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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월 22일 이집트 타흐리르 광장의 시위대가 진압군이 발사한 최루탄을 들어 던지고 있다. [the Atlantic/Reuters/Amr Abdallah Dalsh]

오늘(28일) 이집트에서는 무바라크 독재가 종식된 후 첫 선거가 열립니다. 하원 498명, 상원 390명의 의원을 뽑는 내년 3월까지 진행될 기나긴 선거의 시작입니다. 민주주의의 쟁취를 기뻐하고 그 권리를 향유해야 할 이집트 인민에게 오늘의 선거가 그리 반갑지만은 않습니다. 군부독재의 종료와 민주적 정권 이양을 요구하며 18일 시작된 저항이 열흘 넘게 이어지며 40여 명의 사망자 등 수 많은 희생자를 낳고 있기 때문이죠.

최고군사위원회(SCAF)가 장악한 정권은 민주적 권리 확대에 있어서 불철저할 뿐 아니라 되레 무바라크 독재 종식을 위해 거리로 나섰던 청년과 노동자들을 군사재판에 회부해 민주세력을 탄압했죠. 엠네스티에 의하면 1만2000명 이상의 민간인이 군사법정에서 불공정한 재판을 받았다고 합니다. 그 중 적어도 13명은 사형을 선고받았습니다. 필립 루더 엠네스티 중동ㆍ북아프리카 실행감독은 무바라크의 억압적인 체제를 이어가고 있는 최고군사위원회가 민주주의를 위한 시민의 평화적 저항을 파괴하고 있다고 비판합니다.

"수천명의 시민을 군사재판에 회부함으로써 평화적 저항을 분쇄하고 무바라크 비상법의 영향(소관)을 확대해왔다. 최고군사위원회는 1월 25일 시위대가 끝장내기 위해 싸워왔던 억압적인 지배를 계속하고 있다." - 필립 루더 엠네스티 중동ㆍ북아프리카 지역 실행감독
● [엠네스티] 이집트: 군부독재가 1월 25일 저항의 희망을 깨뜨리다(링크)

"사회 긴장이 고조되자 정부는 깡패와 군사 법원을 동원해 시위 참가자와 파업 노동자 들을 공격했다. 노동자들은 법원의 사유화 철회 결정을 환영하며 사유화된 기업들의 재국유화를 바랐지만, 정부는 이 염원을 철저히 무시했다. 또, 정부는 옛 무바라크 정당 인사들의 선거 참가 금지를 명한 법원 결정을 무시했다. 현 이집트 정부는 자신이 무바라크 정권과 연속선상에 있음을 명백히 밝힌 것이다." - 11월 20일 이집트 혁명적 사회주의자들의 성명서
● [레프트21] "군사독재 물러나라, 무바라크 통치 종식하라!"(링크)

이집트 인민의 불만은 지난 몇 개월간 차곡차곡 쌓여왔습니다. 민주주의적 권리는 확대되지 못했으며 경제적 상황도 나아지지 않았습니다. 노동자들의 기본권은 부정당했습니다. 10월 9일에는 군부가 콥트교도를 공격해 28명이 학살당하기도 했죠.

내년 3월까지 여러 단계에 걸친 복잡한 선거계획도 군부정권의 민주화 이행 의지에 대한 의심을 부추겼습니다. 오늘(28일) 열리는 하원선거도 전국에서 동시에 실시하는 게 아닙니다. 28일, 29일 이틀에 걸친 첫 선거는 9개 주 2400만 명을 대상으로 진행됩니다. 이후 다른 지역에서 일주일 간격으로 6번의 선거를 치뤄야 1단계가 끝나죠. 군부는 대통령 선거 등 정권의 민간이양에 관한 정확한 일정을 밝히기를 거부하고 있기도 하죠. 여기에 기름을 끼얹은 것은 11월 초 발표한 군부의 '신(新)헌법 기본원칙'입니다. 그들이 제시한 기본원칙은 민간정부가 군부를 통제하지 못하게 하는 내용이 포함돼 있었죠.

● [뉴시스] 이집트, 혼란 속에 하원 선거 실시(링크)
이집트 인민은 왜 다시 거리로 나섰나?(링크)


11월 20일 부상당한 시위대 한 명이 타흐리르 광장 인근 병원에서 진압군에 의해 사용된 탄피를 들어보이고 있다. [boston.com/Reuters/Amr Abdallah Dalsh]

타흐리르 광장에서 시위 진압을 위해 사용된 최루탄. 'Made in U.S.A.'라는 문구가 선명하다. [the Atlantic/AP]

이집트 인민은 군부의 잔혹한 시위진압으로 더 큰 분노에 휩쌓이고 있습니다. 특히 진압군이 사용하는 고무총탄으로 인한 피해가 속출하고 있죠. 시위대에 의하면 훈련된 저격수가 시위 참가자의 '눈'을 목표로 저격한다고 합니다.

아흐메드 하라라는 1월 29일 무바라크 퇴진을 요구하는 시위에서 한쪽 눈을 실명했습니다. 그는 그날의 싸움을 기억하기 위해 실명한 눈을 가린 안대에 그 날짜를 적어놨었죠. 하라라는 11월 20일 다시 시위에서 다른 쪽 눈도 잃었습니다. 그는 "이날 오후 3시쯤 타흐리르 광장에 나갔는데 7~10m 거리에서 진압군이 쏜 고무탄환에 눈을 맞았다"고 말했습니다. 이집트의 혁명적 사회주의자 사메 나기브에 의하면 '11월 20일'이 적힌 새로운 안대를 한 하라라는 여전히 시위대와 함께 저항을 계속하고 있습니다.

이 잔혹한 진압군 저격수는 시위대에게 '아이 헌터(eye hunter)'라고 불리고 있습니다. 물론 군부는 고무총탄의 사용을 공식적으로 부인하고 있습니다. 최고군사위원회가 임명한 만수르 알에사위 내무장관은 "진압군이 시위대를 향해 실탄은 물론 고무탄ㆍ새총 등을 쏜 적이 없다"고 말했습니다. 그러나 거짓말을 하려면 손발이라도 맞아야죠. 히샴 시하 보건부 대변인은 "지난주 시위사태에서 실탄ㆍ고무탄ㆍ새총에 의해 최소 41명이 사망하고 3250명이 부상했다"고 발표했죠.

● [레프트21] 정권에 맞선 이집트 민중의 분노가 폭발하다(링크)
● [조선일보] 이집트 시위대 "아이 헌터 처형하라"(링크)


월스트리트를 점령하라 운동은 11월 25일 뉴욕 이집트 영사관을 방문해 군부정권의 폭력적 시위 진압에 항의했다. 이들은 미국산 최루탄이 이집트 군부에 의해 사용되고 있다며 12월 1일에는 펜실배니아 제임스타운의 군수공장으로 항의 행진할 것이라고 밝혔다. [occupywallst.org]

이집트 군부의 폭력적 진압에 항의하는 국제적인 연대도 확산되고 있습니다. 이집트 타흐리르 광장의 시위대는 미국이 만든 최루가스와 무기가 이집트 인민에게 사용되고 있다며 이 무기의 생산과 수출을 중단시켜달라며 연대를 호소했었습니다. 군부독재를 대변하는 이집트 대사관과 이집트 군사정권과 거래를 하는 자국 정부에게 항의해달라고도 요청했죠.

이에 월스트리트를 점령하라 운동(Occupy Wall Street) 참가자 수백명은 11월 25일 뉴욕의 이집트 영사관으로 항의행진을 진행했습니다. 12월 1일에는 이집트 군부독재 정권에 최루가스를 공급하는 펜실배니아 제임스타운의 공장으로 항의 행진을 할 계획입니다.

이집트 인민에 대한 연대의 행동은 한국에서도 있었습니다. 시민ㆍ사회단체 회원 50여 명은 11월 25일 이집트 대사관 앞에 모여 군부정권의 폭력적 시위진압에 항의했습니다.

● [occupywallst.org] 이집트 인민의 연대 요청에 답하다(링크)


오늘 시작된 이집트 총선의 최대 수혜자는 군부가 될 듯 합니다. 가장 많은 지지를 얻어온 무슬림형제단은 자칫 자신들이 '다수파'가 될 이번 총선이 무산될까 전전긍긍하며 18일 시작된 저항에 불참하고 있죠. 그들의 이러한 착각은 정권을 민간정부가 가져온 이후에도 정치적 영향력을 유지하고 싶어 하는 군부의 손을 들어줄 뿐입니다. 이는 제국주의에 대한 급진적 저항으로 대중적 인기를 얻어온 이들이 국내적으로는 민주주의를 향한 대중의 행동에 얼마나 큰 해악을 미치는지 입증해주는 사례가 될 것입니다. 종교적 반제국주의가 아닌 세속적 대안정치세력의 성장이 중요한 이유입니다.

이집트는 앞으로 더 큰 변화의 혼란에 휩쌓일 가능성이 높습니다. 이러한 혼란은 때론 이란에서 그랬던 것과 마찬가지로 퇴행적 정치의 성장으로 이어질 수도 있습니다. 세속적 대안정치의 성장을 위해 가장 필요한 것은 이번 이집트 혁명이 단순히 법적인 '민주주의 권리'를 요구하는 것만은 아니었다는 것을 기억하는 겁니다. 아랍의 봄이 시작된 것은 튀니지에서 노점단속을 당한 한 청년의 분신 때문이었습니다. 이집트 또한 최근 고통스러운 경제위기를 겪고 있습니다. 특히 무바라크 정권의 공기업 사유화 정책은 노동자의 일자리를 불안하게 했습니다. 수년 전부터 노동자들의 독립적인 행동이 성장하면서 이번 혁명의 배경을 만들었습니다. '민주주의'를 요구하는 것은 정치가 더 나은 삶을 위한 다수의 참여로 만들어질 것을 원하기 때문입니다.

"[이스라엘의 아랍봉쇄에 협조한 댓가로 이집트 정부가 미국으로부터 받은] 경제원조의 댓가는 결코 국민경제 전체를 살찌운 것이 아니었다. 예시적으로 사회주의적 민족주의노선의 낫세르하인 1960년~70년 1인당 국민소득은 2배 증가했으나 이후 사다트, 무바라크를 잇는 70년~2000년 1인당 국민소득은 거의 제로상태라고 한다. 이어 1991년이후 지금껏 314여개 국영기업 중 150개를 사유화(다수를 서방에 팔아먹은) 할 정도로 일방적인 신자유주의를 펴면서 경제가 파탄지경이다. 특히 2008년 미국의 금융위기후 세계경제 불황속에서 미국의 양적완화정책, 저금리기조는 전세계적으로 제삼세계 국가들에 물가압력(인플레이션)으로 전가되고 있는 가운데 최근 수요의 폭증에다 국제투기세력에 의한 곡물 및 석유 투기까지 겹치면서, 이집트에서도 빈곤과 물가상승, 실업난등 생활고가 극심해졌다. 현재 이집트 시위는 이런 정치경제적 맥락하에서 발발했다.
현재의 시위는 ①애초에 두 명의 빈민노점상의 분신항의에서 촉발했듯이 사회경제적인 성격이 강하다는 점, ②그러면서 국영기업을 주축으로 한 '국가자본주의'적 성격이 강한 이 나라에서는 정치엘리트=경제엘리트(소위 state business elite)인지라, 무바라크등 소수 정치엘리트에 대한 공격과 경제적인 요구의 양자가 구분되기 어렵다는 점이 특징이다(예를 들어 이 국가는 군부가 방산업체 대부분을 경영하는 식이다). 토니 블레어, 오바마등이 그래서 이집트사태 해결에 '경제개혁'이 중요한 과제라고 이미 말했었다." - 권영숙, 1월 31일
이집트 시위의 성격과 전망(링크)

이집트 인민의 봉기가 남의 일이 아닌 것은 바로 이 때문입니다. 뉴욕의 점령하라 운동이 월스트리트에 맞서 싸우는 것, 유럽의 분노하라 시위대가 정부와 탐욕적 자본에 맞서 싸우는 것, 이집트의 인민이 군부독재 정권에 맞서 싸우는 것 모두 99% 인민의 삶을 파괴하고 소수 1%의 이익만 늘려주는 이 체제의 문제와 맞닿아 있습니다. 우리는 혁명이 귀환하는 시대를 목격하고 있습니다. 무능력하고 자신감 없는 급진적 정치세력의 외소한 모습이 너무나 아쉬운 때입니다.

이집트 인민에게 승리의 영광이 있기를 바랍니다.


11월 22일 타흐리르 광장 인근의 시위대. [the Atlantic/AFP/Getty Images/Mahmud Hams]

※ 아래 링크에서 더 많은 이집트 저항 사진을 볼 수 있습니다. 간혹 경찰의 폭력적 진압으로 인한 잔인한 사진이 있으니 주의하시기 바랍니다.
● [the Atlantic] 이집트의 끝나지 않은 혁명(링크)
● [boston.com] 이집트, 새로운 저항이 폭발하다(링크)

Posted by 때때로

이집트 군부의 '신(新)헌법 기본원칙'에 대한 반발로 18일 시작된 시위가 날로 격화되고 있다. 군경은 고무총탄과 최루가스를 사용하고 이로 인해 1000여 명의 사상자가 발생했다. 이집트 과도정부는 22일 내각 총 사퇴로 이 위기를 넘겨보고자 하지만 몸통인 '군부'가 분노의 초점이 되는 상황에서 시위가 쉽게 가라앉지는 않을 듯 하다. [http://www.stern.de]

2월 호스니 무바라크 전 대통령의 독재를 종식시킨 이집트 인민이 다시 거리에 나서고 있습니다. 저항은 18일부터 시작되어 계속되고 있습니다. 수천 명의 사람들이 "우리는 최고사령관의 종말을 원한다" "군부는 물러나고 시민들에 의한 의회로 대치돼야 한다"고 요구하며 단호하게 저항하고 있죠. 군부정권의 종식과 민주화를 요구하는 이집트 인민의 저항은 카이로 타흐리르 광장에서부터 알렉산드리아ㆍ수에즈까지 이집트 전역에서 동시다발적으로 확산되고 있습니다. 이집트 과도정부는 고무총탄ㆍ최루가스 등을 이용해 강경진압을 하고 있고 이로 인해 30여 명 이상의 사망자를 포함한 1000여 명의 사상자가 발생했다고 합니다.

이집트는 무바라크 독재를 종식시킨 이후 최고군사위원회의 통치 하에 민주화를 위한 절차를 밟고 있었습니다. 11월 28일 진행 예정인 총선을 시작으로 내년 1월까지 3단계에 걸친 선거로 의회를 구성하고 헌법을 만드는 게 그 첫 단계죠. 하지만 군부는 의회가 구성된 이후에도 내년 말에서 2013년 초 사이에 예정된 대선까지 행정부를 장악한다는 입장입니다.

이집트 인민의 민주화 요구에 불을 붙인 것은 11월 초 군부가 발표한 '신(新)헌법 기본원칙'입니다. 군부가 제시한 이 기본원칙에는 군부가 민간 정부의 수립 후에도 예산 등에서 정부 및 국회의 관리ㆍ감독을 피할 수 있는 권한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칼레드 파미 카이로 아메리칸 대학 교수는 "이집트 민주화의 가장 큰 적은 집권 군부"라며 "군부는 선거법을 매우 어렵게 꼬아놓고 감시ㆍ견제를 피할 수 있는 새 헌법원칙을 발표하는 등 장기집권의 꼼수를 부리고 있다"고 비판했습니다. 또 '이집트 현재당'을 창당한 이슬람 로트피는 "이집트 군부는 언론과 표현의 자유를 극도로 막고 있다"며 민주화 혁명 이후 진전되지 않는 민주주의의 현실을 지적했죠.

이집트 인민의 분노를 자극한 것은 군부뿐만이 아닙니다. 이집트 법원은 "이번 총선에서 무바라크 정권의 인사들도 참여할 수 있다"고 결정해 독재정권의 부역 세력을 정치권에서 뿌리뽑고자 하는 이집트 인민의 열망을 배신했죠.

현재 시위대는 군부에게 정권을 조속히 민간정부로 이양할 것을 요구하고 있습니다. 이집트 과도정권은 내각 총사퇴라는 방법으로 이 위기를 넘기고자 합니다. "에삼 샤라프 총리가 이끄는 정부는 최고군사위원회에 사퇴서를 제출했다"는 모하메드 헤가지 이집트 내각 대변인의 성명을 보아도 알 수 있듯이 현재 이집트 정치권력의 핵심은 군부, 최고군사위원회가 장악하고 있습니다. 내각 총 사퇴라는 꼬리자르기 시도에도 초점은 최고군사위원회 사령관인 후세인 탄타위에게 집중되고 있습니다.

미국의 '점령하라' 운동에 영감과 자신감을 전해줬던 이집트 인민은 민주화를 위한 제2의 봉기에 나서고 있는 듯 합니다. '4월 6일 운동'과 '혁명청년연합' 등은 오늘 오후 4시(한국시간 11월 22일 오후 11시) 타흐리르 광장에서 대규모 시위를 열겠다고 밝혔습니다. 알렉산드리아에서도 '백만인 행진'이 예고됐습니다.

이집트 인민에게 승리의 영광이 함께하길 바랍니다.

"우리의 요구는 단순하다. 군부는 물러나고 시민들에 의한 의회로 대치돼야 한다는 것이다."
"우리는 정부와 군사위원회가 물러날 때까지 이곳(타흐리르 광장)에 있을 것이다. 우리는 민간에 의한 국가를 원한다."
"지난 금요일(18일) 모든 정치적 계층의 사람들은 군부를 몰아내야 한다고 의견을 모았다. 우리는 민간의 민주적인 국가를 원하며 이러한 합의는 군부를 굴복시킬 것이다."

●프레시안|"이집트 총선 지옥으로 가고 있다" 최악 유혈사태(링크)
●프레시안|이집트 정국 격랑 … 내각 총사퇴, 시위대 '조기 대선' 요구(링크)
●참세상|격화되는 이집트 反군부 시위(링크)
●참세상|다시 일어난 민중봉기 … 이집트 과도내각 총사퇴(링크)
●경향신문|이집트 군부 유혈진압에 민주선거 좌초 위기(링크)
●중앙일보|타흐리르 광장 또 유혈시위 … 이집트 '제2 혁명' 불붙나(링크)

Posted by 때때로

이집트 카이로의 한 시민이 아랍세계 독재자들의 사진을 들어보이며 퇴진 촉구 시위를 벌이고 있다. 이미 축출된 자인 엘아비딘 벤알리 전 튀니지 대통령(맨 왼쪽)과 호스니 무바라크 전 이집트 대통령의 사진에는 ‘제거’를 뜻하는 표시가, 무아마르 카다피 리비아 국가지도자(가운데)와 하마드 빈 이사 알칼리파 바레인 국왕(오른쪽 두번째), 알리 압둘라 살레 예멘 대통령의 사진에는 물음표가 붙어있다. [한겨레, 카이로=AP 뉴시스]


아랍혁명은 지난 2009년의 이란 시위 때도 마찬가지였지만 '트위터 혁명' '페이스북 혁명' 등이라 불립니다. 이는 좌파와 우파 모두에게서 공통된 것이죠. 모바일을 기반으로 한 SNS는 민주주의의 열망에 새로운 도화선이 되고 있다는 것입니다. 전 이에 부정적인 편입니다. 새로운 기술과 도구가 혁명을 위한 새로운 방법들을 창출할 수 있겠지만 결국 결정적인 전투는 오프라인의 거리에서, 공장에서, 사무실에서 벌어지기 마련입니다. 이에 관련해 읽어볼 글은 조동원의 '아랍 혁명과 페이스북 '반'혁명'입니다.

아랍 혁명과 페이스북 '반'혁명, 조동원, 주간인권신문 인권오름(링크)
북아프리카와 서아시아 전역으로 번진 아랍의 사회 변혁운동이 처음에 튀니지에서 퍼져나오고 이집트로 확산되는 것처럼 보일 때, 지배 언론은 이를 '재스민 혁명' 말고도 '페이스북 혁명' '트위터 혁명' '위키리크스 혁명'으로 불렀다. 물론 사회운동 조직과 활동가들이 독재체제 하의 억압적인 미디어 환경에서 상대적으로 자유로운 해외의 페이스북이나 트위터 등을 효과적으로 이용해 시위 조직화와 대중동원을 이뤄낸 것이 사실이다(jadaliyya). 하지만 '페이스북 혁명'의 이면에는 페이스북 '반'혁명이 있다. 페이스북을 비롯한 이른바 '소셜 미디어(social media)'는 사회운동에 도움이 된 것 이상으로 지배 권력이 봉기와 혁명이 일어나지 않도록 인민을 감시하는데 써먹고 있는 도구다. (… 생략)

위 글에선 지적하고 있지 않지만 실제 SNS를 능숙하게 사용하는 사람들이 누구인가도 문제가 됩니다. 우리나라의 인터넷(모바일을 포함한) 보급률이 지나치게 높다보니 세계인의 대다수가 우리와 다를바 없는 모바일 생활을 누리는 것인냥 착각하기 쉽죠. 하지만 여전히 가난한 대다수의 아랍 인민들은 새로운 기술의 혜택으로부터 멀리 떨어져 있습니다. 이집트의 사례를 보면 SNS를 능숙하게 사용하는 중산층 이상이 아닌 하층 노동계급의 참여에 의해 무바라크를 쫓아낼 수 있었습니다.

또 한가지 생각해볼 점은 리비아 카다피의 반격과 학살에 맞선 국제적 연대의 가능성에 대한 것입니다. 보통은 유엔 혹은 미국과 서방 세계에 의한 군사적 개입, 비행금지구역의 설정 등을 제기하고 있습니다. 리비아 국민위원회조차도 카다피의 폭격을 막기 위한 비행금지구역 설정을 요청했습니다. 그런데 재밌는 것은 카다피가 위기에 처했을 때 지금 당장이라도 군사적 개입을 할 것 처럼 나섰던 미국이 오히려 카다피가 힘을 되찾는 듯 보이는 어제와 오늘 군사적 개입에서 한 발 빼는 듯한 모습을 보인다는 것이죠. 어쨌든 이와 관련해 진정한 국제연대는 어떻게 가능할 것인가 하는 문제가 제기되고 있습니다.

이집트 혁명 이후 레디앙에 뛰어난 분석을 연이어 기고한 문이얼(아이비스 에너지 전략 연구소)은 리바아 인민의 승패는 알제리 인민의 저항에 달려있다고 주장합니다. 그는 우선 카다피가 어떻게 힘을 되찾았는 가를 묻습니다. 그는 카다피의 배후로 알제리 정부를 지목하죠. 그렇기에 카다피의 목숨줄을 죄기 위한 결정적 힘은 바로 알제리 인민이 가지고 있다는 것입니다. 실제로 튀니지 혁명 이전부터 알제리에서도 반란과 시위가 계속됐다는 점에서 이는 매우 현실적인 대안이기도 합니다. 자세한 것은 그의 글을 읽어보세요.

리비아 해결 열쇠는 알제리 민중?, 문이얼, 레디앙(링크)
이와 관련해서 서방 언론을 비롯한 주류언론들이 애써 주목하지 않는 점 한가지를 다뤄보자. 최근의 외부의 군사적 개입 문제를 논외로 한다면, 카다피가 도대체 어떤 근거에서 그토록 완강하게 버틸 수 있는가에 대해서다. (… 생략 …) 알제리 통치자들은 리비아의 카다피가 몰락하면 다음 차례는 바로 자기 자신이 될까 봐 두려워하고 있었다. 이미 인근의 튀니지가 혁명으로 무너졌을 때도 그랬지만, 다시금 더 거대할 뿐 아니라, 정치 경제적으로 더 중요한 영향을 미치는 리비아마저 무장항쟁으로 카다피가 몰락 위기에 놓이자 알제리 정부는 다급해진 것이다. 결국 알제리 통치자들은 바로 자신의 생존을 위해서 카다피를 지원해야 하는 상황에 놓인 것이다. (… 생략 …) 이 점에서 현재 리비아 내전을 해결하기 위한 열쇠 가운데 하나는-서방의 공습이 아니라-중동 혁명에 영향 받아 알제리 군부에 저항하고 있는 알제리 민중들이 쥐고 있는지도 모른다. 이들이 알제리 정부를 붕괴시킨다면, 그 자체로 카다피에 대한 중요한 정치적, 군사적 타격일 것이다.

Posted by 때때로


예멘 '분노의 날' 예멘의 수도 사나에서 열린 반정부 시위에 참가한 한 남성이 1일 알리 압둘라 살레 대통령의 퇴진을 요구하는 구호를 외치고 있다. [경향신문, 사나=AP연합뉴스]


2006년 여름 쌍용자동차 파업 이후 자살한 이가 14명이 됐습니다. 신차를 발표하며 새로운 도약을 다짐하는 쌍용자동차. 하지만 해고자와 무급휴직자에겐 고통만이 계속되고 있습니다. 쌍용자동차만의 문제는 아니죠. 지난해 한겨레 보도에 의하면 인구 10만명 당 자살로 사망한 사람은 2001년 14.4명에서 2009년 31명으로 급격히 상승하고 있습니다. 고통스러운 현실은 나아질 기미를 보이지 않고 있습니다. 전셋값과 식료품 가격이 급등하면서 평범한 노동자의 삶을 무섭게 위협하고 있습니다. 구제역 사태는 가뜩이나 위기에 몰려있던 (축산)농민을 벼랑  끝으로 내몰고 있죠. 우리는 이 위기에서 살아남을 수 있을까요?

'벼랑 끝 삶' 쌍용차 해고자 또…, 경향신문(링크)
쌍용차 또 자살… "생활고 우울증 심해", 경향신문(링크)
자살률 '무서운 상승곡선', 한겨레(링크)
"5000원짜리 한 장으로 점심도 못 먹는 세상", 프레시안(링크)


세계화된 경제와 2008년의  금융위기로 고통받던 또다른 인민들이 있습니다. 그들은 야만적 왕정과 군부독재라는 이중의 고통을 겪어야만 했죠. 이들 중동 인민이 저항에 나선지 두 달. 리비아에서는 결정적인 전투가 벌어지고 있습니다. 하지만 상황은 그리 녹록하지 않습니다. 카다피는 자신의 통제 하에 있는 공군을 이용해 저항세력이 차지한 도시에 대한 반격을 시도했습니다. 물론 다행이 카다피의 시도는 격퇴되었다고 합니다. 카다피와 저항세력은 불안정한 균형 상태에 놓여있는 듯 합니다.

과거의 모든 정치적 격변에서 관찰할 수 있듯 이러한 균형은 오래가지 못합니다. 누가 먼저 이러한 상황을 탈피할 수 있는 능력을 갖추느냐가 문제겠죠. 제가 보기에 관건은 저항세력에게 있습니다. 우선 저항세력은 내부적으로 매우 불균등한 요소들로 가득 차 있습니다. 가장 문제가 되는 것은 카다피 정권 하에서 리비아의 구체제를 옹호하는 역할을 했던, 저항의 초기까지만 하더라도 카다피 편에 섰던 자들이 저항세력의 대표자들 중 하나로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압델 자릴 전 법무부 장관이 그 대표일 것입니다. 이미 여러 곳에서 자릴 전 장관과 현 저항세력과의 불협화음이 들려옵니다. 자릴은 해방된 뱅가지시에서 자신이 과도정부를 구성했다고 발표했었지만 국민위원회의 대변인은 이를 부정했죠. 구체제의 일부를 청산하지 않은 해방이라는게 얼마나 불안정한지는 우리나라의 역사만 봐도 알 수 있습니다.

우리 역사와 또 하나의 측면에서 연결되는 것이 있습니다. 외세의 군사적 개입의 문제입니다. 우리는 '학살'에 대한 소식에 분노하며 카다피에 대한 군사적 징치를 요구하기도 합니다. 하지만 이러한 군사적 개입이 리비아 혁명의 올바른 대안이 될 수 있을까요? 혁명의 초창기, 저항세력이 아직 승기를 잡지 못해 곳곳에서 카다피의 잔혹한 공격위협에 처했을 때는 왜 군사적 개입에 대한 얘기가 없었을까를 우린 물어야 합니다. 오히려 리비아의 대다수 지역이 저항세력의 손에 넘어가고, 이를 위해 인민 스스로 무장한 시점에서 미국과 유럽은 리비아에 대한 개입을 천명하고 실제적인 행동에 들어가고 있습니다. 미군은 28일 공식적으로 해군 함정과 공군기를 리비아 인근으로 배치했다고 밝혔습니다. 확인되지 않은 소식에 의하면 미군 특수부대원들이 벵가지시 등의 지역에 이미 투입(US Special Forces Arrive In Libya, 링크)됐다고 합니다.

미, 해·공군 전력 리비아 근접 배치, 경향신문(링크)
서방, 리비아 군사 개입 목적은 구질서 회복, 문이얼, 레디앙(링크)


문이얼은 리비아가 중요한 석유 생산국이라는 점, 특히 지난 몇년 간 다국적 석유회사들의 리비아 진출이 확대됐다는 점을 지적합니다. 여기에 카다피의 강경 대응으로 인해 저항세력 스스로 무장하기 시작했다는 것도 중요한 변수입니다.

카다피가 서방의 이해관계가 걸려 있는 중요한 석유시설에 대한 통제력을 잃어가고, 무장한 리비아 민중들이 이러한 시설을 통제하기 시작한 것은 서방에겐 엄청난 압박일 수 밖에 없다. 카다피가 무너진 이후가 더 걱정이라는 서방의 우려는 사실 이런 시설들이 자신의 이해관계에 순순히 따르지 않는 세력에게 돌아갈 것에 대한 두려움 때문이다. (… 생략 …) '인디펜던트'지 2월 27일자에 따르면, 영국 [석유] 업계는 겉으로는 독재정권을 용인하는 것은 아니라면서도 카다피의 몰락으로 2000년대 들어 지속되는 양국간 교역 확대기조의 역행을 우려하고 있다고 보도했다.
'서방, 리비아 군사 개입 목적은 구질서 회복', 문이얼, 레디앙

미국을 위시한 유럽의 개입 움직임을 보며 에르도안 터키 총리는 "국제사회는 리비아 국민들의 안녕보다 현지 석유 가치에 대해 더 우려하는 것 같다"고 꼬집었죠. 독재와 학살의 소식에 가만히 손놓고 있기는 어렵습니다. 나치의 유태인 학살은 제국주의 국가의 전쟁에 반대했던 수 많은 사회주의자들까지도 자진해서 군대에 가게끔 만들었었죠(하워드 진이 바로 그랬습니다). 하지만 어떠한 '국가', 그것이 현 세계체제의 유지에 핵심적 이해관계를 지닌 미국의 '군사적' 개입이 '인도주의적' 목적으로만 제한될 수 있다거나, 최소한의 '인도주의적' 결과를 가져올 수 있을 것이라고 보는 것은 환상일 뿐입니다. 발칸반도, 이라크, 아프가니스탄, 수단 등에 대한 미국(과 유엔)의 군사적 개입은 상황을 더욱 복잡하게만 만들었습니다. 더 많은 희생을 가져왔을 뿐이죠. 더 안좋은 것은 해당 지역 내의 자발적인 민주화 의지, 능력, 평화를 향한 노력을 파괴해 왔다는 것이죠.

리비아는 이슬람 정체성이 강한 북아프리카 국가라는 것도 고려해야 합니다. 식민주의의 경험이 아직도 생생한 나라죠. 카다피가 여러 정치위기에도 버틸 수 있었던 것은 그의 반제국주의적 수사 때문이었습니다. 미군의 개입은 반제국주의적 수사를 사용하는 구체제의 생존을 더욱 용이하게 할 것입니다(아프가니스탄에서 탈리반 세력이 다시 회복되고 있듯이).

아직 특정한 인물ㆍ세력을 지칭하진 않지만 미국 언론이 리비아에서 신뢰할 만한 인물로 꼽는 압델 자릴 전 법무부 장관은 구체제의 일부입니다. 미국의 개입은 잘해봤자 자릴 같은 자로 얼굴만 바꾼채 구체제를 유지하는 결과로 그칠 가능성이 높습니다. 안타깝고, 조바심이 나더라도 우린 리비아 인민의, 무장한 저항세력의 힘을 믿어야 합니다.

우리가 관심을 가져야 할 아랍혁명은 북아프리카 지역에서만 있는 것은 아닙니다. 사막의 모래바람에 가려 잘 보이진 않지만 아라비아 반도에서도 민주화에 대한 열망은 분출하고 있습니다. 3월 1일 예멘에서는 32년간 장기 집권해온 알리 압둘라 살레 대통령의 퇴진을 요구하는 시위가 열렸습니다. 이 시위에는 전국적으로 수십만명이 참여했다고 합니다. 리비아와 비슷한 시기에 저항이 시작됐지만 이후 지배자들의 유화책으로 다른 길을 걷는 듯 보였던 바레인에서도 저항이 확대되고 있습니다. 심지어 사우디 아라비아에서도 오는 11일 대규모 시위를 호소하는 외침이 확산되고 있습니다.

홍해 건넌 민주화 불씨, 아라비아 반도서 '활활', 경향신문(링크)


주류 언론에서는 아랍혁명이 중국과 북한으로 확산될 것인가에 큰 관심을 갖고 있습니다. 저도 당연히 그렇습니다. 그러나 그것이 중국과 북한에게만 해당되는 일일까 싶습니다. 이명박 정부 하에서 소리 없이 죽어가는 우리의 동료ㆍ이웃을 돌아보게 됩니다. 날로 개방적으로 변해가는 경제환경에서 '경쟁력'을 못갖춘 이들은 패배자로 조용히 생을 마감하고 있습니다. 사람 뿐입니까. 구제역으로 이미 300만 마리가 넘는 돼지와 소가 생매장됐습니다. 당장 어떠한 행동이 아니더라도 대안에 대한 고민이 더욱 절실해지는 시점입니다.

p.s 읽어볼 만한 글 : 중동 봉기에 관한 다섯 가지 미신 Juan Cole|연구공간L 옮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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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비아 동북부 토브룩시의 한 광장에서 22일(현지시간) 시위대와 군인들이 함께 무아마르 카다피를 비난하는 구호를 외치고 있다. 현재 토브룩을 비롯한 리비아 동부 지역은 반정부 시위대와 카다피에게 등을 돌린 군인들에 의해 대부분 장악됐다. [중앙일보, 토브룩 로이터=뉴시스]


카다피는 유엔에서 제일 길게 연설한 기록(4시간29분)을 갖고 있죠. 이 기록은 기네스북에도 올라있습니다. 그런 그가 어제(22일) 리비아 인민들에게 독기와 분노로 가득찬 협박을 75분간 TV를 통해 쏟아냈습니다. "마지막 피 한 방울이 스러질 때까지 싸울 것"이라고 전의를 다지는 그는 연설 내내 저항하는 인민을 "환각 유발 약물을 복용한 자들" "더러운 쥐들" "수염난 남자들(이슬람 근본주의자를 뜻하는 말)" "바퀴벌레"라고 비난했습니다. 말뿐인 욕설은 아닌 듯 합니다. 연설에서 그는 얼마나 남았는지 모를 자신의 지지자들에게 행동할 것을 호소하기도 했습니다. 군에는 석유 관련 시설을 파괴하라는 명령도 내렸다고 합니다. 한겨레는 카다피의 이러한 모습이 "로마를 불태운 네로 황제"를 떠올리게 한다고 꼬집었죠.

"과대망상 독재자" 겉모습 … "치밀한 카리스마" 분석도, 한겨레(링크)
75분간의 원맨쇼 - 카다피, 국영TV 나와 격한 몸짓으로 연설, 조선일보(링크)

시위 열흘이 가까워지면서 리비아의 상황은 더욱 예측불허가 되고 있습니다. 해외 언론의 취재가 봉쇄된 탓에 '혼란'과 '학살'에 대한 두려움은 더욱 커지고 있습니다. 실질적으로 얼마나 가능한지 불투명하지만 PKO 파병을 포함한 국제사회의 개입이 필요하다는 목소리도 나오고 있습니다. 하지만 단 한번도 성공한 적이 없었던 군사적 개입이 리비아에서 성공할 수 있을지 의문스럽습니다.

1990년대 발칸반도와 아프리카 분쟁에 대한 군사적 개입은 더 큰 혼란과 참극만 빚었죠. 게다가 미국의 개입으로 정치적 위기를 벗어날 수 있었던 카다피의 과거를 돌이켜볼 때 미국을 포함한 국제사회의 개입은 카다피에게 구명줄로 작용할 가능성이 큽니다. 1980년대 경제정책의 실패로 카다피는 정치적 위기에 처해 있었습니다. 이때 마침 미국은 다른 이유로 트리폴리와 벵가지를 폭격했습니다. 미국의 공격은 '반제투사'로서 카다피의 정치적 정당성을 강화해 정치적 위기를 벗어날 수 있도록 해줬죠. 1990년대에도 비슷한 일이 하나 더 있었죠. 카다피는 1987년부터 국제통화기금(IMF)와의 협력으로 개방적 신자유주의 정책을 펼쳤습니다. 이러한 정책으로 큰 손해를 본 농민과 노동자의 카다피에 대한 분노는 나날이 커져갔습니다. (이는 현재 저항의 깊은 뿌리이기도 합니다.) 이런 상황에서 1992년 유엔은 리비아에 대한 경제제재 조치를 취했습니다. 앞의 사례와 마찬가지로 이러한 외부적 제재는 다시 한 번 카다피의 정치적 목숨을 연장시켜 줬습니다. 이번에도 국제사회의 개입-군사적 개입 혹은 경제제재-는 '반제투사'라는 실제와 다른 카다피의 이미지를 더욱 강화해 그의 정치적 권위를 높여줄 가능성이 높습니다. 그동안 유엔의 개입 방식을 봤을 때 카다피를 실각시키더라도 기존의 권력, 즉 부족에게 힘을 몰아줄 가능성이 높습니다. 이는 거리의 저항에서 성장하고 있는 새로운 권력을 고사시키는 일이 될 것입니다.

리비아는 왜 격렬한가?, 문이얼, 레디앙(링크)

물론 매일 같이 신문 국제면을 가득 채운 학살과 참극의 소식은 우리에게 무언가 행동을 요구합니다. 아마도 가능한, 그리고 가장 효율적인 국제사회의 개입 수단은 '비행금지 구역 설정'과 이집트ㆍ튀니지ㆍ알제리 등 주변 국가의 국경 개방 및 난민 수용일 것으로 보입니다. 이는 카다피의 공군을 이용한 학살을 당장 저지할 유효한 수단임과 동시에 탄압을 피할 수 있는 장소를 제공하기 위해 시급히 시행되어야 할 수단으로 보입니다. 다행스럽게도 이집트 군대는 리비아-이집트 국경을 24시간 개방하고 있다고 합니다.

무엇보다도 거리에서 저항을 지속하고 있는 리비아 인민에 대한 신뢰가 필요한 듯 합니다. 로이터의 보도에 따르면 전직 육군 소장인 하니 사드 마르자는 "동부의 모든 지역이 카다피의 통제에서 벗어났으며 시민과 군인이 손을 맞잡고 있다"고 주장했습니다. CNN은 "봉기를 지휘하는 단일하고 통일된 지도부는 없는 것 같다"고 합니다. 하지만 동부 지역 일부에선 시위 지도부가 질서 회복을 위해 자체적으로 '인민위원회'들을 꾸린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1980년 5월 광주. 한국에서 광주는 폭도들이 점령한 무정부 구역으로 보도됐습니다. 해외에서는 전두환의 무자비한 학살 희생자로서만 보도됐습니다. 하지만 1980년 5월 광주는 또한 새로운 인민의 권력이 싹트고 있던 장소이기도 합니다. 지금 리비아를 바라보는 우리의 시선이 위 둘 중 하나는 아닌지 되돌아볼 필요가 있습니다. 42년간의 독재 체제를 깨뜨리고 분출하기 시작한 리비아 인민의 저력을 믿어볼 때이기도 합니다. 더구나 튀니지에서 시작한 아랍혁명은 단 몇 주만에 혁명의 다양한 단계를 급속도로 뛰어넘는 모습을 보이고 있습니다. 튀니지에선 거리에서의 시위, 이집트와 바레인에선 노동자의 총파업, 그리고 리비아에선 전면적인 무장항쟁으로 발전하고 있는 것입니다.

시위대 서부 일부 도시도 장악, 한겨레(링크)

저항의 물결은 아랍 세계뿐 아닙니다. 그리스에서 다시 노동자들이 긴축재정에 반발해 총파업을 벌였습니다. 미국 위스콘신에서도 주지사의 완강함에도 불구하고 공공 노동자의 노동권 보호를 위한 저항은 계속되고 있습니다. 1848년 유럽의 혁명은 실패로 끝났음에도 혁명 이후의 유럽은 이전의 유럽과 같을 수 없었습니다. 우리는 새로운 시대의 개막을 목격하고 있는지도 모릅니다. 리비아 인민의 승리를 응원합니다.

그리스 노동계 긴축재정 반발 총파업, 조선일보(링크)
미 위스콘신 '반 공무원 노조법' 전선 확대, 한겨레(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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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gypt supports Wisconsin workers"

2월 11일, 무바라크의 항복 선언 이후 이집트의 저항은 아랍  세계 전체로 확산되고 있습니다. 리비아와 바레인에서는 경찰과 군대를 동원한 공격이 있었다고 합니다. 바레인의 왕세자는 강경한 시위대의 모습에 한 발 물러서 대화를 하자고 나섰지만 가다피는 더욱 강경하게 군대를 동원해 시위대를 공격하고 있습니다. 현대적 통신망을 마비시킨 리비아 정부 때문에 정확한 소식은 들어오지 않지만 무바라크가 이집트에서 시도했던, 깡패와 흉악범을 동원한 유혈사태 기도가 있었다고도 합니다.

이집트의 저항은 아랍 세계 전체로 확산되는 것과 동시에 국내적으로는 그 깊이를 더해가고 있습니다. 한국 언론에선 침묵하고 있지만 노동자들의 파업이 확산되고 있습니다. 이 노동자들은 또한 국가로부터 독립적인 노동조합의 건설에 나서고 있습니다. 주류 언론에서는 언제나 혁명의 예측할 수 없는 급작스러움과 신기술의 영향력을 떠들기에 급급합니다. 우리나라의 1987년 6월 항쟁을 돌이켜봐도 그렇습니다. 그 전해의 건대항쟁과 5ㆍ3 인천 항쟁, 다시 그보다 앞선 85년의 구로동맹파업과 일일이 거론하기 힘든 여러 싸움들이 1987년 6월 항쟁을 준비해왔음을 우리는 기억합니다. 이집트도 마찬가지죠. 이번 시위의 중심적 역할을 한 청년 운동인 4월 6일 운동은 2008년 4월 6일의 노동자 파업으로부터 시작됐습니다. 레디앙에 실린 문이얼의 '이집트 제2혁명 더 큰놈이 오고 있다'에서 이집트 노동자 투쟁의 역할을 온당하게 평가하고 있습니다.

사실 이번 이집트 혁명은 지난 몇 년 전부터 이집트 내에서 가열되기 사작한 좀 더 긴 과정의 클라이맥스였다고 할 수 있는데, 그 분기점은 2000년대 후반에 등장했던 이집트 노동자들의 파업이라고 할 수 있다.

2008년 4월 6일에도 또다시 파업이 발생하였다. 파업이 발생하고나서 수시간만에 파업 규모가 엄청나게 늘어나자 파업 참여자들은 무바라크의 포스터를 끌어내리고 이를 짓밟았는데, 급기야 파업 노동자들은 경찰과 충돌하는 과감성을 보여주기도 했다.
이런 장면은 무바라크가 통치한 지난 30여년 동안 한번도 볼 수 없었던 장면으로 이집트 정부 관계자들을 놀라게 했다. 이들 파업으로 파업 참여 노동자들은 또다시 보너스와 임금 인상 등의 양보를 획득했고, 이 파업을 지지하면서 활동하는 과정에서 새로운 청년운동인 '4월 6일 운동'이 탄생했다.
'이집트 제2혁명 더 큰놈이 오고 있다', 문이얼, 레디앙(링크)

노동자 투쟁이 중요한 것은 2008년의 경제위기와 연결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지난해 유럽은 2008년 경제위기의 영향으로 발생한 노동자 투쟁으로 몸살을 앓았습니다. 지금은 가라앉은 듯 하지만 그 투쟁이 언제 다시 터져나올 지 모르는 상태라는 것은 이집트 투쟁과 지난 며칠간의 위스콘신 노동자 투쟁이 보여줍니다.

이런 추세는 지난 2004년 이후 기업가들로 구성된 소위 '개혁 내각'이 국제통화기금이 제시한 개혁 노선을 밀어붙이면서 더욱 더 악화되었다. 이 과정에서 공직자들 사이에 부패가 만연했고, 인플레이션과 식료품 가격 상승으로 인해 이집트 서민들의 생활은 날이 가면 갈수록 곤궁해졌다.
'이집트 제2혁명 더 큰놈이 오고 있다', 문이얼, 레디앙(링크)

위스콘신주는 1959년 주 공무원의 단체교섭권을 인정하는 법률을 최초로 제정한 주이지만 지난달 취임한 공화당 스캇 워커 주지사와 주의회가 재정적자를 이유로 공무원의 단체교섭권을 사실상 박탈하고 연금 및 건강보험 혜택을 축소하는 내용의 공직사회 구조조정 입법을 추진했다.
'"공무원 단체교섭권 박탈" 법안에 위스콘신주 7만여명 찬반 시위', 한국일보(링크)

위 한국일보 기사의 제목은 참 재밌습니다. 저 제목만 보면 7만여명이 반으로 나뉘어 찬반  시위를 벌인 듯 하지만 사실 대다수는 반대 시위대입니다. 김낙호(트위터 아이디 capcold)씨가 트위터를 통해 전해오는 소식에 의하면 날로 연대가 확산되어 간다고 합니다. 네이버 백과사전에 의하면 위스콘신주 주도인 매디슨의 인구는 2006년 현재 22만7642명입니다. 인구 20만명의 도시에서 7만여명이 시위에 참여했다는 거죠. 서울로 치면 350만 명이 시위에 참여한 것과 마찬가지죠. 물론 이런 상황에서도 주지사는 '침묵하는 다수' 드립을 하고 있답니다.

중요한 것은 이들이 저항에 나선 이유가 하나의 사건에 기반하고 있다는 것이죠. 스티글리츠가 통렬하게 지적하고 있듯이 2008년 경제위기를 맞은 미국 정부가 기업 살리기(기업복지)에 나서는 가운데 더 가난한 다수의 삶은 내팽겨쳐지고 있습니다(물론 의료보험 등에서 부분적인 개선이 있었죠). 경제위기에 대응하는 유럽 각국의 대응도 이와 별로 다를 바 없죠. 재정적자의 위험성을 강조하면서 다양한 복지혜택 등을 축소하는데 골몰하고 있는게 지난해 노동자 투쟁의 원인이었습니다. 이집트와 아랍 세계 인민은 경제위기로부터 더욱 직접적인 타격을 받고 있습니다. 유럽 정도의 복지혜택을 누리지 못하는 이들에게 이러한 타격은 생존을 위협하는 더욱 직접적인 것입니다. 여기에 지난 몇 십년간 지배해온 독재자에 대한 분노가 결합된 것이죠. 사실 이 둘은 분리하기 어렵습니다. 어느 하나를 강제로 분리하려 했을 때 나머지 절반(정치적 민주화)도 기형적 변화의 길로 접어들 수 밖에 없죠.

아랍의 투쟁은 우리의 과거를 돌이켜보게 합니다. 1960년 4ㆍ19, 1979년 박정희 암살부터 12ㆍ12 쿠데타, 1980년의 5ㆍ17 쿠데타, 5ㆍ18 광주항쟁, 1987년의 6ㆍ10 항쟁과 이어진 7ㆍ8ㆍ9월 노동자 대투쟁 …. 아랍의 투쟁은 이제 시작일 뿐입니다. 비록 그 투쟁이 독재자의 총탄 앞에 스러진다고 할지라도 그 영향력은 아랍의 정치에 만만치 않은 영향을 미칠 게 틀림 없습니다.

가볼 만한 사이트
2011년 아랍 혁명 : 연구공간 L의 블로그, 아랍혁명에 관한 다양한 해외 소식을 번역해서 올리는 곳, 지젝ㆍ바디우ㆍ네그리의 글도 볼수 있다.
아이비스 에너지 전략 연구소 : 중동ㆍ이스라엘을 둘러싼 국제관계 분석 블로그. 아랍혁명에 관한 깊이 있는 분석을 제공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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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월 8일(현지시간) 이집트 수도 카이로의 타흐리르 광장에서 와엘 고님(왼쪽)이 시위대에 둘러싸여 연설하고 있다. 구글의 중동ㆍ북아프리카 마케팅 책임자인 고님은 지난달 27일 시위 중 경찰에 붙잡혔다가 7일 석방된 뒤 이집트 민주화 시위의 영웅으로 떠올랐다. 8일 타흐리르 광장의 연단에 선 고님은 "나는 영웅이 아니다. 이 자리에 있는 당신들이 영웅"이라고 말하고 "이념과 정파를 초월해 모두 한마음으로 이집트를 위해 싸우자"고 외쳤다. [중앙일보 카이로 로이터=뉴시스]

뉴욕타임스 "2주 만에 가장 많은 인파"

소강 상태로 접어들리라는 예상을 뒤엎고 8일과 9일 연이어 최대 규모의 시위가 이집트를 뒤흔들었습니다. AP 추산 25만명, 뉴욕타임스는 "2주 만에 가장 많은 인파", BBC는 "시위가 시작된 지난달 25일 이후 가장 큰 규모"라고 보도했습니다.

시위의 규모만 커진 것은 아닙니다. 9일 타흐리르 광장 주변에서 농성과 집회에 참여하던 일부 시위대는 의회로 행진을 시도했습니다. 의원들의 자진 사퇴와 의회 해산을 요구했죠.

이집트의 저항이 사그라들줄 모르자 이런저런 양보안을 내놓았던 술레이만이 시위대를 협박하고 나섰습니다. 9일 언론사 대표들을 만난 술레이만 부통령은 "경찰력을 동원해 문제를 풀길 원치 않지만, 시위사태의 장기화를 더는 견디기 어렵다"고 말했습니다. 또한 "정권이 뒤집히거나 무바라크 대통령이 당장 물러나는 일은 없을 것"이라며 "대화로 문제를 풀지 못한다면 남은 선택은 거대한 혼란과 쿠데타뿐"이라고 협박했습니다.

하지만 이집트 저항의 날로 급진화 하면서 그의 협박은 힘을 잃는 듯 합니다. 술레이만의 든든한 지원자로 보였던 미국조차도 '긴급조치 해제' '언론인ㆍ시민운동가에 대한 구타ㆍ폭력ㆍ체포 즉각 금지 및 집회와 표현의 자유 보장' '야권과의 대화' '정권이양 로드맵과 일정개발에 야권 인사 참여'를 촉구하고 나섰으니까요.

[조선일보] 수십만 시위대 재집결… 정부 "더이상 못 참아" 링크
[조선일보] 이집트 시위대 의회 앞 진출 … 해산 요구 링크


노동자의 시위ㆍ파업, 독립노동조합의 건설

특히 노동자들의 시위 진출이 이집트 저항의 중요 변수로 급부상 하고 있습니다. 100만 명 이상이 참여하는 시위에 당연히 노동자들도 포함돼 있었겠죠. 중요한 것은 그들이 '개인'이 아닌 '집단'으로서 정체성을 드러내기 시작한 것입니다.

텔레콤 이집트 노동자 300여 명이 임금 인상을 요구하며 시위를 벌였습니다. 이집트에서 가장 중요한 시설인 수에즈 운하에서도 노동자의 집단적 저항이 시작됐습니다. 수에즈운하당국 소속 5개의 서비스회사 소속 6000여 명의 노동자가 임금 인상과 노동조건 개선을 요구하며 8일부터 연좌시위에 들어갔습니다. 2000여 명의 섬유노동자도 노동권을 요구하며 시위를 벌였다고 하네요. 수도인 카이로에서는 공공부문 청소노동자 1500명 이상이 정부 중앙청사 앞에서 시위를 했습니다.

이러한 흐름은 독립적이고 민주적인 노동조합의 건설로 나타나고 있습니다. 이미 지난달 30일 독립노동조합연맹이 건설됐다고 합니다. 한국에서 1987년 6월의 대중시위 이후 노동자의 집단적 저항까지 한달이 걸렸죠. 그리고 노동자 대투쟁 이후 10년 가까이 흐르고서야 민주노총이 만들어졌다는 것과도 비교해보세요. 이집트의 상황은 무척 빠르게 발전하고 있습니다.

[참세상] 이집트 봉기, 도약하는가 링크


이집트 저항의 새 아이콘 '구글'?

특별한 지도자 없이 진행되던 이집트 저항에서 30살의 청년이 시위의 아이콘으로 급부상하고 있습니다. 그는 바로 구글의 중동ㆍ북아프리카 마케팅 매니저인 와엘 고님(Wael Ghonim)입니다.

지난달 27일 시위 중 체포됐었던 고님은 11일만인 8일 풀려나 타흐리르 광장의 군중 앞에 섰습니다. 그는 "나는 영웅이 아니다. 이 자리에 있는 당신들이 영웅"이라고 말하고 "이념과 정파를 초월해 모두 한마음으로 이집트를 위해 싸우자"고 외쳤습니다.

[중앙일보] 'SNS 영웅' 고님, 시위 다시 불붙이다 링크
[조선일보] '구글 청년' 고님이 떴다 … "시위 새 목소리를 얻다" 링크


이슬람 세계에 돌파구를 내다

중동의 정치지형을 지배해온 것은 이슬람 근본주의의 지배(사우디아라비아)와 테러(알 카에다), 시아파-수니파의 종파간 대립, 기독교ㆍ유대교와의 대결이었습니다. 이러한 상황은 서구 지배자들에게는 물론 좌파들에게까지도 이슬람 세계의 종교족 완고함이라는 이미지를 떨치기 어렵게 했죠. 일부 좌파도 중동지역 인민의 '민주주의적 자질'을 의심할 지경이었습니다. 물론 여기에는 강력한 탄압으로 인해 세속주의적 대안이 성장하지 못했던 이유도 있습니다.

그러나 이번 이집트의 저항은 이슬람 세계를 둘러싼 세계의 이러한 인식은 물론 무슬림 스스로의 인식에도 큰 균열을 나았습니다. 1979년 이란 혁명 이후 처음으로 종파간 대립을 뛰어넘는 '대중적' 저항이 가능하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죠. 이집트는 알 카에다의 2인자인 알 자와히리의 모국이지만 2주가 넘어가는 이번 저항에서 알 카에다는 그 어떤 역할도 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심지어 이란의 최고 종교 지도자인 하메네이조차도 지난 2월 4일 이번 이집트 혁명의 '세속적' 성격을 인정하면서 "30여년 전에 발생한 위대한 이슬람 혁명이 이집트나 튀니지, 기타 다른 이슬람 국가들에서도 똑같이 일어날 것이라고 기대하는 것은 현실적이지도, 논리적이지도 못하다"라고 말했다."
- '종교 뛰어넘는 단결, 새로운 저항운동', 문이얼(아이비스에너지전략연구소), 레디앙

이집트의 저항이 초기와 같은 열기를 계속 지닌채 전진할 수 있을지는 아직 의문입니다. 대중의 열기를 담을 용기(실린더), 즉 조직의 부재 때문입니다. 물론 대중적 기반을 지닌 무슬림형제단이 좀더 세속주의적으로 움직이려는 모습을 보이고 있긴 하지만 내부의 근본주의적 세력의 압력 또한 무시할 순 없습니다. 혁명의 전진이 꺾였을 때 퇴행적인 종교 근본주의적 압력은 다시 커질 가능성이 높습니다.

그럼에도 이번 이집트 혁명은 실제적인 결과를 낳고 있기도 합니다. 대중의 폭발적 저항에 놀란 이슬람 세계의 지배자들은 아래로부터의 압력에 밀려 위로부터의 변화를 꾀하는 듯 합니다. 심지어 그 완고한 사우디아라비아에서조차 말이죠. 알-파이잘 사이디 왕자는 지난주 5명의 국민을 불러 얼마전 발생한 홍수 사태의 수습을 위한 정부의 노력을 설명했습니다. 겨우 5명이라고는 하지만 그 중에는 정부를 비판해 2년간 감옥에 갇혔었던 반정부 블로거도 포함돼 있다는 게 중요합니다.

[레디앙] 이집트 중간결산 … 권력자 퇴진선언 이어져, 중동이 바뀐다 링크


굳은 벽에 균열을 내고 전진하기 시작한 이집트 인민에게 승리가 함께하길 바라며 오늘의 이집트 소식을 마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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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바라크 '상징적 장례식' |이집트 반정부 시위대들이 6일 수도 카이로의 타흐리르 광장에서 아랍어로 '나가라' '애도하지 않는다' 등을 적은 천을 들고 독재자 호스니 무바라크 대통령에 대한 상징적 장례식을 벌이고 있다. 카이로=AP연합뉴스


술레이만과 무슬림형제단의 타협(이집트 정부ㆍ야권 '개헌委 구성' 합의 링크)으로 이집트 혁명이 한 고비를 넘는 듯 합니다. 이 타협이 가능할지, 타협이 성사된다고 해서 분노한 대중을 만족시킬 수 있을지는 아직 알 수 없습니다. 진행되는 상황은 한국의 1987년과 비슷해보입니다.

그렇지만 이집트 내 정치적 대안세력의 현 상황은 지금의 타협을 어렵게 할 가능성이 크죠. 월러스틴("제2차 아랍 봉기 최대 피해자는 미국" 링크)의 지적 처럼 대안으로 부상하고 있는 세속적 자유주의 세력은 대중적 기반을 지니고 있지 못합니다. 대중적 기반을 지닌 거의 유일한 대안 세력인 무슬림형제단은 이집트의 지정학적 위치로부터 제한을 받고 있습니다. 그들은 아프가니스탄의 탈리반보다는 훨씬 세속적이지만 미국으로부터 여전히 '이슬람 근본주의' 조직이라는 의심을 받고 있습니다. 그리고 미국은 수에즈 운하가 있고 그동안 "급진 이슬람 혁명에 대한 방어진지이자 이스라엘의 이해와 공조"에 앞장서온 이집트를 자신의 통제권에서 놓아주려 하지 않습니다. 즉, 무슬림형제단은 탈레반과 같은 길(미국에 대한 적극적이고 군사적인 저항)을 걸을 의지가 없는 상황에서 집권의 꿈을 실현하기 위해서는 미국의 눈치를 안 볼 수가 없습니다. 이러한 상황이 바로 어제의 타협의 배경이 된 듯 합니다.

이집트 정부와 야당, 미국 등은 이와 같은 타협을 통해 이집트 혁명이 '연착륙'하길 바랍니다. 하지만 권영숙이 지적하 듯 처음부터 사회경제적 쟁점과 정치적 민주주의가 함께 제기되고 있는 상황에서 그 타협은 한국에서보다 더욱 불안정할 가능성이 큽니다.

"현재의 시위는 1)애초에 두 명의 빈민노점상의 분신항의에서 촉발했듯이 사회경제적인 성격이 강하다는 점, 2)그러면서 국영기업을 주축으로 한 '국가자본주의'적 성격이 강한 이 나라에서는 정치엘리트=경제엘리트(소위 state business elite)인지라, 무바라크등 소수 정치엘리트에 대한 공격과 경제적인 요구의 양자가 구분되기 어렵다는 점이 특징이다(예를 들어 이 국가는 군부가 방산업체 대부분을 경영하는 식이다). 토니 블레어, 오바마등이 그래서 이집트사태 해결에  '경제개혁'이 중요한 과제라고 이미 말했었다."
- 이집트 시위의 성격과 전망, 권영숙(링크)

게다가 이러한 쟁점은 국제적인 상황으로 인해 해결될 가능성이 낮습니다. 이집트 인민들의 경제적 어려움은 2008년 시작된 세계적 경제위기와 큰 연관성을 갖습니다. 곡물가격은 2008년 이후 다시 최고점을 찍고 있습니다(미국 '달러 풀기' 정책이 중동 혁명의 도화선? 링크). 미국의 양적완화는 개발도상국에서의 인플레이션을 더욱 자극하고 있죠. 게다가 여전히 회복되지 않는 경제 상황에서 원유가격의 급변을 원치 않는 미국과 선진국가들은 이집트의 불안을 좌시할 수 없습니다. 미국은 '믿을 만한' 세력이 지금의 상황을 최대한 빨리 통제하길 바랍니다. 그들은 이집트 군부와 술레이만 부통령이 야권과의 타협을 통해 최대한 빨리 '질서'를 회복하길 바라는 듯 합니다(미, 이집트 정책 점진적 개혁' 가닥 링크). 하지만 그들이 원하는 세력은 혁명에 나선 인민들이 원하는 세력은 아닙니다. 미국을 배경으로 상황을 통제하려 노력하는 술레이만은 무바라크 하에서 탄압에 가장 앞장섰던 인물이기도 합니다(중동의 가장 공포스러운 스파이 두목 … '미스터 고문' 술레이만 링크).

튀니지에서 시작된 아랍의 저항은 이집트에서 전세계적인 폭풍으로 확대되고 있습니다. 이집트 이전부터 저항의 물결이 일고 있던 알제리 등은 물론 오래된 화약고인 발칸반도에도 불이 옮겨붙는 듯 합니다. 두려움을 떨쳐내고 일어선 이집트 인민의 반란이 성공할지 실패할지는 아직 알 수 없습니다. 하지만 2011년을 연 이집트의 저항은 21세기 첫 10년에서 가장 중요한 사건으로 지금 현재도 계속되고 있습니다. 위대한 길을 향해 과감한 발걸음을 뗀 이집트 인민에게 승리가 함께하길 바랍니다.

●기타 참조할 만한 글(아이비스 에너지 전략 연구소)
- 튀니지 항쟁, 자본-국제기구가 격발
- 이집트서 미 제국 붕괴조짐을 본다

Posted by 때때로


"무바라크 타도"라고 적힌 푯말을 들고있는 이집트 소녀. [AP=연합뉴스]


튀니지에 이어 이집트를 뒤흔드는 아랍 봉기에 대해 월러스틴이 논평을 내놨습니다. 그는 이번 시위와 파업을 1916년 오스만트루크 제국에 저항한 샤리프 후세인 빈 알리의 봉기를 잇는 2차 아랍 봉기라고 부릅니다.

월러스틴의 글은 한 청년의 분신으로부터 시작된 이번 시위가 어떻게 지네 엘 아비디네 벤 알리 튀니지 대통령을 쫓아낼 수 있었느지에 대한 분석으로부터 시작합니다. 그리고 현재 상황에서 가장 큰 관심을 모으는 두 가지에 대한 분석과 전망을 내놓습니다. 첫 번째는 이집트 국내에서의 승자는 누가 될 것인가이고 두번째는 이번 봉기가 세계 체제의 권력에 어떤 영향을 미칠 것인가 하는 점입니다.

국내 상황은 복잡합니다. 그것은 지금 상황에서 권력을 잡을 의지와 열정을 지닌 조직된 정치 세력의 부재로부터 비롯합니다. 우선 무바라크로부터 권력을 이양받을 유력한 후보를 보유한 부르주아 자유주의자들은 그들의 의지와 달리 탄탄한 기반을 갖지 못했습니다. 1917년 볼셰비키가 그랬던 것과 같은 세석주의적이고 급진적인 세력은 존재하지 않습니다. 권력을 잡고자 하는 의지와 대중적 기반을 지닌 세력은 이슬람 급진주의자들입니다. 이집트에선 '무슬림 형제단'이 바로 그들이죠. 일부 사람들은 이들 무슬림 형제단을 탈레반과 동일시 하는 잘못을 하기도 합니다. 이들은 월러스틴이 지적했 듯이 샤리아 율법을 시행하고자 하는 극단적인 이슬람과 어느정도 세속적인 터키에서의 이슬람과 같은 세력의 중간에 위치해 있습니다.

월러스틴의 두 번째 분석은 국제적인 세력관계에 대한 것으로 이어집니다. 많은 이들이 지적하는 것 처럼 이번 봉기의 가장 큰 패배자는 미국일 수밖에 없습니다. 미국은 이전과 달리 상황을 전혀 주도하고 있지 못합니다. 그들은 이집트와 아랍 지역 내의 상황에 수동적으로 끌려다니고 있습니다. 월러스틴은 지적하지 않지만 쇠락하는 제국일지라도 그들의 개입능력을 우습게 봐선 안 될 것입니다. 이미 미국은 이집트 군부와의 채널을 가동시키고 있는 듯 합니다.

19세기 이후 외세에 자신의 운명을 맡겨와야만 했던 아랍 민중들이 스스로 자신의 운명을 결정하기 위한 위대한 여정에 나섰습니다. 이 운동은 그리 쉽게 패배하진 않을 것입니다. 하지만 대안적 정치세력이 부재한 상황에서 승리도 그리 만만한 것만은 아닙니다. 결국은 그들 스스로 운명을 개척하기 위해선 급진적 대안을 건설하는게 무엇보다 필요할 것입니다. 아래에 월러스틴 논평의 일부를 첨부합니다.


[월러스틴 논평] "제2차 아랍 봉기, 최대 피해자는 미국"

그렇다면 누가 승자이고 누가 패자인가? 튀니지와 이집트 아니 아랍권 전체에서 누가 권력을 잡게 될지 우리는 앞으로 최소 6개월간 혹은 그보다 더 오랜 시간 동안 알 수 없을 것이다. 자연발생적인 봉기는 1917년 러시아와 같은 상황을 만들고 있다. "권력은 길거리에 있다"는 레닌의 말과 같은 상황을 만들고 있다. 볼셰비키가 그랬듯 조직되고 결연한 의지를 가진 세력만이 권력을 잡을 수 있다.

아랍 국가들의 정치 상황은 각각 다르다. 볼셰비키처럼 강력한 조직을 가지고 있고 세속적이며(이슬람교 신정체제를 추구하지 않음 : 옮긴이) 급진적인 정당을 가지고 있어서 권력을 잡을 준비가 되어 있는 세력은 현재 아랍 국가 어디에도 없다. 주역이 되고 싶지만 탄탄한 기반은 거의 없는 부르주아적 자유주의 운동만이 다양하게 있을 뿐이다.

가장 조직화된 운동은 이슬람주의자들의 운동이다. 그러나 이슬람주의 운동도 하나의 색깔을 가지고 있지 않다. 그들이 추구하는 이슬람주의 국가의 형태는 매우 다양하다. 터키처럼 다른 세력들에게도 비교적 열려 있는 형태에서부터 (탈레반 정권 시절의 아프가니스탄처럼) 샤리아 율법의 엄격히 적용하는 가혹한 형태까지 다양하다. 이집트 무슬림형제단은 그 중간 정도에 있다. 어떤 체제가 될 것인지는 불확실하고 시시때때로 바뀌기 때문에 국내적인 차원에서 누가 승자가 될지는 너무나 불확실하다.

Posted by 때때로


이집트 @중앙일보 연합뉴스

튀니지에서 시작한 저항의 물결이 이집트를 뒤엎고 있습니다. 내 코가 석잔데 머나먼 나라의 이야기까지 신경쓸 여유가 있을까 싶을 때도 있어요. 사람들을 열광시켰던 시위와 파업도 시간이 지나고 나면 별것 아닌 것처럼 보일 때도 많죠. 최악의 경우는 이란 혁명 처럼 혁명의 열매가 급진 이슬람주의자들에게 떨어지기도 하죠.

그럼에도 언제나 억압과 착취에 저항하는 시위와 파업은 큰 희망을 줍니다. 특히 지난해부터 이어져온 여러 투쟁들은 어떤 하나의 연관을 보여주고 있으니까요. 2008년 그 정체를 뚜렷이 드러낸 현재의 경제위기가 여전히 출구를 찾지 못한다는 데서 이 투쟁들의 중요성이 두드러집니다. 그리스와 프랑스, 스페인을 휩쓴 파업은 경제위기의 직접적인 여파죠. 이번 튀니지와 이집트의 저항은 경제위기를 극복하기 위한 서구 선진국, 특히 미국의 경제적 조치가 제3세계의 억압적인 정치체제와 만나는 지점에서 터져나왔습니다.

경제위기를 극복하기 위해 미 연준은 끊임없이 돈을 찍어내고 있습니다. 이른바 '양적 완화'죠. 이름은 참 멋집니다. 하지만 이 찍어낸 돈들은 미국의 경제를 부흥시키긴 커녕 다른 국가들로 흘러들어가 주식 거품을 키운다던가(한국 등 동아시아) 인플레이션을 악화시키고 있습니다. 게다가 2000년대 들어서 더욱 심해진 곡물과 원자재에 대한 국제적인 투기는 제3세계 인민들의 삶을 더욱 위태롭게 하고 있습니다. 튀니지에서 노점상의 자살로 이 시위가 시작됐다는 것이 이점을 분명하게 보여주고 있기도 하죠. 어떤 식으로 이 시위가 타협점을 찾을지 모르겠습니다. 더구나 이집트는 그 지정학상 위치 때문에 국내의 문제만으로 끝나기는 어려울 듯 싶습니다. 김세균 교수 홈페이지에 이와 관련된 글이 있더군요.

이집트 시위의 성격과 전망(링크)

이번 이집트의 저항은 지난해 프랑스 시위 이상의 격렬한 충돌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그 이유는 위에 링크한 글에서 지적하고 있듯이 사회경제적 이슈가 정치적 이슈와 분리되지 않는 이집트 정치사회의 특징과도 연결돼 있습니다. 즉, 패배든 승리든 이집트의 저항은 무척 큰 판돈을 놓고하는 도박과 비슷합니다. 프랑스와 같이 물밑에서 부글부글 끓는 것으로 가라앉기만 바라긴 쉽지 않다는 것이죠. 튀니지에서 시작된 불꽃이 지중해와 인도양을 잇는 이집트로 튀었습니다. 다음 불꽃은 어디가 될까요.



튀니지 @boston.com Getty Image

Posted by 때때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