론노조 총파업 결의대회 [경향신문]

MBC와 언론노조의 총파업이 정국을 뜨겁게 달구고 있습니다. 언론 노동자들이 과격한 것일까요?

흔히 우리의 과격한 투쟁이 정부의 과격한 대응을 불러온다는 오해를 하곤 합니다. 우리가 합리적으로 대응하면 저들도 합리적으로 대응할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MB야 워낙 막무가내에다가 불도저니 이런 오해가 많이 줄어들긴 했습니다. 하지만 촛불시위를 거치는 과정에서도 우리는 이런 주장들을 흔히 만나볼 수 있었죠.

전 우리의 과격한 행동에 불만을 가지신 분들에겐 조선일보의 칼럼을 주의깊게 살펴보라고 말하곤 합니다.

[강천석 칼럼] 대한민국 운명을 결정짓는 2009년을 향해

다시 케인스의 염려를 들어볼 차례다. "경제학자와 정치철학자의 생각은 옳고 그름을 떠나 흔히 짐작하는 것보다 훨씬 강력하다… 어느 미치광이가 하늘의 계시(啓示)를 들었다고 주장할 때, 그것은 흘러간 학자의 이론으로부터 새로운 광기(狂氣)를 만들어냈다는 뜻이다." 우리가 직장을 잃고 거리를 헤매는 사람들의 고통을 남의 일로만 대할 때, 그들의 피맺힌 목소리를 그냥 흘려 들을 때, 초라하게 세상을 떠났던 마르크스의 계시를 받았다는 무리들이 떼지어 서울 거리를 휩쓸게 될지도 모른다. 그런 의미에서 2009년은 '경제의 해'이자 대한민국의 운명을 결정짓는 '정치의 해'가 될 것이다.
(※ 클릭하시면 조선일보 '강천석 칼럼'으로 이동합니다.)

얼마전 정정길 대통령실장은 내년 2월 청년실업자들이 '폭동'을 일으킬 지 모른다는 두려움을 피력하기도 했습니다. 그리스의 시위는 이런 두려움에 불을 붙였을 겁니다. 그래서 조선일보 주필인 강천석은 "우리가 직장을 잃고 거리를 헤매는 사람들의 고통을 남의 일로만 대할 때, 그들의 피맺힌 목소리를 그냥 흘려 들을 때, 초라하게 세상을 떠났던 마르크스의 계씨를 받았다는 무리들이 떼지어 서울 거리를 휩쓸게 될지도 모른다"고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저들의 대안은? 키워드는 '정치의 해'입니다. 조선일보가 말하는 '정치'란 지금 국회에서 논란이 되고 있는 MB 법안들이죠. 집회와 시위의 자유를 근본적으로 침해하며, 인터넷과 오프라인에서의 표현의 자유를 원천적으로 제약하는 법안들을 무리가 따르더라도 강행 처리할 것을 요구하는 것입니다.

점거농성 중인 민주당에 의하면 본회의장 출입문들엔 이미 4중 5중의 철제 잠금 장치가 새로 설치돼 있었다더군요. 한나라 당직자쪽 방에선 사다리까지 발견됐다고 합니다. 민주당이 점거농성에 들어가기 전 이미 한나라당은 더 '과격한' 대응을 준비하고 있었던 게죠. 국회 사무총장인 박계동은 역대 그 어떤 국회사무총장보다 더 '과격'하게 민주당과 야당을 압박하고 있습니다.

MB는 연일 '돌파' '돌격' '속도전' '전광석화'같은 말을 쏟아내며 자신 이름이 붙은 악법들을 강행처리하려고 합니다. 저들은 '합법적'인 방법으로 민주주의를 후퇴시키려고 하는 것입니다. 지금 저들은 민주주의의 발전을 가로막는 '전봇대'를 세우려고 하는 것입니다. 4년 후, 설사 한나라당이 정권을 잃는다고 해도 이 '전봇대'는 오랜 기간 우리의 민주주의를 병들게 만들 것입니다. 이럴 때면 민주주의라는 제도가 얼마나 허약한지 뼈저리게 실감하곤 합니다. 하지만 우리가 민주주의를 오직 국회 안에서만 작동하는 장치라고 생각지 않는다면 바로 지금이야 말로 민주주의의 탄생지인 거리에서 민주주의를 되살리는데 함께 해야 할 것으로 보입니다.

MBC와 언론 노동자들이 그 길을 앞서가고 있습니다. 그 길에 더 많은 사람들이 함께 할 수 있다면 미래가 그리 어둡지만은 않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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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 12. 23. 16:17

[경향신문] 'MB 법안'이 통과되면… 언론스크랩2008. 12. 23. 16:17

제가 국민학교 다니던 시절 방학때면 반공도서 독후감 쓰기 숙제가 있었죠. 반공 웅변대회, 반공 포스터 그리기 등 다양한 게 있지만 그때도 워낙 책을 좋아했던 지라 가장 기억에 남는건 반공도서 독후감 쓰기였습니다. 그때 그 책들엔 '천리마 운동' '새벽별 보기 운동' 등 이북에서 이뤄지던 다양한 대중 동원 운동이 쓰여 있었죠.

요새 뉴스를 보면 꼭 그 당시의 '반공 도서'를 보는 느낌입니다. '속도전'이라니. 요새 뉴스에 나오는 2MB가 가장 자주 쓰는 말이 '속도'더군요. 우파 헤게모니의 완성을 위한 저들의 '속도전'을 보고 있노라면 상대적으로 좌파와 자유주의자들의 느린 행보에 갑갑해져 옴을 느낍니다. 2MB는 최근의 환율 안정세를 보며 자신감을 가진 것 같더군요. 이른바 'MB 법안'들을 국회에서 강행 처리하려는 듯 합니다. 사실 한나라당이 이미 국회 내 최대 다수당이고 여타 보수 정당들까지 포함하자면 '민주적 절차'를 통해서 '민주주의를 후퇴' 시키는 일이 불가능해 보이진 않습니다. 아마도 그렇게 되겠죠.

1997년의 1월을 되돌아 봅니다. 우리는 그때처럼 할 수 있을까? 멀리 갈 필요도 없죠. 2008년의 6월을 되돌아 봅니다. 우린 다시 그 거리에 모일 수 있을까? 알 수 없습니다.

어제(22일) 경향신문에 실린 기사입니다. 그렇지않아도 이번에 한나라당이 강행 처리 하려는 'MB 법안'들에 대해 정리해봐야 겠다고 생각했었는데, 형식은 '가상 시나리오'지만 잘 정리된 듯 해 링크해봅니다. 아무래도 가상 시나리오이기 때문에 어쩔 수 없는 과장은 있지만 그게 영 '과장'만으로 보이진 않습니다. 이미 현실로 드러나고 있는 일이죠. 'MB 법안'은 이미 저들이 하고 있는 일들을 '사후 정당화' 시키려는 하는 것일 뿐이니까요.

'마스크 시위' 긴급체포 … 느닷없이 '범법자'로

지주회사 전환, 금융그룹 출범, 거대재벌 탄생

은행인수 컨소시엄 참여했다 '파산 위기'

(※클릭하시면 경향신문의 해당 기사로 이동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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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시에게 자신의 신발을 던지는 무탄다르 알자이디(Evan Vucci/Associated Press)

14일 이집트 '알바그다디아' TV의 기자인 무탄다르 알자이디는 이라크를 네번 째 방문한 부시를 향해 자신의 신발을 벗어 던지며 이렇게 외쳤다.

"이라크인의 선물이자 작별키스다, 개놈아!"

곧이어 다른 한 쪽 신발도 마저 던지며 외쳤다.

"이건 미망인들과 고아, 그리고 이라크에서 죽은 사람들이 주는 것이다."

최고다. 그가 바로 올해의 기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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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때때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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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 12. 15. 10:21

"젊은 경찰이여, 그댄 나의 형제" 언론스크랩2008. 12. 15. 1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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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 12월 15일자 5면에 재밌는 사진이 실렸다. 한겨레에 실린 사진설명을 읽어보자.

한국청년센터 등 시민ㆍ사회단체 회원들이 지난 6일 오후 서울 종로 세종문화회관 앞 계단에서 청년실업 해소를 촉구하는 기자회견을 열고 있다. 경찰이 미리 계단을 선점해 막았으나, 이들은 경찰들 사이로 들어가 행사를 진행했다.
박종식 기자 anaki@hani.co.kr

시민ㆍ사회단체의 기자회견과 집회, 시위를 경찰이 방해해온 것은 하루이틀의 일이 아니다. 지난 봄과 여름의 촛불 시위 이후 지금도 주말이면 종각, 청계천 입구, 시청광장 등 사람들이 많이 모일 수 있는 곳을 선점한체 멍하니 앉아있는 젊은 경찰들의 모습을 쉽게 찾아볼 수 있다.

경찰이 집회ㆍ시위ㆍ기자회견 장소를 선점하는 경우 시민ㆍ사회단체 회원들과의 충돌은 불가피한 것이곤 했다. 보통은 가벼운 충돌 후 원래의 장소에서 약간 벗어난 곳에서 기자회견이 진행되는 경우가 많다. 그런데 이날 기자회견은 경찰이  한 사람 간격으로 서 있는 그 계단에서 경찰들 사이에 서서 이뤄진 듯 하다.

무장한 경찰로 기자회견 단체를 위협하려 했을 것이나 오히려 이 사진은 젊은 경찰들이 기자회견에 함께 한듯 보이게  한다. 이런 경우가 적지는 않았지만 이날 기자회견의 내용이 '청년실업 해소'였다는 점에서, 이들 젊은 경찰들의 다수가 가까운 시일에 취업전쟁에 뛰어들어야만 하는 처지라는 점에서 이 사진은 더 특별한 의미를 지니는 듯 하다.

지난 촛불시위에서 가수 손병휘가 부른 '삶에 감사해'에는 이런 가사가 나온다. "젊은 경찰이여/ 그댄 나의 형제/ 우리의 아들/ 함께 노래해요" 프랑스 혁명 이후 바리케이트는 상퀼로트, 프롤레타리아트 등 피억압자들이 지배자들로부터 자신들의 코뮨, 평의회, 운동을 지키기 위해 등장했다. 나폴레옹 이후 파리의 거리는 이미 바리케이트 전투를 하기에 불리하게 개조됐지만 운동이 그 파고를 높여갈 때면 어김없이 다시 등장했다. 전투에서의 효율성을 떠나 바리케이트는 사회적 장벽을 상징하며 개개인에게 선택을 강요하는 도구다. 군인이 바리케이트를 넘는 것, 자신들의 상관에게 맞서 바리케이트를 세우는 것은 혁명의 큰 전환점이다.

특히 한국사회처럼 역사적 정통성이 약한 지배자들일 수록, 게다가 자신들의 안녕을 다수의 적대적 계급 출신 사병들에게 맡길 수 밖에 없는 그들에게 사병들의 반란은 불가능한 악몽만은 아니다. 우리 역사에서 그런 경우가 단 한 번도 없었음에도 말이다. 12월 8일 전군 지휘관 회의에서 이상희 국방부장관이 "해마다 입대하는 20만명의 장병 중에는 대한민국 60년을 사대주의 세력이 득세한 역사로,군을 기득권의 지배도구로써 반민족·반인권적 집단으로 인식할 뿐 아니라 국가관,대적(對敵)관,역사관이 편향된 인원들이 상당수 포함돼 있다"고 말한 건 이런 저들의 두려움을 잘 보여준다. 지난 6월 10일의 명박산성은 수십만 명의 시위대의 청와대와 정부종합청사를 공격에 대비하는 것과 함께 3만여 명의 전ㆍ의경이 압도적인 숫자의 시위대 앞에서 정부/시위대의 양자택일의 상황에 말려드는 것을 막기 위한 것이기도 하다.

물론 전ㆍ의경은 국가권력의 강제 앞에서 가장 취약하다. 그들이 바리케이트를 넘어오는 것은 실제로 혁명의 가장 마지막까지도 어려울 것이다. 그러나 오늘의 한겨레 사진이 보여주는 시위대와 경찰의 뒤섞임은 바리케이트를 넘는게 불가능한 것만은 아니라는 것을 상징적으로 보여주는지도 모른다.

Posted by 때때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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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문화주의라는 말을 심심찮게 듣곤 합니다. 세계 여러나라에서 한국에 온 외국인 여성들이 출연하는 토크쇼도 인기죠. '미녀들의 수다'의 사회자인 남희석씨는 꽤 오래전부터 '이주민' 문제에 관심이 많았죠. 관용을 얘기하고 국제화된 의식을 가질 것을 요구하곤 하죠.

하지만 여전히 많은 사람들에게 이주노동자라는 집단은 범죄인들의 온상이고 순결한 한국 문화를 오염시키는 세균과 같은 존재로 받아들여지고 있습니다. 우리나라에 이주노동자가 본격적으로 유입된게 1988년 전후니 이미 20년이나 지났는데도 말이죠. 우리 주변에도 흔하게 이주노동자를 볼 수 있고 이미 인구의 2%나 차지하고 있습니다. 아마도 우리보다 어두운 빛의 피부, 우리보다 못사는 나라에서 왔기에 교육수준도 떨어질 것이라는 편견 등 다양한 인종주의적 편견에서 비롯한 것이겠죠.

마붑은 한국에 온지 10년이 됐다고 합니다. 그가 1977년생이니까 인생의 3분의 1을 한국에서 보낸 것이죠. 그는 한국말도 매우 능숙하다고 합니다. 아니 꼭 한국에서 오래 살았거나 한국어를 잘해야만 하는 건 아니겠죠. 아직 채 1년이 되지 못한 이주노동자라도, 한국말을 거의 못하는 이주노동자라도 우리는 그를 우리의 동료로 받아들이지 못할 이유는 없다고 봅니다.

오늘(9월 11일) 경향신문 주말섹션에 마붑의 인터뷰가 실렸습니다. RTV를 통해 미디어활동에 힘써온 그는 지금 영화 '반두비'('참 좋은 친구'란 뜻의 벵골어)를 찍고 있다고 합니다. 촬영은 거의 마쳤으나 후반작업 때문에 내년 초에 개봉한다고 하네요. 우리 안의 타자, 이주민에 대한 영화를 찾아보기 힘든 한국에서 좋은 영화로 만들어지길 바랍니다. 내년 초엔 꼭 보러 가야겠죠.

"장식품처럼 이주민 진열하는
'한국식 다문화'는 안됩니다"
경향신문 주말섹션 2008년 9월 11일 W1~2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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