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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대선에서 트럼프의 당선에 좌절한 것은 한국의 자유주의 세력, 페미니스트들 만은 아니다. 사실 우파들도 어디로 튈지 모르는 이 얌체공 같은 인물을 두려운 눈길로 바라보고 있다.

한국 자유주의자들의 절망과 공포는 이해할 만한 여지가 있긴 하다. 샌더스가 미국 민주당 경선에서 패배한 후 한국 언론은 트럼프가 얼마나 혐오스러운 인물인지 전하는 데만 힘을 써왔다. 뉴욕타임즈와 CNN의 받아쓰기가 한국 언론 외신보도의 전부임을 고려하면 이는 미국 언론의 대선 보도와 일맥상통할 것이다. 클린턴의 이메일 스캔들에 대해 전하긴 하지만 시종일관 그는 우아하고 품위 있는, 책임 있는 대통령에 어울리는 사람으로만 그려졌지 그와 그의 민주당이 해온 일에 대해선 시종 침묵했다. 샌더스가 물러난 뒤로는 계속해서 말이다.

그런데 한국 교육부 고위 관료가 생각하듯 인민은 개ㆍ돼지가 아니다. 한국의 자유주의자들이 생각하듯 미국의 인민 다수가 팝콘을 씹으며 수퍼보울에만 열광하는 얼간이들도 아니다. 1994년 북미자유무역협정(NAFTA) 체결 후 그들은 자신의 일자리가 사라져가는 걸 눈앞에서 지켜봐야만 했고, 자신의 자식들이 맥도날드와 월마트에서 저임금 노동에 종사해야만 한다는 걸 발견하게 됐다. 천문학적인 돈을 쏟아부어 만든 첨단 무기들이 동유럽과 중동의 인민을 학살하는 동안 그들은 자신의 가난한 동네의 공립학교가 축소되는 것을 무기력하게 바라만 봐야 했다.

남편 클린턴의 민주당 정부에서, 아들 부시의 공화당 정부에서도, 다시 오바마 정부에서도 상황은 변하지 않았다. 2011년 미국의 청년과 노동자들이 월스트리트 권력에 맞서 오큐파이 운동을 벌였을 때 클린턴은 월스트리트의 권력자들과 손을 잡고 있었다. 그해 말과 다음해 초, 오바마 정부는 연방정부 차원에서 직접 지휘해 전국적인 오큐파이 운동을 진압해 말살했다. 2012년 시카고 교사 노동자들의 파업은, '오바마의 남자'라고 불리던 람 이매뉴얼 시장의 시장주의 '교육개혁'에 맞서 일어난 것이다. 흑인 오바마 정부 하에서도 경찰의 흑인 살해는 끝없이 일어나고 있다. 그는 감동적으로 '어메이징 그레이스'를 함께 부르긴 했지만 연방정부의 권력을 이용해 주 경찰들의 전횡을 막진 않았다. 오큐파이 운동 진압 때와는 달리 말이다.

클린턴은 여성이기 이전에 무엇보다도 바로 이러한 정치 시스템의 정통 후계자로 여겨진 것이다. 실제 투표 결과를 봐도 올해 트럼프가 받은 표는 2012년 공화당 후보 롬니가 받은 표보다 적다. 문제는 클린턴이 받은 표가 2012년의 오바마가 받은 표보다 크게 준 것이다
(그래프 ①). 출구조사를 보면 특히 연 소득 5만 달러 이하에서 지지가 급격히 줄었다. 그럼에도 이 연 소득 5만 달러 이하의 가난한 사람들의 절반 이상은 여전히 민주당 후보에 표를 던진 것으로 나타난다(그래프 ②). 결국 트럼프 승리의 의미는 더 많은 수의 가난한 백인 노동계급이 백인 남성에게 표를 던진 게 아니라, 지난 8년간 클린턴도 중요한 일원으로 참여해온 오바마 정부에 실망한 가난한 인민이 민주당에 대한 지지를 거뒀다는 것이다.

그래프 ① 미국 대통령 선거 득표수 변화


그래프 ② 소득별 지지율 변화(출구조사)


그러니까 우리는 여기서 한국 우파들의 미 대선 결과에 대한 우려를 살펴봐야 한다. 그들은 무엇보다도 트럼프가 한ㆍ미FTA를 무효화 시킬까 두려워한다. 그들은 미국 정부가 남한을 군사적 보호에서 제외할 것을 염려한다. 그들은 미국 정부의 대북 정책이 전환할 것에 골치아파 하고 있다. 왜냐면 신자유주의적 경제정책을 지지하며 중동과 동아시아에서 군사적 대결정책을 강경하게 밀고나가는 매파인, 미국 정치 시스템의 적자로서 클린턴이 대통령이 됐다면, 아무런 걱정 없이 '이대로' 상황을 유지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물론 트럼프라고 해서 지금 상황이 크게 달라질 것은 없다. 그는 무엇보다도 미국 기업 시스템의 적자이다. 그의 기회주의적 과거를 되돌아보면 레토릭과 달리 신자유주의적 경제는 그대로 유지될 것이며, 미국의 군사주의적 도전은 변치 않을 것이다. 부시도 해외 개입의 축소, 고립주의를 외치며 당선됐지만 미국이라는 나라가 해온 일의 부메랑에 맞은 뒤 군사주의적 개입을 더 적극 펼칠 수밖에 없었다. 그것은 한편 자신의 가족과 국내외 친구들의 기업을 위한 일이기도 했다.

문제는 클린턴이냐 트럼프냐가 아니다. 트럼프 같은 쓰레기가 미국 대통령이 됐다고 해서 크게 실망할 일도 아니다. 무릇 정치는 두 개의 머리를 지니고 성장하기 때문이다. 우리는 바로 얼마 전까지 샌더스 열풍을 목도했다. 올해 시카고 교사 노동자들은 다시 파업에 나섰으며 버라이존과 월마트 같은 새로운 부문의 노동자운동 성장도 계속되고 있다. 희망은 워싱톤이 아니라 도시의 거리에서, 사무실ㆍ학교, 공장에서 자라나고 있다.

한국에서도 다르지 않다. 모든 악의 근원이 최순실로, 그리고 박근혜로 모아지고 있다. 대기업들도 공범이라는 목소리가 크지만 민주당이나 야당도 공범이라는 목소리는 찾기 힘들다. 그렇지만 우리는 기억해야 한다. 김대중 정권에서, 노무현 정권에서 계속해서 시장의 권력은 커져갔으며 노동자의 삶의 조건은 악화돼 갔음을. 이명박과 박근혜는 그것을 가속화시켰을 따름이다. 우리는 눈 앞의 적에 집중해야 하지만 12일 거리로 나오겠다는 민주당과 국민의당도 결코 우리 편이 아니었음을 기억해야 한다. 그렇지 않았을 때 우리는 다시 박근혜와 같은, 미국의 트럼프보다 더 한 인물이 한국의 권력을 잡을 수 있음을 알아야 한다.

Posted by 때때로


마천루에서의 점심
|찰스 에버트가 1932년 촬영한 사진. 당시 건축 중인 뉴욕 록펠러 센터 69층(지상 260m)에서 철골 구조에 앉아 위태롭게 점심시간을 보내는 노동자들.

아래는 조슈아 B. 프리먼의 '뉴욕, 노동계급의 도시' 서문이다. 뉴욕주립대학교 퀸스 칼리지 역사학 교수로 '수송 중: 뉴욕 운송 노동조합 1933-1966'을 썼고 '미국을 만든 건 누구인가? 노동 인민과 국민경제, 정치, 문화 그리고 사회' '파렴치한 민주주의: 노동, 지식, 그리고 미국 사회의 재구성'에 공저자로 참여했다.

※ 의역이 많고 오역이 있을 수 있습니다. 저자의 주석은 후주로, 옮긴이가 이해를 위해 덧붙인 것은 본문 대괄호 안에 담았습니다. 저자가 이탤릭으로 표기한 것은 굵은 글씨로 강조했습니다.


뉴욕, 노동계급의 도시: 2차 세계대전 후 뉴욕의 삶과 노동
조슈아 B. 프리먼

서문: 무엇이 뉴욕을 위대하게 만들었나

20세기 중반 뉴욕의 거리를 거니는 방문자는 노동계급이 그곳의 사회적 중추임을 어렵지 않게 알아챌 수 있을 것이다. 이는 부산한 항구와 도시 심장부의 공업지대, 브루클린ㆍ브롱크스ㆍ맨하탄의 무질서하게 뻗어나간 주거지역, 주기적으로 지역을 마비시키던 파업들, 많은 지지자를 거느린 미국 노동당과 진보당, 국제적 명성을 얻은 뮤지컬과 코메디 스타일, 지역사회 주민들 내에서 통용되는 은어 등에서 생생하게 느껴졌다. 뉴욕 노동계급은 정치 집단, 지역 주민들의 조합, 친목 또는 민족 공동체, 그리고 무엇보다도 노동조합을 통해 도시의 사회ㆍ경제ㆍ정치적 구조를 만들어내는 데 곳곳에서 기여했다. 지식인ㆍ예술가ㆍ엔터테이너ㆍ상인들이 전유하고 전파한 그들의 문화ㆍ스타일ㆍ세계관 등의 요소는 도시와 국가의 도덕적이고 미적인 조직 양식을 만드는 데 도움을 줬다.

뉴욕 노동 대중의 세계시민주의ㆍ열정ㆍ교양은 2차 세계대전 후 권력ㆍ혁신ㆍ현대성의 세계적 중심이 되고자 한 뉴욕의 계획이 성공할 수 있었던 중요한 요소다. 하지만 시간이 흐른 뒤 노동자와 그들의 단체들은 자신을 소외시킨 일련의 사건 전개를 막을 수 없다는 것이 입증됐다. 스스로 힘들게 일해온 다수가 뒷전으로 물러나는 사이 1990년대 뉴욕의 행로와 궤적은 시장과 유행의 선구자라는 세계적 도시로서의 위치에 점점 더 이끌렸다.

'뉴욕, 노동계급의 도시'는 승리와 고립에 관한 이야기다. 자신의 주민들에게 양질의 서비스를 제공했었지만 미래에는 더 이상 중심적 열할을 하지 못할 단체들이 권력을 얻고 영향력을 잃는 대하소설이기도 하다. 또 이것은 대중과 산업, 권리와 평등을 위한 끈질긴 투쟁, 계속되는 차별과 불평등의 거대한 변동에 관한 이야기다.

게다가 2차 세계대전 후 뉴욕 노동자와 그 가족들의 주목할 만한 역사가 그곳에 살았던 이들 계급 외에는 거의 모두 알려지지 않은 채 남아있다는 것이다. 전후 뉴욕을 기념하는 방대한 문학작품들-E. B. 화이트, V. S. 프리쳇, 쟌 모리스, 트루먼 카포티, 윌리 모리스 등등-은 전성기에 인구ㆍ경제ㆍ정치ㆍ사회 모든 면에서 뉴욕이 노동계급 도시로 보통 묘사되던 동안 놀라울 정도의 맹목적인 태도로 바로 그 노동자의 존재를 대개 무시한다. 노동자가 이야기에 등장할 때면 이 작가들은 대개 범죄의 온상, 주인공을 더 돋보이게 만들기 위한 다채로운 배경으로서만 그려진다.
[1] 뉴욕의 기록가들은 너무 자주 그곳에 살고 있는 수백 만명의 노동자, 그 남편과 아내, 아이들, 즉 뉴욕을 경제ㆍ정치ㆍ문화적으로 중요하게 만들고 그곳의 경제를 움직이고 있는 이들을 무시한 채 자신과 같은 작가ㆍ예술가ㆍ기업가ㆍ정치인들을 도시와 그 정신의 창조주(the creator)로 간주한다. 그들은 지난 반세기 동안 뉴욕의 노동계급 역사에 대해 놀라울 정도로 적게 써왔다.[2]

노동의 중요성을 고려하지 않는다면 뉴욕의 과거에 대한 그 어떤 묘사도 도시의 정치ㆍ사회ㆍ경제, 심지어 물질적 발전에서조차 전국적 표준에서 그토록 벗어난 이유를 설명할 수 없다. 마찬가지로 뉴욕을 살펴보는 것은 미국 노동의 역사를 다시 생각하게 만든다. 뉴욕 노동계급과 단체는 보통 대량생산 산업과 산업별노동조합회의(Congress of Industrial OrganizationㆍCIO)와 연결돼 있던 남성 중심적 산업노조를 강조한 2차 세계대전 후 노동의 역사에 기초한 묘사에 들어맞지 않는다.
[3] 뉴욕에선 작은 회사와 공방 또는 복합기업[다각기업ㆍ하나의 기업이 여러 종류의 기업을 소유하고 있는 한국의 재벌과 비슷한 형태]에 많은 수의 여성 조합원을 거느린 노조들-흔히 미국노동총동맹(American Federation of LaborㆍAFL)과 연결된-이 지배적이었다. 거기에 또 뉴욕에서 노동조합주의는 다른 지역에서보다 더 회복력이 있음이 입증됐다. 2차 세계대전부터 1980년대 사이 나라 전체에서 노동조합 가입률이 급격히 떨어졌지만 뉴욕에선 안정적으로 유지됐다(그래서 1990대 뉴욕의 노동조합가입률은 전국의 두 배 이상이었다).[4] 그뿐 아니라 보통 조직된 노동자가 1930년대에서 1940년대 사이 최고의 정치적 영향력을 지녔던 것으로 묘사되는 데 반해 뉴욕 노동운동의 힘은 1950년대 초와 1970년대 중반 사이 최고조에 달했다. 전국적으로 노동이 약해지는 동안 뉴욕이 노동조합 중심지로 남은 이유를 이해하는 것은 현대 노동운동의 특징과 그것의 정치경제적 지위를 이해하는 데 도움을 줄 것이다.

이 책의 제목은 의도적으로 학술적ㆍ정치적 유행을 거스른 것이다. 현대적 담론에서 바로 그 '노동계급'이란 단어는 불쾌한 느낌을 준다. 한 세기 동안 이 단어는 흔히 공업에 관한 어휘에 속했다. 보통 단순하게 이 단어는 일반적으로 임금을 받고 일하는 위치에 있는 사람을 총괄해 가리켰다. 나는 이 책에서 그 용어를 블루칼라와 화이트칼라 노동자, 그들의 직계가족을 포함해 그와 같은 의미로 사용한다. 계급에 대해 전혀 말하지 않는 요즘 미국인들은 보통 그것을 사람들이 일하는 형태가 아닌 사람들의 소득이나 재산 수준에 따라 정의한다. 때때로 나 역시 중산층 또는 빈곤층이라는 단어와 같은 그러한 범주를 사용한다. 그러나 이 책의 중심 논지는 뉴욕의 노동자들이 많은 경우와 상황에서 적어도 부분적으로는 경제에서 그들의 구조적 위치로부터 제약받는 방식으로 그들 자신과 도시에 중요한 결과를 초래하는 생각과 행동을 한다는 것이다.
[5]

다른 언급이 없다면 나는 뉴욕을
[펜실베니아주 북부와 온타리오호 사이에 있는 주가 아닌] 엄밀한 의미로 뉴욕시를 나타내는 단어로 사용한다. 전후 뉴욕에 관한 많은 연구는 도시의 어느 부위를 이해하기 위해서라도 전체로서 대도시권을 살피는 것이 중요하다고 강조해 왔다.[6] 이 연구는 도시 주민들 매일의 일상을 빚어내는 도시의 단체들과 정치의 중요성을 강조한다.


나는 어린 시절 대부분과 거의 모든 내 성년의 삶을 이 책에서 다루는 시기 동안 뉴욕에서 보냈다.
[이 책이] 어떤 식으로든 회고록인 건 아니지만 나는 종종 나와 내 가족의 삶을 삽화처럼 끌어내곤 했다. 대부분의 뉴요커처럼 나는 도시에 대해 큰 긴장감을 느껴 왔다. 그러한 어려움과 무자비함에 끝없이 좌절하면서도 다른 곳에서의 삶은 아무리 상상해보려 해도 어렵다는 것을 나는 깨달았다. 내가 뉴욕을 지키는 것은 박물관이나 콘서트홀의 고급 문화 때문도, 비할 데 없는 일자리ㆍ식사 기회 또는 뉴요커들이 흥청대며 보내곤 하는 곳 때문도 아니다. 그것은 오히려 명백하게 너그럽고, 개방적이지만 회의적이고, 이상적이지만 가식 따윈 없는, 폭발적인 열정과 활동에서의 헌신과 같은 노동계급 감수성 때문이다. 이것은 힘든 하루일을 마친 후 저녁 시간과 주말을 노동조합 모임, 친구들 사이의 일, 강연 또는 놀이공원에서 보내온 내 조부모들의 감수성이다. 가난한 사람들은 평생을 아이를 키우고, 부모를 봉양하고, 지방을 전전하며, 그리고 대단친 않지만 자부심을 갖고 정의와 평등의 이름으로 사회 변혁을 모색했다. 지하철과 거리, 공립학교에서 나는 이러한 감수성을 여전히 느끼곤 한다.

노동계급이 영향력을 잃으면서 뉴욕에서 문화는 후퇴했고 공동체는 소원해졌다. 나 또한 황금시대라고 불리는 때로 돌아갈 가능성을 원하지도 믿지도 않는다. 50년 전 다저스
[미국 프로야구 LA 다저스의 원래 연고지는 브루클린이었다. 1958년 현재의 LA로 옮긴다]는 브루클린에서 경기를 치를 수 있겠지만, 뉴요커 대부분에게 50년 전의 삶은 힘든 노동, 불안한 치안, 더 큰 적대감을 의미한다. 그러나 나는 평범한 사람들이 그들의 도시와 나라를 만드는 데 오늘날보다 더 위대한 역할을 맡을 가능성에 이 책이 빛을 비추길 바란다. 그들의 노동, 투쟁, 농담, 노래가 뉴욕을 그토록 위대하게 만들었다. 이를 잊는 것은 우리 모두를 약하게 만들 것이다.


[1] E. B. 화이트 『Here Is New York』(뉴욕, 1949, 국역 『여기 뉴욕』), V. S. 프리쳇 『New York Proclaimed』(뉴욕, 1965), 쟌 모리스 『Manhattan'45』(뉴욕, 1987), 안드레아 와이어트 섹스톤과 앨리스 레세스 파워스가 편집한 『The Brooklyn Reader: Thirty Writers Celebrate America's Favorite Borough』(뉴욕, 1994)에 실린 트루먼 카포티의 「A House on the heights」, 윌리 모리스 『New York Days』(보스톤, 1993).

[2] 최근 나온 데브라 베르나르와 레이첼 번스타인의 『Ordinary People, Extraordinary Lives』(뉴욕, 2000)은 예외다.

[3] 예를 들면 데이비드 브로디의 『Workers in Industrial America: Essays on the 20th Century Struggle』(뉴욕, 1980) 5장과 6장, 스티브 프레이저와 게리 게슬이 편집한 『The Rise and Fall of the New Deal Order, 1930-1980』(프린스턴, 1989)에 실린 넬슨 리히텐시타인의 「From Corporatism to Collective Bargaining: Organized Labor and the Eclipse of Social Democracy in the Postwar Era」, 킴 무디의 『An Inujury to All: The Decline of American Unionism』(런던, 1988)을 보라.

[4] 뉴욕과 전국의 노동조합 조합원 수에 관해선 3장과 17장에서 다룬다.

[5] R. 에메트 머레이 『The Lexicon of Labors』(뉴욕 1998) 187쪽. 계급에 관한 문학은 막대하다. 이라 카츠넬슨과 아리스티드 R. 졸버그가 편집한 『Working-Class Formation: Nineteenth-Century Patterns in Western Europe and the United States』(프린스턴, 1986)에 실린 이라 카츠넬슨의 「Working-Class Formation: Constructing Cases and Comparisons」는 이에 관한 유용한 안내를 제공한다.

[6] 특히 이러한 관심은 1950년대 동안 지역개발연합[the Regional Plan AssociationㆍRPAㆍ1922년 설립된 비영리 기구로 뉴욕ㆍ뉴저지ㆍ코네티컷 3개 주 31개 카운티의 경제적 경쟁력과 삶의 질 개선을 목표로 했다]의 후원을 받은 일련의 연구에서 강하게 나타났다. 요약된 것은 에드가 M. 후버와 레이몬드 버논이 쓴 『Anatomy of a Metropolis』(케임브리지, 1959)에서 볼 수 있다.

Posted by 때때로


[사진 Revolution News]

급한 불은 끄게 된 것일까. 우크라이나에서 정부와 여야의 타협안 소식이 들려온다.

●[연합뉴스] 우크라 정부-야권 유혈사태 해법 담은 타협안 서명(종합2보)

요지는 조기 대선 실시와 대통령 권한을 대폭 축소하는 헌법 개정이다. 현재 운동의 초점이 야누코비치 대통령 퇴진에 맞춰졌던 걸 고려하면 지금의 유혈사태를 진정시킬 어떤 돌파구가 될 수도 있는 것처럼 보인다.

여기서 우리는 이 운동의 별명이 '유로마이단'이라는 걸 다시 떠올릴 필요가 있다. 생디칼리스트인 키예프의 한 노동조합 활동가에 의하면 시위 초기 거리에 나선 우크라이나 인민에게 유럽은 "부패 없는 사회, 높은 임금, 사회적 안전, 법에 의한 지배, 정직한 정치인들, 미소 짓는 얼굴, 깨끗한 거리 등"을 뜻했다. 여기에는 단지 대통령의 과도한 권력, 정치적 지배구조의 문제만 포함돼 있지 않다. '높은 임금'이 상징하듯 여기엔 우크라이나 경제에 대한 사회적 불만이 배경으로 깔려있다. 지난해 유럽연합과의 협력협정을 추진했던 것도, 그리고 시위를 촉발시킨 그 협정의 중단도 모두 경제적인 배경에 놓여 있다(거기에 유럽연합과 러시아의 제국주의적 갈등으로 연결됐다).

실제로 마이단에서 목숨을 걸 각오를 서슴지 않고 말하던 한 사람, 아마도 파시스트일 가능성이 큰 무장 사수대 한 명은 "저는 10년 전 떠나 상선의 선원이 됐습니다. 저는 그것을 견딜 수 없었습니다. 이제 저는 되돌아와 제 아이들과 함께 살고 싶습니다. 제가 여기서 투쟁하는 것은 그 때문"이라고 말했다. 그런데도 연합뉴스에 보도된 합의안에는 바로 이 문제, 우크라이나의 평범한 노동자와 농민, 청년들의 경제적 삶에 대한 언급이 빠져 있다(이는 상대적으로 시위가 격화되면서 거리에서의 물리적 충돌 자체가 쟁점이 된 때문이기도 하다).

따라서 이 타협안으로 거리의 사람들을 진정시키고 이전의 일상으로 돌아간다는 것은 어불성설에 가까울 것이다. 게다가 이 합의에는 스보보다(자유)도 포함돼 있다. 극우 파시스트인 이들은 합법정당이지만 불법적인 준군사 조직을 운영하고 있기도 하다. 18일 유혈 참극의 두 주범 중 하나다(다른 하나는 야누코비치 정부다). 거리에서 무장하고 일정 지역을 자신의 통제하에 두던 이들 파시스트를 새로 구성된 정부에서 완전히 무시하진 못할 것이다. 저들은 합법적으로 어떤 권력을 공유하게 되면 더 기고만장해져 거리를 활보할 것이다. 마치 1930년대 독일 나치처럼 말이다.

유럽연합과 러시아 정부로서는 우크라이나에서의 갈등이 자신들이 바랐던 것 이상으로 격화되는 데 놀랐던 듯싶다. 속보에 의하면 이번 타협에 이 둘 모두 참여했다고 한다. 그것은 중요한 석유와 가스 송유관이 지나고 흑해 북안의 중요 산업지대인 우크라이나가 내전으로 갈라지거나 파괴되는 것이 그들에게도 이익이 될 것처럼 보이지 않아서였기 때문일 것이다. 물론 유럽연합과 러시아 정부의 군사적 충돌 가능성이 아예 없지는 않다. 조지아에서처럼 러시아 정부는 러시아계 주민 보호를 이유로 군사적 개입을 감행할 가능성이 크다. 유럽연합도 과거 발칸 반도에서 그랬던 것처럼 마찬가지다. 그렇지만 바로 옆 소치에서 열리는 겨울올림픽을 핑계로 흑해에서 군사 시위를 벌이고 있는 러시아에 당장 맞서는 것은 유럽연합으로서는 부담스러운 일이었을 것이다. 러시아 정부로서도 현 야누코비치 대통령이 유럽연합과 러시아를 비교하는 것은 물론 중국과도 자신을 비교하며 상황을 재고 있는, 즉 우크라이나 내 친러시아 세력의 규모나 역할이 불분명한 상황에서 군사적 개입이 어렵다고 판단했을 수 있다.

더 큰 국내적ㆍ국외적 충돌을 준비할 여유 시간을 갖는 것, 아마도 이번 타협의 첫번째 가능성은 바로 이것일 것이다. 그보다 더 나은 상황으로 떠올릴 수 있는 것도 파시스트의 활보와 권력 강화라는 끔찍한 것 뿐이다.

그러나 아직 다른 가능성이 남아있다. 키예프 시내에서의 격렬한 물리적 충돌에도 불구하고 대규모 노동계급은 아직 본격적으로 행동에 나서고 있지 않다. 생디칼리스트 활동가의 지적처럼 키예프를 벗어난 "다른 지역에서 기업 활동이 아무런 방해 없이 평상시처럼 계속 진행"되고 있다. 우크라이나 노동조합연맹은 중립을 지키고 있다. 임금과 관련된 소수 작업장에서의 저항도 "정치적 저항과 연결되지 못하고 있다". 한편으로는 바로 이러한 사정이 거리에서의 충돌을 격화시키고 시위대에서 파시스트의 주도력을 강화시킨 원인이기도 했다. 결국 적은 가능성이지만 노동계급의 단결된, 그리고 유럽연합과 러시아 둘 모두로부터 독립적인, 파시스트와 정부로부터 자유로운 행동 만이 우크라이나를 구할 것이다. 이는 최근 혁명을 시작한 보스니아 인민이 온 몸으로 보여주고 있는 바다. 불과 20여년 전, 민족ㆍ종교 간 참혹한 내전을 치뤘던 보스니아 인민은 노동계급 투쟁을 통해 민족과 국가ㆍ종교의 경계를 뛰어넘어 단결하고 있다. 우크라이나 활동가들이 이로부터 보다 큰 영감을 얻어 과감한 행동에 나설 수 있길 바란다.

Posted by 때때로

혁명은 무엇보다 목소리를 잃은 사람들의 귀환을 뜻한다. 자신에 대해 말할 수 있는 기회를 되찾는 것. 그것은 새로운 사회를 건설할 노동계급의 가장 기본적인 소양이다.

보스니아 반란 ① 끝나지 않은 내전, 민영화
보스니아 반란 ② 플리넘, 인민권력이 싹트다
보스니아 반란 부록 - 인민의 목소리, 당신은 얼마나 배고픈가?


한 남성이 한달 30유로인 자신의 연금 명세서를 보여주고 있다.

보스니아-헤르체고비나 인민은 자신의 목소리를 키우기 시작했다. 그동안 자신을 무시해 왔던 지배자들과 세계를 향해서 말이다. 2월 7일 시위에 참여했던 니콜라 추파스는 반란에 나선 이유를 아래와 같이 설명한다.

"이번 일요일 쿠르셰바츠[세르비아에 있는 도시]는 잠잠했습니다. 주목할 만한 일은 일어나지 않았죠. 사람들은 아마 선거운동이 시작되길 기다릴 것입니다. 우리가 배운 것에 따르면 선거운동은 정치인들이 사람들에게 거짓말과 약속의 매우 큰 보따리를 팔러 다니는 것을 뜻합니다. 항상 이 약속들은 가능한한 사람들의 가장 폭넓은 이해관계에 맞춰져 있습니다. 그런데 이 모든 것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여전히 적자와 청구서, 가난, 실업에 시달리는 우리 모습을 발견하곤 합니다. 그렇다면 사람들은 자신을 위해 어떻게 싸워야 하나요?

2월 5일 수요일 350㎞ 떨어진 크루셰바츠에서 드리나강을 넘어 온 수 백명의 노동자와 투즐라 주민들은 투즐라 주청사 앞에 모여 시위를 벌였습니다. 이 시위는 아마 다른 시위들처럼 정부당국이 과거의 비슷한 계획에 따라 다루면서 끝을 맺을 것입니다. 빠르게 해결책을 찾겠다고 약속하면서 말이죠. 정부당국이 그 어떤 준비도 하지 못한 예상치 못한 일이 일어난 것을 제외한다면 그렇습니다.

시위대는 많은 지지를 얻고 있습니다. 마치 자연의 역습처럼, 다른 노동자ㆍ실업자ㆍ학생들은 자신을 약탈하고 부당하게 대해 왔던 체제에 맞서 투쟁에 연대하기 위해 거리를 가득 채우고 있습니다. 그들은 사회 정의를 위한 싸움을 선택했습니다. 뒤따라 보스니아-헤르체고비나의 모든 사람들이 깨어났고 반란은 나라 전체로 확산됐죠.

스르프스카 공화국 당국은 국경 밖에서 시위를 반-세르비아 캠페인으로 전환시켜 이른바 민족적 단결을 유지하려는 노력을 시작했습니다. 그러나 그들의 행동은 오직 이 지역에서 그들이 인민에 관해 얼마나 적은 관심만 쏟는지, 현재의 상황과 민족 부르주아지의 지배를 유지하는 것을 얼마나 중요하게 느끼는지 보여줄 뿐입니다. 이 투쟁은 어떤 민족ㆍ인종ㆍ종교 또는 국가적 관념도 초월해 있어요. 사람들은 배고픔 때문에 거리로 나섰죠. 배고픔 때문에 사람들은 정의를 위한 싸움에 나선 것입니다. 그러나 계급이 존재하는 동안에는 어떤 정의도 불가능합니다! 억압자와 피억압자, 착취자와 피착취자, 배고픔을 모르는 사람들과 굶주린 사람들이 있는 동안에 정의는 불가능하단 말입니다. 보스니아-헤르체고비나의 권력자들은 확실히 배부른 사람들이 가난한 사람들의 생각을 아주 조금만 알고 있음을 그 자신의 행동으로 보여줬습니다.

고통받는 사람들의 분노와 그들로부터의 위협을 느낀 권력자들은 시위대를 진압하기 위해 거리에 경찰을 풀었다. 최루가스와 고무탄이 사용됐고 구타가 이어졌지만 사람들은 강도질과 도둑질을 해온 지배계급과 대결하겠다는 굳은 다짐으로 함께 버텨냈죠. 최소한 지금까지는 말입니다. 그들은 투즐라 주청사를 점거했습니다. 비하치의 경찰은 훌륭하게도 시위대와 함께했습니다. 그들은 체제를 지탱하기 위해 자신을 조종하는 체제에 고분고분 따르는 것을 그만두고 노동계급과 함께하기로 선택한 것입니다.

지난 주 보스니아-헤르체고비나의 사건은 우리에게 교훈을 줍니다. 지배자들은 노동 대중이 단결의 주먹을 치켜들었을 때 실제로 얼마나 큰 힘을 지녔는지 알게 됐습니다. 그들은 또한 지배 정치기구가 노동계급의 단결을 얼마나 많이 두려워하는지 보여줬죠. 저는 어떤 것도 에둘러 말하진 않겠습니다. 저는 빈곤ㆍ실업ㆍ괴로움ㆍ착취ㆍ부패ㆍ도둑질 등에 대해 늘어놓으며 떠들고 있지 만은 않을 것입니다. 저는 오직 하나의 질문만 할 것입니다. 당신은 얼마나 배고픕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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혁명으로 나아가야만 하는 보스니아 반란은 필연적으로 새로운 권력이 필요하다. 성공했거나 성공에 가까웠던 모든 반란이 그랬듯이 말이다. 플리넘(Plenum)은 인민권력의 씨앗이 될 수 있을까.

보스니아 반란 ① 끝나지 않은 내전, 민영화
보스니아 반란 ② 플리넘, 인민권력이 싹트다
보스니아 반란 부록 - 인민의 목소리, 당신은 얼마나 배고픈가?


민영화 정책 재검토 등 일곱 개의 요구안을 들고 있는 시위대.

투즐라와 제니차 주지사는 7일 시위가 격화된 후 사임했다. 몇몇 자치주들로 이 사임의 물결이 확산됐다. 정부가 조기총선 카드를 빼들었지만 노동자와 반란에 나선 인민은 멈추지 않았다. 이들은 '플리넘(Plenum)'이라고 부르는 인민 의회를 건설했다. 시작은 역시 투즐라였다. 9일 투즐라에서 첫 플리넘이 열린 후 전국의 모든 반란 도시에서 플리넘이 개최되기 시작했다. 다미르 아르세니이에비치는 플리넘을 이렇게 설명한다.

"투즐라주 시민 플리넘은 우리 모두의 이익을 위해 우리 자신의 미래를 스스로 결정하도록 만들어졌습니다. 플리넘은 토론을 위한 공개적인 공간입니다. 플리넘은 어떤 지도자와 금기도 갖지 않습니다. 결정은 대중의 투표를 통해서 이루어집니다. 플리넘은 정당이나 NGO, 독단적인 협회가 아닙니다. 플리넘은 현실적이고 유일한 민주주의입니다. 플리넘은 국가의 모든 권력기구에 제출할 요구안을 자신의 선언으로 만들고 채택합니다. 선언은 우리 모두의 말이고 우리 모두의 요구이기에 모두가 선언에 함께합니다. 국가의 권력기구를 향한 모든 다른 행동들은 부패, 정당의 도둑질, 개인적 이익의 추구와 인민을 약탈해 부유하게 되는 것들을 향해 계속될 것입니다."

이는 2011년 미국 뉴욕 오큐파이 운동의 '제너럴 어셈블리'보다 한결 발전한 모습이다. 오큐파이 운동의 제너럴 어셈블리는 저항운동 내의 이러저러한 문제를 처리하는 기관ㆍ과정ㆍ절차에 불과했지 권력에 도전하는 기관은 아니었다. 그러나 이 플리넘은 혁명의 실제적 요구들, 즉 권력에 대한 것을 다루기 시작했다. 12일 사라예보 첫 플리넘에서 결정된 플리넘의 기본원칙을 살펴보면 더 확실해진다.

플리넘이란 무엇인가: 플리넘은 참석한 이들 모두의 의회입니다. 이는 토론을 위한 공간입니다. 결정은 공개적으로 이루어집니다.

왜 플리넘인가: 그것은 모두에게 공개돼 있기 때문입니다. 모두가 투표할 권리를 가지고 있고 모두가 참여할 권리를 가지고 있습니다. 각 개인은 한 표를 행사할 수 있고 이 공간은 비폭력적인 모두에게 열린 곳입니다.

플리넘의 원칙, 모두는 평등하고 동등한 권리를 갖습니다: 각 개인은 하나의 투표권을 갖습니다. 발언을 하고자 하는 사람들은 그 혹은 그녀의 이름 또는 성(family name)을 말할 필요가 있습니다.
모든 결정은 다수결의 원칙을 따라 과반수 이상의 찬성으로 이루어집니다.
존중하는 마음으로 당신 동료 시민의 발언을 들으며 당신의 발언 기회를 기다립니다.
플리넘은 규칙과 의제를 낭독하는 것으로 시작합니다.
그런 다음 제안과 추가발의가 진행됩니다.
이는 투표 없이 발언된 순서에 의해 의제에 덧붙여집니다.

플리넘의 진행: 플리넘은 지도자 없이 단지 토론을 용이하게 하거나 발언자들에게 주어진 시간을 관리하는 사회자만 둡니다. 사회자는 발언자가 주제에서 벗어날 때 원래 의제로 되돌아오도록 지적할 권리를 갖습니다. 한 명 또는 그 이상의 사람이 발언을 위해 손을 든 참가자를 확인하고 기록합니다.
한 사람은 플리넘 후 공개적으로 발표될 회의록을 기록합니다.

토론: 의제의 각 항목은 의제에 제기된 순서에 따라 토론합니다. 모든 논평은 그 항목에 연관된 것이어야 하며 질의는 바로 토론합니다.

투표: 논의되는 의제의 항목과 질의에 대한 토론을 시작한 후 최대 30분 내 투표를 시작합니다.

기본원칙이 플리넘을 다른 무엇보다 앞서 '토론을 위한 공간'으로 정의하고 있지만 운영 규칙을 담은 아래의 항목은 무엇보다 '결정'을 위한 과정을 정하고 있다. 만장일치의 합의제로 토론을 위한 토론으로 그 역량을 소모시켜온 오큐파이 운동의 제너럴 어셈블리와 가장 대비되는 부분이다. 그리고 여기서 채택된 첫 선언은 ①헌법에 기반한 시위에 참여한 사람들에 대한 안전보장 ②새로 선임될 지방정부 책임자에 대한 헌법적 권리 인정 ③3월 1일까지 새로운 전문가 정부의 선임을 요구하고 있다. 이 요구들은 아직 혼란스럽고 모순적이기까지 하지만 분명히 권력의 문제를 제기하고 있다. 총선을 운운하며 시간 끌기에 나서려 했던 정부의 계획을 일축하고 인민의 힘에 의해 새로운 국가를 만들려 하고 있다.

이뿐 아니다. 노동조합ㆍ방송 등 사회의 모든 것을 다시 만들려고 하고 있다. 에미나 바보비치는 기업과 정부에 협조해왔던 '황색 노동조합'을 대체할 새로운 노동조합을 만들자고 제안한다.

"오늘날 많은 사람들이 '어째서 노동조합의 역할에 관해선 말하지 않는가'라고 제게 묻습니다. 많은 노동자가 노동조합을 부끄러워하고 있고 저는 개인적으로 디타(Dita)에서 소위 '황색' 노동조합이라고 불리는 조합이 정부를 위해서 일한 것을 부끄럽게 생각합니다. 노동조합은 노동자의 목소리를 듣는 대신 기업의 이익을 지켜 왔습니다. 노동조합 지도자는 사람들을 '매수하고' 있습니다. 그들은 시위가 시작됐을 때 스스로를 대중과 격리시켰습니다. 지금 그들은 의회와 협상하는 단체로 부상하고 있습니다. 이스메트 바히라모비치[노동조합 지도자 중 한 명인 듯싶다. 정확히 찾아보진 못했다.-옮긴이]가 저를 대표할 수 없기에 몇 가지 제안을 하려고 합니다. 저를 팔아버린 카타 이베리히치가 저를 대표하도록 놓아둘 수는 없죠. 저는, 그리고 많은 수의 노동자들은 투즐라에서 독립적인 노동조합을 만들어야 한다고 제안합니다. '황색' 노동조합은 [플리넘에-옮긴이] 참여할 권리가 없습니다. 또한 저는 침묵할 수 없는 노동자들이 용기를 가지고 목소리를 높여 저들을 두려움에 떨게 만들었으면 좋겠습니다. 우리가 투지와 용기를 가졌고, 우리가 단결했음을 저들에게 보여줄 필요가 있습니다."

아미라 시지크는 기업이 자행하는 온갖 비리와 부패를 밝히기 위해 인민의 방송국을 만들자고 제안한다.

"저는 우리가 TV 방송을, 최소한 공공 라디오 방송국이라도 만들었으면 좋겠습니다. 우리는 이 방송을 위해 기부금을 모을 수 있을 것입니다. 그 방송에서는 정치인들이 메인 뉴스로 나오지 않겠죠. 그 방송은 인민이 말할 수 있는 장소가 될 것입니다. 불평등을 직접 경험한 목소리, 이를테면 어떤 교수가 자신의 의견 때문에 상관으로부터 공격받거나 직장을 잃을 걱정 없이 우리와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 그런 방송이 될 것입니다. 밝혀져야만 하는 많은 이야기들이 있습니다! 직원들에게 식대로 50달러를 주면서 250달러를 받았다고 서명하라는 회사도 있어요. 우리는 이러한 모든 회사들을 공개해야 합니다! 사람들은 자신의 언론을 가져야만 합니다."

발전 도상에 있는 플리넘, 약점은 극복될까

'헌법'을 여전히 자신들이 행동하는 근거로 삼으며 기존 의회를 대체하는 것이 아니라 그들과 협력하려 하는 것, '전문가 정부'를 대안으로 요구하는 것은 분명 모순적으로 보인다. 이미 투즐라와 제니차 등 몇몇 주에서는 주지사 등 정부의 책임자들이 사임했고 주의회는 플리넘의 결정에 따르겠다고 발표했다. 즉 최소한 몇몇 지역에서는 실질적 권력이 거의 플리넘에 있는 것이다. 그런데도 기존의 허울뿐인 헌법과 의회를 존중한다는 것은 의외의 모습이다. '전문가 정부'를 요구하는 것도 그렇다.

"금융 특혜와 사라예보 주 모든 기업의 민영화에 대한 개정 사항, 2월 7일 시위에서 정부청사에 불이 났을 때 무슨 일이 일어났었는지에 대한 독립적인 보고서를 몇 주마다 보고하는 전문가들의 정부를 시민들은 원합니다."

사라예보 플리넘에서 아심 무이키치의 발언이다. 시민들에게 보고함으로써, 시민들의 통제를 받는 정부는 분명 발전된 전망이다. 그러나 이 전망이 노동계급 스스로의 정부와 같은 것은 아니다. 소위 전문가들이 겨우 '몇 주마다의 보고'만으로 시민의 통제에 온전히 순종할 것이라고 보기는 어렵다. 그러나 이 운동이 이제막 시작된, 7일의 불꽃으로부터 겨우 열흘 지난 상황에서 제기된 것들이란 걸 고려하면 '아직은' 결정적 약점이라고 보긴 어렵다. 보스니아-헤르체고비나에 통신원을 파견해 반란의 소식을 전하고 있는 레볼루션 뉴스는 "그리스와 이탈리아에서 선출되지 않은 신자유주의적 '기술관료'의 정부를 경험해 본 이들에겐 순진한 소리로 들릴 것"이라고 이를 지적한다. 그러나 플리넘이 요구한 '전문가 정부'는 "선거를 치를 때까지의 임시정부"일 뿐이라고 설명한다.

"[보스니아-헤르체고비나 인민은] 수십 년 간 대중과 먼 세 '민족' 정파의 오만한 과두지배를 경험해 왔기에 '인민권력'의 형태로 제안한 공적 감독 요구가 분명 소위 '기술적' 정부 요구에 앞서 제기된 것입니다."

프랑스 혁명, 러시아 혁명, 1968년의 세계적 반란 등 역사적 경험은 이것 말고도 다른 플리넘의 약점들을 눈에 띄게 한다. 그들 스스로 인지하고 있듯이 너무나 분명한 투쟁의 계급적 성격에도 불구하고 플리넘이 '시민'의 의회로 '모두'에게 열린 공간으로 간주되는 것이 첫째 약점이다. 지금까지는 오직 '개인'으로서만 플리넘에 참여하는 것으로 이 약점을 극복하고 있지만 민족주의적 우파와 지배자들이 조직적으로 대응할 때 플리넘의 이 약점은 치명적이 될 수 있다. 둘째 약점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아직까지 이 플리넘은 '무장'의 문제를 제가히자 않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반란이 확산되면서 베니치의 경찰이 시위대와 참여했지만 무장한 정부의 힘은 만만한 게 아니다. 게다가 유럽연합과 국제사회는 이 반란이 '악화'되면 군사적으로 개입하겠다고 천명한 상태다. '보스니아 평화협정 이행 국제사회고위대표부(OHR)'의 발렌틴 인즈코 대표는 이렇게 말했다.

"오스트리아는 보스니아-헤르체고비나 주둔군 병력을 늘릴 것입니다. 만약 상황이 확대되면 아마 나는 유럽연합 군대를 파병하는 것을 고려하겠죠. 그렇지만 지금은 아닙니다."

이는 과거 1차 세계대전이 바로 보스니아-헤르체고비나의 수도니 사라예보의 사건에서 촉발됐듯이 이번 반란이 주변국에 미칠 영향이 적지 않기 때문이다. 당장 옛 유고 연방이 영향을 받고 있다. 내전의 한 축이었던 이웃 나라 세르비아 베오그라드에서 연대 시위가 이어지고 있다. 베오그라드 경찰 노동조합은 반란이 국경을 넘어 확산돼도 진압에 나서지 않을 것이라고 선언했다. 조란 밀라노비치 크로아티아 총리가 반란 직후 보스니아-헤르체고비나로 날아와 크로아티아계 주민들에게 시위에 참여하지 말 것을 호소한 것도 보스니아-헤르체고비나 반란의 영향력을 반증하는 것이다. 내전을 치뤘던 옛 유고 연방의 독립국들은 혁명의 확산을 막기 위해 [내전을 재개하는 방식으로] 손을 잡거나 보스니아-헤르체고비나가 아직 완전한 주권을 갖지 못한 상황을 이용해 NATO의 개입을 요구할 가능성이 높다.

2011년 이후 PIGs라고 불리는 포르투갈ㆍ이탈리아ㆍ그리스 등 남부 유럽에서 반란의 불길이 터져나와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다. 2013년 이 불길은 터키ㆍ우크라이나로 이어졌다. 보스니아-헤르체고비나의 격변은 바로 아래 그리스 또는 옛 사회주의권 국가의 동료인 우크라이나의 반란과 영향을 주고받으며 세계를 흔들 격변의 시작점이 될 가능성이 높다. 지중해-흑해를 잇는 반란 벨트가 형성될 수 있는 것이다. 보스니아에서의 저항은 2011년 이래 세계에서 일어난 반란 중 가장 발전된 형태의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그것이 대안적 형태의 권력을 '형성'한 단계에까지 이르진 않았지만 여러모로 그 가능성을 매우 충분히 보여주고 있다. 세계는 정말 다른 시대로 진입하고 있다.(끝)

보스니아 반란, 더 볼 만한 글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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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osnia Protest Fil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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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도노동자 투쟁에서 용기를 얻은 청년들이 교학사 역사왜곡 교과서 채택에 반대해 행동에 나서고 있다. 박근혜정부와 단호하게 싸우는 법을 철도노동자로부터 배운 학생들은 '안녕들하십니까' 대자보에 이어 자신이 있는 곳에서 부당함에 맞서 투쟁을 조직하고 작은 승리를 쟁취하고 있다. 2013년 12월 19일 서울광장에서 열린 철도파업 지지 촛불시위에 참여한 젊은 여성. [사진 自由魂]

지난해 12월 9일 시작한 철도노동조합의 파업이 30일 막을 내렸다. 22일 간의 대담하고 단호한 투쟁은 박근혜정부에 실망해온 대중에게 큰 자신감을 전해줬다. 꺼져가던 부정선거 규탄 촛불시위가 다시 불타올랐다. '안녕들하십니까'라고 묻는 대학생들의 자보는 안녕한 삶을 위한 연대를 건설하는 것으로 이어지고 있다. 이 물음은 중ㆍ고등학생들에게까지 확산됐다. 특히 교학사의 역사왜곡 교과서 채택을 둘러싼 투쟁을 다시 불붙였다. 동우여고와 청문여고 학생들에서 시작된 저항은 하루만에 학교 측의 후퇴로 끝났다. 노동자 투쟁이 일으킨 파문이 일반 민주주의적 쟁점에 활기를 불어넣었다. 철도노동자들이 박근혜정부에 맞서 싸우는 법을 대중에게 보여줬고, 대중은 자신의 위치에서 수 많은 작은 박근혜에 맞서 싸우기 시작했다.

미국에선 우리와 정반대로 사회운동이 노동운동을 자극해 성장시키고 있다. 2011년 9월 뉴욕에서 '점령하라' 운동은 학생, 예술가, 전문직 종사자, 실업자들이 중심이 돼 시작됐다. 참여한 인원이 절대적으로 다수는 아니었다. 그러나 이는 곧 노동자 투쟁에 대한 연대로 발전했고, 노동자들이 스스로 투쟁에 나서는 것으로까지 이어졌다. 2011년 11월 2일 오클랜드 시민들은 총파업을 벌여 항구를 봉쇄했다. 그 다음달 12일에는 롱뷰 부두노동자들에 연대한 항만 봉쇄가 시도되기도 했다. 2012년 9월 10일 시카고에서는 교사들이 25년 만에 파업에 들어갔다. 교육 민영화에 반대하는 파업이었다(이 파업은 결국 패배했다). 2012년부터는 월마트와 맥도날드 등에서 일하는 저임금 노동자 투쟁도 확산되고 있다. 2012년 10월 미국 전체 12개 주 28개 월마트 매장에서 파업이 벌어졌다. 이는 월마트 50년 역사상 첫 파업이다. 맥도날드 등 패스트푸드점에서 저임금으로 고통받고 있는 노동자들도 최저임금 인상을 위한 투쟁을 벌이고 있다. 2012년 11월, 2013년 8월, 12월…. 패스트푸드노동자의 파업도 계속되고 있다. 지난해 12월에는 100개 도시에서 동시에 파업이 벌어졌다.

한국에서는 노동운동이 사회운동에, 미국에서는 사회운동이 노동운동에 힘을 불어넣어주며 함께 성장하고 있는 것이다. 한국에서 전통적인 조직 노동자 운동은 민주주의의 위축에도 사회의 다른 부문보다 단호하게 투쟁을 조직하며 자신감을 전해준다. 이들의 투쟁은 한국 사회에서 여전히 가장 중요한 역할을 맡고 있다. 이와 함께 청년들이 운동에 새로운 활력을 불어넣고 있다. 특히 정규직 일자리가 줄어들고 취업연령이 높아지면서 편의점, 카페, 패스트푸드점, 프랜차이즈 레스토랑 등에서 일하는 저임금 '아르바이트'가 청년의 '노동'문제로 부각되고 있다. 저임금 노동에 종사하는 사람들의 연령이 높아지면서 이는 더 이상 청년 문제 만은 아니게 됐다. 지난해 마지막 날 박근혜 퇴진과 특검 실시를 요구하며 분신한 이남종(40)씨도 저임금 노동에 종사했었다고 한다(이를 두고 '생계 비관' 운운하며 고인의 뜻을 모욕한 보수 언론의 기사들은 역겹기 그지 없다).

그러나 이와 같은 저임금 노동 분야에서 투쟁을 조직하기는 쉽지 않다고 알려져 있다. 소수의 사람들로 여러 곳에 흩어져 근무하고 있고, 저임금이라는 조건 자체가 단호하고 단결된 투쟁을 어렵게 만든다. 월마트 노동자들의 50년 만의 파업과 지난해 10월 한국에서 최초로 알바노조가 단체협약을 체결했던 것이 관심을 받은 이유다. 그러나 이러한 조건에 있는 노동자 투쟁이 역사상 없었던 것은 아니다. 1937년 대공황의 한가운데서 벌어진 디트로이트 울워스 노동자 투쟁이 대표적이다. 모두가 여성인 이 소매점 노동자들은 법원의 해산 명령에도 불구하고 일주일 동안 매장에서 강력한 점거파업을 이어갔다. 연대와 점거파업의 확산으로 당대의 월마트라 할 울워스는 결국 항복해야만 했다.

한국에선 1987년 노동자 대투쟁 이후 점거파업이 파업의 일반적 형태였지만 역사적으로 보면 그렇지 않다. 정부의 강력한 탄압에 대한 우려로 철도노조는 지난해 12월 파업에서 점거를 시도하지 않았다. 철도뿐 아니라 다른 사업장에서도 정부의 탄압 때문에 점거파업은 쉽지 않다. 1930년대 이전까지 파업은 보통 작업장에서 물러나 공장과 사무실 앞에서 파업 파괴자(대체인력) 투입을 막기 위한 피케팅을 하는 것이 일반적이었다. 1936년 12월에서 1937년 2월까지 진행된 GM 노동자들의 플린트 공장점거파업의 승리가 점거파업을 노동자 투쟁의 가장 강력한 무기 중 하나로 부각시켰다. 모든 조건에서 점거파업이 가능한 것은 아니다. 상황에 따라 파업전술은 유연할 수도 있다. 그렇지만 80여년 전 젊은 여성 노동자들의 단호한 투쟁은 우리에게 어떤 가능성과 영감을 전해줄 것이다. 마크 노튼이 2012년 나온 '파업 여성들, 매장을 점거하고 결국 승리하다(Women Strikers Occupy Chain Stores, Win Big: The 1937 Woolworth's Sit-Down)'를 소개한 글을 아래 옮긴다. 이 소책자는 역사학자 다나 프랭크가 썼다. 마크 노튼은 '유나이트히어!'와 '세계산업노동자연맹'의 조합원이다.

※ 의역이 많습니다. 오역이 있을 수 있습니다. 글 아래의 각주는 이해를 위해 옮긴이가 단 것입니다.


1937년 디트로이트 슈퍼마켓 연좌농성:
오늘날 저임금 파업 노동자를 위한 교훈, 마크 노튼*, 2013년 12월 11일

1937년 울워스는 오늘날의 월마트와 같은 것이었다._1 이회사는 주로 젊은 여성인 저임금 노동자에 의해 운영되는 전국적 점포망을 만들어 소매 시장을 변화시켰다. 값싼 음식을 판매하던 이 매장의 간이조리매장은 어떤 면에서 오늘날 거대 패스트푸드 기업의 선구자였다.

그렇기에 우리는 디트로이트 울워스 점거파업의 성공으로부터 오늘날 비슷한 상황의 저임금 노동자들에게 도움이 될 어떤 이야기를 들을 수 있다. 블랙프라이데이와 12월 5일의 월마트와 패스트푸드 노동자 파업 여파로 이 운동이 어디로 가야 하는가를 물어야할 때가 됐다. 목표는 무엇인가? 장기간의 투쟁에 노동자들이 계속 조직될 수 있을까? 우리는 승리를 향해 가고 있는 것일까?

디트로이트 연좌농성은 당시 전국적인 흥분을 불러일으켰다. 역사학 교수 다나 프랭크는 최근 발행한 소책자에서 이 역사와 그것의 교훈을 부활시키고자 한다.

범상찮은 토요일

"1937년 2월 27일 언뜻 보기에 가장 평범했던 토요일, 미국에서 가장 평범해 보이는 디트로이트 시내에 있는 붉은 벽돌로 만들어진 4층 건물에 있는 울워스의 5~10센트 상점
_2에서…"라는 말로 프랭크는 이야기를 시작한다.

"다른 울워스 매장이 그렇듯 이 매장도 붉은색과 초록색의 장식으로 꾸며져 있었고 굵고 큰 글씨의 체인점
[울워스] 간판이 앞에 걸려 있었다." 기업의 브랜드를 그와 같은 방식으로 표시하는 것은 당시에는 새로운 일이었다. 오늘날은 매우 흔한 일이지만 말이다.

그러나 '가장 평범한 토요일'은 아니었다. 바로 며칠 전 디트로이트 북부 플린트에서 GM 자동차 노동자들이 법원의
[공장을] 떠나라는 명령을 무시한 채 경찰의 공격에 맞서 싸우며 몇 주간 공장을 점거한 후 역사적 승리를 쟁취했다.

실제로 정부가 파업 노동자들을 보호하기 위해 주방위군을 보낼 정도로 노동자들은 많은 공감과 지지를 얻었다. 결국 GM은 굴복하고 이제 막 태어난 전미자동차노동조합(UAW)을 인정해야만 했다. 자동차 노동자들은 UAW로 몰려들어 그들
[아마 UAW]과 새로운 산업별노동조합회의(CIO)가 더 큰 승리로 나가는 데 도움을 줬다._3

울워스에는 "저가의 작은 상품들이 어마어마하게 많았다. 이를테면 머리빗, 뜨개질 바늘, 전등갓, 옷핀, 파이 접시, 얼굴 크림, 빳빳한 새 신발끈 같은 것들 말이다. … 가게 이름처럼 단지 5센트 혹은 10센트일 뿐이라고 … 단정하게
[가격이] 인쇄된 표시가 고객을 안심시키기 위해 가게 전체의 모든 상품에 달려 있었다. … 백인 고객들은 간이조리매장에서 얼마든지 바나나 스플릿을 즐길 수 있었다."

매장에서 일하는 여성들은 당연히 그들이 근무하는 곳이 어떻게 돌아가는 지를 잘 알았다. 회사 설립자인 프랭크 울워스는 퉁명스럽게 말했다. "우리에게 저렴한 종사자가 없었다면 값싸게 상품을 팔 수 없었을 것이다." 빙 크로스비의 히트곡 중 하나는 이에 대한 멋진 반박이 될 것이다. "나는 5~10센트 상점에서 100만달러짜리 물건을 발견했지~"

파업, 소녀, 파업!

토요일 아침 빈약한 급료를 받던 디트로이트 울워스의 젊은 여성들은 의심할 여지없이 마음속에 플린트의 승리
[GM 노동자의 공장 점거파업 승리]를 떠올렸다. 그 때 "디트로이트 식당 종업원ㆍ여급 노동조합 조직자인 플로이드 뢰브는 매장 1층의 한가운데로 성큼성큼 걸어가 … 호루라기를 가능한 크게 빽하고 불었다. 그리고 외쳤다. '파업! 파업!'(또 다른 보도에 따르면 '파업, 소녀, 파업!')"

"매장의 여러 곳에서 목소리가 울려퍼지고 함성이 터져나왔다. 간이조리매장의 하얀 유니폼을 입은 여성들이 처음으로 작업을 멈췄다. 그들은 매장의 통로를 통해 빠르게 이동했다. 곧 매장 3개 층의 모든 여성노동자들이 각자의 계산대에서 물러나거나 부엌에서 뛰쳐 나왔다. 그들은
[계산대와 조리대에서] 손을 떼고 작업을 멈췄다."

디트로이트뉴스에 따르면 "금전등록기의 쨍그렁거리는 소리가 그쳤다. 손님들은 5센트 또는 10센트 동전을 손에 쥐고 있어봤자 소용 없음을 깨닫고 당황했다. … (그러나) 어떤 소녀도 손님을 기다리려주지 않았다."

몇 분이 지나자 매장 관리자가 나타났다. 창고관리 소년까지 포함해 모든 여성들은 회의실로 안내받았다.

파업 참가가자들은 관리자에게 요구사항을 제시했다. 노동조합 인정, 현 25센트인 시급을 10센트 더 올려줄 것, 일일 8시간 노동, 일주일 48시간 근무 외에는 1.5배 지급, 간이조리매장 노동자에게 점심식사 식대 50센트, 자유로운 유니폼과 세탁, 선임권
_4, 노동조합을 통한 신규 고용, [파업에 대한] 보복의 금지.

관리자는
[노동자들에] 에워싸여 우물댔다. 하지만 아무것도 약속하지 않았다. 그래서 파업 참가자들은 그들의 요구가 들어질 때까지 매장 점거를 계속하기로 했다.

프랭크는 "108명의 평범한 젊은 여성이 위대하고 놀라운 일을 해냈다. 그들은 정확히 대공황의 한가운데서 파업을 한 것 뿐 아니라 미국에서 가장 큰 초국적 기업 중 하나의 사유재산을 점거했고 떠나라는
[법원의] 명령을 승리할 때까지 거부했다"고 쓰고 있다.

"이것은 고전적인 점거파업이다. 그러나 파업 참가자 모두가 공장의 남성이 아니라 다양한 매장에서 일하는 여성이었던 것은 처음이다. 시간이 흐르면서 이 여성들과 파업에 전국적 관심이 집중됐다. 그들은 세기적인 소비의 상징이고, 다섯 개 나라에 2000개의 매장을 지닌 가장 큰 기업 중 하나와 대결한 것이다. 이는 월마트, GAP, 맥도날드 모두에서 동시에 파업에 들어간 것과 같다."

계속된 조직

프랭크는 당시 여성들이 매장의 주방을 이용해 음식을 준비하고, 매트리스를 가져오고, 청소용품을 이용해 매장을 깔끔하게 유지하고, 가끔은 그들 스스로를 위해 사탕과 진통제를 사용하는 등 꽤 열심히 모두가 참여해 그들 스스로를 조직한 방법에 대해 말해준다. 매장의 전화 세 대는 친구와 지지자, 언론과 통화를 위해 사용됐다. 그들은 심지어 '응원위원회'를 만들기도 했다.
[이 위원회는] '처음엔 [점거파업에 대한] 비난을 감시하기 위한 것이었고, 곧 모든 비난이 사라졌다'.

파업이 시작되고 이틀이 지난 월요일, 호텔ㆍ식당 노동조합 705 지역 조직자인 미라 코마로프는 몇몇 노동자들과 함께 두 번째로 디트로이트 시내에서 위축된 울워스
[사측]를 만났다.

오래지 않아 두 번째 매장 점거됐다.

그날 밤, 705 지역의 사무국장이자 회계 담당자인 루이스 쾨니그는 울워스를 위협했다. 그는 만약 파업이 다음 토요일까지 해결되지 않는다면 전국의 모든 울워스 매장에서 진행될 "연좌농성 선언을 우리 조합 집행위원회에 요청할 것"이라고 말했다.

쾨니그가 이렇게 말한 것은 꽤나 놀라운 일이었다. 그는 시내의 약간 큰 호텔과 상류층 클럽에서 일하는 600명의 노동자가 가입한 노동조합을 이끄는 '전형적인 보수적 비즈니스 노동조합주의자'
_58로 알려졌었다. 그러나 시대는 과격한 연설을 끌어냈고 그는 기꺼이 그렇게 했다.

곳곳에서 답지한 연대

파업이 확산되면서 연대 활동도 맹렬히 속도를 올렸다. 아주 많은 수의 지역 호텔 노동자들이 참여하는 정기적인 피케팅이 매장
[앞]에서 조직됐다. 전국의 노동자 지도자들 사이에 지지의 표현이 확산됐다.

파업 여성 노동자들에 환호하는 전보가 전국에서 쇄도했다. 음식과 물품, 여성용품을 마련하는 데 쓸 모금도 이어졌다. 신문은 이 소식을 주요 뉴스로 전했고 극장에서는 뉴스영화가 상영됐다. 사람들은 파업에 대한 이야기를 나눴다.

화요일 뉴욕의 국제소매점원보호조합
_6은 기금 지원을 약속하며 노동조합은 "파업이 끝날 때까지 뉴욕의 울워스 매장에 대한 불매운동"을 쾨니그가 [협상의 마지노선으로] 선언했던 토요일 시위에서 시작할 것이라는 전보를 보내왔다.

디트로이트에서 다른 서비스 노동자들도 행동에 들어갔다. 스토우퍼스
_7의 여성종업원과 주방 노동자 60명은 화요일 점심식사가 한창인 때 그들이 일하던 식당을 점거했다. 하일러_8 식당 노동자들은 피셔 빌딩에서 연좌농성에 들어갔고 출입구에는 바리케이트를 설치했다. 아쉽게도 프랭크는 이 행동들의 결과에 대해서는 말해주지 않는다.

그러는 동안 지역 상점주들은 더 많은 연좌농성을 막기 위해 스스로 임금을 올려주던 것을 중단했다.

수요일 울워스는 마침내 협상에 동의했다.
[파업] 노동자들은 쾨니그와 요리사노조의 루이스 월터, 소매점원조합의 루이스 솔터를 대표로 내세웠다. 이들은 모두 남성이었다. 파업 노동자 중 누구도 뽑히지 않았다. 울워스는 뉴욕의 어떤 거물을 보내왔다.

금요일 오후 5시30분, 파업을 확대하고 뉴욕에서 불매운동을 벌이겠다고 경고한 시한인 토요일을 간신히 넘기지 않은 파업 6일째 울워스와 노동조합은 합의를 발표했다.

승리

"파업은 의심할 여지없이 완전하고 명백하게 승리했다"고 프랭크는 쓰고 있다. "그들은
[유니폼의] 세탁을 포함한 요구사항의 긴 목록 전체를 쟁취했다. 우선 회사는 모든 여성 노동자의 시간당 급료를 5센트 인상하는 것에 동의했다. … 모두는 주당 48시간 외 근무에 대한 1.5배 지급을 얻어냈다. 신규고용은 앞으로 노동조합을 통해서만 하기로 했다. 유니폼은 회사가 공짜로 제공하고 세탁까지 해주기로 했다. …"

"그 중 가장 놀라운 것은 그들이 매장을 점거한 동안 평상시 시급의 50%를 지급받기로 한 것이다(아마 하루 24시간에 대한 지급은 아니겠지만). … 게다가 합의안은 단지 점거파업이 이뤄진 두 개 점포만이 아니라 도시의 40개 매장 모두에 적용됐다."

울워스는 조합원이 비조합원을 괴롭히지 않겠다는 약속만 얻어냈을 뿐이다.

합의안에 대한 뉴스가 전해지면서 두 매장의 파업 노동자들이 주요 매장 안에 모여들었다. 그들은 기뻐하고 환호했다. 그들이 밖으로 나왔을 때 1000명 이상의 사람들이 인도를 가득 채우고 있었다. 그들은 쾨니그가 합의안을 낭독하는 지역 호텔로 행진했다. 그는
[합의안에 대한] 투표 요청에 개의치 않았다. 다른 누구도 [투표에] 관심을 갖지 않았다.

프랭크는 이어서 "울워스는 토요일에 특별 세일을 발표했다"고 적고 있다.

울워스의 파업은 이를 따라한 행동들로 이어졌다. 디트로이트, 세인트루이스, 뉴욕, 샌프란시스코, 오하이오주 애크론, 위스콘신주 슈피리어, 미네소타주 세인트폴과 덜루스, 워싱턴주 터코마와 센트레일리아의 소매점에서 점거파업이 일어났다. 프랭크는 "오늘날 전국에 있는 모든 노동조합의 존재는 부분적으로 울워스의 파업 덕"이라고 말한다.

그녀는 이렇게 요약한다. "어느날 디트로이트에서 점거파업에 들어가기로 결정한 이 108명의 매우 젊은 여성들은 모두 평범한 젊은 여성이었다. 그 투쟁이 빛났던 것은 신화적 영웅이 아니라 주요 프랜차이즈 매장을 7일 간 하루 24시간 점거해보기는 커녕 파업의 경험도 없는 젊은 여성들이 이끌었기 때문이다."

"그들은 당대 가장 큰 기업 권력 중 하나와 맞서 이겼고, 다른 수십 만 명의 점원들-과 이 파업을 알게 된 다른 사람들-이 그들의 권리를 지키고 최저임금을 요구하기 위해 일어서는 데 (또는 연좌농성에 들어가는 데) 영감을 불어넣었다. 그리고 그들은 오만한 울워스 사측에 큰 교훈을 줬다.

교훈?

프랭크는 다른 무엇보다도 "그들이 대담해졌고 스스로를 신뢰"했기 때문에 울워스 노동자들이 승리했다고 생각한다. 나는 여기에 대담함과 밀접하게 관계있는 용기를 추가할 것이다.

그녀는 또 "그들은 거대한 집합적 힘을 배후로 뒀기 때문에 승리했다"며 "예를 들면 (플린트의) GM 노동자들, 여론의 힘, 시장과 정부로부터의 중립, 지지자 수천 명의 극적인 연대"를 꼽았다.

몇몇은 이와 같은 조건이 오늘날 노동운동에도 존재한다고 주장한다. 많은 이들은 저임금에 시달리는 월마트와 패스트푸드점 노동자들이 플린트
[의 GM] 노동자들과 같은 사례를 만들 수 있기를 바란다. 물론 아직은 아니다.

그들에게 유리했던 조건에서조차 울워스의 승리는 순식간에 지나갔다.

프랭크는 에필로그에서 디트로이트 울워스 노동자들은 1937년 10월 재계약을 하면서 노조협약을 잃었다고 적고 있다. 그들이 승리한 지 불과 몇 개월 안됐을 때였다.

프랭크는 "매장에 남은 몇몇 여성에 따르면 경영진은 계획적으로 그들을 노동조합을 지키기 위해 싸우지 않을 반노조적 노동자와 교체했다." 여기에는 노동조합을 통한 채용 요구가 포함된 합의안을 강제하는 데 노동조합이 왜 실패했는지를 포함해 명백한 이유가 있다. 노동조합이 어쩔 수 없이 마지못해 몰두해야만 했던 울워스 사장의 반노조 활동, 일시적 성격의 저임금 노동이 그들에게 어떻게 타격을 입혔는지 떠올리는 것은 어렵지 않다.

그후로 모두가 행복하게 살았습니다는 식의 동화와 같은 이야기는 잠시 뿐이었다. 오늘날 디트로이트에서 승리가 결코 끝이 아니라는 것을 이해한다는 것은 노동계급 사람들에게 악몽으로 보일 뿐이다. 적어도 자본주의가 지배하는 동안은 말이다.

얄궂게도 울워스 간이조리매장은 1960년대 흑인 주민과 그들의 동조자들이 그곳에서
[흑인이 백인과의 차별 없이] 식사할 권리를 위해 벌인 연좌농성 등 또다른 성공한 투쟁 현장이 됐다. 투쟁은 승리했고 이렇게 [1937년 연좌농성에서] 전달받은 지혜는 이어졌다. 그러나 오늘날 디트로이트를 다시 살펴보면 흑인의 80%는 민권운동의 승리에도 불구하고, 심지어 흑인이 대통령으로 백악관에 입성했음에도 불구하고 그러한 평가보다 많이 모자란 [처지에 놓인] 것처럼 보인다.

노동자와 착취받는 인민이 곳곳에서 저항하고 있다. 노동조합ㆍ활동가ㆍ정치조직이 있든 없든 저항은 일어난다. 반란은 피할 수 없는 현실이다. 그러나 반란을 승리로 만들고, 승리를 유지하기 위해서는 전망과 용기를 지닌 조직을 만들어야 한다. 그것은 페이스북에 글쓰는 것, 트위터에서
[소식을] 전하는 것, 언론 보도와 여러 매체에서의 선전 이상의 것을 뜻한다.

울워스 파업 참가자들은 어렵지만 잘 싸웠다. 그들은 승리했었다. 그들의 대담함과 용기는 우리 모두에게, 특히 저임금 노동자에게 영감을 줄 수 있다. 그러나 승리를 지키기는 데 실패한 교훈으로부터 배울 필요도 있다.

* 마크 노튼은 유나이트히어!_9 2 지역, 1972년 출범한 샌프란시스코 호텔ㆍ식당 노동조합의 평조합원이다. 그는 세계산업노동자연맹(IWW)에 가입해있기도 하다. 그의 홈페이지는 www.MarcNorton.us다.

1_ 1879년 뉴욕주 유티카와 펜실베니아주 랭커스터에 세워진 염가 판매점. 1911년 경쟁업체 네 곳과 통합해 전국적인 점포망을 갖췄다. 1912년에 미국 전역에 596개의 매장이 울워스 이름으로 영업했다. 1998년 베나토르그룹으로 이름을 바꿨다.

2_ 한국의 1000원숍과 비슷한 저가 매장.

3_ 미국노동자협회(AFL)는 백인 숙련노동자 중심의 노동조합이었다. 1929년 대공황과 35년 만들어진 와그너법(단결권과 단체교섭권을 인정하고 최저임금제를 도입한)으로 AFL 내 일부에서 미숙련ㆍ반숙련 노동자까지 포함한 산업별 노조가 건설되기 시작한다. AFL이 이들 혁신파를 모두 제명하면서 1938년 탄광ㆍ의류ㆍ섬유ㆍ금속가공 등 8개 산업별 조직을 기반으로 산업별노동조합회의(CIO)가 결성된다. CIO는 한동안 진보적 노동운동을 대표했으나 메카시즘 열풍에서 예외는 아니었다. 1950년대 사회주의 계열 조직과 좌파 지도부가 축출됐고 결국 1955년 AFL과 다시 통합해 AFL-CIO를 만들어 오늘에 이른다. UAW는 1935년 설립됐다. 1968년 AFL-CIO를 탈퇴했다. 지금은 자동차뿐 아니라 헬스케어ㆍ카지노ㆍ항공우주산업 등에 종사하는 노동자들까지 포함하고 있다. 정식 명칭은 미국자동차항공우주농업기계노동조합(United Automobile, Aerospace and Agricultural Workers of America).

4_ 고용주가 해고할 때 근속년수가 오래된 사람의 권리를 존중해주는 고용관행. 해고는 근속년수가 짧은 노동자부터 순서대로 이뤄지고 복직할 때도 근속년수가 많은 사람부터 고용하는 것. 1930년대 발전했다.

5_ 비즈니스 노동조합주의는 노사협조와 특정 정치에 경도되지 않는 초당파주의, 사실은 사회주의 정치와의 거리를 핵심으로 한 미국의 보수적 노동조합 운동을 말한다.

6_ 1890년 AFL에 노동조합으로 인정받았다. 처음에는 전국소매점원보호조합(The Retail clerks' National Protective AssociationㆍRCNPA)으로 출발, 1899년 영국ㆍ콜럼비아ㆍ캐나다 지부가 승인되면서 국제소매점원보호조합(The Retail Clerks' International Protective AssociationㆍRCIPA)로 발전했다. 보통 국제소매점원노동조합(The Retail Clerks' International UnionㆍRCIU)으로 불린다. 1974년 의료 서비스 부문의 발달로 전문직종 본부가 생겼으며 1977년에는 부츠ㆍ신발노동조합이 병합돼 신발제조본부(The Footwear Division)가 설립됐다.

7_ 1914년 창립한 미국의 냉동식품 회사. 1973년 네슬레에 합병됐다.

8_ 미국의 사탕ㆍ식당 프랜차이즈 기업. 1883년 뉴욕 맨하탄의 사탕 공장으로 출발했다.

9_ UNITE HERE!. 미국과 캐나다에 26만5000명의 조합원을 둔 노동조합. 호텔ㆍ음식점ㆍ창고ㆍ카지노에서 일하는 노동자를 대상으로 한다. 2004년 유나이트(formerly the Union of Needletrades, Industrial, and Textile EmployeesㆍUNITEㆍ섬유ㆍ의류산업노동조합)와 히어(Hotel Employees and Restaurant Employees International UnionㆍHEREㆍ호텔ㆍ식당국제노동조합)가 합쳐 만들어졌다. 2005년 AFL-CIO를 탈퇴하고 승리를위한변화동맹(The Change to Win FederationㆍCtWㆍ2005년 AFL-CIO의 대안으로 건설됐다)에 참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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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호를 외치고 있는 시위대. 들고 있는 팻말에 적혀있는 구호는 파업을 지원하는 '교사 분대'라는 뜻. [사진=Felipe Dana/AP]

브라질 교사 파업이 계속되면서 경찰과의 폭력 충돌이 격화되고 있다. 언론은 폭력 시위의 중심에 '블랙 블록'이 있다고 주장한다. 경향신문 29일자 11면에 실린 '두 얼굴의 '블랙 블록''기사도 마찬가지다. 제목에서는 '두 얼굴'이라 칭했지만 기사는 "평화로운 행진이 (블랙 블록에게) 납치됐다"며 교원노조 조합원들이 반발하고 있다고 주장한다. 이들 블랙 블록은 "무엇에 대해 항의하는지 정확하게 모르"며 상점과 현금인출기를 공격하는 등 폭력적 행위에만 천착해 "시위의 본질을 퇴색"시킨다는 것이다.

[경향신문] 두 얼굴의 '블랙 블록'

그러나 시위를 폭력적으로 만드는 게 블랙 블록의 청년들 때문일까.

가디언과 브라질 지역 언론에 실린 증언에 의하면 블랙 블록은 경찰의 폭력으로부터 시위대를 지키기 위해 폭력을 사용했다. 어나니머스 가면을 쓴(따라서 블랙 블록은 아닌) 26세의 학생 아리아네 산토스는 "블랙 블록은 경찰이 투입됐을 때 항상 시위대를 방어했다. 그들은 다양한 상황에서 교사들을 보호했다"고 말한다. 많은 교사들은 블랙 블록이 경찰의 과잉진압으로부터 시위대를 보호했으며 충돌이 일어났을 때 블랙 블록은 부상자들을 응급처치하는 걸 최우선으로 삼았다고 증언한다. 한 고등학교 교사는 "사람들은 (검은 옷을 입은) 소년들이 옳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거리로 나오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는다"고 증언했다. 이러한 동맹은 경찰의 과잉진압으로 의도치 않게 형성된 것이라고 가디언은 말한다.

[The Guardian] Violence at Rio de Janeiro protest

또다른 기사에서 블랙 블록의 한 명은 "우리가 그저 공격만 하려는 것은 아니다. 우리는 경찰의 과잉진압으로부터 사람들을 보호하고 우리의 저항할 권리를 보호하려는 것이다"고 분명히 밝혔다.

[The Guardian] Thousands join teachers' protest in Rio de Janeiro

게다가 우리는 이미 지난 6월의 브라질 반란에서 경찰이 먼저 시위대를 폭력적으로 공격한 것을 목격한 바 있다. 당시 브라질 경찰은 기자들을 노골적으로 공격해 세계를 경악하게 했었다. 경찰은 10월의 파업과 시위를 대응하는 과정에서도 총기를 사용해 과잉진압하고 있다(링크). 27일에는 경찰의 총격을 받은 19세 소년 더글라스 로드리게스가 결국 목숨을 잃었다(링크). 경찰이 시위대와의 물리적 충돌을 주도하고 있는 것이다. 이번 파업을 이끌고 있는 교원노조(SEPE)는 사복 경찰이 시위대에 잠입해 폭력을 선동했다고 주장하기도 했다(이 주장은 InSerbia라는 세르비아의 영자 인터넷 언론에 실린 것으로 다른 근거는 찾지 못했다ㆍ링크). 어찌보면 당연한 의심일 터이다.

브라질에서의 시위가 격렬히 충돌하는 것은 분명 사실일 것이다. 그러나 이것이 그림의 전부는 아니다. 평화적으로 자신의 권리를 주장하는 더 많은 사람들과 행진이 있었지만 언론에서는 상대적으로 적은 수인 블랙 블록의 폭력에만 관심을 쏟는다. 우리나라에서도 과거 흔히 겪은 일이다. 19일 이탈리아 로마에서 있었던 5시간의 평화적인 시위도 마찬가지였다. The Crisis Republic에서 스케치한 이날의 시위는 언론이 평화적으로 진행된 시위보다는 아주 잠깐의 긴장과 충돌에만 관심을 쏟는 과정을 자세히 보여준다
(링크).

언론이 시위의 폭력에만 관심을 쏟으며 이를 아나키스트와 공산주의자로 의심되는 '블랙 블록'의 탓으로 몰아가는 것은 운동의 급진화를 경계하기 위해서다. 연대를 위해 시위를 참여한 이들은 더 많은 사회적 불만을 투쟁에 결합시키기 때문이다. 따라서 언론과 정부의 블랙 블록에 대한 비난에 흔들려서는 안 된다. 물론 시위대 일부가 우리의 요구와 상관 없는 폭력 행위를 벌일지라도 말이다. 운동 자체의 힘으로, 토론과 논쟁을 통해 운동이 성공할 수 있는 최선의 전술을 합의해야 한다.

상황이 워낙 급히 돌아가고 있어 지금은 어찌 변했는지 모르나, 브라질 교사 노동자들의 초기 대응은 훌륭했다. 물리적 충돌과 블랙 블록에 대한 언론과 정부의 공격에도 불구하고 교사 알라이네 데 루카는 다시 또 시위에 참여하겠다고 가디언과의 인터뷰에서 말했다. "교사가 아닌 많은 사람들이 우리를 지지하고 있다. 지금과 같은 사회적 동원은 예전엔 볼수 없었던 것"이라며 "(교육제도) 개선은 희망적"이라고 주장했다. 또 교원노조(SEPE)는 거리에서 경찰과 블랙 블록의 폭력적 충돌이 있은 후 열린 한 회합에서 "교사들의 저항을 조직하는 것은 노동조합이지만 블랙 블록이 (연대를 위해) 참여하는 것은 항상 환영한다"고 분명히 밝혔다.

[O DIA] Teachers Union Officially Declares Unconditional Support for Black Bloc(영문 번역 기사)

화염병으로 상점을 공격하고 현금인출기를 깨뜨린다고 사회가 진보적으로 변화할리는 없다. 그러나 정부와 경찰은 우리 운동을 깨뜨리기 위해서는 언제든 과감히 폭력을 사용할 것이고 우리 운동을 방어하기 위한 최소한의 폭력은 불가피하다. 급진파의 배제는 운동의 요구와 행동 범위를 제한할 뿐이다. 저항을 평화롭게 만드는 것은 급진파의 배제가 아니라 운동을 더 크고 강력하게 성장시키는 것으로만 가능하다.

Posted by 때때로

2008년 미국에서 시작된 경제위기가 유럽의 재정위기로 이어지는 신호탄을 올린 것은 그리스다. 치솟는 실업률과 계속되는 임금 삭감과 해고에 그리스 인민의 고통은 더해만 가고 있다.

지난해 총선에서 급진좌파연합(SYRIZA)를 제치고 집권에 성공한 범그리스사회주의운동당(PASOK)ㆍ신민당(ND)ㆍ민주좌파당(DIMAR) 연정은 이전 정부와 다르지 않은 정책을 계속하고 있다. 이 정책은 그리스의 부자와 기업을 구하기 위한 지원금을 유럽연합으로부터 얻기 위한 것이다. 이를 위해 정부는 노동자 등 가난한 인민을 위한 국가의 지원을 축소하고 있다. 집권 연정은 이전 정부보다 더 반노동적 정책을 시도하고 있다. 노동조합의 권한과 파업권을 크게 축소하는 정책을 시도하고 있다(
[참세상] 그리스 총리, 파업권 제한… 연정 내부 반발 확산, 붕괴 임박ㆍ링크).

다양한 부문의 노동자들이 투쟁을 계속하고 있다. 투쟁은 작업의 중단 만이 아니다. 이미 기업가들이 버리고 간 공장은 노동자의 의지와 상관 없이 활동이 중단돼 있다. 이러한 자본가들에 의한 사보타쥬는 그리 낯선 것 만은 아니다. 기업가들은 자신에게 이윤을 안겨주지 못할 때 공장을 닫는다. 때론 손해를 감수하고서라도 공장을 폐쇄하곤 한다. 노동자들에게 '본때'를 보여줘야 겠다고 생각할 때 그렇게 한다. 1970년 칠레에서 아옌데가 대통령에 당선된 뒤 벌어진 일이 그것이다(
'기억하라, 우리가 이곳에 있음을'… 무력으로 짓밟힌 사회주의 향한 평화적 길ㆍ링크).

노동자에게 본때를 보여주기 위한 것이든, 이윤이 남지 않아서 때문이든 그리스의 많은 공장과 기업은 그 활동을 멈췄다. 이는 고스란히 노동자들의 실업과 빈곤의 고통으로 이어지고 있다. 그리스 테살로니키에 있는 비오-미 공장도 그러한 곳 중 하나다. 사장은 공장과 노동자를 버리고 떠났다. 노동자들은 2011년 5월 이후 임금을 받지 못했다. 2013년 2월 12일 이 비오-미 노동자들이 공장을 스스로의 힘으로 돌리기 시작했다. 1970~1973년 자본가들의 사보타쥬에 맞서 칠레 노동자들 스스로 공장을 움직이고 유통을 연결하려 한 것처럼 말이다.

여느 투쟁처럼 이 노동자 자주관리 생산의 성패도 이 새로운 생산모델이 다른 공장과 사업장으로 얼마나 많이 확산되고 일반화되느냐에 달려있을 것이다. 당장에 공장을 돌리고 노동자와 가족의 생계를 유지하기 위한 종잣돈도 필요하다. 비오-미 노동자들의 제안은 정부와 노동조합 관료로부터 냉대를 받았지만 지역과 세계의 운동가들은 이 제안에 적극적인 지지로 대답하고 있다. 데이비드 하비, 나오미 클라인, 존 할러웨이, 조르지오 아감벤 등 저명한 지식인들이 공개적으로 지지했다.

비오-미 노동자들의 호소문은 viome.org에서 확인할 수 있다. 아래는 roarmag.org에 올라온 비오-미 공장 노동자들에 대한 이야기다.

※ 오역과 의역이 많은 글이니 참고하실 분은 꼭 원문과 대조해 읽기 바랍니다.




그리스 공장이 노동자 통제하에 생산을 시작하다
roarmg.org 2013년 2월 11일ㆍ링크

실업자와 사장이 없는 세계를 만들기 위해 싸우는 와중에 경제위기에 고통받고 있는 그리스 비오-미(the Vio.Me. Viomichaniki Metalleutiki) 공장이 노동자의 민주적 통제하에 생산을 시작했다.

빵 반죽을 하는 우리는 여전히 배고프고,
We are the ones who knead and yet we have no bread,
석탄을 캐는 우리는 여전히 춥다.
we are the ones who dig for coal and yet we are cold.
아무 것도 가진 게 없는
We art the ones who have nothing,
우리는 세계를 가질 것이다.
and we are coming to take the world.
- 타소스 리바디티스(Tassos Livaditis, 그리스 시인, 1922~1988)


비오-미의 노동자들, 위기의 심장에서 착취와 빈곤의 심장을 정조준하다

실업률이 30%대로 오르면서 노동자들의 수입은 '0'에 다다르고 있다. 과장된 말과 약속들, 더 많은 세금은 진절머리가 난다. 월급은 2011년 5월 이후로 나오지 않았고 현재도 그들에게 일은 주어지지 않는다. 고용주들에게 버림받은 공장에서 비오-미 노동자들은 그들의 대중집회(General Assembly)의 결정을 통해 끝없는 실업상태의 희생자로 남는 대신 그들의 손으로 공장을 점거하고 운영하기 위한 투쟁의 의지를 밝혔다.

2011년 10월부터 정식 제안을 통해 모든 노동자들의 참여로 통제되는 노동자 협동조합의 설립을 요청해 왔다. 뿐만 아니라 다른 모든 이들이 따라할 수 있도록 법적 인정을 요구했다. 동시에 그들은 공장을 움직이는 데 필요한 -사회의 부를 생산해온 노동자의 자격으로 그들에게 정당한 권리가 있는- 돈을 요구했다.

작성된 계획은 정부와 노동조합 관료의 무관심에 직면했다. 그러나 이 계획은 세계적 사회운동에 의해 열광적으로 받아들여졌고 지난 6개월 간 사회 전체에 비오-미의 주장을 확산시키기 위해 투쟁해온 테살로니키 연대를 위한 열린 제안(the Open Initiative of Solidarity in Thessaloniki)의 설립으로 이어졌다. 이후 많은 다른 도시들에서 비슷한 제안이 이어졌다.


이제 노동자들이 비오-미를 장악할 시간이다!

노동자들은 파산한 국가의 가능성 없는 지원 약속(그리스 노동부가 약속했던 1000유로 긴급지원조차 재정부의 승인을 얻지 못했다)의 실현을 더이상 기다릴 수 없다. 문을 닫거나 파산하거나 노동자를 정리해고 한 다른 공장들 뿐 아니라 옛 사장이나 새 소유주에 기대지 않고 노동자들에 의해 다시 문을 연 비오-미를 주목할 때다.

투쟁은 비오-미 노동자들이 승리하기까지 멈추지 말아야 할 것이다. 투쟁은 문 닫은 모든 공장과 업체들로 확산되고 일반화되어야 할 것이다. 왜냐하면 자주관리 공장의 연결망을 통해서 만이 비오-미의 시도는 번창할 수 있고 착취ㆍ불평등ㆍ계급 없는 생산과 경제의 다른 체제를 향한 길을 밝혀줄 것이기 때문이다.

공장이 연이어 문을 닫으면서 그리스에서 실업자의 수는 200만 명에 다다르고 있고 전 정부의 정책을 지속하고 있는 범그리스사회주의운동당(PASOK)ㆍ신민당(ND)ㆍ민주좌파당(DIMAR) 집권 연정에 의해 인구의 어마어마한 규모가 빈곤과 고통에 처하게 됐다. 노동자들에 의해 통제되는 공장 운영 요구는 우리가 매일 경험하고 있는 재앙에 대한 유일하고 합리적인 대응이자 실업에 대한 유일한 대답이다.


비오-미의 투쟁은 우리 모두의 투쟁이다

우리는 노동자, 실업자, 위기로부터 영향을 받는 모든 사람에게 호소한다. 비오-미 노동자들과 연대할 것과 노동자들이 사장 없이 할 수 있다는 신념을 실천하는 그들의 노력에 지지해줄 것을. 우리는 테살로니키에서 3일간 절정에 달할 투쟁과 연대의 행진에 참여해줄 것을 호소한다. 또한 우리는 노동자가 작업장 안에서 사장 없이 직접 민주적 과정을 통해 그들 스스로 조직하고 싸울 것을 주장한다.

우리의 삶을 파괴하는 이들을 몰아내기 위한 정치총파업에 모두를 초대한다.

우리가 바라는 더이상 지배자가 없는 경제ㆍ사회를 조직하기 위해 공장을 넘어 모든 생산에 노동자 통제가 수립되기는 것을 목표로!

이제 비오-미의 시간이다. 일하러 가자!
모든 곳에 노동자 자주관리를 도입하자!
지배자 없는 사회 건설을 시작하자!



비오-미 노동자 투쟁 연대와 지원을 위한 열린 제안
Open Initiative of Solidarity and Support to the struggle of the workers of Vio.Me.

Posted by 때때로
2012.11.07 15:06

부메랑이 된 긴축정책 쟁점/12 OccupyWorld2012.11.07 15:06

6일부터 48시간 파업에 들어간 그리스 노동자들. [중앙일보/연합뉴스/AP]

그리스, 운명의 날

미국 대통령 선거 결과가 세계의 관심을 모으고 있는 오늘(7일), 또 하나의 중요한 표결이 지구 반대편에서 진행됩니다. 그리스가 구제금융을 받기 위한 긴축안에 대한 표결이 바로 그것입니다. 유럽연합ㆍ유럽중앙은행(ECB)ㆍ국제통화기금(IMF)으로부터(이하 트로이카) 구제금융을 받기 위한 추가 긴축안의 핵심은 정부 지출을 135억 유로(약 18조9000억원) 삭감하는 것입니다. 이는 그리스 국내총생산(GDP)의 4.5%에 달하는 규모죠. 트로이카는 이 긴축안이 통과되어야만 지급이 중단됐던 315억 유로(약 44조1000억원)의 구제금융을 제공할 예정입니다.

긴축이 통과될 경우 연금은 5~25% 삭감될 것입니다. 정년도 65세에서 67세로 연장됩니다. 공공부문 노동자의 월급과 해고자에 대한 보상금도 삭감됩니다. 아동지원비 지금 대상도 연 1800유로(약 2500만원) 미만 소득 가정으로 축소될 계획입니다.

안도니스 사마라스 총리는 "긴축안이 통과되지 않으면 이달 15일 이후 조국의 미래를 예측할 수 없게 된다"고 말했습니다. 그러나 노동자와 청년들은 강력히 반발하고 있습니다. 노동자들은 6일부터 48시간 총파업을 진행하고 있습니다. 교사ㆍ간호사ㆍ공무원 등 공공부문 노동자들의 파업이 줄을 잇고 있고 항공 관제사의 파업으로 항공기 운항도 일부 마비됐습니다.

노동자들의 저항으로 연립정부도 흔들리고 있습니다. 연정에 참여한 세 개 정당 중 16개 의석을 갖고 있는 민주좌파당은 반대표를 던지기로 결정했습니다. 민주좌파당을 빼도 연정의 의석수는 과반인 151석을 넘는 158석이긴 합니다. 하지만 또다른 연정 참여 정당인 사회당 의원도 긴축 반대를 선언 했습니다. 이로 인해 긴축안 통과가 어려울 것이라는 전망이 확산되고 있습니다. 지난 총선에서 원내 제2 당으로 부상한 시리자(Syriza)는 4일 긴축 반대 입장을 다시 확인하며 총선을 요구하고 있는 상황입니다.

●[중앙일보] 구제금융 vs 국가부도 … 그리스 운명의 날(링크)
●[참세상] 그리스 긴축 표결 앞두고 48시간 총파업(링크)


지난 3월 유로존의 마리아노 라호이 스페인 총리를 비롯한 유로존 지도자들은 스페인 위기설에 대해 "그리스와는 다르다"고 한목소리를 냈다. 하지만 재정위기는 계속되고 있고 그에 따른 긴축정책 등 모든 면에서 그리스를 닮아가고 있다. 물론 스페인 만은 아니다. 남부 유럽 전체가 그렇다. 왼쪽의 9월 말 스페인 시위 당시 부상당한 시민의 모습과 오른쪽의 4월 그리스에서 경찰 폭력에 의해 다친 시민의 모습이 놀라울 정도로 똑같다.

프랑스, 되돌아온 긴축

프랑스에서도 긴축은 최대의 정치 쟁점으로 부상하고 있습니다. IMF는 프랑스도 "스페인ㆍ이탈리아와 같은 정도의 노동ㆍ서비스 시장 개혁을 추진하지 않으면 경제 상황이 더 심각해질 것"이라고 5일 발표한 연례보고서에서 경고했습니다.

국가경쟁력위원회 위원장인 루이 갈루아는 소득세 삭감과 노동 유연성 강화를 핵심 내용으로 담은 산업경쟁력 강화방안 보고서를 정부에 제출했습니다. 유럽항공방위우주산업(EADS)의 회장을 지낸 갈루아 위원장은 "쇠락하는 기업 경쟁력을 되돌리기 위해서는 충격적인 대책이 있어야 한다"고 말해 그의 보고서가 '기업 살리기'에 방점이 찍혀있음을 분명히 했습니다.

갈루아 보고서는 5월 당선된 프랑수아 올랑드 대통령이 취해왔던 정책을 거스르고 있습니다. 올랑드는 취임 직후인 6월 최저임금 2% 인상, 연 100만 유로(약 14억원) 이상 고소득자 최고세율을 75%로 인상한 바 있습니다. 부가가치세 인상도 중단시켰었죠.

친기업적인 갈루아 보고서가 정부에 의해 채택되는 것은 아마 예정된 일이었을 것입니다 올랑드 대통령은 재정적자를 GDP의 4.5%에서 3%로 줄이기 위해 올해보다 300억 유로(약 42조원) 축소된 규모의 긴축 예산을 이미 의회에 제출했습니다. 그는 9월 9일 "이는 신념에 의한 행동"이라는 점을 밝혀 울며 겨자 먹기식 결정이 아님을 분명히 했죠.

부자와 기업들에 대한 감세와 재정지출 감축은 정부의 노동자ㆍ서민에 대한 지원이 축소되고 반대로 세금 부담은 늘어날 것임을 뜻합니다. 200억 유로(약 28조원) 규모의 감세로 인한 세수 부족은 부가가치세의 인상으로 메울 예정입니다. 중앙일보는 정부가 받아들인 갈루아 보고서가 전임 우파 대통령인 니콜라 사르코지의 개혁안을 상당 부분 포함하고 있다며 "올랑드 '사르코지 스타일'로 경제 살리기"라며 조롱하고 있죠.

●[조선일보] IMF "스페인처럼 안되려면 佛도 노동개혁하라"(링크)
●[중앙일보] 올랑드 '사르코지 스타일'로 경제 살리기(링크)
●[이코노미인사이트] 올랑드의 긴축, 그 잔혹한 배반의 결말은?(링크)


11월 14일 유럽 총파업 포스터. 'huelga' 'grève' 'strike' 등 '파업'을 뜻하는 각 나라의 단어로 유럽 지도를 그렸다. [European Strike 페이스북]

부메랑, 유럽 총파업

긴축에 반대한 행동이 유럽 전역으로 확산되고 있습니다. 남부 유럽의 네 개 나라, 스페인ㆍ포르투갈ㆍ이탈리아ㆍ그리스의 좌파와 노동조합이 주축이 돼 11월 14일 유럽 총파업을 준비하고 있죠.

9월 말 스페인에서 의회를 둘러싸려던 6000명 규모의 상대적으로 적은 규모의 시위가 있었죠. 이 시위는 경찰의 잔혹한 탄압으로 스페인 시민의 공분을 샀고 곧이어 이에 대한 항의는 스페인 전역은 물론 유럽 전체로 확산 됐습니다. 그리스와 스페인에서, 또 이탈리아에서 다르지 않았던 경찰의 폭력은 단지 결과였을 뿐입니다. 인민의 뜻에 정면으로 거스르는 긴축안을 강행하기 위해서는 사실상 경찰 폭력 외에 정부가 기댈 곳이 없지요.

14일 총파업을 준비하는 이들은 이 총파업을 끝이 아니라 시작으로 보고 있습니다. 한국의 다함께가 속해 있는 국제사회주의 경향(IST)은 5일 발표한 성명에서 "14일 파업이 그 자체로 목적이 돼서는 안 된다"며 이번 파업이 "부문별 파업, 점거, 봉쇄와 전투적 시위와 같은 앞으로의 투쟁을 위한 도약대가 돼야 한다"고 주장했습니다.

이번 총파업이 유럽을 당장 어떤 다른 세계로 변화시키진 않을 것입니다. 하지만 아이슬란드에서 그랬듯이 점점 더 다른 세계, 다른 삶에 대한 대중의 열망과 상상력이 커져가고 있음은 틀림 없습니다.

우리나라에서도 '경제민주화'가 대통령 선거의 중요한 쟁점으로 자리잡고 있습니다. 주요한 세 후보 모두 경제민주화를 내세우고 있죠. 우리는 이들의 공약에 부자와 기업에 대한 증세, 복지의 확대, 경제정책에 대한 민주적 참여가 포함돼 있는지 살펴야 할 것입니다. 그리고 무엇보다 우리 자신의 행동이 중요합니다. 프랑스 올랑드 대통령의 행보는 중요한 교훈을 줍니다. 비록 우리의 손으로 뽑은 대통령이라고 할지라도 우리가 행동하지 않으면 어느새 기업과 부자들을 위한 정책을 펼치기 마련입니다. 한국에서도 좌파가 지금까지의 지리멸렬을 이겨내고 다시 활발하게 움직일 수 있길 기대해봅니다.

●[참세상] 11월 14일 유럽 공동 총파업 분위기 활활(링크)
●[레프트21] 유럽 공동총파업은 투쟁의 도약대가 돼야 한다(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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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 정부가 들어선지 3개월. 실망하기에 이른 시간일 수도 있지만 프랑스 인민도 긴축정책에 대한 저항에 나서고 있다. 9월 30일 프랑스 좌파전선의 긴축정책 항의 시위. [페이스북]

9월 25일 스페인 시민 6000명이 의회봉쇄를 시도했을 때 사태가 이토록 커지리라고는 예상 못했었습니다. 긴축에 반대하는 시위대에 맞서 경찰은 상상 이상의 폭력을 휘둘렀고 많은 이들이 다쳤습니다. 반응은 즉각적이었습니다. 평온하던 스페인에 갑작스럽게 튀어나온 하나의 시위가 아니었기 때문이죠. 이미 지난해부터 분노한 사람들(인디그나도스 los indignados)의 항의가 나라 전체를 가득 메우고 있었습니다. 여름에는 광부들이 영웅적인 투쟁으로 시민들의 환영을 받으며 마드리드에 입성했었죠.


벼랑 끝에 선 마드리드: S25→S29
9월 25일부터 29일까지 스페인에서의 저항과 경찰 폭력을 담은 다큐멘터리. [globaluprising.org]

29일까지 이어진 항의 시위는 스페인을 넘어 프랑스, 이탈리아, 영국 등의 나라에까지 확산됐습니다. 이토록 손쉽게 저항이 유럽 전역을 흔들며 세계화 할 수 있었던 것은 유럽의 인민이 겪고 있는 문제가 같은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것은 바로 '긴축'입니다. 2008년 금융위기 이후 각 나라의 정부들은 자국의 은행을 구제하기 위해 막대한 자금을 투입했죠. 이는 결국 정부재정의 부실로 이어졌습니다. '복지' 때문에 정부재정이 위기에 처했다는 것은 새빨간 거짓말이죠. 정부부채 규모가 2007년을 전후해서 급등했다는 게 이를 간접적으로 증명합니다. 마르크스주의 정치경제학을 공부하고 있는 heesang님은 지난해 블로그에 적은 짧은 글에서 이를 지적했었죠.

"지금 (내 생각에는) 극복되고 있는 이 위기는 채권자들의 위기이다. 이 위기를 넘어서면 시민들의 위기가 시작된다. 미국 정치인들은 재정지출은 줄이되 세금은 늘리지 않기로 결정했다. 이탈리아는 연대세라는 이름으로 일종의 부유세를 신설했는데, 그런 점에서 유럽의 사정은 더 나을지 모르겠다. 하지만, 감세와 민영화와 정부지출 축소는 여전히 신자유주의의 전위이고, 긴축의 부담은 고스란히 노동자 계급의 몫일 것이다. 자본이 낳은 위기를 국가가 떠안았으며, 다시 이제 자본은 이를 본격적으로 일반 시민들에게 떠넘기려한다. 그런 점에서 긴축 정책에 반대하는 그리스 시민의 투쟁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긴축의 시대와 채권자의 승리ㆍ링크)

민간 부문의 부실을 떠안은 정부는 대규모 긴축으로 손실을 만회하려 하고 있죠. 유럽에서 EU와 유럽중앙은행(ECB), 국제통화기금(IMF)는 구제금융 무기로 각 나라에 긴축정책을 강요하고 있죠. 그리스에서 저 세 개의 기구가 트로이카로 불리며 분노의 촛점이 되는 이유입니다. 불안하게도 이러한 구도는 외국에 대한 증오를 불러일으키며 민족주의와 인종주의를 부추기고 있기도 합니다. 아직은 다행스럽게도 좌파 운동의 강력한 성장이 이를 저지하고 있습니다.

선거에서의 노골적인 개입도 주저하지 않았던 트로이카의 협박에도 그리스 인민은 투쟁을 이어나갔습니다. 정부를 구성하지 못해 몇 차례 반복된 총선에서도 급진좌파연합(시리자)의 지지는 꾸준히 성장했습니다. 지난달 말 스페인에서 긴축에 맞선 투쟁이 분출했을 때 그리스에서도 어김없이 저항이 폭발했습니다.

그리스 인민은 9월 26일 다시 총파업 공세에 나섰습니다. 전력 노동자들은 투쟁을 더 강력하게 확대할 것을 요구하며 48시간 파업 반복을 선언했습니다. 재무부 노동자는 이틀 더 파업을 벌였죠
(다시 총파업 공세에 나선 노동자들ㆍ레프트21). 10월 4일 조선소 노동자는 국방부로 쳐들어갔고 농부 수백 명은 트렉터로 공항 봉쇄를 시도했습니다. 이들 모두의 요구는 긴축정책의 중단이었습니다(스페인 수십만 긴축 반대ㆍ참세상).

지난달 말 투쟁을 앞장섰던 스페인의 공공부문 노동자들은 6일에도 시위를 벌였습니다. 분노한 인민의 항의에도 스페인 정부는 9월 27일 390억 유로 규모의 긴축을 결정하는 등 노동자 계급에게 고통을 전가하는 정책을 계속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이에 스페인 노동조합 연맹들은 11월 14일 파업을 준비하고 있죠
(스페인 수십만 긴축 반대ㆍ참세상).

유럽 뿐 아니라 남미와 북미에서 저항은 확산되고 있습니다. 캐나다 퀘벡 학생들은 등록금 인상에 맞선 투쟁에서 승리를 거뒀습니다. 승리 이후에도 무상교육을 위한 투쟁을 계속해나가겠다고 밝혔습니다. 칠레에서도 무상교육을 위한 학생들의 투쟁이 1년 넘게 계속되고 있습니다
(다시 점화된 칠레 학생시위 "교육은 권리다"ㆍ참세상). 올 초 경찰의 폭력적 진압에 잠시 숨고르기에 들어갔던 미국의 오큐파이 운동도 다시 기지개를 펴고 있습니다. InterOccpy.net을 만들어 세계적 운동을 연결하고 협력하며 조직하는 것(Connect, Collaborate, Organize)을 모토로 다양한 연대를 펼치고 있습니다. 이들 뿐 아니라 다양한 활동가들이 10월 13일 전 세계 공동 냄비시위, 매월 22일 공동행동 등을 제안하고 준비하고 있죠(OccupyWallst.org, interoccupy.net).

더해가는 경제 위기, 정확히는 위기의 대가를 노동자에게 전가하는 지배자들의 태도가 더 노골적으로 되면서 이에 맞선 저항도 더 활기를 띠고 있습니다. 한국은 경제와 정치적 상황 모두에서 다른 나라들과 같지는 않습니다. 하지만 우리 모두가 같은 자본주의 사회에서 살고 있다는 현실 때문에 우리도 결국 저들과 다르지 않은 문제를 겪으리라는 것은 너무도 분명한 사실입니다. 한겨레에 따르면 내년 정부 예산안에서 복지 지출 비중이 2005년 이후 처음으로 줄어들었다고 합니다
(복지시대 역주행ㆍ한겨레). 워낙에 부족한 복지이기에 실상 그리 큰 영향이 없어 보이죠.

기업들도 정부와 크게 다르지 않으리란게 문제입니다. 아직은 불분명하지만 부문별로 희망퇴직과 정리해고의 칼바람 조짐도 있습니다. 가장 불안한 곳은 건설업계죠. 정말 거의 마지막 한올까지 끊어버린 듯한 부동산 규제에도 주택시장은 요지부동입니다. 문제는 상업시설과 사무실입니다. 과잉공급으로 서울시내 중심가의 최신 건물에도 빈 사무실을 곧잘 찾아볼 수 있습니다. 용산 재개발은 난항을 겪고 있으니 예외로 치더라도 상암디지털미디어시티와 종로1가 등 대규모 개발지들이 기대 만큼의 수익을 만들어낼 지는 의문입니다.

위기가 어떻게 진행될 지 예측하는 것은 부질없을 겁니다. 2008년 촛불시위와 같은 갑작스러운 저항이 터져나올 수도 있죠. 지난해 희망버스의 놀라운 성공처럼 말입니다. 이에 대비할 때 만이 좌파는 물결에 휩쓸리지 않고 자신의 시대를 열게 되지 않을까 싶습니다.

● 참고한 기사와 글
[참세상] 스페인 56개 도시 수십만 긴축 반대
[참세상] 다시 점화된 칠레 학생시위 "교육은 권리다"
[레프트21] 다시 총파업 공세에 나선 그리스 노동자들
[한겨레] 복지시대 역주행 … 내년 예산안 복지비중 첫 감소
[SocialandMaterial.net] 긴축의 시대와 채권자의 승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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