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유롭지 못한…

앤드루 클라이먼의 하비 비판 1: 이윤율의 경향적 저하법칙 본문

쟁점/세계경제위기

앤드루 클라이먼의 하비 비판 1: 이윤율의 경향적 저하법칙

때때로 2015. 6. 10. 16:25

하비는 올해 출간될 '2008년의 대붕괴'의 초안으로 2014년 발표한 글[링크]에서 마르크스의 이윤율의 경향적 저하법칙을 비판적으로 논했다. 이에 대해 마르크스주의 경제학자인 앤드루 클라이먼이 반박에 나서 논쟁이 진행되고 있다. 아래는 앤드루 클라이먼의 첫 번째 하비 비판이다.

※ 'crisis'는 '위기'로 통일했습니다. 1847년과 1858년 공황과 관련해 마르크스의 용어를 검토하는 부분에서만 '공황'이라고 썼습니다. 인용 중 국역본이 있는 것은 이를 활용했습니다. 대괄호[ ]는 이해의 편의를 위해 추가한 것입니다. 잘못 옮긴 부분에 대한 지적을 기다립니다. 댓글로 달거나 메일(go24601@gmail.com)로 보내주십시오.

※ 6월 14일 수정. 김공회 선생의 꼼꼼한 충고를 반영해 수정했습니다. 단, 잘못 옮긴 것의 책임은 전적으로 제게 있습니다.


자본주의 위기에 대한 하비와 마르크스의 대결
1편: 마르크스를 오해하기

앤드루 클라이먼ㆍ2015년 3월 10일ㆍ링크
칼 마르크스의 이윤율의 경향적 저하법칙은 대침체(the Great Recession)를 설명하고 미래의 중대한 경제위기들에 어떻게 대비할지 이해하는 데 필수적이다.

마르크스주의 지리학자로 잘 알려진 데이비드 하비는 최근 발표한 논문(하비 2014ㆍ링크)에서 칼 마르크스의 이윤율의 경향적 저하법칙(LTFRP)의 ▲마르크스 자본주의 경제위기 이론 내 지위와 ▲대침체 그리고 지속되는 침체 여파와의 관련성을 격렬히 비판했다. 법칙은 자본주의 하에서 노동 절약형 기술 진보로 인해 이윤율이 하락하는 경향이 있다고 말한다. 기술 혁신은 생산비용을 떨어뜨리면서 생산물 가격 상승을 저지하는 경향을 띠며, 이는 기업이 자신의 생산물 생산에 투자한 자본의 크기 만큼 이윤을 빠르게 증가시키는 걸 어렵게 한다.

이 과정이 대침체의 근본원인 중 하나인지 아닌지는 매우 큰 정치적 중요성을 지닌 문제다. 쟁점은 자본주의 작동방식을 더 낫게 만들기 위한 정책들-국가가 통제하는 자본주의로 신자유주의를 대체하고, 금융을 규제하고, 불평등을 줄이고 금융보다 생산에 더 친화적인 정책들 등-이 미래의 중대한 경제위기들을 막는 데 성공할 수 있느냐는 것이다. LTFRP에 뿌리를 둔 위기 이론은 그와 같은 정책들이 궁극적으로 성공할 수 없다고 암시한다. 왜냐면 그 정책들은 이윤 극대화를 위한 충동, 기술 진보와 수익성 하락 사이의 관계와 같은 자본주의의 모든 형태에서 핵심적인 부분을 거의 그대로 남겨두기 때문이다.

하비의 주된 불만은 LTFRP와 위기 이론이 일원인론에 바탕을 두고 있다는 것이다. 이 이론은 상쇄 요인들에 더해 위기의 다른 원인들을 무시하고, 이 이론의 현 지지자들에 의해 '다른 가능성에 대한 의견을 배제'하는 전형적인 방식으로 제시된다는 것이다. 나는 이런 주장은 단지 허수아비 때리기일 뿐이라고 논할 것이다.

진정한 쟁점은 누군가가 일원인론을 옹호해왔다는 게 아니라 우리가 부재원인론
[앤드루 클라이먼은 'apousa-casual theory'라고 적고 있다. 'apousa'는 그리스어 'απουσα'의 알파벳 표기로 'absent'를 뜻한다. 하비가 이 단어를 사용했는지는 확인 못했다]이라고 불러야 할, LTFRP가 그 어떤 역할도 하지 않는 이론을 하비가 적극 주장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도 어떤 의견을 배제하려 하는 사람 중 하나인 것이다. 자본주의의 '모순된 힘들의 소용돌이'와 '복합적인 모순과 위기 경향'에 대한 그의 강조에 비추어 보면 그가 그 어떤 것도 배제하지 않은 위기의 모든 잠재적 원인을 우리가 고려해야 한다고 충고하려는 것이라고 예상될 것이다. 그러나 하비는 위기의 다른 잠재적 원인을 LTFRP와 함께 고려해야 한다고 제안하는 게 아니다. 그는 그 이론과 이에 기반한 위기 이론을 역사의 쓰레기통에 처박으려 단단히 결심한 것 같다. 그는 LTFRP가 진정한 법칙인지, 마르크스가 마침내 그 이론에 정말로 동의했는지, 이윤율이 하락한다는 타당한 증거가 있는지, 하락하는 경향을 언급하는 이 법칙 때문에 이윤율이 하락하는 것인지 의문을 던지는 데 논문의 대부분을 할애하고 있다. 나는 이 모든 것에도 대답할 것이다.

하비 논문의 두 가지 다른 측면 또한 논할 것이다.

1. 하비는 1980년대 시작된 노동인구의 세계적 성장은 LTFRP가 작동되지 않음을 시사한다고 주장한다. 나는 이 주장이 법칙에 대한 초보적인 오해에 기반해있음을 보여줄 것이다.

2. 마르크스가 "만약 임금이 너무 낮으면 유효수요의 부족이 문제가 될 것"이라고 논했다고 하비는 주장한다. 나는 이것이 마르크스의 글에 대한 그의 최근 해석(하비 2012)과 모순됨을 보여주고 그의 앞선 입장이 옳음을 논할 것이다.

LTFRP에 대한 그의 태도는 나를 놀라게 하지도 않았고 특별한 것도 아니다. 하지만 그는 마르크스의 법칙에 기반한 위기 이론이 "마르크스주의자들 내에서 헛된 우상의 지위를 점하고 있다"고 썼고 사실 이보다 더한 모욕은 없다. 정치 영역에서 만큼 학계에서도 다른 마르크스주의자들과 좌파들은 소위 이론에서의 교조조의와 그 지지자들을 자주 격렬히 비난해 왔다. 그들은 또한 연구에서 그 이론을 배제하려 해왔다. 예를 들면 M. C. 하워드와 J. E. 킹 교수는 자신들의 책 '마르크스주의 경제학의 역사(A History of Marxian Economics, 1992, ⅹⅲ)'에 LTFRP는 "마르크스주의 정치경제학의 학문적 신뢰도에 큰 상처를 줘 왔다"고 적고 있고 크샤마 사완트의 조직 '노동자 인터내셔널을 위한 위원회[Committee for a Workers' InternationalㆍCWIㆍ영국에 시작된 트로츠키주의 조직. 영국 노동당 내 밀리턴트 경향에서 발원했으며 현재 세계 45개 나라에 조직을 두고 있다]'는 최근 '교조주의자' 두 명의 회원 자격을 정지시켰다. 연구에서 가능한 설명을 배제하려는 노력이 교조주의에 대한 반대로 표현되고 이런 편견이 그토록 자주 받아들여지는 게 특히 불쾌하다.

노동인구에 관한 데이터

하비는 고용이 현저히 증가하고 있다는 통계-세계 노동인구는 1980년에서 2005년 사이 11억 명이 증가했다-를 끌어들여 이를 세계적으로 이윤율이 하락하고 있다는 생각을 부정하는 증거로 사용하려 한다. 그는 이 주제에 천 단어 이상을 사용한 끝에 다음과 같은 결론에 도달한다.

현 자본주의가 겪는 곤경들을 이윤율이 하락하는 경향의 결과로 보는 사람들은 이러한 노동 참여의 증거로 인해 심각한 오류에 빠졌다는 판정받을 것이다. 이러한 상황은 잉여가치 생산과 추출이 압박받는 것이 아니라 어마어마하게 증가하고 있음을 가리킨다.

데이터는 확실히 잉여가치 또는 이윤이 - 절대적으로 - 크게 증가하고 있음을 나타낸다. 그러나 여기서 쟁점은 이윤, 투자된 자본량에 대한 잉여가치 또는 이윤의 비율에 무슨 일이 일어났느냐이다. 비율[분수]에서 분자의 증가는 비율 전체가 증가한다는 증거가 되지 못한다. 이윤율에서 분모, 투자된 자본의 비율 증가가 분자의 비율 증가보다 훨씬 크다면 이윤율은 떨어진다. 분모가 더 큰 비율로 증가하지 않았음을 하비가 보여주지도 암시하지도 못한, 그가 끌어모은 통계는 이윤율이 증가했다는 증거가 아니다.

그럼에도 하비는 - 투자된 자본의 그 어떤 증가도 무시한 채 - 고용의 증가는 그 자체로 마르크스의 LTFRP가 1980년대 초부터는 작동하지 않아 왔다는 강력한 증거라고 주장한다. "만약 이윤율이 하락하는 경향이 있다는 일반 이론이 옳다면 노동 절약형 기술 변화의 확산은 … 자본에 고용된 임금노동자 수가 감소하는 경향이 있다는 뜻이 될 것이다. 이는 마르크스가 기꺼이 인정했던 바이기도 하다."

이게 바로 틀렸다. LTFRP가 고용 감소를 의미한다고 마르크스가 "기꺼이 인정했다"는 그의 주장을 뒷받침하기 위해 하비가 끌어온 구절은 실제로는 노동절약형 기술 변화('생산성 향상')가 "주어진 자본에 의해 고용되는 노동력의 양을 감소시키는 경향을 가진다"고 말한다(자본론 3권, 280쪽, 강조는 글쓴이). 예를 들어 만약 투자된 자본이 원래 100만 달러이고 노동자 10명을 고용했고 이후엔 400만 달러를 투자해 노동자 20명을 고용했다면 '주어진 자본에' 고용된 노동자 수는, 이를테면 100만 달러 당 10명에서 5명으로 감소했다. 즉 이는 하비가 설명하듯 고용 규모의 절대적 감소를 뜻하는 게 아니다. 절대적인 고용 규모는 10명에서 20명으로 두 배가 됐다.

게다가 마르크스가 LTFRP를 제시하는 앞 부분의 확장된 논의에서 그는 하비가 말한 "기꺼이 인정했다"는 것을 명백하게 거부하고 있다.

이윤율의 점진적 저하의 법칙은 … 사회적 자본에 의해 운동되고 착취되는 노동의 절대량, 그리고 또 사회적 자본에 의해 취득되는 잉여노동의 절대량이 증가하는 것을 결코 배제하지 않으며 …

이윤율의 저하는 총자본 중 가변적 구성분의 절대적 감소로부터 발생하는 것이 아니라 상대적 감소, 즉 불변적 구성부분에 대한 가변적 구성부분의 상대적 감소로부터 발생한다.

이윤의 절대량(그것의 총량)은, 이것과 총투하자본 사이의 비율의 비상한 감소에도 불구하고 50%나 증가한 것이다. 자본이 고용하는 노동자의 수, 즉 자본이 운동시키는 노동의 절대량, 그리고 또 자본이 흡수하는 잉여노동의 절대량, 즉 자본이 생산하는 잉여가치의 양, 이리하여 자본이 생산하는 이윤의 절대량은, 이윤율의 점진적인 저하에도 불구하고 증가할 수 있으며 그리고 점진적으로 증가한다. 이것은 자본주의적 생산의 바탕 위에서 가능할 뿐만 아니라 일시적인 변동을 제외한다면 그렇게 되지 않을 수 없다.
-자본론 3권, 259~261쪽, 강조는 원문

요점을 좀 더 강조해 명확히 다시 말하자면 고용의 증가는 LTFRP에 반대되는 증거가 결코 아니다.

마르크스의 '분명한 동요와 양면성'

하비는 "그 법칙의 보편적 타당성에 관한" 자신의 "오랜 회의론"을 정당화하기 위해 "마르크스가 자신의 발견을 법칙, 경향의 법칙 혹은 가끔 단지 경향이라고까지 부른다는 데서 그의 언어가 갈수록 동요하고 있음을 우리는 안다"고 썼다. 하비가 '경향'과 '법칙' 사이의 동요로 이해한 것은 사실 현실에서 일어난 일과 그것을 설명하는 것 사이의 불가피한 차이에서 비롯한 것이다. 마르크스는 이윤율이 하락하는 경향이 있다고 지적하며 이 하락 경향을 설명하기 위해 법칙을 제안한다. [여기에] 동요는 어디에 있는가?[1]

마르크스는 LTFRP를 '법칙'으로 부르거나 '경향 법칙'이라고 부르는 것 사이에서 동요한 것도 아니다. 그는 모든 경제적 법칙을 경향의 법칙으로 여겼다. 예를 들면 그는 '자본론' 3권 10장에서 "우리는 이러한 일반적 잉여가치율을 모든 경제법칙과 마찬가지로 하나의 경향으로서 … 가정하고 있다."(자본론 3권, 207쪽)고 적었다. 핵심은 충분히 간단하다. 이윤율 같은 경제적 변수에서 모든 변동을 담아낼 법칙은 발견할 순 없다. 이러한 변동들이 순수하게 법칙을 따르는 게 아니기 때문이다. 이것들은 모든 종류의 우연적 사건과 방해로부터 영향을 받는다. 우연적 사건과 방해에도 불구하고 그로부터 드러나는 변수들의 경향 법칙을 발견할 수 있을 뿐이다.

여기에 하비는 마르크스가 LTFRP에 대해 양면적이었다는 자신의 믿음을 뒷받침하기 위해 추가적인 근거를 제시한다.
[그가 제시하는] 첫째는 "마르크스가 '프랑스 내전' 같은 그의 정치적 저작에서 이윤율이 하락하는 경향에 대해 그 어떤 언급도 하지 않고 있다"는 것이다. 그런데 '프랑스 내전'에서는 잉여노동이나 잉여가치와 같은 현상들도 일절 언급하지 않는다. [그렇다면] 하비는 이러한 부재를 잉여노동 또는 잉여가치의 존재에 대해 마르크스가 의심해왔다는 타당한 증거로 고려해야 하지 않을까? "그것들의 일반적인 타당성에 대한 오래된 회의론"의 근거로 간주해야하는 것 아닐까?

더 나가 마르크스가 LTFRP에 대해 의구심을 표했다는 증거로 하비는 1848년과 1857년 공황들을 '상업과 금융 공황들(commercial and financial crises)'로 묘사하며 이윤율 하락에 관해서는 단지 지나가는 말로만 언급하는 마르크스의 분석을 지적하고 있다. 마르크스주의 학자인 미하엘 크래티케는 비슷한 주장을 해왔다. 이는 경기후퇴와 불황을 위기(crises)라고 부르는 현재 통용되는 마르크스주의 학술용어에 익숙해진 이들에게 중요한 증거처럼 보일 수 있지만 용어의 사용법은 마르크스 시대 이후 크게 변해왔다. 그가 말한 경제위기들(economic crises)은 상업과 금융공황을 의미했다. 그는 경기변동의 연이은 국면들을 "중간 정도의 활황, 번영, 과잉생산, 공황, 불황" 또는 "평균수준의 호황ㆍ활황ㆍ공황ㆍ침체"(자본론 1권, 607쪽, 863쪽)로 묘사하며 이러한 위기들을 그것들이 초래한 경기하강과 구분한다.

게다가 마르크스는 이윤율 하락 경향을 상업 또는 금융위기들의 직접적인 원인으로 간주하지도 않았다. 그는 이윤율의 감소는 간접적으로, 그리고 약간의 지체를 겪은 후 위기로 이어진다고 주장했다. 이 경향은 과잉생산을 촉진한다(이를테면 생산적 투자수요의 침체를 통해). 또한 금융 투기와 사기도 조장한다. "이윤율이 저하하면 … 어떤 종류의 특별이윤이라도 얻기 위하여 새로운 생산방법, 새로운 투자 및 새로운 모험 등을 앞뒤 가리지 않고 시도하기 때문에 투기와 투기의 일반적 촉진이 나타난다." 오직 부채를 최종적으로 갚지 못할 때 위기-이 경우 금융위기-가 폭발하고 이 위기는 침체로 이어진다. "특정한 지불일이 붙어있는 지불의무의 연쇄는 여러 곳에서 끊어지는데, 이것은 자본과 함께 발전하여 온 신용제도의 동시적 붕괴에 의해 더욱 격화된다. 이 모든 것들이 격렬하고 첨예한 공황, 갑작스럽고 강력한 가치감소, 재생산과정의 현실적 정체와 교란, 따라서 또 재생산의 현실적 축소를 일으킨다."(자본론 3권, 289~291쪽, 310~311쪽, 305쪽)

마르크스가 상업과 금융 관계의 파국을 '위기'라는 단어를 사용해 표현하고, 그가 이윤율의 하락과 위기의 폭발 사이에 많은 중간매개의 존재를 인정한다는 것을 우리가 이해하면 그가 때론 이윤율의 하락 경향을 추상적으로만 다루며 위기들을 논한다는 게 놀랍거나 특별히 중요한 것은 아니다. 그는 한 번에 모든 것을 다루려 하다가 혼란스러운 잡동사니를 만들어내기보다 한 번에 하나의 것을 다루기를 선호하는 오직 엄격하고 변증법적인 인물이었을 뿐이다.

또한 하비는 1868년 이후 "마르크스는 이윤율 하락 이론으로 결코 돌아가지 않았다"며 "마르크스가 일찌기 '정치경제학 비판 요강(the Grundrises)'에서 '정치경제학의 가장 중요한 법칙'이라고 강조했던 것을 그의 마지막 10여 년 간 연구에서 무시하는 선택을 내려야만 했던 것은 이상야릇하게 보인다"고 말했다. 그러나 마르크스가 LTFRP를 '무시'했다는 추정에는 근거가 뒤따르지 않는다. 나는 이론적이거나 실증적인 문제를 만족스럽게 해결했을 때 더 이상 집요하게 그 문제에 머무르지 않고
[다른 문제로] 관심을 옮긴다. 이는 내가 도달한 결론을 무시한다는 게 아니다. 주어진 대답을 받아들인 것이다. 마르크스도 비슷한 방식으로 작업했다는 증거가 내겐 있다. 하비는 어떤 식으로 작업하는가?

따라서 진정한 질문은 다른 문제로 나가기 전 마르크스가 이윤율이 하락하는 원인에 대한 자신의 해명에 만족했느냐는 것이다. 증거들엔 의심할 여지가 남아있지 않다. 미하엘 하인리히(그는 최근 하비와 비슷한 주장을 했다)에 대한 대답에서 나와 공저자는 "1865년부터 1877년 사이 마르크스의 편지들에서 그가 자신의 이론적 결론에 만족했으며 그가 출간한 첫째 권 뿐 아니라 출간하지 못한 채 남겨뒀던 다른 권들을 포함한 자본론을 이론적인 면에서 최종적인 결과물로 간주했다는 많은 증거"(클라이먼ㆍ프리먼ㆍ포츠ㆍ구세프ㆍ코니 2013)를 보여줬다. 하인리히는 이 증거에 답하지 않았고 하비는 이에 대해 토론하는 것을 피했다.

LTFRP가 정치경제학의 가장 중요한 법칙이라는 마르크스의 관점은 초기에만 한 번 언급된 것도 아니고 이후 '무시'되지도 않았다. 그는 이를 1857~58년 '정치경제학 비판 요강'뿐 아니라 1861~63년 원고에서도 단언했다. "정치경제학의 가장 중요한 법칙인 이 법칙은 자본주의적 생산의 발전에 따라 이윤율이 하락하는 경향을 띤다는 것이다."(MECW Vol.33, 104쪽. 강조는 원문) 후에 마르크스는 3권을 쓸 때 LTFRP가 가장 중요한 법칙이라는 주장을 넘어선다. 그는 애덤 스미스 이후 모든 정치경제학은 이 법칙을 찾기 위해 움직여 왔을 만큼 중요하다고 주장한다. "이 법칙은 자본주의적 생산에 대하여 큰 중요성을 가지고 있으므로 애덤 스미스 이래의 정치경제학 전체는 이 수수께끼의 해결을 둘러싸고 돌고 있다고 말할 수 있다."(자본론 3권, 255~256쪽)

신화적인 일원인론

또한 LTFRP 및 그에 기반을 둔 자본주의 위기이론은 일원인론이라는 그의 비난은 마르크스의 글에 대한 그의 잘못된 이해에서 비롯한다. 마르크스의 법칙은 약간은 '엄격한' 가정에 기초한 '고도로 단순화된 모델'에서 유래했다고 하비는 주장한다. 그렇기에 현실에서 모든 가정이 꼭 들어맞을 때만 법칙은 유효하다. 그러나 이러한 가정들 때문에 법칙은 노동절약형 기술 변화 외에 수익성 하락의 모든 잠재적 원인들과 기술변화의 상쇄 효과로 인해 이윤율 하락을 저지할 수 있는 모든 요인들을 배제한다. 따라서 법칙은, 그리고 외부적 요인을 취사선택해 결합시키는 것 없이 그것을 채용한 어떤 위기 이론도 일원인론인 것이다.

물론 하비는 그 엄격한 가정을 마르크스의 글에서 발견할 수 없다는 것을 인식하고 있다. "마르크스는 (자본론) 1권에서 그의 가정을 꼼꼼하게 펼쳐내면서도 (3권의) 이윤율 하락 이론에 대해서는 그러지 않는다." 그렇다면 그는 마르크스가 펼친 그 엄격한 가정을 어떻게 아는가?

그는 최소한 한 번은 명백히 틀렸다. 하비에 따르면 마르크스의 법칙은 모든 상품("노동력은 제외하고")이 구매되고 그 실제 가치, 이 가치와는 다른 가격이 아닌 가치 그대로 판매된다고 가정한다.
[2] 바로 이 경우가 틀렸다. 3권 3편의 주제가 그 법칙이다. [그런데] 마르크스는 2편에서 이미 상품의 가치와 그것이 실제로 팔릴 때의 가격 사이에 큰 차이가 있겠지만 경제에서 산출물의 총 가격은 전체적으로 이 산출물의 총 가치와 같다(그리고 그에 따라 그 한계가 된다)는 결과를 이끌어냈다. 따라서 하나의 기업 또는 산업이 생산물의 가치를 넘어선 가격을 받을 때 이 이득은 순전히 다른 자본가들의 손실을 상쇄하는 대가가 된다. [손실을 입은] 이들의 생산물 가격은 그 가치보다 적다. 그리고 이로부터 첫째 총 이윤은 만들어진 총 잉여가치와 같다(그리고 그 한계가 된다)는 것, 둘째 가격과 가치 사이의 차이는 LTFRP와 관련해 경제 전반의 이윤율에 영향을 미치지 못한다는 결론이 이어진다.[3]

모든 상품이 그 가치대로 팔린다는 가정이 아니라 앞선 것과 같은 결론이 마르크스가 이윤율의 경향적 저하법칙을 이끌어낸 기초적 조건이다(MECW Vol.33, 104쪽. 강조는 원문).

우리는 개별 자본의 이윤율이 투하자본 총량 대비 잉여가치의 비율과 다름을 살펴봤다. 그러나 자본가계급의 총 자본을 고려하면 평균적 이윤율은 이 총 자본에 계산되고 관련된 총 잉여가치 외에 아무 것도 아니라는 것도 … 보여줬다. 그러므로 우리는 이로부터 다시 한 번 다수 자본의 경쟁을 고려하지 않고도 자본이 [충분히] 발달된 것인 한 그 일반적 특성에서 직접적으로 일반적 법칙을 이끌어낼 수 있는 견고한 기초를 갖게 된다. 정치경제학의 가장 중요한 법칙인 이 법칙은 자본주의적 생산이 전개되면서 이윤율이 하락하는 경향을 띤다는 것이다.

대개 하비는 마르크스의 법칙을 가능한 제한적인 해석에 따른 여러 한정적 추정들에 기댄 모델로 치부한다. 그는 3권 3편 전체가 아니라 마르크스가 법칙의 현상으로서 소위 "법칙 그 자체(das Gesetz als solches)"라고 부른 것을 다룬 부분들만 고려한다. 이는 그 법칙을 일원인론적이고 마르크스가 3편 뒷부분에서 논한 다른 현상ㆍ제도들과 동떨어진 것처럼 보이게 한다. 법칙은 (내가 앞에서 논했 듯) 여러 상쇄 요인들 사이에서, 그리고 금융제도의 매개를 통해 작동하는 게 아니라 실제 세상의 그처럼 많은 요인들을 배제하고 무시한 상상속 조건에서만 오직 소환될 수 있는 딴 세상의 관념처럼 보인다.

하비는 마르크스가 그처럼 많은 "여러 제한적 (법칙의) 적용 가능성"을 "배제"했다고 말한다. 하비는 마르크스가 다른 현상과 제도들을 잇따라 분석에 도입했음을 알고 있지만, "법칙 그 자체"를 저지선 바깥으로 쳐냄으로써 그는 이런 사실을 LTFRP의 다원론적 성격의 증거로 인식하는 데 실패했다.
[그에겐] 추가적인 현상과 제도들의 도입은, 법칙이 자신을 드러내는 구체적 형태들 속에서 그 법칙을 묘사하는, 법칙의 변증법적 풍부화로 나타나기보다는, 법칙이 작동할 수 있기 위해 요구되는 조건들이 실제로는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에 대한 암묵적인 시인으로 나타난다. 법칙은 온전히 남지 못한 것으로 비친다. [이제] 마르크스는 전과는 별개의 논의에, 즉 “법칙을 도출해낸 가정들이 제거되었을 때 어떤 일이 벌어질 것인가”와 관련된 논의에 천착하고 있는 것처럼 나타난다. 그는 법칙의 지위에 의문을 나타내며 그의 "동요와 양면성"을 보여주는 것처럼 보인다. 그래서 우리에겐 전혀 다른 틀을 갖는 위기 이론이 필요한 것처럼 보인다. 그것은 그 어떤 내적 연관도 갖지 않는, 서로 너무 달라서 "어떤 일원인론으로 쑤셔넣는 것"이 불가능한 다수의 잠재적 설명 요인과 현상으로 가득찬 체계화되지 않은 하나의 공간이다.

그 글을 이런식으로 읽어선 안된다. 그리고 그럴 필요도 없고 그래서도 안된다. 이런 부당한 독서는 적절한 해석 방법이 아니다.

일원인론이라는 딱지붙이기가 왜 잘못됐는지를 이해하기 위해 정교한 방법론적 논의를 펼칠 필요는 없다. 사과가 나무에서 떨어지는 경향이 있다는 것을 설명하기 위한 보편적 중력법칙을, 바람과 같이 사과를 떨어뜨릴 수 있는 다른 요인 또는 공기 저항 같은 상쇄 요인을 언급하지 않은 채 내가 제안한다고 해서 이 다른 요인들을 존재하지 않는 것으로 가정하는 것은 아니다. 게다가 내가 그것들을을 배제한, 그 대신 적용 가능성의 측면에서 엄격하게 제한적인 일원인론을 구성하고 있는 것도 아니다. 내가 중력법칙으로부터 뉴튼의 운동에 관한 제2법칙을 이끌어내 설명하고 이를 증명하기 위해 방정식에서 다른 요인들의 삽입을 삼간다고 해도 그런
[일원인론적인] 것은 아니다. 그런 다음 내가 공기 저항과 바람[에 대한 설명으로] 넘어간다고 해서 내가 내 양면성과 동요를 드러낸 것도 또는 보편적인 중력법칙이 오직 진공에서만 작용하고 실제 현실에선 작용하지 않는다고 시인한것도 아니다.[4]

마르크스의 법칙이 자본주의 동학의 '절대적 진리'가 아니라고 지적한 점에서 하비는 옳다. 다시 말해 그것은 유일한 원인이 아니라는 것이다. 그것은 이윤율 궤적의 모든 일시적 변화를 해명하지도 못한다. 그러나 이는 그 법칙의 목적이 아니다. 그것의 목적은 '단지' 마르크스의 가치이론이, 그의 자본축적 이론과 결합하면, 이윤율이 하락하는 경향이 있다는
[당시 경제학자들을 괴롭히던] 사실을 설명할 수 있음을 보여주는 것이다.

하비는 글의 대부분에서 오늘날 그가 비판하는 대상이 정확히 누구인지 매우 모호하다. 예를 들어 그는 LTFRP에 뿌리를 둔 위기 이론은 그 현대적인 지지자들 사이에서 "다른 가능성의 고려를 배제하는 식으로" "전형적으로 제시되"며, "많은 마르크스주의 경제학자들"은 "원인이 하나인 위기 이론"이 있다고 "주장하기를 좋아한다"고 단언한다. 이름을 언급하는 걸 삼갔다는 것 때문에 그의 비난에 답하기는 어렵다. 그러나 한 부분에서 그는 법칙의 "어떤 지지자들"이 "금융화는 2007~8년의 붕괴와 관련이 없다고 말했다"고 했을 뿐 아니라 "앤드루 클라이먼이 가장 단호하게 위기와 금융화는 아무런 상관이 없다고 말했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나는 이를 단호하게 주장하지 않았다. 심지어 나는 내 선배들에 대해 존중을 표하기는 했어도 스스로 그것을 주장하지는 않았다.
[아니] 나는 정반대로 주장했다. "물론 금융위기가 불황을 촉발했고, 금융 부문의 특유한 현상들(과도한 레버리지, 위험한 모기지 대출 등)이 중요한 원인이었다."(클라이먼 2012, 24~25쪽)

내가 인용한 이 문장은 대침체의 근본적 원인으로 내 책의 첫 장에 나오는 것이다.
[5] 그 다음 장에선 "이윤율 저하를 최근의 경제위기와 침체에 연결하는 두 가지 중간매개 고리-낮은 수익성과 신용제도-에 집중한다".(클라이먼 2012, 40~41쪽) 그리고 3장은 2007~8년의 금융위기에 대한 다음과 같은 논의에 할애했다. ▲1990년대 닷컴 버블이 터진 이후 연방준비제도의 지나친 금융완화 정책 ▲모기지 대출의 자산 유동화 ▲서브프라임 대출 ▲주택 순자산 신용한도 대출 ▲증가하는 모기지론 주택담보대출비율 ▲대출자 레버리지 비율의 상승과 자금 수요의 감소 ▲1990년대와 2000년대의 증가하는 가계대출 ▲닷컴과 주택가격 거품 부상의 심리학 ▲신용평가기관들의 비참할정도로 부정확한 전망 모델 ▲의회의 [금융위기] 초기 TARP(Troubled Assets Relief Programㆍ부실 자산 구제 프로그램) 거부 ▲미국으로 향한 해외로부터의 저축 유입. 이것이 금융화가 2007~8년 금융위기의 원인임을 부정[6]하는 혹은 일원인론적으로 접근하는 최선의 사례라면 나는 그의 다른 사례들을 [굳이]] 더 살펴보진 않을 것이다.

앤드루 클라이먼은 '자본주의 생산의 실패: 세계대침체의 원인'(정성진ㆍ하태규 옮김, 한울 2012), '마르크스 '자본론'의 복권: 모순이라는 신화에 대한 반박 Reclaiming Marx's 'Capital': A Refutation of the Myth of Inconsistency'(Lexington Books 2007)의 저자다. 페이스 대학(뉴욕)의 경제학 명예교수이며 '마르크스주의 휴머니스트 이니셔티브(the Marxist-Humanist Initiative)' 함께 정치적 활동을 하고 있다.


참고문헌
Harvey, David. 2012. History versus Theory: A Commentary on Marx's Method in Capital, Historical Materialism 20:2, 3-38.
_______. 2014. 'Crisis Theory and the Falling Rate of Profit'.
Howard, M. C. and J. E. King. 1992. A History of Marxian Economics: Volume II, 1929-1990. Princeton, NJ: Princeton Univ. Press.
Kliman, Andrew. 2007. Reclaiming Marx's 'Capital': A Refutation of the Myth of Inconsistency. Lanham, MD: Lexington Books.
_______. 2012. The Failure of Capitalist Production: Underlying Causes of the Great Recession. London: Pluto Books.('자본주의 생산의 실패: 세계대침체의 원인', 정성진ㆍ하태규 옮김, 한울 2012)
Kliman, Andrew, Alan Freeman, Nick Potts, Alexey Gusev, and Brendan Cooney. 2013. The Unmaking of Marx's Capital: Heinrichs Attempt to Eliminate Marxs Crisis Theory’.
Kliman, Andrew and Shannon D. Williams. 2014. Why 'Financialisation' Hasn't Depressed US Productive Investment, Cambridge Journal of Economics. Print version forthcoming.
Marx, Karl. 1990. Capital: A Critique of Political Economy, Vol.Ⅰ. London: Penguin.('자본론: 정치경제학 비판 제1권 자본의 생산과정', 김수행 옮김, 비봉출판사 2004)
_______. 1991a. Capital: A Critique of Political Economy, Vol.Ⅲ. London: Penguin.('자본론: 정치경제학 비판 제3권 자본주의적 생산의 총 과정', 김수행 옮김, 비봉출판사 2008)
_______. 1991b. Karl Marx, Frederick Engels: Collected Works, Vol.33. New York: International Publishers.

주석
[1] 법칙의 함수에 대한 논의와, 이와 관련한 '법칙'의 의미에 대해서는 클라이먼ㆍ프리먼ㆍ포츠ㆍ구세프ㆍ코니(2013)을 보라.
[2] 그는 "(노동력을 제외한) 모든 상품은 그 가치대로 교환된다"는 자본론 1권과 2권 곳곳에서 중시한 가정이 3권에서도 유지되고 있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문제의 그 가정은 노동력을 배제하지 않는다. 노동력 역시 그것의 모든 가치대로 구매된다는 가정에 따라 마르크스는 시장이 아니라 생산에서 이윤이 어떻게 발생하는지를, 상품교환이야 말로 "자유ㆍ평등ㆍ소유ㆍ벤담이 지배하는 … 천부인권의 참다운 낙원"(자본론 1권, 230쪽)이라는 생각을 포기하지 않은 채 설명할 수 있었다.
[3] 마르크스가 이런 결과를 이끌어낸 과정의 내적 모순이 입증됐다는 주장을 들은 바 있는 데 이는 단지 악의에 찬 신화일 뿐이다. 클라이먼(2007) 8장을 보라
[4] 이는 마르크스가 하나하나 엄격하게 절차를 밟아나가는 것과 비교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중력 법칙은 LTFRP와 비슷하다. 운동 제2법칙은 노동시간에 따른 가치 결정 법칙(가치법칙)과 유사하다.
[5] 하비는 그의 논문 어떤 곳에서 내 책을 끌어들이지만 내가 주장했다고 그가 말하는 어떤 증거 또는 인용도 제시하지 않는다.
[6] 샤넌 윌리엄스와 나는 금융화가 대침체가 진행된 10년간 미국에서 기업의 자본축적률 하락의 원인이 아님을 보여줬다.(클라이먼ㆍ윌리엄스 2014) 당연히 그것은 완전히 다른 문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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