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력

07

« 2018/07 »

  • 1
  • 2
  • 3
  • 4
  • 5
  • 6
  • 7
  • 8
  • 9
  • 10
  • 11
  • 12
  • 13
  • 14
  • 15
  • 16
  • 17
  • 18
  • 19
  • 20
  • 21
  • 22
  • 23
  • 24
  • 25
  • 26
  • 27
  • 28
  • 29
  • 30
  • 31
  •  
  •  
  •  
  •  

데이비드 하비의 맑스 '자본' 강의』 2권이 최근 출판됐다. 출판사는 책을 소개하면서 옮긴이가 "『자본』에 대한 높은 이해를 바탕으로 하비의 계산 오류를 바로잡기도 했으며, 적재적소에 주석을 달아 독자의 이해를 도왔다"고 자신감을 드러냈다.

1권을 읽으며 도움을 많이 받은 나로서도 역서가 얼른 나오길 바라왔다. 그렇게 펼쳐 든 책의 앞 부분에서 두 가지 오류를 발견해 여기에 적어놓는다. 우선 간단한 오역이다.

"한때 화폐를 저렴하게 구매하여 비싸게 판매하던 상인은 이제 잉여가치의 생산과 실현에 그들이 제공하는 서비스 덕분에, 그들에게 제공되는 잉여가치 부분만을 손에 넣을 수 있다."
- 하비 2권 강신준 옮김 56쪽

자본주의에서 상인이 얻는 수익의 근원을 설명하는 부분이다. 그런데 이상하다. 상인이 '화폐를 저렴하게 구매하여 비싸게 판매'하는 걸로 수익을 얻었던가. 화폐를 이용해 돈을 버는 건 상인이 아니라 금융자본 아니었던가. 원문을 확인해봤다.

"Merchants, who once made their money buying cheap (or by robbery and stealing) and selling dear, can appropriate only that share of the surplus-value that accrues to them by virtue of the services they render to surplus-value production and realization."
- 영문판 30~31쪽

'made their money …' 부분이다. 내가 보기엔 "한때 저렴하게 사들여 비싸게 판매하는 것으로 돈을 (혹은 강도행위와 도둑질로) 벌던 상인은 …"이라고 옮기는 게 맞는 것 같다. 괄호 안 'or by robbery and stealing'을 옮기지 않은 것도 아쉽다. 데이비드 하비는 자본주의 하에서 '수탈'의 역할을 강조해 왔다. 상업자본이 정직한 부지런함과 상업에 대한 이해를 바탕으로 한 기민한 대처 만으로 돈을 벌어온 것은 아니다는 것이다. 하비의 기존 주장들을 고려했을 때 괄호 안의 문구를 삭제한 것은 그의 주장을 왜곡까지는 아니더라도 약화시키는 역할을 할 수 있다.

두 번째 오류는 옮긴이 주에서의 실수다.

"상품은 화폐를 사랑하지만 (…) '참된 사랑의 길은 순탄하지 않다' (…) 오늘 사회적 필요를 충족시키던 생산물이 내일은 다른 비슷한 상품에 의해 일부 혹은 전부 대체되어 버릴 수 있다."(M1: 122. 뒷 문장은 출처를 알 수 없음. 하비는 펭귄판 202~03면에 있다고 표시해두었지만 해당 부분에는 그런 구절이 없음-옮긴이)
- 하비 2권 강신준 옮김 58쪽

강신준 교수는 해당 부분을 찾지 못해 '그런 구절이 없음'이라고 적고 있다. 그렇지만 이 구절은 펭귄판 '자본론'에 분명히 있다. 물론 여기엔 하비의 잘못과 실수도 있다. 잘못은 앞뒤를 바꿔 조합해 인용했다는 것이고 실수는 펭귄판 202~203쪽이 아니라 201~202쪽에 해당 문장이 있다는 것이다.

"상품은 화폐를 사랑하지만 '참된 사랑의 길은 순탄하지 않다'
(We see then that commodities are in love with money, but that 'the course of true love never did run smooth')"는 펭귄판 202쪽에 있고 "오늘 사회적 필요를 충족시키던 생산물이 내일은 다른 비슷한 상품에 의해 일부 혹은 전부 대체되어 버릴 수 있다(Today the product satisfies a social need. Tomorrow it may perhaps be expelled partly or completely from its place by a similar product)"는 201쪽에 있다. 강신준 교수가 MEW에서 직접 옮긴 길판에선 앞 문장이 176쪽, 뒷 문장은 175쪽에 나온다.

"알다시피 상품은 화폐를 사랑하지만 '참된 사랑의 길은 결코 순탄하지 않다'."
- 강신준 옮김 '자본' Ⅰ-1 176쪽

"오늘 생산물은 어떤 하나의 사회적 욕망을 충족시킨다. 그러나 내일은 그 생산물 가운데 전부 또는 일부가 다른 유사한 종류의 생산물에 의해 그 자리에서 밀려날 수 있다."
- 강신준 옮김 '자본' Ⅰ-1 175쪽

지난해 작고한 김수행 교수의 2015년 개정판에는 다음과 같이 옮겨져 있다.

"이와 같이 상품은 화폐를 사랑하고 있지만, '진정한 사랑의 길은 결코 평탄하지 않다'."
- 김수행 옮김 '자본론' Ⅰ[상] 140쪽

"오늘 어떤 하나의 사회적 욕구를 충족시키고 있는 생산물이, 내일에는 어떤 비슷한 종류의 생산물에 의해 전부 또는 부분적으로 쫓겨날지도 모른다."
- 김수행 옮김 '자본론' Ⅰ[상] 139쪽

하비가 앞뒤를 바꿔 인용하고 출처 표기를 실수한 것은 사실이다. 그럼에도 '그런 구절이 없음'이라고 단정적으로 옮긴이 주를 단 것은 강신준 교수의 명백한 잘못이다. 그 앞뒤로 조금만 더 살폈어도 충분히 찾아내 하비의 실수를 교정할 수 있었다. 자본론의 번역자이고 연구자인 강신준 교수의 이런 실수는 너무 아쉽다.

오역의 문제는 1권에도 있었다. 떠오르는 게 하나 있어 찾아보니 1권 55쪽의 문장이다.

"사용가치에 대해 말하지 않고 우리가 교환가치를 말할 수 있을까? 말할 수 없다. 그렇다면 사용가치에 대해 말하지 않고 우리가 교환가치를 말할 수 있을까? 그것도 아니다."
- 하비 1권 강신준 옮김 55쪽

사용가치와 교환가치, 가치의 변증법적 관계를 말하는 부분이다. 원문을 찾아보지 않아도 앞 문장과 뒤 문장이 똑같이 반복됨을 알 수 있다. 원문은 이렇다.

"Can you talk about exchange-value without talking about use-value? No, you can't. Can you talk about value without talking about use-value? No."
- 영문판 24쪽

즉 뒷 부분의 '교환가치'는 '가치'가 맞다. 최근 판매되는 책에서 고쳐졌는지는 확인 못했다.

연구자와 번역자들의 노고는 내 독서생활에 큰 도움을 준다. 강신준 교수의 번역 작업에도 항상 고마움을 느껴왔다. 하지만 이런 실수들로 인해 그의 작업에 대한 믿음이 흔들리곤 한다. 강신준 교수와 출판사는 서둘러 이런 오류들을 찾아 수정해줬으면 좋겠다.

Posted by 때때로

2014년 11월 15일 작성, 일부 수정

자크 비데와 제라르 뒤메닐이 쓴 새 책이 나왔다. 제목은 '대안마르크스주의'. 이 책의 서론에는 다음과 같은 잘 알려진 이야기가 앞 부분에 나온다.

마르크스가 '마르크스주의'의 기초를 제공한 사람임에도 불구하고 사상적 스승을 찾고 있던 러시아의 [근대] 초기 혁명가들에게 "어떤 경우라도 나는 마르크스주의자가 아니다"라고 응답한 것은 사람들에게 잘 알려져 있다.
- 17쪽.

그래 '잘 알려져 있다'. 그리고 이 문장을 독자들은 마치 이 이야기가 플레하노프와 자술리치 같은 러시아 초기 마르크스주의자들에 대해, 혹은 더 직접적으로 레닌과 그의 동료들에 대해 한 얘기인 것처럼 이해하기 쉽다. 그런데 과연 그럴까?

이와 관련해선 우선 프랑스 노동당 건설을 위해 쥘 게드와 마르크스가 함께 작성한 강령의 해설에서 이 이야기의 배경을 발견할 수 있다.

Accusing Guesde and Lafargue of "revolutionary phrase-mongering" and of denying the value of reformist struggles, Marx made his famous remark that, if their politics represented Marxism, "ce qu'il y a de certain c'est que moi, je ne suis pas Marxiste(what is certain is that I myself am not a Marxist)".
개혁을 위한 투쟁의 가치를 폄하하며 '혁명적 미사여구'만 늘어놓는 게드(프랑스 노동계급 지도자)와 라파르그(마르크스의 사위)를 비난하며 마르크스는 그의 가장 유명한 발언을 내놓는다. 만약 저들의 정치를 마르크스주의라고 부른다면 "ce qu'il y a de certain c'est que moi, je ne suis pas Marxiste(확실한 것은 내 자신은 마르크스주의자가 아니라는 것이다)".
- 1880년 프랑스 노동당 강령에 대한 편집자의 해설(링크)

이는 노동당 건설을 위한 강령을 의논하기 위해 게드와 라파르그를 만난 이후를 설명한 글이다. 마르크스의 이 언급은 엥겔스가 베른슈타인에게 보낸 편지(Marx and Engels, Werke, Vol.35 p.388)에 인용돼 있다.

Nor have you any other source, i.e. other than Malon at second hand, for your reiterated assertion that in France 'Marxism' suffers from a marked lack of esteem. Now what is known as 'Marxism' in France is, indeed, an altogether peculiar product — so much so that Marx once said to Lafargue: 'Ce qu'il y a de certain c'est que moi, je ne suis pas Marxiste(If anything is certain, it is that I myself am not a Marxist)'.
프랑스에서 '마르크스주의'가 존중받지 못해 고통받고 있다는 당신의 반복된 주장은 말롱(제1 인터내셔널에서 활동한 염색 노동자)을 통하지 않고서는 어떤 근거도 제시할 수 없다. 현재 프랑스에서 '마르크스주의'라고 알려진 것은, 정말로 완전히 기이한 결과물이다. 언젠가 마르크스가 라파르그에게 이렇게 말했을 정도로 말이다. "Ce qu'il y a de certain c'est que moi, je ne suis pas Marxiste(무언가 확실한 게 있다면 그것은 내 자신이 마르크스주의자가 아니라는 것이다)."
-1882년 11월 2일 엥겔스가 베른슈타인에게 보낸 편지(링크)

엥겔스는 이 말을 1890년 슈미트에게 보낸 편지에서도 반복한다.

Just as Marx used to say, commenting on the French "Marxists" of the late [18]70s: "All I know is that I am not a Marxist."
마르크스는 1870년대 후반 프랑스 '마르크스주의자'에 대해 언급할 때면 꼭 이렇게 말하곤 했다. "내가 아는 전부는 내가 마르크스주의자가 아니라는 것이다."
- 1890년 8월 5일 엥겔스가 슈미트에게 보낸 편지(링크)

이 언급들 모두 매우 구체적인 상황에서 이른바 프랑스 '마르크스주의자'들을 두고 한 말이다. 그리고 이 사정에는 그의 사위 라파르그가 끼어있다. 실제로 마르크스 사후 엥겔스는 1889년 라파르그에게 이렇게 편지를 쓴다.

We have never called you anything but 'the so-called Marxists' and I would not know how else to describe you. Should you have some other, equally succinct name, let us know and we shall duly and gladly apply it to you.
우리는 너를 '사이비 마르크스주의자' 외에 어떤 것으로도 부르지 않았었고 그것 외에 어떻게 너를 묘사할 수 있을지 나는 알지 못했다. 간결한 이름 같은 다른 어떤 것을 네가 가졌다면 우리에게 알려주렴. 우리는 당연히도 기꺼이 너를 그 이름으로 부를 것이다.
- 1889년 5월 11일 엥겔스가 라파르그에게 보낸 편지(링크)

그런데 저명한 '마르크스주의자'들이 이런 구체적 맥락에 대한 언급이 없는 것은 물론 정확한 인용 표기도 없이 마구 사용되고 있다. 그것도 매우 눈에 잘 띄는 정치적 의도를 지니고 말이다. 최근 뒤메닐 글을 읽으며 자꾸 실망하는 데, 이번 글도 '서론'에서부터 실망스러운 것 투성이다. 그 앞의 '한국어판 서문'에서 마르크스로 되돌아가 다시 시작하겠다고 한 말이 무색하게도 말이다.

저 문구를 그저 '일반적 상황'에 대입해 썼다면 그러려니 하고 넘어갔을 터이다. 명백히 '프랑스' 마르크스주의를 대상으로 한 말을 '러시아의 근대 초기 혁명가'들에게 했다는 건 터무니없는 왜곡일 뿐이다.

'저명한 저자'라고 해서 의심 없이 읽어선 안 된다. 마찬가지로 내 글에도 심각한 오역이나 오류가 있을 수 있다.

Posted by 때때로

협동조합 '가장자리'의 격월간지 '말과활'이 창간됐다. 가장 눈에 띈 것 중 하나는 홍세화 선생이 머리말에서 '민중'이란 말 대신 '인민'을 사용한 것이다. 이는 의도된 것으로 보인다. 인민이란 말이 우리 언어 생활에 그리 익숙한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홍세화 선생은 왜 인민이란 말을 썼을까?

인민은 "국가를 구성하고 사회를 조직하고 있는 사람"을 뜻한다. 보통은 이와 함께 지배자에 대한 피지배자를 말할 때 사용된다. 비슷한 단어로 '민중'이 있다. 둘 다 특정한 정치적 함의를 지니지만 원래 그랬던 것은 아니다. 1970~80년대 민주화 운동 세력은 민중에 보다 적극적인 정치적ㆍ사회적 집단으로서의 의미를 부여한다. 이는 인민이란 단어가 남북 분단 상황에서 금기시 된 때문이다. "늘 친하게 어울리거나 함께 노는 사람"을 뜻하는 '동무'란 단어가 분단 이후 잘 쓰이지 않게 된 것과 마찬가지다. 즉 분단 상황에서 내면화한 반공주의의 영향으로 인민 대신 민중이 쓰이게 된 것이다. 내가 보통 민중 대신 인민을 사용하는 첫 번째 이유는 특정한 정세가 내 언어생활을 제한하는 것에 동의할 수 없어서다
(북한 정권에 동의하지 않고 북한 인민이 스스로 나서 지배자들을 타도해야 한다고 생각하지만 말이다). 홍세화 선생도 아마 그래서가 아니었을까? 홍 선생의 인민이란 단어의 사용이 반가운 것은 우선 그 때문이었다.

그러나 내가 민중 대신 인민을 사용하는 바로 그 이유와 연관된 다른 문제 때문에 홍 선생이 인민을 사용한 데 마냥 반가워할 수만은 없다. 인민은 피지배 계급 일반을 의미한다. 마르크스주의자는 노동자 계급의 중요성을 강조하지만 그들이 오직 노동계급의 조건 개선 만을 목표로 하는 것은 아니다. 노동계급을 강조하는 것은 피지배 계급 일반의 조건, 즉 자본주의 사회에서의 지배와 피지배의 조건을 결정짓는 핵심 고리에 노동계급이 위치해서다. 따라서 마르크스를 따르는 사회주의자는 인민 일반의 해방을 목표로 하지만 그 해방에서 노동계급이 핵심적 역할임을 결코 잊지 않는다.

민중 담론은 그렇지 않다. 이는 한편 위에서 지적한 내면화한 반공주의의 연장선에서 비롯한 것이기는 하다. '노동자'라는 말을 '근로자'가 대체한 사정과 같다. 그렇지만 더 중요하게는 민중 담론이 노동계급의 핵심적 역할을 부정하는 태도를 보이기 때문이다. 노동자ㆍ농민ㆍ학생의 연대를 강조하는 민중 담론은 이들 세 사회적 집단을 수평적으로만 파악한다. 핵심은 노동계급으로부터의 후퇴다. 홍세화 선생이 사용한 인민이란 단어가 불길한 것은 그것이 노동계급으로부터의 후퇴를 떠올리게 만들기 때문이다. 머리말에서 안개에 싸여있던 인민의 의미는 뒤이은 지젝과 이진경의 글을 통해 보다 분명해진다. 지젝은 이렇게 말한다.

"오늘날의 역사적 상황은 프롤레타리아나 프롤레타리아적 입장이란 개념을 포기할 수 없게끔 할 뿐만 아니라, 그와는 정반대로 마르크스가 상상했던 것을 훌쩍 뛰어넘어서 그 개념을 실존적 차원으로까지 급진화할 것을 요구한다. 우리는 프롤레타리아적 주체에 대한 더 급진적인 개념을 필요로 한다. 이 주체는 모든 실체적 내용을 제거한 데카르트의 코기토처럼 무상의 지점으로까지 환원되는 주체다. 이런 이유에서 새로운 해방의 정치는 더이상 특수한 사회적 행위자의 행위가 아니라 각기 다양한 행위자들의 폭발적인 결합이 될 것이다."

마르크스와 같은 단어를 쓰고 있으나 그 뜻이 다르다는 것은 분명하다. 지젝은 그것을 "마르크스가 상상했던 것을 훌쩍 뛰어넘"는 것이라고 표현한다. 그가 데카르트의 코기토를 비유로 들은 데서 알 수 있듯이 그의 주장은 마르크스 이전으로 후퇴하는 주장일 뿐이다. 무정형의, 단지 지배받는 집단으로서의 프롤레타리아로 말이다. 마르크스가 한 작업은 이 프롤레타리아라는 로마 시절로부터 비롯한 개념을 자본주의 사회의 운동 원리에 입각한 개념으로 바꿔놓는 것이었다. 그것이 현대 사회의 노동자인 것이다. 노동계급은 여러 사회적 집단 중 억압받고 착취받는, 지배받는 유일한 사회적 집단이 아니다. 자본주의적 지배 사슬의 핵심적 고리에 위치해 있기 때문에 주목한 것이다. 결국 지젝의 주장은 계급으로부터의 후퇴를 요구하는 것이다.

이러한 시도는 이진경에 의해 다시 반복된다. 이진경은 지젝보다는 덜 철학적인 언어로 노동계급으로부터의 후퇴를 분명히 한다. 마르크스를 떠올리게 하는 'M'이란 이름으로 말이다.

"제가 혁명성을 말했던 것은 노동자계급이라기보다는 프롤레타리아트였다는 것을 일단 상기해주길 바랍니다. …… 역사적 조건에 따라 누가 무산자인가가 달라지는 거지요. 16세기에는 토지 잃고 부랑하던 농민들이 무산의 프롤레타리아트였다면, 19세기에는 끔찍한 조건에서 노동해야 했던 산업노동자들이 프롤레타리아트였던 것이고, 당신(이진경)이 생각하듯이 안정적으로 노동하는 것조차 힘들게 되어버린 지금은 비정규직이나 실업자들이 새로이 무산의 프롤레타리아트가 되는 거지요."

마르크스가 현대의 프롤레타리아트로 노동계급을 바라봤다는 것은 아마 틀림 없을 것이다. 그는 '공산당선언'에서 여러 번 "프롤레타리아트, 즉 현대의 노동계급(the proletariat, the modern working class)"이란 표현을 사용한다. 마르크스는 당대 자본주의의 발전, 아직은 세계의 극히 일부분에서 일어나던 변화를 추적해 노동계급이 현대의 프롤레타리아트라고 주장했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이진경의 주장 대로 노동계급이 현재의 프롤레타리아트가 아니게 만드는 역사적 조건의 변화가 있었느냐는 것이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이진경은 마르크스를 사칭할 능력은 있을지 몰라도 그러한 역사적 조건의 변화를 추적할 능력은 없는 듯하다. 그가 기껏 내세우는 것은 인상주의적 비평에 불과하다.


"지금은 정규직이란 단어와 함께 유사하게 사용되는 '노동자계급'……은 바로 옆에서 똑같은 노동을 하는 비정규직 노동자들과 자신을 분리하고자 하고 있습니다. 자신이 속한 정규직 노동조합에 가입할 수 없게 차단하고, 그들이 옆에서 투쟁할 때 연대는커녕 방해하지 않으면 다행인 경우가 통상적인 게 되었죠."

정규직 노동조합 이기주의에 관한 비난에 불과한 것으로 마르크스의 현대 자본주의에 대한 분석을 대체할 수는 없다. 설사 그것이 대중의 상식에 부합하는 듯 보여도 말이다. 불길하게도 홍세화 선생은 이진경에게 동의하는 것 같다. 다시 들춰본 머리말에서 홍 선생은 이렇게 말한다.

"인민도 이제 하나의 인민이 아니고, 노동자도 이미 하나의 노동자가 아니다."

녹색평론 발행인 김종철과의 대화에서는 이렇게까지 말한다.

"주식투자를 하고, 부동산가치가 상승하기를 바라고, 비정규직 노동자들은 노조 가입조차 안 되는 현실에 대해 문제의식을 갖지 않은 노동자가 마르크스가 말한 의미에서 프롤레타리아인가, 더구나 이들이 자본주의와 다른 사회를 실현할 수 있는 주체인가에 대해선 지극히 회의적일 수밖에 없습니다."

여기서 홍세화 선생은 이진경과 공명한다. 물론 우리는 홍 선생 외에도 여러 사람들로부터 이런 주장을 들어왔다. 그런데 이게 새로운 것인가? 현대 자본주의의 새로운 경향인가? 우리는 마르크스 시절부터 이미 인민이 하나의 인민이 아니었음을, 노동자가 하나의 노동자는 아니었음을 떠올려야 한다. 프롤레타리아는 프롤레타리아트가 아니다. 영국의 노동자와 그 식민지 아일랜드의 노동자는 달랐다. 마르크스는 '자본론'에서 노동계급 남성이 어떻게 자신의 아내와 자식들을 자신의 노예로 삼으려 하는지 설명하고 있다.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노동계급 내 분열에 대한 인상주의적 비평이 아니다. 그 분열의 물질적 조건을 살피고 단결의 단초를 창출하려는 노력이 필요하다. 정규직 노동자들이 비정규직을 '안전판'으로 고려하게 된 조건, 그리고 그것을 벗어날 계기에 대한 탐구가 있어야 한다. 그런데 홍세화 선생과 이진경은 분열만 얘기할 뿐 그 역사적 조건에 대한 탐구는 인상주의적 비평으로 어물쩍 넘어간다.

현대 자본주의는 우리가 상상하는 것 이상으로 모든 곳에서 노동계급을 대규모로 만들고 재생산하고 있다. 전통적으로 가족과 여성, 지역 공동체가 담당하던 많은 역할이 점점 더 자본주의적 경제의 영역으로 편입되고 있다
(과거가 좋았다는 뜻은 아니다). 자본주의적 위계제는 마르크스가 설명한 방식 그대로 사회에 더 많은 위계와 복잡한 지배관계를 재생산하고 있다. 이러한 현실에 대한 파악을 도외시한 채 현실을 지양하는 새로운 공산주의 운동이 가능할까. 최근 잇따라 창간된 여러 진보 잡지들(월간 좌파, 진보신당-노동당 기관지 '미래에서 온 편지', 말과활)이 현재 세계를 휩쓰는 반란의 물결에 침묵하는 것과 함께 2008년 이래 6년째 계속되고 있는 경제위기에 대한 분석을 피하는 것은 불길한 조짐이다.

p.s.'말과활' 창간호에 실린 이진경의 글쓰기 방식에 대해 한마디 해야겠다. 마르크스는 신성한 이름이 아니다. 그는 누구보다도 역사적 한계를 강조했던 사람이다. 즉 역사적 조건이 달라지면 그의 주장은 틀린 게 될 수 있다. 마르크스를 따르고자 하는 사람은 그를 반복하는 게 아니라 그의 주장에서 변형되어야 할 부분과 이어받아야 할 부분을 구분할 필요가 있다. 그런점에서 이진경이 마르크스를 현대적으로 재해석하려는 시도 자체를 뭐라 하고 싶진 않다. 그러나 마르크스의 후예를 자처하고자 한다면 무엇보다 마르크스의 이름이 아닌 자신의 이름으로 마르크스를 수정해야 할 것이다. 마르크스의 이름 뒤에 숨는 것은 비겁한 짓이다.

1990년대 초 현실 사회주의 국가의 붕괴는 좌파에게 큰 상처를 남겼습니다. 특히 대안 사회의 미래를 그리려는 시도를 꺼리게끔 했죠. 공산주의 혹은 사회주의는 마르크스의 말을 빌려 현실의 모순을 지양하는 운동쯤으로만 취급됐습니다.

이런 상황은 2000년대 들어와 조금씩 바뀌기 시작합니다. 자본주의 경제는 단속적으로 파탄의 위기를 맞았습니다. 이에 저항하는 목소리는 높아져갔죠. 특히 세계사회포럼의 성장과 베네수엘라에서의 격변은 좌파들에게 큰 영감을 줬습니다. 새롭게 성장한 젊은 세대는 현실 사회주의를 경험하지 않았고 그 만큼 사회주의에 대한 레드콤플렉스도 적었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좌파가 정치적 대안으로 성장하기 위해 보다 분명한 미래사회에 대한 청사진을 제기할 필요성이 제기됐습니다.

지역사회 차원에서의 대안 검토가 확산되고 있었죠. 지금은 진보정당의 기본 정책이 된 '참여예산제' 같은 경우 브라질 노동당의 경험이 큰 자산이 됐습니다. 생태적으로도 지속 가능한 도시에 대한 대안으로 브라질의 '꾸리찌바'가 관심을 끌기도 했죠. 녹색평론사에서 나온 박용남의 '꿈의 도시 꾸리찌바: 재미와 장난이 만든 생태도시 이야기(박용남 지음, 녹색평론사)'는 이 분야의 필독서가 됐습니다.

국가적, 세계적 차원에서의 대안도 제안되기 시작했습니다. 마이클 앨버트의 '파레콘(Parecom): 자본주의 이후, 인류의 삶(마이클 앨버트 지음, 김익희 옮김, 북로드)'이 여기에 대한 관심에 기름을 부었습니다. 파레콘은 참여와 경제의 합성어, 참여경제(Participatory Economics)를 말합니다. 앨버트의 책이 당시 좌파에 충격을 던져준 것은 그것이 '시장'과 생산수단의 '사적소유'를 부정하고 있기 때문이죠. 물론 마르크스를 따르는 고전적 좌파 안에서는 다수가 동의하는 내용일 겁니다. 소비에트 러시아의 실패 이후 상황이 바뀌었습니다. 시장을 전면적으로 부정하고, 사적소유의 폐지를 앞세우는 것은 좌파를 자임하는 사람들에게도 부담스러운 일이 됐지요. 이런 상황에서 마르크스주의 전통에 비판적 입장임을 숨기지 않는 마이클 앨버트가 시장과 사적소유의 폐지를 포함한 미래사회 청사진을 제기한 것입니다.

마이클 앨버트에 의하면 자본주의 이후 건설될 파레콘은 생산수단의 사적소유를 제거하고 노동자평의회와 소비자평의회가 할당과 생산, 분배 등 경제생활의 핵심 기구로 활용할 것입니다(할당이란 사회의 가용 자원을 어떤 부분에 얼마만큼 사용할 것인가, 즉 자본주의 사회에서 자본의 각 부문별 투하비율을 결정하는 문제를 말합니다). 각각의 평의회는 그 내부에서, 또는 다른 평의회와 위계적이지 않은 합의 과정을 거쳐 경제의 문제를 결정합니다.

"평의회는 노동자와 소비자가 자신의 정책결정권을 행사하는 수단이며, 매우 다양한 수준에 걸쳐 조직된다. … 결정될 정책의 상이성에 따라 투표와 의결 방식 또한 달라진다. 고정불변의 방식이란 존재하지 않는다. 그 정책 때문에 파생될 영향의 정도에 비례해서 구성원들이 그 결정과정에 영향력을 행사한다는 규범이 지켜지기만 하면 된다." ('파레콘' 25쪽)

알렉스 캘리니코스는 앨버트의 '파레콘'을 반깁니다. 하지만 거기에 썩 만족할 수만은 없었죠. 왜냐면 마이클 앨버트는 중앙집권적인 계획과 조정에 일반적으로 반대했기 때문입니다. 앞서 제기된 질문은 이미 세계적으로 연결되고 융합된 경제를 평의회 각각의 파편화된 자율적 결정과 합의에 의해 조정할 수 있느냐는 것입니다. 캘리니코스는 "자본주의에서 지속가능한 경제로 이행하는 데 필요할 엄청난 재건작업과 방향 전환" 같은 것을 고려할 때 파레콘에서 제안한 "[각 평의회들 간 합의의] 반복을 통해 전반적 우선순위를 결정하는 과정"만으로는 부족하고 "집단적으로 결정하는 민주적 과정"이 필요하다고 주장합니다('자본주의의 대안과 사회주의 가치 논쟁' 25쪽). 마이클 앨버트는 '비례적 결정권을 통한 합의'라고 부르는 것을 제안하면서도 그것이 좌파 내에서 "끝없는 논쟁을 야기"하는 문제점을 지니고 있었음을 인정하긴 합니다('파레콘' 161~171쪽). 이 문제는 꼭 앨버트의 '파레콘'에서만 문제가 되는 것은 아니죠. 뒤에서 더 언급하게 될 것입니다.

한국에서 자본주의 이후 새로운 사회에 대한 관심은 김수행 교수에게도 이어졌습니다. 김 교수는 자신의 제자들과 함께 만든 정년퇴임 기념 논문집의 주제를 새로운 사회로 잡아 발표했죠. 그 결과물이 서울대학교출판부에서 발표한 '자본주의 이후의 새로운 사회(김수행ㆍ신정완 외 지음, 서울대학교출판부)'입니다.

2007년 '자본주의 이후의 새로운 사회'가 나온 후 자본주의는 1929년 대공황에 비견되는 위기를 겪습니다. 위기가 극복됐다는 주장도 있지만 미래는 여전히 불투명합니다. 남유럽에서의 위기로 EU 지도자들 사이에서 갈등의 불똥이 튀기도 합니다. 하지만 이 모든 갈등과 위기에도 한결 같은 것은 이 체제를 이끄는 사람들의 모습입니다. 그들은 정부의 방만한 재정운용(복지 정책 등)이 문제라며 긴축정책을, 즉 노동자계급과 서민의 희생을 강요합니다. 애시당초 재정위기가 위기에 빠진 금융기업들을 구해주기 위한 행동들에서 비롯했다는 것은 깔끔하게 잊혀졌죠. 금융기업들의 잘못에 책임을 묻는 목소리는 사라지고 이 모든 게 게으른 남유럽 노동자들 때문이라는 목소리만 높습니다. EUㆍECB(유럽중앙은행)ㆍIMF 트로이카는 심지어 그리스의 노동자들이 주 6일 일해야 한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그리스의 노동시간은 연간 2109시간으로 유럽에서 가장 긴데도 말입니다(링크).

"더 이상 버틸 수 없다"는 목소리가 높아져가는 상황에서 김수행 교수가 쉬운 글로 '마르크스가 예측한 미래사회: 자유로운 개인들의 연합'을 내놓았습니다. 김수행 교수는 이렇게 묻습니다.

""자본주의만이 인류의 등불"이라던 자본주의 옹호자들도 2007년 이래 세계 전체에서 벌어지고 있는 실업자의 대홍수, 빈민들의 울부짖음, 모든 노동자의 프레카리아트(precariat: 불안정한 노동자계급 precarious proletariat)로의 전환, 민주주의의 후퇴, 제국주의적 침략의 확산, 성과 인종의 차별, 자연의 파괴 등에 직면하면서, 자본주의만이 살 길이라고 주장할 수 있을까요?" (4~5쪽)

김수행 교수는 이 책에서 자본주의가 아닌 다른 길도 있음을 보여주려고 합니다. 그것은 무엇보다도 '길'입니다. 이미 완성된, 우리의 도착만 기다리는 유토피아는 아니라는 얘기지요. 그래서 그가 강조하는 것은 '이행기'입니다. 이행기에 우리는 사회제도 뿐 아니라 개인들의 습관ㆍ의식 모두 바꿔야 합니다.

"'수탈자를 수탈하는' 정치혁명의 개시로부터 '자유로운 개인들의 연합(자개연)이 형성되기까지가 자본주의 사회로부터 새로운 사회로 가는 '진정한' 이행기입니다. 이행기에는 무엇보다 먼저 자본주의적 생산에서 '사회적 점유'의 형태로 숨어 있는 '사회적 소유'와 '개인적 소유'를 현실화하는 것입니다. 다시 말해 노동자들로부터 분리ㆍ자립하여 그들을 착취하고 지배하는 생산수단을 자본가들의 손에서 빼앗아서, 노동자들이 생산수단을 자기의 것으로 상대하면서 공동으로 사용하게 하는 것입니다. 이렇게 되면 노동하는 개인들이 자기의 노동력을 팔아야만 살 수 있는 '임금노예'의 상태를 벗어나게 될 것입니다. 그리고 이행기에는 자본주의적 이데올로기에 사로잡혀 있는 노동자들에게 광범한 교육과 훈련을 통해, 사회의 생산수단 전체와 개인의 노동력 전체를 사회의 차원에서 계획적으로 이용하는 것의 우월성을 인식시키고, 개인의 자유로운 발달이 만인의 자유로운 발달의 기초가 된다는 것과 개인이 타인과 자연에 대해 '인류'의 입장에서 관계를 맺는 것이 모든 차별과 자연 파괴를 막는 길이라는 것을 가르쳐야 할 것입니다." (97~98쪽)

김수행 교수는 자본주의 이후 사회로의 이행을 위한 준비가 이미 자본주의 사회에서 이뤄지고 있다고 강조합니다. 예를 들자면 주식회사와 협동조합이 그러한 가능성 중 하나입니다. 주식회사는 자본주의적 사적소유가 사회적 소유로 전환될 가능성을 보여줍니다. 마르크스가 주식회사에서 "자본은, 이제 사적 자본과 구별되는 사회적 자본(직접적으로 연합한 개인들의 자본)의 형태를 직접적으로 취하며, 이런 자본의 기업은 사적 기업과는 구별되는 사회적 기업의 형태를 취한다(80쪽; '자본론' 3권 상 541쪽)"고 말한 것을 상기시킵니다.

이렇듯 자본주의 안에 숨어있는 자본주의 이후의 사회로 가는 길의 이정표를 마르크스에 기대 찾을 수 있다는 게 김수행 교수의 주장입니다. 마르크스가 정리된 형태로 미래사회의 모습을 그려낸적은 없지만 그의 여러 저술 속에서 우리가 참고할 만한 중요한 자료들이 있다는 것입니다. 예를 들자면 김수행 교수가 미래사회의 명칭으로 제시한 '자유로운 개인들의 연합'의 모습이 '공산당 선언'에서 묘사되고 있습니다.

"계급들과 계급대립을 가진 낡은 부르주아 사회 대신에 각인의 자유로운 발달이 만인의 자유로운 발달의 조건이 되는 연합이 나타나게 된다." (115쪽; '공산당 선언' 저작선집 1권 421쪽)

김수행 교수가 먼지 쌓인 마르크스의 책속에서만 미래사회의 가능성을 찾는 것은 아닙니다. 2007년 이후 세계경제위기라는 현실로부터 이야기를 시작했듯이 그는 소련과 베네수엘라라는 과거와 현재의 사례들로부터도 교훈을 이끌어내기 위해 노력합니다.

소련은 마르크스주의자들에게 뜨거운 감자입니다. 현실 사회주의로 인정하자는 주장에서부터, 관료적으로 타락한 노동자 국가, 국가자본주의, 새로운 계급사회 등 소련에 대한 다양한 규정이 좌파의 조직적ㆍ정치적 실천을 갈갈이 찢어놓았었습니다. 하지만 김수행 교수는 소련이 마르크스와 사회주의자들이 꿈꿨던 자본주의 이후의 새로운 사회가 아니라고 부정합니다. 착취와 억압을 제거한다는 목표는 국가의 착취로 대체됐고, 사회적 소유라는 전망은 '국가소유' 아래 국가 관료의 전횡으로 실현됐다는 것입니다
(148쪽). 무엇보다 소련은 자유로운 연합에 기초한 개인들의 전면적 발달이라는 사회주의와 공산주의의 오랜 이상과 배치됩니다.

소련의 이탈은 어디서부터 비롯한 것일까요. 스탈린은 '생산의 무정부성'을 자본주의의 가장 큰 폐해로 지적하고 이 무정부성을 극복하기 위한 '국가소유'와 '계획'을 사회주의(또는 공산주의)의 가장 큰 특징으로 앞세웠습니다. 하지만 이는 마르크스주의의 핵심이 아닙니다.

"사회적 소유는, 자본주의 사회에서 노동자들이 공동으로 점유하여 사용하던 생산수단들이 정치혁명을 통해 자기들의 것으로 전환되었다는 것을 가리킵니다. 이 경우 '사회'는 개인들을 초월하여 자립적으로 존재하는 정치적ㆍ경제적ㆍ이데올로기적 존재가 아니라, 자각한 개인들의 연합을 가리키거나 연합한 개인들 그 자체입니다. 따라서 소련의 생산양식에서 자본주의적 사적 소유가 폐기되어, 이런 연합한 개인들의 사회적 소유가 만들어졌다고는 도저히 말할 수 없을 뿐 아니라, 국가소유는 실질적으로 노멘클라투라의 소유이었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158~159쪽)

우리가 만들어야 할 미래사회를 고려할 때 '사회적 소유'라는 것은 여전히 모호하게 느껴집니다. 앨버트가 평의회의 수평적 자율관리 커뮤니케이션을 주장하고, 캘리니코스가 이를 보충하며 민주적 계획을 강조한 것은 이 모호함을 보충하기 위해서입니다('자본주의의 대안과 사회주의 가치 논쟁' 41~43쪽). 국가 혹은 이를 대체한 어떤 사회적 제도가 구성원 모두의 의사를 충분히 민주적으로 반영할 수 있다면 국가 혹은 대체 제도의 소유가 곧 사회적 소유라고 할 수도 있지 않을까 하는 게 제 생각입니다. 이런 생각이 현실성을 갖기 위해선 무엇보다 민주적 통제와 조정 과정 수립, 앨버트와 캘리니코스가 강조한 것 이상이 필요할 것입니다.

소련의 현실이 우리가 추구해야 할 미래가 아니라면 어떤 사례를 또 찾을 수 있을까요. 최근 마르크스주의자들은 베네수엘라를 매우 주의 깊게 살펴보고 있습니다. 김수행 교수도 마찬가지입니다.

사실 베네수엘라 혁명을 이끌고 있는 차베스는 마르크스주의자가 아닙니다. 마르크스주자들이 가장 중요시 여기는 조직된 노동운동도 베네수엘라에서는 기득권층의 입장에 섰었죠. 차베스의 주요 지지자들은 광범위한 빈민들입니다. 차베스가 대자본가들의 쿠데타로 대통령궁에 갇혔을 때 그를 구해낸 것은 빈민들의 힘이죠. 베네수엘라의 혁명적 변화를 위한 조치들도 아래로부터 대중의 자발적인 행동으로 발전한 것이 아니라 차베스에 의해 위로부터 조직된 전형적인 '위로부터의 혁명'이었습니다. 제게 차베스는 매우 껄끄러운 존재였죠.

하지만 차베스가 우파 언론들의 데마고기와 자본가들의 방해에도 불구하고 인민의 참여에 기초한 대안 권력을 만들어나가기 위해 노력하고 있는 것은 분명합니다. 더군다나 그의 정책이 남미에 뿌리 깊은 포퓰리즘 정치처럼 시혜에 기초한 것이 아니라 인민 스스로를 지배계급으로 조직화할 수 있도록 하는데 집중하고 있다는 것은 매우 반가운 일입니다.

"차베스는 2001년 12월에는 전국적으로 볼리바르 서클을 조직해 빈민들을 정치에 참여하게 만들었습니다. 서클의 회원들은 빈민촌인 바리오에서 활동하면서 바리오의 상하수도ㆍ주택ㆍ의료ㆍ전기ㆍ노인복지ㆍ환경ㆍ취업ㆍ교육ㆍ범죄ㆍ질서유지ㆍ운동장ㆍ문화시설 등의 문제를 지역 주민들과 토론하여 각종 프로젝트를 만들고, 그 프로젝트를 실행할 자금을 정부의 '플랜 볼리바르 2000'으로부터 받아 주면서 지역주민들이 스스로 그 프로젝트를 완성하게 도와준 것입니다. 그러나 볼리바르 서클은 법적 근거가 없었기 때문에 2006년 4월에는 법적 근거를 가진 주민자치회가 새로 설치되어 빈민촌의 공동사업을 볼리바르 서클로부터 물려받았습니다." (179쪽)

차베스는 이러한 인민권력의 강화와 성장을 도모하기 위해 다섯 개의 인민권력법을 만들어 "주민자치회ㆍ정부연방주민자치회ㆍ코뮌ㆍ노동자치회ㆍ주의회ㆍ지방의회 등이 전국의 공공계획과 예산ㆍ결산을 토론하고 결정하며 감찰하는 과정에 참여"하게 만듭니다(192쪽). 이행기에 필요하다고 강조된 광범위한 교육과 훈련이 외부에서 주입되는 것이 아니라 인민 스스로의 자기계몽 과정이라는 특징이 여기에서 드러납니다.

물론 베네수엘라는 아직 매우 불안정한 이행기를 거치고 있습니다. 이 혁명이 진정한 혁명으로 거듭나 '자유로운 개인들의 연합'으로 이어질지는 아직 불확실합니다. 거대 기업의 자본가들과 언론, 미국의 방해와 견제가 여전히 심하기 때문입니다. 어쩔수 없는 측면도 있겠지만 차베스의 정책이 타협의 길로 이어진 경우도 있습니다. 그럼에도 자본주의를 넘어서기 위한 가장 최근의, 그리고 지금도 지속되고 있는 현장으로서 베네수엘라는 충분히 관심을 쏟을 가치가 있습니다.

이 책 '마르크스가 예측한 미래사회'는 '파레콘'에 비해 정밀하진 못합니다. 국가소유가 곧 사회적 소유는 아니라고 주장하지만 개인적 소유의 회복으로서 사적소유의 철폐와 사회적 소유의 실현이 어떻게 가능할 지는 막연합니다. '계급투쟁'이란 것도 '99%' '서민' 등의 단어를 사용해 그 정체를 불분명하게 만들기도 합니다. 차베스를 지지하는 베네수엘라 인구의 60~80%에 달하는 '빈민'의 계급적 분석이 없다는 것도 아쉽습니다.

하지만 김수행 교수의 '마르크스가 예측한 미래사회'는 자본주의가 이후의 새로운 사회를 꿈꾸는 이들이 꼭 참고해야만 할 것입니다. 우리가 바라는 미래가 도달할 수 없는 유토피아 만을 뜻하는 게 아니라는 점, 우리가 딛고 있는 현실에 그 가능성이 있다는 점을 강조하고 있다는 것에 이 책의 장점이 있습니다. 왜냐면 인간의 행동은 비참한 현실로부터 비롯하기보다 미래의 희망으로부터 더 큰 힘을 얻기 때문입니다.

"국제적 금융자본은 자기의 위험한 투기로 입게 될 손실을 국제적 국가기구를 통해 세계의 서민들에게 전가시키는 방식으로 자본을 축적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것은 미국의 금융공황에서 금융자본이 2007~2011년에 미국 정부와 중앙은행으로부터 약 20조 달러의 구제금융을 받아 자기의 손실을 납세자의 혈세로 메운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지금 그리스 이외에도 포르투갈ㆍ스페인ㆍ아일랜드ㆍ이탈리아ㆍ프랑스ㆍ영국ㆍ미국 등 거의 모든 나라가 국가채무 문제로 허덕이고 있는데, 그리스 형식의 금융자본 독재가 지속할 수 있겠습니까? 금융자본을 세계적 차원에서 인류의 소유로 전환하는 정치혁명이 필요할 것이고, 자본이 자본가계급의 이윤 욕심에 봉사하기보다는 인류의 필요와 욕구의 충족에 기여하도록, 개인들이 연합하고 단결하여 자본주의 세계체제를 무너뜨리고 새로운 사회인 '자유로운 개인들의 연합(자개연)'을 건설해야 할 것입니다." (203쪽)

"화폐소유자는 자본가로서 앞장서 걸어가고, 노동력의 소유자는 그의 노동자로서 그 뒤를 따라간다. 전자는 거만하게 미소를 띠고 사업에 착수할 열의에 차 바삐 걸어가고, 후자는 자기 자신의 가죽을 시장에서 팔아버렸으므로 이제는 무두질만을 기다리는 사람처럼 겁에 질려 주춤주춤 걸어가고 있다."(자본론 1권, 김수행 옮김, 231쪽)

사람의 가죽으로 만든 옛 물건이 발견됐다는 소식이 신문에 가끔 실리곤 합니다(링크). 기사의 출처와 물건의 진위가 의심스럽긴 하죠. 의료기술의 발달로 신체의 일부(간ㆍ신장ㆍ혈액ㆍ안구 등)를 타인에게 기증하는 게 가능해졌습니다. 우리의 윤리의식과 법에서는 허용되지 않지만 '거래'도 일부 이뤄지고 있습니다. 하지만 이는 어디까지나 예외적인 경우입니다. 그런데 왜 마르크스는 18세기 이전의 잔혹한 풍습을 연상시키는 비유("가죽을 시장에서 팔아버렸으므로 이제는 무두질만을 기다리는 사람")를 사용한 것일까요?

자본주의 사회의 노동자는 노예와 다릅니다. 노예는 그의 모든 것이 주인에게 속합니다. 노동자는 자신의 신체와 정신 능력 일부를 자본가에게 판매할 뿐입니다. 따라서 시장에서 만난 노동력 판매자(노동자)와 노동력 구매자(자본가)는 법적으로 평등한 관계죠. 물론 현실에서는 근로계약서조차 제대로 안 만드는 경우가 많고, 만들어진 근로계약을 안 지키는 경우는 부지기수이긴 합니다.

"노동력의 소유자와 화폐소유자는 시장에서 만나 서로 대등한 상품 소유자로 관계를 맺는데, 그들의 차이점은 한 쪽은 판매자이고 다른 쪽은 구매자라는 점 뿐이고, 양쪽 모두 법률상으로는 평등한 사람들이다."(같은 책 219쪽)

그럼에도 마르크스는 사업에 대한 기대에 가득차 거만하게 앞서 걸어가는 자본가의 모습과 주춤대며 마지못해 끌려가는 노동자의 모습을 그립니다. 물론 이 자체는 먹고살기 위해 매일 아침 출근해야만 하는 노동자들이라면 누구나 쉽게 이해할 수 있습니다.

어쨌든 법률적으로 공평하게 계약한 관계에서 구매한 노동력 상품의 소비는 다른 모든 상품의 구매자와 마찬가지로 자본가의 정당한 권리입니다. 노동력의 소비는 곧 자본이 지휘하는 노동과정입니다.

"노동자가 노동하는 시간은 자본가가 자신이 구매한 노동력을 소비하는 시간이다. 만약 노동자가 자본가의 처분에 맡긴 시간을 자기 자신을 위해 사용한다면 그는 자본가의 물건을 훔치는 것이 된다."(같은 책 307쪽)

따라서 노동을 지휘하는 자본은 더 많은 일을 시키고자 하는 (그래서 더 많은 잉여노동을 짜내고자 하는) 강제적 힘으로 발전합니다. 효율적 업무를 위한 합리적 동선ㆍ과정을 만들어내는 것, 수당이 지급되지 않는 연장노동은 기본입니다. 자본가들은 조금이라도 더 많은 잉여노동을 뽑아내기 위해 출근 시간 전과 후에 조회ㆍ회의ㆍ교육을 강제합니다. 주말에도 다종 다양한 회사 행사에 동원하기 일쑤죠.

문제는 노동자가 판매한 노동력 상품이 노동자 그 자신과 분리될 수 없다는 데 있습니다. 결국 자본가는 노동력 상품을 소비하는 과정에서 노동자에 대한 강제를 자신의 정당한 권리로 주장합니다. 법률적으로 공평한 근로계약을 맺고 그 계약이 잘 지켜진다고 해도 사정이 그리 달라지지 않는 이유입니다. '임금 노예'라는 비유가 적절해 보이는 것도 이 때문이죠.

"자본은 노동[즉, 활동중에 있는 노동력 또는 노동자 그 자체]을 지휘하는 데까지 발전했다. …… 더 나아가, 자본은 [노동자계급으로 하여금 노동자 자신의 좁은 범위의 욕망이 요구하는 것보다 더 많은 노동을 수행하게끔 하는] 강제적 관계로까지 발전했다. 그리고 [타인으로 하여금 일을 하도록 만들고, 잉여노동을 짜내며, 노동력을 착취하는] 자본은 그 정력과 탐욕과 능률 면에서 [직접적인 강제노동에 입각한] 종전의 모든 생산제도를 능가한다."(같은 책 416~417쪽)

결국 노동자는 장화를 만들기 위해 무두질 당하는 가죽처럼 생산과정에서 자본가의 처분만을 기다립니다. 그것은 그가 판매한 상품이 동물의 가죽처럼 자신의 인격으로부터 분리될 수 없기 때문입니다. 서구사회에서 인권의 발명은 더이상 사람 가죽으로 만든 책과 같은 잔혹한 물건과 풍습을 용납하지 못하게 만들었습니다. 노예 노동이 사라진 것과 마찬가지죠. 하지만 노동력은 노동자 자신과 떨어질 수 없기에 공개적인 노예제는 은폐된 노예제로 변신하고, 사람의 가죽은 사람과 함께 무두질 당하게 됩니다.

Posted by 때때로

오늘(5월 5일)은 마르크스가 태어난 날입니다. 어쩌다보니 오늘 한 독서모임에서 류동민 교수가 쓴 '마르크스가 내게 아프냐고 물었다'를 읽고 얘기를 나눴습니다. 기왕 얘기가 나온 김에 마르크스에 대한 간단한 소개가 있으면 좋을 것 같아 제가 아는 한에서 간단하게 끄적거려 봅니다.


1882년 병으로 머리카락과 수염을 자르기 전 마지막으로 찍은 사진. 알제리에서 머리카락을 모두 자른 마르크스는 1882년 4월 28일 엥겔스에게 보내는 편지에서 이렇게 썼다. "내 예언자의 턱수염과 왕관처럼 머리를 덮었던 영광을 없애버렸네."


마르크스는 1818년 5월 5일 독일의 트리어 지방에서 태어납니다. 마르크스는 개종한 유대인의 아들로 태어났습니다. 하지만 그는 자신이 유대인임을 밝힌 바는 없습니다. 이사야 벌린의 '칼 마르크스: 그의 생애와 시대'에 따르면 자신의 유대인 혈통에 저주에 가까운 감정을 지니고 있었다고는 합니다.

당시 독일은 영방국가들로 이뤄져, 아직 프랑스나 영국과 같은 전국적인 통일된 정치체제가 만들어지지 않았었죠. 영방국가 체제에서 산업의 발전은 여전히 제약받고 있었습니다. 그렇다고 해서 독일이 프랑스와 영국에서와 같은 발전을 빗겨갈 수는 없었습니다. 더디지만 산업은 성장하고 있었고 프랑스의 영향을 받은 자유주의적 부르주아지 또한 늘어나고 있었습니다. 특히 헤겔의 영향을 받은 이들 중 일부는 교회와 권위주의적 국가에 강력히 반발하고 있었습니다. 이들은 헤겔 좌파, 흔히 '청년헤겔파'라고 부르죠. 헤겔과 동시대의 지성 다수가 그러했 듯이 헤겔도 젊은 시절 프랑스 혁명에 강하게 열광했죠. 노년의 헤겔이 프로이센과 구체제를 옹호하는 철학자로 몰렸던 것과 달리 그의 철학은 혁명적으로 이해될 수 있는 많은 부분을 담고 있었습니다. 청년헤겔파는 헤겔을 급진적으로 해석하며 좌파로서 교회와 구체제를 비판했죠.

고향을 떠나 본에서 법학을 전공하게 된 마르크스는 곧 자신의 전공을 철학으로 바꾸고 베를린으로 학교를 옮깁니다. 마르크스 또한 청년헤겔파와 교류합니다. 이미 대학에서 급진주의가 힘을 잃어가던 시기, 마르크스는 학교에 자리 잡지 못하고 '라인신문'의 편집장으로 첫 정치 생활을 시작합니다. 라인신문은 자유주의적 좌파로서 명성을 떨치게 됩니다. 국가의 검열을 피한 마르크스의 신랄한 비판 덕이죠. 이 시기 마르크스는 처음으로 인간의 물질적 생활에 관심을 갖게 됩니다. 평생의 친구인 엥겔스를 만난 것도 라인신문 시절입니다. 마르크스는 이 시기 아직 공산주의자는 아니었습니다. 그는 공산주의자들에 대해 비판적이었죠. 그가 공산주의자로 변하는 것은 탄압 때문에 라인신문이 폐간되고 파리로 간 이후입니다.

파리에서 그는 당대의 여러 혁명가들과 교류합니다. 아마도 가장 중요한 것은 엥겔스겠죠. 파리에서 다양한 공산주의ㆍ사회주의 흐름을 검토한 그는 이 시기 헤겔과 자신의 관계를 정리하고 우리가 흔히 말하는 공산주의자가 됩니다. 물론 그는 이후에도 자신이 헤겔의 제자임을 결코 숨기지 않았고, 그의 여러 저작들에는 헤겔적 방법이 중요하게 사용됩니다. 파리에서도 결코 혁명 활동을 중단하지 않고 '독불연보'를 통해 독일 상황에 영향을 미치고자 노력합니다. 이 독불연보에 '헤겔 법철학 비판 서문'이 실리죠. 마르크스는 파리에서도 추방돼 브뤼셀로 자리를 옮깁니다.

브뤼셀에서 마르크스는 독일 노동자 조직인 '공산주의자 동맹'의 의뢰로 '공산당 선언'을 씁니다. 이 선언은 1848년 2월에 처음 출간됩니다. 선언 출간 후 곧 1848년 혁명의 서막이 프랑스에서 열립니다. 브뤼셀에서도 쫓겨난 마르크스는 다시 파리로 갑니다. 프랑스 혁명의 불꽃이 독일로 옮겨붙자 마르크스는 다시 쾰른으로 돌아가 '신라인신문'을 창간합니다. 당시 독일 공산주의자들이 부르주아지와의 동맹을 거부했던 것과 달리 마르크스는 이번 혁명에서 부르주아지와의 동맹이 불가피하다고 강조합니다. 물론 이후에는 부르주아지와 노동자의 동맹을 주장하지 않죠. 하지만 당시의 정치적 태도는 정치에 대한 그의 기본적 입장을 보여줍니다. 때론 불가피한 동맹을 통해서라도 정치적 개입을 유지하지 않는다면 노동자 계급은 정치적으로 타 계급에게 종속될 수 밖에 없다는 것이죠. 마르크스가 공산당 선언에서 신랄한 어조로 공상적 사회주의자들을 비판하지만 공산주의자들이 노동자 계급의 정당과 별개의 정당을 만들지 않아야 한다고 강조한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그는 이후 제1인터내셔널에서도 그러한 동맹과 협력을 결코 피하지 않습니다. 상황이 바뀌었을 때 과감히 관계를 청산하는 것 또한 그의 정치개입이 가지는 특징입니다.

독일에서의 혁명은 지지부진하게 진행되다 결국 패배로 끝납니다. 마르크스의 신라인신문 또한 폐간되죠. 신라인신문 마지막 호는 붉은색 잉크로 인쇄됐다고 합니다. 혁명의 물결이 지나간 후 그는 다시 여러 국가들에서 쫓겨나 당시 가장 자유주의적인 국가인 영국으로 건너갑니다. 이후 그는 죽을 때까지 런던에 머물죠.

런던에서의 첫 10년은 그의 가장 고통스러운 시절이었습니다. 가난과 질병은 그의 아이들 목숨을 앗아갔죠. 상황 때문에 정치 활동을 계속할 수 없었던 그는 대영 박물관에서 그의 필생의 역작인 '자본론' 저술 작업을 시작합니다. 그러나 자본론은 20여년이 지난 1867년에야 발간됩니다. 마르크스는 생계를 위해 뉴욕 트리뷴에 정기적으로 기고하기도 했습니다. 자신이 잘 모르거나 관심 없는 주제에 관한 의뢰는 엥겔스에게 맡기기도 했죠. 물론 기사는 '마르크스' 이름으로 나갔고, 고료도 마르크스에게 돌아갔죠. 마르크스를 따라 영국에 자리잡은 엥겔스는 멘체스터에 방직공장을 운영합니다. 당시엔 아직 수입이 많지 않아 그도 마르크스의 빈곤한 상황의 개선에 큰 도움이 되진 못했습니다. 그저 기꺼이 마르크스를 대신해 뉴욕 트리뷴 기사를 써주긴 했습니다.

1857년의 공황에도 마르크스와 엥겔스가 기대했던 혁명은 일어나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유럽에서의 자본주의 발전은 그들에게 새로운 기회를 제공합니다. 1864년 런던에서 제1인터내셔널(국제노동자협회)이 출범합니다. 제1인터내셔널은 제2인터내셔널이나 제3인터내셔널처럼 단일한 정치를 지닌 정치집단은 아니었습니다. 프랑스와 남부 유럽의 아나키즘적 경향, 영국의 노동조합주의, 독일의 라쌀레주의가 혼재한 상황이었죠. 그러함에도 마르크스는 대단한 카리스마와 술수로 제1인터내셔널을 최대한 자신의 의도와 전략대로 운영합니다. 바쿠닌과의 갈등은 심각한 상황을 불러올 수도 있었지만 대체적으로 1870년까지는 잠재적이었습니다.

보불전쟁(프로이센-프랑스 전쟁)의 발발은 인터내셔널에게 결정적 상황을 맞게 합니다. 프로이센의 점령 하에서 우유부단한 부르주아지의 대응(나폴레옹 황제는 이미 프로이센 황제의 포로가 된 상황)에 분노한 파리의 상퀼로트는 봉기합니다. 1871년 파리코뮌이 바로 그것입니다. 파리코뮌의 성립 전까지 마르크스는 준비되지 않은 봉기를 반대하며, 공산주의자들은 대중을 최대한 자제시켜야 한다는 입장이었습니다. 그러나 파리코뮌이 만들어지고 잔인하게 탄압받자 그는 가장 앞에서 파리코뮌을 방어합니다. 당대사의 모범으로 받아들여지는 '프랑스 내전'은 바로 이 과정에서 쓰여집니다. 이 책은 1848년 혁명을 다룬 '프랑스에서의 계급투쟁' '루이 보나파르트의 브뤼메르 18일'과 함께 '프랑스 혁명사 3부작'으로 불립니다. 마르크스주의의 핵심으로 불리는 '프롤레타리아 독재'는 파리코뮌으로부터 그 구체적 상을 얻습니다. 노동자 계급의 평균적 임금을 받는 언제나 소환 가능한 대표, 입법과 행정의 통일 등은 이후 프롤레타리아 독재의 핵심으로 자리잡습니다.

파리코뮌의 진압 후 인터내셔널은 그 배후로 지목됩니다. 물론 사실과는 다르죠. 파리코뮌에는 공산주의자들 뿐 아니라 자코뱅주의자, 프루동주의자, 블랑키주의자들 그야말로 다양한 경향들이 뒤섞여 있었습니다. 어쨌든 파리코뮌 이후 이러저러한 상황으로 마르크스는 인터내셔널의 해산해야 겠다고 마음 먹습니다. 바쿠닌과의 갈등도 더 이상 참을 수 있는 상황은 아니었습니다. 마르크스는 인터내셔널 총평의회를 미국으로 옮김으로써 자신의 계획을 실현합니다. 공식적 해산은 더 이후지만 1872년 미국으로의 이전으로 실질적인 해산이 됐다고 봐야죠.

인터내셔널 해산으로 마르크스의 공식적인 정치활동은 마무리됩니다. 물론 이후 독일사회민주당이 성장하면서 그의 추종자들에 대한 충고와 의견교환은 계속됩니다. 1875년 라쌀레의 추종자들과의 통합을 통해 만들어진 독일사민당을 마르크스주의 정당으로 볼 수는 없습니다. 고타에서 만들어진 강령은 마르크스와 엥겔스의 강력한 비판을 받죠. 그 서한은 '고타 강령 비판'이라고 불리며 마르크스의 공산주의에 대한 유명한 정식, '각자의 능력에 따라 일하고 필요에 따라 분배받는다'가 나옵니다.

말년의 마르크스는 런던 망명 초기보다 생활이 한결 나아졌지만 그 시절의 가난은 그의 건강에 치명적인 상처를 남겨놓았습니다. 당대의 사람들에 비해 짧게 산 것은 아니지만 그는 각종 질병으로 고통받았죠. 결국 1883년 마르크스는 런던에서 세상을 떠납니다. 지금 그는 하이게이트 묘지에 묻혀있습니다.

200년 전에 태어난, 150여년 전 사람의 글과 지혜를 우리가 참조할 필요가 있는가? 자주 받는 질문입니다. 우선은 플라톤과 아리스토텔레스, 공자는 그보다 더 오래전 사람이지만 그들의 지혜는 인류의 유산으로 우리에게 여전히 많은 영감을 주고 있다고 말하게 됩니다. 마르크스도 마찬가지라는 것이죠. 특히 현대 사회과학의 방법에 그가 미친 영향은 결코 마르크스주의자가 아닌 이사야 벌린도 인정하는 바입니다. 둘째로 그가 자본론을 쓰던 시절, 영국과 몇몇 국가에서나 그 발전의 초기 상태를 보여주던 자본주의는 지금에 와서 지구 전체를 뒤덮으며 전성기를 구가하고 있습니다. 그가 분석했던 자본주의적 생산의 자기파괴적 방식에 의해 지구와 인류의 생활이 지배받고 있습니다. 체제를 옹호하는 언론과 지식인들조차 위기가 반복될 때면 마르크스의 귀환을 목소리 높여 외치곤 합니다.

당연히 그의 글이 현대사회 문제의 해결책을 담고 있진 않습니다. 마르크스의 역사에 대한 유물론적인 접근법은 그의 어떤 글에서도 일목요연하게 정리돼 있진 않습니다. 소련 공식철학자들의 '변증법적 유물론' '역사적 유물론' 체계와 달리, 마르크스의 방법은 어떤 상황의 변수만 주어지면 이를 대입해 해결책을 찾을 수 있는 방정식이 아닙니다. 그가 '자본론'의 기본적 개념들을 1840년대 이미 갖고 있었지만 '자본론'으로 묶어내기 위해 무려 20년 가까이 영국 대영박물관의 열람실에서 현실의 증거들을 찾은 데서 우리는 교훈을 얻어야 합니다. 그의 프롤레타리아 독재 개념도 파리코뮌이라는 현실의 운동으로부터 이끌어내진 것이죠. 타협하지 않는 냉철한 지성은 현실에 대한 치밀한 탐구로부터 비롯합니다.

2008년 금융위기는 잠시 진정되는 듯 싶었습니다. 국가 부문으로 전가된 부채는 체제 전체를 더 위험에 빠뜨리고 있습니다. 그 첫 희생자는 남부 유럽입니다. 위기가 언제나 혁명적 상황으로 이어지진 않습니다. 하지만 이 체제에 대한 의문은 점차 확산되고 있습니다. 그것이 비록 자살이라는 개인적 절망의 형태일지라도 말이죠. 이러한 개인적 절망은 집단적 저항으로 전환되어야 합니다. 마르크스의 지혜는 집단적 저항을 만들기 위한 유용한 무기라고 생각합니다. 보다 많은 분들이 마르크스를 만나고 그의 눈으로 세계를 바라볼 수 있길 기대해봅니다. 마르크스주의를 만날 수 있는 비교적 짧고 이해하기 쉬운 몇몇 추천도서를 아래 붙입니다.

마르크스주의 개관
마르크스 사용 설명서|다니엘 벤사이드 지음|양영란 옮김|에코리브르
칼 맑스의 혁명적 사상|알렉스 캘리니코스 지음|정성진, 정진상 옮김|책갈피

마르크스의 생애
마르크스 평전|프랜시스 윈 지음|정영목 옮김|푸른숲
칼 마르크스 : 그의 생애와 시대|이사야 벌린 지음|안규남 옮김|미다스북스

주요 저서 1 : 마르크스주의의 요체
공산당 선언|칼 마르크스, 프리드리히 엥겔스 지음|강유원 옮김|이론과실천
공상에서 과학으로|프리드리히 엥겔스 지음|나상민 옮김|새날

주요 저서 2 : 마르크스의 정치경제학 비판
임금 노동과 자본|칼 마르크스 지음|김태호 옮김|박종철출판사
정치경제학 비판을 위하여|칼 마르크스 지음|김호균 옮김|중원문화

주요 저서 3 : 마르크스의 역사·정치 이론
루이 보나파르트의 브뤼메르 18일|칼 마르크스 지음|최형익 옮김|비르투
프랑스 내전|칼 마르크스 지음|안효상 옮김|박종철출판사

주요 저서 4 : 마르크스의 철학
헤겔 법철학 비판|칼 마르크스 지음|강유원 옮김|이론과실천
루트비히 포이어바흐와 독일 고전철학의 종말|프리드리히 엥겔스 지음|강유원 옮김|이론과실천

다큐멘터리 '칼 맑스'(2010년 12월 ZDF 방영, 찬별님 자막ㆍ링크)

Posted by 때때로

경제와 정치, 사회가 위기를 겪을 때 마르크스는 재빨리 다시 호출되곤 합니다. 위기가 워낙 자주 찾아와서인지 마르크스가 호출되는 빈도도 더 높아지는 것 같습니다. 물론 마르크스의 이론에 공감하며 그의 사상을 현실에서 구현하고자 하는 이들이 실제로 더 늘어난다는 것과는 좀 다른 얘기입니다. 주류 언론에서조차 마르크스를 언급하고, 출판 시장에서 마르크스에 관한 책이 더 많이 나온다는 얘기죠.

지난해 나온 책으로 인상적이었던 것은 우치다 타츠루와 이시카와 야스히로가 쓴 '청년이여, 마르크스를 읽자(갈라파고스ㆍ링크)'와 다니엘 벤사이드의 '마르크스 사용설명서(에코리브르ㆍ링크)'가 있습니다. 그리고 며칠전 국내 저자가 쓴 또하나의 책이 나왔습니다. 류동민의 '마르크스가 내게 아프냐고 물었다'입니다.


마르크스가 내게 아프냐고 물었다 : 사랑과 희망의 인문학 강의|류동민|위즈덤하우스(링크)

마르크스 사상의 입문을 위한 책은 보통 몇 가지 주제를 중심으로 이야기를 펼쳐나갑니다. 크게 나누자면 '철학' '역사' '정치경제학' '계급투쟁'과 같은 것이죠. 여기에 마르크스의 간략한 전기가 덧붙여지는 형식입니다. 알렉스 캘리니코스가 쓴 '칼 맑스의 혁명적 사상(책갈피ㆍ링크)'이 대표적인 경우입니다.

우리가 현재 왜 마르크스를 읽어야만 하는지는 보통 서문에서 다루거나, 책의 결론 부분에서 언급됩니다. 즉 기존의 마르크스 입문서들은 (전에 마르크스를 읽었든 안 읽었든) 이미 마르크스에 관심을 가진 사람들을 위한 안내서들인 거죠. 그렇기에 지난해 말 나온 '청년이여, 마르크스를 읽자'는 매우 새로웠습니다. 마르크스의 주요 저서를 소개하는 내용 자체가 새롭진 않았습니다. 인상적이었던 것은 책의 부제목입니다. '마르크스에게서 20대의 열정을 배우다'가 부제인 것이죠. 부제는 책의 한국어판 서문에도 반복됩니다. 일본의 패기 없는 요즘 젊은이들의 문제를 지적하며 "성숙한 어른을 만들어내는 데 주도권을 휘둘러온 앎"(9쪽)으로써 마르크스를 읽을 것을 권합니다.

류동민의 책 '마르크스가 내게 아프냐고 물었다'는 이러한 시도를 한발 더 앞으로 밀고 나갑니다. '사랑과 희망의 인문학 강의'라는 부제에서 드러나 듯, 마르크스의 주요 주제들을 위로와 소통ㆍ교감이라는 틀로 다시 정리해냅니다.

그래서 책은 낯선 파티장에서 외로움을 느끼는 '나'로부터 출발합니다. 외로움ㆍ위로에 가장 어울리는 마르크스의 주제는 '소외'입니다. 보통 소외는 마르크스에게 남겨져 있는 헤겔의 흔적 정도로 치부되는 경우도 많습니다. 특히 류동민과 같은 마르크스주의 경제학자들의 경우는 더 그렇죠. 소외를 다루는 경우도 엄밀한 정치경제학적 입장에서 생산물이 상품생산자로부터 독립된 존재로 나타나는 것으로 정의합니다. 이런식으로 해서는 요즘 한창 인기인 '위로'와 연관된 주제로 이어지긴 어렵습니다. 당연히 저자는 보통의 마르크스 해설과 다른 방향으로 우회합니다. 인용하기 가장 좋은 마르크스의 텍스트는 포이어바흐에 관한 여섯 번째 테제입니다.

포이어바흐는 종교적 본질을 인간적 본질로 해소한다. 그러나 인간적 본질은 개별적 개체에 내재하는 추상물이 결코 아니다. 그 현실에 있어 인간적 본질은 사회적 관계의 총체이다. …… 그런 까닭에 본질은 "유類"로서만, 내면적이고 침묵하는, 많은 개체들을 자연적으로 묶고 있는 보편성으로만 파악된다.
- 포이어바흐에 관한 테제 6, 강유원 역 '루트비히 포이어바흐와 독일 고전철학의 종말(프리드리히 엥겔스)' 87쪽

첫 단추는 매우 잘 맞춰졌습니다. 이어서 류동민은 이렇게 씁니다.

사람을 그가 맺고 있는 사회적 관계들의 총체라고 규정함으로써 우리는 삶의 여러 국면에서 마주치는 슬픔과 기쁨, 그 혼란스러움의 미세한 결들을 훨씬 더 잘 이해할 수 있게 될 것입니다.
- 마르크스가 내게 아프냐고 물었다 38쪽

이제 이야기는 어렵지 않게 나와 너, 사람과 사람 사이, 사랑ㆍ소통ㆍ교감을 소재로 이어갈 수 있게 된 듯이 보입니다. 특히 마르크스가 포이어바흐로부터 이어받은 '유적 존재'라는 개념은 책 전체에서 중심적 개념으로 사용됩니다. 포이어바흐에 관한 여섯 번째 테제로부터 시작한 1장의 이야기는 소외에서 물신(페티시즘)으로 이어집니다. 물신으로부터 이야기를 넘겨받은 2장은 마르크스의 유물론적 사관을 펼쳐놓습니다. 유물론을 다룬 2장에서 류동민이 가장 강조하는 것은 그것을 '기계적 유물론'으로 오인하지 말아야 한다는 점입니다. 마르크스의 박사학위 논문에서 중심적 개념인 '클리나멘'을 강조하는 것은 그 때문입니다. 우연과 마주침의 유물론이라고 할까요.

소외에서 페티시즘으로, 다시 유물론으로 이어진 이야기는 드디어 3장에서 마르크스의 정치경제학 비판으로 이어집니다. 이는 어쩌면 당연한 수순이라고 할 수 있죠. 조금 돌아가는 길이지만 류동민을 거치지 않고 마르크스를 살펴보죠. 마르크스는 '헤겔 법철학 비판 서문'에서 이렇게 말합니다.

인간 본질이 참된 현실성을 전혀 얻지 못하기 때문에 종교는 인간 본질의 환상적 현실화이다. 그러므로 종교에 대한 투쟁은 간접적으로 저 세계, 즉 종교를 자신의 정신적 향료로 삼는 세계에 대한 투쟁이다. 종교적 비참함은 현실적인 불행의 표현이자 현실적 불행에 대한 항의이다. 종교는 곤궁한 피조물의 탄식이며, 무정한 세계의 심정이고, 또한 정신 없는 상태의 정신이다. 종교는 인민의 아편이다. 인민의 환상적 행복인 종교의 폐기는 바로 인민의 현실적 행복에 대한 요청이다. 인민의 상황에 대한 환상을 포기하라는 요청은 이 환상을 필요로 하는 상황을 포기하라는 요청이다. 그러므로 종교에 대한 비판은 그 기원에서 본다면, 종교를 자신의 후광으로 삼고 있는 간난의 삶에 대한 비판이다.
- 강유원 역 8쪽

인간은 자신이 만들어낸 피조물인 종교에 빠지게 됩니다. 꼭 종교만의 문제는 아닙니다. 값비싼 자동차와 오디오에 빠지는 것, 명품의류로 자신을 치장하는 것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러나 그러한 환상을 버리라는 요구만으로는 부족하죠. 문제는 그 배경, 현실세계에서의 원인을 찾아 해결하는 것입니다. "종교에 대한 비판은 …… 간난의 삶에 대한 비판"이 되어야 한다는 마르크스의 주장은 그가 현실세계의 경제적 운동법칙에 대한 탐구로 나아갈 것을 예고합니다. 그 결실은 완성되진 않지만 '자본론'으로 맺어지죠.

따라서 류동민의 책도 3장에서부터 경제적 운동법칙들에 대한 이야기가 출몰하기 시작합니다. '출몰'이라고만 적은 것은, 이 책 전체에서 마르크스의 경제적 연구가 부차적 지위로만 다뤄지기 때문입니다. 마르크스하면 떠오르는 '노동가치론'이나 '착취'가 강조되는 것도 아닙니다. 오히려 착취와 떼어놓을 수 없는 경쟁과 차별을 통해 현대 사회에서 소비자가 노동자로부터 분리되고 차별받는 상황을 강조합니다.

착취와 경쟁 차별로부터 우리는 정의의 문제를 묻지 않을 수 없습니다. 류동민은 4장 '능력, 공정함 그리고 정의'에서 마르크스의 정의를 설명하고자 합니다.

근대 자본주의 사회로 접어들면서 경쟁의 원리는 능력주의로 바뀌게 됩니다. 이제 신분은 적어도 법률적, 제도적으로는 중요하지 않게 되었습니다. …… 그렇다면 근대사회에서 성과의 차이, 더 구체적으로는 경제적인 빈부의 격차는 오로지 능력 때문에 생겨나는 것일까요?
- 마르크스가 내게 아프냐고 물었다 165~166쪽

먼저 능력의 기원이 불평등함을 설명합니다. 애시당초 자본주의가 "피와 오물을 뒤집어쓰고 나타났다는 것"을 돌이켜보면(자본의 시초축적: 인클로저 운동 등 공식적이거나 비공식적인 탈취) 자본가들이 자신의 부의 기원을 개인적 근면함과 검소한 생활로부터 찾는 것은 어불성설이죠. 더 근본적으로는 능력의 차이가 차별의 근거로 정당화될 수 있느냐고 묻습니다. 마르크스는 '고타 강령 초안 비판'(라쌀레를 따르던 이들과 마르크스를 따르던 이들이 1875년 고타에서 당 통합 독일사회주의노동당을 건설하면서 채택한 강령에 대한 마르크스와 엥겔스의 비판)에서 "공산주의 사회의 더 높은 단계에서[는] …… 각자는 능력에 따라, 각자에게는 필요에 따라"(맑스-엥겔스 저작선집 4권 377쪽) 분배받을 것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자본주의 사회에서의 경쟁과 능력에 따른 불평등은 결코 불공정한 거래ㆍ사기ㆍ협잡의 결과는 아닙니다. 이는 '노동력'이라는 특별한 상품의 지극히 공정한 등가교환의 결과입니다. 따라서 이 투쟁에서 어떤 초월적 기준의 정의는 없습니다. 오직 힘과 힘의 맞부딛침, 즉 투쟁이 있을 뿐이죠.

이제 류동민은 5장 '관계의 비대칭성, 권력 그리고 민주주의'에서 마르크스를 따라 계급투쟁과 혁명에 관한 이야기를 다루려고 합니다. 그러나 이는 매우 순화된 언어로, 장의 제목이 말하듯 정치와 민주주의 이야기로 이어집니다. 저자가 이 책을 쓰면서 중요한 소재로 다뤘던 너와 나, 소통과 교감의 이야기는 앞선 4장에서 잠시 약해졌다가 이곳에서 다시 한 번 뚜렷이 그 존재감을 드러냅니다. 현실정치적 발언이 가장 많이 드러난 장이기도 합니다(류동민은 2012년 19대 총선에서 진보신당을 지지하는 지식인 선언에 참여했습니다).

민주주의(혹은 계급 투쟁)로 만들어가야 할 사회, 그리고 나와 너 우리의 관계는 어떠한 것일까요. 류동민은 6장에서 마르크스적 희망을 설명하며 책을 마무리 합니다. 공산주의적 미래를 그린 마르크스의 텍스트 중 가장 유명한 것은 아무래도 '공산당 선언'이죠. 마르크스는 이렇게 말하고 있습니다.

계급과 계급 대립이 있던 낡은 부르주아 사회 대신에, 각자의 자유로운 발전이 모든 이의 자유로운 발전을 위한 조건이 되는 연합체가 들어선다.
- 강유원 역 41쪽

류동민은 이러한 연합체를, 개인의 소외가 극복된 투명한 커뮤니케이션이 달성된 상태라고 설명합니다. '사랑과 희망의 인문학 강의'라는 어려운 과제를 목표 삼아 달려온 책의 결론으로서 훌륭한 마무리처럼 보입니다. 그렇다면 내게 아프냐고 물은 마르크스는 어떤 결론을 답변으로 준 것일까요? "역사가 무슨 일을 하는 것은 아니다"(류동민 234쪽), "인간은 항상 자신이 해결할 수 있는 문제만을 제기한다"(류동민 239쪽)는 마르크스의 말은 결국 해결은 인간 스스로 내놓아야 한다는 것 같습니다. 물론 여기서 '인간'은 개인으로서의 나, 혹은 너가 아니라 집단으로서 인류일 것입니다. 그럼에도 개인의 어떠한 결심, 행동이 뒤따라야 한다는 것은 변함 없는 사실이죠(이는 대개의 자기계발서도 마찬가지일 것입니다).

사실 이 책을 처음 펼칠 때 가장 부담스러웠던 것이 바로 저 부제입니다. 마르크스를 휴머니즘적으로 해석하는 경우가 없지 않긴 하지만 대놓고 '사랑과 희망의 인문학'이라니 막막해 보였습니다. 저자와 편집자가 많은 노력을 기울였음은 주제를 놓치지 않으면서도 마르크스의 핵심 개념을 유연하게 연결시켜 설명했다는 데서 드러납니다. 물론 마르크스를 안내하고자 하는 이 새로운 시도가 성공적이었는지는 아직 의문이긴 합니다. 저자는 "마르크스를 키워드로 [알랭 드] 보통처럼 글을 쓰고 싶[었]다"고 말합니다. 그러나 '당의(설탕옷)'는 자칫 잘못하면 이만 썩게 하고 약효과도 떨어뜨릴 수 있습니다. 저는 우회하는 것보다 직접 가는 것이 대개의 경우에 더 효과적일 뿐 아니라 그것만이 유일하게 가능한 길이라고 생각하는 편입니다. 쉽지 않았을 시도에 기꺼이 나선 류동민과 편집자에겐 경의를 표합니다. 하지만 이것이 얼마나 효과적이었을지는 다른 더 많은 독자의 이야기를 들어보아야 할 것 같습니다.

Posted by 때때로
<자본론. 1(상)(개역판)> - 칼 마르크스 / 김수행
만약 독일의 독자가 누구든지 영국의 공업ㆍ농업 노동자들의 형편에 대해 위선적으로 눈살을 찌푸리든가, 독일에서는 사태가 결코 그렇게 나쁘지 않다고 낙관적으로 자기를 위안하려 한다면, 나는 그에게 "이것은 너를 두고 하는 말이다!"라고 외칠 것이다. - 서문, 5쪽

지금도 많은 사람은 마르크스의 자본론에 대해 "실제는 그렇지 않아" "그건 100년도 더 전의 영국에서의 이야기일 뿐이지"라고 말하고 있지.

<경제학 (철학 수고)> - 칼 마르크스 / 강유원
노동은 상품을 생산하는 것만이 아니다. 노동은 자기 자신과 노동자를 하나의 상품으로서 생산하며, 물론 노동이 일반적으로 상품을 생산하는 것과 같은 관계 속으로 생산한다.
이 사실은 다음과 같은 것을 표현할 따름이다: 노동이 생산하는 대상, 노동의 생산물은 노동에게 하나의 낯선 존재로서, 생산자에게서 독립된 힘으로서 노동에 대립한다는 것. 노동의 생산물은 하나의 대상 속에 고정된, 사물화한 노동이거니와, 이는 노동의 대상화이다. 노동의 실현은 노동의 대상화이다. 노동의 이러한 실현이 국민경제학적 상태에서는 노동자의 현실성 박탈로 나타나고, 대상화는 대상의 상실과 대상에 대한 예속으로, 획득은 소외로, 외화로 나타난다.
노동의 실현은 아주 심하게 현실성을 박탈하는 것으로 나타나 노동자가 굶어죽을 정도로 현실성을 박탈한다.(…)
노동자가 자신의 생산물에서 외화된다는 것은 그의 노동이 하나의 대상으로, 하나의 외적인 현실적 존재로 된다는 것을 의미할 뿐만 아니라, 그의 노동이 그의 외부에, 그에게서 독립되고, 소원하게 존재하며, 그에게 대립하는 자립적 힘이 된다는 것, 그가 대상에게 부여했던 생명이 그에게 적대적이고 소원한 것으로 대립한다는 것을 의미하기도 한다. - 85~86

노동자는 자신을 옭아매고 있는 현실의 관계 또한 생산한다는 얘기겠죠.

 

<헤겔 법철학 비판> - 칼 마르크스 / 강유원
인간 본질이 참된 현실성을 전혀 얻지 못하기 때문에 종교는 인간 본질의 환상적 현실화이다. 그러므로 종교에 대한 투쟁은 간접적으로 저 세계, 즉 종교를 자신의 정신적 향료로 삼는 세계에 대한 투쟁이다.
종교적 비참함은 현실적인 불행의 표현이자 현실적 불행에 대한 항의이다. 종교는 곤궁한 피조물의 탄식이며, 무정한 세계의 심정이고, 또한 정신 없는 상태의 정신이다. 종교는 인민의 아편이다.
인민의 환상적 행복인 종교의 폐기는 바로 인민의 현실적 행복에 대한 요청이다. 인민의 상황에 대한 환상을 포기하라는 요청은 이 환상을 필요로 하는 상황을 포기하라는 요청이다. 그러므로 종교에 대한 비판은 그 기원에서 본다면, 종교를 자신의 후광으로 삼고 있는 간난의 삶에 대한 비판이다. - 8

이를테면 인간이 자신이 만들어낸 피조물, 종교에 빠지는 것과 마찬가지로 말입니다. 그러므로 현실에서 노동자에게 현실성을 박탈하는 온갖 것들-영화, TV, 만화, 게임도 이런 종류겠죠-을 비판하는 것은, 마르크스가 종교비판에 대해 말한 것과 같이, "간난의 삶에 대한 비판"이 되어야 하는게 아닌가 싶습니다.

 

<자본론. 1(상)(개역판)> - 칼 마르크스 / 김수행
몽롱한 종교세계(…)에서는 인간 두뇌의 산물들이 스스로의 생명을 가진 자립적인 인물로 등장해 그들 자신의 사이 그리고 인간과의 사이에서 일정한 관계를 맺고 있다. 마찬가지로 상품세계에서는 인간 손의 산물들이 그와 같이 등장한다. 이것을 나는 물신숭배라고 부르는데, 이것은 노동 생산물이 상품으로 생산되자마자 거기에 부착되며, 따라서 상품생산과 분리될 수 없다.
상품 세계의 이와 같은 물신숭배는, 앞의 분석이 보여준 바와 같이 상품을 생산하는 노동 특유의 사회적 성격으로부터 발생한다.
우용한 물건이 상품으로 되는 것은 그것이 사적 개인의 노동생산물이기 때문이다. 이러한 사적 개인들의 노동총계가 사회의 총노동을 형성한다. 생산자들은 자기들의 노동생산물의 교환을 통해 비로소 사회적으로 접촉하기 때문에, 그들의 샂거 노동의 독특한 사횢거 성격도 오직 이 교환 안에서 비로소 나타난다. 바꾸어 말해, 교환행위가 노동생산물들 사이에 수립하는 관계들과, 생산자들 사이에 수립하는 관계들을 통해서만 비로소 사적 개인의 노동은 사회의 총노동의 한 요소로 나타난다. 그러므로 생산자들에게는 자기들의 사적 노동 사이의 사회적 관계는, 개인들이 자기들의 작업에서 맺는 직접적인 사회적 관계로서가 아니라, 물건을 통한 개인들 사이의 관계로, 그리고 물건들 사이의 사회적 관계로 나타난다. - 93~94

"간난의 삶에 대한 비판"은 '정치경제학 비판'으로 이어집니다. 마르크스는 상품세계에서 "인간 손의 산물"들 사이의 관계가 어떻게 인간들 사이의 관계를 대치하는지 보여줍니다.

2009.05.31 18:19

독일 이데올로기 마르크스/엥겔스/기타2009.05.31 18:19

독일 이데올로기Ⅰ

칼 마르크스ㆍ프리드리히 엥겔스 지음|박재희 옮김|청년사


[1845년 봄] 우리는 독일 철학의 이데올로기적 견해에 대립하는 우리의 견해를 공동으로 완성하고 우리의 과거 철학적 의식을 사실상 청산하기로 결의했다. 이 결심은 헤겔 이후의 철학을 비판하는 형태로 실행되었다. 두꺼운 8절판 책 2권에 달하는 수고는 여건의 변화로 출판이 불가능해졌다는 소식을 우리가 들었을 때에는 이미 베스트팔렌에 있는 출판사에 도착했었다. 우리는 자기이해라는 우리의 주목적을 달성한 이상 기꺼이 이 수고를 쥐들이 갉아먹도록 내버려 두었다.
-'정치경제학 비판을 위하여' 서문, 8쪽(도서출판 靑史)


마르크스가 '정치경제학 비판을 위하여' 서문에서 말한 저작 '독일 이데올로기'는 1932년에 모스크바에서 처음 완간됐다. 마르크스 본인이 '역사에 대한 유물론적 이해'라고 부르고 후대에 와서 '사적유물론'이라 칭해진 마르크스 철학의 기초는 이 책에서 처음 완전한 형태로 전개됐다고 할 수 있다.

한국에선 박종철출판사의 '칼 맑스ㆍ프리드리히 엥겔스 저작선집' 1권에 '독일 이데올로기' 1권 1편의 일부분이 발췌돼 실렸으며 청년사와 두레에서 각각 출판됐다. 두레판은 MEW를 번역 대본으로 삼았으며 1권 2편까지와 2권 1편, MEW 3권 서문이 실렸다. 위에서 표지를 소개한 청년사 판은 Progress 출판사에서 나온 영역본을 대본으로 삼아 번역했으며 1권 2편까지 번역돼 실렸다.


'독일 이데올로기' 서문

이제까지 항상 사람들은 자기 스스로에 대하여, 인간은 무엇이고 무엇이어야만 하는가에 대하여 잘못된 관념들을 형성해 왔다. 사람들은 신이나 정상적 인간 따위의 관념들에 따라 자신들 간의 관계를 합치시켜 왔다. 그들 두뇌의 산물들은 그들의 손아귀를 벗어나 버려 감당할 수 없게 되어 버렸다. 이들 창조자들은 그들의 창조물 앞에 무릎을 꿇어 왔다. 이제 그들을 망상과 관념과 도그마와 환상적인 존재들 즉, 그들을 옭아 맨 멍에들로부터 해방시키도록 하자. 이들 개념의 지배에 대해 반란을 일으키자. 말하자면 첫째, 어떻게 하면 이들 환상을 인간의 본질에 어울리는 생각으로 바꿀 수 있는가를, 다음으로 어떻게 하면 그것들에 대하여 비판적인 태도를 취할 수 있는가를, 그리고 세번쨰로 어떻게 하면 인간의 머리 속에서 그 환상들을 없앨 수 있는가를 사람들에게 가르치자. 그러면 현존하는 현실은 무너지리라.

그러한 어린애 장난같은 유치한 환상들이야말로 최근의 청년 헤겔파 철학의 핵심인 바, 이 철학은 독일 사회에 공포와 두려움으로 받아들여지고 있을 뿐만 아니라, 세계를 뒤흔드는 듯한 위험과 범죄성 냉혹함에 대한 숭고한 의식과 함꼐 우리의 '철학 영웅들'에 의해서 선전되고 있는 것이다. 이 책의 제1권의 저술 목적은, 스스로 이리떼라고 생각하고 있고 남들도 그렇게 여기고 있는 이들 양떼들의 가면을 벗겨버리기 위한 것이고, 그들의 음매음매 우는 소리는 기껏해야 독일 중산 계급의 관념들을 철학 형태로 흉내낸 것에 불과하다는 것을, 즉 이들 철학 비평가들의 자만심은 기껏해야 독일의 처참한 현실 조건을 반영하는 것에 지나지 않는다는 것을 보여 주려는 데에 있다. 또한 우리의 목적은, 꿈속을 헤매이며 정신이 오락가락하고 있는 독일 사람들에게나 호소하는, 현실의 환상에 대한 저 철학적 투쟁이라는 것을 조롱하고 모욕하려는 것이다.

옛날 어떤 한 용감한 친구는 사람이 물에 빠지는 이유는 사람들이 '무게라는 관념'을 갖고 있기 때문이라고 생각하였다. 따라서 말하자면 사람들이 그런 생각이 밋니이나 종교 관념에 불과하다고 공언함으로써 그런 생각을 그들의 머리 속에서 없애 버리기만 한다면, 사람들은 물에 대해 어떤 걱정도 할 필요가 없을 것이라는 것이다. 그는 그 무게라는 관념 즉 그 해로운 결과에 대해 모든 통계 자료들이 그에게 새롭고 다양한 그 증거들을 보여 주는 바의 그 관념에 대해 평생을 바쳐 투쟁하였다. 이런 부류의 용감한 친구들이 바로 독일의 새로운 혁명적 철학자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