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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 좀 지난 일이지만 8월에 마르크스의 '자본론'을 둘러싼 작은 논쟁이 있었다. 지난해 경향신문에 연재되면서 나를 포함한 몇몇에게 비판을 받았던 강신준 교수의 '오늘 자본을 읽다'가 그 중심이다. 사실 논쟁이라고 하기도 부끄럽다. 강신준 교수는 자신만의 용법으로 기존 단어를 제멋대로 해석하고 사용하며 시종일관 말돌리기와 도덕적 비난으로 일관하고 있다. 사실 이건 예견된 일이다. 내 비판에서도 촛점은 강신준 교수의 '해석'이 문제가 아니라 기초적인 지식에 대한 왜곡과 날조였다. 정치적 이념 혹은 학문적 해석의 문제가 아니었기에 강신준 교수는 논쟁에 정당하게 대응할 수 없었을 것이다.

독일 사회민주당을 마르크스의 적자로 묘사한 것이 대표적이다. 2차 세계대전 후 부활한 사민당은 점차 우경화 하다가 1959년 고데스베르크 강령을 통해 마르크스주의와 그 핵심인 계급투쟁을 공식적으로 포기했다. 영국 노동당이 국유화 강령을 포기한 것보다 30여 년 앞선 것이다.

더 심한 왜곡은, 아니 왜곡이라기보다 뻔뻔한 사기라고 해야 마땅한 데, 마르크스를 개혁의 기수로 내세우고자 한 것이다. 마르크스주의 내에 이런 경향은 꽤 오래전부터, 사실상 마르크스와 엥겔스의 생존 당시부터 있어왔다. 엥겔스가 '반뒤링'을 쓴 것도 그것이다. 그러나 뒤링이 마르크스주의 경향에 속한다고 볼 수 없으니 그 시작은 베른슈타인으로 보는 게 옳을 것이다. 베른슈타인은 강신준 교수에 비해선 매우 솔직하다. 그의 후예들도 대부분 강 교수보다는 정직하다. 그들은 자신들의 개혁주의적 행동을 옹호하기 위해 마르크스를 왜곡하기보다는 마르크스를 '수정'하는 것을 택했다. 고데스베르크 강령을 통해 마르크스주의를 포기한 것도 한 예다. 정치적으로는 물론 학문적으로도 훨씬 정직한 행동이다. 그러나 그정도의 정직함을 지니지 못한 강 교수는 자신만의 용법으로 '변혁'과 '개혁'을 제멋대로 사용하며 마르크스를 자본주의 개혁 정치의 선구자로 그리고자 시도한다.

애초에 학문적 논쟁이 될 수준도 못됐을 뿐더러 저열한 사기 공작에 불과한 강신준 교수의 시도에 일일이 대응하는 게 문제였을 수 있다. 게다가 기초적인 역사적 지식에서 잘못된 부분도 너무나 많아 비판 이전에 교정하는 데만도 너무 많은 수고가 들었다. 초기에 열정적으로 비판을 준비하다가 그만둔 것은 그 때문이다. 이미 지나가 잊혀진 논쟁을 내가 다시 끄집어내는 건 아닌가 하는 걱정도 있다. 잠언 26장 4~5절은 우리에게 여전한 딜레마다.

우둔한 자에게 그 어리석음에 맞추어 대답하지 마라. 너도 그와 비슷해진다.
우둔한 자에게 그 어리석음에 맞추어 대답하여라. 그러지 않으면 자기가 지혜로운줄 안다.

아래는 미디어오늘에 연재된 김성구-강신준 교수 논쟁의 링크다.

김성구 1 강신준 교수의 이상한 자본론 강의
강신준 1 경향신문 연재 ‘오늘 자본을 읽다’에 대한 김성구 교수의 비판에 대한 답글
김성구 2 강신준 교수의 반론에 대한 재반론
강신준 2 김성구 교수의 비판에 대한 두 번째 답글
김성구 3 쟁점은 수정주의·교조주의가 아니라 ‘자본’ 곡해 여부다
강신준 3 김성구 교수와의 논쟁을 끝내면서
김성구 4 자본론 논쟁의 결말

Posted by 때때로

강신준 교수는 경향신문에 연재하고 있는 '오늘 '자본'을 읽다' 9월 22일자 연재분을 이렇게 시작합니다.

"강의를 해 보면 많은 사람들이 교환가치와 가치를 구별하는 데 애를 먹는 것을 자주 봅니다."(강신준 9월 22일)

지금까지 강 교수가 연재한 글 중 바로 위 문장만이 유일하게 올바른 것으로 보입니다. 그리고 그 '애를 먹는' 사람에는 강 교수도 포함해야 할 것입니다. 교환가치와 가치만이 아니죠. 사용가치ㆍ가치ㆍ교환가치 전체를 잘못 설명하고 있습니다. 변증법과 마르크스의 방법에 대한 그릇된 이해도 문제입니다. 이에 대해선 나중에 다시 설명할 기회를 갖기로 하고 오늘은 자본론 1장에 집중해 강 교수의 연재를 비판적으로 검토해보고자 합니다.

※자본론의 모든 인용은 김수행 교수가 번역한 비봉판으로 대체했습니다. 강신준 교수로부터의 인용은 모두 연보라색 굵은 글자로 표시했습니다.


1. 상품의 이중성 … 사용가치ㆍ가치

"상품은 사용가치임과 동시에 가치인 것이다"(1권 77쪽)

마르크스는 상품의 이중적 측면을 위와 같은 말로 정의합니다. 1장 1절의 제목도 '상품의 두 요소: 사용가치와 가치'입니다.

설명은 사용가치부터 시작합니다. "한 물건의 유용성은 그 물건으로 하여금 사용가치가 되게" 합니다. 여기서 유용성은 사회적으로 결정되는 것입니다. 자연적 필연성에 한정하면 우리에게 유용한 물건으로서 상품은 최소한이 될 것입니다. 이러한 사용가치로서 상품은 그것의 물리적 속성에 의해 질적ㆍ양적으로 구별됩니다.

상품은 또한 자본주의 사회에서 교환됩니다. 일정한 비율로 말이죠. 여기서 상품이 교환되는 양적 비율, 또는 관계가 교환가치입니다. 상품이 교환가치라는 것은 서로 다른 상품들 속에 공통의 무언가를 가지고 있음을 암시합니다. 서로 다른 상품이 일정한 비율로 교환되기 위해서는 적절한 기준이 있어야 할 것입니다. 하지만 상품의 자연적 속성은 공통의 기준이 될 수 없습니다. 이는 상품의 유용성에 영향을 미침으로써 사용가치와 연관된 것이 될테니까요. 하지만 교환에 있어서 사용가치는 서로 다른 것이기만 하다면 문제가 안됩니다. 결국 상품의 사용가치를 무시한다면 거기에 남는 유일한 것은 '노동생산물'이라는 속성 뿐입니다.

"이들 노동은 더 이상 서로 구별되지 않고 모두 동일한 종류의 노동, 즉 추상적 인간노동으로 환원된다. 이제 노동생산물들은 유령 같은 형상[즉, 동질적인 인간노동이 응고되어 있는 형상]을 띠게 된다. 다시 말해, 노동생산물들은 인간노동력이 그 지출형태와는 관계없이 지출되어 응고된 것에 불과하다. 이 모든 것이 우리에게 말해주는 것은, 그들의 생산에 인간의 노동력이 지출되었다는 것, 인간노동이 그들 속에 체현되어 있다는 것이다. 모든 노동생산물은 그들에게 공통적인 이러한 사회적 실체의 결정체로서 가치, 상품가치이다."(1권 47쪽)

정리하면 이렇습니다. 상품은 우선 유용한 물건으로서 사용가치입니다. 이 상품은 서로 일정한 비율로 교환됩니다. 즉 교환가치입니다. 이 교환가치는 상품이 공통된 무엇인가를 지니는 것을 나타내지만 그것이 무엇인지는 설명 못합니다. 그 공통된 것은 바로 추상적 인간노동이고, 이것이 지출되어 응고된 것이 바로 가치입니다. 데이비드 하비는 '자본 강의'에서 아래와 같은 그림으로 이를 도식화 합니다.


하비 53쪽

강신준 교수는 이와 달리 교환가치를 사용가치의 '발전한 형태'라고 설명합니다.

"'모든 사회에 존재하는' 사용가치가 '자본주의의 고유한 특징'인 교환가치의 출발점이라는 것입니다. 사용가치가 첫 번째 계단이고 교환가치가 두 번째 계단인 셈이지요."(강신준 9월 15일)

하지만 이는 마르크스의 설명과 완전히 다른 것이죠. 상품이 교환가치가 되기 위해선 무엇보다 사용가치여야 합니다. 그것이 어떤 것이든 유용하지 않은 물건(또는 서비스)을 교환할 필요는 없습니다. 사용가치가 발전해 교환가치가 된 것이 아니라 자본주의적 교환을 위해서도 상품의 사용가치적 측면은 필수적인 것입니다. 강 교수는 마르크스가 '두 요소'라는 제목으로 상품의 이중적 성격을 설명한 것을 완전히 무시한 것이죠. 이 설명이 불분명하다면 아래의 데이비드 하비의 설명을 읽어보시죠. 재밌게도 이 책은 강신준 교수가 번역한 것입니다.

"맑스의 변증법적 방법은 여기에서 어떻게 사용되고 있는가? 혹시 여러분은 가치가 교환가치에서 비롯된다고 말하고 싶은가? 그것도 아니면 사용가치가……? 그러나 맑스의 분석은 인과론적인 것이 아니다. 그것은 관계, 그것도 변증법적 관계에 대한 것이다. 사용가치에 대해 말하지 않고 우리가 교환가치를 말할 수 있을까? 말할 수 없다. 그렇다면 사용가치에 대해 말하지 않고 우리가 가치를 말할 수 있을까? 그것도 아니다. 바꿔 말해 우리는 다른 개념을 말하지 않고는 이들 개념 가운데 어떤 것도 말할 수 없다. 이 개념들은 서로가 서로에게 의존해 있고 어떤 하나의 전체(totality) 속에 내재하는 관계들인 것이다."(하비, 55쪽; 오역이 있어 수정했습니다)

하비는 강 교수와 같은 설명을 '인과론'적인 것이라고 비판합니다. 마르크스가 사용가치ㆍ가치ㆍ교환가치를 설명하는 자본론 1권 1장이 어려운 것은 그것이 '인과론'적인 관계가 아니라 변증법적인 관계이기 때문입니다. 앞에서 말했듯이 변증법에 대해선 차후에 설명할 기회가 있겠지만 아래의 그림을 앞의 하비의 도식과 비교하면 그 차이가 보다 분명하게 드러날 것입니다.


강신준 9월 15일

따라서 강 교수의 아래와 같은 설명은 완전히 틀린 것입니다.

"교환가치를 비교해주는 양적 단위는 바로 가치이고 그것은 인간의 노동입니다"(강신준9월 15일)

가치가 강 교수의 설명처럼 '양적 단위'에 불과하다면 그것의 질적 측면은 의미가 없을 것입니다. 이러한 강 교수의 생각은 사실 주류 경제학에 일반적인 것이기도 하죠. 애시당초 그것이 '양적 단위'에 불과하다면 우리가 집중해야 할 것은 교환되는 비율 그 자체 아니겠습니까. 실제로 강 교수는 다른 마르크스주의 경제학자들과 달리 '교환가치'를 매우 강조하죠. 주류 경제학에서 이러한 상품들 사이의 교환비율(교환가치)의 강조는 그들의 선배, 고전파 경제학자들이 세웠던 노동가치론을 버리고 한계효용 혁명으로 나가는 길을 닦았습니다. 강 교수가 어딘가 인터뷰에서 칭찬했던 책인 '자본주의 발전의 이론'에서 폴 스위지는 이렇게 말합니다.

"형식적인 관점에서 보면 양적 가치이론은 상품들이 서로 교환되는 상대적인 비율을 규율하는 법칙을 발견하는 것과만 관계가 있는 것으로 보인다. 사실 주류의 이론은 바로 이런 방식으로 문제를 다룬다. 따라서 주류의 이론에서는 그것이 교환가치의 문제일 뿐이다. 그러나 우리가 이미 알고 있듯이 마르크스에게 교환가치란 가치를 배후에 숨기고 있는 '현상적 형태'일 뿐이다. 따라서 이런 질문이 제기된다. 단지 교환가치의 결정에 한정되지 않고 그것을 넘어서는 양적 가치의 문제란 무엇인가? 위에서 서술한 분석이 한 가지 답변을 해준다. 상품이 가치라는 사실은 상품은 물질화된 추상적 노동이라는 의미이며, 이를 다른 말로 표현하면 상품은 사회의 총 부창출활동 가운데 일부를 흡수한다는 의미다. 이제 우리가 추상적 노동은 시간의 단위로 측정할 수 있음을 상기한다면, 교환가치와 구분되는 양적 범주로서의 가치가 어떤 의미인지가 분명해진다."(스위지 58쪽)


2. 노동의 이중성 … 구체적 유용노동과 추상적 인간노동

상품의 이중성은 노동의 이중성으로 나타납니다. 사용가치로서 상품을 만들기 위해서는 구체적인 유용노동이 필요합니다. 의자를 만들기 위해 나무를 베어 목재를 만들고, 목재를 재단하고, 재단된 목재를 짜맞춰야 하는 것 같은 노동을 말합니다. 이것이 꼭 육체노동일 필요는 없습니다.

가치로서 상품을 만드는 노동은 노동의 구체적 과정이 사장된 말 그대로의 인간노동을 말합니다. 이것은 '추상'적이긴 하지만 객관적 실체가 없는 것은 아닙니다. 루카치의 "자본주의의 본질을 반영하는 추상"이라는 주장을 인용한 폴 스위지는 "자본주의 사회는 이전의 그 어떤 사회형태에서 지배적이었던 노동의 이동성보다 훨씬 더 높은 이동성을 갖고 있다는 특징이 있다"며 마르크스의 추상노동 개념의 현실성을 설명합니다
(스위지 55쪽). 마르크스는 이렇게 말합니다.

"자본주의사회에서는 노동에 대한 수요의 방향이 변함에 따라 사회적 노동의 일정한 부분이 번갈아 가면서 재봉의 형태로 또는 직포의 형태로 공급되고 있다는 것을 곧 알 수 있다. 노동형태의 이와 같은 변화가 마찰 없이 일어난다고는 말할 수 없으나, 어쨌든 일어날 수밖에 없다."(1권 55쪽)

기업이 창의적 노동에 대한 무수한 찬양을 늘어놓으면서도 실제 업무에서 노동과정의 표준화를 위해 노력하는 것에서 이러한 경향을 쉽게 확인할 수 있죠. 추상적 인간노동은 구체적 유용노동과 구분되는 현실성을 지니며 자본주의적 현실에서 노동의 이중성을 구성합니다. 자본주의에서 노동은 이 중 어느 하나의 측면으로만 존재하지 않습니다.

하지만 강신준 교수는 이렇게 설명합니다.

"사용가치를 만든 노동은 시장의 교환과정에서 사회적 노동으로 바뀝니다. … 배추라는 사용가치를 생산하는 데에는 항상 농민의 힘든 노동이 들어갑니다. … 내가 생산한 배추의 교환가치는 시장에서 다른 농민들이 생산한 배추와 비교되는 것은 물론 배추를 구매할 소비자의 사정도 고려되어야만 비로소 결정됩니다. 요컨대 나 혼자만의 사정이 아닌 다른 사람들의 사정이 교환가치를 결정하는 것이지요"(강신준 9월 22일)

우리가 마르크스를 잊은 채 읽으면 그럴듯해 보이는 설명입니다. 이러한 설명은 강 교수가 좋아하는 '개미와 베짱이' 비유로 들어가면서 완전한 파탄을 드러냅니다.

"개미가 수행하는 노동은 사용가치를 만드는 노동일 뿐, 교환가치를 결정하는 노동은 아닌 것이지요."(강신준 9월 22일)

굳이 이중성이라고 부른 것은 그것이 동시에 갖는 성질이라는 것입니다. 즉 개미(노동자)가 수행하는 노동은 사용가치를 만드는 구체적 유용노동일 뿐 아니라 가치를 만드는 추상적 인간노동이기도 하다는 것이죠. 노동자가 교환가치, 정확하게는 가치를 형성하는 노동을 수행하지 않는다면 자본가(베짱이)는 어떻게 잉여가치를 획득하는지 의문이 들 수밖에 없습니다(여기에선 강 교수의 연재가 기대되기도 하네요. 이 위기를 어떻게 극복할지). 아래의 마르크스 설명과 비교하면 강 교수의 설명이 얼마나 마르크스로부터 멀리 떨어진 것인지 단번에 파악할 수 있을 것입니다.

"모든 노동은 생리학적 의미에서 인간노동력의 지출이며, 이 동등한 또는 추상적 인간노동이라는 속성에서 상품의 가치를 형성한다. 다른 한편으로, 모든 노동은 특수한 합목적적 형태로 인간노동력을 지출하는 것이며, 이러한 구체적 유용노동이라는 속성에서 사용가치를 생산한다."(1권 58쪽)


3. 가치형태 또는 교환가치

강신준 교수는 이 부분에서 자본론 1권 1장 3절 부분을 거의 통째로 건너뜁니다. 물론 여전한 헛소리로 분량을 채우고 있긴 합니다. 마르크스가 이 부분에서 매우 복잡한 과정을 거쳐 가치형태를 설명하는 것은 화폐의 기원을 설명하기 위해서입니다. 이 부분은 이어지는 '상품의 물신적 성격과 그 기원'절과 함께 일반적 가치형태, 즉 화폐형태가 사회적 관계를 어떻게 은폐하는 지 그 기원을 폭로해줍니다. 가치의 현상형태인 교환가치가 취하는 여러 형태를 사려깊게 살펴야 하는 이유는 바로 그 이면의 힘을 잊지 않기 위해서입니다.

데이비드 하비는 이 절의 핵심을 이렇게 지적합니다.

"상품과 화폐 사이의 관계는 사용가치와 교환가치의 이중성이 만들어낸 산물이다. … 그렇다면 우리는 여기에서 무엇을 얻을 수 있을까? 첫째, 사회적 필요노동시간은 하나의 사회적 관계이기 때문에, 그것이 곧바로 현실에서 일어나고 있는 일을 규제하는 요소가 될 수는 없다. 그것은 화폐형태라는 매개를 통해 간접적으로만 그렇게 할 수 있다. 또한 화폐형태의 등장은 가치가 자본주의 경제를 작동시킬 중심원리로서 응결되기 시작하도록 만들어준다. 그리고 항상 기억해두어야 할 점이기도 하지만 가치는 물적 존재가 아니면서도 객관적 대상이다."(하비 76쪽)

강 교수는 여기서 뜬금없이 화폐가 "'나'를 버리고 '우리'가 되는 것이 사회적 관계의 발전방향이라는 것을 알려주는 것"(강신준 9월 29일)이라는 주장을 합니다. 이건 뜬금없는 정도가 아니라 마르크스나 그의 해설자들의 주장과 완전히 반대인 것이죠. 하비의 인용문에서도 보이듯 화폐형태는 사회적 필요노동시간의 사회적 관계를 은폐하고 대신해 현실로 나타납니다.

이런식의 왜곡은 프루동과 크메르 루즈를 언급하며 화폐형태를 "역사의 필연적인 자연법칙"으로까지 격상시키는 것으로 이어집니다. 그러나 프루동과 오웬에 대한 마르크스의 입장 차이를 살펴보면 강신준 교수의 주장은 설 자리를 잃게 됩니다. 우선 마르크스는 프루동을 이렇게 비판합니다.

"프루동은 처음에 정의ㆍ영원한 정의라는 자기의 이상을 상품생산에 대응하는 법적 관계로부터 끌어내고 있다. 그는 그렇게 함으로써 상품생산이 정의와 마찬가지로 영원한 형태라는 것을 증명하여 모든 선량한 소시민들에게 위안을 주고 있다. 그 다음에 그는 거꾸로 현실의 상품생산이나 그에 대응하는 현실의 법을 이 이상에 따라 개조하려고 한다."(1권 109쪽 각주2)

프루동에 대한 비판만 놓고 보면 강 교수의 주장이 틀리지 않아 보입니다. 실제로 정의로부터 비롯한 이상을 따르는 운동은 참혹한 결말을 맞곤 했죠. 하지만 오웬에 대한 마르크스의 주장은 약간 다르게 들립니다. "상품생산사회에서 '노동화폐'라는 천박한 유토피아적 이상주의에 대해 나는 다른 곳에서 상세하게 검토했다"며 노동화폐에 대한 비판적 입장을 밝힌 마르크스는 오웬에 대해서는 호의적인 입장을 이어서 설명합니다. "여기서 또 하나 지적해 두고자 하는 것은, 예컨대 오웬의 '노동화폐'가 '화폐'가 아닌 것은 극장의 입장권이 화폐가 아닌 것과 같다는 점"이라며 그 이유로 "오웬은 직접적으로 사회화된 노동[즉 상품생산과는 정반대인 생산형태]을 전제하고 있다"고 밝힙니다(1권 121쪽 각주1).

마르크스는 상품생산을 전제로 한, 즉 자본주의의 핵심적 원리를 그대로 둔채 그 현상형태인 화폐형태만 고치자는 주장에는 가차없이 '유토피아'적이라고 비판하지만 근본적인 변혁을 전제로 한 주장에는 호의적인 뜻을 밝히고 있는 것입니다. 이러한 것을 종합해보면 강 교수의 입장이 마르크스와 같다고 말하긴 힘들 것입니다. 강 교수는 프루동에서 더 나가 화폐형태 자체가 "필연적인 자연법칙"이라며 자본주의의 성숙을 통한 변화를 주장하고 있죠. 이는 말 그대로 '유토피아'적 몽상일 뿐이며 이러한 몽상은 마르크스가 주장한 자본주의 법칙을 마치 아담 스미스의 '보이지 않는 손'과 같은 주장으로 격하시키는 것으로 이어집니다.


4. 결론을 대신하며 … 중요하지만 빼먹은 것들

아직 연재가 계속되고 있으니 강신준 교수에 대한 비판의 결론을 여기서 내리긴 어려울 것 같습니다. 자본론 1권 1장을 마치고 7회차까지 연재를 보면 강 교수의 자본론 해설이 더 나아질 것 같지는 않습니다. 특히 마르크스를 이해하는 데 가장 중요한 것 중 하나인 변증법적 방법에 대한 강 교수의 오해는 계속해서 잘못된 주장을 만들어내고 있습니다.

이번에 다른 분량 중 가장 거슬렸던 것은 15일자 연재의 마지막 부분입니다.

"이[건희] 회장의 얘기처럼 내 이익을 남에게 나누어주지 않으려는 현실 자본가들의 노력은 경쟁을 빚고 경쟁의 결과가 사회적 평균을 만들어내거든요. 사회적 평균을 거스르려는 노력이 사회적 평균을 만들어내는 것입니다. 가치가 빚어내는 변증법의 요술이지요."(강신준 9월 15일)

가치량을 결정하는 "사회적으로 필요한 노동량"(1권 49쪽)이 이런식으로 왜곡되는 걸 보고 있으면 그야말로 피가 거꾸로 솟습니다. 간단히만 지적하자면 우선 강 교수는 '사회적 평균'을 경쟁의 강제법칙으로부터 연역해 무차별적으로 사용하고 있는 데, 이는 마르크스가 1권에서 '경쟁'을 아직 본격적으로 도입하지 않았다는 것, 즉 제한적으로만 사용하고 있다는 것을 무시하는 것입니다. 게다가 강 교수의 '사회적 평균'은 마치 보다 평등한 사회의 형성을 암시하는 것처럼 읽힙니다. 하지만 이는 마르크스가 자본론 전체에 걸쳐서 자본가의 잉여가치 획득과 더 가난해지는 노동자의 현실이 자본주의적 법칙의 현실적 결과임을 설명하는 것과 반대되는 주장이죠. 또 강 교수는 '사회적 평균'을 형성하는 '경쟁' 운운하는 데, 마르크스는 경쟁의 강제법칙을 자본가가 개인이 아닌 자본의 인격화한 범주로서 행동할 수밖에 없는 핵심 원리로 설명합니다. 즉 '자본가들의 노력'이 '경쟁을 빚'는 것이 아니라 경쟁의 법칙이 자본가의 자본으로서의 노력을 강제하는 것이고 이는 노동자들에게 더 비참한 생활을 강요하는 것으로 나타납니다. 강 교수는 원인과 결과를 뒤바꿨을 뿐만 아니라 현실적 결과조차도 자신의 희망대로 왜곡하고 있는 것입니다.

9월 22일자 연재에서 "모든 사용가치는 인간의 노동에 의해 만들어집니다"는 단언도 문제입니다. 마르크스는 이렇게 설명합니다.

"노동은 그것에 의해 생산되는 사용가치[즉, 물적 부]의 유일한 원천은 아니다. 윌리엄 페티가 말한 바와 같이, 노동은 물적 부의 아버지고, 토지는 그 어머니다."(1권 54쪽)

이 설명은 이후 자연과의 신진대사라는 개념으로 이어집니다. 이 개념은 마르크스주의적 생태주의에서 매우 중요하게 다루는 것이죠. 강 교수의 단언은 마르크스가 이루진 못했지만 그의 후예들이 이로부터 영감을 얻어 발전시켜나가고 있는 이론과 실천을 무시하는 행위입니다.

이번 주에도 어김 없이 강신준 교수의 '오늘 '자본'을 읽다'가 경향신문에 실렸습니다. 이 연재가 어디까지 갈지는 모르겠지만 저도 힘 닿는대로 비판적 검토를 계속할 것입니다. 이는 강 교수에게 감정이 있어서가 아니라 마르크스에 대한 보다 나은 이해를 만들어나가기 위함입니다. 격동을 앞둔 지금 마르크스의 유산을 제대로 살피는 일은 더 중요해졌으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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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때때로



강신준 동아대 교수가 경향신문에 '자본(자본론)' 해설을 연재하고 있습니다. '오늘 '자본'을 읽다'는 제목으로 8월 25일 시작했습니다. 연재 기사는 일주일에 한 번, 토요일에 실립니다. 9월 1일에는 두 번째 연재로 '혁명에 사로잡힌 물음 - '자본'의 출생과 변증법'이란 기사가 23면에 실렸습니다.

●[경향신문] 9월 1일 23면|'변증법'으로 자본주의 생산양식 발전시키는 게 혁명(링크)

최근 마르크스의 생애, 그의 사상, 자본론(정치경제학 비판)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면서 이와 관련된 출판도 늘고 있습니다. 신문에까지 마르크스의 핵심 사상을 소개하는 연재기사가 실린다는 것은 반가운 일입니다. 신문의 영향력이 많이 줄었다지만 책보다는 읽는 사람이 많으니까 말입니다.

하지만 두 번째 글까지 읽고 나니 반가움보다는 걱정이 더 커집니다. 마르크스 스스로 말년에 자신은 "마르크스주의자가 아니다"고 한 만큼 마르크스주의는 논란에서 자유로운적이 없습니다. 하지만 저 같은 일반 독자 입장에서 보기에도 강신준 교수의 두 번째 연재기사는 너무 많은 문제가 있습니다. 대중을 위한 신문에서 학문적 엄밀함을 요구하는 게 아닙니다. 쉽게 설명하기 위해 복잡한 학문적 방법을 사상한 게 문제가 아닌 것이죠. 문제는 일반적인 사실의 왜곡에 있습니다. 더 큰 문제는 명색이 '자본 강독'이라고 시작한 연재라면 자신의 생각과 마르크스의 생각(글)을 구분해야 하는 데 그렇지 않다는 것입니다.

강신준 교수가 모르진 않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강신준 교수의 경향신문 연재기사를 보고 마르크스를 처음 접할 분들에겐 상당히 큰 오해를 심어줄 수 있을 듯 싶습니다. 전공자도 아니지만 간단히 제가 아는 한도에서 9월 1일 두 번째 연재기사에서 문제가 될 듯한 부분을 짚어보도록 하겠습니다. 제 글에서 틀린 부분이 있다면 주저 말고 지적해주세요. 아래에서 파란색으로 표시된 것은 강신준 교수의 글입니다.


1_ "오늘날 사회변혁을 생각하는 사람들이 즐겨 사용하는 혁명이란 용어는 원래 프랑스혁명에서 나온 것입니다. 근대 혁명의 효시가 프랑스혁명이기 때문입니다."

결론부터 말하지만 완전히 틀린 설명입니다. 혁명(revolution)은 라틴어 'revolutio'에서 나온 단어입니다. 혁명이 급진적, 혹은 근본적 변화를 뜻하는 단어로 사용되기 시작한 것은 코페르니쿠스가 1543년 '천체의 회전에 관하여(De revolutionibus orbium coelestium)'을 발표하면서부터입니다. 이 단어가 '사회구조의 근본적이고 돌연한 변화'를 뜻하는 정치적 의미로 쓰인 것은 1688년 영국에서 제임스 2세가 물러나고 윌리엄 3세가 즉위한 사건을 '명예혁명(The Glorius Revolution)'으로 부르면서부터입니다. 이에 대해선 위키피디아 'revolution' 항목을 참조하시면 됩니다(링크).


2_ "1848년 혁명도 바로 이 [1789년] 프랑스혁명을 본받은 것이었습니다. 그것도 다수에 의한 혁명이었습니다. 그런데 이 혁명의 다수는 부르주아가 아니라 노동자들이었습니다. 노동자들이 모두 동의하는 혁명이었던 것입니다."

인민의 다수를 자신의 편으로 호명하고 싶어하는 혁명가, 변혁가의 꿈은 과거와 현재 모두 다르지 않습니다. 지난해 9월 시작된 월스트리트 점령의 점령자들은 자신을 99%라고 표현하며 결코 소수가 아닌 다수임을 강조했죠. 원래 '다수파'라는 뜻을 지닌 볼셰비키, 하지만 레닌의 볼셰비키는 그 분열 초기에는 멘셰비키보다 소수였습니다.

1789년 프랑스 혁명을 논할 때 빠지지 않는 시이예스의 '제3신분이란 무엇인가'도 어찌보면 현재의 '우리는 99%다'라는 주장과 그리 다르지 않을 것입니다. 시이예스는 "제3신분이란 무엇인가"라고 물은 후에 스스로 "모든 것이다"고 답하죠. 그러므로 "제3신분은 국민에 속하는 모든 사람을 포함"하고 있고 "제3신분이 아닌 사람은 그 누구도 자신이 국민에 속한다고 생각할 수 없는 것이다"는 주장입니다
('프랑스 대혁명사', 알베르 소불, 두레, 29쪽).

마르크스주의자 또한 과거의 혁명들을 '노동자 혁명'으로 설명하고자 하는 열망은 매우 강할 것입니다. 열망은 현실과 다르죠. 그렇기에 마르크스와 마르크스를 따르는 혁명가들은 냉정하게 현실을 파악하기 위해 노력합니다. 마르크스는 1848년 프랑스 혁명에서 노동자의 역할을 어떻게 설명했을까요? 그는 나폴레옹의 조카가 일으킨 쿠데타를 다루는 책(루이 보나파르트의 브뤼메르 18일)에서 이렇게 말합니다.

"파리의 프롤레타리아가 그들 앞에 전개되어 있는 원대한 전망에 대한 상상에 젖어 사회문제에 대한 진지한 토론에 몰두해 있었던 반면, 사회의 구세력들은 집단을 형성하고 회합을 개최했으며 국민 대다수를 차지하던 농민과 쁘띠부르주아에게서 예상치 않던 지지를 발견했다."
- '루이 보나파르트의 브뤼메르 18일', 최형익 옮김, 비르투, 21쪽.

마르크스는 분명하게도 1848년 혁명 당시 농민이 다수였음을 지적하고 있습니다. 노동자(프롤레타리아)는 당시 프랑스에서 소수였고 그나마 파리에만 의미 있는 수를 형성하고 있었죠. 그렇기에 파리의 노동자들은 6월 봉기 때 "모든 계급과 정파"의 적으로 공격 대상이 됩니다. 결국 "[파리의] 프롤레타리아는 위대한 세계사적 투쟁이라는 영예를 안고 쓰러"집니다(앞의 책 23쪽). 1848년 혁명의 다수가 노동자였다는 강신준 교수의 설명은 마르크스의 설명과도 완전히 다른 것입니다.

다른 저자의 설명도 강신준 교수의 주장과는 다릅니다. 노명식 교수는 1830년 7월 혁명과 비교하며 이렇게 씁니다.

"[1830년] 7월혁명의 결정적 승자는 부르주아지였으나 2월혁명의 승자는 노동자계급과 중소 부르주아지의 연합이었다. 1830년 혁명과 1848년 혁명의 본질적 차이가 여기 있었다. 따라서 1848년에는 부르주아지가 수세에 몰리고 있었다."
- '프랑스 혁명에서 파리 코뮌까지, 1789~1871', 노명식, 책과함께, 343쪽.

분명히 1789년보다, 1830년보다 1848년 혁명에서 노동자 계급의 역할이 더 커지고 중요해졌습니다. 노동자 계급의 혁명적 역할의 중요함은 프랑스 전역의 혁명에서 파리가 지닌 역할과 비견할 만한 것이죠(서로 연관된 사실이기도 합니다). 하지만 그것을 1848년 혁명 당시 노동자가 '다수'였다는 식으로 해석해서는 혁명 패배의 교훈과 역사적 의미를 왜곡하는 일이 될 것입니다.


3_ "자본주의 이전에 교환은 극히 제한된 형태로만 있었고 경제의 대부분은 자급자족하는 구조였습니다. 모든 사람은 마을을 이루어 모여 살았고 마을에서 생산된 것만을 소비했습니다. 생산과 소비가 일치하고 있었던 것이지요. 이런 경제구조에서는 생산하는 사람과 소비하는 사람이 동일하기 때문에 생산을 열심히 한 사람은 소비도 풍족하게 할 수 있습니다."

자본주의 이전에 '교환'이 제한적이었다는 것은 아마 사실일 겁니다. 하지만 그것을 "생산과 소비가 일치"한다고 설명할 수는 없죠. 마르크스가 '자본론'에서 자본주의 이전 생산양식의 귀족과 노예 소유주를 위한 생산, 즉 착취를 (자본주의적 착취와 비교해서) 설명하고 있다는 것을 강신준 교수가 깜빡하고 잊은 듯합니다.


4_ "[1848년 혁명의 패배를 지켜본 다음] 1849년 마르크스는 독일 정부의 압력에 의해 다시 유럽대륙에서 추방당해 마지막 망명지인 영국으로 향합니다. 영국으로 가는 뱃전에서 마르크스는 두 가지 의문을 품습니다. 하나는 그 엄청난 혁명의 동력이 어디에서 나온 것일까 하는 것이었고, 다른 하나는 그런 혁명이 왜 실패한 것일까 하는 것이었습니다. 영국에 도착한 마르크스는 곧바로 당시 세계 최대의 도서관이었던 대영박물관 도서실에 매일 아침부터 저녁까지 틀어박혀 연구를 거듭한 끝에 1867년 드디어 '자본[자본론]' 제1권을 출판했습니다."

이 문구만 읽어서는 마르크스가 '자본론'을 쓴 계기, 즉 자본주의에 대한 경제적 연구를 시작한 계기가 마치 1848년 혁명 때문인 듯 보입니다. 하지만 이러한 설명은 마르크스의 사상을 가장 체계적으로, 그 기초적 모습을 드러낸 '공산당 선언'이 1848년 2월 혁명 전야에 나왔다는 사실과 배치됩니다.

이뿐 아니죠. 마르크스는 1843년 쓴 '헤겔 법철학 비판 서문'에서 이미 경제적 탐구의 필요성을 지적하고 있습니다. "종교는 인민의 아편이다"는 악명 자자한 문장 다음에 나오는 말입니다.

"인민의 환상적 행복인 종교의 폐기는 바로 인민의 현실적 행복에 대한 요청이다. 인민의 상황에 대한 환상을 포기하라는 요청은 이 환상을 필요로 하는 상황을 포기하라는 요청이다. 그러므로 종교에 대한 비판은 그 기원에서 본다면, 종교를 자신의 후광으로 삼고 있는 간난의 삶에 대한 비판이다."
- '헤겔 법철학 비판', 강유원 옮김, 8쪽.

마르크스가 현실의 경제적 삶에 대한 관심을 갖게 된 것은 비슷한 시기 '라인신문'에서 일하면서입니다. 마르크스는 훗날 "'라이니셰 차이퉁[라인신문]' 편집장으로서 이른바 물질적 이해관계에 대한 논의에 참여해야 할 때 나는 처음으로 당혹감을 느꼈다"고 고백합니다.

"마르크스가 이 미지의 영역[물질적 이해관계: 경제]에 처음 도전해본 것은 개인 소유 삼림에서 나무를 훔치는 문제를 다루는 새로운 법을 길게 비판하게 되었을 때였다. … [이 문제를 다루면서] 마르크스는 처음으로 계급, 개인 소유, 국가의 문제에 대해 생각해보게 되었다."
- '마르크스 평전', 프랜시스 윈, 정영목 옮김, 푸른숲, 69쪽.

'라인신문'이 폐간되고 쫓겨난 마르크스는 당대 '사회주의' '공산주의' 사상의 중심지였던 프랑스 파리에서 이 음울한 학문, 경제학에 대한 탐구에 몰두합니다. 당시의 공부 결과는 현재 '경제학-철학 수고'라는 책으로 나와 있습니다. 1844년 쓰여서 '1844년 수고', 또는 파리에서 작성됐다고 해서 '파리 수고'라고도 불립니다.


5_ "한나라당 사람들이 입버릇처럼 하던 얘기가 '잃어버린 10년'인데요. 이 말은 김대중ㆍ노무현 정부의 10년 동안 이루어진 정치적 성과를 모두 없애고 10년 전의 상태로 돌린다는 의미를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이런 인식은 사물의 운동법칙[변증법]을 올바로 이해하지 못한 것입니다. 1은 성숙해지면서 2가 되는데 이 2는 기존의 1에 1을 더해야만 이루어지는 것입니다(2=1+1). 만일 기존의 1을 없애버리면 새롭게 추가하는 1밖에 남지 않기 때문에 사회는 보다 나은 상태로 발전하지 못하고 도로아미타불의 제자리걸음을 하게 됩니다."

강신준 교수는 변증법을 설명하면서 '1+1=2'라는 공식을 내세웁니다. 전에 보지 못한 새로운 설명이긴 합니다. 보통은 정-반-합의 과정을 설명하죠. 강신준 교수의 설명만 보면 사물의 운동은 발전만 있고 퇴보는 없는 듯합니다. 게다가 기존의 사물은 새로운 사물 내부에서 자기 자신을 온전히 유지한다는 것으로 비춰집니다. 새롭기는 하지만 완전히 잘못된 설명이기도 합니다.

마르크스가 설명하는 사물의 변증법적 운동이 발전만을 뜻하는 것은 아닙니다. '루이 보나파르트의 브뤼메르 18일'의 첫 부분에서 마르크스는 헤겔을 인용하며 "세계사에서 막대한 중요성을 지닌 모든 사건과 인물들은 반복된다"고, 하지만 "한 번은 비극으로 다음은 소극으로 끝난다"는 주장을 합니다
(최형익 옮김, 비르투, 10쪽). 마르크스의 설명이 강신준 교수과 매우 다르다는 것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마르크스는 고전정치경제학의 한계를 지적하면서 바로 그 한계 때문에 그들의 후예들이 과학적 입장에서 더 후퇴했다고 설명하기도 합니다. 즉 사물의 운동법칙은 1+1=2처럼 단순히 계단 올라가는 과정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사물들의 대립과 통일이라는 기존 설명도 지나치게 단순화된 설명이어서 많은 오해를 불러왔지만, 강신준 교수의 설명은 그보다 더 큰 오해를 줄 수 있습니다.


6_ "그렇다면 자본주의의 개혁은? 당연히 자본주의가 충분히 성숙해야만 이루어집니다. 자본주의 개혁은 자본주의를 없애는 것이 아니라 자본주의를 그대로 존속시키면서 그 위에 건설된다는 말입니다."

강신준 교수의 '변증법' 해설의 더 큰 문제는 마르크스가 마치 자본주의를 '존속'시킨 채 그것의 개혁을 위한 방법을 발견한 사람처럼 설명했다는 것입니다. 물론 마르크스에 대한 해석은 사람마다 다를 수 있고, 시대에 따라 변화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이 연재기사가 '강독'을 목표로 하고 있다면 최소한 마르크스의 주장과 그에 대한 비판적 해석을 구분할 수 있게끔 써줬어야 합니다.

19세기 후반 보통선거의 도입과 민주주의의 발전으로 마르크스와 엥겔스는 자본주의를 극복하는 민주적인 길의 가능성을 검토하기도 합니다. 당시 아직 봉건적 생산양식이 지배적이던 러시아를 살피면서는 자본주의를 거치지 않는 공산주의로의 변화 가능성을 모색하기도 했죠.

하지만 그 어디에서도 마르크스가 자본주의의 '존속'과 '개혁'을 주장했다는 근거는 찾기 힘듭니다. 마르크스는 말년에 쓴 '고타 강령 비판'에서도 자본주의에 대한 혁명적 태도를 유지했죠.

"[1875년 라쌀레 추종자들과의 통합을 통해 만들어진 독일사회주의노동당(1890년 할레 대회에서 독일사회민주당으로 개칭)의 강령에 대해] 마르크스는 즉각 베를린에 있는 리프크네히트에게 격렬한 비난이 담긴 서한을 급송했고, 다른 한편으로는 엥겔스에게도 리프크네히트에게 그 정도로 강력한 서한을 보내라는 지시를 내렀다. … 마르크스가 보기에 고타 강령에는 너무나 많은 타협의 정신이 스며들어 있었다. 고타 강령은 사회주의와 그 최대의 적인 국가가 영원히 양립할 수 있다는 것을 인정하고 있었다. 이런 점에서 고타 강령은 특히 그러했다. 또한 고타 강령의 밑바탕에는 프루동 주의자들과 생시몽주의자들이 자본주의의 여러 모순에 대한 치유책으로 제시하고 있는 것들, 이를테면 국가와 자본주의 체제의 붕괴를 촉진시키기보다는 오히려 노동에 대한 '정당한' 보상이라든가 상속법의 폐지 같은 사소한 목적들을 평화적인 방법으로 환기시킴으로써 사회 정의를 달성할 수 있다는 믿음이 깔려 있는 것으로 보였다."
- '칼 마르크스: 그의 생애와 시대', 이사야 벌린, 안규남 옮김, 미다스북스, 383쪽.

게다가 강신준 교수 스스로 인용했듯이 마르크스의 변증법적 방법은 그것이 어떤 사물이든 영원한 것으로 파악하지 않습니다. 모든 것은 운동 상태에 있으며 유동적이고, 따라서 언제나 일시적으로만 파악됩니다. 강신준 교수가 인용한 부분을 좀 더 길게 다시 인용해보겠습니다.

"변증법은 그 신비로운 형태로 독일에서 유행했다. 왜냐하면, 변증법이 현존하는 것을 찬미하는 것 같았기 때문이다. 그러나 변증법은 그 합리적인 형태에서는 부르주아지와 그 이론적 대변자들에게 분노와 공포를 줄 뿐이다. 왜냐하면, 변증법은 현존하는 것을 긍정적으로 이해하면서도 동시에 그것의 부정, 즉 그것의 불가피한 파멸을 인정하기 때문이며, 또 변증법은 역사적으로 전개되는 모든 형태들을 유동상태ㆍ운동상태에 있다고 간주함으로써 그것들의 일시적 측면을 동시에 파악하기 때문이며, 또한 변증법은 본질상 비판적ㆍ혁명적이어서 어떤 것에 의해서도 제약을 받지 않기 때문이다."
- '자본론' 1권, 김수행 옮김, 비봉, 19쪽.

'긍정적으로 이해"한다는 것은 자본주의를 개인의 바람에 따라 왜곡해서 살펴서는 안된다는 것입니다. 이는 마르크스가 한 때 속하기도 했던 청년헤겔파에 대한 비판으로 바라봐야 합니다. 그들은 헤겔과 달리 사회의 혁명적 변화를 바랐지만 사물은 언제나 인간의 의식의 문제로만 파악했습니다. 마르크스는 '독일 이데올로기' 서문에서 청년헤겔파를 '무게라는 관념'을 갖고 있는 사람에 비유해 조롱하기도 했죠(박재희 옮김, 청년사, 34쪽). 그렇기에 마르크스는 "헤겔에게는 변증법이 거꾸로 서 있다"며 "신비한 껍질 속에 들어 있는 합리적인 알맹이를 찾아내기 위해서는 그것을 바로 세워야 한다"고 주장했습니다(김수행 옮김, 19쪽).

아나키즘과 마르크스 이전에 유행했던 공상적 사회주의(생시몽과 푸리에 등) 비판이라는 맥락도 살펴야 합니다. 그들은 자본주의의 현실적 상태에 대한 탐구가 아닌 이상적 설계도를 제시하는 것으로 변혁의 과학을 대치하려 했습니다(물론 그들의 '이상'은 마르크스와 그 후예들에게 많은 영감을 주었고 현재도 영향을 미치고 있습니다). 마르크스가 강조한 것은 자본주의라는 것이 언제까지나 영원할 수는 없지만 그것의 혁명적 변화가 어디서 시작되고 어떻게 변화할 지는 자본주의 현실에 대한 연구로부터 끄집어내져야 한다는 것입니다.

강신준 교수도 이러한 사정을 모를리는 없을 것입니다. 그래서일까요. 프랑스 혁명을 얘기하며 실컷 '혁명' 운운하다가 이 부분에 와서는 '개혁'이라는 단어를 사용합니다.

의도적인지 아닌지 모르겠지만 강신준 교수의 이와 같은 설명은 완전히 잘못된 제목으로 나타납니다. "'변증법'으로 자본주의 생산양식 발전시키는 게 혁명"이라니요. 강신준 교수는 그나마 '개혁'이란 단어로 기사의 후반부에 대치시켰지만 경향신문의 편집기자는 그 차이를 이해 못하고 '혁명'이란 단어를 제목에 써버립니다. 하긴 이윤에 목매는 자본가들은 생산방식에 혁명적 방법을 도입해가며 자본주의 사회를 발전시켜왔으니 그리 틀린 말은 아닐 수도 있겠네요. 다만 자본주의의 혁명적 전복을 꿈꿨던 마르크스의 생각은 아니죠. 제목 아래 크게 자리잡은 마르크스의 얼굴이 안쓰러울 뿐입니다.


p.s. 강신준 교수는 '개혁'이란 단어를 쓰기 전 '자본론'의 프랑스어판 서문을 인용하며 '혁명'이 마치 길고 긴 개혁의 과정인 것처럼 설명합니다. 마르크스는 이렇게 쓰고 있죠.

"학문에는 지름길이 없습니다. 오직 피로를 두려워하지 않고 학문의 가파른 오솔길을 기어 올라가는 사람만이 학문의 빛나는 정상에 도달할 수 있습니다."
- '자본론' 1권, 김수행 옮김, 비봉, 21쪽.

그런데 이 문구는 프랑스어판 편집자의 '자본론'을 시리즈로 분책해서 내자는 제안에 대한 답변입니다. 이 책(자본론)이 어렵지만 그 어려움을 이겨내고 읽어야만 한다는 충고죠. 강신준 교수의 해석은 과도한 것입니다. 맥락에서 떼어내 문구만을 자의적으로 해석하는 것은 학문과 실천 모두에서 해롭다고 생각합니다.

Posted by 때때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