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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년 11월 29일

앰네스티 협조로 만들어진 '아랍의 봄'(장 피에르 필리외 글, 시릴 포메스 그림, 해바라기 프로젝트 옮김)이라는 만화가 지난 3월 번역돼 출간됐었다. 결론부터 먼저 말하자면 이 책은 '아랍의 봄'에 대한 오해와 왜곡으로 가득찬 책으로 읽지 않기를 강력히 권한다.

1. 이 책은 '아랍의 봄' 원인을 오직 독재와 권위주의 정치의 관점에서만 바라본다. 2008년 경제위기 후 곡물투기로 인한 국제 곡물가 상승이 아랍지역 인민의 생활수준 하락을 불러왔던 점에 대해선 한마디도 하지 않고 있다. 따라서 이집트에서 몇년 전부터 성장하던 노동운동에 대해서도 침묵한다. 몇몇 훌리건 팬클럽 이야기는 다루면서도 말이다. 그러니 이 책이 아랍의 봄 이전 지역 국가들이 서구식 신자유주의 경제정책을 빅아들여왔다는 것을 언급하지 않은 것도 당연하다.

2. 아랍의 독재ㆍ권위주의 정권과 서방 '민주주의' 국가의 협력적 관계에 대해서도 언급하지 않는다. 그곳의 독재가 과거 제국주의의 유산일 뿐만 아니라 현재 제국주의 정책의 결과임을 다루지 않는다. 따라서 이책에 의하면 제거돼야 할 악은 오직 아랍의 독재자들과 그들 나라의 비민주적 관습일 뿐이다. 그러다보니 이스라엘의 봉쇄에 고통받는 팔레스타인 가자지구 문제를 다루면서도 이스라엘과 서방보다는 하마스 비판에 더 열을 올린다. 그래서 아랍 인민의 서방에 대한 분노는 오직 음모론을 잘못 받아들인 결과로 설명한다.

3. 서방의 민주주의 국가를 아랍 독재자들과 상관없이 다루는 것은 물론 유럽의 리비아 폭격이 리비아 인민의 해방에 도움을 줬다는 식으로 다뤄진다. 서방의 이와 같은 개입들이 아랍과 그밖의 지역에서 반민주적 근본주의자들을 성장시켰음을 침묵하는 것은 당연하다. 이슬람국가의 성장은 그리 오래되지 않은 과거만 살펴도 충분히 가능성을 살필 수 있다. 그러나 이 책은 바로 그 한 치 앞도 살피지 못한다.

Posted by 때때로

우크라이나 사태는 현대 제국주의에 대한 좌파의 리트머스다. 소련 붕괴 후 사라진 것으로 보였던 '진영주의'가 여러 다른 형태로 부활하고 있다. 미국 중심의 일극적 제국주의에 반대하는 것에 익숙해진 여러 좌파가 러시아의 제국주의적 침략에 침묵하거나 그것을 반파시즘적 행동으로 고려한다. 이는 훌륭한 반제국주의 저널리스트였던 존 필저가 푸틴을 파시스트에 맞선 유일한 유럽의 지도자로 추켜세우면서 절정에 달한다. 2001년 만들어져 미국의 아프가니스탄ㆍ이라크 침공에 맞선 반전 운동을 훌륭히 건설했던 전쟁저지연합의 태도는 실망스럽기 그지 없다. 연합의 몇몇 지도자들은 돈바스 지역의 분리주의 운동을 팔레스타인 해방운동에 빗대기도 한다.

결국 이 모든 혼란은 제국주의를 일국의 패권적 행위로 이해하는 데서 비롯한다. 이렇게까지는 아니더라도 일국이 패권을 휘두르는 현재의 제국주의보다 다극적 체제가 더 낫다고 이해하는 듯도 싶다. 그러나 제국주의는 무엇보다 자본주의 세계 체제다. 현재 미국 헤게모니 하에 조직돼있다고 하지만 이것을 이해하는 것은 무엇보다 중요하다. 자본주의의 불균등한 발전은 언제나 도전하는 국가ㆍ민족경제를 예비해놓는다. 경제적 힘의 변동이 군사적 힘의 변화와 일치하진 않지만 이 둘은 긴장관계 속에 서로 떼놓을 수 없는 영향을 미친다. 특히 역사적인 지정학적 관계는 이러한 긴장을 급속도로 고조시키곤 한다. 한ㆍ중ㆍ일의 동아시아와 팔레스타인을 중심으로 한 중동, 흑해 연안 국가들과 발칸 지역이 그러한 곳이다.

하지만 지역에 따라서 제국주의적 갈등의 양상은 다르다. 이라크에서는 미국이, 팔레스타인에서는 미국의 경비견인 이스라엘이 일방적으로 행동하고 있다. 이곳에서 우리는 미국과 이스라엘에 반대하면 된다. 그러나 우크라이나는 다르다. 우크라이나에서는 두 개의 충돌하는 제국주의의 행동에 의해 인민이 희생당하고 있다. 분명 러시아가 미국에 비하면 훨씬 약한 제국주의긴 하지만 말이다. 미국보다 협소하긴 하지만 러시아가 자국의 영역이라고 생각하는 지역 내에서 지정학적ㆍ경제적 이해에 따라 행동하고 있다는 것은 분명하다.

인터내셔널뷰포인트에 실린 '우크라이나의 제국주의적 분할: 좌파와 반전 운동은 어디에 서있나?'는 사회주의자가 제국주의에 대해 가져야 할 원칙을 짚으며 현재의 반전 운동과 좌파가 빠져있는 혼란을 분석하고 있다. 우크라이나를 둘러싼 영국에서의 분열과 전쟁저지연합이 빠진 모순을 대상으로 하고 있지만 한국의 좌파에게도 남의 일 만은 아닐 것이다.

※ 대괄호[]는 이해를 위해 옮긴이가 덧붙인 것입니다. 의역이 많고 오역이 있을 수 있으니 원문을 참고해주십시오. 의역과 오역에 대한 지적은 언제나 달게 받겠습니다.


우크라이나의 제국주의적 분할: 좌파와 반전 운동은 어디에 서있나?
2014년 8월 12일 화요일, Fred Leplatㆍ링크

우크라이나의 제국주의적 분할이 러시아와 서방 제국주의 사이에 냉전 이후 볼 수 없었던 규모의 교착상태로 이어지고 있다. 이는 또한 좌파 내부의 상당히 오래된 심각한 분열을 드러냈다. 어떤 부분은 1990년대 초 옛 유고슬라비아의 붕괴 후 이어진 전쟁 기간의 논쟁을 떠올리게 한다[1].

좌파의 대부분은 러시아에서 푸틴과 그의 체제를 진보적인 것으로 말하지 않는다. 그러나 비난을 꺼리거나, 때론 침묵하기도 한다. 심지어 러시아의 크림 합병과 우크라이나 동부 개입을 지지하기까지 한다. 최근 출범한 우크라이나반파시스트연대
['Solidarity with the Antifascist Resistance in Ukraine'가 정식 명칭. 런던에서 6월 2일 출범했다. 이들은 자신의 목표로 ▷영국과 서방 정부의 키예프 극우 정부 후원 반대 ▷북대서양조약기구의 우크라이나 훈련 계획 반대 ▷5월 2일 오데사의 노동조합 건물에서 학살을 자행한 42명의 기소 ▷민주적 권리에 대한 공격과 좌파 조직에 대한 탄압 반대 ▷우크라이나에서의 반파시스트 저항에 대한 지원을 내걸고 있다. 홈페이지는 ukraineantifascistsolidarity.wordpress.com] 캠페인[2]은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동부 개입을 제외하고 오직 영국과 북대서양조약기구(NATO), 서방과 관련한 것들만 반대하고 있다.

이는 "우크라이나에서 독립적 사회주의자들과 노동운동을 지원하며 그들과 직접 연결망을 건설"하고 "러시아와 서방 제국주의의 외부 개입으로부터 자유롭게 우크라이나 인민 스스로 자신의 미래를 결정할 권리를 지지"하는 것을 기본적인 목표로 하는 우크라이나사회주의연대
['the Ukraine Socialist Solidarity'는 노동당 하원의원 존 맥도넬의 후원으로 5월 12일 의회에서 열린 모임에서 출범했다. 이들은 우크라이나에서 제국주의의 개입과 배타적 민족주의에 맞서 민주적 권리를 옹호하고 사회주의자들과 노동조합 활동가들, 노동계급의 활동에 대한 지원과 정보 제공을 목표로 한다. 홈페이지는 www.ukrainesolidarity.co.uk] 캠페인과 극명하게 대비된다[3].

레프트유니티(Left Unity)와 사회주의노동자당(the Socialist Workers Party)
[4]은 영국과 미국이 우크라이나의 위기에서 다시 또 NATO의 영역을 확장하고 전쟁 위협을 증가시킬 기회를 잡으려는 시도에 옳게도 반대해 왔다. 그리고 그들은 가능한한 우크라이나를 합병하려 한 러시아의 기도 또한 비난해 왔다.

레프트유니티는 3월 "미국과 NATO, 러시아, 유럽연합(EU) 어느 깃발 하에서든 군사적 개입은 오직 상황을 몇 배나 더 나쁘게 만들 뿐이다. 이것이 우크라이나
[상황이]다. 러시아가 국제법을 어겼다는 서방의 비난은 위선이다. 그렇지만 러시아 군대 역시 위기에 대한 어떤 해결책도 갖고 있지 않다"[5]고 발표하며 다음과 같이 호소했다. "정치적이든 경제적이든 군사적이든 우크라이나에 대한 어떤 외세의 개입도 반대한다. 우크라이나 모든 인민에게 민주주의와 평등을."

푸틴은 우크라이나 일부를 합병하려는 자신의 야망을 노골적으로 표현해 왔다. 야누코비치 전 대통령이 도피한 후 맺어진 러시아, 우크라이나, 미국, EU의 4월 17일 합의
[이 네 개 나라는 제네바에서 우크라이나 동부의 긴장 완화를 위한 조치에 합의했다. 그러나 실제로는 지켜지지 않았다] 이후 푸틴은 "하르코프, 루한스크, 도네츠크, 오데사는 차르 하에서 우크라이나가 아니었다"며 "오직 신만이 그곳들이 1920년 [소비에트 러시아로] 이전한 이유를 알고 있다"고 밝혔다. [그러나] 그러한 전환은 반혁명 장군 데니킨과 브랑겔을 물리치고 새로운 소비에트연방으로부터 모든 우크라이나인의 민족적 권리를 인정받으면서 이뤄졌다. 그 후 1954년 흐루쇼프는 다시 크림을 우크라이나로 되돌려줬다. 2014년 3월 러시아의 해군기지가 있는 세바스토폴을 포함한 크림의 합병은 타르투스에 해군기지를 허락한 시리아의 바샤르 알 아사드 살인 정권을 후원한 것과 마찬가지로 러시아 제국주의의 지정학적 이해관계에 강하게 결속돼 있다.

제국주의는, 그것이 유럽이든 다른 어느 곳이든 자신의 목적을 위해 그들을 전복시키기 위해 대중 운동에 개입하려 여러 차례 시도해 왔다. 1956년 헝가리와 1968년 프라하의 민주주의를 위한 거대한 대중운동은 신좌파와 트로츠키주의 전통의 혁명적 마르크스주의자들로부터 지지를 받았다. 공산당은 이 운동들이 CIA의 조종을 받는다고 주장하며 반대했다. 그렇지만 그들의 진정한 목적은 저 나라들과 소련의 '완충' 국가들을 지배하는 공산당들을 지지하는 것이었다.

2013년 말의 마이단은 때론 수십 만명을 동원한 사회 전반의 거대한 운동이었다. 이 운동은 올리가르히와 야누코비치의 부패에 반대하고 민주주의를 바라는 혁명적 열망이 반동적 성격의 민족주의, 그에 더해 번영과 민주적 권리를 가져다줄 것이라는 EU에 결부된 오해와 연결돼 있었다. 2013년 원래 야누코비치는 우크라이나의 파산으로부터 EU의 긴급 구제금융에 이끌렸었지만 이는 최근 러시아의 전략적 '완충지대'를 잃을지 모른다는 두려움에 휩싸인 푸틴의 더 나은 제안으로 이어졌다. 그의 몰락은 마이단의 거대한 운동 결과지 서방이 조직한 '쿠데타'의 결과가 아니다.

강력한 좌파의 부재는 프라비 섹토르 등 파시스트를 포함한 극우파가 마이단 운동을 진보적 경로로부터 이탈시키는 것을 가능케 했다. 포로셴코의 대통령 당선은 세력균형을 보여줬다. 그는 권위주의적이고 민족주의적이며 신자유주의적인, 극우파 후원자들이 포함된 정부를 이끈다. 크림과 우크라이나 동부에는 마이단 규모의 대중 운동은 없었고 사태는 "'인민'으로 포장된 경찰 폭력배들의 쿠데타"로 묘사돼 왔다
[6].

우리는 대중 운동이 우리의 이론에 맞지 않는다고 해서 제국주의에 조종받는다고 일축하기보다는 그 운동의 모순과 그에 수반한 세력을 이해하며 운동 자체로 다룰 필요가 있다. 맞불
[Counterfire. SWP에서 분리해 나간 급진 좌파 조직]의 지도적 회원 크리스 나인햄과 전쟁저지연합[the Stop the War Coalition. 2001년 9ㆍ11 테러 후 미국의 아프가니스탄ㆍ이라크 공격에 반대하며 조직된 영국의 전쟁 반대 공동전선]은 마이단 운동을 '조종당한 것'이라고, 거기에 더해 "몇몇 좌파가 우크라이나 혁명의 지지를 호소하고 모든 개입을 똑같이 비난하는 것은 의미 없는 행동보다도 더 나쁜 것"이라고 폄훼했다[7].

혁명적 마르크스주의자는 우크라이나의 현재 내전에 중립적일 수 없다. 우선 우리는 우리 정부의 개입에 반대하고 우크라이나의 자주권을 방어해야만 했다. 거기에 우리는 또한 민주주의와 사회적ㆍ경제적 정의를 위해 우크라이나 올리가르히, 러시아와 함께 서방 제국주의의 개입에 맞선 노동계급의 투쟁을 지지한다. 우크라이나 위기의 일부분은 스탈린과 소련의 붕괴가 남긴 해결되지 않은 민족주의적 문제다. 제4인터내셔널은 최근 "우크라이나에서 민족문제를 민족주의자들에게 떠넘긴 좌파는 그 스스로 앞선 실패에 대해 비난받아 마땅할 것이다. 민족주의 진영은 이미 현재 사회주의 좌파의 주변부에서 잇점을 차지하며 성장하고 있고 노동자들의 시야에 자본주의의 진보적 대안으로 보이려 한다"고 적고 있다
[8].

맞불과 영국 공산당(the Communist Party of Britain) 사회주의자행동
[Socialist Action. 1983년 SWP에서 분리된 그룹ㆍ9]의 접근법은 오늘날 주요 전쟁 위협은 서방 제국주의, 특히 세계의 주요 군사적 제국주의적 권력인 미국으로부터 비롯된다고 본다. 여기에 유럽 동부를 향한 NATO의 확장과 군사훈련은 1914년 제1차 세계대전을 연상시키는 위험의 확대다. 몇몇은 미국 헤게모니 하의 '단극적' 세계가 경쟁 국가들의 '다국적' 세계보다 더 위험하다고 믿는다[10]. 이러한 접근법의 결론은 푸틴 정부가 최선은 아닐지라도 러시아와 중국은 미국 헤게모니의 평형추라는 것이다. 따라서 오늘날 사회주의자들에게 유일하게 중요한 것은 우리의 정부가 전쟁에 돌입하는 것과 NATO의 확장을 중단시키는 것이다.

러시아와 중국에 대한 비판은 물타기로 보인다. 이들 나라는 미국과 같이 위험한 전쟁광은 아니기 때문에 자본주의가 복원되지 않은 몇몇 곳에서는 좌파와 진보적 동맹을 맺을 수 있다. 이는 소련이 존재하던 시절 좌파의 일부, 특히 공산당과 노동당에 영향을 미쳤던 '진영주의'의 부활이다.

분명 사회주의자는 그들 자신의 제국주의적 정부에 우선 반대해야 하지만 그들은 전 세계에서 노동 인민과 약소 민족ㆍ국가를 공격하는 제국주의 일반에도 반대해야 한다. 이는 NATO의 확장과 개입뿐 아니라 러시아의 크림 합병, EU와 러시아 양자에 의한 우크라이나 분할에도 반대해야 함을 뜻한다.

오늘날 자본주의는 세계적으로 뒤엮인 미국 헤게모니 아래 통합된 체제
[11]고 이는 1914년과 다른 것이다. 20세기 두 번의 세계대전은 주로 세계에서 영역을 차지하거나 지배권을 지키기 위한 경쟁 제국주의간 전쟁이었다. 이들 전쟁의 결과 미국은 그 자신의 거대한 경제와 그보다 더 큰 군사적 힘, 세계은행ㆍIMFㆍNATO와 같은 기구를 통해 자본주의 체제를 지배하는 세계에서 가장 압도적인 강대국 지위를 확고히 했다. 자본주의 세계 체제는 러시아와 중국에서 자본주의가 복권되면서 더 널리 확장됐다. 하지만 이것이 제국주의간 경쟁과 국지전 위협이 더이상 중요치 않다는 것을 뜻하진 않는다.

오늘날 작동하는 미국 헤게모니 형식은 더 약한 국가들이 미국의 핵심적 이해관계에 도전하지 않는다는 전제하에 군사적 개입을 포괄하는 자신의 제국주의적 야망과 지역의 지정학적 이익 추구를 허락한다. 러시아와 중국의 제국주의적 야망이 성취한 연약한 수준은 미국 제국주의에 어느 정도 비용을 치뤄야만 한다. 그들이 만약 선을 넘는다면 '불량' 국가가 돼 이라크의 경우처럼 군사적으로 점령당하거나, 이란과 현재 러시아에 부과된 것과 같은 제재를 받아야만 한다. 미국 제국주의는 자신의 틀 내에 약소국들을 잡아두기 위해선 무력을 이용해 많은 위협을 가해야만 한다. 이는 우크라이나에서 MH17기가 돌발적으로 추락한 것이나 1988년 미 해군에 의해 이란 항공기가 격추당해 269명의 목숨을 잃은 것과 같은 어떤 사건에 의해 급격히 전면적인 군사 대결을 고조시킬 수 있는 위험한 게임이고 이 게임의 규칙이 더 이상 미국 제국주의와 그 동맹자들의 손 안에만 있진 않을 것다. 그러나 무력을 이용한 위협을 두 번의 세계대전을 일으켰던 것과 같은 제국주의간 경쟁을 향한 역학과 헷갈려선 안 된다.

러시아가 지정학적 영역 내 지역에 머무르는 동안에는 서방 제국주의(바로 미국과 NATO)는 러시아의 크림 합병에 크게 상관치 않는다. 러시아에 대한 몇몇 제재조치가 발표됐지만 지금까지는 - 주로 개인을 대상으로 한 - 상징적인 것일 뿐이다. 하지만 무기와 가스 거래, 자본주의 체제의 세계화 때문에 뿌리깊은 분열이 있고 이는 그것
[제재조치]들을 확대시킬 것이다. 러시아 자본주의에 피해를 줄 제재는 서방 자본주의에도 또한 영향을 미칠 것이다.

이는 러시아가 시리아의 바샤르 알 아사드 정권에 계속해서 무기를 공급하면서 후원하는 것에 미국 제국주의가 게의치 않는 이유를 설명해준다. 두 나라 모두 바샤르 알 아사드의 실각을 원하지 않는 데 우연치 않게 이해관계가 일치한 것이다. 아사드 정권의 붕괴는 타르투스의 러시아 해군기지뿐 아니라
[중동] 지역에서 자신에 대한 신뢰를 재구축하려는 미국의 시도를 위협하는 중단된 '아랍의 봄'을 부활시켜 시리아와 이스라엘의 '평화적 공존'을 전복시킬 수도 있다.

미국과 러시아의 협력은 1989년 장벽의 붕괴로 거슬로 올라간다. 당시 고르바초프는 외국인 투자와 군비경쟁 축소를 암묵적인 대가로 독일의 재통일과 NATO로의 통합에 반대하지 않았다. 심지어 협력은 스탈린 치하 소련과 미국 제국주의 사이의 '평화적 공존' 시기로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혁명 운동은 소련의 외교정책상 필요에 종속돼 조종당했다. '일국에서의 사회주의 건설'은 제국주의와의 협조를 뜻했다.

제국주의 국가들의 계층구조에도 불구하고 미국 제국주의 아래 세계적으로 통합된 자본주의 체제라는 관점은, 미국 제국주의를 주요 위협으로 보며 다른 제국주의 국가를 차악으로 여기는, 따라서 "세계를 우리가 100년 전 목격한 폭력적 혼란으로 이끄는 국제적 대립"의 시기에 우리가 접어들었다고 믿는 저 사회주의자들의 입장과는 다르다
[12].

유감스럽게도 러시아ㆍ중국ㆍ쿠바ㆍ베트남에서와 같은 대규모의 사회주의 혁명적 격변, 즉
[변혁을] 저지하기 위해 대규모 군사적 개입이 필요했던 격변은 [우크라이나 동부에] 없다. 신자유주의적 긴축은 노동계급이 쟁취했던 것들을 파괴하고 새로운 생산관계를 만들어내면서 세계 곳곳에서 작은 저항들을 촉발시키고 있다.

따라서 미국 제국주의를 주요 위협으로 보는 이들은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개입에 맞서는 데 실패했고 몇몇은 친 러시아 민족주의자들이 그들을 이용하는 것을 허락하기까지 했다. 그들은 서방 제국주의에 맞서고 있는 노동계급과 쿠데타로 수립된 키예프의 '나치' 정권에 대한 이들의 투쟁에 지지를 선언하면서 이 민족주의자들에 신뢰를 보내고 있다.

존경받는 탐사보도 저널리스트인 존필저는 "분명한 것은 버락 오바마의 탐욕이다. 우크라이나에서의 무모한 쿠데타는 내전을 촉발시켰고 블라디미르 푸틴을 덫으로 내몰"고 있으며 "러시아 크림에서 (워싱턴의 쿠데타에 대한) 모스크바의 불가피한 응답은 자신의 흑해 함대를 보호하기 위한 것"이라고 적었다
[13]. 민족주의와 신자유주의적 성격이 강할지라도 대중운동이 아닌 쿠데타가 있었다고 당신이 일단 믿는다면 러시아가 크림을 합병할 권리를 포함한 그 어떤 것도 믿을 수 있을 것이다.

필저는 뒤에 쓴 글
[14]에서 "이들 폐쇄적 국가의 지도자들은 이란의 민주주의자 모하메드 모사데크[1953년 이란의 총리였던 모하메드 모사데크는 영국과의 합작 석유회사를 국유화하려 했다. 이에 미국 CIA는 '아약스 작전'이라는 이름으로 모사데크를 축출하는 데 성공한다], 과테말라의 아르벤스[1944년 혁명의 지도자. 1950년 대통령에 당선된다. 이후 미국의 다국적 기업 유나이티드푸르츠가 대부분 소유했던 경작지를 국유화한 후 인디오와 빈농에게 재분배하는 농지개혁을 시도한다. CIA는 '자유의 소리' 방송을 이용한 반정부 선전 공작을 펼치고 카를로스 아르마스의 쿠데타를 후원한다. 아르벤스 대통령은 1954년 6월 18일 쿠데타로 멕시코에 망명한다], 칠레의 살바도르 아옌데[CIA가 후원한 피노체트 쿠데타로 1973년 9월 대통령궁에서 목숨을 잃는다]와 같이 대개 폭력적으로 제거되거나 콩고민주공화국의 파트리스 루뭄바[콩고민주공화국의 초대 총리. 벨기에로부터의 독립을 이끌었다. 친소적 행보 때문에 미국의 심기를 거슬렸다. 미국은 모부투의 쿠데타를 지지했고 루뭄바가 모부투 군대에 의해 총살당하는 것을 묵인했다]처럼 살해당했다. 이들 모두는 서방 언론에 의해 비난의 대상이 됐다. 피델 카스트로, 우고 차베스, 현재의 블라디미르 푸틴을 떠올려 보라"고 쓴다. 푸틴을 차베스나 카스트로와 비교하는 정치적 맹신으로 이어진다.

계속 이어진 글에서 그는 여기서 더 나가 "따뜻한 바다에 있는 러시아의 역사적이고 합법적인 크림 해군기지를 강탈하려는 계획으로 민주적으로 선출된 키예프의 정부에 대해 2월 쿠데타를 배후조종한 워싱톤은 실패했다. 러시아는 그들이 지난 한 세기 동안 서방의 위협과 침략에 맞서 해왔듯이 그들 스스로 방어해 냈다"고 적고 있다. 워싱톤이 크림의 러시아 해군기지를 강탈하려 계획했다는 필저의 믿음은 그가 제정신인지 궁금케 만든다.

그러나 그는 같은 글에서 더 나아가 "독일에게 푸틴이 21세기 유럽에서 파시즘의 부상을 비난하는 유일한 지도자라는 것은 가슴 아픈 역설"이라고 적어 더욱 놀랍게 한다. 푸틴이 러시아와 유럽 전역에서 극우파나 파시스트와 협력했다는 증거는 풍부하다. 프랑스 국민전선(the Front National)의 마리 르 펜은 1월 두마에서 환영받았으며 두마 의장과 부총리를 만났다
[15]. 프라우다는 러시아가 유럽의회에서 파시스트를 지지함을 공개적으로 인정했다[16]. 나치는 메이데이에 모스크바에서 스탈린주의자들과 나란히 행진하는 걸 허락받았다[17].

필저의 이와 같은 글은 사실을 무시한 채 러시아 제국주의의
[크림] 합병을 지지하고 푸틴을 반파시스트로 덧칠한다. 이런 쓰레기 글은 비난받아 마땅하다. 기이한 것은 이 글이 전쟁저지연합 홈페이지에 논평 없이 실렸다는 점이다.

유감스럽게도 필저가 러시아를 지지하는 유일한 사회주의자는 아니다. 에몬 맥캔은 올해 초 "만약 우리가 크림에서 어느 한 편을 들어야 한다면 그것은 러시아다"고 적었다. "이 경우 그런 측면에서 러시아가 서방보다 더 많은 권리를 가졌"기 때문이다
[18]. 사회주의자행동은 우크라이나에서의 사태를 러시아와, 제국주의가 아닌 것으로 명백히 그려지는 러시아와 제국주의 사이의 투쟁으로 바라본다('제국주의 공세가 우크라이나 비극의 원인', 폴 로버츠, 2014년 7월 22일ㆍ링크). 존 필저가 '독일인'에 대해 언급한 민족주의는 공산당의 "독일 독점자본이 우크라이나로의 경제적 확장을 준비하는 것은 분명하다"는 관점에 반복된다[19]. 사회주의자의호소[Socialist Appealㆍ국제마르크스주의경향(the International Marxist TendencyㆍIMT)의 신문. 테드 그란트가 1964년 영국 노동당 내 건설한 밀리턴트 경향의 후신ㆍ링크]와 노동자권력 또한 키예프의 파시스트에 맞선 투쟁을 응원하는 것으로 푸틴의 제국주의적 영토 강탈을 은폐한다.

우려스러운 것은 러시아 민족주의와 반동 세력이 러시아 좌파의 몇몇 또는 러시아 제국주의가 우크라이나 영토의 일부를 강탈한 것을 은폐하는 누군가와 협력하는 것이다. 7월 6~7일 (옛 우크라이나 영토이고 지금은 러시아에 합병된) 크림의 얄타에서 열린 '우크라이나에서의 갈등과 세계적 위기'라는 이름의 '국제 회의'가 있었다. 이 회의의 목적에는 '새로운 러시아
[Novorossiya] 건설 운동 지지를 위한 국제적 네트워크'의 설립을 포함하고 있다[20]. 회의는 러시아 사회주의자인 보리스 카갈리츠키와 몇몇 극우파 또는 파시스트 경향이 함께 조직했다. 이 중 다수는 체첸과 세르비아에서 싸웠고 백군 군주제의 옹호자인 '도네츠크인민공화국 국방장관' 스트렐코프의 지지자다[21]. 카갈리츠키가 책임자로 있는 세계화탐구와사회운동연구소[the Institute of Globalisation Studies and Social Movementsㆍ링크]를 제외하면 회의는 극우파인 새로운러시아를위한협력과지지센터[New Rus' Coordination and Support Centre]와 오스노바니펀드[the Osnovanye Fund]에 의해 조직됐다. 이 펀드는 분리주의 운동 지지를 위해 알렉산드르 프로하노프와 블라디슬라프 슈리긴(극우파 잡지 자브트라ㆍZavtra 편집자), 니콜라이 스타리코프(극우 위대한조국당의 지도자)와 같은 러시아 국적의 사람들에 의해 최근 설립됐다. 영국에서는 노동자권력의 리차드 브레너와 사회주의자행동의 알란 프리먼이 참여했다. 둘 모두 우크라이나반파시스트연대 캠페인 지지자다.

바로 러시아가 점령한 영역에서 반동 세력이 깊숙히 참여해 조직한 회의 밖에 사회주의자들은 머물러야만 했다. 8월 말 카디프에서 있을 NATO 대항-정상회의 발표에 보리스 카갈리츠키를 초대한 것도 실수다
[9월 영국 웨일즈에서 NATO 정상회담이 열린다. 이에 맞서 8월 31일부터 9월 1일까지 웨일즈 카디프에서 대항-정상회의가 열릴 계획이다. 보리스 카갈리츠키는 8월 31일 10시30분의 총회와 12시30분부터 열리는 워크숍에서 발표한다ㆍ링크].

우크라이나와 시리아에 대한 분열은 반전 운동에 심각한 영향을 주고 있다. 당연히 나토의 확장과 우크라이나 개입에 우선순위를 두는 동안 전쟁저지연합은 '모든 외국 군대의 개입 반대'를
[이미] 성명으로 발표했음에도 불구하고[22] 아직까지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개입에 공개적으로 방대하고 있지 않다. 또한 연합은 시리아에 대한 모든 외국의 개입에 맞서 시리아 인민의 자신의 미래에 대한 자유로운 결정권을 호소하는 서명을 거부하고 있다.

전쟁저지연합은 2001년 설립돼 아프가니스탄과 이라크 침략에 맞선 동원에서 전례 없는 역사적 역할을 했다. 연합은 세 가지 원칙에 기반해 설립됐다. ▷이라크와 아프가니스탄에 대한 제국주의적 개입 반대 ▷민주주의 방어 ▷인종주의와 이슬람 혐오 반대. 반전 운동이 우리 자신의 나라의 제국주의적 개입에 맞서는 데 초점을 맞출 때는 옳았다. 하지만 시리아와 우크라이나에서의 전쟁은 민주주의를 위해 민족주의에 의해 부추겨진 인종주의에 맞선 싸움이 이 나라들에 있음도 보여준다. 이 나라들의 인민이 스스로 자신의 미래를 민주적으로 결정할 수 있도록 모든 외세의 철수를 호소하지 않음으로써 전쟁저지연합은 실패하고 있다.


각주

[1] 이를테면 좌파는 모든 제국주의 개입에 반대하는 이들과 보스니아를 돕기 위한 서방의 '인도주의적' 개입을 지지하는 이들로 분열했었다. 몇몇은 최선의 경우 무비판적으로 세르비아의 지도자 밀로셰비치를 어떻게든 유고슬라비아가 님긴 인간의 얼굴을 한 진보의 유산으로 지지했다.
[2] 우크라이나반파시스트연대는 영국공산당과 맞불, 사회주의자의호소, 노동자권력의 지지를 받는다(링크).
[3] 우크라이나사회주의연대 캠페인은 사회주의저항[Socialist Resistance], 하원의원 존 맥도넬, 노동자항의위원회[the Labour Representation Committee], RS21, 노동자자유의 지지를 받는다(링크).

[4] Imperial Delusions, Alex Callinicos, ISJ 142, 31 March, 2014(링크)
[5] Against nationalism, corruption, privatisation and war, Left Unity, 3 March 2014(링크)
[6] 러시아 아나키스트 단체 Avtonomnoe Deistvie 활동가 VT와의 인터뷰(링크)
[7] Ukraine: why being neutral won’t stop a war, Chris Nineham, 23 March 2014(링크)
[8] Ukraine: Popular Movements and Imperialisms, Fourth International, 7 June 2014(링크)
[9] 세 단체의 모든 지지자들이 전쟁저지연합을 주도하는 주요 세력이다.
[10] Seumas Milne, ‘Georgia is the graveyard of America’s unipolar world’, The Guardian,28 August(링크)
[11] 레오 파니치와 샘 긴딘의 'The Making of Global Capitalism - The Political Economy of American Empire' 참조. 이 책의 리뷰는 여기(링크).
[12] MH17 and the threat of a world war, Matt Carr, 22 July 2014, Counterfire(링크)
[13] Obama’s coup in Ukraine has ignited a civil war and lured Putin into a trap, John Pilger, 17 April 2014(링크)
[14] In Ukraine the US is dragging us towards war with Russia, John Pilger, 14 May 2014(링크)
[15] http://imrussia.org/en/russia-and-the-world/645-putins-far-right-friends-in-europe
[16] http://www.thenation.com/blog/179963/decrying-ukraines-fascists-putin-allying-europes-far-right
[17] 기사와 사진: http://anton-shekhovtsov.blogspot.de/2014/05/nazis-and-stalinists-thrive-on-may-1-in.html
[18] In the game of Great Power politics, if we have to pick a side over Crimea, let it be Russia, Eamonn McCann, 21 March 2014(링크)
[19] MH17 - Kiev regime stoking the fires of war, Communist Party of Britain, 23 July 2014(링크)
[20] 회의 전체는 여기서 읽을 수 있다: http://www.workersliberty.org/story/2014/07/23/popular-front-russian-nationalism
[21] 도네츠크인민공화국 총리 알렉산드르 보로다이는 스스로를 자원봉사자로서 우크라이나 동부를 위한 전문 컨설턴트라고 소개하는 모스크바 출신의 러시아 시민이다.
[22] The Crisis in Ukraine: Statement by Stop the War Coalition, 3 March 2014(링크)

Posted by 때때로


18세의 흑인 청년 마이크 브라운은 두 손을 들어 저항할 의사가 없었음을 밝혔음에도 경찰에게 두 발의 총격을 받고 목숨을 잃었다. 브라운의 죽음에 항의하는 미국 미주리주 퍼거슨시 주민이 'Hands up don't shoot #JusticeForMikeBrown'이란 팻말을 들고 거리로 나섰다.

8월 10일 미국 미주리주 퍼거슨시에서 18세의 청소년 마이크 브라운이 경찰의 총격을 받고 사망했다. 두 발의 총격을 받아 숨진 브라운은 경찰에 저항의 뜻이 없음을 표시하며 두 손을 들었다고 전해진다. 그는 고등학교를 막 졸업한 '흑인' 청소년이었다. 2012년 2월 자경단에 의해 살해당한 트레이본 마틴에 이어 미국에서 흑인에 대한 인종차별이 또 하나의 비극적 사건을 만들어낸 것이다.

퍼거슨시는 인구 2만1000명의 소도시로 그 중 3분의 2가 흑인이다. 지난해 이 도시의 경찰은 36명의 백인과 483명의 흑인을 체포했다. 인구 비례를 따져도 흑인이 압도적으로 많이 체포됐다. 검문검색의 92%와 차량 정지명령의 86%가 흑인이었다.

저항할 의사가 없음을 표시한 브라운을 경찰이 총격으로 살해한 데 시민들은 'Hands up don't shoot #JusticeForMikeBrown'이란 팻말을 들고 항의에 나섰다. 사태가 심상치 않다고 느낀 연방정부는 FBI가 직접 사건의 수사에 나서게 했다. 그러나 이것이 흑인들의 분노에 유화책을 펼치겠다는 뜻은 아니었다. 퍼거슨시는 군대 수준으로 무장한 경찰을 시위 진압에 투입했다. 장갑차와 총기로 무장했고 최루탄은 물론 고무총탄과 음향대포(LRAD)까지 사용하고 있다. 워싱턴 포스트와 허핑턴 포스트의 기자 두 명이 취재 중 체포됐고 알자이지라 기자는 최루탄 공격을 받았다.

세계 곳곳에서 경찰국가를 자임하며 무력을 자랑하고 있는 미국은 국내에서도 국민을 향해 폭력을 휘두르고 있다. 빌리 홀리데이가 노래한 '이상한 열매(Strange Fruit)'가 열리던 풍경은 그리 달라지지 않았다.


경찰 총격에 의한 흑인 청소년 사망 사건을 FBI가 직접 조사에 나섰다. 하지만 FBI의 조사가 브라운의 억울한 죽음을 밝혀줄 수 있을까? 군대 수준으로 무장한 경찰이 시위를 폭력적으로 진압하고 있다.




Strange Fruit song by Billie Holiday

Southern trees bear a strange fruit
Blood on the leaves and blood at the root
Black bodies swinging in the Southern breeze
Strange fruit hanging from the poplar trees

Pastoral scene of the gallant South
The bulging eyes and the twisted mouth
Scent of magnolias, sweet and fresh
Then the sudden smell of burning flesh

Here is a fruit for the crows to pluck
For the rian to gather, for the wind to suck
For the sun to rot, for the trees to drop
Here is a strange and bitter crop

Posted by 때때로

①[드림디퍼드] 내전으로 향하는 우크라이나: 반동적인 전투에서 어느 편도 지지할 수 없다(링크)
②[좌익반대파] 오직 노동자 운동 만이 우크라이나에 이는 전쟁의 불꽃을 멈출 수 있다(링크)
③[자율노동조합] 키예프 정권과 동부 군사정권 모두 반대한다!

※의역이 많고 오역이 있을 수 있습니다. 잘못된 번역에 대한 지적은 언제든 환영합니다. 대괄호 안은 이해를 위해 추가한 것입니다.


키예프 정권과 동부 군사정권 모두 반대한다!
동부의 충돌에 대한 키예프 자율노동조합 성명서
키예프 자율노동조합(AWU)|2014년 5월 14일ㆍ링크

노동 인민 일부분을 다른 부분에 맞서 적대감을 갖게끔 속임수를 쓰고 있는 [우크라이나] 지역과 러시아의 지배계급 집단들 간의 대립이 계속되면서 우크라이나는 내전의 상황에 이르고 있다. 마리우폴 사건은 이러한 대립의 전형[적 결과]이다. 전투원과 시민, 징집된 병사와 장교, 뿐만 아니라 자원한 군인들까지 대립하는 양편의 많은 사람이 '반테러 작전'의 결과로 고통받아 왔다.

이는 노동자들에게 위기다. 정부는 모든 시위를 반(反)마이단 운동 취급하고 있다. 군인들은 자신이 누구를 쏘는지 알지 못하고 총에 맞는 이들은 자신이 무엇을 위해 죽는지 이해하지 못한다. 대립하고 있는 양편은 자신의 '보병'들에 특유의 냉소주의를 조장하고 있고 이 때문에 노동자들은 자신의 계급적 이해에 맞는 공통의 어떤 것도 지니지 않은 이념을 위해 싸우고 있다. 우크라이나 군대와 다른 무장 단체들은 조국애와 '국가의 통일'이라는 무의미한 이념을 위해 싸우고, 분리주의자들은 국가의 건설 또는 러시아와의 통합을 위해 싸운다. 이 모두는 관료ㆍ경찰ㆍ판사ㆍ교도소ㆍ자본가와 가난한 이들이 함께 존재하는 부르주아 민족국가를 목적으로 할 뿐이다.

이 두 반동적 운동의 충돌 결과로 지금 이미 수십 명이 희생당하고 목숨을 잃었다. 한편으로는 군사적 무능, 다른 한편으로는 전투원들의 부패가 피해를 크게 가중시키고 있다.

반마이단 운동의 고위 관계자들은 보통 퇴역 군인들과 이에 더해 전 정권에 충성심을 유지하고 있는 고위 경찰간부들로 구성돼 있다. 따라서 독재적인 법집행과 강제력에 의한, 진정 군사정권의 방식이 우크라이나 동부 '인민공화국'을 이끈다.

이 운동 내 파시스트 단체와 범죄자의 존재는 매우 반동적이고 동부 지역 노동 인민의 계급적 이해와 근본적으로 배치되는 군사정권의 전반적 특징을 주조한다.

친러시아 선동에서는 분리주의 전투원들이 반파시즘 저항 투사로 묘사된다. 이러한 선동에 따르면 우크라이나 정부가 개시한 '반테러 작전'은 '라이트 섹터
[프라비 섹토르ㆍPravy Sektor]'의 우크라이나 파시스트가 한 공격을 빼면 아무것도 아니다. 이러한 공격과 다른 많은 사건들에서 이들의 역할은 불안을 가중시키게끔 균형을 깨뜨리는 것이다.

'라이트 섹터'는 몇몇 극우파 단체의 형편없는 동맹이다. 그것의 사회적 구성은 극우 청년들과 범죄자 모임으로 이루어져 있다. '인민공화국' 전투원의 사회적 구성도 주로 10대ㆍ깡패 등 하층계급의 일부로 비슷하게 이뤄져 있다. 현재 운동에서 '라이트 섹터'의 대중적 매력은 매우 낮다(완전히 신뢰를 잃은 우크라이나공산당ㆍCommunist Party of Ukraine보다도 낮다). 게다가 '라이트 섹터'는 우크라이나 정부와 비공식적인 전쟁을 치르고 있는 상태다.

국제 사회에서 계속되는 거짓 반파시스트 선전 때문에 '라이트 섹터'는 강력하게 조직돼 우크라이나 정부의 거의 모든 것을 지배하고 있다는, 전혀 사실이 아닌 무시무시한 이미지를 얻었다. 물론 우리는 우크라이나에서 파시스트 운동의 문제를 과소평가하길 바라지 않는다. 극우파의 폭력, 특히 좌파를 표적으로 삼는 폭력은 야누코비치 정권 시절인 2012년 이미 확대되기 시작했다고 AWU
[자율노동조합]는 반복해서 강조했다. AWU 활동가 역시 공격받았었다. 우리 동지 중 한 명은 네오나치에 의해 칼로 공격받아 거의 죽음 직전에까지 갔었다. 또한 올해 노동절 행진 장소도 극우파와의 충돌 위협 때문에 변경됐었다.

우크라이에서 파시스트 운동에 맞서는 것은 오랫동안 아나키스트 운동의 주요 목표 중 하나였다. 서구에서 '반파시스트'를 자처하는 많은 스탈린주의 후예들과 달리 우리는 이 문제를 인터넷이 아닌 직접적인 경험으로 알고 있다. 그리고 여전히 우리와 우리 동지들은 노동절 아나키스트 행진을 사회주의ㆍ반자본주의ㆍ반민족주의를 주제로 키예프와 카리프, 지토미르에서 조직해냈다.

아나키스트는 나치와 우익 자유주의 정부에 양보할 의도가 없다.
[5월 12일 현재] 여당인 '바티키프쉬나[조국당]'에 맞서 급진 좌파적 저항 캠페인을 조직한 것도 바로 AWU다.

우리는 정부와 자본, 그리고 이들을 옹호하는 극우파에 맞선 싸움을 계속할 준비가 돼 있다. 그러나 이 투쟁은 정부ㆍ교회ㆍ경찰 구조와 파시스트 운동이 하나의 세력으로 단결했을 때 100배는 더 어렵다. 돈바스의 상황이 바로 그렇다. '도네츠크 인민공화국 군대'를 이끄는 것은 러시아 정부의 첩자이자 과거 차르 백위군의 열렬한 지지자인 이고르 스트렐코프다. '돈바스 정교회(Orthodox donbass)' 운동의 제안자로 국민투표를 제안한 이는 소비에트 해체 후 네오나치 운동을 이끈 것으로 유명한 알렉산드르 바르카쇼프와 협력하고 있다. 반마이단 운동의 활동가들은 유럽 파시스트의 또다른 상징인 알렉산드르 두긴을 존경하며 그와 연대를 표하고 있다. '도네츠크 인민공화국 정부'의 부의장인 데니스 푸실린은 공개적으로 1917년 혁명을 '유혈 참사'로 부르며 차르를 끝장낸 것에 대해 유감이라고 말한다.

[그들의] 선언과 문서들은 사회주의적 구호와 맞지 않는다. 그 문서들엔 계급 간 평화와 '소기업'의 이익에 관한 문장으로 가득하기 때문이다. 동부의 범죄자들과 파시스트 군사정권은 현재 노동조합 활동가들의 납치와 고문을 자행하고 있다.

민족주의는 노동자들에게 치명적인 적이다. 이는 현재 우크라이나 사태에서 노동계급을 물리적으로 제압하려는 지배계급을 양편의 파시스트들이 돕고 있다는 데서 입증됐다. 문제는 우크라이나 프롤레타리아트가 이를 깨닫기까지 얼마나 많은 희생과 파괴를 겪어야만 할 것이냐다.

우리는 키예프 정부가 지금 즉시 도시에서 병력을 철수시킬 것을, 동부 군사정부는 평화적인 노동계급에 대한 공격을 중단할 것을 요구한다. 모든 전선에서 저항을 계속하는 것, 어떤 역경에도 혁명적 노동운동을 건설하는 것이 우리의 목표다.

우리는 영토를 지키거나 독립하기 위한 무의미한 싸움이 아니라 평화와 연대를 통해 계급의 공통된 이해를 중심으로 전선을 구축할 것을 우리 우크라이나 노동 인민 동지들에게 호소한다. 계급투쟁은 권력의 재분배를 위한 싸움과는 아무런 연관이 없다. 정부와 분리주의자의 대립에서 누가 승리하든 그것은 우리의 패배일 것이다. 이는 우리가 무엇보다
[양편 모두를] 거부하는 이유다. 정부의 결정을 무시하고 군사적 대결을 포기하는 것. 혁명적 노동운동과 파업을 조직하는 것. 바로 이것들이 우리를 이용하는 전쟁에 맞서 싸울 무기다. 우리는 오직 우리 자신, 그리고 다른 급진 좌파 조직과의 국제적 연대에만 의지할 수 있다. 우리가 지금 당장 일어서지 않는다면 더 큰 어려움에 봉착할 것이다.

상품도, 주인도, 국가도, 국경도 모두 반대한다!
전 세계 노동자들이여 단결하라!

Posted by 때때로

①[드림디퍼드] 내전으로 향하는 우크라이나: 반동적인 전투에서 어느 편도 지지할 수 없다(링크)
②[좌익반대파] 오직 노동자 운동 만이 우크라이나에 이는 전쟁의 불꽃을 멈출 수 있다
③[자율노동조합] 키예프 정권과 동부 군사정권 모두 반대한다!(링크)

※의역이 많고 오역이 있을 수 있습니다. 잘못된 번역에 대한 지적은 언제든 환영합니다. 대괄호 안은 이해를 위해 추가한 것입니다.


오직 노동자 운동 만이 우크라이나에 이는 전쟁의 불꽃을 멈출 수 있다
좌익반대파|자카르 포포비치|2014년 5월 12일ㆍ링크

※자카르 포포비치(Zakhar Popovych)는 우크라이나 정치단체 '좌익 반대파(Left Opposition)'의 지도적 회원이자 경제학자다. 좌익반대파 홈페이지는 gaslo.info.

2014년 5월 오데사에서 참혹한 충돌과 '노동조합 본부'의 화재로 40명 이상이 목숨을 잃었다. 폭력 행위는 대립하는 양편 모두에서 비롯했고 여기에는 어떤 변명의 여지도 없다. 사태의 진실을 파헤치기 위해선 매우 신중한 조사가 필요하다.

지금 우리는 단지 처음 받은 느낌만 말할 수 있을 뿐이다. 사건은 소위 친러시아 활동가들이 '우크라이나의 단결'을 위한 행진을 방해하면서 폭력이 유발된 것처럼 보인다. 5월 2일 전 오데사에서는 양편 모두 시위를 하기 위해 반대자들을 훼방하려는 시도를 하지 않았다는 것을 고려하면 이러한 행진 방해는 분명히 공격적인 행보다. 전에는 친러시아 시위가 방해받는 일이 절대 없었다. 두 시위대가 서로를 향해 날릴 단단한 돌멩이와 포석에 각각 다가갔을 때였다.

그 순간 '친러시아' 진영에서 먼저 총격이 있었다고 증언한 목격자를 우리는 확보했다. 오데사 친러시아 운동의 일부인 '보로트바(Borotba)'조차도 총격을 먼저 시작한 것이 그들 편은 아니라고 반박하지 않는다. 대부분 자동소총이었지만 게중에는 산탄총도 있었다.

당시 오데사 시내 소보르나야 광장의 '우크라이나의 단결' 시위대가 자신들 행진이 '친러시아' 진영에 의해 가로막혀있는 동안 총을 쐈다는 확실한 목격자는 찾지 못했다. 그러나 우리는 기관총이 발포됐다는 증거를 갖고 있다. 첫 사망자와 심각한 부상자가 기관총 사격에 의한 것이다. 목격자는 '친러시아' 진영에서의 총격이 경찰의 뒷편에서 그들의 비호 아래 이뤄졌다고 말한다. 여기서는 대부분의 목격자가 충돌에 참여했었고 사태를 매우 감정적으로 파악하고 있다는 걸 강조하는 게 중요하다. 이 사태에 대한 공정하고 편견 없는 조사가 절대적으로 필요하다.

한편 총격 이후 '친러시아' 진영은 '친우크라이나' 시위대에 의해 잔인하게 구타당했다. 그들 중 많은 수가 심각하게 부상당했고 몇몇은 어쩌면 목숨을 잃었다. 게다가 '친우크라이나' 시위대는 오데사 주요 역 가까이의 쿨리코포 폴 광장의 '친러시아' 농성장을 야만스럽게 습격해 때려 부쉈다. 수분 만에 천막이 불타버렸다. 우리는 당시 '친우크라이나' 시위대 또한 총을 사용했다는 확실한 첫 목격자 또한 확보했다. 그 다음 '친러시아' 시위대는 '노동조합 본부'로 몸을 피했다. 밖에서 던져진 '화염병' 때문에 건물에 불이 붙었다(불이 건물 안에서부터 시작됐다는 이론은 매우 의심스러운 주장이다). 물론 우리는 경찰 첩자가 할 수 있는 역할의 가능성을 제외할 수는 없다.

많은 사람들이 불길 속에서 숨이 막혀 죽거나 불에 타 목숨을 잃었다. 어떤 사람은 창문으로 뛰어내리다 목숨을 잃었다. 어떤 이는 화재 대비 사다리와 줄을 사용해 탈출했다. 제정신을 차리고 불길에서 사람을 구하기 위해 나선 '친우크라이나' 시위대가 있었다는 목격자도 있다. 그들은 사다리를 몇몇 창문에 대고 몇몇 창문 앞에는 땅과 충돌 시 충격을 줄이기 위한 타이어를 가져다 놓으려 시도했다.

그러나 사다리를 이용해 불길에서 탈출한 사람들과 이 사다리를 설치한 이들 사이에 충돌이 일어난 증거 또한 있다. 불길로부터 벗어난 '친러시아' 시위대는 항복하길 원치 않았고 탈출을 위한 싸움을 시도했다. 몇몇 목격자는 저항하지 않은 몇몇 '친러시아' 시위대가 구타당했다고 주장하기도 했다. 증거들이 모순되기에 사건에 대한 편견 없는 조사 없이 무엇이 일어났는지 확신하긴 어렵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가 확실히 말할 수 있는 것은 1년여 전 공동행동에 참여했던 급진 좌파 활동가들이 지금은 서로의 목숨을 앗아간 양편의 행동에 참여하고 있다는 점이다. 27세 프로그래머이고 '보로트바'의 회원인 안드레이 브랴이프스키는 '노동조합 본부'에서 목숨을 잃었다. 그는 친러시아 준군사조직인 '오데스카야 드루지나 (Odesskaya druzhina)'에 소속돼 있었다. '반파시스트' 축구 팬 운동에 참여했던 또다른 청년은 소보르나야 광장에서 총격을 당했다.

모든 민족과 인종에서 우크라이나 노동계급 이해와 관련 없는 것이 명백한 전쟁에 좌파 활동가들이 총알받이 보병이 되고 있는 것이 분명하다. 좌파는 마이단 동안의 키예프 전투에서 경찰에 맞서다 목숨을 잃었었다(33세의 아나키스트 세르게이 켄스키가 2월 20일 인스티투츠카 거리에서 살해됐다는 것을 기억하라). 지금 반마이단 편에서 전투에 참여하고 있는 좌파들 또한 살해당하고 있다.

노동자들은 이 적대적 운동 중 어느 것에도 참여하지 않고 있고 그 때문에 두 운동은 계속해서 사회적ㆍ계급투쟁적 의제로부터 민족문화적인, 민족적인, 마침내 애국주의적인 것으로 전환하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양편에는 사회보장과 노동자 권리에 관한 모든 쟁점보다 우크라이나 국가의 존재의 정당성에 관한 질문이 더 중요하다.

노동자들은 자신이 참여하는 곳에서 폭력을 허용하지 않는다. 동부 또는 서부에 상관없이 우크라이나 모든 지역에서 이러한 일이 벌어지고 있다.

산업도시 크리프이리(드네프로페트로프스크 주)의 반마이단 세력이 마이단 활동가를 공격하고 구타하기 위해 용병을 사용하려 했을 때 광부들의 자기방어 조직은 선동가들을 진압하는 방법을 손쉽게 발견했고 그 누구도 목숨을 잃지 않았다.

크라스노돈(루간스크 주)의 노동자들이 파업에 들어가 봉기 기간 도시를 자신의 통제하에 효과적으로 유지할 수 있었을 때 어떤 사망자도 없었다. 노동자들은 반마이단 또는 친마이단 세력 중 그 누구도 자신을 이용하게끔 놔두지 않았다. 그들은 '친러시아' 운동에 참여하지 않았다. 그리고 대통령 선거에서 티모센코 또는 다른 어떤 부르주아 후보 지지에 자신들을 이용하도록 허락하지도 않았다.

크리프이리와 크라스노돈에는 노동자가 있지만 오데사ㆍ도네츠크ㆍ루간스크 또는 슬라뱐스크나 크라마토르스크의 거리엔 조직된 노동자가 없다. 대체적으로 노동자는 그 운동에 참여하고 있지 않다. 우리는 우크라이나 중부에서는 독립 노동조합과 연관된 몇몇 징조를 찾았지만 동부의 운동에 노동조합이 연관을 맺고 있다는 신호는 볼 수 없었다. 그리고 이것이 현재 우크라이나에 불타오르는 내전의 비극에서 핵심이다.

우크라이나는 사람들이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더 균질하다. 우크라이나 전국 각지에 많은 러시아 민족과 우크라이나 민족이
[섞여] 있다. 그리고 그들을 싸우게 만드는 것은 전국 각지에서 민족적 대립이 벌어짐을 뜻할 것이다. 마이단과 반마이단 또는 소위 '친우크라이나'와 '친러시아' 운동의 사회적 구성을 추측해봤자 아무런 소용없다. 그것은 거의 같은 것처럼 보인다. 그리고 노동자들은 물론 룸펜과 푸티부르주아적 요소까지 양편 모두에 존재한다.

더 많은 노동자들이 살고 있는 도시에서는 더 많은 노동자들이 마이단과 반마이단 양편에 참여한다.

여기엔 또한 많은 우파와 매우 약한 노동자 운동이 공존한다. 소련의 스탈린주의는 우리 나라에서 노동자의 자기-조직화 전통을 파괴했고 독립적인 노동운동은 현재 겨우 시작하는 수준이다. 그러함에도 이 단계는 중요하며, 총파업이 시위의 의제를 바꿀 수 있다는 것을 이미 보여줬다.

그리고 이 전쟁을 중단시킬 유일한 힘은 권력으로부터 올리가르히 몰아내는 것과 사회 정의를 요구하는 것을 중심으로 연대한 노동자들의 운동에 있다. 우크라이나가 살아남기 위한 유일한 가능성은 여기에 있다.

우리는 경찰이 능력이 없을 뿐 아니라 그 누구도 보호할 수 없음이 오데사에서 입증되는 것을 목격했다. 우리는 노동자들에게 파업위원회의 통제를 받는 그들 자신의 독립적인 자기방어 조직을 구성할 것(루간스크에서처럼)과 크리프이리의 '광부' 수백 명처럼 독립적인 노동조합을 만들 것을 호소한다.

마이단과 우크라이나 정부의 차이

우리는 이 정부를 절대 지지하지 않아 왔다.

우리는 정부를 일시적으로 받아들일 수 있지만 결코 지지하진 않는다. 여기서 이 정부를 군사 정부로 간주해선 안되는가라는 또다른 의문이 제기된다. 아직은 아니다. 유감스럽게도 키예프는 군사정권은 아니지만 슬라뱐스크는 군사정권이 맞다. 키예프에서 당신은 분명히 적기를 들고 어떤 종류든 선전전단을 나눠주며 시위를 벌일 수 있다. 노동절 시위는 이를 명백히 보여줬다. 키예프에선 모든 민주적 자유가 보장되지만 도네츠크 인민공화국에선 아니다. 아마 당신은 언론인과 평범한 사람들의 잦은 납치사건에 관해 들었을 것이다. 부활절에 나는 키예프로 표시된 등록증 때문에 기관총으로 무장한 사람들로부터 알몸 수색을 당했다. 나는 보석금을 내준 지역 주민에 의해 무사할 수 있었다. 내 어떤 친구는 슬라뱐스크의 SBU(the Security Service of Ukraineㆍ우크라이나 보안국) 건물 지하 어딘가에 아직도 갇혀있다. 그들은 단지 자신들을 위한 감옥으로 만들기 위해 행정관서를 이용하는 것처럼 보인다.

그리고 키예프 중앙정부를 살펴보자면 이 정부는 우크라이나 동부의 그 누구도 대표하지 않기도 하지만 서부와 중부에서도 사실 많은 신뢰를 받고 있진 않다. 마이단은 정의, 우선순위의 첫째로 사회정의라는 사상에 고취돼 일어난 대중운동이었다. 우리가 1월과 2월 마이단에서 공개적으로 토론할 때 사람들은 이제 곧 야누코비치가 물러나 부패를 끝장내고 사회적 기준을 향상시킬 수 있을 것이라고 확신했었다.

사람들은 새 정부가 바로 야누코비치처럼 긴축정책과 복지의 삭감을 시행할 수 있다는 발상에 분노했다. 누구도 이를 믿지 않았지만 정부가 IMF 지원을 받기 위해 현재 하려고 하는 것이 정확히 이것이다.

정부는 지금 그 관심을 국가안보로 돌리고 있다. 그러나 이러한 민족주의적 히스테리는 마이단과는 그 어떤 관계도 없다.

이 정부는 한때 마이단에 인정받았다. 하지만 이 정부는 분명 마이단이 받아들일 수 잇는 최악의 것이다. 그리고 정부는 더 이상 친마이단이 아니다. 유감스럽게도 2013년과 2014년 사이 겨울에 있었던 우리가 알고있는 마이단 운동은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다.

정부는 이제 마이단의 사회정의 의제로부터 벗어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나는 정부를 마이단의 진정한 정수로 되돌릴 수 있는 유일한 힘은 새로운 마이단, 노동자들의 마이단이 될 것이라고 생각한다.

나는 현재 '프라비 섹토르'가 군대를 통제하거나 거기에서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다고 생각지 않는다.

몇몇 우파 정당 회원이 개인적으로 군대에 참여할 수는 있지만 지금까지 그들은 그 속에서 작은 소수파일 뿐이다. '프라비 섹토르'는 거의 러시아 TV에만 존재하는 매우 작은 정당이다. 그러나 "러시아 침략으로부터 우크라이나 민족을 방어하자"는 민족주의적 의제로의 전환이 급진 우파를 더욱 더 중요하게, 그리고 군대에서도 마찬가지로 중요하게 만들 것이라는 점 또한 사실이다.

동부의 운동

동부의 운동이 키예프 마이단보다 더 적은 규모이며 덜 야단스럽다는 점은 분명하다. 예를 들면 그들은 지난달 도네츠크에서 강경파 1500명 이상이 참여한 한 대중적 가두행진을 조직하는 데 실패했다. 그 행진에는 매우 적은 전단과 신문만 배포됐고 사실상 어떤 토론도 없었다. 한달 전 슬라뱐스크와 크라마토르스크의 대중 시위에서조차 공개적인 토론장을 거의 찾아볼 수 없었고 현재 도네츠크 인민공화국 군대의 통제하에서 그와 같은 장소는 분명히 없다. 그들은 토론 대신 위성으로 중계되는 러시아 TV를 보는 공공장소를 만들고 있다.

러시아 시민이, 심지어 무장 단체까지도 분명 존재한다. 그러나 가장 적극적인 참여자들은 물론 지역 주민이다. 예를 들면 크라마토르스크에서는 두 개의 주요 지역 범죄단체가 '자기방어' 의용군의 지도적 역할을 맡고 있다. 슬라뱐스크 '그린맨' 부대에서 다수는 러시아 시민이고 몇몇은 러시아 보안군에서 퇴역한 군인 출신이다. 실제로 러시아 관계자 누군가가 개입하고 있을까? 물론 우리는 정확히 알 수 없지만 러시아 당국의 개입은 확실해 보인다.

다른 한편 운동이 시작될 때 조직화에 나선 주요 세력이 러시아 정부가 아니라 지역 올리가르히인 것은 분명하다. 야누코비치ㆍ모길레프ㆍ프숀카 등이 얼마만한 규모로 개입했는지 말하기는 어렵지만 우크라이나의 주요 올리가르히이고 사람들이 '돈바스의 주인'이라고 부르는 아흐메토프가 알고 있는 상황에서 그의 동의에 의해 시작된 것은 분명하다.

물론 도네츠크 인민공화국, 특히 슬라뱐스크 군사 쿠데타를 지도한 것은 우파 배타적 애국주의자들이다. 도네츠크 인민공화국 군대 사령관은 의식적인 군주제 지지자이고 데니킨
[러시아 혁명 당시 백군의 지도자]의 열렬한 팬인 스트렐코프(전직 FSBㆍ러시아연방보안국 요원인 지르킨)다. 이 사람들 모두는 우크라이나 독립이 되돌려야 할 역사적 실수일 뿐이라고 생각한다. 당신이 이해한 대로 이것은 대부분의 우크라이나인에게, 심지어 돈바스에서도 받아들여질 수 없는 것이다.

유감스럽게도 우리는 이 운동을 조금도 반파시스트 운동이라고 부를 수 없다. 이 운동은 마이단 운동보다 덜 파시즘적이지 않다. 내게는 지금 이들이 행동하는 방식에서 더 파시스트처럼 보이기도 한다. 일주일 전 도네츠크에서 이 '반파시스트' 시위대가 '친우크라이나' 시위대를 폭력적으로 공격했던 것을 떠올려보라. 금속봉으로 잘 무장한 300명의 사람들이 800여 명의 더 강고한, 하지만 조금의 무장도 하지 않은 친마이단 시위를 공격했었다. 친마이단 편에서 모두 12명이 심각한 부상을 입어 여전히 병원에 있고 150명 이상이 구타를 당했다. 이 '반파시스트'들은 이른바 그들이 부르기로 '마이둔스(maiduns)'를 해산하고 구타를 끝낸 후 바로 도네츠크 인민공화국
[원문에는 DNR이라고 쓰여있는 데 DPR의 오기인 듯싶다] 본부로 돌아갔다. 자신들을 숨기려는 어떤 노력도 없이 말이다.

이 운동에 참여하는 좌파는 이들의 배타적 애국주의 의제를 부추기고 있으며 이 운동을 어떠한 국제주의로도 끌어오는 데는 실패했다. 지금 이들은 러시아 제국주의가 미국보다는 덜 나쁘기에 "우리는 러시아 제국주의를 지지할 것"이라며 자신을 옹호하고 있다. 이는 매우 부끄러운 일이다.

'좌파와 마이단' 콘퍼런스 결산

우크라이나에서 소위 '유로마이단' 운동은 복합적이다. 지금 벌어지고 있는 것은 한층 더 복잡하다. 우리는 마이단에 대한 것들을 정리하기 위해 4월 12일 키예프에서 콘퍼런스를 개최했다[1]. 물론 우리는 모든 점에서 마지막 결론에 도달하진 못했다. 그러나 나는 주요 내용을 두 가지로 요약해 보겠다.

▶ '마이단'은 분명 좌파적이지 않지만 본질적으로 좌파적 개념인 사회정의와 사회 변혁이라는 발상에 매우 예민했다. 마이단의 많은 사람은 매우 급진적인 좌파 구호인 올리가르히에 대한 누진세 적용, 공개적인 회계, 직접 민주주의뿐만 아니라 노동자 통제와 심지어 부르주아지의 선거권 제한(정확히 말하자면 우리는 부자들의 선출과 정부 요직 임명 금지를 제안했다)까지도 지지했다.

▶ 좌파의 주요 문제는 자신의 사상을 충분히 표현하는 데 있어서의 무능력인 것으로 보인다. 좌파들은 흩어져 있다. 몇몇은 대중운동과 그 자신을 철저히 떨어뜨려 놓고 있고 다른 대부분은 그
[대중운동] 속에 녹아 사라졌다.

주요 실패는 협조가 부족했기 때문이다. 예를 들면 보로트바 활동가 데니스 레빈이 마이단에서 네오나치에게 공격받던 시간에 그곳에선 두 개의 다른 좌파 행사가 있었다. 그곳으로부터 300m 떨어진 마이단의 중심부에선 '직접행동' 동맹에서 온 학생 30명이 학생의 자기조직화에 관한 발표를 준비하고 있었다. 500m 떨어진 곳에선 다른 좌파와 반파시스트 200명이 경찰 폭력에 항의하는 시위를 벌이고 있었다. 사실상 혼자 자신의 노동조합 전단을 나눠주던 데니스 레빈을 네오나치가 공격한 것은 놀랍지 않다. 그가 속한 보로트바는 그를 돕지 못했다. 그리고 우리가 그와 함께하기 위해 갔을 때는 이미 너무 늦었었다.

2014년 5월 8일, 키예프에서

[1] "국가적인 배타적 애국주의와 성차별주의, 동성애 혐오증, 인종차별을 규탄하고 마찬가지로 러시아의 개입과, 좌파와 노동조합 활동가 또는 비무장한 시위대를 향한 모든 폭력에 항의하기 위한 좌파의 조직화와 계획"을 위한 이 콘퍼런스에는 크리프이리와 드네프로페트로프스크에서 온 자유노동조합연맹(the confederation of Free Trade Unions) 소속의 광부 몇 명을 포함해 다른 조직의 활동가 80명이 참여했다. 인터내셔널뷰포인트(International Viewpoint) 협력자 캐서린 사마리(Catherine Samary) 또한 발표했다.

Posted by 때때로

5월 25일 우크라이나 대선에서 율리아 티모센코가 아닌 페트로 포로셴코가 대통령에 당선됐다. 우크라이나 최대 올리가르히 중 하나인 포로셴코는 유명한 초콜릿 회사 로셴의 회장이다. 지역당과 조국당(바티키프쉬나)의 두 날개를 이용해 우크라이나를 공고히 지배해온 올리가르히가 정치의 전면에 나섰다. 그는 야누코비치 실각 전 EU와 러시아 사이에서의 좌충우돌에 가장 큰 피해를 입은 올리가르히다. 야누코비치가 러시아에 맞서려 할 때 푸틴은 포로셴코의 로셴 수입을 전면 금지했었다. 2009년 러시아와의 수상쩍은 가스 협정에서 보인 티모센코와 바티키프쉬나의 우유부단함과 갈팡질팡은 포로셴코가 전면에 나서게끔 했을 것이다. 그 사건으로 감옥에 갖힌 티모센코는 (주로 EU와 서방 정치인들에 의해) 야누코비치 독재에 맞선 저항의 상징으로 떠올랐지만 다른 한 편 그녀 또한 부패한 정치인의 일부라는 증거로 대중에게 받아들여졌을 것이다. 티모센코의 '의외'의 추락은 이미 '예상'됐던 것 중 하나다.

포로셴코의 당선으로 러시아와의 충돌 가능성이 낮아질 것이라는 예상이 확산되고 있다. 실제로 러시아는 우크라이나 국경 인근에 배치한 군대 4만여명의 대부분을 철수시켰다. 도네츠크 인민공화국 등 동부의 반란 세력이 러시아와의 연관성을 공공연하게 밝히고 있는 것과 달리 러시아는 그 관계를 부정하고 있다. 5월 30일 있었던 EUㆍ우크라이나ㆍ러시아 3자 에너지 협상에서는 가스 공급을 둘러싼 갈등에 어느정도 해결의 실마리가 잡혔다.

그러나 동부에서의 군사적 갈등은 5월 2일 오데사에서의 충돌 이후 더 강화되고 있다. 애초 대중의 운동이었는지는 의심스럽지만 형식상 대중운동 사이의 충돌이 현재는 군사적 충돌로 비화하고 있다. 이 끔찍한 충돌의 한 편인 '도네츠크 인민공화국'을 반파시스트 운동의 일부로 받아들이는 사람도 있다. 박노자 교수는 동부의 운동을 "반미 반파쇼 투쟁"이라고까지 말한다. 따라서 이 운동은 "나름의 진보적 함의와 가능성"을 지녔고 박 교수에게 러시아 좌파의 임무는 "그들을 도와주고 양쪽 계급동맹을 구축하는 것"이다.

그러나 이는 매우 위험한 주장이다.

첫째 도네츠크 인민공화국을 비롯한 동부의 운동을 '반미 반파쇼 투쟁'의 일부로 부를 수 있다면 푸틴 또한 '반파쇼 투쟁'의 일부로 봐야 할 것이다. 크렘린궁의 공식적 부인에도 불구하고 러시아의 퇴역군인 내지 정보국 요원들의 개입 증거가 제시되고 있다. 러시아 파시스트 운동의 대부 알렉산드르 데긴과 동부 민병대들의 연관성도 폭로되고 있다. 동부 운동을 '반미 반파쇼 투쟁'으로 고려하는 건 말도 안되는 것이다. 둘째 러시아 좌파가 도와야 한다는 것은 무엇일까? 동부의 '독립 운동'을 돕는 것을 뜻한다면 매우 위험한 얘기다. 이는 우크라이나 노동계급의 단결을 파괴하고 친러시아 민족주의와 친우크라이나 민족주의의 충돌을 전국으로 확산시키는 결과만 낳을 것이다. 셋째 "양쪽 계급동맹의 구축"은 매우 모호하다. 왜냐면 동부에서 노동자들은 계급으로서 운동에 참여하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그들은 오직 개인으로서, 파시스트적 애국주의에 매몰된 개인으로서 운동에 참여하고 있다. 즉 이러한 계급동맹은 현실에서 친러시아 애국주의 세력과의 동맹으로만 가능하다. 실제로 러시아 파시스트는 이러저러한 방식으로 우크라이나 동부의 '반파쇼 투쟁'에 연관을 맺고 있다.

5월 우크라이나 동부에서의 충돌을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될 글 세 편을 옮긴다.

이 세글에는 각자의 정치적 입장에 따라 약간의 차이가 존재한다. 가장 큰 차이는 우크라이나 외부의 좌파인 드림디퍼드의 첫 글과 다른 두 우크라이나 내 좌파의 글 사이에 있다. 드림디퍼드(www.dreamdeferred.org.ukㆍ링크)는 키예프 정권(포로셴코 집권 전)을 파시스트 군사정권 취급한다. 하지만 우크라이나 내 좌파인 좌익반대파(gaslo.infoㆍ링크)와 자율노동조합(avtonomia.netㆍ링크)은 서부와 중부의 파시스트 위협은 과장됐거나 진정한 사정을 잘못 파악한 것이라고 본다. 좌익반대파 활동가는 서부보다 동부가 더 파시스트에 가깝고 거의 확실한 군사정권이라고 주장한다. 자율노동조합은 파시스트가 야누코비치 시절인 2012년경부터 확산되기 시작했다고 말한다.

하지만 이 글 세편은 모두 "늑대는 문 밖, 우크라이나 외부에 있"고 외부의 "이 제국주의 경쟁 체제에서 좋은 제국주의란 없다"는 점에 같은 입장을 취하고 있다. 드림디퍼드는 우크라이나가 분할된다면 "노동계급 인민이 큰 값을 치러야 할 것"이라고 말한다. 자율노동조합은 이 둘로부터 독립적인 "혁명적 노동운동과 파업을 조직하는 것, 바로 이것들이 우리를 이용하는 전쟁에 맞서 싸울 무기"라고 힘주어 말한다. 좌익반대파는 좌파에 "협조가 부족했기 때문"에 실패했다며 노동계급 운동 건설을 위해선 좌파의 공동행동이 필요하다고 강조한다. 이러한 주장들은 우리가 사태의 전개에서 놓치지 말아야 할 열쇠다.

포로셴코가 대통령에 당선된 상황에서 추가적인 사건의 추적과 분석이 필요할 것이다.

①[드림디퍼드] 내전으로 향하는 우크라이나: 반동적인 전투에서 어느 편도 지지할 수 없다
②[좌익반대파] 오직 노동자 운동 만이 우크라이나에 이는 전쟁의 불꽃을 멈출 수 있다(링크)
③[자율노동조합] 키예프 정권과 동부 군사정권 모두 반대한다!(링크)

※의역이 많고 오역이 있을 수 있습니다. 잘못된 번역에 대한 지적은 언제든 환영합니다. 대괄호 안은 이해를 위해 추가한 것입니다.


내전으로 향하는 우크라이나: 반동적인 전투에서 어느 편도 지지할 수 없다
드림디퍼드|타시 시프린|2014년 5월 5일ㆍ링크


친우크라이나 시위대가 오데사의 노동조합 건물에 화염병을 던지고 있다. 건물 안의 반마이단 시위대 수십 명이 불에 타 숨졌다. [Reauters]

5월 2일 친러시아 '반마이단' 시위대와 친우크라이나 유로마이단 활동가 사이에 광범위한 충돌이 벌어진 이후 우크라이나 남부 오데사의 사망자 수가 46명에 다다랐다.

친우크라이나 시위대가 반마이단 활동가들이 점거한 건물에 화염병을 던져 불을 지르면서 끔찍한 결과에 직면한 것이다.

이후 반마이단 시위대가 장악한 동부 슬라뱐스크에서 우크라이나군이 통제권을 되찾으려 하면서 최소 수십명이 더 목숨을 잃었다.

충돌의 무시무시한 확대는 우크라이나를 갈래갈래 찢어놓을 것처럼 보인다. 거울로 마주본 것 같은 반동적 전투는 경쟁적인 두 반동적 제국주의의 지원을 받는 양편에 이를
[우크라이나의 분할] 강제하고 있다. 우크라이나는 내전의 위기에 처해 있다.

러시아가 몇 주 동안 4만 명의 병력을 국경에 배치해놓고 있으면서 전면적인 침략 가능성이 점점 높아지고 있다. 미국도 이에 대한 대응으로 국제적 긴장을 증가시키는 개입을 확대하고 있다.

입증

지난 2월 빅토르 야누코비치 전 대통령의 실각과 뒤이은 키예프의 새 정부 구성 이후 우리가 드림디퍼드에서 제시한 분석이 최근의 암울한 사건으로 입증되고 있다.

그 분석에서 우리는 내전 위험을 경고했다. 실제로 우리는 2월의 그 글로 되돌아가 우크라이나 위기의 이번 단계가 시작된 지점과 당시 이미 내전 가능성을 걷잡을 수 없이 키우던 사태 전개를 살펴볼 가치가 있다.

▶2014년 2월 야누코비치 퇴진 직후의 분석
야누코비치 실각에 슬퍼하지도, 새 정부와 파시스트를 응원하지도 말라(링크)


우리는 러시아에 뿌리를 둔 키예프의 새 친EU 정권에 반대하는 '반마이단' 운동의 시작을 보고했다. 그리고 유로마이단이 준군사조직 결성으로 타락한 것과 마찬가지로 우크라이나 남부와 동부의 반마이단 시위가 이미 그들 자신의 준군사조직을 어떻게 조직하고 있는지 전했다.

유로마이단이 우크라이나 민족주의 영향을 받은 것과 마찬가지로 반마이단 운동은 러시아 국기와 지역 또는 옛 소련의 깃발을 들었다.

이 두 개의 추한 민족주의는 상처받은 우크라이나 노동계급에게 오직 더 큰 분열만 내놓을 뿐이다. 이러한 상황은 양편 모두에서 조직된 파시스트와 낡아빠진 인종주의, 반유대주의 반동에게 유리한 환경이었다.

우크라이나가 크림반도를 잃을 가능성과 나라가 피투성이로 해체될 위험성을 우리는 2월에 지적했었다.

현재 사망자 수가 증가하면서 키예프 정부는 남부와 동부 친러시아 준군사조직과의 전투를 위해 징집병을 복귀시키고 있다. 핵심에 파시스트를 포함한 유로마이단 준군사조직, 소위 '자기방어' 조직인 사무보로나(Samooborona)의 일부는 새로운 방위군, 실질적으로 특정 정파와 당파의 권력인 군의 일부로 통합됐다.

프라비 섹토르(Pravy Sektorㆍ극우파 연합)의 독립적인 파시스트 대원들 또한 우크라이나 '민족 혁명'을 위한 전투에 열정적으로 그 자신을 내던지고 있다.

분열과 파괴

그러나 우크라이나 보통 사람들에게 오직 분열과 파괴만을 가져올 유혈 충돌의 양편을 후원하는 것에 그 누구도 끌리진 않을 것이다.

유로마이단을 진보 또는 반자본주의로 파악하고 이에 대한 지지를 주장했던 몇몇 좌파가 있다. 시위대 다수가 더 나은 민주주의를 진심으로 바랐고 경제위기에 진정 분노했음에도 운동으로서 유로마이단은 진보적이지 않다고 우리는 드림디퍼드에서 주장했다.

대개 우크라이나어를 사용하는 서부와 중부 지역으로부터 주로 지지를 받아온 친EU 유로마이단 운동은 남부와 동부 노동자와 손잡을 수 있는 노동계급 요구를 제기하지 않았다. 그 대신 운동은 우크라이나 민족주의의 외피를 썼고 이 운동에서 파시스트의 역할은 논쟁의 여지가 없다.

그래서 우리는 유로마이단 시위의 확대, 특히 준군사조직의 발전에서 파시스트가 해온 중요한 역할을 드러냈다. 우리는 주류 언론보다 앞서 키예프 정부에 파시스트가 장관으로 입각했음을 폭로했다.

현재 또 다른 좌파는 광범위한 친러시아 그룹 또는 '분리주의자' 시위대와 그들의 경쟁자인 유로마이단을 모방한 준군사조직이 정부 청사를 점거하고 검문소를 세우면서 이들에게서 어떤 구원을 찾기도 한다. 그들은 자신들에 대응하기 위해 군대를 파견한 키예프 정부와 군사적 대결을 시작했다.

양편 모두 아니다

나는 이 암울한 전투에서 양편 어디든 지지하는 것에 맞서야 할 것이라고 주장했다.

키예프 정부의 합법성을 믿지 않으며 프라비 섹토르와 다른 유로마이단 준군사조직으로부터 위협을 느낀 그 지지자들 다수의 진정한 두려움과 분노에도 불구하고 동부의 운동은 자신의 거울 이미지인 유로마이단보다 더 이상 진보적이지 않다.

유로마이단과 마찬가지로 반마이단 시위는
[지역간] 분열을 넘어 지지받을 수 있는 종류의 정치적 노동계급 요구를 명확히 표명하지 않았다.

그 대신 반마이단에는 종종 스탈린주의의 그늘 아래 있는 러시아 민족주의가 만연하다. 러시아ㆍ소련 깃발이 눈에 많이 띄고, 검은색과 주황색 줄무늬로 된, 2차 세계대전 당시 소련이 수여했던 훈장에 사용된 성조지의 리본
[Ribon of St. Georgeㆍ현대 러시아에서 군사적 용기를 상징하는 것. 소련은 2차 세계대전 승전을 기념하며 수여된 훈장의 리본으로 사용됐다]이 운동에서 단결의 상징으로 사용된다. 이는 우크라이나를 편입시켰던 위대한 러시아 제국의 나날들을 상기시키는 것이다.

반마이단을 주도하는 친러시아 또는 러시아 민족주의 정치는 파시스트 단체에 최적의 조건이다. 반마이단 운동의 보다 혼란스러운 조건에서, 유로마이단에 존재했었던 것과 같이 세력을 규합한 파시스트를 알아보기란 쉽지 않다. 그러나 그들이 그곳에 존재하는 것은 분명하다.

우크라이나의 가장 큰 파시스트 단체 스보보다와 프라비 섹토르를 구성한 단체들은 우크라이나 민족주의에 뿌리를 내리고 있다.

파시즘과 반동

더 작은 규모긴 하지만 우크라이나에는 러시아 나치인 러시아민족통일당(Russian National Unity Party)과 연관된'슬라브족의 단결(Slavic Unity)'과 같은 러시아 민족주의에 바탕을 둔 파시스트 단체가 있다. 러시아에 뿌리를 둔 이들 파시스트 단체 몇몇은 지난해 11월 우크라이나 동부 도네츠크에서 행진을 벌이기도 했다. 그 직후 유로마이단 시위가 폭발했다.

지금 그 단체들이 반마이단에 집중하고 있을 수 있다. 왕정 지지자들의 검정과 황금ㆍ백색 깃발이 우크라이나 남부와 동부를 통합한 '새로운 러시아' 또는 우크라이나와 벨로루시를 장악한 '대러시아'라는 구호와 함께 극단적 러시아 민족주의자들에게 인기를 끌고 있다.

그리고 반 유대주의 흐름이 또다른 인종주의ㆍ동성애혐오주의 요소와 함께 반마이단 운동 구호를 오염시키고 있음을 쉽게 발견할 수 있다.

반마이단 운동은 스스로를 '반파시스트'라고 칭하길 선호한다. 그러나 이는 반동적인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을 '반파시스트'라고 부르는 것 만큼 매우 허황된 소리일 것이다.

진정한 반파시스트 운동은 그 경쟁자인 민족주의자 또는 배타적 애국주의자 이념을 촉진하는 것으로 건설되지 않는다. 일일이 셀 수 없이 많은 무장 준군사조직을 구성한 청년들의 작은 단체들에 의해서도 아니다. 이는 오직 스보보다와 프라비 섹토르 세력의 거울 이미지만 만들어낼 뿐이다.

특히 가짜 '반파시스트' 수사와 진짜 반유대주의의 일그러진 조합은 프라비 섹토르의 나치가 유대인 또는 유대인이 조정하는 조직이라는 잘못된 생각을 만들어낸다.

반마이단 운동에서는 유로마이단의 지도자들과 같은 잘 알려진 정치적 인물이 부족하다. 몇몇 도시에서 반마이단 시위가 매우 크게 벌어졌지만 통일된 요구안 또는 키예프 독립광장('마이단'의 원본)과 같은 저항의 중심은 불분명하다.

적ㆍ청ㆍ흑 깃발을 든 '도네츠크 인민공화국(People's Republic of Donetsk)'이라고 알려진 것을 포함해 돈바스 인민의용군(the Donbass People's Militia), 동부 전선(the Eastern Front), 남동부 군대(the South-Eastern Army) 등 일련의 단체와 민병대가 동부와 남부의 주들에 등장했다.

이들은 이전에 잘 알려져 있지 않은 사람을 지도자로 내놓았다. 투표로 뽑은 것도 분명 아니다. 그들은 비도덕적으로 보이는 패거리다. 과거에 피라미드 사기꾼이었지만 도네츠크 인민공화국의 '의장'에 앉은 데니스 푸실린도 거기에 포함된다.


돈바스 인민의용군(the Donbass People's Militia) 지도자 파벨 구바레프(Pavel Gubarev)가 과거 파시스트 준군사조직 러시아 민족단결단(Russian National Unity)과 함께하고 있다. 앞줄 왼쪽에서 셋째다(뒷쪽 문의 문양은 러시아 파시스트의 상징으로 쓰인다). [Pauluskp]

돈바스 인민의용군은 파벨 구바레프(Pavel Gubarev)가 이끈다. 그는 파시스트 준군사조직 러시아 민족단결단(Russian National Unity)과 우크라이나 진보사회주의자당(the Progressive Socialist Party of Ukraine)의 전 회원이었다. 우크라이나 진보사회주의자당은 이름과 달리 러시아 파시스트 알렉산드르 두긴의 영향력 아래에 있는 유라시안 청년동맹(the Eurasian Youth Union)과 동맹을 맺었다.

슬라뱐스크 '시장' 비야체스라프 포노마리오프는 소련의 아프가니스탄 전쟁에 참전했던 퇴역군인이고 비누공장의 전 경영진이다. 그는 자신의 민병대 지지자들을 '의심스러운 사람'이라고, 특히 우크라이나어를 사용하는 이들을 그렇게 불렀다고 알려졌다. 그리고 어떤 무명의 무장 강도는 4월 포노마리오프의 명령으로 로마인
[집시] 가족의 집을 공격해 도둑질 했다고 주장했다.

우리는 친우크라이나 활동가들이 프라비 섹토르 전투원들과 함께 5월 2일 오데사의 참혹한 충돌에 연관이 있다는 것을 알고 있다. 다수가 축구 훌리건 집단 '울트라'인 이들은 전투를 계획하기 위한 예행 연습으로 축구경기를 이용했다
[4월 27일 하리코프에서 드니프로와 메탈리스트의 경기에 모인 훌리건 5000여 명은 프라비 섹토르 활동가와 함께 키예프 정부에 항의하는 시위대 300여 명의 평화로운 행진을 공격했다ㆍ링크]. 파시스트 단체들은 자신의 회원 중 한 명의 죽음을 애도하고 있다.

그리고 오데사 반마이단 단체 '남부 전선(Southern Front)'은 5월 2일 '걱정스러운 거주자들'이 '오데사 방어에 함께' 참여해줄 것을 재촉하는, 러시아 파시스트들이 사용하는 검정과 황금ㆍ백색 깃발과 마스크를 쓴 전투원을 그린 이미지를 배포했다.


5월 2일 반마이단 활동가들을 동원하기 위해 사용한 이미지. 러시아 파시스트 집단이 선호하는 검정과 황금ㆍ백색으로 된 깃발이 담겨있다.

진정한 분노

중요한 것은 이것이 반마이단 운동을 지지하거나 심지어 거기에 참여하는 이들 모두 혹은 대다수가 파시스트라는 걸 말하는 게 아니라는 점이다. 당연히 다수는 파시스트가 아니다. 5월 2일 참혹한 죽음을 맞이한 반마이단 활동가 가운데는 스스로 반마이단 운동에 참여한 주요 정당 지역당(Party of Regions) 소속 오데사 지방의회 의원과 조그만 주변부 좌파 단체인 보로트바(Borotba) 활동가도 있다.

반마이단 지지자 다수는 유로마이단 지지자 다수와 마찬가지로 경제 붕괴와 부패한 정치 제도에 대한 진정한 분노 때문에 움직였다. 덧붙여 키예프국제사회연구소(the Kiev International Institute of SociologyㆍKIIS)가 우크라이나 남부와 동부 여덟 개 주에서 4월 둘째 주 실시한 여론조사에 따르면 이 지역에서 새 정부가 합법적이라고 믿는 사람의 수는 기껏 세 번째였다.

놀라운 일은 아니다. 키예프 정부는 유로마이단 여파로 집권했다. 그런데 운동은 러시아어 사용 인구가 집중돼 있고 문화와 경제에 있어 러시아와 강하게 연관돼 있는 우크라이나 남부와 동부 지역에서 약간의 지지만 얻었다.

준군사조직이 핵심 건물을 점거하는 것에 대해 이 조사의 12% 만이 지지했다는 것은 별 의미가 없다.

사실 조사에서 표현된 가장 큰 걱정거리 두 개는 '약탈 확대'(43%)와 경제 붕괴(39%)였다. 내전 위협(32%)과 월급ㆍ연금의 미지급(25%)이 그 뒤를 따랐다.

이러한 두려움은 서부와 중부 인민들 역시 공유할 법한 것이다.

또한 눈에 띄는 것은 여론조사가 우크라이나의 경제와 정치인 대다수를 조정하는 소수의 올리가르히와 실질적으로 대결하고자 하는 욕망을 드러냈다는 점이다. 24%가 올리가르히 재산의 국유화를 지지하고 또다른 41%는 올리가르히가 '불법적으로 벌어들인' 재산의 국유화에 찬성한다는 사실도 드러났다.

그러나 동부에서 유로마이단과 친러시아 운동 모두는 우크라이나 전역의 노동자를 단결시킬 수 있는 정책과 요구를 제시하지 않았다.

견고한

그들은 전통적인 정치적 분할속에 견고하게 자리잡고 있다. 이는 예전에 우크라이나 올리가르히의 두 날개로 동맹을 맺은 정당들에 대한 투표로 표현됐다. 그중 한 편은 이익이 EU에 달렸고 다른 한 편은 러시아에 밀접하게 연관돼 있다.

현재 이 출구 없는 정치는 군사적 활동으로 대치되고 있다. 이는 그 자신의 동학을 지니고 있다. 형식적 국가구조가 어찌할 도리 없이 그 내부로부터 붕괴되는 것으로 겉잡을 수 없이 확대되고 있다.

유로마이단 운동은 야누코비치 실각 이후 흩어졌지만 자위를 위한 준군사 조직과 프라비 섹토르 세력은 해산하지 않았다. 몇몇 도시에서 그들은 경찰이 있든 없든 '순찰'을 하고 있고 거기에 강도질을 벌이고 구타와 침입을 자행하며 인종적 공격과 정치인ㆍ정부 관료에 대한 습격을 하고 있다.

인권단체 '개인에 대한 범죄정보 그룹(the Information Group on Crimes Against the Person)'은 지역 신문에 보도된 이런 사건들에 대한 목록을 수집해 왔다. 이들은 또한 지금까지 반마이단편에 의해 자행된 폭력적 공격행위의 수가 더 적은 데 주목한다.

우크라이나 서부와 동부에서 정부 청사와 경찰서는 어느 쪽 단체에 의해서든 그들을 포위 공격한 이들에 의해 손쉽게 점령돼 왔다. 키예프 정부는 동부에서의 상황을 통제할 수 없다는 것을 인정한다.

워싱턴도 모스크바도 아니다

늑대는 문 밖에, 우크라이나 외부에 있다. 러시아를 한편으로 하고 미국과 EU를 한편으로 하는 주요 제국주의 세력은 오랫동안 제국주의 전장으로 피흘려온 우크라이나에서 경쟁을 벌이고 있다.

워싱턴과 모스크바는 우크라이나 인민에게 도움이 될 어떤 제안도 하지 않았다. 양편은 오직 그 자신의 자본주의 블록의 이익을 위해 평범한 사람들이 비용을 치를 세계의 분할에만 관심을 갖고 있다.

우크라이나는 러시아에 전략적ㆍ경제적으로 훨씬 더 중요하다. 그래서 러시아는 대규모 군사적 개입을 준비하고 있다. 4만여 명의 병력을 국경에 모아 언제든 침략할 수 있게 준비하는 것으로 대규모 파괴와 참혹한 전쟁의 위협을 가하고 있다.

미국과 EU 편은 주로 러시아의 확장을 저지하는 것에 관심을 모으고 있다. 그곳이 어디에 있든 자신의 제국주의 '뒷마당'이라는 것이다. 우크라이나에서의 이해관계 수준에 맞춘 미국과 EU의 지금까지 개입에서는 주요 무기로 탱크보다는 약간의 제재를 이용한 부드러운 방법이 사용됐다. 물론 이는 위기가 고조되면, 특히 러시아가 움직인다면 바뀔 수 있는 것이다. 북대서양조약기구(NATO) 국가의 사회주의자들은 미국 또는 EU가 군사적 행동으로 방향을 튼다는 신호에 맞춰 저항을 준비해야 할 것이다.

공연하게 지지했었다. 우리는 스보보다의 파시스트 올레흐 티아니보크를 포함해 유로마이단 지도자들이 EU 관료, 미국 고위 대변인과 함께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EU 외교안보 고위대표 캐서린 애슈턴(Catherine Ashton)이 올레흐 티아니보크, 비탈리 클리츠코, 아르세니 야체뉵과 함께 찍은 사진(링크)

▶미국 국무부 대변인 빅토리아 눌런드(Victoria Nuland)가 올레흐 티아니보크, 비탈리 클리츠코, 아르세니 야체뉵과 함께 찍은 사진(링크)

그리고 서방의 권력은 새 정부를 재빠르게 인정했다. 우크라이나 인민 대다수가 그 정부를 불법적이라고 여기고 있음에도 상관없이 말이다.

새 정부의 집권은 그 즉시 국제통화기금(IMF)의 270억 달러 차관 지원으로 축하받았다. 키예프 정부에 따르면 5월 1일부터 가스 요금 50% 인상을 포함한 긴축정책의 완료와 함께 지급될 차관이다. 우크라이나 노동자들이 대가를 지불하게 된 것이다.

미국은 역시 군사적 행동을 포함시켰다. 존 브래넌 CIA 국장은 4월 키예프를 공공연하게 방문했다. 서방 언론에서는 부정적 언급 없이 취급했지만 말이다. 미군 공수부대가 폴란드에서 훈련을 실시하고 추측건대 미국은 우크라이나 군대에 '비군사적' 지원을 제공하고 있다.

이라크에서 전쟁이 자신들에게 좋은 것이라고 여겼으면서도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략에 반대하는 미국과 유럽 지도자의 위선에 그 누구도 넘어가지 않을 것이다. 마찬가지로 러시아가 개입을 핑계로 내놓은 덫에도 빠져선 안 된다. 이 제국주의 경쟁 체제에서 좋은 제국주의란 없다.

대립하는 양측이 경쟁하는 제국주의의 지원을 받으면서 우크라이나 내 전투 사망자 수가 증가하면 선전 전쟁은 강화될 것이다.

그러나 선택할 수 있는 좋은 편은 없다. 반동적 준군사조직과 그들의 후원자이고 경쟁하는 제국주의인 워싱턴과 모스크바 모두는 분할 혹은 그 이상의 유혈사태라는 위협과 다른 어떤 것을 제안하지 않는다.

우크라이나 전국의 평범한 노동계급 인민은 나라가 분할된다면 큰 값을 치러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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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토(NATO)는 2000년대 동진 정책을 강화했다. 1999년 폴란드ㆍ체코ㆍ헝가리가 가입했고 2004년에는 러시아의 목 아래인 발트3국(에스토니아ㆍ라트비아ㆍ리투아니아)를 비롯해 7개 나라가 동시에 가입했다. 2009년에는 크로아티아와 알바니아가 가입했다. 1991년 소련 해체 후부터 계속된 나토의 동진 정책과 유럽연합의 지속적인 확장은 공공연하게 러시아의 고립을 목적으로 했다. 2000년대 러시아의 군사적 재무장과 옛 러시아 제국 부활의 꿈은 일차적으로 이에 대한 반발로 이해해야 한다. [그래픽=위키피디아]

우크라이나 사태 초기 반러시아 정서가 시위대를 지배했다. 2008년 조지아에서와 같은 러시아의 개입은 처음부터 주요 두려움이었다. 천연가스라는 목줄을 쥔 러시아는 몇 차례 가스 공급을 중단함으로써 자신들에 유리하게 우크라이나를 조정해 왔다. 대중은 자신의 빈한한 삶을 현재 러시아의 지속적 개입과 그들이 과거 남겨놓은 유산, 옛 소련의 유산 탓이라고 생각할 가능성이 컸다. 공공연하게 러시아 제국의 부활을 도모해온 푸틴의 모습도 이러한 이미지를 굳혀왔다. 이는 서방 언론에 의해 더 강화돼 왔다.

그러나 평화롭게 살고 있는 우크라이나와 옛 소련 공화국들을 푸틴이 제국 부활의 꿈을 위해 위협해 왔다는 것은 그림의 한쪽 편만 보는 것이다. 미국을 두목으로 한 서방제국주의 진영은 1991년 소련 해체 이후 지속적인 동진 정책을 펼치며 이미 패배한 옛 제국 러시아에게 모든 것을 내놓으라고 위협했다. 나토(NATO)는 군사 측면에서, 유럽연합은 경제적ㆍ정치적 측면에서 러시아를 고립시켜 위협해 왔다.

먼저 나토를 살펴보자. 1990년 소련은 통일 독일에 나토군이 주둔하는 것이 서방의 군사적 동진의 신호탄이 될 것을 우려했다. 그해 2월 고르바초프 소련 대통령과 제임스 베이커 미국 국무장관, 헬무트 콜 독일 총리의 협약은 소련의 이런 우려를 불식시키기 위한 것이었다. 당시 베이커는 "나토 관할지는 동부를 향해 1인치도 이동하지 않을 것"이라고 약속했고 콜은 "당연히 나토는 영토를 확대시킬 수 없다"고 보증했다.

그러나 미국의 이런 약속은 몇 년 지나지 않은 1994년부터 공공연하게 파기됐다. 1991년 바르샤바조약기구 해체 후 집단안보체제의 부재에 불안을 느끼던 중동부 유럽 국가들에 나토는 1994년 나토-PFP(Partnership for Peace)를 제안했다. 소련 해체 후 미국과 관계 개선에 힘써왔던 옐친 러시아 대통령은 나토의 이 정책에 우왕좌왕 했다. 하지만 1995년 나토가 확대정책을 공식화하면서 러시아의 서방제국주의에 대한 반발은 강화되기 시작했다. 2004년 발트3국(에스토니아ㆍ라트비아ㆍ리투아니아)의 나토 가입은 러시아 입장에서 서방으로부터의 위협에 쐬기를 밖는 꼴이었다. 이미 1999년 코소보 사태 당시 나토는 세르비아를 옹호하며 평화적 해결책을 모색하던 러시아를 무시하고 폭격을 감행해 러시아의 적대감을 키운 바 있다. 세르비아 폭격 후 서방에 반발한 민족주의가 러시아 정치권을 휬쓸었다. 2000년 푸틴의 집권과 '강한 러시아' 정책은 1995년, 1999년, 2004년의 잇따른 나토의 확대에 대한 반발의 과정 속에서 이해해야 한다. 푸틴의 개인적 성향을 결정적인 것으로 볼 수 없다. 2008년 조지아와의 전쟁은 서방의 동진 정책에 대한 러시아의 대응이었다.

유럽연합의 확장도 마찬가지다. 소련 해체 후 유럽연합의 경제적 영향력은 중동부 유럽으로 꾸준히 확장되고 있었다. 그 결정적 국면은 2004년 발트3국을 포함한 중동부 유럽의 유럽연합 가입으로 시작됐다. 우크라이나도 2003년 유럽연합 가입을 신청함으로써 유럽의 경제영토 확장과 포위라는 위협은 소련에게 현실적인 게 됐다. 유럽연합도 확장 정책에서 자신의 주요한 목표 중 하나가 러시아의 포위와 고립이라는 것을 숨기지 않았다. 2003년 우크라이나의 가입 신청 당시 유럽연합은 그 조건으로 이후 전개될 러시아의 경제구상에 참여하지 않을 것을 내걸었다. 물론 2013년 우크라이나 정부의 우왕좌왕과 마찬가지로 당시 우크라이나 정부도 유럽연합의 그러한 조건에 한 발 물러서긴 했다. 재밌는 것은 당시 총리가 이번에 쫓겨난 야누코비치였다는 것이다. 즉 야누코비치를 일관된 친러시아파로 보는 것은 우크라이나가 처한 현실을 제대로 보지 못한 분석일 뿐이다.

이러한 서방의 군사적ㆍ경제적ㆍ정치적 동진, 러시아 포위ㆍ고립 정책은 2008년 경제위기 이후 위기를 현실화 시켰다. 유럽연합은 2009년부터 우크라이나를 포함해 몰도바ㆍ벨로루시ㆍ조지아ㆍ아르메니아ㆍ아제르바이잔 여섯 개 나라와 유럽연합-동부 파트너십 프로그램을 펼치면서 동진 정책을 공식화 했다. 자신의 두 수도, 상트페테르부르크와 모스크바로부터 그리 멀지 않은 곳까지 진출한 서방 세력에 러시아가 위협을 느끼는 것은 당연하다. 물론 그렇다고 러시아 제국주의를 옹호할 순 없다. 하지만 지금의 우크라이나 사태에서 러시아를 유일한 악의 축으로 모는 것은 문제의 진정한 핵심이 아니다.

막강한 군사력을 지닌 제국주의 열강의 다툼에 무력감만 느낄 필요는 없다. 유럽연합은 자신의 확장 정책에 의식적으로 신자유주의적 정책을 강조하고 있다. 공기업 민영화, 공공 서비스의 축소, 노동시장 유연화는 유럽연합이 자신의 가입 조건으로 빼놓지 않는 것들이다. 그들은 우크라이나에게도 마찬가지로 가스와 난방 요금 인상, 공공 서비스의 축소를 요구했다. 이러한 정책은 노동계급 대중의 사회적 불만을 자극할 것이다. 실제로 이번 우크라이나 사태의 이면에는 이에 대한 대중의 광범위한 불만이 자리잡고 있다. 야누코비치는 가스요금 인상 시도, 노동법과 연금제도 개악, 의료 서비스의 공공성 약화로 대중에게 큰 불만을 사왔다. 그리고 이러한 유럽연합의 정책은 중동부 유럽을 벗어나서 유럽 전체에 크나큰 반란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최근 가장 중요한 사례는 민영화로 인한 고통에 맞선 보스니아의 혁명이다. 1995년 민족주의적 갈등으로 참혹한 전쟁을 겪은 이 나라의 노동계급은 지금 민족과 국경을 넘어선 계급적 단결을 도모하고 있다. 즉 친유럽이냐 친러시아냐라는 오도된 갈등으로부터 독립적인 대안을 제시할 수 있다면 우크라이나 인민은 진정한 대안을 찾을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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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래 글은 3월 6일 참세상에 기고한 글이다. 글이 공개된 후 유럽연합과 미국을 한 편으로 하고 러시아를 다른 한 편으로 한 갈등이 크림자치공화국의 지위를 중심으로 더 격화되고 있다. 나토(NATO)는 폴란드에 F-16 등 전투기를 배치하고 미국은 알레이버크급 이지스 구축함을 흑해에 파견했다. 러시아도 대규모 군사훈련을 반복하며 군사적 긴장 강화의 한 축을 담당하고 있다. 따라서 우크라이나 국내의 긴장도 친유럽연합이냐 친러시아냐를 중심으로 커져가고 있다. 2000년대 이후 나토는 꾸준히 러시아 국경을 향해 동진해왔다. 발트3국(에스토니아ㆍ라트비아ㆍ리투아니아)의 2004년 나토 가입은 러시아에게 결정적 위협으로 다가왔다. 상트페테르부르크와 모스크바 바로 앞까지 서방의 군대가 진격한 것이다. 유럽연합의 경제적ㆍ정치적 확장도 마찬가지다. 유럽연합은 2009년부터 우크라이나를 포함해 몰도바ㆍ조지아ㆍ벨로루시ㆍ아르메니아ㆍ아제르바이잔 6개 옛 소련 공화국과 유럽연합-동부 파트너십 정상회의를 개최하고 있다. 이전 발트3국과 중동부 유럽 국가들이 유럽연합에 가입할 때와 마찬가지로 이 협상에서도 유럽연합은 러시아가 추진하고 있는 경제구상에 가입하지 않을 것을 요구하고 있다. 즉 러시아와의 적대 관계를 분명히 밝히고 어느 편에 설것인지를 결정하라고 강제하고 있는 것이다.

아래 글에서 밝히고 있듯이 우크라이나에서의 국내적 갈등은 제국주의 갈등을 빼놓고선 이해할 수 없다. 제국주의 열강의 대립하에 정치적 선택의 여지가 좁은 국내 정치인들의 우유부단함이 대중적 불만을 촉발시켰다. 물론 대중적 저항의 배경에는 신자유주의적 경제 개혁에서 비롯한 광범위한 불만이 존재한다. 최근 우크라이나 야권(현 과도 임시정부 세력)이 2월 18~19일 사이 100여 명의 목숨을 앗아간 저격의 배후라는 폭로가 있었다. 같은 저격수들이 시위대와 경찰 모두를 공격했다고 한다. 여기서 어떤 음모, 특히 미국을 중심으로 한 음모가 떠오를 수밖에 없다. 하지만 유로마이단이 야누코비치의 실각으로 이어질 수 있었던 것, 극우파가 단호하게 거리에서 전투를 지속할 수 있었던 것은 광범위한 대중적 불만과 저항에 대한 지지가 존재했기 때문이다. 그 저항이 극우 파시스트에 의해 납치됐다고 할지라도 말이다. 음모를 밝혀내는 것은 그 나름대로 중요하겠지만 지금도 가장 중요한 것은 우크라이나 사태가 제국주의적 갈등을 배경으로 진행되고 있다는 것이다. 현 과도 임시정부를 구성한 정치세력도 이 갈등에서 독립적이지 못하다. 따라서 이들도 우왕좌왕할 것이고 그 과정에서 내부의 갈등이 표출될 것이다. '유럽'으로 표현됐던 대중의 광범위한 사회적 불만을 이들 정치세력이 해결해주지 못할 것도 뻔한 이치다. 따라서 우크라이나 사태 1막에서 큰 역할을 하지 못했던 좌파에게 기회는 아직 남아있다. 여전히 과제는 유럽연합과 미국의 서방제국주의와 러시아의 동방제국주의 둘 모두에 독립적인 대안을 건설하는 것이다.

참세상에 기고한 글을 그대로 다시 옮겨놓는다.


제국주의 변경 우크라이나, 세계를 흔들다
참세상 3월 6일

지난해 11월 말 시작된 우크라이나 위기가 2월 22일 야누코비치의 실각 이후 흑해를 중심으로 한 세계적 위기로 발전하고 있다. 우크라이나는 1991년 소련으로부터 독립 후 세계경제의 일원으로 편입됐다. 그에 따라 세계경제의 위기로부터의 영향도 강해졌다. 옛 러시아 제국의 회복을 꿈꾸는 푸틴과 러시아 지배계급도 우크라이나의 상황을 규정하는 중요한 힘이다. 우크라이나 지배계급이 친러시아와 친유럽을 시계추처럼 오락가락 하게 만든 것이 이 두 조건이다. 이 과정에서 소비에트 몰락 후 형성된 과두지배계급 올리가르히는 우크라이나 정치를 자신의 뜻대로 주물러왔다. 장기판의 졸처럼 제국주의 세계경제와 자국 내 올리가르히의 지배에 시달려온 우크라이나인들은 자신의 독립적인 정치적 대안을 건설하지 못했다. 이는 과거 소비에트 시절 지배 세력인 공산당이 현재는 민족주의적 정치에 굴복하고 대중의 진정한 열망에 아무런 관심도 없는 것과 관련이 있다. 불행히도 키예프의 거리로 나선 우크라이나인 다수는 '좌파'를 공산당과 연관지어 생각한다. 다른 좌파는 정국에 영향을 미치기에는 너무 약하다. 지난 세 달 간 우크라이나의 위기에서 극단적 민족주의 세력, 파시스트가 정국을 주도한 이유다. 하지만 이들도 게임의 최종 주재자는 아니다. 러시아의 군사적 개입은 우크라이나를 세계적 경쟁의 주요 격전지로 만들고 있다. 결국 3개월을 이어온 싸움은 현재 야누코비치가 쫓겨난 후 러시아와 서방의 국제적 분쟁으로 발전하고 있다. 1853~56년 자본주의 성장을 주도하던 프랑스ㆍ영국은 오스만투르크를 부추겨 우크라이나 크림 반도에서 옛 제국 러시아와 전쟁을 벌였다. 제2차 세계대전 땐 독일과 소련이 맞부딪힌 전장이었다. 우크라이나는 다시 한 번 제국주의 국가들 사이의 전장이 될까? 2013년 11월 이후 우크라이나 위기의 배경과 전개를 살펴본다.



1월 22일에서 23일 사이 키예프 거리의 바리케이트. 1월 16일 집회와 시위를 강력하게 규제하는 11건의 '반시위법'이 의회에서 통과된 후 거리 시위가 다시 격화됐다. [사진=Ilya Varlamov]

배경 1 충돌사고 일으킨 야누코비치의 방향전환

2013년 11월 30일 새벽, 빅토르 야누코비치 대통령이 유럽연합(EU)과의 협력협정 체결을 중단한 것에 항의하는 키예프의 마지막 시위대는 기껏 400여 명정도로 알려졌다. 그러나 무언가에 쫓긴 듯 야누코비치는 이 시위에 경찰 특수부대 베르쿠트(Berkut) 2000명을 투입해 강제 해산시켰다. 주로 학생인 시위대는 베르쿠트의 진압봉에 맞아 거리에서 피를 흘리며 쓰러졌고 33명이 체포됐다.

21일부터 열흘째 이어오던 시위는 1일 정권과의 정면 충돌로 발전했다. 경찰의 강경진압에 분노한 키예프 시민은 독립광장으로 모여들었다. 이전 열흘 간 수만명 규모였던 시위는 순식간에 수십만명 수준으로 늘어났다. 언론에 따라 35만~50만명이 1일 시위에 참여했다고 보도했다. 광장에는 텐트가 설치됐고 시위대 일부는 시청 등 정부 건물들을 점거하기 시작했다. 연병장 또는 광장을 뜻하는 '마이단(Maidan)'은 이 때부터 이 운동의 이름으로 불리게 됐다.

마이단, 또는 유로마이단으로 불리는 이 운동이 시작된 것은 2013년 11월 21일 우크라이나 정부가 EU와의 협력협정 체결 중단을 발표하면서다. 그리고 이러한 정책전환은 현기증이 느껴질 만큼 급격한 것이기도 했다. 다름 아닌 야누코비치 스스로에 의해 유럽화 만이 우크라이나가 살 길이라는 선전이 협정 중단 직전까지 계속됐기 때문이다. 당연히 여기에는 이유가 있다. EU와의 협력을 추진했던 것도, 그것을 포기한 것에도 모두.

2008년과 2010년 두 차례 IMF로부터 차관을 지원받을 만큼 우크라이나 경제상황은 안좋다. 실업률은 준수한 편으로 나타났지만(2012년 7.5%, 세계은행) 실제로는 일자리를 찾아 해외로 떠나는 사람이 늘고 있었다. 독일의 옛 동독지역으로 일자리를 찾아온 외국인 중 우크라이나인의 수는 네 번째로 많다. 러시아의 산업지역에서도 부족한 생산인력을 우크라이나인이 주로 메꾸고 있다. 조지아ㆍ폴란드와 비교했을 때 GDP의 변화는 가장 급격해 불안정한 우크라이나 경제상황을 그대로 보여준다. 경제위기 여파로 2009년엔 1인당 GDP 증가율이 -14.4%까지 떨어졌다. 같은 해 조지아는 -4.37%, 폴란드 1.53%, 전 세계는 -3.25%였다. FTA까지 포함된 EU와의 포괄적 협력협정은 이러한 경제불안의 탈출구로 제시됐다.

EU와 협력을 강화하려는 야누코비치의 노력이 위선은 아니었다. 협상을 시작한 후 러시아 정부의 간섭이 계속됐지만 충돌을 불사하고 추진됐다. 2013년은 첫날부터 우크라이나와 러시아의 가시 돋친 설전이 펼쳐졌다. 러시아 외무부 경제협력국 알렉산드르 고르반 국장이 "우크라이나는 두 마리의 토끼를 동시에 잡으려 하고 있다. 자기들을 그렇게 반기지 않는 EU에 가입하려 애쓰면서 동시에 (러시아가 주도하는) 관세동맹에도 자신들에게 유리한 조건으로 참여하길 원하고 있다"고 지적하며 이를 "조금만 임신을 하는 법은 없다"고 비꼬았다. 다음 날엔 우크라이나 외무부 공보국 올렉 볼로쉰 국장은 "우크라이나는 (러시아 주도의) 관세동맹은 물론 EU를 비롯한 모든 국제기구와의 협상에서 전적으로 자국의 이익을 추구하고 있다"고 반박했다. 우크라이나의 이러한 정책은 독립국가로서 당연한 권리라는 것이다.

이러한 갈등은 2013년 내내 계속됐다. 7월 말에는 러시아가 우크라이나 제과업체 '로셴'의 제품 수입을 금지했다. 8월 22일에는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직접 나서 "우크라이나가 EU와 경제협력을 맺는다면 관세동맹 국가들으 그에 따른 보호조치를 취할 것"이라고 경고했다. 우크라이나의 반발도 만만치 않았다. 11월 11일 우크라이나는 러시아로부터의 가스 수입을 전면 중단했다. 비록 일주일만에 수입은 재개됐지만 그동안 천연가스를 목줄로 우크라이나를 압박해온 러시아에게는 예상치 못한 역습이었다. 2012년부터는 러시아에서 유럽으로 수출된 천연가스를 적은 규모로 역수입하면서 우회로를 찾고 있었다. 천연가스 공급가를 놓고 2005년과 2009년 두 차례 갈등이 있었지만 매번 우크라이나의 항복으로 끝이 났었기 때문이다.

최근의 언론 보도와 달리 야누코비치를 뼛속까지 친러시아파로 몰기에는 그의 집권 후 행보가 많이 다른 것을 알 수 있다. EU와의 협정을 성사시키기 위해 감옥에 갇혀있던 그의 정적 율리아 티모센코 전 총리를 석방하는 방법까지도 진지하게 고려했었다. EU는 협력협정의 조건으로 티모센코의 석방을 요구하고 있던 터였다. 비록 그렇게 되지는 않았지만 10월 17일에는 "현재 우크라이나에는 티모센코가 외국으로 나갈 수 있도록 허용하는 법률이 없"지만 "의회가 이문제를 해결해 관련 법안을 승인하면 나도 서명할 것"이라고 밝혔었다.

그러나 EU와의 협정 체결이 효과를 낼 때까지 기다리기에는 상황이 급박해졌다. 신흥국들을 중심으로 퍼져나가기 시작한 금융위기 징후에서 우크라이나도 자유롭지 못했다. 지난해 8월 영국 파이낸셜타임스에 의하면 우크라이나의 외환보유액은 5~7월 10% 가까이 감소했다. 당시 미콜라 아자로프 총리는 국제통화기금(IMF) 추가차관 지원 조건도 EU와의 협정을 포기한 이유로 꼽았다. 그는 IMF가 가스ㆍ난방비 40% 인상, 월급 및 최저임금의 현 수준 동결, 에너지 분야 보조금 인하 등 우크라이나 정부가 받아들일 수 없는 조건을 제시했다고 밝혔다. 실제로 시위가 격화된 12월 2일 야누코비치는 메지히리야에 있는 자신의 별장에서 가진 인터뷰 시간의 4분의 3을 가스가격 등 경제문제를 설명하는 데 할애했다. 여기에 러시아의 압박으로 우크라이나는 더 궁지에 몰렸다. 야누코비치의 지역당 원내 대표 알렉산드르 예르레모프는 지난해 가을 3개월 간 러시아와의 교역 감소로 50억 달러의 손실을 입었다고 주장했다. 천연가스라는 목줄을 쥐고 있고 관세 보복까지 언급하는 러시아에 맞서기엔 유럽이라는 희망은 너무나 불투명했다. 야누코비치는 수출의 21.2%, 수입의 28.4%를 러시아에 의지하고 있는 우크라이나가 홀로 서기에는 너무 약하다고 판단했을 것이다.

전투 1 주먹과 대화, 오락가락 야누코비치

야누코비치가 EU와 협상을 중단한 것 자체가 결정적인 것은 아니었다. 야당과 일부 학생의 시위를 키예프 시민 전체의 반란으로 발전시킨 건 11월 30일 새벽의 강제진압이다. 키예프-모힐라 대학의 미하일로 비니츠키 교수는 "토요일 이른 아침 폭동진압경찰에 의해 독립광장의 시위대 농성장이 공격당하면서 상황이 바뀌었다"고 증언한다. 정부는 법원을 움직여 1일 시위를 금지했지만 2004년 오렌지 혁명 이후 최대 규모의 사람들이 거리로 쏟아져나오는 것을 막을 순 없었다. 화염병과 돌멩이가 하늘을 가르고 몽둥이와 경찰의 방패가 충돌했다. 우크라이나의 반란을 전 세계에 알린 대통령 관저를 향해 돌진하는 불도저의 사진이 찍힌 것도 이날이다.

시위가 격화된 후에도 야누코비치의 오락가락은 멈추지 않았다. 12월 1일 시위를 금지하고 경찰 특수부대 베르쿠트를 투입하는 한편으로 야누코비치는 그날 긴급 성명에서 "EU와의 협정체결을 위해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하겠다"고 밝혔다. 그러나 이미 12월 1일 시위에서부터 "우크라이나의 거리로 쏟아져 나온 사람들은 더 이상 EU 통합을 요구하지 않고 있다. 그것을 요구할 때조차 지엽적인 요구일 뿐"이라고 비니츠키 교수는 지적했다.

12월 3일 야당은 여당인 지역당이 불참한 가운데 의회에서 내각 불신임암을 표결에 부쳤지만 부결됐다. 이날 아자로프 총리는 의회에서 강경 진압에 대해 사과했지만 광장에서의 시위는 계속됐다. 9일 야누코비치는 야당과의 협상, 체포된 시위대의 석방 등 유화책을 제시하는 듯싶었다. 10일 전직 대통령 3인을 만난 자리에서 그는 법률 위반 정도가 심하지 않은 이들을 석방하라고 "빅토르 프숀카 검찰총장에게 지시를 내렸"다고 말했다. "야권 시위에 강경하게 대응해야 한다는 주장을 지지하지 않는다"고도 밝혔다. 그러나 바로 그 날 경찰은 키예프 독립광장의 시위대 농성장을 습격해 바리케이트 해체를 시도했다.

냉탕과 온탕을 오가는 야누코비치의 혼란은 새해에도 계속됐다. 1월 16일 의회는 집회와 시위를 강력하게 규제하는 11건의 법률을 통과시켰다. 이들 반시위법엔 정부 건물 출입을 차단하면 최대 10년형, 공공장소에 무대와 앰프ㆍ텐트를 설치하면 최대 15일 구류, 마스크와 헬멧의 착용 금지 등이 포함돼 있다. 이 법의 통과는 끟는 물에 기름을 부은 게 됐다. 거리에서의 전투는 다시 격렬해졌다. 21일에는 시위가 시작된 후 첫 사망자가 나왔다. 이튿날에도 두 명이 목숨을 잃었다. 야당은 두 번째, 세 번째 희생자가 경찰 저격수의 총을 맞고 숨졌다고 주장했다. 야누코비치는 다시 물러서야 했다. 24일 종교단체 지도자와 만난 자리에서 내각 개편과 반시위법의 개정을 암시했다. 25일에는 바티키프쉬나(조국당) 대표 "야체뉵이 총리직을 받아들이면 바로 내각 총사퇴 결정이 내려질 것"이라며 양보안을 내놓았다. 대통령 권한을 축소시키는 헌법 개정도 언급했다. 주먹과 대화를 오락가락하던 야누코비치는 결국 2월 18일의 충돌 이후 19일 양보안을 내놓았지만 이미 때는 늦었다. 이후 21일까지 계속된 거리 전투는 최대 100여 명이 목숨을 잃는 참극으로 이어졌다. 결국 야누코비치는 수도에서 쫓겨나 자신의 정치적 고향인 도네츠크로 도망쳤다. 22일 알렉산드르 투르치노프 의장이 대통령 대행으로서 이끄는 임시정부가 들어서면서 마이단의 1막은 내려졌다.



마이단의 준군사조직 모습. 정면을 바라보는 사람의 헬멧에 있는 문양은 울프스앵글로 파시스트의 상징 중 하나다. 극우파는 거리 전투를 주도하며 마이단을 극단적 민족주의 이데올로기로 납치했다. [사진=Giles Clarke]

배경 2 마이단, 사회적 불만의 민족주의적 왜곡

지난해 11월 마이단이 처음 시작됐을 때는 바티키프쉬나와 비탈리 클리츠코의 민주개혁동맹(UDAR), 학생들이 시위를 이끌었다. 12월 1일 전국적인 투쟁으로 확산되면서 우크라이나 곳곳에서 키예프로 시위대가 모여들었다. 키예프에 방문하고 있는 제4인터내셔널 러시아 활동가 일리야 부드라이츠키스는 "마이단에는 억압받고 있는 서로 다른 사회적 집단의 사람들, 노동자, 실업자, 빈민과 학생들"이 함께 투쟁하고 있다고 설명한다.

EU와의 협정 중단, 경찰의 강경진압이 계기가 됐지만 그 배경에는 더 광범위한 불만이 도사리고 있다. 우크라이나자율노동조합(Autonomous Worker's UnionㆍAWU) 활동가는 "경제위기와 사회적 불평등, 부패, 공공 서비스의 쇠퇴, 가난, 실업"이 "사람들을 오늘날 거리로 나오게 만들었다"고 강조한다. 야누코비치가 2010년 대통령 자리에 오르면서부터 밀어붙인 신자유주의 정책이 배경에 있다는 것이다. AWU 활동가 데니스에 따르면 야누코비치 정부는 천연가스 요금을 올리고, 완전 보장을 포기한 의료보험을 도입하려 했고, 노동법을 개악시키려 했으며, 여성의 연금 수령 연령을 높이려 시도했고 철도 민영화도 추진했다. 물론 이 정책 다수는 중단되거나 철회됐다. 그러나 데니스는 이렇게 말한다. "노동계급의 복지나 일반적인 경제상태는 사람들이 원하는 것보다 못한 수준에 머물러 있다. 사람들이 더 나은 삶의 기준을 요구하는 것이 마땅한 상황이다."

이러한 사회적 불만은 유럽에 대한 환상으로 표현됐다. 데니스는 사람들이 유럽을 "매우 유토피아적인 이상, 부패 없는 사회, 높은 임금, 사회보장, 법에 의한 지배, 정직한 정치인, 미소 띈 얼굴, 깨끗한 거리"로 받아들이고 있다는 것을 이해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야권은 물론 야누코비치 자신에 의해서도 지속적으로 유럽에 대한 환상이 유포됐었다는 것을 떠올리면 이는 어쩌면 당연한 일이다.

유럽에 대한 환상은 러시아에 대한 두려움과 연결돼 있다. 부드라이츠키스에 따르면 "버스를 타고 키예프로 와 시위에 참여"한 서부 우크라이나인들은 "러시아에 지배받는 것을 두려워" 한다. 그들은 야누코비치가 "우크라이나를 다시 러시아 식민지로 되돌리려는" 것으로 여기고 있다. AWU 활동가는 이러한 상황을 "유럽연합은 그들의 모든 희망이 집약된 신화다. 세계에 대한 이 신화적 관점에서는 러시아가 모르도르(영화로도 만들어진 소설 '반지의 제왕'에 등장하는 어둠의 군주 사우론의 왕국이 있는 땅) 취급을 받고 있다"고 설명한다. 두 차례의 가스 공급 중단, 반복되는 경제적 압력, 크림반도 세바스토폴의 흑해함대 주둔 등의 상황을 고려하면 이들 마이단 사람들이 푸틴의 러시아를 증오하며 두려워하는 것은 이해할 만하다. 특히 러시아와의 갈등도 불사하며 친유럽 정책을 추진하던 야누코비치가 11월 말 갑작스럽게 친러시아로 돌아선 상황에선 이 모든 사태의 배후로 푸틴을 떠올리지 않기가 오히려 더 이상하다.

바로 이 틈을 노리고 개입해 성공을 거둔 것이 스보보다와 프라비섹토르(Pravy Sektor, Right Sectorㆍ극우 파시스트 단체의 연합)다. 이들이 떠오른 것은 거리에서 경찰과 격렬한 충돌이 벌어지면서부터다. 이들은 가장 전투적이고 적극적으로 거리 시위를 주도했다. 특히 스보보다는 12월 8일 레닌 동상을 쓰러뜨리는 장면, 1990년대 초반 동유럽 소비에트 체제가 무너질 때를 연상시키는 모습을 연출해 주목을 받았다. 스보보다는 지난 2012년 총선에서 12%의 지지를 받아 의회에 처음 진출했다. 프라비섹토르는 스보보다 더 급진적인 네오나치 전투 조직들의 광범위한 연합이다. 이들은 사제 군복과 무장을 갖추고 경찰ㆍ티투슈키(Tituskhisㆍ야누코비치가 고용한 정치깡패)와의 싸움에 가장 앞장선다. 자신의 천막에 침구와 난방시설ㆍ주방을 갖춘 이들은 서부에서 온 젊은이들을 수용해 전투에 앞장설 수 있도록 했다. 이들은 운동에 개입하기 위해 자신의 이데올로기를 위장하기도 했다. 이들은 동성애자 인권과 같은 가치를 유럽적 퇴폐로 규정해 유럽연합에 반대해왔다. 하지만 지금은 이 쟁점이 중요치 않다는 듯이 '야누코비치와 맞서 싸우는 게 중요하다'고 말하며 회피한다. 때론 '자율'과 같은 좌파적이거나 아나키스트적인 용어를 사용한다. 아나키즘을 표방하지만 남성우월주의와 외국인 혐오를 앞세운 조직도 있다. 물론 이들 극우파 단체들이 완전히 단결해 있는 것은 아니다. 켈트십자가, 울프스앵글, 독수리 문양, 가운데 세 손가락 등 다양한 상징들을 사용하는 이들은 그 상징의 숫자 만큼이나 서로 갈라져 경합하고 다툰다. 프라비섹토르는 스보보다의 합법적 지위와 주도력을 욕심내고 있고 스보보다는 준군사조직을 포기하지 않고 프라비섹토르와 경쟁한다.

극우파가 성장한 비옥한 토양은 마이단 이전에 이미 풍부하게 존재했다. 여야를 막론하고 민족주의적 레토릭은 우크라이나 정치에서 가장 중요한 수단이었다. 2004년 오렌지 혁명의 결과로 대통령에 오른 빅토르 유센코도 예외는 아니다. 부드라이츠키스는 유센코가 "제2차 세계대전 기간 우크라이나 SS(나치 친위대)가 실제로는 애국자였다고, 왜냐면 그들이 외국 소련의 지배에 맞서 싸웠기 때문에 애국자였다고 주장했다"고 지적한다. 실제로 유센코는 퇴임 직전 SS의 가장 중요한 지도자 중 하나였던 스테판 반데라에게 영웅 칭호를 내렸다. 현재 우크라이나에는 20여 개의 스테판 반데라 동상이 세워져 있다. 2014년 1월 1일에는 그의 탄생을 기념해 1만5000명이 횃불과 그의 초상화를 들고 시위를 벌이기도 했다. 야누코비치가 그의 실제 정책과 달리 확고한 친러파로 받아들여진 것도 마찬가지다. 러시아어를 모국어로 사용하는 그는 대선 당시 러시아어를 우크라이나어와 함께 공식어로 만들겠다고 약속했다. 하지만 AWU 활동가 데니스에 따르면 "선거 후에는 아무 것도 하지 않다가 2012년 총선 전에야 이 법을 통과"시켰다.

전투 2 주도권을 쥔 극우파, 기 못펴는 좌파

우크라이나의 정치 지형은 극단적으로 오른쪽으로 기울어져 있다. 위에서 예로 든 야누코비치와 지역당, 유센코 뿐 아니라 최근 마이단 시위에서 스타로 부상한 클리츠코도 그렇다. 그 중 가장 자유주의적인 정당의 지도자인 그는 최근 "두려워 말자, 우리는 우크라이나인"이라는 운동을 선포했다. 그런 그는 강한 러시아어 억양을 사용한다.

우크라이나 공산당의 역할은 더 결정적이다. 이들은 야누코비치의 충실한 협력자였다. 1월 16일 반시위법에도 찬성표를 던졌다. 만약 이들이 반대표를 던졌다면 이 법은 통과되지 않았을 것이다. 공산당이 마이단의 민족주의에 비판적이긴 하다. 그렇지만 부드라이츠키스는 "국제주의적 관점에서 그런 건 아니다. 그보다는 러시아 애국주의에 대립하기 때문에 반대한다. 이건 비열한 짓"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우크라이나노동조합연맹(the Confederation of Free Trade Unions of Ukraine)은 뒤늦게 '마이단 시민 위원회' 구성에 참여하며 자유주의적 대안 건설에 뛰어들었지만 결코 좌파적이진 않았다. 이들은 운동 초기에 중립을 지켰다. 물론 애초 노동자들의 집단적 참여는 눈에 띄지 않았다. 12월 몇몇 기업에서 임금 등의 문제와 관련한 쟁의가 있었지만 마이단과 연결되진 못했다. AWU 활동가에 따르면 지방정부는 이들 쟁의가 확대되는 것을 막기 위해 최우선적으로 밀린 임금을 지급했다.

지극히 불리한 환경에서 마이단에 개입하기 시작한 좌파는 우파와의 물리적 충돌을 감수해야 했다. 시위 초기 마이단에 있던 노동조합 활동가들의 텐트는 극우파에 의해 '앞잡이'라고 지목받아 공격받았다. 붉은 유럽 깃발을 들고 무상의료ㆍ무상교육 등 좌파적 구호를 외치던 이들도 폭행당했다. 좌파와 아나키스트가 마이단을 방어하기 위한 연합 조직을 만들려고 모인 자리에 극우 파시스트가 난입해 훼방을 놓기도 했다. 몇몇 좌파는 극단적 민족주의를 핑계로 마이단과 거리를 뒀다. 그러나 데니스는 이러한 태도는 "정부 지지자들을 지지하는 것처럼 보인다"고 지적했다.

1월 16일 반시위법의 통과는 극적이진 않지만 좀 더 적극적인 좌파의 참여를 이끌어냈다. AWU 활동가는 "좌파 활동가 또한 저 법들에 의해 극심한 위험에 처할 수 있기 때문에 1월 19일 이후 좌파 대부분이 시위에 참여"했다고 말했다. 우크라이나 좌익반대파(Left Opposition)의 지도적 회원이자 경제학자인 자카르 포포비치는 어려운 상황에서도 조금씩 활동의 폭을 넓혀가고 있다고 1월 중순 이후 좌파의 상황을 설명했다. 좌파는 "조직적으로 우크라이나 청중들에게 개입하고 있다. 좌파의 책과 소책자들, 우리가 발표한 선언인 10가지 테제 수천 부를 마이단에 배포하고 대중적 토론에 참여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러나 마이단 대중의 의미 있는 일부를 끌어들이기엔 좌파는 여전히 너무 약하다. 단지 다수의 좌파는 인도주의적 개입의 일환으로 병원의 부상자들을 경찰의 체포ㆍ연행으로부터 보호하는 활동을 펼치고 있다.

좌파가 고군분투하는 사이 우파는 새로 구성된 임시정부에서 중요한 자리를 차지해 마이단의 결실을 나눠가졌다. 스보보다 36명 의원 중 한 명인 올렉산드르 시치는 부총리에 임명됐다. 스보보다는 환경부 장관과 농업부 장관 자리도 차지했다. 그보다 전에 검찰총장에 임명된 올렉 모흐니츠키도 스보보다 소속 의원이다. 더 중요하게는 마이단의 준군사조직 사무보로나(Samooborona) 지휘자였던 안드레이 파루비가 국가안보위원회 위원장에 임명됐다. 그는 바티키프쉬나 의원이긴 하지만 파시스트다. 그는 과거에 스보보다 현 대표 올레흐 티아니보크와 함께 파시스트 단체 우크라이나민족사회당(the Social-National Party of Ukraine)을 만들었다. 단지 과거인 것만은 아니다. 파루비는 그의 대변인으로 프라비섹토르의 핵심 지도자인 드미트로 야로쉬를 지명했다. 드림디퍼드(dream deferred) 사이트의 타시 쉬프린은 새 임시정부의 이런 성격을 "사실상 신자유주의자들과 파시스트의 동맹"이라고 설명한다.



우크라이나를 관통해 유럽으로 가는 러시아산 천연가스. [그래픽=AFP]

배경 3 올리가르히의 마리오네트 인형들

새 정부는 신자유주의적 보수파 바티키프쉬나가 주도하고 스보보다와 프라비섹토르가 보조를 맞춰 운영하고 있다. 그러나 올리가르히를 빼고는 우크라이나의 정치적 변동을 설명하기 어렵다. AWU 활동가 데니스는 야누코비치가 위기 전 그의 후원자인 올리가르히와의 관계가 소원해진 것을 주목해야 한다고 말한다. "올리가르히 권력의 애완견"에 불과했던 야누코비치 스스로 2010년부터 스스로 사업가로 변신하면서 그의 후원자였던 리나트 아흐메토프, 드미트리 피타쉬와 싸우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아흐메토프는 150억 달러의 재산을 가진 거부다. 슈피겔지에 의하면 "30만 명의 노동자를 고용한 100개의 회사를 거느린 SCM홀딩스(System Capital Management Holdings)의 수장"이다. 그가 거느린 회사엔 "철강과 파이프 공장, 은행, 부동산 업체, 휴대전화 회사와 거대 언론사"가 포함돼 있다. 슈피겔은 그를 '돈바스(우크라이나 동부의 산업지대)의 지배자'라고 설명했다. 피타쉬 또한 아흐메토프에 필적하는 거부다. 그의 기업들은 천연가스 수송에 특화돼 있다. 물론 피타쉬 또한 아흐메토프처럼 거대 언론기업을 소유해 우크라이나의 언론을 통제하고 있다.

이 둘은 야누코비치 정권에서 중요한 자리를 자신의 사람들로 채워왔다. 슈피겔지에 의하면 야누코비치 정권의 경제장관은 아흐메토프의 사람이고 천연가스 담당 부총리는 피타쉬와 가까운 사이다. 야누코비치가 이끈 지역당 의원의 상당수도 이 둘의 친구들로 채워져 있다. 그러나 야누코비치가 이 위기를 해결하지 못할 것이라는 확신이 들면서 이 둘이 소유한 방송국의 보도 태도는 극적으로 변했다. 마이단 시위를 객관적으로 보도하기 시작했다. 슈피겔지에 따르면 자신이 후원하는 지역당 의원들을 탈당 시켜 다른 당으로 이적하게 했다. 바티키프쉬나와 UDAR 등 다른 정치적 대안도 모색했다. 아흐메토프는 티모센코의 후계자인 아르세니 야체뉵을 지원하기 시작했고 피타쉬는 마이단의 스타 비탈리 클리츠코를 지원하고 있다. 바로 올리가르히가 우크라이나의 정치를 마리오네트 인형처럼 조정하는 방법이다. 부드라이츠키스는 스보보다조차 올리가르히의 후원이 없었다면 그렇게 성장할 수 있었다고 주장한다. 실제로 키예프의 반파시트 활동가 미라는 프라비섹토르가 상당한 후원을 받아 그들의 조직원들 모두에게 새로운 유니폼을 맞춰줄 수 있었다고 말한다. 우크라이나 좌파 활동가 포포비치는 올리가르히가 이러한 힘을 이용해 세금을 한 푼도 내지 않는다고 고발한다. 야누코비치의 실각 후 언론은 메히지리야에 있는 그의 화려한 별장을 샅샅이 훑으며 우크라이나의 국고가 빈 책임을 그에게 돌리려 했지만 포포비치는 올리가르히에게 그 책임을 묻는다. "올리가르히가 정치권을 움켜쥐고 있는 결과 대기업들은 세금을 한푼도 내지 않고 있다. 모든 세금은 노동자와 작은 회사들이 내고 있다. 나라에 충분한 자원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정부의 금고가 텅비어 있는 것은 그 때문이다".

물론 이들 올리가르히의 이해관계가 완전히 일치하는 것은 아니다. 야누코비치의 두 후원자 중 아흐메토프는 유럽과 좀 더 가깝고 반대로 피타쉬는 러시아와의 관계가 그의 사업에 더 중요하다. 슈피겔에 의하면 바티키프쉬나에 대해 아흐메토프가 유화적인 데 반해 피타쉬는 2009년의 협정, 바로 티모센코를 감옥에 갇히게 한 바로 그 러시아와의 협정 때문에 더 적대적인 태도를 지녔다.

전투 3 상처받은 러시아, 쩔쩔매는 서방

아흐메토프와 피타쉬의 차이, 친유럽과 친러시아의 간극은 국제관계에서도 그대로다. 우크라이나가 EU 협력협정을 추진하면서부터 끊임없이 압박을 가해오던 러시아는 3월 1일 전격적으로 우크라이나에 무력개입을 개시했다. 이미 2월 27일 친러시아 무장세력이 정부청사ㆍ주의사당ㆍ공항등 주요 시설을 점거했고 1일에는 러시아 상원이 우크라이나 내 군사력 사용에 대한 푸틴의 요청을 승인했다. 상원은 그 즉시 푸틴의 요청을 승인했고 그는 6000명의 병력을 크림반도에 배치했다. 그와 동시에 우크라이나와의 접경 지대에서의 대규모 훈련도 진행됐다. 푸틴이 직접 훈련을 참관하기도 했다.

2012년 세 번째 대통령 임기를 시작한 푸틴은 서방의 동유럽으로의 확장에 맞선 옛 소련권의 재통합을 최우선 외교 과제로 삼았다. 옛 소련권 국가의 관세동맹, 유라시아경제공동체, 집단안보조약기구가 그 세 축이다. 2000년대 라트비아ㆍ리투아니아ㆍ슬로바키아ㆍ루마니아ㆍ불가리아가 잇따라 나토에 가입하면서 러시아의 두려움은 커져갔다. 2008년 조지아와의 전쟁은 압하스와 남오세티야의 러시아 주민 보호를 내세웠지만 사실 서방의 군사적 포위에 대한 응전이었다. 우크라이나는 조지아와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중요한 지역이다. 2월 소치 겨울올림픽을 핑계로 흑해에 대규모 군사력을 배치한 것은 서방과 흑해 연안 국가들에 대한 경고이기도 했다. 소치는 우크라이나와 조지아 사이에 위치해 있는 흑해 연안 도시다. 더구나 우크라이나 크림반도에 있는 세바스토폴은 러시아 흑해함대가 주둔하고 있는 중요한 군사기지다. 중동과 중앙아시아 지역에 대한 개입을 강화하고 있는 러시아로서는 뺏길 수 없는 전략적 거점이다. 압하스와 남오세티야처럼 러시아계 주민이 60%나 된다는 것은 좋은 핑계 거리다. 게다가 크림반도엔 크림자치공화국이 상당한 자치권을 누리고 있었다.

푸틴 입장에서는 온전히 맘에 들진 않았지만 그나마 제어할 수 있다고 여겼던 야누코비치의 실각은 심각한 위협이었을 것이다. 특히 러시아가 유럽으로 수출하는 천연가스의 80%가 우크라이나에 있는 가스관을 통과한다는 걸 고려해야 한다.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잃는 것은 막대한 손실이 될 것이다.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압박하는 한편 벨로루시를 경유하는 가스관으로의 수출을 늘리고 흑해를 관통하는 가스관 건설에 착공한 것은 천연가스 수출에서 우크라이나의 역할을 줄이기 위한 것이다. 물론 흑해를 통과하는 가스관이 완공되고, 만약에 상당량의 천연가스가 흑해 가스관으로 수출된다고 할지라도 흑해에 대한 러시아의 통제권을 유지하기 위해 크림 반도와 우크라이나는 여전히 중요할 것이다. 그러나 아직 우크라이나를 우회할 만한 여건이 조성되지 않았다. 실질적인 군사적 압력에도 불구하고 푸틴이 3월 4일 기자회견에서 러시아군을 파병하지 않았다고 잡아뗀 것은 우크라이나의 지배자들을 달랠 필요도 있기 때문이다. 물론 좋은 관계를 유지하는 것이 꼭 대화일 필요는 없다. 푸틴은 과거 그래왔듯이 언제든 주먹으로 대화하는 카드를 꺼낼 수도 있다.

러시아 개입에 대해 미국은 연일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오바마 미국 대통령은 러시아의 크림 반도 군사개입이 '국제법 위반'이라고 비판했다. 존 케리 미 국무장관은 직접 키예프로 날아가 "빠르면 이번 주부터 미국은 러시아에 대한 포괄적인 제재를 시행할 것"이라고 주장했다. 케리는 야체뉵 임시정부 총리와 만나 경제적ㆍ기술적 지원도 약속했다고 한다. 위기 전 까다로운 자금지원 조건을 내세웠던 IMF도 우크라이나에 실사단을 파견에 구제금융 지원을 위한 준비를 하고 있다.

그러나 유럽의 반응은 뜨뜨미지근 하다. 3월 4일 영국 언론에는 영국 정부가 "당분간 무역 제재나 대러시아 금융기관 폐쇄안을 지지하지 말 것"이라고 적힌 기밀 서류가 포착돼 보도됐다. 우크라이나 동서 분열 가능성이 떠돌고 있지만 앙겔라 메르켈 독일 총리와 러시아 푸틴 대통령은 야누코비치가 실각한 후인 2월 24일 일찌감치 우크라이나의 영토적 통합성 유지에 뜻을 모았다. 물론 러시아는 우크라이나 전체에 대한 영향력을 놓치지 않겠다는 뜻일 것이다. AFP에 따르면 천연가스 36%를 우크라이나를 통해 러시아산을 수입하는 독일로서도 러시아의 심기를 거슬리긴 어려울 것이다. 미국은 연일 강경한 말을 쏟아내고 있지만 상황은 여의치 않다. 중앙아시아에서의 실패로 전체 병력을 줄이며 중국의 부상에 대응하기 위해 동아시아 지역에 집중하고 있기 때문이다. 알렉스 캘리니코스의 지적처럼 "제국주의는 단지 미국의 지배로만 환원될 수 없"으며 "제국주의는 선진 자본주의 열강들이 경제적ㆍ지정학적 경쟁을 벌이는 체제다".

경제적 이해관계가 복잡하게 맞물리고 제국주의 체제가 다극화 되면서 자본주의 선진국들 사이의 경쟁은 더 격화되고 있다. 우크라이나의 상황은 제국주의의 최근 국면을 전형적으로 보여준다. 세계경제의 위기는 우크라이나 국내에서의 정치적 격변으로 이어졌다. 세계의 지배자들과 우크라이나의 민족주의 정치인들은 이 국내의 위기를 제국주의 국가간 충돌로 비화시키고 있다. 전쟁 위협이 가시화되면서 우크라이나의 소수 좌파와 아나키스트는 "민족을 위해선 단 한방울의 피도 흘릴 수 없다"며 러시아와 서방의 개입을 비판하고 있다. 국가ㆍ민족 간 전쟁을 계급 사이의 내전으로 전화시키자는 레닌의 공식이 이들 좌파에 의해 다시 제기되고 있다. 1막에서 기회를 놓쳤던 좌파가 제국주의 전쟁과 갈등이라는 2막에서 기회를 잡을 수 있을지 주목해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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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월 2일 러시아 정부의 우크라이나 군사 개입에 반대하는 상트페테르부르크 시위대를 경찰이 체포하고 있다. 이날 모스크바와 상트페테르부르크 등의 도시에서 수백명이 전쟁 반대를 외치며 거리를 행진했다. 당연하게도 푸틴 정부는 경찰을 동원해 시위대를 공격했다. [사진 Revolution News]


야누코비치가 쫓겨난 후 크림반도를 중심으로 러시아의 개입 조짐이 확산되고 있다. 2월 27일에는 친러시아 무장세력이 크림자치공화국의 수도 심페르폴의 정부청사ㆍ주의사당ㆍ공항 등 주요 시설을 점거했다. 3월 1일 러시아 상원은 푸틴의 우크라이나 내 군사력 사용 요청을 만장일치로 통과시켰고 푸틴은 그 즉시 6000명의 군대를 크림반도에 배치했다. 오바마 미 대통령은 푸틴과 긴급하게 통화를 해 즉시 철군할 것을 요청하며 흑해 북안의 군사적 긴장이 높아져가고 있다. 4일에는 존 케리 국무장관이 직접 우크라이나로 날아가 지원방안을 협의하겠다고 밝힌 상태다. 그러나 이러한 전쟁은 우크라이나 노동계급의 삶을 파괴할 뿐 민주주의의 도입과는 아무런 연관도 없다. 그것은 지금 다시 노동계급 스스로 새로운 사회 건설에 나선 보스니아-헤르체고비나 인민이 20년간 온몸으로 입증해온 것이다. 우크라이나 인민의 더 나은 삶을 위해선 러시아와 미국, 두 제국주의 국가로부터 독립적인 대안의 건설이 필요하다. 민족주의는 결코 해답이 될 수 없다. 아래 우크라이나를 비롯한 동부 유럽 좌파의 선언 두 개를 옮긴다.


우크라이나 전쟁에 반대하는 국제주의자의 선언
IWA(International Workers Association) 러시아 지구 KRAS|우크라이나ㆍ러시아ㆍ몰도바ㆍ이스라엘ㆍ리투아니아의 국제주의자들|몰도바 아나키스트 연맹|혁명적 사회주의자들 (우크라이나) 지부, March 2 2014

전쟁에 맞선 전쟁을!
'민족'을 위해선 한 방울의 피도 흘릴 수 없다!


올리가르히 파벌 사이의 권력 투쟁이 국제적 무장충돌 위협을 고조시키고 있다. 러시아 자본주의는 그들의 오랜 제국주의적ㆍ팽창주의적 열망을 실현하기 위해 경제와 금융, 정치적 이해관계가 탄탄한 크림반도와 우크라이나 동부에서 우크라이나 국가권력을 분할하려 한다.

러시아 정부는 임박한 다음번 경제위기를 배경으로 성장하고 있는 노동자들 사이의 사회ㆍ경제적 관심, 열악한 임금과 연금, 붕괴하는 건강보험 제도와 교육, 기타 다른 공공 서비스 등에 대한 주의를 돌려 러시아 민족주의로 대체하려고 한다. 민족주의적이고 군사적인 수사의 어지러운 함성들 속에서 반동적이고 보수적인 가치, 억압적 정책에 기반한 기업과 권위주의적 국가의 결합을 완수하는 건 쉬운 일이다.

우크라이나의 극심한 경제적 정치적 위기는 '구파'와 '신파' 올리가르히 파벌 사이에 점증한 대결의 결과다. 전자는 키예프에서 쿠데타를 위해 극우파와 극단적 민족주의자를 포함한 집단을 이용했다. 크림반도와 우크라이나 동부 정치 지배자들은 자신의 권력과 부를 키예프에서 권력을 잡은 이들과 나누려 하지 않는다. 그들은 러시아 정부의 도움에 의지하려 하고 있다. 양편 모두 우크라이나어와 러시아어를 사용하는 이들 모두에 만연한 민족주의적 광분에 호소하고 있다. 그 결과는 무장 충돌과 유혈 사태일 뿐이다. 서구의 권력자들도 자신의 이해관계와 열망에 따를 뿐이다. 현재의 대립에 대한 그들의 개입은 제3차 세계대전으로 이어질 수 있다.

늘 그렇듯이 전쟁을 벌이는 지배 권력의 파벌들은 자신의 이익을 위해 우리 평범한 사람들을 싸우게끔 강제한다. 임금노동자, 실업자, 학생, 연금 수령자 등 우리의 진정한 필요와 이익을 잊게 하기 위해 그들은 우리를 민족주의라는 마약에 취하게 만들어 서로에 맞서게 한다. 우리는 저들의 '민족'에 관심을 갖지도 가질 수도 없다. 우리는 지금 필수적이고 긴급한 문제를 중시한다. 그것은 저들이 만든, 우리를 노예적으로 탄압하는 체제를 어떻게 끝을 낼 것인지 하는 바로 그것이다.

우리는 민족주의적 열병에 굴복하지 않을 것이다. 저들의 국가와 '민족', 깃발과 사무실을 지옥으로! 이 전쟁은 우리의 것이 아니다. 우리는 이 전쟁에 참여하지 않을 것이며 저들의 궁전과 은행 계좌를 위해, 안락한 의자에 앉아있는 권력자들의 기쁨을 위해 우리의 피를 쏟지 않을 것이다. 그리고 만약 모스크바와 키예프ㆍ리보프ㆍ카리프ㆍ도네츠크ㆍ심페로폴의 지배자들이 전쟁을 시작한다면 우리의 의무는 모든 가능한 수단을 이용해 이에 맞서 싸우는 것이다.

'민족'들의 전쟁을 계급투쟁으로!


러시아 개입에 관한 AWU 성명
우크라이나 자율 노동조합(Autonomous Workers' UnionㆍAWU), March 2 2014

2014년 2월 27일 크림자치공화국의 친러시아 민족주의자들이 폭동진압경찰 베르쿠트(Berkut)와 러시아 흑해 함대의 지원을 받아 군사 쿠데타를 저질렀다. 바로 지금 악쇼노프[크림자치공화국 총리]를 수장으로 한 '러시아 통합' 운동의 정부가 단지 크렘린 정권의 애완견일 뿐임은 이미 분명해졌다.

우리는 영토의 보전, 그 경계의 불가침성과 같은 가치에는 관심 없다. 우리는 크림반도의 폭력적 '화해'에 맞서고자 하는 것이다. 그렇지만 우리는 크림반도의 지위가 소수 민족 타타르족의 의견을 충분히 고려해 결정돼야 한다고 생각한다.

최근의 사건은 푸틴이 크림반도의 합병까지 고려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제국주의적 크렘린 정권의 목표는 러시아의 영향력을 우크라이나 영토 모든 곳으로 확장시키는 것이다. 결국 붕괴 전 소련 영토였던 곳에서 러시아 정부는 프롤레타리아트 이해관계의 주된 위협임이 입증됐다.

우리는 전쟁과 군국주의에 반대한다. 우리는 이 상황에서 계급의식적 프롤레타리아는 자신을 제외한 그 누구에게도 의지할 수 없다고 생각한다.

나토(NATO)의 '구조'를 기대해 봤자 소용없다. 우크라이나 민족주의 정치인들은 기껏해야 단지 영토 일부분의 방어를 준비할 수 있을 뿐이다. 전쟁은 모든 나라의 프롤레타리아가, 무엇보다 우크라이나와 러시아의 프롤레타리아가 푸틴의 범죄적 정권에 함께 맞서는 것을 통해서만 피할 수 있다.

우크라이나와 러시아 프롤레타리아, 모든 진보적 민주세력의 공동행동은 푸틴 정권을 끝장낼 것이다. 또한 그것은 현재 우크라이나의 신자유주의적 민족주의 정권의 종말을 뜻하기도 할 것이다.

서구의 좌파와 아나키스트에게는 미국에 맞서 푸틴정권에 대한 지지를 표명해온 소위 '반제국주의'와의 연관을 끝장낼 절호의 기회다.

'민족'들의 전쟁을 계급투쟁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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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Revolution News]

급한 불은 끄게 된 것일까. 우크라이나에서 정부와 여야의 타협안 소식이 들려온다.

●[연합뉴스] 우크라 정부-야권 유혈사태 해법 담은 타협안 서명(종합2보)

요지는 조기 대선 실시와 대통령 권한을 대폭 축소하는 헌법 개정이다. 현재 운동의 초점이 야누코비치 대통령 퇴진에 맞춰졌던 걸 고려하면 지금의 유혈사태를 진정시킬 어떤 돌파구가 될 수도 있는 것처럼 보인다.

여기서 우리는 이 운동의 별명이 '유로마이단'이라는 걸 다시 떠올릴 필요가 있다. 생디칼리스트인 키예프의 한 노동조합 활동가에 의하면 시위 초기 거리에 나선 우크라이나 인민에게 유럽은 "부패 없는 사회, 높은 임금, 사회적 안전, 법에 의한 지배, 정직한 정치인들, 미소 짓는 얼굴, 깨끗한 거리 등"을 뜻했다. 여기에는 단지 대통령의 과도한 권력, 정치적 지배구조의 문제만 포함돼 있지 않다. '높은 임금'이 상징하듯 여기엔 우크라이나 경제에 대한 사회적 불만이 배경으로 깔려있다. 지난해 유럽연합과의 협력협정을 추진했던 것도, 그리고 시위를 촉발시킨 그 협정의 중단도 모두 경제적인 배경에 놓여 있다(거기에 유럽연합과 러시아의 제국주의적 갈등으로 연결됐다).

실제로 마이단에서 목숨을 걸 각오를 서슴지 않고 말하던 한 사람, 아마도 파시스트일 가능성이 큰 무장 사수대 한 명은 "저는 10년 전 떠나 상선의 선원이 됐습니다. 저는 그것을 견딜 수 없었습니다. 이제 저는 되돌아와 제 아이들과 함께 살고 싶습니다. 제가 여기서 투쟁하는 것은 그 때문"이라고 말했다. 그런데도 연합뉴스에 보도된 합의안에는 바로 이 문제, 우크라이나의 평범한 노동자와 농민, 청년들의 경제적 삶에 대한 언급이 빠져 있다(이는 상대적으로 시위가 격화되면서 거리에서의 물리적 충돌 자체가 쟁점이 된 때문이기도 하다).

따라서 이 타협안으로 거리의 사람들을 진정시키고 이전의 일상으로 돌아간다는 것은 어불성설에 가까울 것이다. 게다가 이 합의에는 스보보다(자유)도 포함돼 있다. 극우 파시스트인 이들은 합법정당이지만 불법적인 준군사 조직을 운영하고 있기도 하다. 18일 유혈 참극의 두 주범 중 하나다(다른 하나는 야누코비치 정부다). 거리에서 무장하고 일정 지역을 자신의 통제하에 두던 이들 파시스트를 새로 구성된 정부에서 완전히 무시하진 못할 것이다. 저들은 합법적으로 어떤 권력을 공유하게 되면 더 기고만장해져 거리를 활보할 것이다. 마치 1930년대 독일 나치처럼 말이다.

유럽연합과 러시아 정부로서는 우크라이나에서의 갈등이 자신들이 바랐던 것 이상으로 격화되는 데 놀랐던 듯싶다. 속보에 의하면 이번 타협에 이 둘 모두 참여했다고 한다. 그것은 중요한 석유와 가스 송유관이 지나고 흑해 북안의 중요 산업지대인 우크라이나가 내전으로 갈라지거나 파괴되는 것이 그들에게도 이익이 될 것처럼 보이지 않아서였기 때문일 것이다. 물론 유럽연합과 러시아 정부의 군사적 충돌 가능성이 아예 없지는 않다. 조지아에서처럼 러시아 정부는 러시아계 주민 보호를 이유로 군사적 개입을 감행할 가능성이 크다. 유럽연합도 과거 발칸 반도에서 그랬던 것처럼 마찬가지다. 그렇지만 바로 옆 소치에서 열리는 겨울올림픽을 핑계로 흑해에서 군사 시위를 벌이고 있는 러시아에 당장 맞서는 것은 유럽연합으로서는 부담스러운 일이었을 것이다. 러시아 정부로서도 현 야누코비치 대통령이 유럽연합과 러시아를 비교하는 것은 물론 중국과도 자신을 비교하며 상황을 재고 있는, 즉 우크라이나 내 친러시아 세력의 규모나 역할이 불분명한 상황에서 군사적 개입이 어렵다고 판단했을 수 있다.

더 큰 국내적ㆍ국외적 충돌을 준비할 여유 시간을 갖는 것, 아마도 이번 타협의 첫번째 가능성은 바로 이것일 것이다. 그보다 더 나은 상황으로 떠올릴 수 있는 것도 파시스트의 활보와 권력 강화라는 끔찍한 것 뿐이다.

그러나 아직 다른 가능성이 남아있다. 키예프 시내에서의 격렬한 물리적 충돌에도 불구하고 대규모 노동계급은 아직 본격적으로 행동에 나서고 있지 않다. 생디칼리스트 활동가의 지적처럼 키예프를 벗어난 "다른 지역에서 기업 활동이 아무런 방해 없이 평상시처럼 계속 진행"되고 있다. 우크라이나 노동조합연맹은 중립을 지키고 있다. 임금과 관련된 소수 작업장에서의 저항도 "정치적 저항과 연결되지 못하고 있다". 한편으로는 바로 이러한 사정이 거리에서의 충돌을 격화시키고 시위대에서 파시스트의 주도력을 강화시킨 원인이기도 했다. 결국 적은 가능성이지만 노동계급의 단결된, 그리고 유럽연합과 러시아 둘 모두로부터 독립적인, 파시스트와 정부로부터 자유로운 행동 만이 우크라이나를 구할 것이다. 이는 최근 혁명을 시작한 보스니아 인민이 온 몸으로 보여주고 있는 바다. 불과 20여년 전, 민족ㆍ종교 간 참혹한 내전을 치뤘던 보스니아 인민은 노동계급 투쟁을 통해 민족과 국가ㆍ종교의 경계를 뛰어넘어 단결하고 있다. 우크라이나 활동가들이 이로부터 보다 큰 영감을 얻어 과감한 행동에 나설 수 있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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