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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명박 시대는 좌파에게 많은 고민을 안겨주고 있습니다. 아파트값에 굴복해 이명박의 손을 들어줬던 사람들이 불과 몇 개월 만에 '기껏 쇠고기' 갖고 정부를 위기의 벼랑으로 몰아넣었죠. 이명박과 한나라당 정부에 대한 온갖 조롱과 비아냥이 넘쳐남에도 작년 여름 세종로를 가득 채웠던 대중은 다시 돌아오지 않고 있습니다.

올해 초의 촛불논쟁에 이어 하반기는 그리 뜨겁지는 않지만 중요한 논쟁이 이어지고 있습니다. 이른바 '체제논쟁'이죠. '체제논쟁'이란 이름이 붙었지만 80년대의 사회구성체 논쟁만큼 뜨거운 토론이 오가진 않고 있습니다. 약간은 김이 빠진게 논쟁의 한쪽 당사자인 손호철 교수가 10월 들어 적극적으로 참여하고 있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래도 틈틈이 읽고 고민하기에 좋은 글들이라고 생각하기에 함께 공유하기 위해 여기에 남깁니다.

논쟁의 시작은 조희연-서영표가 '마르크스주의 연구' 2009년 가을호에 기고한 '체제논쟁과 헤게모니 전략'으로부터 비롯됩니다. 이 글에서 저자들은 손호철 교수의 87년 체제론-반신자유주의 전략에 대해 비판적으로 논합니다. 이 논문을 레디앙(www.redian.org)의 정상근 기자가 기사화 하면서 논쟁은 시작됩니다. 아래는 관련 논쟁글들을 특별한 논평이나 요약 없이 제목과 기사 링크로만 정리합니다.

[레디앙 기사] "손호철 97년 체제론은 경제주의적 편향"

[손호철] 내가 '신자유주의 환원론자'라굽쇼? "87년 체제론에 대한 왜곡에 답한다"

[서영표] 일상의 정치공간에 대한 통찰 부족 추상적 논의-경험주의 편향 넘기 위해

[손호철] "기꺼이 '이론주의자'가 되겠다" '공허하고 추상적인' 체제논쟁의 이유

[조희연] 진보좌파, 87년 체제 진정한 계승자 돼야 '반신자유주의 헤게모니 정치' 고민하자

[조희연] "좌파는 유연한 연합전략 구사해야" "08년 체제는 87년 체제에 대한 역전"

[최원] "유연화는 민주당 헤게모니로의 종속" 조희연-서영표와 라클라우-무페 … 김대중-노무현에 대한 착각

[이승원] '선거 환상'에서 벗어나는 계기 되어야 민주후보-독자후보 논쟁 넘어 삶의 변화로

[이종보] 진보, 반대의 거점에서만 맴돌아 97년 체제 복합규정과 '유연 헤게모니 전략'

[조희연] "무엇이 진정한 민주주의인가" 헤게모니 전략과 '민주주의적 변혁주의'

[최원] 08년 체제 강조는 '결국 비지론' 의심 … 헤게모니 전략에 앞서 좌파 혁신을

[최원] 김대중-노무현, 민주주의를 공격했다 … 경제주의에 빠진 사람은 조희연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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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 ①] '민주주의의 외부와 급진 민주주의 전략' 성공회대 급진 민주주의 세미나 창간준비 1호, 2009

[참고 ②] 사회변혁과 헤게모니 에르네스토 라클라우, 샹탈 무페(현재 절판)

Posted by 때때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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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 5. 13. 14:49

[촛불 1년] 논쟁의 시작 쟁점2009. 5. 13. 14:49

촛불 1주년을 즈음해 두 권의 책이 나란히 출간됐습니다.


그대는 왜 촛불을 끄셨나요?  당대비평 기획위원회|산책자


미네르바의 촛불  조정환|갈무리


조정환의 책은 '그대는 왜 촛불을 끄셨나요?'에 대한 비판으로 시작하고 있습니다. 여기에 이택광이 자신의 블로그에서 반비판을 하면서 논쟁이 시작됐죠. 아직 두 권의 책을 모두 읽지는 않았기에 이 논쟁에 본격적으로 끼어들 수는 없습니다. 뒤늦게 참여할 수 있을진 모르겠지만 나중에라도 되돌아보기 위해 관련 글들을 모아봤습니다. 물론 아래 글 이후에도 이택광과 조정환의 블로그엔 더 진행된 논쟁 글이 있습니다.

ㆍ이택광 '조정환의 촛불론'
ㆍ조정환 '이택광의 『미네르바의 촛불』 비판에 대한 반비판 1. 폭동과 봉기'
ㆍ신기섭 ''촛불 담론' 논쟁이 본격화 하려나'
ㆍ최원 '촛불논쟁 시작?'
ㆍ한윤형 '촛불, 혹은 변해야 하는 것들'

물론 위에 소개된 블로그를 제외하고 다른 곳에서 이 논쟁의 흔적도 발견하기 어려운 상황입니다. 아마도 운동권만의 찻잔속 폭풍으로 그칠 가능성이 높아보입니다. 하지만 2008년의 촛불에서 가장 먼저 반성하고 다른 대안을 모색해야 할 집단이 운동권이라고 생각하기에 이 논쟁은 의미있어 보입니다. 그런 면에서 최원이 "더 급진적인 방향으로 나아갈 수 있는 기회가 분명히 있었는데, 그것을 하지 못한 것은 사실, 촛불의 잘못이 아니라, 운동 선수들 및 진보진영의 무능력 탓이었다는 점"을 지적하며 과제로서 "촛불문제에서 핵심적인 문제 가운데 하나는 어떻게 대중투쟁의 중심을 만들어내면서도(그리하여 작년처럼 무기력해지지 않으면서), 그것을 동시에 견제할 길을 찾아낼 것인가" 를 제기하는 것에 동의합니다.(최원의 블로그 '촛불논쟁 시작?')

Posted by 때때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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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 8. 19. 15:10

[건국절] 뉴라이트 曰 "우리 솔직해지자" 쟁점2008. 8. 19. 15:10

8월 15일은 일본이 미국에 항복함으로써 한반도가 일제의 식민 통치로부터 해방된 날이죠. 네 '광복절'입니다. 당시 이승만 정부는 바로 이 36년간의 식민지로부터의 해방일을 기리기 위해서 48년 8월 15일을 정부 수립일로 정합니다. 8월  15일은 '광복절'이기도 하지만 정부가 수립된 '건국일'이기도 한거죠.

문제는 역시 2MB와 뉴라이트 집단의 '건국절' 생쑈. 어찌 생각하면 한국의 우파로서 지난 60여년간 지닐 수 밖에 없었던 딜레마를 일거에 해결한 거일 수도 있습니다.

한국의 지배 세력에게 가장 큰 약점은 아마도 역사적 정통성이 없다는 점이 아닐까 합니다.

조선 혹은 대한제국을 잇지 않은 대한민국에게 있어서 역사적 전통성의 가장 중요한 근거는 '항일 독립운동'이죠. 이승만이 독립운동을 한 것은 사실이지만 그는 임시정부 초기에 '탄핵'을 당했고 이후로는 운동으로부터 멀어져 있었죠. 해방 이후 미국의 지원으로 중요한 세력으로 부각되긴 하지만 '대통령'의 자리에 오를만큼 민중으로부터의 지지를 받는 위치에 있진 못했습니다. 또한 미국으로서도 2차대전 종전 후 급격히 냉전으로 돌입하던 시기에 한반도 이남지역에서 좌파의 정치적 위상은 부담스러웠겠죠. 심지어 우파였던 김구조차도요.

이승만으로선 자신의 부족한 정치적 자원을 미국의 지원, 일제 식민지 통치에 협조했던 집단에 대한 사면을 통해 보충할 수 밖에 없었습니다. 여기서 이승만 정권 지배 이데올로기의 두 축 '반공'과 '반일'이 나옵니다. 이 두 카드는 서로 결합된 상태로 이용됩니다. 식민지 시기 항일운동의 중요한 세력이었던 '좌파'를 제거하기 위해 '반공'이란 카드를 듭니다. 하지만 독립운동 역사에서 '좌파'를 제거하면 20년대 중반 이후로는 남는게 별로 없죠. 아직 진실은 묘연한 상태지만 한 육군 장교의 김구 암살은 그에게 '임시정부'라는 정통성을 그나마 남겨줍니다. '반공'이라는 패에도 불구하고 당시 민중에게 독립운동 세력으로서 좌파의 위상은 여전히 만만찮은 것이었죠. 그래서 그는 역대 그 어떤 정권보다도 국민의 '반일감정'을 자극하는 정책에 힘을 쏟습니다. 여기엔 당시 이승만 정권 하에서 다수의 세력을 점하고 있던 옛 친일파의 존재도 중요한 이유로 작용합니다.

쿠데타로 정권을 잡은 박정희, 전두환은 말할 것도 없죠.

바로 여기에 한국 우파의 피할 수 없는 딜레마가 존재합니다. 대한민국의 역사적 정통성을 항일 독립운동으로부터 이끌어 올 때 약점이 될 수 밖에 없는 그들의 과거, 그에 반해 부각될 수 밖에 없는 좌파의 존재는 참 부담스러운 일이 아닐 수 없죠. 더군다나 '반공'이라는 카드가 더이상 유효한 패가 아니게 된 상황에서 그들에게 이 딜레마는 더 끔찍해질 수 밖에 없었겠죠. 또한 한국의 경제 성장이 (단지 외교적일 뿐만 아니라 경제적으로도 중요한) 한미일 삼각동맹에 기초할 수 밖에 없었던 상황에서 지나친 국민의 '반일감정'과 '반일' 정책도 점차 어려워만 갔습니다.

뉴라이트 집단은 몇 년 전부터 꾸준히 '민족주의 사관'에 문제제기를 해왔습니다. 한편 이것은 최근 좌파의 '탈민족주의'의 성장으로 어느정도 자신들의 친일적 본질을 감추는데 성공하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웃긴 건 그들이 '탈민족주의'를 외치면서 '국가주의'를 강화한다는 것이죠. 사실 '국가주의'와 '민족주의'는 그리 다른 것이 아닌데도 말입니다. 즉 그들이 '민족주의 사관'을 벗고 '국가주의 사관'을 강화한다는 것은 항일 독립운동의 정통성을 이어받으려 하는 '민족주의 사관'을 버리고 '새로운 우파적 민족주의'를 만들겠다는 의지인 것입니다. 과거 우파와 비슷한 행태를 보임에도 그들을 '뉴라이트'라고 부르는게 옳다면 아마도 이런 이유에서일 겁니다.

핵심은 간단한 거죠. 어차피 한국의 지배세력은 명시적 지배자들의 교체에도 불구하고 1910년 한일합방 이후 언제나 친일파였습니다. 그 사실을 인정하고 넘어가자는 겁니다. 애초에 20년대 중반 이후 끝까지 항일 독립운동을 고집했던 우파세력은 김구의 죽음 이후에 맥이 끊겼다고 봐야 하는 상황에서 지금의 우파는 그저 친일파 자신 혹은 그 후예일 뿐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들은 그동안의 답답했던 가면을 벗고 자신들의 정체를 '커밍아웃'한 것이죠.

그렇다면 여기서 우리의 대답은 '민족주의 사관'의 복원일까요?

Posted by 때때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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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월 28일 밤 종로1가 광화문우체국 앞 거리에서 경찰의 강경 진압에 맞서 팔짱을 끼고 있는 시민들. [연합뉴스]

어청수(라 쓰고 개색희라고 읽는)가 '80년대식 진압' 운운하더니 최루탄만 안나왔지 정말 그만큼 하는군요. 시청쪽 상황을 들어보니... 아예 작정하고 뒷 골목(조선일보 편집국 건물이 있는)쪽으로 진압 경찰을 투입했더군요. 제가 있던 교보 앞쪽은 9시부터인가 계속 쉬지 않고 물을 뿌려대더군요. 멀리서도 살수 소리가 들릴정도로 강한 압력으로 뿌려댔습니다. 계속 의료진을 부르는 소리가 이어지고...

아마도 그들은 이 상황에서 양보를 하면 앞으로 남은 4년 몇 개월을 식물 대통령으로 보낼 수 밖에 없다는 것을 두려워 한 것 같습니다. 이명박과 약간 거리를 두던 우파 세력들도 이명박이 무너지면 그들이 그토록 바랐던 10년만의 보수우파의 '화려한 귀환' 자체가 무로 돌아갈 수 있다는 것을 깨닫고 재결집하고 있습니다. 이명박 지지율의 부분적 상승은 이 때문이겠죠.

우리도 경각심을 가져야 할 것 같습니다. 이번 촛불시위가 패배로 끝날 경우, 앞으로 줄줄이 이어질 그들만의 정책에 대한 대중의 저항을 모두 같은 방식으로 대처할 테니까요.

무엇보다도 지금 가장 필요한 것은 민주노총이 더 빨리 이 상황에 적극 참여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총파업'을 선언했지만 '선언' 이상으로 나가질 못하고 있습니다. 깃발을 들고 참여한 노조의 숫자는 늘었지만 여전히 촛불시위의 다수는 평범한 시민들일 뿐입니다. 스스로 좌파고 진보진영이라고 칭하던 이들이 지금의 상황에 굼뜨게 행동한다는 것은 참 부끄러운 일입니다.

다음으로 지금 스스로를 조직하고 있는 네티즌들도 우리의 목소리를 보다 적극적으로 낼 필요가 있다고 봅니다. 지금의 대책위는 1700여 개의 시민사회단체가 참여하고 있다고 하지만, 아실만한 분은 다 아시겠지만, 대부분은 이름만 걸어놓은 상태고 실질적 책임은 몇몇 소수 단체에게만 가 있습니다.(전 이 단체들을 탓 하려는 건 아닙니다.) 많은 수의 시민을 실질적으로 동원하고 조직하고 있는 네티즌들, 디피를 비롯해서 엠엘비파크, 소울드레서, 마이클럽, 82쿡, 화장빨, 쌍코, 아고라, 안티이명박카페 등은 지금의 촛불시위의 구체적인 진행에 개입하질 못하고 있습니다. 우리 스스로 참여하고 있는 시위의 행동과 방향에 대해서 우리가 결정할 수 없다는 것은 부조리한 것이라고 봅니다. 그 때문에 촛불시위 초기보다는 상당히 누그러졌지만 여전히 대책위에 대한 합리적인 불만이 터져나오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우리의 행동과 방향을 우리 스스로가 참여해서 결정하는 것, 그것이 바로 우리의 민주주의입니다. 가능하면 여러 인터넷 카페ㆍ모임들과 함께 참여할 것을 결의하고 대책위에 요구 할 수 있다면 좋겠죠. 지난 국민대토론회에서 아고라의 '권태로운 창'(나명수)님이 이미 제안했던 바이기도 합니다.(정확하게는 새로운 대책위를 만들자고 제안했죠)

마지막으로 점점 강도를 높여가는 경찰의 폭력 앞에 저 스스로의 감정도 격앙되고 있음을 느낍니다. 하지만 여전히 우리의 가장 큰 무기는 우리 스스로의 참여 바로 그 자체입니다. 90년대 후반 운동의 궤적을 살펴봤을 때 정부의 폭력에 대한 군사적 대응은 우리의 승리에 도움이 되질 못합니다. 그것을 가장 비극적으로 보여준 것은 일본과 독일의 적군파, 이탈리아의 붉은 여단의 역사죠. 전 '비폭력'을 도전할 수 없는 원칙적 가치로 생각진 않습니다. 중요한 것은 우리의 행동이 '군사적 폭력'의 형태를 띄어야만 할 때라도 그것은 대중의 지지 속에서 이루어져야만 한다는 것입니다. 베트남에서 베트콩과 호치민의 북베트남 군대가 그랬듯이요.

경찰의 발작적인 폭력은 우리가 승리하고 있다는 사실의 반증입니다. 우리가 바로 민주주의입니다.

Posted by 때때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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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 6. 25. 10:32

대중이라는 핑계 쟁점2008. 6. 25. 10:32

어제(24일) 광우병국민대책위에서 주최한 두 번째 국민대토론회가 열렸습니다. 어제의 토론에서도 확인할 수 있었던 것은 기존의 시민단체와 좌파들보다 '네티즌'이라고 하는 사람들이 더 급진적이라는 사실이에요.

나명수씨와 이름을 기억할 수 없는 한 남성 분은 어차피 쇠고기고시 강행 할 것 이참에 빨리 해버리고 우린 정권 퇴진 투쟁에 나서자... 이런 식으로 주장했던 것으로 기억나요.

역시나 토론회장에서 청중들은 나명수씨와 고려대 김지윤 학생이 적극적으로 정권퇴진 투쟁에 나서야 한다는 주장에 가장 호응이 컸던 것 같아요. 그에 반해 박진섭 생태지평 부소장은 정권퇴진은 불가능하다, 이제 불매운동 등으로 방향을 전환해야 한다는 주장으로 야유를 받곤 했죠. 그러자 박 소장은 불쾌감을 표시하면서 "대중의 대다수는 정권 퇴진을 바라지 않는다"고 주장했죠.

흠... 아마도 그 말이 맞을 거라고 생각해요. 하지만 토론에서 근거를 '대중'에게 돌리는 것은 참 비겁한 짓이라고 봐요.

이런 류의 주장 중에 가장 대표적인 것이 보수우파들이 자신들의 정당성을 주장할 때 말하는 '침묵하는 다수'라는 것이죠. 사실 말하지 않고 표현하지 않고 행동하지 않는 다수의 사람들이 이명박과 한나라당의 친기업적이고 친미적인 정책을 동의할 수도 있죠. 하지만 이들 보수우파에게 중요한 것은 그 다수가 실제로 원하는 것이 무엇인가가 아니라 '다수의 침묵' 자체죠. 현재의 상태, 즉 자신들이 정치ㆍ경제적으로 강자의 위치를 점하고 있는 지금의 상황을 유지하거나 그들에게 더 유리하게 바꾸는 것이 목표라고 할 때 우파적 이데올로기에 의한 행동일지라도 대중의 적극성보다 수동성이 그들에게 더 매력적이죠.(파시스트의 적극적인 대중 동원은 다른 기회에 얘기하죠.)

물론 민주주의 사회에서는 선거와 투표, 각종 설문조사와 같은 통계적 방법에 의해 대중의 뜻을 읽어내려는 시도가 이뤄지고 있죠. 그리고 마르크스주의적 좌파와 자유주의적 좌파 모두는 이런 여러 시도들을 적극적으로 사용하곤 해요. 하지만 대중 전체의 뜻을 대표하려는 시도는 언제나 조심스러워야 한다고 봐요. 솔직히 말해서 촛불시위 일주일 전까지만 하더라도 100만 명의 사람들이 이명박 정권의 정책에 반대해서 거리로 나설 것이라는 것을 그 어떤 설문조사에서 발견할 수 있었나요? 4월 총선 뒤 한겨레21은 아파트에 굴복한 386이라는 기사를 특집으로 다뤘었죠.

물론 자율주의자들의 주장처럼 전 다중의 집단지성에 조건없는 찬양만 보내는 것은 옳지 않다고 봐요. 바로 그 다중이 이명박을 대통령으로 만들고 한나라당을 여당으로 만들기도 했으니까요.

어제 토론에서 패널로 나선 사람들은 나름 대중의 다양한 의지를 각자 대표해서 나선 사람들이겠죠. 그렇다면 대중 전체의 뜻이 이러이러하다는 식으로 자신을 '전체의 대표'로 꾸미기 보다는 자신이 대표하는 의견을 보다 명확하게 표현하는 것이 올바른 토론의 자세라고 봅니다. 자신의 의견을 대중의 뜻으로 돌리는 건 비겁한 핑계를 대는 것일 뿐이죠.

Posted by 때때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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