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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11.22 13:30

응답하라 1994에 답함 언론스크랩2013.11.22 13:30



'응답하라 1994'가 시작할 때만 해도 전작인 '1997'을 넘어설까 싶었다. 그런데 어느새 전작보다 더 높은 시청률을 기록했고 그 만큼 더 많은 이야기들이 쏟아져나오고 있다. 그 중 눈에 띄는 것들은 '운동권'의 시각에서 아쉬움을 토로하는 글이다. 황진미와 김낙호의 글이 그렇다.

사실 이 드라마는 과거를 배경으로 한 '연애' 드라마다. 둘은 당대의 시대상을 온전히 담아내지 못하고 있다고 아쉬움을 드러낸다. 김낙호는 "소품으로 향수를 자아내는 것을 넘어, 특정한 시대상을 꿰뚫어 나를 감동시키는 것과는 거리가 멀다"고 말한다
(응답하라 1994는 퓨전사극이다… 훌륭한 소품 너머 부족한 2%ㆍㅍㅍㅅㅅㆍ링크). 황진미는 이 드라마에서 "주목할 것은 상실"이라며 "그때는 아직 명문대에 지방 학생들이 많이 진학했고, 대학에 공동체문화와 연대감이 있었으며, 계급 격차보다 문화 격차가 더 큰 화두였고, 취업 걱정을 하지 않아도 되는 시대였음을 동경하는 것이다. 하지만 우리는 알고 있다. 94학번들이 졸업 직전에 외환위기를 맞아 청년실업에 내몰리게 된다는 사실을" 지적한다('응사'가 기억하지 않으려는 것ㆍ한겨레ㆍ링크).

다른 드라마들에선 문제시되지 않았을 것들이 이 드라마에서 제기되고 있는 것이다. 이 드라마가 제목에서부터 한 시절을 호출하기 때문일 것이다. 타리크 알리가 쓴 '1968: 희망의 시절 분노의 나날'은 1968년 세계 곳곳에서 벌어진 진보를 향한 투쟁의 풍경을 꼼꼼히 담고 있고 플로리안 일리스의 '1913년 세기의 여름'은 1차 세계대전 직전 유럽의 주요 장면들을 그려낸다. 우리는 '응답하라 1994'에서 이러한 것들을 바라는 것일까?

김낙호와 황진미가 놓치지 않고 지적했던 1990년대 중반의 복잡한 상황이 우리를 더 그러한 회고로 이끄는 듯 싶다. 강남 압구정동과 홍익대학교 앞 거리에 오렌지족이 출몰하고 과 종강파티를 '락카페'에서 열기도 하던 시절. 한편 GATT가 WTO로 전환하면서 쌀 개방에 반대하는 투쟁이 서울까지 이어졌었던 때. 전라도 지역의 학생들은 열차를 멈춰 세워 타고 서울로 올라와 최루탄 속에서 파이프를 휘둘렀었고 서울에선 전지협 노동자들이 경희대 뒷산을 넘어 경찰에 쫓겼다. 군대를 제대하고 복학하던 89~90학번은 '운동의 시대'는 갔다며 동아리방과 과방에서 바둑과 음주에 빠져있었다. 한총련이 1993년 출범했지만 아직은 전대협 진군가가 더 익숙했었고 운동권 대자보의 화려함은 그 이전과 이후를 통털어 절정을 이뤘던 때였다.

아쉬움이 남을 수밖에 없다. 게다가 지방에서 올라온 학생들을 주인공으로 한다면 더 그렇다. 황진미의 지적과 달리 '문화 격차'는 '계급 격차'를 상기시키며 대학 '공동체'는 분열되기 시작한 때다. 이미 당시에도 명문대 진학생의 절대 다수는 서울 강남 출신이었다. 지방 출신 학생은 강남 출신 학생들과 격차를 느끼며 분열됐다. 지금도 여전한 지역차별 때문인지 경상도 출신 학생들의 사투리는 과방과 동아리방을 가득 채웠지만 전라도 출신 학생들의 사투리는 듣기 어려웠다. 여학생의 사투리는 더 말할 것도 없다.

게다가 가장 중요한 것은 1994년을 '호출'하려고 할 때 당시 고등학교 졸업생의 절반 이상은 여전히 대학을 가지 않았다는 것이다. 전문대와 산업대 방송대를 포함한 대학 진학률이 기껏 45%였던 시대다. 연세대와 같은 명문대를 가는 학생은 더 극소수일 수밖에 없다. '응답하라 1994'든 이 드라마의 아쉬움을 토로하는 이들이든 놓치고 있는 것은 1994년을 호출할 때 '대학'은 당시 젊은 층이 살던 세계의 '절반'도 안된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 절반 안에서도 이미 낭만적 공동체는 해체되고 있었고 계급 격차가 대학 내 문화를 지배하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지금도 좌파는 '대학생'을 단일한 집단으로 고려하는 경향이 있는 데 이는 이미 오래전부터 사실이 아니었다).

1980년대가 1990년대부터 작가들에 의해 회고되기 시작했던걸 고려하면 1990년대에 대한 회고는 많이 늦었다. 아니 앞으로도 1980년대 만큼의 회고가 나올 수 있을지는 의문이다. 그러나 그렇게 잊혀질 수 없는 이 시절을 언젠가 누군가는 기록해주길 바란다.


스탠리 큐브릭 감독의 영화 '닥터 스트레인지러브'의 한 장면. 영화에서 핵무기는 '억제수단'으로서 머물지 못하고 결국 사용된다.


북한 핵무장이 기정사실화 되면서 한국의 핵무장에 대한 논란이 확산되고 있다. 총대를 멘 것은 새누리당 정몽준 의원이다. 그는 조선일보 4월 15일자 31면에 실린 특별기고에서 "동서 냉전의 교훈은 핵무기는 핵무기로만 억제된다는 것"이었다며 북핵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한국의 핵무장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다(조선일보 4월 15일 31면ㆍ링크).

정몽준은 "국민의 3분의 2가 전술 핵이나 자체 핵무장에 찬성"하고 있다는 것으로 자신의 주장이 혼자 만의 돌출발언이 아님을 강조하고 있다. 그의 말마따나 한국 국민들의 핵무장 열망은 꽤 오래됐고 그 깊이와 폭도 넓다. 1993년 출간된 김진명의 '무궁화꽃이 피었습니다'는 핵무기에 대한 한국의 열망을 공개적으로 표출한 대표적 소설이다. 이 책은 1년 만에 600만 부가 넘게 팔리면서 이러한 열망이 소수의 것이 아님을 보여줬다.

2000년 초반 원자력연구소의 우라늄 농축 실험은 국제사회의 우려 속에 2004년 국제원자력기구(IAEA)의 사찰까지 이어졌다. 한국 정부는 핵무장과의 연관성을 부정했지만 다른 나라들의 입장은 아니었다. 영국 비비시방송은 "레이저를 활용해 무기급 우라늄을 추출해내는 기술은 민간용으로 활용할 수 없는 것"이라고 우려를 나타냈다. 미국 뉴욕타임스도 마찬가지 반응을 보였다. "한국이 밝힌 농축 우라늄 양은 0.2g으로 극미량이지만, 순도는 80% 가까이에 이른다"며 "이렇게 고농축된 우라늄은 핵무기 제조용을 빼고는 달리 활용할 방도를 찾기 어렵다"고 한국 정부의 해명을 비판했다
(한겨레 2004년 9월ㆍ링크).

당시 우라늄 농축 실험이 핵무장과 직접적으로 연결돼 있지 않다고 하더라도 그 경험은 핵무장에 대한 자신감으로 이어지고 있다. 서균렬 서울대 원자핵공학과 교수는 2011년 "한국도 마음만 먹으면 6개월 이내에 기폭장치와 투발수단을 갖춘 핵무장이 가능하다"고 주장했다. 2000년 우라늄 농축 실험에 사용된 레이저 기술은 "세계가 괄목할 정도의 경지에 이르렀고 유사시에 단기간에 핵무장을 할 수 있는 재정적ㆍ기술적 역량이 충분하다"는 것이다. 과학자가 '핵무장'을 운운하는 이유야 알 수 없지만 그의 전공과 소속을 고려할 때 완전한 허언은 아닐 것이다
(국민일보 2013년 2월 15일 3면ㆍ링크).

그렇다면 왜 정몽준이 핵무장 총대를 멘 것일까. 언론의 스포트라이트를 받고 싶어서는 아닐 것이다. 그는 가만히만 있어도 언론에 보도되는 7선의 여당 중진 의원이자 세계 1위의 조선 기업인 현대중공업 최대 주주 아닌가. 김의겸 한겨레 논설위원은 그 이유를 "정몽준이 군수업자라는 사실"에서 찾는다. 현대중공업이 "우리나라 방위산업을 떠받치는 기둥"이라는 것과 한국항공우주산업(KAI) 인수전에도 뛰어든 것을 근거로 든다. 한편 "요즘 한반도의 긴장을 격화시키면서 아파치 헬기 1조8000억원어치를 팔아먹고, 12조원 이상의 차세대전투기를 들이대는 미국 군사산업체의 판매전략이 그의 사업가적 상상력을 자극"했을 것이라는 추측도 내놓는다. 김의겸 논설위원의 주장은 군산복합체의 수장이 기업의 이윤을 위해 '핵무장'이라는 불놀이를 벌이려는 것 아니냐는 것이다
(한겨레 4월 26일 31면ㆍ링크).

정몽준의 제안이 '무기상'의 장삿속에 불과하다는 김의겸 논설위원의 분석은 지나치게 안이해 보인다. 그의 정치에 동의하거나 지지를 보내진 않지만 그는 대권에 도전해온 여당의 7선 의원이다. 그가 국회의원 자리를 어떻게 유지했느냐와 별개로 정치경력만 봐도 그를 단지 개별 자본의 이해에만 매여있을 것이라고 보는 것은 설득력이 떨어진다. 게다가 자본가들이 모든 행동이 이윤에 의해서만 결정되는 것은 아니다
[그런 사회는 오직 추상 속에서만 가능하다]. 정몽준의 아버지 정주영의 소떼 방북 퍼포먼스를 오직 장삿속 만으로 치부할 수는 없다. 정주영이 가장 아꼈다고 알려졌고 그래서 현대그룹을 물려받은 [사실 알짜인 현대자동차는 정몽구가, 현대중공업은 정몽준이 챙겨 속빈 강정에 불과했지만] 정몽헌과 그의 아내 현정은도 '돈 안되는' 금강산 관광사업에 '명분' 때문에 매달리고 있지 않는가.

아니나 다를까 정몽준은 바로 한겨레에 반론을 보내왔다. 민족과 국가에 대한 애국심을 늘어놓는 부분은 역겹지만 "미국 같이 전 세계를 상대로 하는 나라에서는 군수산업이 그야말로 산업으로서의 위상을 가질 수도 있다"는 그의 주장은 옳다
(한겨레 5월 7일 29면ㆍ링크). 세계 자본가 계급 내 그의 위치로 볼 때 정몽준이 AK-47소총, RPG-7과 같은 소형 무기만 팔아먹는 데 만족할 '로드 오브 워'의 유리 오로프와 같은 소매상을 꿈꾸는 것은 아닐 것이다. 그렇다고 전 세계를 상대로 무기를 팔아먹는 미국 수준의 군산복합체는 아직 어불성설이다. 한국 기업의 기술력이 지금과 같은 수준에 이르기 전에는 정부의 지원과 협력의 일환으로 군수산업이 기업의 기술발전에 도움이 됐겠지만 현재의 한국 대기업들은 정부 지원 없이도 충분한 기술력을 갖고 있다.

주목해야 할 것은 '군산복합체'가 원인이 아니라 결과물이라는 것이다. 미국에서 군산복합체가 성장한 데는 세계질서에서 제국주의 수장국이라는 배경이 중요하다. 미국에게 요구되는 군사적 역할 때문에 무기의 개발과 생산이 집중되고 발전할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물론 지금에 와서는 자신을 낳아준 정부를 압박할 정도로 성장했다는 측면에서 '군산복합체'에 대한 비판이 유의미하긴 하다.

그렇다면 우리는 어떤가? 잠시 이야기를 돌아가자. 1980년대 이후 '핵무장'에 대한 국민적 열망이 확산되지만 민정당-민자당-신한국당-한나라당-새누리당으로 이어져 오는 보수 우파들은 공개적인 핵무장 주장에 대해 조심스러웠다. 기본적으로 한국의 보수적 지배계급은 세계질서에서 한국의 지위를 소심하게만 파악하고 있다. 그것은 그들이 미국의 힘에 의해서 '대한민국'을 만들고 유지할 수 있었기 때문일 것이다. 그러한 태도는 '전시작전권'에 대한 태도에서 잘 드러난다. 전작권의 환수는 미국으로부터의 군사적 홀로서기라는 보수우파에게 두려운 미래의 현실화인 것이다. 노무현 정권시절의 대양해군 전략이 이명박 정권에서 폐기됐던 것도 마찬가지다. 보수우파에겐 오직 북한 만이 상대 가능한 것으로 보이는 것이다.

이와 달리 개혁적 우파들은 한국의 성장에 고무됐고 자신감도 있었다. 김대중과 노무현 정권시절 군 현대화 사업이 본격화되면서 군 전략이 바뀐 것은 이 때문으로 보인다. 노무현 정권시절인 2005년 마련된 '국방개혁2020' 계획에 따라 재래식 무기지만 첨단무기들이 도입된다. 2006년부터 2010년까지 5년 간 무기수입은 세계 3위에 달한다
(2011년 12월 8일 8면ㆍ링크). 그리고 그 무기는 북한 만을 상대하기 위한 것이 아니라 세계를 향한 것으로 보였다. 물론 이 과정은 이명박 정권시절 들어 중단된다. 국방개혁2020 계획은 재검토되고 2009년과 2010년 무기수입은 그 전의 절반 가까이 줄어든다.

정몽준은 7선의 중진의원이지만 한국의 전통적인 보수 지배세력에 속하진 않았다
[그는 상당 기간 무소속이었다]. 세계적 기업을 운영하는 자본가로서 언제나 미국에 주눅들어 있고 북한에만 방방 뛰던 보수우파와는 차이가 있을 수밖에 없다. 세계 10위권의 경제규모를 지닌 한국이 군사와 외교에서도 그 만한 역할을 하기를 바랄 수 있다. 노무현 정권은 그러한 열망에 충실히 따랐었다. 이는 미국의 바람이기도 하다. 중앙선데이는 박근혜 대통령의 이번 방미 기간 오바마의 관심사는 "시리아ㆍ이란 등 중동 문제에 대한 한국의 협조"라고 보도했다(중앙선데이 5월 5일 3면ㆍ링크). 이미 한국 정부는 아프가니스탄ㆍ이라크 등지에서 미국과 협력해왔다.

재래식 무기에 이어 핵무장까지 욕심내게 된 데는 미국의 힘이 예전만 못해보인다는 것도 큰 역할을 한 것으로 보인다. 정몽준은 조선일보 특별기고에서 "
[재래식 무기를 사용한 미국의] 무력 시위는 북한이 핵무기를 쓰는 것을 진정시킬지는 몰라도 북한의 핵무기를 폐기하는 데는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잘라 말했다. 게다가 미국이라는 '우방'이 보수우파의 바람 만큼 영원히 한국의 바람막이가 돼줄지도 의심스럽다. "아무리 긴밀한 동맹이라 해도 국가 이익이 100% 일치하는 것은 아니"라는 것이다. "미국과 정치적으로 가장 가깝다는 이스라엘이 핵무장을 한 것도 그런 이유 때문일 것"이라며 자신의 주장을 뒷받침한다(조선일보 4월 15일 31면ㆍ링크). 이는 구체적으로 미국의 대북정책 변화에 대한 불안이기도 하다. 그는 특별기고에 이은 조선일보와의 인터뷰에서 한미 관계를 이혼할 수도 있는 결혼한 남녀에 비유했다. 그는 미국이 중국과 함께 "현 상태를 인정하고 북한이 핵무기를 더 만들지만 말라고 할까 봐 걱정"이라고 말했다. 미국에게는 "현재 북한이 보유한 핵무기 숫자는 큰 위협이 안 될 것"이기 때문이다(조선일보 4월 22일 29면ㆍ링크).

정리해보자. 정몽준의 핵무장 발언은 일개 정치인의 돌출발언은 아니다. 단순히 '무기상'으로서의 이득을 바라는 것일 수도 없다. 이는 경제성장에서 비롯한 자신감을 바탕으로 제국주의 세계질서에서 상층으로 도약하고자 하는 새로운 지배계급의 열망이 표출된 것으로 보인다. 물밑에서 흐르던 핵무장 욕심이 북한의 핵무기 보유를 기점으로 고개를 내민 것이다.

한국 사회 좌파가 제국주의를 다시 검토해야 하는 지점은 이 부분으로 보인다. 이미 2000년대 초반 파병반대 운동 때부터 제기되기 시작했지만 더 이상 제국주의 피해자인 약소국가로만 한국을 바라볼 수는 없다. 한국군의 해외파병도 미국의 강제에 의한 것이라고만 볼 수도 없다. 한국군 해외파병은 베트남전 이후 한동안 중단됐다가 1991년 1차 걸프전을 계기로 다시 시작돼 2000년대는 보다 적극적이고 활발하게 펼쳐졌다. 2012년 11월 현재는 15개 나라에 1440명이 파병돼 있다
(문화일보 2012년 11월 2일 3면ㆍ링크). 핵무장을 포함해 한국 군사력이 미국으로부터 홀로서는 것은 앞으로도 부침이 많을 것이다. 주변에 강대국들이 가까이 있다는 것도 장애물 중 하나다. 그러나 정몽준과 과거 노무현 정권으로부터 확인할 수 있듯이 새로운 지배계급은 이전 지배계급보다 확연히 대외 지향적인 제국주의 노선을 추진할 것으로 보인다. 그것을 '평화'라는 말로 포장할지라도 말이다.

Posted by 때때로


[사진 한겨레]


오늘자 한겨레 신문에 실린 칼럼에서 조한혜정 교수는 '동네 나눔 부엌'을 상상해보자고 한다(한겨레 4월 24일자 30면ㆍ링크). 그는 이 나눔 부엌이 "지속가능한 삶의 시대를 열" 징검다리가 될 것이라고 말한다. 협동조합과 공동체에 대한 관심이 늘어나면서 이런 주장들을 쉽게 만날 수 있다. 시사인 293호에도 성북구의 '마을 만들기 사업'에 관한 글이 실렸다.

그런데 오전 6~7시에 출근해 오후 8~9시는 돼야 집에 오는 대다수 노동자들에게 동네 나눔 부엌이 가능하기나 한 걸까. OECD에 의하면 2010년 기준 한국의 연간노동시간은 2193시간으로 멕시코에 이어 두 번째로 길다. 부지런하다는 독일은 1408시간, 일본은 1733시간 일한다
(OECD Factbook 2012ㆍ링크). 주말이나 휴일에라도 시간이 나면 다행이다. 주말이나 휴일 특근은 제외하더라도 휴일 자체가 적다. 선진국들에 비해 5~13일 덜 쉰다. 2009년 기준으로 평균 휴일 수는 연차휴가 19일을 합해 25일이라고 한다(경향신문 4월 23일자 3면ㆍ링크). 깨어있는 시간의 대부분을 직장에 매여 있기에 개인 또는 가족을 위한 시간은 최소화 되기 일쑤다. 마을 공동체를 위한 시간은 더 말해 뭐할까. 마을과 협동조합의 아름다운 공동체를 꿈꾸지만 현실은 발목을 잡는다.

그래서일까. 조한혜정 교수는 "여유가 생긴 주부"와 "프리랜서"를 '동네 나눔 부엌'의 제일 첫 구성원으로 꼽는다. 시사인의 기사에서도 주부들의 참여를 중요하게 다루고 있다. 전업주부라고 낮시간에 회사에 매여 있어야 하는 직장인보다 시간이 더 날리도 없다. 한국여성정책연구원 전업주부 연봉찾기 서비스 조사 결과에 의하면 서울 및 6대 광역시에 거주하는 30대 전업주부의 평균 가사노동 시간은 하루 9시간40분에 달한다고 한다
(링크). 취업 노동자의 하루 평균 노동시간과 그리 다를바 없다(2009년 기준 연간노동시간 2232시간을 휴일ㆍ휴가 129일을 제외한 236일로 나누면 9시간27분정도 된다. 단 전업주부의 가사노동 시간 조사는 개인이 직접 입력한 시간을 평균한 것으로 엄밀한 조사가 아니라는 점을 감안해야 한다). 집안일을 도울 '아줌마'를 쓸 여유가 있는 사람이 아니라면 마을일에 신경쓸 여유가 있을리 없다. 프리랜서는 그 이름 만큼 자유로운가? 가당찮은 말이다. 직장에 다니는 노동자보다 더 가혹한 조건으로 자신 스스로를 몰아넣어야만 생존 가능한 게 대다수 프리랜서의 현실이다.

마을ㆍ공동체ㆍ협동조합 모두 좋다. 그런데 그 시작은 무엇보다 노동시간의 절대적인 단축이 되어야 한다. 정치 참여를 늘려 민주주의에 활력을 불넣기 위해서도 노동시간 단축은 필수다. 술자리 욕지거리들을 정치 참여라고 보지 않는다면 말이다. 노동조합 활동에 조합원의 참여를 확대하기 위해서도 노동시간의 단축은 전제 조건이다. 곧 있으면 노동절이다. 1886년 하루 8시간 노동 쟁취를 위해 총파업을 벌인 미국 노동자의 투쟁을 기념하는 날이다. 노동시간 단축은 자본주의 역사 내내 가장 큰 갈등의 축이었다. 지금도 다르지 않다. 다른 말들의 잔치보다 '노동시간 단축' 이 하나에 힘을 모을 방법은 없을까. 손학규의 '저녁이 있는 삶'은 매우 훌륭한 슬로건이다.

※ 마을 공동체의 형성에 좌파나 진보 지식인만 관심을 가지는 건 아니다. 건설사들은 몇년 전부터 주민 공동 편의시설인 '커뮤니티 센터'를 아파트 홍보에 적극 사용하고 있다. 처음에는 피트니스센터와 같은 것들이 중심이었지만 지금은 주민 회의실이나 독서실ㆍ카페 등 아파트 공동체를 위한 시설로 확대되고 있다. 홍보업체들은 "상류층, 그들 만의 커뮤니티"를 홍보 키워드로 사용하고 있을 정도다.

Posted by 때때로


개발이 한창인 서울 전농ㆍ답십리 뉴타운 16구역. [사진=自由魂]


박근혜 대통령이 17일 윤진숙 후보자를 해양수산부 장관에 임명했다. 야당은 물론 여당도 비판적이었지만 박근혜의 불통은 여전했다. 12일, 16일 두 차례 청와대 만찬에 참여하며 박근혜와 훈훈한 분위기를 자아냈던 민주당은 뒤늦게 분통이다. 한겨레에 의하면 한 재선 의원은 "청와대의 소통 이벤트에 병풍만 쳐준 꼴"이라고 말했다(한겨레 4월 18일자 6면ㆍ링크).

그러나 윤진숙 임명 문제뿐일까. 보스턴 테러, 추경예산 편성 등의 뉴스에 밀려 관심을 받진 못했지만 정부의 4ㆍ1 부동산 대책에 대한 16일 여ㆍ야ㆍ정 합의는 민주당이 실제로는 청와대의 병풍에 불과하다는 것을 적나라하게 보여주고 있다.

박근혜보다 더한 민주당

16일 합의한 핵심 내용은 △양도세 면제 기준(1세대1주택자 보유 기존 주택 및 신규ㆍ미분양 주택 대상)을 6억원 이하 또는 85㎡ 이하로 확대(기존은 9억원 이하의 85㎡ 이하 주택) △취득세가 면제되는 생애 최초 주택 구입자 기준을 부부합산 소득 7000만원, 6억원 이하 주택으로 완화(기존 부부합산 소득 6000만원 이하, 6억원 이하의 85㎡ 이하 주택)한 것이다. 이는 박근혜 정부의 부동산 대책을 방향 수정 없이 더 강화하고 적용 범위를 더 확대한 것이다.

이를테면 원안에선 양도세 면제 대상이 아니던 서울 반포래미안퍼스티지 33평형(84.93㎡)도 부동산 대책의 수혜를 받을 수 있게 된다. 이 아파트의 경우 원안에서 면적 기준은 만족했지만 가격 기준(매매가격 13억원대)을 초과해 양도세를 면제받을 수 없었다. 하지만 민주당이 합의해준 것에 따르면 면적 기준만 만족해도 되기 때문에 양도세 면제 대상이 된 것이다. 수도권의 중대형 아파트도 이번 합의로 혜택을 받게 됐다. 조선일보는 경기도 고양ㆍ용인ㆍ김포시 등지의 6억원 이하 85㎡ 초과 중대형 아파트를 그 대상으로 꼽았다. 전체적으로는 양도세 면제 대상이 애초 정부안 기준 585만2856가구에서 이번 합의로 100만 가구 이상 늘어난 686만5540가구가 될 것이라고 예상된다
(조선일보 4월 17일자 8면ㆍ링크).

결국 "투기 수요를 다시 창출하는 데 초점이 맞춰"
(남기업 토지+자유연구소 소장, 프레시안ㆍ링크)진 박근혜 정부의 4ㆍ1 부동산 대책을 더욱 강화한 게 민주당이 한 일이다. 여기에 '합의'라는 방식으로 그 정당성까지 더해준 것은 말할 것도 없다.

4ㆍ1 대책, 서민 주거 안정?

박근혜는 이번 대책을 '서민 주거 안정을 위한 주택시장 정상화 종합대책'이란 이름으로 내놨다. 그러나 4ㆍ1 대책은 '서민 주거 안정'과는 아무런 상관이 없다. 박근혜가 전하는 메시지는 간단하다. 공급은 줄인다. 대출은 늘려주겠다. 주택을 사고팔아 값을 올려라. 이를 위해 가장 앞세운 것이 취득세ㆍ양도소득세 면제다. 돈이 없는 사람에게는 대출을 늘려주겠다고 한다. 생애 최초 주택 구입자의 경우 부부합산 소득이 7000만원 이하인 경우 대출이자를 낮춰주고 총부채상환비율(DTI)도 적용하지 않겠단다(경향신문 4월 18일자 20면ㆍ링크). 앞으로 5년 간은 집값이 올라도 그에 대한 세금은 물리지 않을 테니 걱정말고 사라는 말이다. 심지어 다주택자에 대한 양도세 중과 폐지 카드도 만지작 거리고 있다.

● 민주당이 합의해준 박근혜 정부의 4ㆍ1 부동산 대책
- 양도소득세 5년 간 면제: 85㎡ 이하 또는 6억원 이하의 1세대1주택자(일시적 2주택자)가 보유한 기존 주택 및 신규ㆍ미분양 주택 대상, 다주택자 양도세 중과 폐지도 검토 중
- 생애 최초 주택 구입자 취득세 면제: 부부합산 연 소득 7000만원 이하, 면적 상관 없이 6억원 이하 모든 주택(분양권ㆍ오피스텔 제외)을 올해 안에 구입 시
- 대출금리 인하, 총부채상환비율(DTI) 예외: 생애 최초 주택 구입자 중 부부합산 연 소득 7000만원 이하, 담보가치인정비율(LTV) 완화도 추진 중
- 공급물량 축소: 연 7만 가구에서 연 2만 가구로 축소, 그린벨트 내 새 보금자리지구 지정 중단

대출 받아 집을 사고 집값 상승분으로 대출을 갚을 수 있었던 이전의 주택시장 구조를 존속시키겠다는 의도로 보인다. 이런 구조가 안정적으로 유지되는 것은 불가능해 보인다. 왜냐면 누군가는 늘어난 집값을 치뤄야 하기 때문이다. 임대 소득을 얻기 위해 여력이 있는 부자들이 더 많은 집을 더 쉽게 구입할 수 있게 하더라도, 그들도 늘어난 집값 만큼 전셋값 또는 월세를 늘리려 할 것이다. 자가 거주를 위한 내 집 마련도 힘들다. 한국의 집값은 소득에 비해 너무 높아 노동자와 서민들은 늘어난 집값을 감당할 여력이 없다. 하우스푸어의 등장은 이러한 사정의 결과다. 예전처럼 오를 것으로 기대해 무리한 대출을 받아 집을 샀다가 집값이 정체되거나 하락하는 상황에 대처하지 못하게 된 것이다.

그렇다고 해서 임금소득 등이 늘어난 대출을 갚을 만큼 증가한 것도 아니다. numbeo.com에 실린 서울의 소득 대비 부동산 가격 비율(PIR: Price to Income Ratio)은 2013년 4월 현재 12.74다. 이는 뉴욕(8.43), 도쿄(8.87)보다 높은 수치다
(링크). 2008년 12월부터 조사를 시작한 국민은행의 PIR도 비슷하다. 서울의 경우 2008년 12월 11.9에서 2012년 12월 9.5로 줄었지만 여전히 높은 값이다(2인 이상 가구 소득 5분위 중 중위가구, 주택가격 5분위 중 중위주택 기준). 남기업 토지+자유연구소 소장은 "현재 주택시장 침체의 근본 원인은 유효 수요자의 소득이 높은 주택 가격을 따라가지 못하는 데 있다"며 정부의 이번 대책이 별 효용 없을 것이라고 말한다(프레시안ㆍ링크).

이러한 사정으로 내 집 마련에 전력을 다했고 어느정도 꿈을 이룰 수 있었던 베이비붐 세대(1955~1964년에 태어난 사람들)와 달리 그 자녀 세대는 주택구입은 꿈도 못꾸고 월세든 전세든 셋집 마련에도 전전긍긍하고 있다. 대출금을 갚기 위해 전세를 월세로 전환하는 집주인들이 늘어난 만큼 전세물량이 줄어들면서 전셋값은 집값의 60~70%까지 폭등하고 있다. 1995년 10%대에 불과했던 월세 비율은 2010년 20%를 돌파했다. 높은 월세는 서민과 노동자들의 생활을 더욱 고통스럽게 만든다. 적은 돈이라도 매달 고정된 지출이 있다는 것은 부담된다. 여기에 집주인들은 은행금리 두 배 이상(연 7~9%)의 월세수익을 (대출을 갚기 위해 또는 은퇴 후 소득을 유지하기 위해) 고집하는 경우가 많다
(한국일보 4월 15일자 18면ㆍ링크). 비싼 월세를 감당할 수 있거나 운 좋게 전셋집을 구했다고 해서 주거가 안정되는 것 또한 아니다. 하우스푸어의 파산은 그대로 세입자의 파산으로 이어지기도 한다. 세입자에 대한 보호장치가 약하기 때문에 보증금을 떼먹히기 일쑤다.

대출 늘려줄테니 집 사라

상황이 이럴진데 박근혜 정부는 대출을 늘려서라도 집을 사라고 부추기고 있다. 여기에 민주당은 장단을 맞추고 있는 것이다. 민주당이 합의해준 정부의 부동산 대책은 결국 건설기업들 살리기 대책으로 보인다. 양도세 면제 대상에는 신규ㆍ미분양 주택도 포함되기 때문이다. 공공분양주택 공급도 2만 가구로 줄인다니 미분양에 고통받고 있는 아파트 건설사에 이보다 더 좋은 소식은 없다. 대규모 투자가 필요한 개발사업에 대한 개발부담금도 한시 감면해준다고 한다. 15년 이상 된 아파트의 수직증축도 허용해줬다. 이번 대책이 성공할 지는 모르겠지만 박근혜와 민주당 모두 '서민 살리기'보다 '기업 살리기'에 더 앞장서고 있다.

노동자ㆍ서민에게 시급히 필요한 것은 세입자 보호의 강화다. 장기적으로는 소득의 증가를 통해 무리한 대출 없는 내 집 마련을 가능케 하는 것이 필요하다. 공공주택 비율을 늘려 싸고 좋은 주택을 안정적으로 공급하는 방안을 마련하는 것도 필요하다. 핵심은 주택'시장'에 있는 것이 아니라 '주거'에 있는 것이다. 민주당은 '집은 사는(buy) 것이 아니라 사는(live) 곳'이라는 패러다임 전환이 필요하다고 주장해 왔다. 그러나 미디어스 김민하 기자가 잘 지적했듯이 민주당에게 "현실에서 부동산은 그저 buy-sell-buy로 이어지는 투기의 대상"이었을 뿐이다. "민주통합당이 슬로건을 무엇이라고 내세우든 이제 정부 부동산 대책에 대한 합의로 인해 이 체제의 공범자가 됐다는 사실은 변하지 않는 것이다."
(미디어스ㆍ링크)


서울 삼성동 전력거래소의 모습. [강윤중 기자/경향신문]


1994년에 비견되는 폭염이 연일 계속되고 있습니다. 냉방용 전력 사용이 크게 늘면서 대규모 정전 사태에 대한 우려가 커지고 있죠. 입추가 지나면서 더위도 기세가 꺾였습니다. 일단 정전사태 가능성은 낮아졌지만 전력 공급 부족 문제가 큰 쟁점이 되고 있습니다.

정부는 전력 위기를 핑계로 8월 6일 고리원전 1호기를 재가동하겠다고 발표했습니다. 고리 1호기는 수명이 다하고 고장이 잇따라 안전성에 의문이 제기되고 있었지요.

한겨레신문과 경향신문은 8월 7일자 사설에서 나란히 고리원전 1호기 재가동 결정을 비판하고 나섰습니다.

● [한겨레 8월 7일자] 고리 1호기, 전력난 구실로 재가동 안 된다(링크)
● [경향 8월 7일자] 고리 1호기 재가동, 국민 신뢰 확보가 먼저다(링크)

두 신문 모두 안전성에 대한 검증이 충분히 이뤄지지 않았고 국민의 신뢰를 얻지 못한 고리 1호기의 재가동에 반대하고 있습니다. 전력 공급이 부족한 상황에서 과도한 전력 사용량이 문제가 되고 있습니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두 사설 모두 정부의 '전력난 구실'에 대한 제대로 된 반박은 없습니다.

한겨레는 우리나라의 "1인당 전력소비 증가율이 경제협력개발기구 국가 가운데 가장 높은 전력 과소비국"임을 지적하며 정부의 에너지 정책 전환을 요구했습니다. 하지만 에너지 정책이 어떤 방향으로 전환되어야 하는지는 불투명합니다. 전력 과소비의 책임이 누구에게 있는지도 애매하게 처리되죠. 문구 그대로 보자면 우리 국민 모두의 책임인 것처럼 보입니다.

특히 경향의 태도는 안타깝습니다. 경향은 전력 위기가 정점이던 8월 6일자에 '전력 수요 억제 위해 요금 현실화 불가피하다'는 사설을 실었습니다.

● [경향8월 6일자] 전력 수요 억제 위해 요금 현실화 불가피하다(링크)

경향은 이 사설에서 한겨레와 마찬가지로 에너지 정책의 전환을 요구하고 있습니다. 한겨레보다 분명하게 표현된 정책 방향은 제목에서처럼 '요금 현실화'가 핵심입니다.

"일반 국민 중에서도 요금 인상을 반기는 사람은 거의 없을 것이다. 국민과 기업의 부담 증가에도 불구하고 현재 원가의 87%가량에 불과한 전기요금은 단계적으로 현실화할 필요가 있다. … 전력 수요 증가세를 그대로 반영해 공급을 늘릴 것이 아니라 수요를 획기적으로 줄이는 쪽으로 방향을 틀어야 한다. 전력 낭비와 과소비를 막기 위한 최우선 대책은 요금 현실화다."
- 경향신문 8월 6일자 27면

물론 이런 입장은 중앙일보의 뜬금 없는 '공동체 의식' 운운보다는 낫습니다(8월 7일자 중앙일보 사설 '전력위기 공동체의식으로 극복하자'ㆍ링크). 하지만 경향의 입장은 (한겨레도 마찬가지지만) 중앙일보와 마찬가지로 전력 낭비의 책임을 국민 모두에게 지우고 있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요금 현실화' 요구는 대다수의 서민들에게 반발만 살 대안입니다. 월급만 빼고 다 오르는 현실에서 전기요금을 인상하겠다는 것은 끓는 물에 기름을 붓는 격이죠.

전력 과소비의 현실은 어떨까요?

수치만 보면 우리나라가 전력 과소비국인 것은 분명한 사실인 듯 보입니다. 2009년 기준 우리나라의 1인당 연간 전력소비량은 8092㎾h입니다. 이는 일본 6739㎾h, 독일 5844㎾h, 프랑스 7020㎾h 등보다 월등히 높은 수치입니다. 그렇다면 한겨레신문ㆍ경향신문ㆍ중앙일보가 함께 입을 모으듯 국민 모두가 책임지고 전력 소비를 줄이거나, 전기요금을 올려야하는 것일까요?

그러나 현실을 조금만 들여다보면 많이 다른 모습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조선일보 8월 8일자 사설에 의하면 1인당 가정용 연간 전력소비량은 1088㎾h로 일본 2189㎾h, 프랑스 2326㎾h의 절반에 불과합니다. 지난해 한국의 전력소비량 가운데 산업용은 55%지만 주택용은 18%밖에 안 됩니다.

조선일보는 8월 8일자 사설에서 이렇게 쓰고 있습니다.

"이런 상황에서의 절전 보조금은 기업들의 방만한 전기 소비 탓에 발생한 전력난을 해결하려고 국민 세금으로 기업들을 지원해주고 있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정부와 기업은 이 상황을 국민이 언제까지 납득해줄 것인가 하는 점을 생각해봐야 한다."
- 조선일보 8월 8일자 35면

위에 제가 인용한 수치들은 모두 이 사설(8월 8일자 조선일보 사설 '기업들이 電氣 더 아끼지 않으면 '전력 위기' 계속된다'ㆍ링크)에서 인용한 것입니다.

조선의 사설은 전력 소비구조와 함께 비정상적인 전기요금 체계의 문제도 짚습니다. 현재 산업용 전기요금은 ㎾h당 97원입니다. 이는 지난해를 기준으로 했을 때 전기생산 원가의 87.5% 수준이라고 합니다. 게다가 산업용 전기요금은 누진제 적용도 받지 않습니다. 이에 반해 주택용은 ㎾h당 128원에 "세계에서 가장 강력한 수준이라는 가중 누진제를 적용"받고 있습니다. 이는 경향이 생산 원가의 87%라고 애매하게 지적한 낮은 전기요금의 혜택을 국민 모두가 동일하게 받지 않음을 말해줍니다.

기업이라고 다 같은 것도 아니었습니다. 3300V 이상 고압 전기를 공급받는 대기업은 ㎾h당 96.6원의 전기요금을 내지만, 저압을 사용하는 중소기업은 ㎾h당 112.9원을 부담하더군요. 즉 대기업은 가장 많은 전기를 쓰면서도 가장 적은 비용을 치르고 있다는 것입니다.

에너지 과소비의 겉으로 드러난 '현실'만 지적하며 요금 현실화를 요구하는 경향, 모두 함께 아끼며 살자는 중앙보다 조선의 분석이 훨씬 구체적입니다. 이러한 분석은 전기 부족을 이유로 고리원전 1호기를 재가동하고, 추가적인 원전 건설을 추진하는 정부에 대응할 때도 설득력 있는 반대 근거로 제시될 수도 있을 것 같습니다.

기업들의 이익에 도전하지 못하는 중앙일보야 그렇다 칩니다. 하지만 한겨레와 경향의 사설 수준은 많이 아쉽습니다. 그들이 특히 특권과 부당한 권력 행사에 분노하는 시민들 편에 서기 위해 노력하는 신문이라는 점에서 더 그렇습니다.

5월 6일 솔로몬ㆍ미래ㆍ한주ㆍ한국 4개 저축은행이 영업정지 됐습니다. 솔로몬저축은행은 업계 1위의 자리였기에 충격이 더 큽니다. 4개 저축은행에 예금을 맡긴 사람은 36만8000여 명에 달합니다. 금액은 7조4400억원에 이른다고 하죠. 조금이라도 나은 이자를 찾아 쌈짓돈을 맡겼을 서민들에겐 무척 충격적인 사건일 것입니다.

이 사건을 울지도 웃지도 못하게 만드는 것은 미래저축은행의 회장 김찬경의 해외 도피 시도 때문입니다. 서울대 법대생 사칭, 160억원을 연체한 신용불량자 …. 과거가 한꺼플씩 벝겨지면서 이러한 사기꾼이 '저축은행'의 회장까지 될 수 있었던 과정에 궁금증이 더해집니다. 궁금증을 해결하기 위해 오늘 주요 언론에 보도된 저축은행 관련기사를 엮어봅니다.


'은행'으로 신분세탁에 성공한 상호신용금고

중앙일보에 의하면 김찬경이 저축은행을 인수한 것은 1999년입니다. 당시는 아직 '상호신용금고'라고 불리던 때죠. 신용금고는 1972년 계와 고리대금업을 양성화하면서 만들어진 것입니다. 뿌리는 사채인 것입니다. 그러다보니 소유에 대한 규제가 상대적으로 약했죠.

번성하던 신용금고도 1997년 외환위기를 빗겨갈 순 없었습니다. 1998년 한해만 100여 개의 신용금고가 퇴출됐습니다. 공적자금을 아끼기 위해 금융당국은 인수자만 나타나면 그 자격을 검증할 겨를도 없이 넘기기에 급급했죠. 당시 금융시장 구조조정을 담당했던 사람은 중앙일보와의 인터뷰에서 "돈만 싸 들고 오면 상호신용금고를 인수할 수 있었던 것이 사실"이라고 털어놓습니다. "공적자금을 아끼기 위해서라도 인수자가 나타나면 자격을 묻지 않고 부실 금고를 넘겨야 했"기 때문이라고 설명합니다.

김찬경이 미래저축은행의 전신인 대기상호신용금고를 인수한 것도 이때입니다. 정부는 1999년 이후 신용금고 확대 정책을 이어갑니다. 2001년에는 예금자 보호 한도를 5000만원으로 늘려줍니다. 2002년에는 이름을 '상호저축은행'으로 바꿔주고 2006년엔 아예 '저축은행'으로 부르게 했죠. 법인 대출한도를 확대하고 인수합병도 적극 권장해 저축은행의 덩치 키우기를 도와줍니다.

그러나 규제는 저축은행의 성장을 따라가지 못합니다. 대주주에 대한 적격성 심사는 2010년에야 도입됩니다. 김찬경이 저축은행의 회장일 수 있었던 것은 이 심사가 시행되기 전인 2006년부터 이미 신용불량자였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소급' 적용할 수 없었기 때문이라는 것이죠.

한겨레에 의하면 대주주가 경영을 장악하는 구조는 여전하다고 합니다. 자산규모 1조원 이상의 경우 최대주주 지분율이 62.2%, 1조원 이하의 경우에는 70.4%에 다다른다고 합니다.

●[한겨레] 신용불량자도 대주주 … 지분 70% 쥐고 전횡
●[중앙일보] 6년째 신용불량자, 어떻게 저축은행 회장님 됐나


"부동산이 이렇게 될 줄 몰랐다"

이번에 영업정지된 4개 저축은행을 비롯해 지난해 퇴출된 저축은행들 모두 여지 없이 그 소유주들이 불법 행위가 드러나 더 충격을 주고 있죠. 이와 관련해 언론들은 한결 같이 금융당국의 규제ㆍ관리 부실과 저축은행의 잘못된 소유구조를 짚고 있습니다. 앞에 링크한 한겨레와 중앙일보의 기사가 대표적입니다.

하지만 더욱 궁금해지는 것은 그들의 성공 비결입니다. 프레시안은 "저축은행이 지금처럼 몸집을 키울 수 있었던 것"은 "PF 사업 때문"이라고 단언합니다. 2000년대 중반 이후 부동산 경기의 확장은 중소 건설사와 시행사까지 대규모 사업에 뛰어들게 만듭니다. 하지만 이들 중소 건설ㆍ시행사는 "낮은 신용도 때문에 시중은행 등 제1금융권과 거래하기 어렵고, 자본시장에서 PF 관련 자산유동화기업어음(ABCP) 발행도 불가능하기에 대출 이자율은 높지만 비교적 문턱이 낮은 저축은행에 손을 벌리" 게 된다는 것이죠.

정부에서도 부동산시장 부양을 위해 저축은행의 대출 확대를 도와줍니다. 2008년 금융위기 전까지 부동산시장의 끊임없는 확대는 이들 대규모 개발사업에 대한 투자가 황금알을 낳는 거위로 보이게 했죠. 저축은행들도 PF 대출에 앞다퉈 나서게 됩니다. 지난해 저축은행 퇴출과 관련해 열린 청문회에서 관련 당사자들이 "부동산이 이렇게 될 줄 몰랐다"고 입 맞춰 말한 이유입니다. 조선일보 송희영은 이에 대해 "역대 금융감독원장들 중 누구도 책임지는 발언을 하지 않았다"며 분통을 터뜨리기도 했죠.

그러나 하락하기 시작한 부동산시장과 함께 PF 대출은 대출은 준 쪽도, 대출을 받은 쪽에게도 부메랑으로 돌아왔습니다. PF 사업은 시중 은행보다 높은 대출이자 때문에 빠르게 사업을 마무리 지을 수록 이익이 남는 구조입니다. 이번에 문제가 된 파이시티 사업의 이자율은 연 17%였다고 합니다.

이런 상황에서는 이자를 무는 것보다 적당한 뇌물로 빠르게 인ㆍ허가를 받는게 훨씬 수지에 맞는 일입니다. 정부 관료들과 사업자ㆍ저축은행의 결탁은 바로 여기에서 비롯하죠. 게다가 부실한 저축은행 관리 체계에 안개에 가려진 특수목적회사(SPC)들은 뇌물과 부정을 위한 비자금 조성을 쉽게 해줍니다. 부패와 사기, 부정한 결탁, 저축은행의 부실화가 하나의 수레바퀴처럼 맞물려 돌아가게 됩니다.

●[프레시안] 문 닫은 저축은행, '그들'은 웃는다


소나기는 지나갔는가?

이번 영업정지 조치로 20여 곳의 저축은행이 퇴출됐습니다(아직 절차가 남아있긴 합니다). 업계 1위의 회사까지 영업정지 됐으니 이제 큰 위험은 다 해결한 것일까요?

그러나 불행히도 그렇게 보이진 않습니다. 문제는 자산관리공사(캠코)가 갖고 있는 저축은행의 부실 PF채권이 6조원 규모나 남아있다는 것입니다. 2008년 세계 금융위기에 국내 부동산시장도 타격을 받아 침체하게 됩니다. 대규모 PF 사업들도 좌초하게 되고 이 곳에 투자했던 저축은행들도 위기에 처합니다. 캠코는 484개 사업장 7조3863억원어치의 부실 PF대출을 저축은행으로부터 장부가격의 70%에 인수합니다.

저축은행은 숨통을 틔게 됐죠. 그러나 이것은 한시적인 조치일 뿐입니다. 캠코가 5년동안 이 부실 채권을 팔아보고, 안 팔리면 저축은행이 다시 되사야 하는 조건이었습니다. 조선일보 보도에 의하면 이 중 팔린 것은 1조5677억원으로 전체 부실 PF채권 규모의 21%에 불과합니다. 즉 여전히 부실 PF채권이 6조원가량 남아있고, 이것들이 내년까지 팔리지 않으면 저축은행들이 다시 인수해야 한다는 것이죠.

현재의 부동산시장 상황에서 내년까지 6조원의 부실 PF채권이 해결될 것으로 보이진 않습니다. 금융감독원에 의하면 3월 기준 전체 부동산 PF 부실채권 비율은 9.09%입니다. 이는 지난해 3월(18.09%)보다는 줄었지만 지난해 말(8.14%)보다는 높은 수치죠. 이명박 정부가 부동산 경기 부양에 그토록 애쓰는 데 이 것도 큰 몫을 차지하고 있지 않나 싶습니다.

게다가 부동산 만이 문제는 아닙니다. 한겨레에 의하면 PF 사업의 부실화로 새로운 자금운용처를 찾지 못한 저축은행들이 가계대출을 크게 늘리고 있답니다. 지난해 저축은행의 가계대출 증가율은 24.7%로 일반은행보다 4배 이상 높은 수치를 기록하고 있습니다. 가계대출 부실채권 비율이 5년 만에 최고치를 기록하고 있다는 언론보도가 잇따라 나오고 있는 상황이라 이러한 상황은 더욱 우려스럽습니다.

●[조선일보] 그래도 남은 PF 시한폭탄 6조
●[한겨레] 퇴로 막히고 출구 비좁고 … 남은 저축은행도 '불안'
●[서울신문] 가계대출 부실비율 5년만에 최고치


"저축은행 사태가 저축은행 울타리 안에서 끝나기만을 …"

김찬경 미래저축은행 회장의 사기 행각은 어이 없는 웃음을 자아냅니다. 한국사회의 허술함에 혀를 차게도 하죠. 그러나 이것을 꼭 한국 만의 후진국적 현상으로 볼 필요는 없을 것 같습니다. 2008년 미국 금융위기의 하이라이트는 버나드 메이도프의 폰지사기(돌려막기의 방법으로 새로운 투자자의 돈으로 기존 투자자에게 수익금을 지급하는 사기)가 장식했었죠. 메이도프의 사기극은 월스트리트 첨단 사기기법의 일례일 뿐입니다. 우리나라 저축은행 사태에서도 월스트리트 사기극의 주범들은 그대로 등장합니다. 부동산과 가계대출의 확대, 금융 당국의 안이함 또는 결탁, 신용평가기관의 신용 남발(경향신문ㆍ링크), 금융기관의 부정ㆍ부패 ….

지난해 5월 조선일보 송희영이 "저축은행 사태가 저축은행 울타리 안에서 끝나기만을 바랄 뿐"이라고 적은 것은 이 때문이죠. 1년이 지나 저축은행에 대한 구조조정은 일단락을 지은 듯도 싶습니다. 그러나 그 뿌리는 여전히 건재한 듯 보입니다.

노동자ㆍ서민의 고통도 그대로입니다. 예금을 맡긴 쪽도, 대출을 받은 쪽도 모두 고통받고 있습니다. 한푼이라도 더 벌어보려고, 당장의 생활비ㆍ학자금 마련을 위해 돈을 벌어보려고 그들은 저축은행을 찾았습니다. '저축은행'을 키워드로 검색을 하니 학자금 대출에 대한 학생들의 문의가 수없이 나오더군요. 솔로몬저축은행의 가장 큰 지점이 신촌에 있었다는 얘길 듣고 깜짝 놀라면서도 그럴만 하다고 고개를 끄덕인 것은 그 때문입니다.

우리나라는 다행스럽게도 (이명박에게는 정말 운이 좋게도) 2008년 세계적인 금융위기에서 재빨리 벗어날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금융부문의 위기가 정부부문으로 전가돼 유럽에서 다시 꿈틀대고 있듯이 위기는 아직 끝나지 않은 것 같습니다. 그리고 우리도 2008년 미국과 거의 비슷한 문제를 여전히 떠안고 있습니다. 저축은행 사태를 그저 몇몇 모리배들의 사기행각 만으로 바라봐선 안 될 이유입니다.

●[조선일보] 저축은행에서 나온 폭발물

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hm&sid1=101&oid=001&aid=0005497905

 

그리스 2차 구제금융을 위해 트로이카(EU, ECB, IMF)가 요구한 재정긴축을 포함한 개혁안(최저임금 인하, 공무원 인력 감축 등)의 수용이 그리스 정치권 내에서 합의를 도출하지 못했습니다. 인상적인 것은 그리스 극우 정당인 라오스(LAOS)의 카라차페리스 당수의 말입니다.

 

"나는 빈곤에서 출발하는 혁명의 발발에 기여하지 않을 것이다. 이 혁명은 전 유럽을 불태울 것."

 

이 말은 현재 재정위기를 겪고 있는 유럽의 국가들과 세계의 지배자들이 처한 딜레마의 한 면을 보여준다고 생각합니다. 즉, 그들은 현재의 재정위기를 해결하기 위해 노동계급의 생활 수준을 악화시키는 결정과 조치들을 할 수밖에 없는 처지이지만, 그러한 조치는 반대로 막대한 저항과 반란의 도화선이 될 수 있다는 두려움에 휩쌓여있기도 합니다.

 

노동계급에 대한 적대감을 여지 없이 보여주고 있는 라오스 당수의 말은 바로 그러한 지배계급의 '두려움'을 표현하고 있는 것이죠.

"비정규직을 구해낼 때 오로지 용단만 필요한 건 아니다. 누군가 비용을 부담해야 한다. 임금을 올려줘야 하고, 4대 보험도 들어줘야 한다. 유급휴가, 휴양 시설 사용 같은 복지 혜택도 똑같이 제공해야 한다. (중략)
이제 국내 기업들이 글로벌 생존 경쟁에 뛰어들면서 '회사의 이익이 바로 사원의 이익'으로 통하던 시대와는 결별했다. 어느 회사나 수시로 인건비 총액을 삭감한다. 회사와 종업원이 힘을 모아 회사를 키우고 사원 스스로도 커가면서 열매를 나눠 먹던 밀월 관계는 끝나가고, 회사와 사원이 한 지붕 아래 다른 방을 쓰는 사이가 됐다."
- 회사의 이익, 社員의 이익, '조선일보' 송희영 칼럼(링크)

조선일보 송희영은 정규직 전환, 확대는 비용이 든다고 말합니다. 그는 변화한 세계경제에서 더이상 회사의 이익과 사원의 이익은 일치하지 않는다고 옳게 지적합니다. 따라서 송희영은 정규직 전환 정책보다 비정규직에게 노동기본권을 보장하고 기업에게는 비정규직 채용의 권한을 늘려주어야 한다고 주장합니다.

사실 그에게 방점은 후자, 기업의 비정규직 채용 권한 확대에게 있을 것입니다. 비정규직 노동기본권 보장은 그에 뒤따르는 명분용일 뿐이겠죠. 그럼에도 불구하고 기업이 일방적으로 자신의 계급에게만 유리한 정책을 밀어부치지 못하는 상황을 반영한 주장이긴 합니다.

송희영이 미쳐 고려하지 못하는 것은 비정규직 노동기본권의 보장이 비정규직 부문에서 갈등 분출의 계기가 될 수도 있다는 점이죠. 전태일이 사문화됐었던 근로기준법 이정표로 삼았던 것처럼, 2010년 현대차 비정규직 노동자의 25일간 파업
(2010년 11월 15일~12월 9일)이 대법원의 판결에 기초했던 것처럼, 법적 제도적 권리의 확대는 노동자 투쟁에 큰 자심감을 부여할 가능성이 있습니다.

따라서 그가 원하는 변화가 이뤄지기 위해서는 (비정규직) 노동자 투쟁에 대한 강력한 탄압이 기본 전제로 필요합니다. 대처 시절 영국과 레이건 시절 미국에서처럼 말이죠.

송희영과 한국의 지배계급에게는 안타깝게도 그러한 강력한 국가 탄압을 실행하기 위한 조건은 부족하기 그지 없습니다. 특히 여권이 분열해 있고, 대중적 지지를 잃고 있는 상황에서 강력한 국가 탄압은 정권 자체를 날려버릴 수도 있습니다. 이명박과 한나라당은 대처와 레이건 만큼 사랑받지 못하고 있는게 문제인 것이죠.

다음 정권을 잡을 것이 확실해 보이는 민주통합당의 경우, 한국노총이 한 축을 이루는데서 보이 듯, 노동계급으로부터 완전히 독립적인 위치를 지니고 있지 못합니다. 한국노총이 우파 노조이긴 해도 이들 노동조합 세력의 (부분적인) 지지 없이는 완전한 정권 탈환을 기대할 수 없는게 민주통합당의 현실이죠.

결국 송희영(한국 지배계급)의 바람이 이루어지기 위해선, 즉 개선된 착취 체제를 만들어내기 위해선 어느 정당이 집권을 하든 '정규직 중심'의 한국노총과 민주노총 길들이기가 필수적일 겁니다. 이러한 길들이기가 (한국노총은 가능하다 할지라도) 가능할지는 의심스럽습니다. 설사 가능하다고 하더라도, 이는 공식 노동조합이 노동운동에서 지도적 역할을 잃게 할 가능성이 크죠. 사태가 이렇게 발전한다면 1930년대 미국에서 노동기본권이 확대되는 와중에 CIO(산업별노동조합회의)가 AFL(미국노동자협회)로부터 분리해 만들어졌던 것과 같이 제3노총이 만들어질 가능성도 있습니다
(미국에서 1935년 뉴딜 정책의 일환으로 만들어진 와그너법은 단결권ㆍ단체교섭권을 인정하고 최저임금제를 도입하는 내용을 담고 있습니다). 전국적 노동조합의 건설 없이 기업별 노동조합의 각개약진이 이뤄질 가능성도 있고요.

너무 먼 미래까지 나간 듯 합니다. 중요한 것은 한나라당이든 민주통합당이든 한국 자본주의의 '개선'을 과제로 삼는 한, 공식 노동조합에 대한 유화책과 함께 급진적 노동운동에 대한 강력한 탄압을 유지ㆍ강화하려는 시도를 할 것이라는 거죠. 이 와중에 정규직/비정규직에 대한 분리지배 전략은 더욱 기승을 부릴 겁니다. '비정규직 노동기본권' 보장과 함께 정규직에 대한 도덕적 공격을 기초로 일반적인 노동기본권 축소가 시도될 수도 있다고 봅니다.

조선일보의 지배계급 내 위상이 예전만 못한 상황에서 송희영과 조선일보의 구상이 얼마나 현실이 될지는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우파 언론인 중 가장 명민한 송희영의 주장은 꼼꼼히 따져볼 필요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런던 소요와 관련해 영국 사회주의노동자당(SWP)이 성명을 발표했습니다. 영국은 노회한 자본주의 국가로 프랑스에서와 같은 격렬한 소요와 시위, 반란은 불가능하리라고 보통 여겨졌었죠. 축구 훌리건들의 난동을 제외하곤 말입니다. 그러나 세계화된 경제는 노동자 계급의 반란에 있어서 국가간 차이를 없애고 있습니다. 2005년 프랑스에서와 같은 일이 영국 런던에서, 그리고 맨체스터를 비롯한 지방 산업도시로 확산되고 있는 것입니다. 분명 반복되는 듯 하지만 그것은 조금 다르게 진행되고 있음을 여기서 알 수 있죠. 부정형적인, 목표를 가지지 못한 이번 반란에 영국의 좌파가 그 정치적 대안으로 부상할 수 있을 것인가. 이들의 건투를 빕니다.

'레프트21'이 번역한 SWP의 성명을 아래 링크로 대체합니다.

● 영국을 휩쓰는 소요 … 고장난 체제가 낳은 분노가 폭발하다(링크)
소요는 분노의 표현이며 마틴 루터 킹이 예전에 말했듯이 “목소리 없는 사람들의 언어”다. 그러나 보수당을 저지하려면 소요 이상의 것이 필요하다.

1. 미국 의회의 정부부채 한도 증액 합의안이 공화당의 외고집 끝에 8월 1일 연방 하원을 통과했다. 이 합의를 이끌어내기 위해 오바마 정부는 공화당의 증세 없이 정부지출을 삭감해야 한다는 주장을 받아들였다.

2. 미 신용평가사 S&P는 8월 5일 미국 신용등급을 AAA에서 AA+로 한 단계 낮췄다. 이는 1941년 처음 AAA 등급을 받은 이후 70년만의 일.
▶ [조선일보] S&P, 미국 신용등급 AA+로 한 단계 강등

3. 채무한도 증액 협상이 타결되기직전, 신용등급 하락 소문까지 더해져 요동치던 주식시장은 S&P의 미국 신용등급 강등 소식에 급락. 8월 9일 현재까지 추락. 코스피도 8일에 이어 9일에도 사이드카가 발동되며 급락. 9일 오전에만 10%가량 추락.
▶ [경향 장하준 칼럼] 금융시장의 격랑, 예견된 것이었다

4. 금융이 세계적으로 격동을 겪고있는 8월의 첫째 주말 런던에서 폭동 발생. 마크 더건이라는 29살의 흑인 청년이 경찰의 총격에 의해 4일 사망한 것이 직접적 원인. 폭동이 처음 발생한 토트넘 지역은 상대적으로 낙후된 지역이고 인종갈등이 심각했던 곳. 평소 강압적인 경찰에 대한 반발도 컸다고 한다. 1985년에도 경찰의 가택 수색 중 흑인 여성이 심장마비로 숨져 커다란 시위가 일어난 적 있음. 경제위기로 일자리가 축소되고 수입이 주는 상황에서 영국 정부의 긴축정책이 하층 노동계급의 삶에 직접적인 타격을 주고있는 것이 배경으로 추측됨. 폭동은 현지 시간으로 8일 현재까지 런던의 타 지역으로 확산되고 있는 중. 폭동의 직접적인 발생 원인부터 발생 지역의 상태, 정치ㆍ경제적인 배경 등 모든 점에서 2005년 파리 교외지역의 폭동과 비슷.

▶ [Boston.com The Big Picture] London riots
▶ [헤럴드 경제] 英 런던 폭동 사흘째 확산 … 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