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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대선에서 트럼프의 당선에 좌절한 것은 한국의 자유주의 세력, 페미니스트들 만은 아니다. 사실 우파들도 어디로 튈지 모르는 이 얌체공 같은 인물을 두려운 눈길로 바라보고 있다.

한국 자유주의자들의 절망과 공포는 이해할 만한 여지가 있긴 하다. 샌더스가 미국 민주당 경선에서 패배한 후 한국 언론은 트럼프가 얼마나 혐오스러운 인물인지 전하는 데만 힘을 써왔다. 뉴욕타임즈와 CNN의 받아쓰기가 한국 언론 외신보도의 전부임을 고려하면 이는 미국 언론의 대선 보도와 일맥상통할 것이다. 클린턴의 이메일 스캔들에 대해 전하긴 하지만 시종일관 그는 우아하고 품위 있는, 책임 있는 대통령에 어울리는 사람으로만 그려졌지 그와 그의 민주당이 해온 일에 대해선 시종 침묵했다. 샌더스가 물러난 뒤로는 계속해서 말이다.

그런데 한국 교육부 고위 관료가 생각하듯 인민은 개ㆍ돼지가 아니다. 한국의 자유주의자들이 생각하듯 미국의 인민 다수가 팝콘을 씹으며 수퍼보울에만 열광하는 얼간이들도 아니다. 1994년 북미자유무역협정(NAFTA) 체결 후 그들은 자신의 일자리가 사라져가는 걸 눈앞에서 지켜봐야만 했고, 자신의 자식들이 맥도날드와 월마트에서 저임금 노동에 종사해야만 한다는 걸 발견하게 됐다. 천문학적인 돈을 쏟아부어 만든 첨단 무기들이 동유럽과 중동의 인민을 학살하는 동안 그들은 자신의 가난한 동네의 공립학교가 축소되는 것을 무기력하게 바라만 봐야 했다.

남편 클린턴의 민주당 정부에서, 아들 부시의 공화당 정부에서도, 다시 오바마 정부에서도 상황은 변하지 않았다. 2011년 미국의 청년과 노동자들이 월스트리트 권력에 맞서 오큐파이 운동을 벌였을 때 클린턴은 월스트리트의 권력자들과 손을 잡고 있었다. 그해 말과 다음해 초, 오바마 정부는 연방정부 차원에서 직접 지휘해 전국적인 오큐파이 운동을 진압해 말살했다. 2012년 시카고 교사 노동자들의 파업은, '오바마의 남자'라고 불리던 람 이매뉴얼 시장의 시장주의 '교육개혁'에 맞서 일어난 것이다. 흑인 오바마 정부 하에서도 경찰의 흑인 살해는 끝없이 일어나고 있다. 그는 감동적으로 '어메이징 그레이스'를 함께 부르긴 했지만 연방정부의 권력을 이용해 주 경찰들의 전횡을 막진 않았다. 오큐파이 운동 진압 때와는 달리 말이다.

클린턴은 여성이기 이전에 무엇보다도 바로 이러한 정치 시스템의 정통 후계자로 여겨진 것이다. 실제 투표 결과를 봐도 올해 트럼프가 받은 표는 2012년 공화당 후보 롬니가 받은 표보다 적다. 문제는 클린턴이 받은 표가 2012년의 오바마가 받은 표보다 크게 준 것이다
(그래프 ①). 출구조사를 보면 특히 연 소득 5만 달러 이하에서 지지가 급격히 줄었다. 그럼에도 이 연 소득 5만 달러 이하의 가난한 사람들의 절반 이상은 여전히 민주당 후보에 표를 던진 것으로 나타난다(그래프 ②). 결국 트럼프 승리의 의미는 더 많은 수의 가난한 백인 노동계급이 백인 남성에게 표를 던진 게 아니라, 지난 8년간 클린턴도 중요한 일원으로 참여해온 오바마 정부에 실망한 가난한 인민이 민주당에 대한 지지를 거뒀다는 것이다.

그래프 ① 미국 대통령 선거 득표수 변화


그래프 ② 소득별 지지율 변화(출구조사)


그러니까 우리는 여기서 한국 우파들의 미 대선 결과에 대한 우려를 살펴봐야 한다. 그들은 무엇보다도 트럼프가 한ㆍ미FTA를 무효화 시킬까 두려워한다. 그들은 미국 정부가 남한을 군사적 보호에서 제외할 것을 염려한다. 그들은 미국 정부의 대북 정책이 전환할 것에 골치아파 하고 있다. 왜냐면 신자유주의적 경제정책을 지지하며 중동과 동아시아에서 군사적 대결정책을 강경하게 밀고나가는 매파인, 미국 정치 시스템의 적자로서 클린턴이 대통령이 됐다면, 아무런 걱정 없이 '이대로' 상황을 유지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물론 트럼프라고 해서 지금 상황이 크게 달라질 것은 없다. 그는 무엇보다도 미국 기업 시스템의 적자이다. 그의 기회주의적 과거를 되돌아보면 레토릭과 달리 신자유주의적 경제는 그대로 유지될 것이며, 미국의 군사주의적 도전은 변치 않을 것이다. 부시도 해외 개입의 축소, 고립주의를 외치며 당선됐지만 미국이라는 나라가 해온 일의 부메랑에 맞은 뒤 군사주의적 개입을 더 적극 펼칠 수밖에 없었다. 그것은 한편 자신의 가족과 국내외 친구들의 기업을 위한 일이기도 했다.

문제는 클린턴이냐 트럼프냐가 아니다. 트럼프 같은 쓰레기가 미국 대통령이 됐다고 해서 크게 실망할 일도 아니다. 무릇 정치는 두 개의 머리를 지니고 성장하기 때문이다. 우리는 바로 얼마 전까지 샌더스 열풍을 목도했다. 올해 시카고 교사 노동자들은 다시 파업에 나섰으며 버라이존과 월마트 같은 새로운 부문의 노동자운동 성장도 계속되고 있다. 희망은 워싱톤이 아니라 도시의 거리에서, 사무실ㆍ학교, 공장에서 자라나고 있다.

한국에서도 다르지 않다. 모든 악의 근원이 최순실로, 그리고 박근혜로 모아지고 있다. 대기업들도 공범이라는 목소리가 크지만 민주당이나 야당도 공범이라는 목소리는 찾기 힘들다. 그렇지만 우리는 기억해야 한다. 김대중 정권에서, 노무현 정권에서 계속해서 시장의 권력은 커져갔으며 노동자의 삶의 조건은 악화돼 갔음을. 이명박과 박근혜는 그것을 가속화시켰을 따름이다. 우리는 눈 앞의 적에 집중해야 하지만 12일 거리로 나오겠다는 민주당과 국민의당도 결코 우리 편이 아니었음을 기억해야 한다. 그렇지 않았을 때 우리는 다시 박근혜와 같은, 미국의 트럼프보다 더 한 인물이 한국의 권력을 잡을 수 있음을 알아야 한다.

2016.03.15 00:52

의심스러운 민주주의 투사, 포포비치 2016.03.15 00:52

최근 스르야 포포비치의 '독재자를 무너뜨리는 법'이라는 책이 번역∙출간됐다. 한겨레 신문에서도 그의 책을 금요일자 북섹션의 톱으로 소개해줬다. 그러나 '민주주의 투사'로서 그의 조언을 진지하게 고려하기엔 조금 조심스럽다. 그의 경력엔 많은 논란의 여지가 있다.

아래 글은 US Uncut
(미국의 긴축정책 반대 단체) 활동가 칼 깁슨이 위키리크스에 공개된 스트랫포의 e메일을 기초로 조사한 내용을 폭로한 것이다. 스트랫포는 미국 정부와 기업의 이익을 위해 활동해 왔다. 이들은 자신의 이해관계에 해가 되는 정권을 교체하는 데 있어 폭격과 항모전단보다 해당 국가에서 '민주주의'를 명분으로 한 사회운동을 조장하는 게 더 유용하다고 폭로된 e메일에서 주장하고 있다. 실제로 이들이 CIA와 같은 물리적 힘(군사력 뿐 아니라 공작을 위한 조직ㆍ자금 등)을 동원할 능력이 있는지는 의문이다. 그럼에도 이 기업이 미국 정부와 기업들의 이익을 위한 정보 조사ㆍ분석 활동을 주 업무로 하고 있다는 점은 분명하다.

폭로된 e메일에 따르면 스트랫포가 이러한 자신의 목적을 위해 동유럽과 중동지역에서 활용한 가장 대표적인 인물이 바로 스르야 포포비치다. 스트랫포는 포포비치의 민주주의 활동가로서 국제적인 명성을 활용하고자 했다. 포포비치가 가진 세계적인 활동가 연락망을 이용해 주요 국가의 활동가 정보를 수집해 왔다. 그들은 미국에서 오큐파이 활동가들을 미행∙감시한 것이 폭로돼 논란을 일으켰다. 아래 글에 따르면 포포비치는 미국 활동가들을 접촉해 그 정보를 스트랫포에 전달했을 뿐 아니라 바레인에서 인권활동가들을 접촉해 그 정보를 넘겼고, 심지어 그가 명성을 얻은 세르비아의 오트포르! 운동 활동가들의 정보조차 사전 동의 없이 제공했다.

포포비치가 의식적인 프락치는 아니었을 수도 있다. 그러나 그가 자신의 개인적 부와 명성을 위해서일지라도 미국 정부와 기업을 위해 일하는 정보업체와 어떤 관계를 맺어온 것은 분명해 보인다. 그는 스트랫포의 임직원들을 위해 강연을 했고, 그의 아내는 스트랫포에서 직접 일했었다. 애초 포포비치는 자신의 결혼식에 스트랫포의 많은 임직원들을 초대하기도 했다.

더 위험한 것은 그가 말하는 '혁명'이다. 그가 주 대상으로 삼는 국가ㆍ정부가 주로 그 나라 안에서 압제와 전횡을 일삼는 독재자임은 분명하다. 그러나 어떤 식으로 보더라도 그의 '혁명'은 미국의 외교 언어인 '정권 교체
(regime change)'이지 사회ㆍ경제 전체의 근본적 변혁으로서 '혁명'은 아니다. 더구나 그가 '정권 교체'를 노리는 정부는 거의 언제나 미국의 눈엣 가시 같은 존재인 나라들 만이다. 그러니까 '터키'에 대해선 침묵하며 '베네수엘라'에선 적극적인 그와 그의 조직 칸바스(CANVASㆍ오트포르!의 후신)의 행보가 대표적이다. 포포비치는 차베스가 죽기 전 베네수엘라에서 그를 몰아낼 청사진을 제안했다고도 한다.

따라서 그의 책을 민주주의 건설을 위한 어떤 '교범'으로 고려하고자 한다면 보다 비판적으로 읽어야 할 것이다. 그에 대한 의혹을 지나치게 강조해 동유럽과 아랍에서의 격변을 모두 미국 정부 혹은 세계 그림자 정부의 음모 결과로 치부할 필요는 없다. 아래 글처럼 세르비아에서의 격변을 미국 정부가 후원하고 조직한 결과로 볼 필요도 없다. 내 생각으로는 오히려 과대망상에 빠진 개인과 기업의 주장에 언론이 부화뇌동한 결과 그 지역들의 격변에서 포포비치의 역할이 지나치게 강조된 듯 싶다. 그럼에도 이러한 주장들을 살펴봐야 하는 건 베네수엘라에서 실제로 그랬듯이 미국 정부와 기업들은 자신의 이익을 위해 대중운동을 동원하기도 한다. 차베스에 반대한 자본가들과 기업노조들의 파업이 실례다. 비판적으로 살펴보기를 멈춰선 안 되는 이유다. 아래 옮겨놓은 폭로 글은 포포비치의 책을 비판적으로 읽기 위한 단초가 될 수 있을 것이다.

p.s. 한겨레는 투쟁의 상징은 불끈 쥔 주먹이 포포비치의 조직 오트포르!가 만들어낸 것으로 소개하는 데, 이는 이미 오래 전부터 우리 운동에서 쓰이던 상징이다. 오트포르!와 포포비치는 이를 약간 변형한 것일 뿐이다.

※ 의역이 많고 오역이 있을 수 있습니다.
혹시라도 인용하려면 반드시 원문을 확인하시기 바랍니다.
대괄호[ ]는 이해를 위해 옮긴이가 추가한 것입니다.


정보기업 스트랫포와 협력해온 국제적 명성의 활동가
칼 깁슨, 스티브 호른|2013년 12월 2일ㆍ링크

세르비아의 스르야 포포비치는 1990년대 후반부터 동유럽과 그밖에 지역에서 체제 변화를 주도한 기획자로 많이 알려져 있다. 그는 2000년 슬로보단 밀로셰비치를 몰아내는 데 기여했으며 미국의 후원을 받은 활동가 그룹 오트포르!(Otpor!)의 설립자이기도 하다.

보다 덜 알려진 것으로, 오큐파이닷컴
(Occupy.com)의 독자적인 조사에 따르면 포포비치와 오트포르!, 그리고 그 후신인 칸바스(CANVASㆍCentre for Applied Nonviolent Action and Strategies)는 골드만삭스의 경영진, 민간 정보기구인 스트랫포(StratforㆍStrategic Forecasting, Inc.), 그리고 미국 정부와 가까운 관계를 유지해 왔다. 포포비치의 아내는 스트랫포에서 1년여 일하기도 했다.

이러한 사실은 위키리크스가 '글로벌 정보 파일'의 e메일 수천 통을 새로 공개한 여파로 알려졌다. 미국석유학회
(API)ㆍ아처대니얼스미들랜드ㆍ다우케미컬ㆍ듀크에너지ㆍ노스롭그루먼ㆍ인텔ㆍ코카콜라와 같은 고객들을 위해 지정학적 사건들과 활동가들의 정보를 모아온 텍사스 오스틴에 위치한 민간 기업 스트랫포와 포포비치는 긴밀하게 협력했다.

'SR501'이란 제목의 e메일을 보면 스트랫포는 동유럽에서 발생한 사건들에 대한 회사 내부 강연을 위해 2007년 처음 포포비치에 접근했다. 스트랫포의 자료에 따르면 그는 이 이야기를 기밀로 유지하길 요청했다.

e메일 중 하나에서 포포비치는 미국이 무장시킨 바레인 정부에 의해 부상당하거나 살해당한 활동가들의 정보를 전달했다. 이 정보는 2011년 가을 바레인 정부가 민주주의 활동가들에 의해 위기에 처했을 때 바레인 인권센터로부터 얻은 것이다. 또한 포포비치는 2010년 9월 최근 사망한 우고 차베스 베네수엘라 전 대통령을 어떻게 쫓아낼 수 있을지 그 청사진을 스트랫포에 제안하기도 했다.

●스트랫포의 글로벌 활동가 연결고리

포포비치는 자신의 활동가로서의 명성을 활용해 세계적인 활동가들과 스트랫포의 만남을 여럿 주선했다. 스트랫포가 포포비치의 인맥으로부터 얻어낸 정보는 차례로 그들의 기업 고객-스트랫포는 자신을 '그림자 CIA'로 홍보했다-에게 '유용한 정보'로 제공됐다.

포포비치는 필리핀ㆍ리비아ㆍ튀니지ㆍ베트남ㆍ이란ㆍ아제르바이잔ㆍ이집트ㆍ티벳ㆍ짐바브웨ㆍ폴란드ㆍ벨라루스ㆍ조지아ㆍ바레인ㆍ베네수엘라ㆍ말레이지아 등 세계 곳곳의 현지 운동가들의 활동에 대한 정보를 스트랫포에 제공했다. e메일을 보면 포포비치는, 자신의 e메일이 민간 보안기업에 전달되는 것을 알리 없는 활동가들의 정보를 그들의 동의 없이 스트랫포에 여러 번 제공했다.

미국에서는 이 글의 공저자인 칼 깁슨
(US Uncut의 대표)과 더 예스맨의 앤드 비클바움이 포포비치를 만났었다. 그들이 활동하는 두 단체가 GE의 세금 미납을 조롱하는 풍자를 한 직후였다.

그 둘은 자신들 단체의 다음 해 계획을 포포비치에게 얘기했고 이후 뉴스에선 스트랫포가 예스맨의 활동가들을 치밀하게 감시 중임이 보도됐다.

2011년 1월 아랍의 봄 당시 이집트에서 포포비치는 CNN에 보도될 인터뷰 진행을 제안받았다. 그가 논점을 펼치는 데 의지한 첫 사람은 스트랫포의 직원이었다. 스트랫포 직원은 그에게 다섯 가지 논점을 제시해 인터뷰를 이끌었다.

스트랫포는 포포비치가 자신들에게 유용한 이유로 세계 곳곳에 광범위하게 퍼져 있는 그의 풀뿌리 활동가들 연락망이라고 말하고 있다.

스트랫포의 전 유라시아 분석가인 마르코 패픽이 2010년 5월 쓴 e메일을 보면 "다시 상기시키자면 이 만남에서 그의 주요한 유용성은 그가 접촉해온 세계 곳곳의 골칫거리들을 우리에게 연결시켜줄 수 있는 능력이다. 현지의 상황을 파악할 그의 능력은 아마 제한적일 것이다. 그는 주로 정보 제공자와 기초적인 연락을 유지해 정보 제공자들이 자신의 일을 할 수 있게끔 한다"고 적혀 있다.

포포비치는 그의 부인이 스트랫포에서 일할 만큼 그들로부터 좋은 평가를 받았다. 포포비치의 부인은 스트랫포에서 2010년 3월부터 2011년 3월까지 1년여간 '이주의 공개자료' 업무에 종사했다. 다른 지원자였던 엘레나 탄키츠 또한 칸바스에서 활동한 이다.

"칸바스맨
[포포비치][스트랫포에게] 친구이자 자원이고 그는 그녀를 우리에게 추천했다"고 스트랫포의 분석 담당 부사장인 스콧 스튜어트는 같은 날 면접한 두 사람을 제외하며 2010년 3월 e메일에서 쓰고 있다.

포포비치와 그의 부인은 스트랫포와 무척 가까워졌고 실제로 포포비치는 세르비아 베오그라드에서 연 그들의 결혼식에 스트랫포 직원 다수를 초대했다.

●스트랫포가 만들어낸 혁명을 돕기

스트랫포는 포포비치의 가치를 세계의 혁명가들과 운동가들의 활동 정보를 얻는 데 만 두지 않았다. 필요할 경우 그가 미국의 지정학적ㆍ금융적 이해관계에 적대적인 나라의 지도자들을 몰아내는 걸 도울 수 있다고도 여겼다. 따라서 스트랫포는 포포비치를 이용하기 위해 그에게 패픽이 '우리가 기업으로서 항상 이용할 수 있는 합법적인 자원'이라고 부른 자유롭게 이용할 기금을 제공했다.

패픽은 2011년 6월 e메일에서 포포비치를 '훌륭한 친구'라며 '혁명을 위해 세계를 여행하는 세르비아 활동가'로 묘사했다.

"그들은 … 기본적으로
(미국이 좋아하지 않는) 독재자와 독재정부를 쓰러뜨리기 위해 세계를 돌아다니고 있다"고 패픽은 e메일에 적고 있다. 그 e메일에 대한 답장에 대답하면서 그는 "그들은 지금 당장 그 나라들로 가서 사업을 시작해 정부를 무너뜨릴 노력을 펼쳐야 한다. 이는 적절히 사용할 때 항모 전단보다 더 강력한 힘을 발휘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

스트랫포 정보 담당 부사장 프레드 버튼은 '항모 전단' e메일에 대한 답장에서 그들을 이란으로 보낼 수도 있을 것이라고 냉소적으로 말했다. 포포비치는 현지 정보 제공자로 이란의 활동가를 소개했고 또한 스트랫포가 '민주주의 프로그램'을 위한 투쟁에 투자해 미국 정부가 '소프트 파워' 정책을 밀어부치도록 했음이 e메일을 통해 폭로되기도 했다.

2010년 3월 스튜어트는 버튼에게 보낸 또 다른 e메일에서 칸바스가 '차베스를 몰아내려 하고 있다'고 우고 차베스 베네수엘라 전 대통령에 대해 썼다. 2007년 칸바스는 차베스 전복을 위해 활동가들을 훈련시켰다.

"내 기억이 정확하다면 우리는 베네수엘라에서 활동하고 있는 우리 고객들을 고려해, 정보원으로서 혁명적 NGO들을 세심하게 다루기 위해 그와 연락하는 데 허시메일을 사용한다"고 패픽은 2011년 1월 e메일에서 포포비치를 언급한다.

스트랫포는 칸바스가 정부를 전복을 조장하는 데 지닌 광범위한 능력에 반해 여행 경비를 지급해 가며 2010년 포포비치를 오스틴의 본사로 초대해 그 주제로 세미나를 연다.

●칸바스의 골드만삭스 현금

골드만삭스에서 경영진으로 있다가 2012년 6월 퇴직 후 자신의 새터유환투자관리(Satter Investment Management LLC.)를 운영하고 있는 무니어 새터는 칸바스의 주요 협력자 중 하나다. 스트랫포 CEO 시아 모렌즈는 10년여간 골드만삭스에서 투자관리 담당상무이사와 남서부 개인투자관리 본부장으로 종사했다.

새터는
[골드만삭스에 있던] 그 기간에 공화당의 주요 후원자였다. 그는 2012년 대통령선거 전 칼 로브의 수퍼팩[후보 개인이 아니라 지지세력 전체에 무제한의 정치자금을 후원할 수 있는 제도] 크로스로드 GPS에서 30만 달러 이상을 기부했다. 그리고 2014년 중간선거를 앞둔 2013년 상반기에는 공화당주지사협의회(the Republican Governors Association)에 10만 달러를 후원하기도 했다.

시카고 노스쇼어의 950만 달러짜리 거대한 고급 주택에 살고 있는 무니어는 2009년 오바마 대통령의 취임펀드에 50만 달러를 기부하기도 했다.

포포비치는 세계적 정보기업 스트랫포와 무니어를 만나게 됐을 때 중개인으로서 그 기업의 대표 조지 프리드먼에게 새터를 소개했다.

스트랫포 홈페이지에 새터는 "세계적 사건 이면의 정보를 이해하고 싶어질 때면 나는 언제든 스트랫포를 찾는다"고 추천사를 적고 있다. "그들은 세계적 문제들에 대해 가장 많은 정보와 통찰력 넘치는 분석을 보여주고 있고 이는 주류 언론보다 100보 앞선 것"이라고 말한다.

●오토포르!: 거꾸로 된 역사

포포비치가 어떻게 스트랫포 정보 수집 활동의 수족이 됐는지 이해하기 위해서는 오트포르!와 칸바스를 비판적으로 살펴보는 게 중요하다. 이를 자세히 살펴보면 포포비치가 스트랫포의 정보원이자 중요한 자문역을 맡게 된 것은 무척 자연스러운 일이다.

밀로셰비치를 몰아냈던 '불도저 혁명'과 이후 동유럽 정권을 쓰러뜨렸던 운동들에서 풀뿌리 활동가들과 서방 언론의 역할로 인정받는 것들은 보여진 것보다 더 크다.

2000년 워싱턴포스트는 폭로기사에서 "원론적으로
[세르비아의 사건은] 미국 의회가 1999년 정부 예산에서 1000만 달러, 2000년 3100만 달러가량을 투입한 공공연한 작전이었다. 반밀로셰비치 운동에 참여한 몇몇 미국인들은 운동 주변의 CIA 활동을 알고 있었지만 그들이 무엇을 하는 지까지는 알지 못했다고 말했다"고 설명했다.

"미국 국무부와 국제개발처
(USAID∙the U.S. Agency for International Development)가 주도적 역할을 맡았다. 이들은 정부의 해외 원조기관을 통해 민간 파트너에게, 그리고 NDI와 공화당의 협력단체인 국제공화주의연구소(IRI∙the International Republican Institute) 같은 비영리단체에 지원금을 보냈다."

패픽이 칸바스를 '항모 전단보다 강력한 힘'이라고 주장한 것이 과장 만은 아니었다. 칸바스는 1990년대 후반 세르비아에서 오트포르!의 경험에 기초해 설립됐다.

독립적인 학자 마이클 바커는 "실제로 1997년에서 2000년 사이 국가민주주의기금
(the Natioanal Endowment for Deomocracy∙이름과 달리 민간 단체다)과 미국 정부는 대략 나토가 3만7000회의 폭격을 통해서 하지 못했던 것을 해냈다. 밀로셰비치를 몰아내고 그들이 선호하는 인물인 보이슬라프 코슈투니차로 대체했으며 세르비아에 신자유주의적 전망을 확산시켰다"고 Z매거진에 썼다. "같은 방법으로 기업의 대리단체들과 가짜 시민단체들(astroturf groups)은 정말 순진한 지지자들을 모은 전략적으로 활용된 사회운동은 잠재적으로 우파의 후원(막대한 자금과 전문적인 지원)을 받은 시민사회를 주도할 수 있었다."

세르비아에서 오토포르!의 성공을 견본 삼아 미국 정부로부터 650만 달러를 후원받은 운동은 2004년 우크라이나에서 정권을 교체할 수 있었다.

오토포르! 활동가는 미국이 지원하는 방송 자유유럽라디오
(Radio Free Europe)에서 "우리는 그들을 훈련시켰다. 어떻게 조직을 건설하고 지역 지부를 만드는지를 교육했다. 로고∙상징∙핵심 메시지를 만들고 '브랜드'를 구축하는 법을 가르쳤다"고 말했다. "우리는 그들에게 사회의 약한고리와 사람들이 가장 고통받는 문제를 파악하는 방법을 가르쳤다. 이는 사람들, 무엇보다도 청년들이 투표함으로 가 자신의 운명을 스스로 결정하게끔 동원할 수 있는 요소일 것이다."

세르비아에서 밀로셰비치를 쓰러뜨리는 데는 강력한 언론기구를 만들기 위한 미국 정부의 지원도 수반됐다. 이렇게 미국이 지원했던 라디오∙TV 중 하나인 B92에서 포포비치의 부인은 기자와 앵커로 활동하기도 했다.

미국 USAID는 2004년 정책보고서에서 "라디오 B92를 돕고 라디오방송국(ANEM) 네트워크를 연결하는 국제적인 노력은 정부가 뉴스와 정보를 직접 혹은 간접적으로 통제하는 능력을 약화시켰다"며 "세르비아에서 USAID와 국제적인 후원자들이 독립적인 언론을 도운 것이 정권 교체를 가능하게 했다"고 설명했다.

핵심적인 건 동유럽에서 일어난 사건은 그 어떤 말로 해도 정권 교체이지 혁명이 아니라는 것이다.

포틀랜드주립대 도시연구∙계획과 제랄드 서스먼 교수는 그의 책 '민주주의 브랜드 만들기: 포스트소비에트 시대 동유럽에서 미국의 정권 교체'에서 "
[그것들은] 그것은 실제로 절대 혁명일 수 없다. 지배층 내부에서 권력이 이동한 것일 뿐"이라고 설명한다.

그는 "소비에트 붕괴 후 이 지역에서 현대적 선거운동 전술은 포퓰리스트처럼 불안정하고 취약한 상황을 정권 교체를 위해 이용하는 것이었다"고 썼다.

오트포르!가 미국 정부 내 강력한 세력과 연관을 맺고 있는 만큼 포포비치가 2010년 5월 미국 공사에서의 강의하면서, 또 2009년 12월 미국 국가안전보장회의에 참석하면서 불편함을 느끼지 않은 게 놀라운 일은 아니다.

일찌감치 칸바스에 자금 지원을 위해 미국 정부에 로비활동을 펼친 권력가는 현재 주러미대사인 마이클 맥폴
[2014년 사퇴했다]이다. 그는 스탠포드 대학교 후버연구소 선임연구원으로서 포포비치를 도와 '밀접하게 협력'했다.

●확산되는 비판, 포포비치의 대답

바레인 인권센터의 책임자 마리암 알카와자는 포포비치를 몇 년간 활동가로 알고 있었지만 위키리크스가 스트랫포의 e메일을 폭로하기 전까진 그의 대외 관계에 대해 전혀 알지 못했다고 말한다.

"스르야와는 여러 번 만났었다. 그는 바레인 혁명과 바레인에서 인권투쟁에 큰 도움을 주는 사람이었다"고 알카와자는 전화통화에서 말했다. "그가 그들의 정보를 내게 전해줬을 때 나는 매우 놀랐었다."

알카와자는 당시 스트랫포가 어떤 기업인지 알지 못했지만 그들이 그녀에게 던진 질문을 읽자마자 의심을 갖게 됐다고 말했다. 그녀는 스트랫포로부터 온 e메일에 의혹을 느껴 결단코 그들과 연락하지 않았다.

"그 e메일들은 정말 정보기관의 질문들 같았다. 그들은 인권센터에서 내가 한 일들을 알고 있었다. 그들은 야권 연합을 누가 후원하는지, 그들에겐 얼마나 많은 회원이 있는지와 같은 내가 대답할 수 없는 질문을 물어왔다"며 "그러한 질문들 때문에 내가 받은 e메일 배후의 동기에 의심을 갖게 됐다. 그것이 내가 답변하지 않은 이유"라고 말했다.

"그와 같은 e메일을 받거나 정보기관처럼 보이는 질문에 흥미를 보이는 사람이 접촉해오면 우리는 보통 그들을 차단해린다. 우리가 알기엔 그런 이들은 거의 정부를 위해 일하기 때문이다"라고 알카와자는 말을 이었다. "기자들은 우리가 하는 일을 알기 때문에 첫 만남에서 그와 같은 질문을 던지진 않는다. 나는
[스트랫포의] e메일을 받자마자 매우 이상하다고 느꼈고 내가 실제로 절대 답변을 보내지 않은 이유다."

오토포르!의 공동 설립자 중 한 사람
(그는 그 운동에 남아있기에 이름을 밝히지 말아달라고 요청했다)은 화상 인터뷰에서 위키리크스에 폭로된 e메일 중 포포비치가 활동가들의 정보를 사전 동의 없이 제3자에게 전달했다는 내용에 주목하고 있다고 말했다.

포포비치는 인터뷰에서 칸바스에 대해 사뭇 다른 어조로 말한다. 그는 "우리는 우리 활동가들을 위태롭게 하는 어떠한 일도 절대로 하지 않았다. 우리는 항상 그들의 의견을 존중하며 사전 동의 없이는 그 누구에게도 그들을 노출시키지 않았다"고 주장한다.

또한 포포비치는 칸바스가 누구나, 그리고 모두에게나 그 어떤 차별 없이 비폭력 직접행동에 대해 말하려 했다고 주장한다.

그는 "어디에서든 칸바스가 대변하려 한 것은 저 헌신적인 활동가들과 비폭력 투쟁이지 여전히 냉전시대에 사로잡혀 평범한 사람들이 이끄는 대중운동이 아니라 탱크와 비행기∙핵폭탄이 세계를 움직인다고 믿는 이들이 아니다"고 말했다.

"우리가 워싱톤, 크렘린, 텔아비브, 다마스커스에 있는 세계 정세의 주재자들을 설득할 수 있다면 그것은 외국 군대의 개입이 아니라 우리가 해온 것을 존중하고 받아들인 비폭력 투쟁 덕일 것이다."

여기에 더해, 포포비치의 경력을 고려해보면, 특히 그의 활동가 경력 내내 어느 쪽에 붙을지 고민해왔던 과거를 따져보면 그는 스트랫포에 딱 맞는 사람이었다고 비판가들은 말한다.

서스먼 교수는 인터뷰에서 "세르비아의 단체는 세르비아 바깥의 어떤 곳에서도 저항운동을 이끌 수 없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의 기술은 어떤 정치적 목표를 쟁취하는 데 유용했다"며 "또한 그는 그 과정에서 민간과 정부 정보기관에 유용한 정보를 취합해 제공했다. 그것이 바로 스트랫포가 그에게서 찾은 유용성"이라고 말했다.

칼 깁슨은 기업을 위한 긴축정책 중단을 위한 비폭력적이고 창조적인 직접행동 운동을 펼치는 US Uncut의 대변인이자 조직가이다.
스티브 호른은 위스콘신주 매디슨에서 활동하는 프리랜서 탐사보도 전문기자이자 이 기사가 먼저 발표된 DeSmogBlog의 연구원이다.

2015.12.11 00:52

시리아와 좌파 쟁점/15 OccupyWorld2015.12.11 00:52

2015년 11월 13일의 금요일 파리 테러 후 시리아는 제국주의 국가들의 전장이 되고 있다. 그 전 이집트에서 여객기를 테러로 잃은 러시아의 폭격도 연일 계속되고 있다. 이미 전쟁터인 이곳으로 더 많은 서방제, 혹은 동방제 무기가 퍼부어지고 있다. ISIS 격퇴라는 명분으로 말이다. 파리 테러 후 ISIS는 인류 최악의 폭력 집단으로 여겨진다. 이들의 패퇴를 위해서는 기존의 갈등을 훌훌 털어버리고 하나로 뭉쳐야 한다고 말해진다. 그러나 시리아인 수십만 명이 목숨을 잃고 수백만 명이 고향을 잃고 국경 밖으로 떠돌고 있는 상황에도 불구하고 이들 패권 국가들의 인류애적 협력은 요원한 일로 보인다. 각 나라들은 자국의 이해관계에 따라 폭격 목표를 제멋대로 정할 뿐이다. 이 와중에 러시아 전투기가 터키에 의해 격추되면서 시리아를 둘러싼 국제관계는 갈등을 더하고 있다. ISIS뿐 아니라 아사드 정권에 의해 자행되는 학살에 눈감고 있는 것도 빼놓아서는 안 될 사실이다.

아래 인터뷰는 1년 전인 2014년 11월 이뤄진 것이다. 시리아 반체제 인사의 말은 최근의 상황까진 담지 못했지만 시리아 외부에 있는 좌파에게 필요한 게 무엇인지 뼈저린 충고가 이어진다. 야신 알 하즈 살레(Yassin Al Haj Saleh)는 서구의 좌파가 시리아에 대해 아는 것이 너무 없다고 일침을 놓는다. 그들은 ISIS에만 주목하며 아사드 정권의 범죄행위에 눈을 감는다는 것이다. 왜 그럴까. 그것은 크게 두 가지 이유 때문이다. 그가 꼽는 첫째 이유는 제국주의에 대한 피상적 이해 때문이다. 소련이라는 이미 사라진 아버지의 고아로 남은 좌파들은 오직 미국과 서방에만 제국주의적 혐의를 제기한다. 따라서 러시아와 우방국들의 지원을 받아 학살을 자행해온 아사드의 행위를 무시한다. 서방의 좌파들은 자신들이 지지하는 시리아 외부의 패권세력에 따라 시리아 내부의 갈등을 제단한다는 것이다. 둘째로 또 다른 좌파는 미국이 시리아 혁명의 우군이라는 오해에 휩싸여있다는 것이다. 하지만 미국의 폭격은 ISIS 격퇴에 아무런 효과가 없었을 뿐 아니라 반군을 훈련시켜주겠다는 그들의 계획은 오직 자신들의 이익을 위한 것이라고 주장한다. 따라서 그는 미국의 '지원' '개입'에 단호히 반대한다.

살레는 서구의 좌파에게 많은 것을 요구하지 않는다. 서구 좌파들이 스스로 강해지는 게 시리아의 자유를 위한 저항 세력을 돕는 길이라고 말한다. 그러기 위해선 무엇보다 시리아 자체를, 시리아인들의 삶과 사회ㆍ정치ㆍ역사를 알아야 한다고 주장한다. 16년간 양심수로 갇혀있었던 시리아의 저항적 지성의 목소리를 직접 들어보자
(외국 세력의 시리아 군사 개입에 반대하는 또 다른 시리아 좌파의 목소리는 노동자연대 기사 '폭격은 죽음과 파괴의 악순환을 더 악화시킬 뿐'을 참고하라ㆍ링크).

※ 의역이 많고 오역이 있을 수 있습니다.
혹시라도 인용하려면 반드시 원문을 확인하시기 바랍니다.
대괄호[ ]는 이해를 위해 옮긴이가 추가한 것입니다.


시리아와 좌파: 야신 알 하즈 살레와의 인터뷰
뉴폴리틱스(New Politics)ㆍ2015년 겨울 15권 2호 통권 58호ㆍ링크

야신 알 하즈 살레(Yassin Al Haj Saleh)는 시리아의 대표적인 반체제 인사 중 한 명이다. 그는 1980년에서 96년까지 감옥에 갇혀 있었고 2011년 시리아 봉기 때는 지성을 대표하는 목소리 중 하나가 됐다. 그는 시리아에서 21개월간 숨어 지냈지만 결국 이스탄불로 탈출했다. 뉴폴리틱스(New Politics) 공동 편집자인 스티븐 R. 샬롬(Stephen R. Shalom)이 2014년 11월 초 e메일을 이용해 그와 인터뷰했다.


뉴폴리틱스=당신은 시리아에서 계속되고 있는 진보를 위한 투쟁에 대해 감동적인 글을 썼습니다. 서구 대부분의 나라에서, 특히 미국에서 좌파는 상대적으로 작은 힘을 가지고 있습니다. 당신 생각에 시리아인과의 연대를 표하기 위해 서구 좌파는 무엇을 할 수 있을까요?

야신 알 하즈 살레=저는 힘겹게 투쟁하고 있는 시리아인들과의 연대를 서구 좌파가 표하기엔 너무 늦지 않았나 하는 염려가 듭니다. 제가 항상 깜짝 놀라곤 하는 건 서구 좌파들이 시리아에 대해, 이곳의 사회ㆍ체제ㆍ인민ㆍ정치경제ㆍ현대사에 대해 거의 모른다는 점입니다. 그들의 분석 중 도움이 되는 견해나 정말 창의적인 생각을 찾기는 정말 힘듭니다. 이런 이상한 상황 때문에 그들은 진정 우리를, 우리에 대한 그 어떤 것도 보고 있지 않구나라고 느끼곤 합니다. 그들에게 시리아는 반제국주의에 대한 오래된 장광설을 늘어놓을 또다른 기회일 뿐이지 토론을 위한 생생한 주제가 아닙니다. 그런 그들이 진정 우리를 알 필요는 없겠죠. 그들에게 시리아는 그 내부 구조와 동학을 공부할 필요가 없는 블랙박스일 뿐입니다. 실제로 그들의 분석에 따르면 여기엔 내부 구조와 동학이 전혀 없습니다. 그 중심엔 서구와 국제관계가 함께 있을 뿐이죠.

그들의 편협한 반제국주의적 시선이 오직 오바마ㆍ푸틴ㆍ올랑드ㆍ에르도안
[터키 대통령]ㆍ하메네이[이란 최고 지도자]와 카타르 국왕 하마드, 사우디 왕 압둘라, 하산 나스랄라[레바논 헤즈볼라의 사무총장], 그리고 바샤르 알 아사드[시리아 대통령]만 바라보고 있다는 게 문제입니다. 그들은 아마 IS의 리더 아부 바카르 알 바그다디에도 관심을 갖겠죠. 평범한 시리아인들, 난민, 여성, 학생, 지식인, 인권 활동가들, 양심수 …… 우리는 그들의 시야에 있지 않습니다.

제 생각에 이러한 국제관계ㆍ서구 중심적 세계관은 우파와 극우 파시스트에게 더 어울리는 것 같습니다. 하지만 솔직히 좌파 시리아인의 입장에서 서구의 누가 우파고 누가 좌파인지 판별할 수 없었습니다. 전 이게 그 나름의 파시스트 체제였던 소비에트 경험의 해로운 효과라고 생각하곤 합니다. 서구 좌파의 다수는 이미 없어진 소련을 아버지로 둔 고아입니다.

또 그들은 무엇 때문에 바샤르가 희생시킨 이들을 보지 못할까요? 그들이 언제 한 번이라도 코바니
[시리아 북부 알레포주의 도시. ISIS가 점령했다가 2015년 1월 쿠르드족 민병대가 싸워 되찾은 도시]의 평범한 인민을 온전히 본적 있습니까? 지난 [2014년] 8월 데이르에조르[ISIS가 차지하고 있는 시리아 북부의 도시]에서 ISIS 빌어먹을 놈들의 손아귀에 700여 명의 인민이 학살당하는 데 조금의 관심도 없었던건 왜죠? 하나만 묻겠습니다. 누가 살인자냐에 따라서 희생자들은 다른 가치를 지니는 걸까요? 정부가 나라 곳곳을 폭격하면서 매일 수십여 명이 목숨을 잃는 것에 대해 서구의 좌파들은 왜 우파처럼 침묵하는 겁니까? 제1세계가 의심 없이 인정한 커플인 바샤르와 그의 우아한 부인이 시리아 내부의 제1세계를 상징하는 게 그 이유일까요?

시리아인을 돕거나 연대를 표하기 전에 서구 좌파의 주류는 그들 스스로를 되돌아볼 필요가 있습니다. 그들의 관점은 완전히 잘못됐습니다. 시리아의 사건이 바로 그들의 반동적이고 타락한 관점을 시험하는 리트머스 시험지입니다.

시리아인으로서 저는 오직 사정을 잘 아는 사람이 필요할 뿐입니다. 시리아는 세계의 축소판입니다. 그렇기에 저는 시리아 사건에서 이정도로 잘못된 입장을 지닌 그들의 세계 전체에 대한 이해와 정책이 어떤 방식으로든 더 나은 것이라고 생각할 수 없습니다.

물론 이런 입장이 미국과 서방 세계에 소수의 도덕적이고 정치적인 좌파의 위엄을 갖춘 용기있는 반체제적 서구 좌파가 존재함을 부정하는 건 아닙니다.

뉴폴리틱스=몇몇 좌파는 서방 정부가 자유시리아군(the Free Syrian ArmyㆍFSA)이나 그밖에 주민 세력에 무기를 지원하는 데 반대해야 한다고 믿습니다. 또 다른 좌파는 서방의 무장 지원을 호소해야 한다고 합니다. 그와 같은 지원을 호소하거나 반대하는 것 모두 안된다고 여기는 좌파도 여전히 있습니다. 당신의 생각은 어떤가요?

살레=제가 이미 말했지만 이에 대해 말하기엔 너무 늦었습니다. 이러한 논의는 이제 현지의 사실들과 완전히 동떨어져 있는 것입니다. 무장 저항이 파시스트 정부에 맞서 우세했던 때로부터 3년이 지난 지금 FSA는 너무 약해졌고 이전보다 통일적이지 못합니다.

FSA에 대한 무장 지원을 반대하는 입장을 따져보자면 두 가지 조건을 고려해야 합니다. ①어쨌든
[아사드 정권에 대한] 러시아의 무장 지원과 이란ㆍ이라크ㆍ레바논의 인적 지원은 중단됐습니다. 그리고 ②정부는 정치적 해결책을 위한 진정한 각오를 표하기도 했습니다. 실제로 정부는 4개월간 권력을 나누려는 어떤 의지도 내보인 적 없습니다. 심지어 반대파와의 실질적인 협상도 고려하지 않았었죠[아사드는 2014년 6월 내전 와중에 대통령 선거를 강행해 재선됐다].

유엔이 아무 것도 하지 않고 워싱톤이 이끈 '시리아의 친구들
[the Group of Friends of the Syrian Peopleㆍ반정부 시위를 유혈 진압한 시리아 정부를 규탄하고 바샤르 알 아사드 정권의 퇴진을 요구하는 유엔 결의안이 2012년 2월 러시아와 중국의 거부권 행사로 부결되자 당시 프랑스 대통령 니콜라 사르코지가 제안해 만들어진 유엔 안보리 밖의 모임]'이 완전히 마비돼 있는 동안 시리아 인민을 보호하기 위해 무장이 필요한 사람을 당신들이 돕지 않고 수백, 수천, 혹은 수만, 수십만 명의 사람들이 살해당하도록 방치했을 때 무슨 일이 일어났을까요? 사실상 점점 더 많은 시리아인들이 세계와 국제사회의 정의에 대한 신뢰를 철회하도록 당신들이 종용한 것입니다. 당신들이 허무주의를 키운 것입니다. 전 2012년 5월에 이에 대한 긴 글을 썼습니다. 투사들 사이의 허무주의는 바로 이때 시작됐었죠.

서구 좌파들에겐 미국이 시리아 혁명의 편에 섰다는 환상이 널리 퍼져 있습니다. 이는 완전히 틀린 것입니다. 미국 정부는 아사드 정부에 맞서기보다는 혁명을 저지하는 데 더 적극적이었습니다. 우리 조직을 파괴하는 데는 이란이나 이라크가 했던 것보다 워싱톤의 역할이 더 컸습니다. 불과 몇 달 전 백악관의 하버드맨
[오바마 대통령을 말한다][온건파 반군이] 아사드 정부를 무너뜨릴 수 있다고 여기는 농부와 치과의사들이라고 경멸적으로 말했었습니다[오바마 대통령은 2014년 5월 미국 공영 라디오 방송 NPR과의 인터뷰에서 "온건파 반군들은 농부, 치과의사, 또는 라디오 리포터 등 일반인들이 모인 집단"이라며 "이들이 알카에다와 연관된 지하디스트들에 맞설 기반을 닦기에는 시간이 많이 걸린다"고 말했다]. 이러한 쓸데없는 논평은 러시아ㆍ이란 그리고 이라크와 레바논에 있는 이들의 추종자들로부터 탄탄한 지원을 받고 있는 안과의사[바샤르 알 아사드 시리아 대통령을 말한다. 전 대통령 하페즈 알 아사드의 셋째 아들인 그는 영국에서 안과의사 수련을 받고 있었다. 장남이 사고로 목숨을 잃으면서 시리아로 돌아와 후계자 수업을 받았고 2000년 하페즈의 죽음 이후 시리아의 대통령이 됐다]와 (정부의 똘마니들인) 샤비하[알라위파 청년들로 구성된 친정부 민병대. 각종 학살사건과 연관 의혹을 받고 있다]가 이끄는 진영에게 '시리아의 친구들' 수장의 축복 속에 자신들의 학살 사업을 제약 없이 해나갈 수 있다는 신호로 해석되지 않았을까요? 따라서 2013년 9월 화학무기에 관한 협상도 양 편의 시리아인들에게 다르게 해석되지 않았을까요? 정부는 당연히 이를 다른 무기를 사용한 학살 사업을 계속해도 된다는 승인장으로 생각했습니다. 그리고 반대파는 정부의 해석에 동의할 수 없었죠[2013년 시리아 정부가 반군을 상대로 화학무기를 사용했다는 의혹이 제기되자 미국은 공개적으로 시리아 폭격이라는 수단의 사용을 검토했었다. 그러나 9월 러시아와 시리아 화학무기에 대한 유엔의 사찰과 폐기를 핵심 내용으로 하는 협상을 타결한 뒤 미국의 군사 개입 계획은 중단됐다. 그러나 화학무기 폐기 외에 아사드 정부에게 부과된 제약은 없었다. FSA는 이 협상에 반대를 천명하고 정부에 계속 맞서 싸울 것이라고 주장했다].

덧붙이자면 미국은 2013년 8월 정부가 화학무기를 이용해 학살을 저지른 이후 이에 대해 개입하지 않았습니다. 자신의 국민들에게 죄악을 저지른 범죄 정권을 심판하는 것은 이제 세계 곳곳에서 이뤄졌던 미국의 상습적인 개입보다 공정하고 진보적인 일입니다. 이게 이뤄지지도 않은 개입 전에 이에 반대한 까닭을, 그리고 제 생각에 전보다 덜 윤리적이고 덜 공정한 현재의 개입에 맞선 움직임이 없는 까닭을 제가 이해하지 못한 이유입니다.

좌파들은 '제국주의적 중심부'가 시리아 혁명에 반대하는 것을 정말 모르는 걸까요? 전 그들이 이에 대해 모른다고 믿을 수 없습니다. 아마 그들은 자신들의 낡은 관점을 고수하는 것일 겝니다.

뉴폴리틱스=어떤 서구 좌파는 서방 정부가 FSA 또는 주민 세력에게 군사 훈련을 시키는 데 대해 반대해야만 한다고 믿습니다. 다른 좌파는 그 같은 군사 훈련을 지지합니다. 그리고 다시 몇몇은 반대도 지지도 하지 말아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당신 생각을 말해주십시오.

살레=글쎄, 전 미국의 의도를 믿지 않고 워싱톤에게 어떤 희망을 기대하지도 않습니다. 저는 관계와 과정으로서 제국주의를 이해하지 않는, 모스크바나 테란이 아니라 오직 워싱톤과 그 밖에 서구 자본주의 국가들에 실체가 자리해 있다는 본질주의적 반제국주의에 공감하지 않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 지역에서 미국의 정책은 그러한 의심이 옮음을 보여줬죠. 허무주의와 파시스트 ISIS는 진공에서 태어난 것이 아닙니다. 그것의 요소 중 하나는 국제법과 국제기구ㆍ질서에 대한 절대적 불신입니다(두 가지 주요 요소는 현대성과 연관된 이슬람의 병폐와 전제적인 부패 정권입니다).

일단 되돌아가 질문하자면 미국은 시리아 사람들을 무엇을 위해, 그리고 누구를 위해 훈련시키길 원할까요?

지난 두 달간 미국은 우리 조직을 자신의 '테러와의 전쟁' 아젠다에 종종 이용했습니다. ISIS에 대한 전쟁을 선포한 그들은
[시리아] 정부가 20만 명 이상의 사람들을 살해했거나 그 원인을 제공했다는 점은 사소한 것일 뿐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ISIS라는 폭력 집단이 진정한 위험이라는 것이죠. 그리고 당연히 미군의 [시리아 반군] 훈련은 시리아를 변화시키기 위한 우리 투쟁과의 협력이 아니라 시리아인을 그들(미국)의 전쟁 도구로 사용하기 위한 정책적 우선순위에 따를 것입니다.

정리하면 시리아인을 훈련시킨다는 미국의 계획은 약해진 FSA를 완전히 망쳐놓을 것이고 이들을 조직 없는 값싼 현지 용병으로 바꿔놓을 것입니다. 이들은 미국의 이익을 위해 앞으로는 파시스트 ISIS를 맞닥뜨릴 것이고 그들의 뒤에는 파시스트 아사드가 자리할 것입니다.

요컨대 저는 미국이 시리아인을 군사적으로 훈련시키는 데 대해 단호하게 반대하는 편에 설 것입니다.

뉴폴리틱스=미국은 이라크와 시리아에 폭격을 해왔습니다. 이 공격의 효과와 정당성에 대해선 어떻게 생각하나요.

살레=효과는 제한적입니다. 명분 또한 도덕적이거나 보편적인 가치와 관련이 없습니다. 제 생각에 상황은 다음과 같습니다. 미국인들은 그 본심이야 정말 순수하겠지만 결국 살인자들을 살해하는 동안 바로 그 미국의 학살 현장으로부터 불과 수 백m 떨어진 곳에서 같은 시간 또 다른 학살자들이 살인에 바쁜 현장에 눈을 감고 있습니다. 명분은 이 중 어디에 있나요? 정의는 그렇다 치고 정치적 입장은 어떤가요? 정치도 일단 잊어보죠. 그러면 이 공격 후의 전략은 무엇입니까?

제 생각엔 이런 식의 전개로는 아무 것도 이뤄내지 못할 것입니다. 공중 폭격이 ISIS를 약하게는 만들 겠지만 그들은 자신의 권력을 반격이나, 심지어 확장을 통해 지켜낼 것입니다. ISIS는 중무장한 군대도 거대한 시설물을 지닌 국가도 아닙니다. 즉 그들에 대한 공중 폭격 효과는 계속해서 한계가 있을 것입니다. 코바니의 작은 마을 인근의 ISIS에 대한 두달여 간의 폭격에도 ISIS는 여전히 그 마을을 위협하고 있죠.

저는 '진보적인' 사람입니다. 사건의 어떤 주어진 상태에 매달리지 않고 최악의 상황에서도 새로운 가능성을 찾으려 애를 씁니다다. 이전에 개인적으로나 공적으로 어려움을 겪었던 많은 경우에도 저는 새로운 가능성, 기대치 않던 기회, 삶과 온 세상ㆍ자유를 향한 새로운 길을 발견할 수 있었죠. 저는 시리아에서 벌이는 미국의 전쟁에서도 진보적인 가능성을 찾기 위해 노력했지만 결국 헛된 일이 되고 말았습니다. 저는 근본주의자나 허무주의자(이 둘 사이에 차이가 있을까요?)도 아닙니다. 하지만 전 제 나라에서 미국이 벌이는 새로운 전쟁에서 더 정의롭거나 창조적인 기회를 만들거나 발견할 수 없었습니다. 우리 미국 '친구'들은 그들이 시리아의 상황을 전체적으로 더 낫게 만들것이라는 일반 대중에게 줄 수 있는 작은 희망을 위해 열심히 일하는 게 아닌 것 같은 인상을 보여줬습니다. 이는 아사드에게 크나큰 희망과 기대감을 갖게 하는 동안 일어난 일입니다. 정말 감동적이게도요!

저는 미국에 대해 근본적인 원한을 지니고 있지 않습니다. 하지만 이 수퍼파워는 제 나라에 대해 극단적으로 비인간적입니다. 그들이 벌이는 현재의 전쟁은 극히 이기적입니다. 제 생각으로는 시리아에서 미국의 정책을 고려할 때 워싱톤이 민주주의와 소외계층의 권리를 철저히 대립하는 것으로 간주한다는 결론을 끌어 내는 것도 정말 가능합니다. 이는 시리아에서 그들의 전쟁이 반동적이라는 걸 뜻합니다. 따라서 그 전쟁은 이 나라와 이 지역 대부분의 모든 걸 악화 시킬 것입니다.

오바마 정부가 시리아와 그 국민들에게 저지른 비열한 죄는 그 어떤 것으로도 사할 수 없습니다. 역사는 이 범죄를 오랫동안 잊지 않을 것입니다.

뉴폴리틱스=서구 좌파가 자국 정부의 시리아 정책에 대해 무엇을 해야만 한다고 생각하나요?

살레=솔직하게 말하면 서구에서 좌파들이 무엇을 해야하는지 저도 알 수 없습니다. 제 말은 그들은 안락한 환경에 있고, 또한 여권을 가졌고 외국어를 배울 더 많은 기회를 지니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들은 읽고 싶은 책을 살 수 있거나 최소한 볼 기회가 있습니다. 그런데도 그들 다수가 시리아에 대해 그토록 모르며 아무 것도 느끼지 못하고 거의 아무 것도 하지 않는다는 게 이해가 안 갑니다.

바꿔 말하면 그들의 임무는 자신의 정부가 우리를 위해 무언가를 하게끔 하는 게 아닙니다. 해야할 일은 자신 스스로를 위해 자신의 나라에서 자신 스스로 행동하는 것입니다. 그들이 미국ㆍ영국ㆍ독일ㆍ프랑스와 그 밖의 나라에서 훌륭히 스스로를 조직해낸다면 이는 우리에게도 좋은 일입니다. 그들이 우리 투쟁의 편에 서거나, 최소한 우리 나라가 정체성정치ㆍ희생정치에 맞설 가능성과 우리 투쟁을 어느정도 이해한다는 점을 보여주는 것만으로 충분합니다. 그런데 현재 그들은 매우 서구 중심적이 국제관계 중심적인 반제국주의적 견해로 인해 우리 나라의 우파, 이른바 '근대주의자' 또는 이슬람주의자만 돕고 있습니다.

주류 우파의 핵심은 흔히 정체성ㆍ주권ㆍ외교입니다. 같은 질문에 다른 대답을 하는 것만으로는 좌파가 될 수 없습니다. 다른 질문에 같은 답변이라면 더 그렇습니다.

※앤드루 클라이먼의 데이비드 하비 비판 2편을 아래 옮깁니다. 주석과 강조는 원문 그대로이며 대괄호[ ] 안은 옮긴이가 덧붙인 내용입니다. 잘못 옮긴 부분에 대한 지적을 기다립니다. 댓글로 달거나 메일(go24601@gmail.com)로 보내주십시오.


자본주의 위기에 대한 하비와 마르크스의 대결
2편: 수익성에 대한 오해

앤드루 클라이먼ㆍ2015년 3월 12일ㆍ링크
증거는 명확하다. 2차 세계대전 때부터 대침체 때까지 미국 기업들 전반의 이윤율은 떨어졌고 이러한 하락은 거의 전적으로 마르크스의 이윤율의 경향적 저하법칙에 따라 설명된다.

이 논문 1편[링크]에선 자본주의적 생산의 확대와 함께 이윤율이 하락하는 경향이 있다는, 마르크스가 "가장 중요한 정치경제학 법칙"으로 인정한 법칙(LTFRP)에 대한 하비의 해석(하비 2014ㆍ링크)을 집중적으로 살펴봤다. [하지만] LTFRP가 1980년대부터 실제로는 작동하지 않고 있다는 하비의 믿음은 다루지 않았다.

LTFRP가 작동하지 않고 있다는 하비의 유일한 '증거'는 노동인구 데이터에 관한 논의였다. 그는 이윤율(즉 투하자본의 규모에 대한 이윤량의 비율)에 관한 그 어떤 직접적인 증거도 내놓지 않았다. 그럼에도 그는 1980년대와 1990년대를 지나며 이윤율이 하락했음을 보여주는 나와 다른 이들이 내놓은 증거에 도전했다(그림 1을 보라).
[1]


그림 1 미국 기업들의 이윤율

하비는 이 증거들에 관해 "몇몇 심각한 의문이 제기됐다"고 말했다. 그는 이점에서 매우 옳고 결정적으로 중요한 질문도 던진다. [그런데] 우리가 그런 의문을 들어보지도 고려하지도 않았던 것처럼 논지를 전개하는 게 문제다. 그 의문들은 실제로 오래된 상투적인 질문이다. 그러한 질문을 받아온 이들 중 한 명으로서 나는 데이터를 모으고 해석해오면서 그것들 모두를 다뤄왔다. 그러므로 그 질문들에 [모두] 답할 필요는 없다. 데이터에 대한 내 분석과 해석은 이미 그 의문들을 예상하며 다뤄왔기 때문이다. 나는 그저 그 의문들이 어떻게 설명되는지 확인해주기만 하면 된다.[2]

그가 "대부분의 이윤율 저하 논문"에서 떠오르는 "가장 중요한 의문"이라며 제기한 "어떤 이유에서든 이윤율이 저하할 수 있다"는 주장은 사실이다. - 다시 짚고 넘어가자면 그가 비판하는 핵심은 불분명하다. - 그러므로 "이윤율이 저하하는 것을 보여주는 데이터가 마르크스가 보여주려 한 (노동절약형 기술변화의) 특별한 동학의 존재를 필연적인 것으로 만드는 것은 아니"라는 것이다.

이는 정말 옳다. 그래서 내가 2차 세계대전 때부터 대침체 때까지 미국 기업들의 이윤율 궤적을 고려하며 "마르크스의 이윤율의 경향적인 하락이 분명하게 사실과 일치한다"(클라이먼 2012, 213쪽)고 결론 내린 이 결론이 단순히 기업들의 이윤율이 떨어진다는 사실에 기초한 것은 아니다. 이는 여러 잠재적 하락 원인을 (분해해) 구분하는 '분해분석법(decomposition analysis)'과 각각의 요인들이 이윤율에 대해 갖는 효과의 판단에 기초한 것이다. 원인을 연구하는 데 사용한 이윤율을 분석하는 표준적인 방식이 특별히 고유한 것은 아니지만 (하비가 강조했기 때문에) 나는 다른 방식으로 그것을
[다시] 분석해보겠다.

전통적으로 이윤율은 잉여가치율(또는 고용에 대비한 이윤의 비율)과 자본의 가치구성(또는 투하된 자본 중 고정자본과 가변자본의 가치 비율)의 함수로 분석된다. 어떤 맥락에서 이는 괜찮은 방법이지만 연구자들이 구성한 표준적인 가치구성은 마르크스가 가리킨 가치구성과는 다르다. 그것은 생산수단의 획득과 노동자의 고용에 투하된 상대적 가치량 뿐 아니라 상품의 실제 가치에 비해 오르는 상품의 가격 비율의 변화에도 영향을 받는다. 두 개의 다른 요인이 영향을 미치기 때문에 표준적 가치구성의 운동은 명백한, 모호하지 않은 경향을 갖지 못한다. 예를 들어 1960년대와 1970년대 미국에서 표준적인 가치구성이 변화하지 않았을 때 생산수단 획득과 노동자 고용에 투하된
[자본의] 상대적 가치량 또한 변화하지 않았을 것이라고 우리가 결론내릴 순 없다. 생산수단 획득에 더 많은 가치가 사용돼 가치구성이 상승하는 경향을 띠었지만 이 효과는 인플레이션에 의해 상쇄됐다고 가정할 수 있다.[3] 하비가 옳게 강조했듯이 이는 '중요한 문제'다.

나의 대안적 분석은 이 문제를 구별되는 두 요인으로 다룬다. 나는 이윤율의 전체 운동을 아래와 같이 분석한다.

① 상품의 실제 가격에 비해 오른 상품 가격 비율의 변화에 기인한 운동
② 고용된 노동에 대한 이윤율의 변화에 기인한 운동
③ '그밖에 모든 것'에 기인한 운동

나는 앞의 두 원인이 어느정도 짧은 기간에는 중요할 수 있지만 그 둘 모두 장기적으로 - 우리가 전후 기간 전체를 고려할 때 - 이윤율에 근본적인 영향을 미치진 못한다는 것을 발견했다. 그러므로 이윤율의 장기적 하락 전체는 '그밖에 모든 것'에서의 변화에 기인한다

. 따라서 일단 ①과 ②를 제외한 다음 수학적으로 계산하자면 '그밖에 모든 것'은 바로 투자한 고정자산에 대한 노동시간으로 측정된
[노동력] 고용 비율이다. 이윤율의 장기적 하락의 거의 전부는 이 비율의 하락에 기인한다. 달리 말하자면 이는 고용이 자본축적보다 항상 더 늦은 속도로 증가한다는 사실에서 기인한다. 이것이 바로 이윤율의 장기적 하락 경향을 마르크스의 법칙이 설명하는 방식이다. 이런식으로 그 법칙은 미국 기업들의 이윤율 하락의 거의 전부를 설명한다.

고용에 대한 이윤의 비율은 이윤율에 약간의 영향만 미친다. 이윤율은 그 비율에 따라 아주 약간만 변동할 뿐이다. (전후 초기에만 아주 약간 그렇게 보일 뿐 1970년대부터 대침체 때까지는 상승이나 하락의 변화를 보이지 않는다.) 이 비율이 오랜 기간 안정적이었다는 게 CEO들이나 기업의 고위 경영진들
[의 소득]을 이윤이 아니라 고용 부문으로 미국 정부가 분류한 것에 따른 통계적 착시는 아니라는 걸 주목하는 게 중요하다. 고위 경영진에게 지급된 것을 이윤으로 재분류한 내 최근 추정(클라이먼 2014b를 보라)에서도 아주 약간의 차이만 보인다. 물론 최근 수 십 년간 그들의 보수는 급격하게 상승했다. 그렇지만 통계에 영향을 미치기엔 고위 경영진의 수는 너무 적다. 내 계산에 따르면 1979년에서 2005년 사이 0.1% 또는 1%(소득 분배에서 상위 0.1% 또는 1% 부분)라고 불리는 경영진이 받은 생산 몫의 증가는 기업의 다른 부문인 고용 몫(employees' share)에 단지 0.4%포인트 또는 0.6%포인트의 하락을 불러왔을 뿐이다.

하비는 또 이윤율이 저하한다는 증거에 대해 "이윤(가치ㆍ원문 그대로)이 생산되는 곳과 그것이 실현되는 곳 사이엔 차이가 있다. … 자본과 수익이 흘러가는 … 양식은 … 뒤얽혀 있고 시스템의 한 부분에서 선택된 데이터가 그것의 전체 운동을 정확하게 대표하는지는 불분명하다"고 반론을 편다. 그의 지적은 다시 한 번 옳다. 앞서 논의한 국내 자본 투자의 수익률과 관련한 데이터 만으로 미국 기업들의 이윤율이 전반적으로, 국내 투자에 대한 것 만큼 해외 투자에 대한 이윤율 또한 하락한다고 결론 내리는 것은 잘못일 것이다. 내 결론은 그 대신 해외와 국내 계정 모두를 고려해 내려진 것이다. 미국 기업의 해외 투자와 해외 투자로부터의 수익에 관한 정부 데이터는 1983년부터 이용할 수 있다. 이 데이터는 미국 다국적 기업들의 해외 투자에 대한 이윤율이 데이터의 시작점으로부터 대침체 때까지 대체로 하락하고 있음을 보여준다(그림 2)
[4]. 국내와 해외 이윤율을 측정하기 위한 분모는 약간 다르기 때문에 두 데이터 모음을 적절히 연결시킬 수는 없다. 따라서 우리는 미국 기업들 전체의 이윤율 하락 규모를 정확히 알아낼 수는 없다. 그러나 해외와 국내 이윤율 모두 하락한다는 사실로부터 우리는 전체 이윤율 또한 하락한다고 확신할 수 있다.


그림 2 미국 다국적 기업의 해외 이윤율
(해외 직접투자 누적액에 대한 해외 직접투자로부터의 세후 수입 비율)

또 하비는 미국의 다국적 기업들이 한 나라에서 생산된 이윤을 세금이 없거나 낮은 다른 나라의 자회사 계정으로 옮기는 '이전가격 조작'을 사용한다고 옳게 지적하고 있다. 그는 다국적 기업의 해외 수익과 투자 데이터가 그들의 자회사가 자리한 나라에 귀속된다는 사실을 덧붙일 수 있다. 생산이 이뤄지는 나라와 그 생산품이 판매되는 나라는 자주 다르기도 하다. 그 결과 다국적 기업의 이윤율이 어떤 특정한 나라에서 정확히 어찌 되는지 확인하는 건 불가능하진 않지만 어렵다. 그러나 이는 전체적인 그림을 살펴볼 때는 문제가 되지 않는다. 이전가격 조작의 술수는 기업이 투자의 소유권과 이윤을 이리저리 옮길 수 있도록 하지만 이윤 또는 투자의 총량에 영향을 미치진 않는다. 하비는 이전가격 조작이 '숨겨진' 이윤을 가능케 한다고 주장하지만 어떤 증거도 내놓진 않는다. 내가 알기론 그런 증거는 없다. 조세 당국의 영향력으로부터 이윤을 보호하는 것은 숨겨진 이윤과 같은 게 아니다.

앞서 논의한 증거는 오직 미국 기업들과만 관련된 것이다. 하비는 "그러한 데이터가 세계 자본주의에서 벌어지는 일의 증거가 될 순 없다"고 주장한다. 확실히 그 데이터들이 증거가 될 순 없다. 그런데 이러한 사실이 이 맥락에서 반대를 정당화 할 수 있을까? 그의 논문 주제는 경제 위기의 잠재적 원인으로서 이윤율의 하락이다. 그리고 그는 최근의 위기가 "글로벌 금융 시스템의 감염을 통해" 세계로 확산되기 전 미국에서 시작됐음을 잘 알고 있다. 미국에서 위기가 시작돼 그 다음 다른 곳으로 확산됐다는 것은 금융적으로 간단히 설명된다. 따라서 세계가 아니라 미국에서 이윤율 하락이 있었는지, 있었다면 그것이 어떻게 이뤄졌는지, 또 그것이 위기의 근본적 원인인지, 그렇다면 어떻게 작용한 것인지에 우리는 초점을 맞춰야 한다.

하비는 최근 몇 년간 수익성이 상당히 회복됐다고 주장한다. 물론 침체 후 추세는 이전의 이윤율 하락이 대침체의 원인인지 아닌지와는 아무런 연관이 없다. 그의 지적은 이윤율 측정 방법이 침체 후 반등을 포착하는 데 실패했기 때문에 의문을 갖게 됐고 이전에 수익성 하락을 알려준 그 방법을 믿기 어렵게 됐다는 것이다. 나는 더 이상 동의할 수 없다. 내가 (이윤에 관한 거의 모든 정의를 이용해) 계산한 모든 이윤율은 침체 후 반등을 정확히 포착했다. 그것들 모두는 대침체 기간 동안 하락했다(바닥을 쳤을 땐
[호황의] 절정기였던 2006년 값보다 24%에서 38%까지 낮았다). 그러다 그 값들 모두는 반등해 2013년쯤엔 2006년 수준에 근접하거나 넘어섰다. 기업이 노동력을 늘리지 않고 생산하는 데 따른, 침체 이후 생산에서 노동자 몫의 급격한 감소가 수익성 회복의 주요 원인이다. 이는 '임금 억제' 때문이 아니다. 인플레이션 효과를 보정한 후에도 노동자의 시간당 임금은 상승했다.

이전엔 옳았던 하비(마르크스의 '과소소비론'에 대해)

'충돌하는 힘들'과 '다양한 모순과 위기 경향들'이 있다는 것을 하비는 왜 반복적으로 강조하는 것일까? 우리는 왜 일원인론인 LTFRP의 허수아비로 묘사되는 것일까? 우리는 이것들을 함께 다룰 때 이 둘이 암시하는 바를 주목해야 한다. 이는 법칙이 위기의 다른 원인들과 상쇄 요인들이 존재하지 않는다고 가정할 때만 옳을 수 있기 때문에 우리는 그것들의 존재를 인지했을 때 법칙을 일단 포기해야만 한다는 것이다. 따라서 내가 1편에서 지적한 대로 다중원인론에 대한 주장들은 위기에 관한 하비의 부재원인론에 대한 갈망을 가리는 가면이라고 나는 의심한다. 그는 분명 '자본론' 3권에 나와 설명되고 완료된 위기에 관한 명확한 다중원인론에 만족하지 못한다. '자본론' 3권에는 LTFRP 이론이 온전하게 남아있고 금융 시스템과 같은 다른 결정 요인들이 이와 연결돼 그것이 드러나는 방법을 매개한다.

특히 하비는 과소소비 위기론, 즉 '유효수요' 부족을 LTFRP 그리고 기업의 투자 결정과 금융 동요와 같은 중간매개들이 작동한 간접적인 결과가 아니라 독립적이고 연관되지 않은 대중의 제한된 소비가 만들어낸 현상으로 보는 이론을 마르크스의 탓으로 돌리고 싶어하는 것 같다. 곧 그는 "만약 임금이 너무 낮다면 유효수요의 부족은 문제를 일으킬 것"이라는 관념을 마르크스의 것으로 돌린다. 증거로 그는 '자본론' 3권(그리고 2권의 비슷한 주석)에서 한 문장, "언제나 모든 현실적 공황의 궁극적인 원인은 … 대중의 궁핍과 제한된 소비에 있다"(자본론 3권, 597쪽)는 마르크스의 설명을 인용한다.

하비는 곳곳에서 이 문장을 등장하는 맥락을 제거하고 전통적인 과소소비론의 방식으로 다룬다. 맥락을 따져보면 그 문장은 저임금이 부족한 수요로 이어지는 시기와 관련이 없을 뿐 아니라 대중의 제한된 소비를 위기의 '원인', 현대적 의미에서 (아리스토텔레스가 '작용인'이라고 말한) '원인'이란 단어를 사용했을 때의 '원인'으로 보는 것 같지도 않다. 그것은 단지 위기가 가능한 조건(아리스토텔레스적으로 '형상인')일 뿐이고 이 가능성을 현실로 만드는 것은 아니다.
[5]

바로 몇 해 전, 하비는 언급된 그 문장과 구절을 보다 명확히 이해하고 그 맥락에 따라 조심스레 분석했다. 잉여가치가 생산돼 화폐로 실현되는 것을 가능케 하는 추가 수요가 어디에서 발생하는지 물은 후 하비는 "마르크스의 대답은 놀라울 정도로 냉혹하게 솔직했다. 자본가와 노동자의 두 계급으로 구성된 폐쇄된 사회에서 추가 수요는 오직 하나의 원천, 즉 자본으로부터 만들어질 수 있을 뿐이고 따라서 착취받는 노동자는 그것의 원천이 되지 못한다"(하비 2012, p.25)고 지적한다. 다시 말해 그것은 추가적인 생산수단을 위한 자본가들의 기업 수요-투자수요-와 판매될 잉여가치를 포함하는 생산물의 상당 부분을 차지하는 자본가 가정의 소비재 수요다. 그에 따라 하비는 경제 위기를 특징지우는 수요의 부족이 위기 때든 위기가 아니든 언제나 소비를 제한받아온 '대중' 또는 '착취받는 노동자'의 제한된 소비 탓이 아님을 명확히 하기 위해 그 구절을 인용하고 많은 부분을 질문하는 식으로 요약한다. 따라서 위기를 대중의 제한된 소비 탓으로 돌리는 것은 비행기 사고를 (사고가 났을 때든 그렇지 않을 때든 언제나 존재하는) 중력 탓으로 돌리는 것과 같다.

대신 수요의 부족은 '자본으로부터' 나와야 할 추가 수요의 발생이 일시적으로 중단된 현실이 원인이다. 핵심 문제는 하비가 '지속적인 자본축적'(하비 2012, p.26)이라고 부른 것, 즉 생산을 위한 추가적인 투자를 자본주의가 필요로 한다는 점이다. 그러나 추가적인 생산적 투자의 규모가 필요한 것보다 적어졌을 때, 바로 그 때문에 수요 부족은 발생한다.

하비는 이 모든 것을 알고 있음에도 (적어도 그랬었다) 왜 갑자기 '제한된 소비' 문장을 맥락에서 떼내어 과소소비론적 '임금 억제' 위기 이론을 마르크스가 실제로
[의미했던] 수요 문제에 관한 '냉혹하게 솔직한' 설명과 연관짓는 데 이용한 것일까? 그것은 아마 '냉혹하게 솔직한' 설명이 우리를 이윤율의 저하로 곧장 되돌아가게 만들기 때문일 것이다. 일단 우리가 수요 부족이 거의 항상 투자수요 부족의 문제임을 이해하게 되면 뒤를 이어 투자는 왜 부족한가라는 의문을 갖게 될 것이다. 이 의문은 더 나가서 두 가지 질문으로 연결된다. 투자수요를 충분히 감당할 만큼 넉넉한 양의 이윤(잉여가치)을 만들어낼 수 있는가? 오늘날 새로운 투자의 이윤율이 미래에 적절한 규모의 투자로 이어질 만큼 충분히 높을 것이라고 기대할 수 있을까?

불충분한 수익성은 미국에서 생산적 고정자산에 대한 기업들의 투자수요가 장기적으로 둔화해 온 주요 원인이다. 1948년에서 2007년 사이 기업들의 고정자산 축적률은 41%까지 떨어졌다. 축적률에 영향을 미칠 수 있는 다른 유일한 요인은 이윤 중 생산에 재투자된 부분이다. 그것은 실제로 아주 약간(3%) 올랐을 뿐이다. 그러므로 생산적 자본 축적률의 대체적인 감소는 이윤율 하락의 결과다(더 진전된 논의는 클라이먼ㆍ윌리엄스 2014를 보라).

생산적 투자의 미래 수익성이 불충분할 것이라는 예상은 오랫동안 중요한 문제로 간주됐고 여기에 대침체 후 회복이 그토록 약하고 오래 걸린 결정적 요인이었던 것으로도 보인다. 미약한 회복을 설명하기 위해 폴 크루그먼, 마틴 울프와 미국의 전 재무장관인 로렌스 서머스와 같은 주류 경제학자들과 경제지 필자들은 미국 경제가 침체 이전, (즉 인플레이션을 감안했을 때) 실질 단기 수익률이 -2% 또는 -3% 수준으로 터무니 없이 낮아서 충분한 수요가 더 이상 지속될 수 없었던 시기인 1980년대 중반쯤부터 꽤 오랫동안 '구조적 장기 침체(secular stagnation)'의 시대에 접어들었다고 말한다. 이는 인플레이션을 감안해 계산했을 때 대출자들이 빌린 것보다 더 적게 갚는다는 걸 의미한다. 기업이 충분한 투자에 착수하도록 유도할 유일한 방법이 그들에게 되갚지 않아도 될 돈을 제공하는 것이라면 새로운 투자의 예상되는 수익률은 정말로 지독하게 낮을 것이다!(더 진전된 논의는 클라이먼 2014a를 볼 것)

나는 하비가 말하 듯 "그것 모두가 어떤 숨어있는 이윤율 저하 경향의 결과라고 주장"하지 않았다. 그것이 틀린 것은 두 가지 이유 때문이다. 먼저 중간매개의 모든 방식이 복합적 요인들과 작동한다. (하나의 예를 든다면 대침체는 기업의 미래에 대한 자신감을 약화시켰다.) 둘째로 이윤율이 저하하는 경향은 '숨겨진' 게 아니다. 헤겔이 말했 듯이 본질은 현상으로 나타나고야 마는 것이다
[국역 '철학강요' 160쪽]. 나는 그렇게 되고 있다고 생각한다.

앤드루 클라이먼은 '자본주의 생산의 실패: 세계대침체의 원인'(정성진ㆍ하태규 옮김, 한울 2012), '마르크스 '자본론'의 복권: 모순이라는 신화에 대한 반박 Reclaiming Marx's 'Capital': A Refutation of the Myth of Inconsistency'(Lexington Books 2007)의 저자다. 페이스 대학(뉴욕)의 경제학 명예교수이며 '마르크스주의 휴머니스트 이니셔티브(the Marxist-Humanist Initiative)' 함께 정치적 활동을 하고 있다.

참고문헌
Harvey, David. 2012. History versus Theory: A Commentary on Marx’s Method in Capital, Historical Materialism 20:2, 3-38.
_______. 2014. Crisis Theory and the Falling Rate of Profit.
Kliman, Andrew. 2012. The Failure of Capitalist Production: Underlying Causes of the Great Recession. London: Pluto Books.('자본주의 생산의 실패: 세계대침체의 원인', 정성진ㆍ하태규 옮김, 한울 2012)
_______. 2014a. Clarifying “Secular Stagnation” and the Great Recession, New Left Project. March 3.
_______. 2014b. Were Top Corporate Executives Really Hogging Workers’ Wages?, Truthdig. Sept. 18.
Kliman, Andrew and Shannon D. Williams. 2014. Why “Financialisation” Hasn’t Depressed US Productive Investment, Cambridge Journal of Economics. Print version forthcoming.
Marx, Karl. 1991a. Capital: A Critique of Political Economy, Vol. Ⅲ. London: Penguin.('자본론: 정치경제학 비판 제3권 자본주의적 생산의 총 과정', 김수행 옮김, 비봉출판사 2008)

주석
[1] '그림 1'의 데이터는 미국경제분석국(BEA)의 분석을 이용했다. 국민소득과 생산 계정 표 1.14의 1ㆍ4ㆍ 7ㆍ9ㆍ10ㆍ12행. 고정자산 표 6.3의 2행. 고정자산 표 6.6의 2행. 순영업 잉여와 세후 순익은 이익에서 계산했다. 두 비율의 분모는 감가상각을 고려한 고정자산에 축적된 투자다. 감가상각은 역사적 비용으로 평가된다.
[2] 나는 이를 내 자신의 분석을 논의하는 데만 그칠 것이다. 다른 이들의 주장에 대해선 그 만큼 알지 못하기 때문이다.
[3] 하비의 주장에 따르면 - 마르크스가 명목상의 것보다 더 적게 참조한 - 자본의 '실질적인' 가치구성조차 순수한 노동절약형 기술 변화의 지표가 아니다. 이점에 있어 그것은 '기술적' 그리고 '유기적' 구성과 다르다. 그러나 내 추정은 미국 기업의 실질적 가치구성이 기술적ㆍ유기적 구성에 매우 근접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1947년부터 2007년까지 실질적 가치구성은 약 160%까지 증가했다. 심지어 이 기간의 거의 대부분 동안 다른 자본구성들 사이의 연관은 이 수치가 보여주는 것보다 더 강했다. 성장률에서의 차이는 대부분 예외적으로 빠르게 늘어나 실질적 가치구성을 일시적으로 압박했던 임금 때문이다.
[4] '그림 2'는 미국경제분석국(BEA)의 '국제수지와 직접투자대조표'에서 가져왔다. 이윤율의 분자는 '시가 보정 전 직접투자수입'이고 분모는 '역사적 비용에 기초한 미국의 해외직접투자'다. 데이터는 '모든 나라'를 대상으로 했다.
[5] 이 구절에 대한 더 진전된 분석은 클라이먼 2012 의 253~255쪽(국역본)을 보라. 과소소비 위기론의 약점에 대한 논리적이고 실증적인 논의는 이 책의 8장을 보면 된다.

하비는 올해 출간될 '2008년의 대붕괴'의 초안으로 2014년 발표한 글[링크]에서 마르크스의 이윤율의 경향적 저하법칙을 비판적으로 논했다. 이에 대해 마르크스주의 경제학자인 앤드루 클라이먼이 반박에 나서 논쟁이 진행되고 있다. 아래는 앤드루 클라이먼의 첫 번째 하비 비판이다.

※ 'crisis'는 '위기'로 통일했습니다. 1847년과 1858년 공황과 관련해 마르크스의 용어를 검토하는 부분에서만 '공황'이라고 썼습니다. 인용 중 국역본이 있는 것은 이를 활용했습니다. 대괄호[ ]는 이해의 편의를 위해 추가한 것입니다. 잘못 옮긴 부분에 대한 지적을 기다립니다. 댓글로 달거나 메일(go24601@gmail.com)로 보내주십시오.

※ 6월 14일 수정. 김공회 선생의 꼼꼼한 충고를 반영해 수정했습니다. 단, 잘못 옮긴 것의 책임은 전적으로 제게 있습니다.


자본주의 위기에 대한 하비와 마르크스의 대결
1편: 마르크스를 오해하기

앤드루 클라이먼ㆍ2015년 3월 10일ㆍ링크
칼 마르크스의 이윤율의 경향적 저하법칙은 대침체(the Great Recession)를 설명하고 미래의 중대한 경제위기들에 어떻게 대비할지 이해하는 데 필수적이다.

마르크스주의 지리학자로 잘 알려진 데이비드 하비는 최근 발표한 논문(하비 2014ㆍ링크)에서 칼 마르크스의 이윤율의 경향적 저하법칙(LTFRP)의 ▲마르크스 자본주의 경제위기 이론 내 지위와 ▲대침체 그리고 지속되는 침체 여파와의 관련성을 격렬히 비판했다. 법칙은 자본주의 하에서 노동 절약형 기술 진보로 인해 이윤율이 하락하는 경향이 있다고 말한다. 기술 혁신은 생산비용을 떨어뜨리면서 생산물 가격 상승을 저지하는 경향을 띠며, 이는 기업이 자신의 생산물 생산에 투자한 자본의 크기 만큼 이윤을 빠르게 증가시키는 걸 어렵게 한다.

이 과정이 대침체의 근본원인 중 하나인지 아닌지는 매우 큰 정치적 중요성을 지닌 문제다. 쟁점은 자본주의 작동방식을 더 낫게 만들기 위한 정책들-국가가 통제하는 자본주의로 신자유주의를 대체하고, 금융을 규제하고, 불평등을 줄이고 금융보다 생산에 더 친화적인 정책들 등-이 미래의 중대한 경제위기들을 막는 데 성공할 수 있느냐는 것이다. LTFRP에 뿌리를 둔 위기 이론은 그와 같은 정책들이 궁극적으로 성공할 수 없다고 암시한다. 왜냐면 그 정책들은 이윤 극대화를 위한 충동, 기술 진보와 수익성 하락 사이의 관계와 같은 자본주의의 모든 형태에서 핵심적인 부분을 거의 그대로 남겨두기 때문이다.

하비의 주된 불만은 LTFRP와 위기 이론이 일원인론에 바탕을 두고 있다는 것이다. 이 이론은 상쇄 요인들에 더해 위기의 다른 원인들을 무시하고, 이 이론의 현 지지자들에 의해 '다른 가능성에 대한 의견을 배제'하는 전형적인 방식으로 제시된다는 것이다. 나는 이런 주장은 단지 허수아비 때리기일 뿐이라고 논할 것이다.

진정한 쟁점은 누군가가 일원인론을 옹호해왔다는 게 아니라 우리가 부재원인론
[앤드루 클라이먼은 'apousa-casual theory'라고 적고 있다. 'apousa'는 그리스어 'απουσα'의 알파벳 표기로 'absent'를 뜻한다. 하비가 이 단어를 사용했는지는 확인 못했다]이라고 불러야 할, LTFRP가 그 어떤 역할도 하지 않는 이론을 하비가 적극 주장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도 어떤 의견을 배제하려 하는 사람 중 하나인 것이다. 자본주의의 '모순된 힘들의 소용돌이'와 '복합적인 모순과 위기 경향'에 대한 그의 강조에 비추어 보면 그가 그 어떤 것도 배제하지 않은 위기의 모든 잠재적 원인을 우리가 고려해야 한다고 충고하려는 것이라고 예상될 것이다. 그러나 하비는 위기의 다른 잠재적 원인을 LTFRP와 함께 고려해야 한다고 제안하는 게 아니다. 그는 그 이론과 이에 기반한 위기 이론을 역사의 쓰레기통에 처박으려 단단히 결심한 것 같다. 그는 LTFRP가 진정한 법칙인지, 마르크스가 마침내 그 이론에 정말로 동의했는지, 이윤율이 하락한다는 타당한 증거가 있는지, 하락하는 경향을 언급하는 이 법칙 때문에 이윤율이 하락하는 것인지 의문을 던지는 데 논문의 대부분을 할애하고 있다. 나는 이 모든 것에도 대답할 것이다.

하비 논문의 두 가지 다른 측면 또한 논할 것이다.

1. 하비는 1980년대 시작된 노동인구의 세계적 성장은 LTFRP가 작동되지 않음을 시사한다고 주장한다. 나는 이 주장이 법칙에 대한 초보적인 오해에 기반해있음을 보여줄 것이다.

2. 마르크스가 "만약 임금이 너무 낮으면 유효수요의 부족이 문제가 될 것"이라고 논했다고 하비는 주장한다. 나는 이것이 마르크스의 글에 대한 그의 최근 해석(하비 2012)과 모순됨을 보여주고 그의 앞선 입장이 옳음을 논할 것이다.

LTFRP에 대한 그의 태도는 나를 놀라게 하지도 않았고 특별한 것도 아니다. 하지만 그는 마르크스의 법칙에 기반한 위기 이론이 "마르크스주의자들 내에서 헛된 우상의 지위를 점하고 있다"고 썼고 사실 이보다 더한 모욕은 없다. 정치 영역에서 만큼 학계에서도 다른 마르크스주의자들과 좌파들은 소위 이론에서의 교조조의와 그 지지자들을 자주 격렬히 비난해 왔다. 그들은 또한 연구에서 그 이론을 배제하려 해왔다. 예를 들면 M. C. 하워드와 J. E. 킹 교수는 자신들의 책 '마르크스주의 경제학의 역사(A History of Marxian Economics, 1992, ⅹⅲ)'에 LTFRP는 "마르크스주의 정치경제학의 학문적 신뢰도에 큰 상처를 줘 왔다"고 적고 있고 크샤마 사완트의 조직 '노동자 인터내셔널을 위한 위원회[Committee for a Workers' InternationalㆍCWIㆍ영국에 시작된 트로츠키주의 조직. 영국 노동당 내 밀리턴트 경향에서 발원했으며 현재 세계 45개 나라에 조직을 두고 있다]'는 최근 '교조주의자' 두 명의 회원 자격을 정지시켰다. 연구에서 가능한 설명을 배제하려는 노력이 교조주의에 대한 반대로 표현되고 이런 편견이 그토록 자주 받아들여지는 게 특히 불쾌하다.

노동인구에 관한 데이터

하비는 고용이 현저히 증가하고 있다는 통계-세계 노동인구는 1980년에서 2005년 사이 11억 명이 증가했다-를 끌어들여 이를 세계적으로 이윤율이 하락하고 있다는 생각을 부정하는 증거로 사용하려 한다. 그는 이 주제에 천 단어 이상을 사용한 끝에 다음과 같은 결론에 도달한다.

현 자본주의가 겪는 곤경들을 이윤율이 하락하는 경향의 결과로 보는 사람들은 이러한 노동 참여의 증거로 인해 심각한 오류에 빠졌다는 판정받을 것이다. 이러한 상황은 잉여가치 생산과 추출이 압박받는 것이 아니라 어마어마하게 증가하고 있음을 가리킨다.

데이터는 확실히 잉여가치 또는 이윤이 - 절대적으로 - 크게 증가하고 있음을 나타낸다. 그러나 여기서 쟁점은 이윤, 투자된 자본량에 대한 잉여가치 또는 이윤의 비율에 무슨 일이 일어났느냐이다. 비율[분수]에서 분자의 증가는 비율 전체가 증가한다는 증거가 되지 못한다. 이윤율에서 분모, 투자된 자본의 비율 증가가 분자의 비율 증가보다 훨씬 크다면 이윤율은 떨어진다. 분모가 더 큰 비율로 증가하지 않았음을 하비가 보여주지도 암시하지도 못한, 그가 끌어모은 통계는 이윤율이 증가했다는 증거가 아니다.

그럼에도 하비는 - 투자된 자본의 그 어떤 증가도 무시한 채 - 고용의 증가는 그 자체로 마르크스의 LTFRP가 1980년대 초부터는 작동하지 않아 왔다는 강력한 증거라고 주장한다. "만약 이윤율이 하락하는 경향이 있다는 일반 이론이 옳다면 노동 절약형 기술 변화의 확산은 … 자본에 고용된 임금노동자 수가 감소하는 경향이 있다는 뜻이 될 것이다. 이는 마르크스가 기꺼이 인정했던 바이기도 하다."

이게 바로 틀렸다. LTFRP가 고용 감소를 의미한다고 마르크스가 "기꺼이 인정했다"는 그의 주장을 뒷받침하기 위해 하비가 끌어온 구절은 실제로는 노동절약형 기술 변화('생산성 향상')가 "주어진 자본에 의해 고용되는 노동력의 양을 감소시키는 경향을 가진다"고 말한다(자본론 3권, 280쪽, 강조는 글쓴이). 예를 들어 만약 투자된 자본이 원래 100만 달러이고 노동자 10명을 고용했고 이후엔 400만 달러를 투자해 노동자 20명을 고용했다면 '주어진 자본에' 고용된 노동자 수는, 이를테면 100만 달러 당 10명에서 5명으로 감소했다. 즉 이는 하비가 설명하듯 고용 규모의 절대적 감소를 뜻하는 게 아니다. 절대적인 고용 규모는 10명에서 20명으로 두 배가 됐다.

게다가 마르크스가 LTFRP를 제시하는 앞 부분의 확장된 논의에서 그는 하비가 말한 "기꺼이 인정했다"는 것을 명백하게 거부하고 있다.

이윤율의 점진적 저하의 법칙은 … 사회적 자본에 의해 운동되고 착취되는 노동의 절대량, 그리고 또 사회적 자본에 의해 취득되는 잉여노동의 절대량이 증가하는 것을 결코 배제하지 않으며 …

이윤율의 저하는 총자본 중 가변적 구성분의 절대적 감소로부터 발생하는 것이 아니라 상대적 감소, 즉 불변적 구성부분에 대한 가변적 구성부분의 상대적 감소로부터 발생한다.

이윤의 절대량(그것의 총량)은, 이것과 총투하자본 사이의 비율의 비상한 감소에도 불구하고 50%나 증가한 것이다. 자본이 고용하는 노동자의 수, 즉 자본이 운동시키는 노동의 절대량, 그리고 또 자본이 흡수하는 잉여노동의 절대량, 즉 자본이 생산하는 잉여가치의 양, 이리하여 자본이 생산하는 이윤의 절대량은, 이윤율의 점진적인 저하에도 불구하고 증가할 수 있으며 그리고 점진적으로 증가한다. 이것은 자본주의적 생산의 바탕 위에서 가능할 뿐만 아니라 일시적인 변동을 제외한다면 그렇게 되지 않을 수 없다.
-자본론 3권, 259~261쪽, 강조는 원문

요점을 좀 더 강조해 명확히 다시 말하자면 고용의 증가는 LTFRP에 반대되는 증거가 결코 아니다.

마르크스의 '분명한 동요와 양면성'

하비는 "그 법칙의 보편적 타당성에 관한" 자신의 "오랜 회의론"을 정당화하기 위해 "마르크스가 자신의 발견을 법칙, 경향의 법칙 혹은 가끔 단지 경향이라고까지 부른다는 데서 그의 언어가 갈수록 동요하고 있음을 우리는 안다"고 썼다. 하비가 '경향'과 '법칙' 사이의 동요로 이해한 것은 사실 현실에서 일어난 일과 그것을 설명하는 것 사이의 불가피한 차이에서 비롯한 것이다. 마르크스는 이윤율이 하락하는 경향이 있다고 지적하며 이 하락 경향을 설명하기 위해 법칙을 제안한다. [여기에] 동요는 어디에 있는가?[1]

마르크스는 LTFRP를 '법칙'으로 부르거나 '경향 법칙'이라고 부르는 것 사이에서 동요한 것도 아니다. 그는 모든 경제적 법칙을 경향의 법칙으로 여겼다. 예를 들면 그는 '자본론' 3권 10장에서 "우리는 이러한 일반적 잉여가치율을 모든 경제법칙과 마찬가지로 하나의 경향으로서 … 가정하고 있다."(자본론 3권, 207쪽)고 적었다. 핵심은 충분히 간단하다. 이윤율 같은 경제적 변수에서 모든 변동을 담아낼 법칙은 발견할 순 없다. 이러한 변동들이 순수하게 법칙을 따르는 게 아니기 때문이다. 이것들은 모든 종류의 우연적 사건과 방해로부터 영향을 받는다. 우연적 사건과 방해에도 불구하고 그로부터 드러나는 변수들의 경향 법칙을 발견할 수 있을 뿐이다.

여기에 하비는 마르크스가 LTFRP에 대해 양면적이었다는 자신의 믿음을 뒷받침하기 위해 추가적인 근거를 제시한다.
[그가 제시하는] 첫째는 "마르크스가 '프랑스 내전' 같은 그의 정치적 저작에서 이윤율이 하락하는 경향에 대해 그 어떤 언급도 하지 않고 있다"는 것이다. 그런데 '프랑스 내전'에서는 잉여노동이나 잉여가치와 같은 현상들도 일절 언급하지 않는다. [그렇다면] 하비는 이러한 부재를 잉여노동 또는 잉여가치의 존재에 대해 마르크스가 의심해왔다는 타당한 증거로 고려해야 하지 않을까? "그것들의 일반적인 타당성에 대한 오래된 회의론"의 근거로 간주해야하는 것 아닐까?

더 나가 마르크스가 LTFRP에 대해 의구심을 표했다는 증거로 하비는 1848년과 1857년 공황들을 '상업과 금융 공황들(commercial and financial crises)'로 묘사하며 이윤율 하락에 관해서는 단지 지나가는 말로만 언급하는 마르크스의 분석을 지적하고 있다. 마르크스주의 학자인 미하엘 크래티케는 비슷한 주장을 해왔다. 이는 경기후퇴와 불황을 위기(crises)라고 부르는 현재 통용되는 마르크스주의 학술용어에 익숙해진 이들에게 중요한 증거처럼 보일 수 있지만 용어의 사용법은 마르크스 시대 이후 크게 변해왔다. 그가 말한 경제위기들(economic crises)은 상업과 금융공황을 의미했다. 그는 경기변동의 연이은 국면들을 "중간 정도의 활황, 번영, 과잉생산, 공황, 불황" 또는 "평균수준의 호황ㆍ활황ㆍ공황ㆍ침체"(자본론 1권, 607쪽, 863쪽)로 묘사하며 이러한 위기들을 그것들이 초래한 경기하강과 구분한다.

게다가 마르크스는 이윤율 하락 경향을 상업 또는 금융위기들의 직접적인 원인으로 간주하지도 않았다. 그는 이윤율의 감소는 간접적으로, 그리고 약간의 지체를 겪은 후 위기로 이어진다고 주장했다. 이 경향은 과잉생산을 촉진한다(이를테면 생산적 투자수요의 침체를 통해). 또한 금융 투기와 사기도 조장한다. "이윤율이 저하하면 … 어떤 종류의 특별이윤이라도 얻기 위하여 새로운 생산방법, 새로운 투자 및 새로운 모험 등을 앞뒤 가리지 않고 시도하기 때문에 투기와 투기의 일반적 촉진이 나타난다." 오직 부채를 최종적으로 갚지 못할 때 위기-이 경우 금융위기-가 폭발하고 이 위기는 침체로 이어진다. "특정한 지불일이 붙어있는 지불의무의 연쇄는 여러 곳에서 끊어지는데, 이것은 자본과 함께 발전하여 온 신용제도의 동시적 붕괴에 의해 더욱 격화된다. 이 모든 것들이 격렬하고 첨예한 공황, 갑작스럽고 강력한 가치감소, 재생산과정의 현실적 정체와 교란, 따라서 또 재생산의 현실적 축소를 일으킨다."(자본론 3권, 289~291쪽, 310~311쪽, 305쪽)

마르크스가 상업과 금융 관계의 파국을 '위기'라는 단어를 사용해 표현하고, 그가 이윤율의 하락과 위기의 폭발 사이에 많은 중간매개의 존재를 인정한다는 것을 우리가 이해하면 그가 때론 이윤율의 하락 경향을 추상적으로만 다루며 위기들을 논한다는 게 놀랍거나 특별히 중요한 것은 아니다. 그는 한 번에 모든 것을 다루려 하다가 혼란스러운 잡동사니를 만들어내기보다 한 번에 하나의 것을 다루기를 선호하는 오직 엄격하고 변증법적인 인물이었을 뿐이다.

또한 하비는 1868년 이후 "마르크스는 이윤율 하락 이론으로 결코 돌아가지 않았다"며 "마르크스가 일찌기 '정치경제학 비판 요강(the Grundrises)'에서 '정치경제학의 가장 중요한 법칙'이라고 강조했던 것을 그의 마지막 10여 년 간 연구에서 무시하는 선택을 내려야만 했던 것은 이상야릇하게 보인다"고 말했다. 그러나 마르크스가 LTFRP를 '무시'했다는 추정에는 근거가 뒤따르지 않는다. 나는 이론적이거나 실증적인 문제를 만족스럽게 해결했을 때 더 이상 집요하게 그 문제에 머무르지 않고
[다른 문제로] 관심을 옮긴다. 이는 내가 도달한 결론을 무시한다는 게 아니다. 주어진 대답을 받아들인 것이다. 마르크스도 비슷한 방식으로 작업했다는 증거가 내겐 있다. 하비는 어떤 식으로 작업하는가?

따라서 진정한 질문은 다른 문제로 나가기 전 마르크스가 이윤율이 하락하는 원인에 대한 자신의 해명에 만족했느냐는 것이다. 증거들엔 의심할 여지가 남아있지 않다. 미하엘 하인리히(그는 최근 하비와 비슷한 주장을 했다)에 대한 대답에서 나와 공저자는 "1865년부터 1877년 사이 마르크스의 편지들에서 그가 자신의 이론적 결론에 만족했으며 그가 출간한 첫째 권 뿐 아니라 출간하지 못한 채 남겨뒀던 다른 권들을 포함한 자본론을 이론적인 면에서 최종적인 결과물로 간주했다는 많은 증거"(클라이먼ㆍ프리먼ㆍ포츠ㆍ구세프ㆍ코니 2013)를 보여줬다. 하인리히는 이 증거에 답하지 않았고 하비는 이에 대해 토론하는 것을 피했다.

LTFRP가 정치경제학의 가장 중요한 법칙이라는 마르크스의 관점은 초기에만 한 번 언급된 것도 아니고 이후 '무시'되지도 않았다. 그는 이를 1857~58년 '정치경제학 비판 요강'뿐 아니라 1861~63년 원고에서도 단언했다. "정치경제학의 가장 중요한 법칙인 이 법칙은 자본주의적 생산의 발전에 따라 이윤율이 하락하는 경향을 띤다는 것이다."(MECW Vol.33, 104쪽. 강조는 원문) 후에 마르크스는 3권을 쓸 때 LTFRP가 가장 중요한 법칙이라는 주장을 넘어선다. 그는 애덤 스미스 이후 모든 정치경제학은 이 법칙을 찾기 위해 움직여 왔을 만큼 중요하다고 주장한다. "이 법칙은 자본주의적 생산에 대하여 큰 중요성을 가지고 있으므로 애덤 스미스 이래의 정치경제학 전체는 이 수수께끼의 해결을 둘러싸고 돌고 있다고 말할 수 있다."(자본론 3권, 255~256쪽)

신화적인 일원인론

또한 LTFRP 및 그에 기반을 둔 자본주의 위기이론은 일원인론이라는 그의 비난은 마르크스의 글에 대한 그의 잘못된 이해에서 비롯한다. 마르크스의 법칙은 약간은 '엄격한' 가정에 기초한 '고도로 단순화된 모델'에서 유래했다고 하비는 주장한다. 그렇기에 현실에서 모든 가정이 꼭 들어맞을 때만 법칙은 유효하다. 그러나 이러한 가정들 때문에 법칙은 노동절약형 기술 변화 외에 수익성 하락의 모든 잠재적 원인들과 기술변화의 상쇄 효과로 인해 이윤율 하락을 저지할 수 있는 모든 요인들을 배제한다. 따라서 법칙은, 그리고 외부적 요인을 취사선택해 결합시키는 것 없이 그것을 채용한 어떤 위기 이론도 일원인론인 것이다.

물론 하비는 그 엄격한 가정을 마르크스의 글에서 발견할 수 없다는 것을 인식하고 있다. "마르크스는 (자본론) 1권에서 그의 가정을 꼼꼼하게 펼쳐내면서도 (3권의) 이윤율 하락 이론에 대해서는 그러지 않는다." 그렇다면 그는 마르크스가 펼친 그 엄격한 가정을 어떻게 아는가?

그는 최소한 한 번은 명백히 틀렸다. 하비에 따르면 마르크스의 법칙은 모든 상품("노동력은 제외하고")이 구매되고 그 실제 가치, 이 가치와는 다른 가격이 아닌 가치 그대로 판매된다고 가정한다.
[2] 바로 이 경우가 틀렸다. 3권 3편의 주제가 그 법칙이다. [그런데] 마르크스는 2편에서 이미 상품의 가치와 그것이 실제로 팔릴 때의 가격 사이에 큰 차이가 있겠지만 경제에서 산출물의 총 가격은 전체적으로 이 산출물의 총 가치와 같다(그리고 그에 따라 그 한계가 된다)는 결과를 이끌어냈다. 따라서 하나의 기업 또는 산업이 생산물의 가치를 넘어선 가격을 받을 때 이 이득은 순전히 다른 자본가들의 손실을 상쇄하는 대가가 된다. [손실을 입은] 이들의 생산물 가격은 그 가치보다 적다. 그리고 이로부터 첫째 총 이윤은 만들어진 총 잉여가치와 같다(그리고 그 한계가 된다)는 것, 둘째 가격과 가치 사이의 차이는 LTFRP와 관련해 경제 전반의 이윤율에 영향을 미치지 못한다는 결론이 이어진다.[3]

모든 상품이 그 가치대로 팔린다는 가정이 아니라 앞선 것과 같은 결론이 마르크스가 이윤율의 경향적 저하법칙을 이끌어낸 기초적 조건이다(MECW Vol.33, 104쪽. 강조는 원문).

우리는 개별 자본의 이윤율이 투하자본 총량 대비 잉여가치의 비율과 다름을 살펴봤다. 그러나 자본가계급의 총 자본을 고려하면 평균적 이윤율은 이 총 자본에 계산되고 관련된 총 잉여가치 외에 아무 것도 아니라는 것도 … 보여줬다. 그러므로 우리는 이로부터 다시 한 번 다수 자본의 경쟁을 고려하지 않고도 자본이 [충분히] 발달된 것인 한 그 일반적 특성에서 직접적으로 일반적 법칙을 이끌어낼 수 있는 견고한 기초를 갖게 된다. 정치경제학의 가장 중요한 법칙인 이 법칙은 자본주의적 생산이 전개되면서 이윤율이 하락하는 경향을 띤다는 것이다.

대개 하비는 마르크스의 법칙을 가능한 제한적인 해석에 따른 여러 한정적 추정들에 기댄 모델로 치부한다. 그는 3권 3편 전체가 아니라 마르크스가 법칙의 현상으로서 소위 "법칙 그 자체(das Gesetz als solches)"라고 부른 것을 다룬 부분들만 고려한다. 이는 그 법칙을 일원인론적이고 마르크스가 3편 뒷부분에서 논한 다른 현상ㆍ제도들과 동떨어진 것처럼 보이게 한다. 법칙은 (내가 앞에서 논했 듯) 여러 상쇄 요인들 사이에서, 그리고 금융제도의 매개를 통해 작동하는 게 아니라 실제 세상의 그처럼 많은 요인들을 배제하고 무시한 상상속 조건에서만 오직 소환될 수 있는 딴 세상의 관념처럼 보인다.

하비는 마르크스가 그처럼 많은 "여러 제한적 (법칙의) 적용 가능성"을 "배제"했다고 말한다. 하비는 마르크스가 다른 현상과 제도들을 잇따라 분석에 도입했음을 알고 있지만, "법칙 그 자체"를 저지선 바깥으로 쳐냄으로써 그는 이런 사실을 LTFRP의 다원론적 성격의 증거로 인식하는 데 실패했다.
[그에겐] 추가적인 현상과 제도들의 도입은, 법칙이 자신을 드러내는 구체적 형태들 속에서 그 법칙을 묘사하는, 법칙의 변증법적 풍부화로 나타나기보다는, 법칙이 작동할 수 있기 위해 요구되는 조건들이 실제로는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에 대한 암묵적인 시인으로 나타난다. 법칙은 온전히 남지 못한 것으로 비친다. [이제] 마르크스는 전과는 별개의 논의에, 즉 “법칙을 도출해낸 가정들이 제거되었을 때 어떤 일이 벌어질 것인가”와 관련된 논의에 천착하고 있는 것처럼 나타난다. 그는 법칙의 지위에 의문을 나타내며 그의 "동요와 양면성"을 보여주는 것처럼 보인다. 그래서 우리에겐 전혀 다른 틀을 갖는 위기 이론이 필요한 것처럼 보인다. 그것은 그 어떤 내적 연관도 갖지 않는, 서로 너무 달라서 "어떤 일원인론으로 쑤셔넣는 것"이 불가능한 다수의 잠재적 설명 요인과 현상으로 가득찬 체계화되지 않은 하나의 공간이다.

그 글을 이런식으로 읽어선 안된다. 그리고 그럴 필요도 없고 그래서도 안된다. 이런 부당한 독서는 적절한 해석 방법이 아니다.

일원인론이라는 딱지붙이기가 왜 잘못됐는지를 이해하기 위해 정교한 방법론적 논의를 펼칠 필요는 없다. 사과가 나무에서 떨어지는 경향이 있다는 것을 설명하기 위한 보편적 중력법칙을, 바람과 같이 사과를 떨어뜨릴 수 있는 다른 요인 또는 공기 저항 같은 상쇄 요인을 언급하지 않은 채 내가 제안한다고 해서 이 다른 요인들을 존재하지 않는 것으로 가정하는 것은 아니다. 게다가 내가 그것들을을 배제한, 그 대신 적용 가능성의 측면에서 엄격하게 제한적인 일원인론을 구성하고 있는 것도 아니다. 내가 중력법칙으로부터 뉴튼의 운동에 관한 제2법칙을 이끌어내 설명하고 이를 증명하기 위해 방정식에서 다른 요인들의 삽입을 삼간다고 해도 그런
[일원인론적인] 것은 아니다. 그런 다음 내가 공기 저항과 바람[에 대한 설명으로] 넘어간다고 해서 내가 내 양면성과 동요를 드러낸 것도 또는 보편적인 중력법칙이 오직 진공에서만 작용하고 실제 현실에선 작용하지 않는다고 시인한것도 아니다.[4]

마르크스의 법칙이 자본주의 동학의 '절대적 진리'가 아니라고 지적한 점에서 하비는 옳다. 다시 말해 그것은 유일한 원인이 아니라는 것이다. 그것은 이윤율 궤적의 모든 일시적 변화를 해명하지도 못한다. 그러나 이는 그 법칙의 목적이 아니다. 그것의 목적은 '단지' 마르크스의 가치이론이, 그의 자본축적 이론과 결합하면, 이윤율이 하락하는 경향이 있다는
[당시 경제학자들을 괴롭히던] 사실을 설명할 수 있음을 보여주는 것이다.

하비는 글의 대부분에서 오늘날 그가 비판하는 대상이 정확히 누구인지 매우 모호하다. 예를 들어 그는 LTFRP에 뿌리를 둔 위기 이론은 그 현대적인 지지자들 사이에서 "다른 가능성의 고려를 배제하는 식으로" "전형적으로 제시되"며, "많은 마르크스주의 경제학자들"은 "원인이 하나인 위기 이론"이 있다고 "주장하기를 좋아한다"고 단언한다. 이름을 언급하는 걸 삼갔다는 것 때문에 그의 비난에 답하기는 어렵다. 그러나 한 부분에서 그는 법칙의 "어떤 지지자들"이 "금융화는 2007~8년의 붕괴와 관련이 없다고 말했다"고 했을 뿐 아니라 "앤드루 클라이먼이 가장 단호하게 위기와 금융화는 아무런 상관이 없다고 말했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나는 이를 단호하게 주장하지 않았다. 심지어 나는 내 선배들에 대해 존중을 표하기는 했어도 스스로 그것을 주장하지는 않았다.
[아니] 나는 정반대로 주장했다. "물론 금융위기가 불황을 촉발했고, 금융 부문의 특유한 현상들(과도한 레버리지, 위험한 모기지 대출 등)이 중요한 원인이었다."(클라이먼 2012, 24~25쪽)

내가 인용한 이 문장은 대침체의 근본적 원인으로 내 책의 첫 장에 나오는 것이다.
[5] 그 다음 장에선 "이윤율 저하를 최근의 경제위기와 침체에 연결하는 두 가지 중간매개 고리-낮은 수익성과 신용제도-에 집중한다".(클라이먼 2012, 40~41쪽) 그리고 3장은 2007~8년의 금융위기에 대한 다음과 같은 논의에 할애했다. ▲1990년대 닷컴 버블이 터진 이후 연방준비제도의 지나친 금융완화 정책 ▲모기지 대출의 자산 유동화 ▲서브프라임 대출 ▲주택 순자산 신용한도 대출 ▲증가하는 모기지론 주택담보대출비율 ▲대출자 레버리지 비율의 상승과 자금 수요의 감소 ▲1990년대와 2000년대의 증가하는 가계대출 ▲닷컴과 주택가격 거품 부상의 심리학 ▲신용평가기관들의 비참할정도로 부정확한 전망 모델 ▲의회의 [금융위기] 초기 TARP(Troubled Assets Relief Programㆍ부실 자산 구제 프로그램) 거부 ▲미국으로 향한 해외로부터의 저축 유입. 이것이 금융화가 2007~8년 금융위기의 원인임을 부정[6]하는 혹은 일원인론적으로 접근하는 최선의 사례라면 나는 그의 다른 사례들을 [굳이]] 더 살펴보진 않을 것이다.

앤드루 클라이먼은 '자본주의 생산의 실패: 세계대침체의 원인'(정성진ㆍ하태규 옮김, 한울 2012), '마르크스 '자본론'의 복권: 모순이라는 신화에 대한 반박 Reclaiming Marx's 'Capital': A Refutation of the Myth of Inconsistency'(Lexington Books 2007)의 저자다. 페이스 대학(뉴욕)의 경제학 명예교수이며 '마르크스주의 휴머니스트 이니셔티브(the Marxist-Humanist Initiative)' 함께 정치적 활동을 하고 있다.


참고문헌
Harvey, David. 2012. History versus Theory: A Commentary on Marx's Method in Capital, Historical Materialism 20:2, 3-38.
_______. 2014. 'Crisis Theory and the Falling Rate of Profit'.
Howard, M. C. and J. E. King. 1992. A History of Marxian Economics: Volume II, 1929-1990. Princeton, NJ: Princeton Univ. Press.
Kliman, Andrew. 2007. Reclaiming Marx's 'Capital': A Refutation of the Myth of Inconsistency. Lanham, MD: Lexington Books.
_______. 2012. The Failure of Capitalist Production: Underlying Causes of the Great Recession. London: Pluto Books.('자본주의 생산의 실패: 세계대침체의 원인', 정성진ㆍ하태규 옮김, 한울 2012)
Kliman, Andrew, Alan Freeman, Nick Potts, Alexey Gusev, and Brendan Cooney. 2013. The Unmaking of Marx's Capital: Heinrichs Attempt to Eliminate Marxs Crisis Theory’.
Kliman, Andrew and Shannon D. Williams. 2014. Why 'Financialisation' Hasn't Depressed US Productive Investment, Cambridge Journal of Economics. Print version forthcoming.
Marx, Karl. 1990. Capital: A Critique of Political Economy, Vol.Ⅰ. London: Penguin.('자본론: 정치경제학 비판 제1권 자본의 생산과정', 김수행 옮김, 비봉출판사 2004)
_______. 1991a. Capital: A Critique of Political Economy, Vol.Ⅲ. London: Penguin.('자본론: 정치경제학 비판 제3권 자본주의적 생산의 총 과정', 김수행 옮김, 비봉출판사 2008)
_______. 1991b. Karl Marx, Frederick Engels: Collected Works, Vol.33. New York: International Publishers.

주석
[1] 법칙의 함수에 대한 논의와, 이와 관련한 '법칙'의 의미에 대해서는 클라이먼ㆍ프리먼ㆍ포츠ㆍ구세프ㆍ코니(2013)을 보라.
[2] 그는 "(노동력을 제외한) 모든 상품은 그 가치대로 교환된다"는 자본론 1권과 2권 곳곳에서 중시한 가정이 3권에서도 유지되고 있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문제의 그 가정은 노동력을 배제하지 않는다. 노동력 역시 그것의 모든 가치대로 구매된다는 가정에 따라 마르크스는 시장이 아니라 생산에서 이윤이 어떻게 발생하는지를, 상품교환이야 말로 "자유ㆍ평등ㆍ소유ㆍ벤담이 지배하는 … 천부인권의 참다운 낙원"(자본론 1권, 230쪽)이라는 생각을 포기하지 않은 채 설명할 수 있었다.
[3] 마르크스가 이런 결과를 이끌어낸 과정의 내적 모순이 입증됐다는 주장을 들은 바 있는 데 이는 단지 악의에 찬 신화일 뿐이다. 클라이먼(2007) 8장을 보라
[4] 이는 마르크스가 하나하나 엄격하게 절차를 밟아나가는 것과 비교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중력 법칙은 LTFRP와 비슷하다. 운동 제2법칙은 노동시간에 따른 가치 결정 법칙(가치법칙)과 유사하다.
[5] 하비는 그의 논문 어떤 곳에서 내 책을 끌어들이지만 내가 주장했다고 그가 말하는 어떤 증거 또는 인용도 제시하지 않는다.
[6] 샤넌 윌리엄스와 나는 금융화가 대침체가 진행된 10년간 미국에서 기업의 자본축적률 하락의 원인이 아님을 보여줬다.(클라이먼ㆍ윌리엄스 2014) 당연히 그것은 완전히 다른 문제다.

Posted by 때때로

미국의 제국주의적 개입은 세계 곳곳에서 근본주의, 극단주의 무장 세력의 성장을 불러왔다. 그것이 꼭 반사작용으로서만 이뤄진 것은 아니다. 때론, 혹은 더 자주 미국 정부가 직접 개입해 무장 세력을 키워내곤 한다. 소련을 견제하기 위해 아프가니스탄 이슬람전사를 키워냈던 게 대표적 사례다. 그들이 키워낸 괴물은 9ㆍ11 테러로 응답했다. 아래 글은 이라크와 시리아를 휩쓸고 있는 이슬람국가(ISIS) 또한 마찬가지라고 말한다. 최근 비밀 해제된 미 국방정보국(DIA)의 2012년 보고서는 이슬람국가의 성장을 정확히 예측했음에도 불구하고 미 정부는 그 위협을 무시했다. 당시 여러 분석은 시리아 저항세력 지원해 전장을 부추기는 미국의 행동이 이슬람국가를 도와줄 것이라는 점도 분명히 지적했다. 이 또한 무시당한 건 마찬가지다. 미국 대통령의 피부색은 바뀌었지만 그들의 제국주의적 속성은 달라지지 않았다.

아래 글은 상당한 오역이 포함돼 있을 수 있습니다. 'ISIS'는 'Islamic State'와 함께 일괄적으로 '이슬람국가'로 옮겼습니다. 일반적 의미에서 이슬람주의가 지도원리로 채택된 국가를 뜻할 땐 '이슬람 국가'로 옮겼습니다.


미국은 이슬람국가를 어떻게 도왔나

최근 비밀 해제된 문서는 이슬람국가의 부상에 미국이 공모했음을 다시 한 번 보여준다.
- 데이비드 미즈너링크


지난 6월 시리아 라카 거리에서 이슬람국가 전사가 자신들의 깃발을 흔들고 있다. [Reuters]

2014년 10월 조 바이든 미 부통령은 이슬람국가를 후원하는 미국의 동맹국들을 비난했다. 그 전달엔 [마틴] 뎀프시 미 합참의장이 미국의 '아랍 동맹국들'이 그 단체에 자금을 대고 있다고 상원 군사위에서 말했다.

미국 고위 관계자들은 자신의 동맹국들이 이슬람국가를 후원하는 데 대해 엄격한 책임을 묻지 않으면서도 그러한 동맹의 행동으로부터 거리를 두려 해왔다. 바이든은 이슬람국가를 무장시키는 것이 그들의 의도는 아니었을 것이라며 그들에게 재빠르게 사과했다.(뎀프시에 대한 대응으로 린지 그라함 상원의원은 실제로 그들을 옹호했다: "그들은 아사드에게 타격을 주기 위해 노력해 왔다. 나는 그들이 자신의 방법들이 어리석음을 깨달았다고 믿는다.")

이러한 완곡한 비판은 이슬람 국가 폭격 개시 결정을 설득하려는 미국 관리들의 노력 와중에 이루어졌다. 지금에 와선 이미 그 단체는 시리아 동부와 이라크 서부에서 굳건하게 자리잡았다. 그러나 지난 몇 달 혹은 몇 년간 오바마 행정부가 자신의 종속국들이 이슬람국가가 지역 패권으로 성장하는 데 도움을 주는걸 막으려 노력했다는 증거는 어디에도 없다.

미국 스스로도 시리아에 무기를 계속 보냈었다. 그 중 일부가 이슬람국가의 손아귀에 들어갈 것이 확실함에도 불구하고 말이다. 2013년 이슬람국가 지도자 아부 아틸은 미국이 지원하고 있는 FSA(Free Syrian Armyㆍ자유시리아군)을 언급하며 "우리는 FSA 내의 우리 형제들과 좋은 관계를 맺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이슬람국가가 대공미사일과 대전차무기를 FSA로부터 구입했다고 말했다.

게다가 최근 비밀해제된 미군 기밀문서는 미국의 공모행위도 증언하고 있다. '비밀'로 보호되던 미 국방정보국(DIA) 2012년 8월 보고서는 보수단체인 사법감시단(Judicial Watch)이 얻은 한 묶음의 문서 사이에 있었다.

주류 언론과 공화당 정치인들은 그 문서들 중 2012년 벵가지에서 미 영사관이 공격받은 것과 관련된 것에 관심을 집중했다. 이슬람국가의 부상뿐 아니라 시리아에서 반대파 형성과 이의 외국인 후원자들과의 연관성에 관한 공식적인 설명을 부인하는 이 문서는 주요 고려 대상이 되지 못했다.

"2012년 8월 5일 DIA 보고서는 시리아 안팎의 적대자들에 관해 아사드가 말해온 모든 것을 확인해줬다"고 '테러 분석가' 막스 에이브람스는 말했다.

이 보고서는 이라크에서 폭력이 분출하던, [그럼에도] 미 언론에서 주요 화제로 삼길 그만두고 시리아에서의 전쟁 보도를 - 워싱턴에서의 논쟁 영향으로 - 아사드 정부에, 그에 맞선 세력들이 아닌 아사드에 초점을 맞추던 시기와 관련돼 있다. 이슬람국가가 미국 정부가 애용하는 괴물이 된 지금에 와선 납득하기 힘들지만 이 시기 시리아에 관한 오바마 대통령과 정부의 주요 발언에선 그 단체에 대한 어떤 언급도 없었다.

2014년 1월 이슬람국가가 팔루자를 점령한 이후에도 그 단체에 관해 알려진 정부의 논의는 부족했다. [이슬람국가의] 전장에서 승리가 계속되고 서구인들에 대한 참수가 대대적으로 알려진 2014년 후반기에는 그렇지 않았다. 이슬람국가는 제1의 공공의 적이 됐다.

미국 관리들은 이슬람국가의 영향력이 미 정보 당국에 갑작스럽게 눈에 띄었다고 주장한다. 하지만 미 정부에서 폭 넓게 회람된 2012년 보고서에서는 시리아 동부에서의 '이슬람 근본주의(Salafist) 국가'의 형성을 예견하고 있다. 이 보고서는 또한 이라크에서의 이슬람국가는 "그들의 오래된 근거지인 모술과 라마디로 귀환"해 이라크 서부와 시리아 동부에서 '이슬람 국가'를 선언할 수 있다고 말했다.

그에 더해 보고서는 이슬람 국가의 형성은 바로 반대파를 지지하는 외국 정부 목표라고 설명한다.

만약 이러한 상황이 시리아 동부(하사카와 데이르조르)에서 선언되든 선언되지 않든 이슬람 근본주의 국가의 설립 가능성으로 이어진다면 이는 정확히 (이라크와 이란의) 시아파 확장에서 전략적 핵심으로 간주되는 시리아 정부의 고립을 위해 반대파에 힘을 실어주는 세력이 원하는 것이다. [DIA 보고서 중]

약간은 다른 문맥에서 이 문서는 이미 "서방 국가들과 걸프만 나라들, 터키"를 "지원 세력"으로 취급했다. 이 문서는 미국을 '지원 세력'에서 제외하고 있다는 한 설명에도 불구하고 - 정말 왜 미국의 정보요원들은 그들의 정부에 정책이 무엇임을 물어야만 했을까? - 미국의 종속 국가들이 '이슬람 국가' 형성을 모색하고 있다는 것을 적어도 2012년 초에는 미국이 알고 있었음을 폭로하고 있다. 미국은 2년도 지나기 전에 저항세력에 우는 소리를 해야만 했다.

보다 명확히 말하자면 미국은 이라크에서 이슬람국가를 두 나라의 많은 지역을 망라한 - 그리고 휩쓴 - 지역 패권으로 전환시킨 시리아 정부에 대항한 전쟁에 참여했었다. 이와 같은 결과는 예측 가능했고 확실하게도 미국 정부 그 자신에 의해서 예견됐다.

미국 정치인들과 전문가들이 이슬람국가의 영향력에 대해 누리 알 말리키 이라크 전 총리와 아사드를 - 혹은 이라크에서의 미군 철수를 - 탓하는 동안 이슬람국가의 부상에서 핵심적 사건은 시리아에서 내란의 격화와 일치한다는 점을 DIA는 우리에게 상기시켜 준다. DIA 보고서를 분석한 첫 언론인인 레반트리포트의 브래드 호프는 이 문서가 "초기 이슬람국가는 오직 시리아 반란의 격화를 통해 현실적 존재가 됐다"는 점을 보여주며 "이라크에서 미군 철수가 이를 재촉했다는 언급은 없다"고 말했다.

말리키가 시리아에서의 전쟁에 이라크가 휩싸일 수 있다고 경고했지만 미국과 그 동맹은 반란을 계속 지원했다. 상대적으로 가볍고 산발적인 미국의 이슬람국가 폭격은 많은 이라크인들에게 미국이 그 단체의 격퇴를 원치 않는다는 믿음을 강화했을 뿐이다.

공식적 이야기에 따르면 미국은 시리아에서 저항세력 '중도파'를 지원함으로써 이슬람국가를 약화시키길 바라고 있다(시리아에서 반란군의 무장이 계속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오바마 대통령이 저항세력을 무장시키지 않는다고 거듭 비판받고 있다).

미군이 스스로의 무력을 사용하겠다는 일련의 결정을 내린 것은 지원할 만한 중도파 단체를 발견할 수 없었음을 인정한 것이다. 로버트 포드 [시리아 주재] 전 미 대사는 "우리는 오랫동안 다른 방법을 찾아왔다"고 말하며 사실상 미국이 후원하는 단체가 알케아다와 제휴한 이라크 이슬람국가의 형제조직 알누스라전선과 함께 행동했다는 것을 시인했다. - "CIA가 후원하는 저항 부대를 포함해" - 많은 '중도파' 저항세력은 알누스라전선ㆍ이슬람국가와 동맹을 맺고 있다. 올해 초 미국이 후원하는 주요 단체인 하라캇알하즘도 알누스라전선에 타격을 줄수 없자 그들과 동맹을 맺었다.

2012년 DIA 문서는 초기부터 복고주의자들이 저항세력을 지배하고 있음을 보여주고 있다. "근본주의자(Salafist), 무슬림형제단, 이라크 알카에다가 시리아에서 반란을 몰아붙이는 주요 세력"이라고 문서에 적혀 있다. 이 문서는 또한 "이라크 알카에다는 시리아 저항세력을 시작부터 후원했다"고도 밝힌다.

시리아 전쟁의 초기 단계를 지난 후 시리아 정부에 맞선 전쟁을 지원하는 것은 이슬람국가를 돕는 것이라고 DIA 보고서가 강조한 것은 오랫동안 알려지지 않은 진실이다.

이슬람국가의 부상에 미국이 부상한 것이 이례적인 것은 아니다. 2차 세계대전으로부터 여러 번 - 가장 악명 높은 것은 1970년대와 80년대 아프가니스탄에서다 - 미국은 자신이 당면한 진정한 적들의 기반을 약화시키기 위해 이슬람전사(그리고 그들의 선도자)들을 무장시키고 동맹을 맺으며 힘을 실어줬다.

꼭 앞선 사건의 역사를 찾아볼 필요도 없다. 바로 지금, 미국은 급히 끌어모은 설립자들을 이용해 세력을 건설하기 위해 시리아에서 - 알누스라전선과 함께 행동하는 - 자신의 대리인들에게 힘을 실어주고 있고, - 알누스라전선과 그밖에 반동적 단체들이 포함된 - 저항세력 동맹을 무장시켜 조정하려는 걸프 국가들과 터키의 새로운 노력을 승인했다.

미국이 이슬람국가와 알카에다의 격퇴를 진정 원한다면 그들을 무장시키는 행동을 중단해야 할 것이다.

2014년 11월 29일

앰네스티 협조로 만들어진 '아랍의 봄'(장 피에르 필리외 글, 시릴 포메스 그림, 해바라기 프로젝트 옮김)이라는 만화가 지난 3월 번역돼 출간됐었다. 결론부터 먼저 말하자면 이 책은 '아랍의 봄'에 대한 오해와 왜곡으로 가득찬 책으로 읽지 않기를 강력히 권한다.

1. 이 책은 '아랍의 봄' 원인을 오직 독재와 권위주의 정치의 관점에서만 바라본다. 2008년 경제위기 후 곡물투기로 인한 국제 곡물가 상승이 아랍지역 인민의 생활수준 하락을 불러왔던 점에 대해선 한마디도 하지 않고 있다. 따라서 이집트에서 몇년 전부터 성장하던 노동운동에 대해서도 침묵한다. 몇몇 훌리건 팬클럽 이야기는 다루면서도 말이다. 그러니 이 책이 아랍의 봄 이전 지역 국가들이 서구식 신자유주의 경제정책을 빅아들여왔다는 것을 언급하지 않은 것도 당연하다.

2. 아랍의 독재ㆍ권위주의 정권과 서방 '민주주의' 국가의 협력적 관계에 대해서도 언급하지 않는다. 그곳의 독재가 과거 제국주의의 유산일 뿐만 아니라 현재 제국주의 정책의 결과임을 다루지 않는다. 따라서 이책에 의하면 제거돼야 할 악은 오직 아랍의 독재자들과 그들 나라의 비민주적 관습일 뿐이다. 그러다보니 이스라엘의 봉쇄에 고통받는 팔레스타인 가자지구 문제를 다루면서도 이스라엘과 서방보다는 하마스 비판에 더 열을 올린다. 그래서 아랍 인민의 서방에 대한 분노는 오직 음모론을 잘못 받아들인 결과로 설명한다.

3. 서방의 민주주의 국가를 아랍 독재자들과 상관없이 다루는 것은 물론 유럽의 리비아 폭격이 리비아 인민의 해방에 도움을 줬다는 식으로 다뤄진다. 서방의 이와 같은 개입들이 아랍과 그밖의 지역에서 반민주적 근본주의자들을 성장시켰음을 침묵하는 것은 당연하다. 이슬람국가의 성장은 그리 오래되지 않은 과거만 살펴도 충분히 가능성을 살필 수 있다. 그러나 이 책은 바로 그 한 치 앞도 살피지 못한다.

우크라이나 사태는 현대 제국주의에 대한 좌파의 리트머스다. 소련 붕괴 후 사라진 것으로 보였던 '진영주의'가 여러 다른 형태로 부활하고 있다. 미국 중심의 일극적 제국주의에 반대하는 것에 익숙해진 여러 좌파가 러시아의 제국주의적 침략에 침묵하거나 그것을 반파시즘적 행동으로 고려한다. 이는 훌륭한 반제국주의 저널리스트였던 존 필저가 푸틴을 파시스트에 맞선 유일한 유럽의 지도자로 추켜세우면서 절정에 달한다. 2001년 만들어져 미국의 아프가니스탄ㆍ이라크 침공에 맞선 반전 운동을 훌륭히 건설했던 전쟁저지연합의 태도는 실망스럽기 그지 없다. 연합의 몇몇 지도자들은 돈바스 지역의 분리주의 운동을 팔레스타인 해방운동에 빗대기도 한다.

결국 이 모든 혼란은 제국주의를 일국의 패권적 행위로 이해하는 데서 비롯한다. 이렇게까지는 아니더라도 일국이 패권을 휘두르는 현재의 제국주의보다 다극적 체제가 더 낫다고 이해하는 듯도 싶다. 그러나 제국주의는 무엇보다 자본주의 세계 체제다. 현재 미국 헤게모니 하에 조직돼있다고 하지만 이것을 이해하는 것은 무엇보다 중요하다. 자본주의의 불균등한 발전은 언제나 도전하는 국가ㆍ민족경제를 예비해놓는다. 경제적 힘의 변동이 군사적 힘의 변화와 일치하진 않지만 이 둘은 긴장관계 속에 서로 떼놓을 수 없는 영향을 미친다. 특히 역사적인 지정학적 관계는 이러한 긴장을 급속도로 고조시키곤 한다. 한ㆍ중ㆍ일의 동아시아와 팔레스타인을 중심으로 한 중동, 흑해 연안 국가들과 발칸 지역이 그러한 곳이다.

하지만 지역에 따라서 제국주의적 갈등의 양상은 다르다. 이라크에서는 미국이, 팔레스타인에서는 미국의 경비견인 이스라엘이 일방적으로 행동하고 있다. 이곳에서 우리는 미국과 이스라엘에 반대하면 된다. 그러나 우크라이나는 다르다. 우크라이나에서는 두 개의 충돌하는 제국주의의 행동에 의해 인민이 희생당하고 있다. 분명 러시아가 미국에 비하면 훨씬 약한 제국주의긴 하지만 말이다. 미국보다 협소하긴 하지만 러시아가 자국의 영역이라고 생각하는 지역 내에서 지정학적ㆍ경제적 이해에 따라 행동하고 있다는 것은 분명하다.

인터내셔널뷰포인트에 실린 '우크라이나의 제국주의적 분할: 좌파와 반전 운동은 어디에 서있나?'는 사회주의자가 제국주의에 대해 가져야 할 원칙을 짚으며 현재의 반전 운동과 좌파가 빠져있는 혼란을 분석하고 있다. 우크라이나를 둘러싼 영국에서의 분열과 전쟁저지연합이 빠진 모순을 대상으로 하고 있지만 한국의 좌파에게도 남의 일 만은 아닐 것이다.

※ 대괄호[]는 이해를 위해 옮긴이가 덧붙인 것입니다. 의역이 많고 오역이 있을 수 있으니 원문을 참고해주십시오. 의역과 오역에 대한 지적은 언제나 달게 받겠습니다.


우크라이나의 제국주의적 분할: 좌파와 반전 운동은 어디에 서있나?
2014년 8월 12일 화요일, Fred Leplatㆍ링크

우크라이나의 제국주의적 분할이 러시아와 서방 제국주의 사이에 냉전 이후 볼 수 없었던 규모의 교착상태로 이어지고 있다. 이는 또한 좌파 내부의 상당히 오래된 심각한 분열을 드러냈다. 어떤 부분은 1990년대 초 옛 유고슬라비아의 붕괴 후 이어진 전쟁 기간의 논쟁을 떠올리게 한다[1].

좌파의 대부분은 러시아에서 푸틴과 그의 체제를 진보적인 것으로 말하지 않는다. 그러나 비난을 꺼리거나, 때론 침묵하기도 한다. 심지어 러시아의 크림 합병과 우크라이나 동부 개입을 지지하기까지 한다. 최근 출범한 우크라이나반파시스트연대
['Solidarity with the Antifascist Resistance in Ukraine'가 정식 명칭. 런던에서 6월 2일 출범했다. 이들은 자신의 목표로 ▷영국과 서방 정부의 키예프 극우 정부 후원 반대 ▷북대서양조약기구의 우크라이나 훈련 계획 반대 ▷5월 2일 오데사의 노동조합 건물에서 학살을 자행한 42명의 기소 ▷민주적 권리에 대한 공격과 좌파 조직에 대한 탄압 반대 ▷우크라이나에서의 반파시스트 저항에 대한 지원을 내걸고 있다. 홈페이지는 ukraineantifascistsolidarity.wordpress.com] 캠페인[2]은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동부 개입을 제외하고 오직 영국과 북대서양조약기구(NATO), 서방과 관련한 것들만 반대하고 있다.

이는 "우크라이나에서 독립적 사회주의자들과 노동운동을 지원하며 그들과 직접 연결망을 건설"하고 "러시아와 서방 제국주의의 외부 개입으로부터 자유롭게 우크라이나 인민 스스로 자신의 미래를 결정할 권리를 지지"하는 것을 기본적인 목표로 하는 우크라이나사회주의연대
['the Ukraine Socialist Solidarity'는 노동당 하원의원 존 맥도넬의 후원으로 5월 12일 의회에서 열린 모임에서 출범했다. 이들은 우크라이나에서 제국주의의 개입과 배타적 민족주의에 맞서 민주적 권리를 옹호하고 사회주의자들과 노동조합 활동가들, 노동계급의 활동에 대한 지원과 정보 제공을 목표로 한다. 홈페이지는 www.ukrainesolidarity.co.uk] 캠페인과 극명하게 대비된다[3].

레프트유니티(Left Unity)와 사회주의노동자당(the Socialist Workers Party)
[4]은 영국과 미국이 우크라이나의 위기에서 다시 또 NATO의 영역을 확장하고 전쟁 위협을 증가시킬 기회를 잡으려는 시도에 옳게도 반대해 왔다. 그리고 그들은 가능한한 우크라이나를 합병하려 한 러시아의 기도 또한 비난해 왔다.

레프트유니티는 3월 "미국과 NATO, 러시아, 유럽연합(EU) 어느 깃발 하에서든 군사적 개입은 오직 상황을 몇 배나 더 나쁘게 만들 뿐이다. 이것이 우크라이나
[상황이]다. 러시아가 국제법을 어겼다는 서방의 비난은 위선이다. 그렇지만 러시아 군대 역시 위기에 대한 어떤 해결책도 갖고 있지 않다"[5]고 발표하며 다음과 같이 호소했다. "정치적이든 경제적이든 군사적이든 우크라이나에 대한 어떤 외세의 개입도 반대한다. 우크라이나 모든 인민에게 민주주의와 평등을."

푸틴은 우크라이나 일부를 합병하려는 자신의 야망을 노골적으로 표현해 왔다. 야누코비치 전 대통령이 도피한 후 맺어진 러시아, 우크라이나, 미국, EU의 4월 17일 합의
[이 네 개 나라는 제네바에서 우크라이나 동부의 긴장 완화를 위한 조치에 합의했다. 그러나 실제로는 지켜지지 않았다] 이후 푸틴은 "하르코프, 루한스크, 도네츠크, 오데사는 차르 하에서 우크라이나가 아니었다"며 "오직 신만이 그곳들이 1920년 [소비에트 러시아로] 이전한 이유를 알고 있다"고 밝혔다. [그러나] 그러한 전환은 반혁명 장군 데니킨과 브랑겔을 물리치고 새로운 소비에트연방으로부터 모든 우크라이나인의 민족적 권리를 인정받으면서 이뤄졌다. 그 후 1954년 흐루쇼프는 다시 크림을 우크라이나로 되돌려줬다. 2014년 3월 러시아의 해군기지가 있는 세바스토폴을 포함한 크림의 합병은 타르투스에 해군기지를 허락한 시리아의 바샤르 알 아사드 살인 정권을 후원한 것과 마찬가지로 러시아 제국주의의 지정학적 이해관계에 강하게 결속돼 있다.

제국주의는, 그것이 유럽이든 다른 어느 곳이든 자신의 목적을 위해 그들을 전복시키기 위해 대중 운동에 개입하려 여러 차례 시도해 왔다. 1956년 헝가리와 1968년 프라하의 민주주의를 위한 거대한 대중운동은 신좌파와 트로츠키주의 전통의 혁명적 마르크스주의자들로부터 지지를 받았다. 공산당은 이 운동들이 CIA의 조종을 받는다고 주장하며 반대했다. 그렇지만 그들의 진정한 목적은 저 나라들과 소련의 '완충' 국가들을 지배하는 공산당들을 지지하는 것이었다.

2013년 말의 마이단은 때론 수십 만명을 동원한 사회 전반의 거대한 운동이었다. 이 운동은 올리가르히와 야누코비치의 부패에 반대하고 민주주의를 바라는 혁명적 열망이 반동적 성격의 민족주의, 그에 더해 번영과 민주적 권리를 가져다줄 것이라는 EU에 결부된 오해와 연결돼 있었다. 2013년 원래 야누코비치는 우크라이나의 파산으로부터 EU의 긴급 구제금융에 이끌렸었지만 이는 최근 러시아의 전략적 '완충지대'를 잃을지 모른다는 두려움에 휩싸인 푸틴의 더 나은 제안으로 이어졌다. 그의 몰락은 마이단의 거대한 운동 결과지 서방이 조직한 '쿠데타'의 결과가 아니다.

강력한 좌파의 부재는 프라비 섹토르 등 파시스트를 포함한 극우파가 마이단 운동을 진보적 경로로부터 이탈시키는 것을 가능케 했다. 포로셴코의 대통령 당선은 세력균형을 보여줬다. 그는 권위주의적이고 민족주의적이며 신자유주의적인, 극우파 후원자들이 포함된 정부를 이끈다. 크림과 우크라이나 동부에는 마이단 규모의 대중 운동은 없었고 사태는 "'인민'으로 포장된 경찰 폭력배들의 쿠데타"로 묘사돼 왔다
[6].

우리는 대중 운동이 우리의 이론에 맞지 않는다고 해서 제국주의에 조종받는다고 일축하기보다는 그 운동의 모순과 그에 수반한 세력을 이해하며 운동 자체로 다룰 필요가 있다. 맞불
[Counterfire. SWP에서 분리해 나간 급진 좌파 조직]의 지도적 회원 크리스 나인햄과 전쟁저지연합[the Stop the War Coalition. 2001년 9ㆍ11 테러 후 미국의 아프가니스탄ㆍ이라크 공격에 반대하며 조직된 영국의 전쟁 반대 공동전선]은 마이단 운동을 '조종당한 것'이라고, 거기에 더해 "몇몇 좌파가 우크라이나 혁명의 지지를 호소하고 모든 개입을 똑같이 비난하는 것은 의미 없는 행동보다도 더 나쁜 것"이라고 폄훼했다[7].

혁명적 마르크스주의자는 우크라이나의 현재 내전에 중립적일 수 없다. 우선 우리는 우리 정부의 개입에 반대하고 우크라이나의 자주권을 방어해야만 했다. 거기에 우리는 또한 민주주의와 사회적ㆍ경제적 정의를 위해 우크라이나 올리가르히, 러시아와 함께 서방 제국주의의 개입에 맞선 노동계급의 투쟁을 지지한다. 우크라이나 위기의 일부분은 스탈린과 소련의 붕괴가 남긴 해결되지 않은 민족주의적 문제다. 제4인터내셔널은 최근 "우크라이나에서 민족문제를 민족주의자들에게 떠넘긴 좌파는 그 스스로 앞선 실패에 대해 비난받아 마땅할 것이다. 민족주의 진영은 이미 현재 사회주의 좌파의 주변부에서 잇점을 차지하며 성장하고 있고 노동자들의 시야에 자본주의의 진보적 대안으로 보이려 한다"고 적고 있다
[8].

맞불과 영국 공산당(the Communist Party of Britain) 사회주의자행동
[Socialist Action. 1983년 SWP에서 분리된 그룹ㆍ9]의 접근법은 오늘날 주요 전쟁 위협은 서방 제국주의, 특히 세계의 주요 군사적 제국주의적 권력인 미국으로부터 비롯된다고 본다. 여기에 유럽 동부를 향한 NATO의 확장과 군사훈련은 1914년 제1차 세계대전을 연상시키는 위험의 확대다. 몇몇은 미국 헤게모니 하의 '단극적' 세계가 경쟁 국가들의 '다국적' 세계보다 더 위험하다고 믿는다[10]. 이러한 접근법의 결론은 푸틴 정부가 최선은 아닐지라도 러시아와 중국은 미국 헤게모니의 평형추라는 것이다. 따라서 오늘날 사회주의자들에게 유일하게 중요한 것은 우리의 정부가 전쟁에 돌입하는 것과 NATO의 확장을 중단시키는 것이다.

러시아와 중국에 대한 비판은 물타기로 보인다. 이들 나라는 미국과 같이 위험한 전쟁광은 아니기 때문에 자본주의가 복원되지 않은 몇몇 곳에서는 좌파와 진보적 동맹을 맺을 수 있다. 이는 소련이 존재하던 시절 좌파의 일부, 특히 공산당과 노동당에 영향을 미쳤던 '진영주의'의 부활이다.

분명 사회주의자는 그들 자신의 제국주의적 정부에 우선 반대해야 하지만 그들은 전 세계에서 노동 인민과 약소 민족ㆍ국가를 공격하는 제국주의 일반에도 반대해야 한다. 이는 NATO의 확장과 개입뿐 아니라 러시아의 크림 합병, EU와 러시아 양자에 의한 우크라이나 분할에도 반대해야 함을 뜻한다.

오늘날 자본주의는 세계적으로 뒤엮인 미국 헤게모니 아래 통합된 체제
[11]고 이는 1914년과 다른 것이다. 20세기 두 번의 세계대전은 주로 세계에서 영역을 차지하거나 지배권을 지키기 위한 경쟁 제국주의간 전쟁이었다. 이들 전쟁의 결과 미국은 그 자신의 거대한 경제와 그보다 더 큰 군사적 힘, 세계은행ㆍIMFㆍNATO와 같은 기구를 통해 자본주의 체제를 지배하는 세계에서 가장 압도적인 강대국 지위를 확고히 했다. 자본주의 세계 체제는 러시아와 중국에서 자본주의가 복권되면서 더 널리 확장됐다. 하지만 이것이 제국주의간 경쟁과 국지전 위협이 더이상 중요치 않다는 것을 뜻하진 않는다.

오늘날 작동하는 미국 헤게모니 형식은 더 약한 국가들이 미국의 핵심적 이해관계에 도전하지 않는다는 전제하에 군사적 개입을 포괄하는 자신의 제국주의적 야망과 지역의 지정학적 이익 추구를 허락한다. 러시아와 중국의 제국주의적 야망이 성취한 연약한 수준은 미국 제국주의에 어느 정도 비용을 치뤄야만 한다. 그들이 만약 선을 넘는다면 '불량' 국가가 돼 이라크의 경우처럼 군사적으로 점령당하거나, 이란과 현재 러시아에 부과된 것과 같은 제재를 받아야만 한다. 미국 제국주의는 자신의 틀 내에 약소국들을 잡아두기 위해선 무력을 이용해 많은 위협을 가해야만 한다. 이는 우크라이나에서 MH17기가 돌발적으로 추락한 것이나 1988년 미 해군에 의해 이란 항공기가 격추당해 269명의 목숨을 잃은 것과 같은 어떤 사건에 의해 급격히 전면적인 군사 대결을 고조시킬 수 있는 위험한 게임이고 이 게임의 규칙이 더 이상 미국 제국주의와 그 동맹자들의 손 안에만 있진 않을 것다. 그러나 무력을 이용한 위협을 두 번의 세계대전을 일으켰던 것과 같은 제국주의간 경쟁을 향한 역학과 헷갈려선 안 된다.

러시아가 지정학적 영역 내 지역에 머무르는 동안에는 서방 제국주의(바로 미국과 NATO)는 러시아의 크림 합병에 크게 상관치 않는다. 러시아에 대한 몇몇 제재조치가 발표됐지만 지금까지는 - 주로 개인을 대상으로 한 - 상징적인 것일 뿐이다. 하지만 무기와 가스 거래, 자본주의 체제의 세계화 때문에 뿌리깊은 분열이 있고 이는 그것
[제재조치]들을 확대시킬 것이다. 러시아 자본주의에 피해를 줄 제재는 서방 자본주의에도 또한 영향을 미칠 것이다.

이는 러시아가 시리아의 바샤르 알 아사드 정권에 계속해서 무기를 공급하면서 후원하는 것에 미국 제국주의가 게의치 않는 이유를 설명해준다. 두 나라 모두 바샤르 알 아사드의 실각을 원하지 않는 데 우연치 않게 이해관계가 일치한 것이다. 아사드 정권의 붕괴는 타르투스의 러시아 해군기지뿐 아니라
[중동] 지역에서 자신에 대한 신뢰를 재구축하려는 미국의 시도를 위협하는 중단된 '아랍의 봄'을 부활시켜 시리아와 이스라엘의 '평화적 공존'을 전복시킬 수도 있다.

미국과 러시아의 협력은 1989년 장벽의 붕괴로 거슬로 올라간다. 당시 고르바초프는 외국인 투자와 군비경쟁 축소를 암묵적인 대가로 독일의 재통일과 NATO로의 통합에 반대하지 않았다. 심지어 협력은 스탈린 치하 소련과 미국 제국주의 사이의 '평화적 공존' 시기로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혁명 운동은 소련의 외교정책상 필요에 종속돼 조종당했다. '일국에서의 사회주의 건설'은 제국주의와의 협조를 뜻했다.

제국주의 국가들의 계층구조에도 불구하고 미국 제국주의 아래 세계적으로 통합된 자본주의 체제라는 관점은, 미국 제국주의를 주요 위협으로 보며 다른 제국주의 국가를 차악으로 여기는, 따라서 "세계를 우리가 100년 전 목격한 폭력적 혼란으로 이끄는 국제적 대립"의 시기에 우리가 접어들었다고 믿는 저 사회주의자들의 입장과는 다르다
[12].

유감스럽게도 러시아ㆍ중국ㆍ쿠바ㆍ베트남에서와 같은 대규모의 사회주의 혁명적 격변, 즉
[변혁을] 저지하기 위해 대규모 군사적 개입이 필요했던 격변은 [우크라이나 동부에] 없다. 신자유주의적 긴축은 노동계급이 쟁취했던 것들을 파괴하고 새로운 생산관계를 만들어내면서 세계 곳곳에서 작은 저항들을 촉발시키고 있다.

따라서 미국 제국주의를 주요 위협으로 보는 이들은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개입에 맞서는 데 실패했고 몇몇은 친 러시아 민족주의자들이 그들을 이용하는 것을 허락하기까지 했다. 그들은 서방 제국주의에 맞서고 있는 노동계급과 쿠데타로 수립된 키예프의 '나치' 정권에 대한 이들의 투쟁에 지지를 선언하면서 이 민족주의자들에 신뢰를 보내고 있다.

존경받는 탐사보도 저널리스트인 존필저는 "분명한 것은 버락 오바마의 탐욕이다. 우크라이나에서의 무모한 쿠데타는 내전을 촉발시켰고 블라디미르 푸틴을 덫으로 내몰"고 있으며 "러시아 크림에서 (워싱턴의 쿠데타에 대한) 모스크바의 불가피한 응답은 자신의 흑해 함대를 보호하기 위한 것"이라고 적었다
[13]. 민족주의와 신자유주의적 성격이 강할지라도 대중운동이 아닌 쿠데타가 있었다고 당신이 일단 믿는다면 러시아가 크림을 합병할 권리를 포함한 그 어떤 것도 믿을 수 있을 것이다.

필저는 뒤에 쓴 글
[14]에서 "이들 폐쇄적 국가의 지도자들은 이란의 민주주의자 모하메드 모사데크[1953년 이란의 총리였던 모하메드 모사데크는 영국과의 합작 석유회사를 국유화하려 했다. 이에 미국 CIA는 '아약스 작전'이라는 이름으로 모사데크를 축출하는 데 성공한다], 과테말라의 아르벤스[1944년 혁명의 지도자. 1950년 대통령에 당선된다. 이후 미국의 다국적 기업 유나이티드푸르츠가 대부분 소유했던 경작지를 국유화한 후 인디오와 빈농에게 재분배하는 농지개혁을 시도한다. CIA는 '자유의 소리' 방송을 이용한 반정부 선전 공작을 펼치고 카를로스 아르마스의 쿠데타를 후원한다. 아르벤스 대통령은 1954년 6월 18일 쿠데타로 멕시코에 망명한다], 칠레의 살바도르 아옌데[CIA가 후원한 피노체트 쿠데타로 1973년 9월 대통령궁에서 목숨을 잃는다]와 같이 대개 폭력적으로 제거되거나 콩고민주공화국의 파트리스 루뭄바[콩고민주공화국의 초대 총리. 벨기에로부터의 독립을 이끌었다. 친소적 행보 때문에 미국의 심기를 거슬렸다. 미국은 모부투의 쿠데타를 지지했고 루뭄바가 모부투 군대에 의해 총살당하는 것을 묵인했다]처럼 살해당했다. 이들 모두는 서방 언론에 의해 비난의 대상이 됐다. 피델 카스트로, 우고 차베스, 현재의 블라디미르 푸틴을 떠올려 보라"고 쓴다. 푸틴을 차베스나 카스트로와 비교하는 정치적 맹신으로 이어진다.

계속 이어진 글에서 그는 여기서 더 나가 "따뜻한 바다에 있는 러시아의 역사적이고 합법적인 크림 해군기지를 강탈하려는 계획으로 민주적으로 선출된 키예프의 정부에 대해 2월 쿠데타를 배후조종한 워싱톤은 실패했다. 러시아는 그들이 지난 한 세기 동안 서방의 위협과 침략에 맞서 해왔듯이 그들 스스로 방어해 냈다"고 적고 있다. 워싱톤이 크림의 러시아 해군기지를 강탈하려 계획했다는 필저의 믿음은 그가 제정신인지 궁금케 만든다.

그러나 그는 같은 글에서 더 나아가 "독일에게 푸틴이 21세기 유럽에서 파시즘의 부상을 비난하는 유일한 지도자라는 것은 가슴 아픈 역설"이라고 적어 더욱 놀랍게 한다. 푸틴이 러시아와 유럽 전역에서 극우파나 파시스트와 협력했다는 증거는 풍부하다. 프랑스 국민전선(the Front National)의 마리 르 펜은 1월 두마에서 환영받았으며 두마 의장과 부총리를 만났다
[15]. 프라우다는 러시아가 유럽의회에서 파시스트를 지지함을 공개적으로 인정했다[16]. 나치는 메이데이에 모스크바에서 스탈린주의자들과 나란히 행진하는 걸 허락받았다[17].

필저의 이와 같은 글은 사실을 무시한 채 러시아 제국주의의
[크림] 합병을 지지하고 푸틴을 반파시스트로 덧칠한다. 이런 쓰레기 글은 비난받아 마땅하다. 기이한 것은 이 글이 전쟁저지연합 홈페이지에 논평 없이 실렸다는 점이다.

유감스럽게도 필저가 러시아를 지지하는 유일한 사회주의자는 아니다. 에몬 맥캔은 올해 초 "만약 우리가 크림에서 어느 한 편을 들어야 한다면 그것은 러시아다"고 적었다. "이 경우 그런 측면에서 러시아가 서방보다 더 많은 권리를 가졌"기 때문이다
[18]. 사회주의자행동은 우크라이나에서의 사태를 러시아와, 제국주의가 아닌 것으로 명백히 그려지는 러시아와 제국주의 사이의 투쟁으로 바라본다('제국주의 공세가 우크라이나 비극의 원인', 폴 로버츠, 2014년 7월 22일ㆍ링크). 존 필저가 '독일인'에 대해 언급한 민족주의는 공산당의 "독일 독점자본이 우크라이나로의 경제적 확장을 준비하는 것은 분명하다"는 관점에 반복된다[19]. 사회주의자의호소[Socialist Appealㆍ국제마르크스주의경향(the International Marxist TendencyㆍIMT)의 신문. 테드 그란트가 1964년 영국 노동당 내 건설한 밀리턴트 경향의 후신ㆍ링크]와 노동자권력 또한 키예프의 파시스트에 맞선 투쟁을 응원하는 것으로 푸틴의 제국주의적 영토 강탈을 은폐한다.

우려스러운 것은 러시아 민족주의와 반동 세력이 러시아 좌파의 몇몇 또는 러시아 제국주의가 우크라이나 영토의 일부를 강탈한 것을 은폐하는 누군가와 협력하는 것이다. 7월 6~7일 (옛 우크라이나 영토이고 지금은 러시아에 합병된) 크림의 얄타에서 열린 '우크라이나에서의 갈등과 세계적 위기'라는 이름의 '국제 회의'가 있었다. 이 회의의 목적에는 '새로운 러시아
[Novorossiya] 건설 운동 지지를 위한 국제적 네트워크'의 설립을 포함하고 있다[20]. 회의는 러시아 사회주의자인 보리스 카갈리츠키와 몇몇 극우파 또는 파시스트 경향이 함께 조직했다. 이 중 다수는 체첸과 세르비아에서 싸웠고 백군 군주제의 옹호자인 '도네츠크인민공화국 국방장관' 스트렐코프의 지지자다[21]. 카갈리츠키가 책임자로 있는 세계화탐구와사회운동연구소[the Institute of Globalisation Studies and Social Movementsㆍ링크]를 제외하면 회의는 극우파인 새로운러시아를위한협력과지지센터[New Rus' Coordination and Support Centre]와 오스노바니펀드[the Osnovanye Fund]에 의해 조직됐다. 이 펀드는 분리주의 운동 지지를 위해 알렉산드르 프로하노프와 블라디슬라프 슈리긴(극우파 잡지 자브트라ㆍZavtra 편집자), 니콜라이 스타리코프(극우 위대한조국당의 지도자)와 같은 러시아 국적의 사람들에 의해 최근 설립됐다. 영국에서는 노동자권력의 리차드 브레너와 사회주의자행동의 알란 프리먼이 참여했다. 둘 모두 우크라이나반파시스트연대 캠페인 지지자다.

바로 러시아가 점령한 영역에서 반동 세력이 깊숙히 참여해 조직한 회의 밖에 사회주의자들은 머물러야만 했다. 8월 말 카디프에서 있을 NATO 대항-정상회의 발표에 보리스 카갈리츠키를 초대한 것도 실수다
[9월 영국 웨일즈에서 NATO 정상회담이 열린다. 이에 맞서 8월 31일부터 9월 1일까지 웨일즈 카디프에서 대항-정상회의가 열릴 계획이다. 보리스 카갈리츠키는 8월 31일 10시30분의 총회와 12시30분부터 열리는 워크숍에서 발표한다ㆍ링크].

우크라이나와 시리아에 대한 분열은 반전 운동에 심각한 영향을 주고 있다. 당연히 나토의 확장과 우크라이나 개입에 우선순위를 두는 동안 전쟁저지연합은 '모든 외국 군대의 개입 반대'를
[이미] 성명으로 발표했음에도 불구하고[22] 아직까지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개입에 공개적으로 방대하고 있지 않다. 또한 연합은 시리아에 대한 모든 외국의 개입에 맞서 시리아 인민의 자신의 미래에 대한 자유로운 결정권을 호소하는 서명을 거부하고 있다.

전쟁저지연합은 2001년 설립돼 아프가니스탄과 이라크 침략에 맞선 동원에서 전례 없는 역사적 역할을 했다. 연합은 세 가지 원칙에 기반해 설립됐다. ▷이라크와 아프가니스탄에 대한 제국주의적 개입 반대 ▷민주주의 방어 ▷인종주의와 이슬람 혐오 반대. 반전 운동이 우리 자신의 나라의 제국주의적 개입에 맞서는 데 초점을 맞출 때는 옳았다. 하지만 시리아와 우크라이나에서의 전쟁은 민주주의를 위해 민족주의에 의해 부추겨진 인종주의에 맞선 싸움이 이 나라들에 있음도 보여준다. 이 나라들의 인민이 스스로 자신의 미래를 민주적으로 결정할 수 있도록 모든 외세의 철수를 호소하지 않음으로써 전쟁저지연합은 실패하고 있다.


각주

[1] 이를테면 좌파는 모든 제국주의 개입에 반대하는 이들과 보스니아를 돕기 위한 서방의 '인도주의적' 개입을 지지하는 이들로 분열했었다. 몇몇은 최선의 경우 무비판적으로 세르비아의 지도자 밀로셰비치를 어떻게든 유고슬라비아가 님긴 인간의 얼굴을 한 진보의 유산으로 지지했다.
[2] 우크라이나반파시스트연대는 영국공산당과 맞불, 사회주의자의호소, 노동자권력의 지지를 받는다(링크).
[3] 우크라이나사회주의연대 캠페인은 사회주의저항[Socialist Resistance], 하원의원 존 맥도넬, 노동자항의위원회[the Labour Representation Committee], RS21, 노동자자유의 지지를 받는다(링크).

[4] Imperial Delusions, Alex Callinicos, ISJ 142, 31 March, 2014(링크)
[5] Against nationalism, corruption, privatisation and war, Left Unity, 3 March 2014(링크)
[6] 러시아 아나키스트 단체 Avtonomnoe Deistvie 활동가 VT와의 인터뷰(링크)
[7] Ukraine: why being neutral won’t stop a war, Chris Nineham, 23 March 2014(링크)
[8] Ukraine: Popular Movements and Imperialisms, Fourth International, 7 June 2014(링크)
[9] 세 단체의 모든 지지자들이 전쟁저지연합을 주도하는 주요 세력이다.
[10] Seumas Milne, ‘Georgia is the graveyard of America’s unipolar world’, The Guardian,28 August(링크)
[11] 레오 파니치와 샘 긴딘의 'The Making of Global Capitalism - The Political Economy of American Empire' 참조. 이 책의 리뷰는 여기(링크).
[12] MH17 and the threat of a world war, Matt Carr, 22 July 2014, Counterfire(링크)
[13] Obama’s coup in Ukraine has ignited a civil war and lured Putin into a trap, John Pilger, 17 April 2014(링크)
[14] In Ukraine the US is dragging us towards war with Russia, John Pilger, 14 May 2014(링크)
[15] http://imrussia.org/en/russia-and-the-world/645-putins-far-right-friends-in-europe
[16] http://www.thenation.com/blog/179963/decrying-ukraines-fascists-putin-allying-europes-far-right
[17] 기사와 사진: http://anton-shekhovtsov.blogspot.de/2014/05/nazis-and-stalinists-thrive-on-may-1-in.html
[18] In the game of Great Power politics, if we have to pick a side over Crimea, let it be Russia, Eamonn McCann, 21 March 2014(링크)
[19] MH17 - Kiev regime stoking the fires of war, Communist Party of Britain, 23 July 2014(링크)
[20] 회의 전체는 여기서 읽을 수 있다: http://www.workersliberty.org/story/2014/07/23/popular-front-russian-nationalism
[21] 도네츠크인민공화국 총리 알렉산드르 보로다이는 스스로를 자원봉사자로서 우크라이나 동부를 위한 전문 컨설턴트라고 소개하는 모스크바 출신의 러시아 시민이다.
[22] The Crisis in Ukraine: Statement by Stop the War Coalition, 3 March 2014(링크)


18세의 흑인 청년 마이크 브라운은 두 손을 들어 저항할 의사가 없었음을 밝혔음에도 경찰에게 두 발의 총격을 받고 목숨을 잃었다. 브라운의 죽음에 항의하는 미국 미주리주 퍼거슨시 주민이 'Hands up don't shoot #JusticeForMikeBrown'이란 팻말을 들고 거리로 나섰다.

8월 10일 미국 미주리주 퍼거슨시에서 18세의 청소년 마이크 브라운이 경찰의 총격을 받고 사망했다. 두 발의 총격을 받아 숨진 브라운은 경찰에 저항의 뜻이 없음을 표시하며 두 손을 들었다고 전해진다. 그는 고등학교를 막 졸업한 '흑인' 청소년이었다. 2012년 2월 자경단에 의해 살해당한 트레이본 마틴에 이어 미국에서 흑인에 대한 인종차별이 또 하나의 비극적 사건을 만들어낸 것이다.

퍼거슨시는 인구 2만1000명의 소도시로 그 중 3분의 2가 흑인이다. 지난해 이 도시의 경찰은 36명의 백인과 483명의 흑인을 체포했다. 인구 비례를 따져도 흑인이 압도적으로 많이 체포됐다. 검문검색의 92%와 차량 정지명령의 86%가 흑인이었다.

저항할 의사가 없음을 표시한 브라운을 경찰이 총격으로 살해한 데 시민들은 'Hands up don't shoot #JusticeForMikeBrown'이란 팻말을 들고 항의에 나섰다. 사태가 심상치 않다고 느낀 연방정부는 FBI가 직접 사건의 수사에 나서게 했다. 그러나 이것이 흑인들의 분노에 유화책을 펼치겠다는 뜻은 아니었다. 퍼거슨시는 군대 수준으로 무장한 경찰을 시위 진압에 투입했다. 장갑차와 총기로 무장했고 최루탄은 물론 고무총탄과 음향대포(LRAD)까지 사용하고 있다. 워싱턴 포스트와 허핑턴 포스트의 기자 두 명이 취재 중 체포됐고 알자이지라 기자는 최루탄 공격을 받았다.

세계 곳곳에서 경찰국가를 자임하며 무력을 자랑하고 있는 미국은 국내에서도 국민을 향해 폭력을 휘두르고 있다. 빌리 홀리데이가 노래한 '이상한 열매(Strange Fruit)'가 열리던 풍경은 그리 달라지지 않았다.


경찰 총격에 의한 흑인 청소년 사망 사건을 FBI가 직접 조사에 나섰다. 하지만 FBI의 조사가 브라운의 억울한 죽음을 밝혀줄 수 있을까? 군대 수준으로 무장한 경찰이 시위를 폭력적으로 진압하고 있다.




Strange Fruit song by Billie Holiday

Southern trees bear a strange fruit
Blood on the leaves and blood at the root
Black bodies swinging in the Southern breeze
Strange fruit hanging from the poplar trees

Pastoral scene of the gallant South
The bulging eyes and the twisted mouth
Scent of magnolias, sweet and fresh
Then the sudden smell of burning flesh

Here is a fruit for the crows to pluck
For the rian to gather, for the wind to suck
For the sun to rot, for the trees to drop
Here is a strange and bitter crop


마천루에서의 점심
|찰스 에버트가 1932년 촬영한 사진. 당시 건축 중인 뉴욕 록펠러 센터 69층(지상 260m)에서 철골 구조에 앉아 위태롭게 점심시간을 보내는 노동자들.

아래는 조슈아 B. 프리먼의 '뉴욕, 노동계급의 도시' 서문이다. 뉴욕주립대학교 퀸스 칼리지 역사학 교수로 '수송 중: 뉴욕 운송 노동조합 1933-1966'을 썼고 '미국을 만든 건 누구인가? 노동 인민과 국민경제, 정치, 문화 그리고 사회' '파렴치한 민주주의: 노동, 지식, 그리고 미국 사회의 재구성'에 공저자로 참여했다.

※ 의역이 많고 오역이 있을 수 있습니다. 저자의 주석은 후주로, 옮긴이가 이해를 위해 덧붙인 것은 본문 대괄호 안에 담았습니다. 저자가 이탤릭으로 표기한 것은 굵은 글씨로 강조했습니다.


뉴욕, 노동계급의 도시: 2차 세계대전 후 뉴욕의 삶과 노동
조슈아 B. 프리먼

서문: 무엇이 뉴욕을 위대하게 만들었나

20세기 중반 뉴욕의 거리를 거니는 방문자는 노동계급이 그곳의 사회적 중추임을 어렵지 않게 알아챌 수 있을 것이다. 이는 부산한 항구와 도시 심장부의 공업지대, 브루클린ㆍ브롱크스ㆍ맨하탄의 무질서하게 뻗어나간 주거지역, 주기적으로 지역을 마비시키던 파업들, 많은 지지자를 거느린 미국 노동당과 진보당, 국제적 명성을 얻은 뮤지컬과 코메디 스타일, 지역사회 주민들 내에서 통용되는 은어 등에서 생생하게 느껴졌다. 뉴욕 노동계급은 정치 집단, 지역 주민들의 조합, 친목 또는 민족 공동체, 그리고 무엇보다도 노동조합을 통해 도시의 사회ㆍ경제ㆍ정치적 구조를 만들어내는 데 곳곳에서 기여했다. 지식인ㆍ예술가ㆍ엔터테이너ㆍ상인들이 전유하고 전파한 그들의 문화ㆍ스타일ㆍ세계관 등의 요소는 도시와 국가의 도덕적이고 미적인 조직 양식을 만드는 데 도움을 줬다.

뉴욕 노동 대중의 세계시민주의ㆍ열정ㆍ교양은 2차 세계대전 후 권력ㆍ혁신ㆍ현대성의 세계적 중심이 되고자 한 뉴욕의 계획이 성공할 수 있었던 중요한 요소다. 하지만 시간이 흐른 뒤 노동자와 그들의 단체들은 자신을 소외시킨 일련의 사건 전개를 막을 수 없다는 것이 입증됐다. 스스로 힘들게 일해온 다수가 뒷전으로 물러나는 사이 1990년대 뉴욕의 행로와 궤적은 시장과 유행의 선구자라는 세계적 도시로서의 위치에 점점 더 이끌렸다.

'뉴욕, 노동계급의 도시'는 승리와 고립에 관한 이야기다. 자신의 주민들에게 양질의 서비스를 제공했었지만 미래에는 더 이상 중심적 열할을 하지 못할 단체들이 권력을 얻고 영향력을 잃는 대하소설이기도 하다. 또 이것은 대중과 산업, 권리와 평등을 위한 끈질긴 투쟁, 계속되는 차별과 불평등의 거대한 변동에 관한 이야기다.

게다가 2차 세계대전 후 뉴욕 노동자와 그 가족들의 주목할 만한 역사가 그곳에 살았던 이들 계급 외에는 거의 모두 알려지지 않은 채 남아있다는 것이다. 전후 뉴욕을 기념하는 방대한 문학작품들-E. B. 화이트, V. S. 프리쳇, 쟌 모리스, 트루먼 카포티, 윌리 모리스 등등-은 전성기에 인구ㆍ경제ㆍ정치ㆍ사회 모든 면에서 뉴욕이 노동계급 도시로 보통 묘사되던 동안 놀라울 정도의 맹목적인 태도로 바로 그 노동자의 존재를 대개 무시한다. 노동자가 이야기에 등장할 때면 이 작가들은 대개 범죄의 온상, 주인공을 더 돋보이게 만들기 위한 다채로운 배경으로서만 그려진다.
[1] 뉴욕의 기록가들은 너무 자주 그곳에 살고 있는 수백 만명의 노동자, 그 남편과 아내, 아이들, 즉 뉴욕을 경제ㆍ정치ㆍ문화적으로 중요하게 만들고 그곳의 경제를 움직이고 있는 이들을 무시한 채 자신과 같은 작가ㆍ예술가ㆍ기업가ㆍ정치인들을 도시와 그 정신의 창조주(the creator)로 간주한다. 그들은 지난 반세기 동안 뉴욕의 노동계급 역사에 대해 놀라울 정도로 적게 써왔다.[2]

노동의 중요성을 고려하지 않는다면 뉴욕의 과거에 대한 그 어떤 묘사도 도시의 정치ㆍ사회ㆍ경제, 심지어 물질적 발전에서조차 전국적 표준에서 그토록 벗어난 이유를 설명할 수 없다. 마찬가지로 뉴욕을 살펴보는 것은 미국 노동의 역사를 다시 생각하게 만든다. 뉴욕 노동계급과 단체는 보통 대량생산 산업과 산업별노동조합회의(Congress of Industrial OrganizationㆍCIO)와 연결돼 있던 남성 중심적 산업노조를 강조한 2차 세계대전 후 노동의 역사에 기초한 묘사에 들어맞지 않는다.
[3] 뉴욕에선 작은 회사와 공방 또는 복합기업[다각기업ㆍ하나의 기업이 여러 종류의 기업을 소유하고 있는 한국의 재벌과 비슷한 형태]에 많은 수의 여성 조합원을 거느린 노조들-흔히 미국노동총동맹(American Federation of LaborㆍAFL)과 연결된-이 지배적이었다. 거기에 또 뉴욕에서 노동조합주의는 다른 지역에서보다 더 회복력이 있음이 입증됐다. 2차 세계대전부터 1980년대 사이 나라 전체에서 노동조합 가입률이 급격히 떨어졌지만 뉴욕에선 안정적으로 유지됐다(그래서 1990대 뉴욕의 노동조합가입률은 전국의 두 배 이상이었다).[4] 그뿐 아니라 보통 조직된 노동자가 1930년대에서 1940년대 사이 최고의 정치적 영향력을 지녔던 것으로 묘사되는 데 반해 뉴욕 노동운동의 힘은 1950년대 초와 1970년대 중반 사이 최고조에 달했다. 전국적으로 노동이 약해지는 동안 뉴욕이 노동조합 중심지로 남은 이유를 이해하는 것은 현대 노동운동의 특징과 그것의 정치경제적 지위를 이해하는 데 도움을 줄 것이다.

이 책의 제목은 의도적으로 학술적ㆍ정치적 유행을 거스른 것이다. 현대적 담론에서 바로 그 '노동계급'이란 단어는 불쾌한 느낌을 준다. 한 세기 동안 이 단어는 흔히 공업에 관한 어휘에 속했다. 보통 단순하게 이 단어는 일반적으로 임금을 받고 일하는 위치에 있는 사람을 총괄해 가리켰다. 나는 이 책에서 그 용어를 블루칼라와 화이트칼라 노동자, 그들의 직계가족을 포함해 그와 같은 의미로 사용한다. 계급에 대해 전혀 말하지 않는 요즘 미국인들은 보통 그것을 사람들이 일하는 형태가 아닌 사람들의 소득이나 재산 수준에 따라 정의한다. 때때로 나 역시 중산층 또는 빈곤층이라는 단어와 같은 그러한 범주를 사용한다. 그러나 이 책의 중심 논지는 뉴욕의 노동자들이 많은 경우와 상황에서 적어도 부분적으로는 경제에서 그들의 구조적 위치로부터 제약받는 방식으로 그들 자신과 도시에 중요한 결과를 초래하는 생각과 행동을 한다는 것이다.
[5]

다른 언급이 없다면 나는 뉴욕을
[펜실베니아주 북부와 온타리오호 사이에 있는 주가 아닌] 엄밀한 의미로 뉴욕시를 나타내는 단어로 사용한다. 전후 뉴욕에 관한 많은 연구는 도시의 어느 부위를 이해하기 위해서라도 전체로서 대도시권을 살피는 것이 중요하다고 강조해 왔다.[6] 이 연구는 도시 주민들 매일의 일상을 빚어내는 도시의 단체들과 정치의 중요성을 강조한다.


나는 어린 시절 대부분과 거의 모든 내 성년의 삶을 이 책에서 다루는 시기 동안 뉴욕에서 보냈다.
[이 책이] 어떤 식으로든 회고록인 건 아니지만 나는 종종 나와 내 가족의 삶을 삽화처럼 끌어내곤 했다. 대부분의 뉴요커처럼 나는 도시에 대해 큰 긴장감을 느껴 왔다. 그러한 어려움과 무자비함에 끝없이 좌절하면서도 다른 곳에서의 삶은 아무리 상상해보려 해도 어렵다는 것을 나는 깨달았다. 내가 뉴욕을 지키는 것은 박물관이나 콘서트홀의 고급 문화 때문도, 비할 데 없는 일자리ㆍ식사 기회 또는 뉴요커들이 흥청대며 보내곤 하는 곳 때문도 아니다. 그것은 오히려 명백하게 너그럽고, 개방적이지만 회의적이고, 이상적이지만 가식 따윈 없는, 폭발적인 열정과 활동에서의 헌신과 같은 노동계급 감수성 때문이다. 이것은 힘든 하루일을 마친 후 저녁 시간과 주말을 노동조합 모임, 친구들 사이의 일, 강연 또는 놀이공원에서 보내온 내 조부모들의 감수성이다. 가난한 사람들은 평생을 아이를 키우고, 부모를 봉양하고, 지방을 전전하며, 그리고 대단친 않지만 자부심을 갖고 정의와 평등의 이름으로 사회 변혁을 모색했다. 지하철과 거리, 공립학교에서 나는 이러한 감수성을 여전히 느끼곤 한다.

노동계급이 영향력을 잃으면서 뉴욕에서 문화는 후퇴했고 공동체는 소원해졌다. 나 또한 황금시대라고 불리는 때로 돌아갈 가능성을 원하지도 믿지도 않는다. 50년 전 다저스
[미국 프로야구 LA 다저스의 원래 연고지는 브루클린이었다. 1958년 현재의 LA로 옮긴다]는 브루클린에서 경기를 치를 수 있겠지만, 뉴요커 대부분에게 50년 전의 삶은 힘든 노동, 불안한 치안, 더 큰 적대감을 의미한다. 그러나 나는 평범한 사람들이 그들의 도시와 나라를 만드는 데 오늘날보다 더 위대한 역할을 맡을 가능성에 이 책이 빛을 비추길 바란다. 그들의 노동, 투쟁, 농담, 노래가 뉴욕을 그토록 위대하게 만들었다. 이를 잊는 것은 우리 모두를 약하게 만들 것이다.


[1] E. B. 화이트 『Here Is New York』(뉴욕, 1949, 국역 『여기 뉴욕』), V. S. 프리쳇 『New York Proclaimed』(뉴욕, 1965), 쟌 모리스 『Manhattan'45』(뉴욕, 1987), 안드레아 와이어트 섹스톤과 앨리스 레세스 파워스가 편집한 『The Brooklyn Reader: Thirty Writers Celebrate America's Favorite Borough』(뉴욕, 1994)에 실린 트루먼 카포티의 「A House on the heights」, 윌리 모리스 『New York Days』(보스톤, 1993).

[2] 최근 나온 데브라 베르나르와 레이첼 번스타인의 『Ordinary People, Extraordinary Lives』(뉴욕, 2000)은 예외다.

[3] 예를 들면 데이비드 브로디의 『Workers in Industrial America: Essays on the 20th Century Struggle』(뉴욕, 1980) 5장과 6장, 스티브 프레이저와 게리 게슬이 편집한 『The Rise and Fall of the New Deal Order, 1930-1980』(프린스턴, 1989)에 실린 넬슨 리히텐시타인의 「From Corporatism to Collective Bargaining: Organized Labor and the Eclipse of Social Democracy in the Postwar Era」, 킴 무디의 『An Inujury to All: The Decline of American Unionism』(런던, 1988)을 보라.

[4] 뉴욕과 전국의 노동조합 조합원 수에 관해선 3장과 17장에서 다룬다.

[5] R. 에메트 머레이 『The Lexicon of Labors』(뉴욕 1998) 187쪽. 계급에 관한 문학은 막대하다. 이라 카츠넬슨과 아리스티드 R. 졸버그가 편집한 『Working-Class Formation: Nineteenth-Century Patterns in Western Europe and the United States』(프린스턴, 1986)에 실린 이라 카츠넬슨의 「Working-Class Formation: Constructing Cases and Comparisons」는 이에 관한 유용한 안내를 제공한다.

[6] 특히 이러한 관심은 1950년대 동안 지역개발연합[the Regional Plan AssociationㆍRPAㆍ1922년 설립된 비영리 기구로 뉴욕ㆍ뉴저지ㆍ코네티컷 3개 주 31개 카운티의 경제적 경쟁력과 삶의 질 개선을 목표로 했다]의 후원을 받은 일련의 연구에서 강하게 나타났다. 요약된 것은 에드가 M. 후버와 레이몬드 버논이 쓴 『Anatomy of a Metropolis』(케임브리지, 1959)에서 볼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