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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정규직을 구해낼 때 오로지 용단만 필요한 건 아니다. 누군가 비용을 부담해야 한다. 임금을 올려줘야 하고, 4대 보험도 들어줘야 한다. 유급휴가, 휴양 시설 사용 같은 복지 혜택도 똑같이 제공해야 한다. (중략)
이제 국내 기업들이 글로벌 생존 경쟁에 뛰어들면서 '회사의 이익이 바로 사원의 이익'으로 통하던 시대와는 결별했다. 어느 회사나 수시로 인건비 총액을 삭감한다. 회사와 종업원이 힘을 모아 회사를 키우고 사원 스스로도 커가면서 열매를 나눠 먹던 밀월 관계는 끝나가고, 회사와 사원이 한 지붕 아래 다른 방을 쓰는 사이가 됐다."
- 회사의 이익, 社員의 이익, '조선일보' 송희영 칼럼(링크)

조선일보 송희영은 정규직 전환, 확대는 비용이 든다고 말합니다. 그는 변화한 세계경제에서 더이상 회사의 이익과 사원의 이익은 일치하지 않는다고 옳게 지적합니다. 따라서 송희영은 정규직 전환 정책보다 비정규직에게 노동기본권을 보장하고 기업에게는 비정규직 채용의 권한을 늘려주어야 한다고 주장합니다.

사실 그에게 방점은 후자, 기업의 비정규직 채용 권한 확대에게 있을 것입니다. 비정규직 노동기본권 보장은 그에 뒤따르는 명분용일 뿐이겠죠. 그럼에도 불구하고 기업이 일방적으로 자신의 계급에게만 유리한 정책을 밀어부치지 못하는 상황을 반영한 주장이긴 합니다.

송희영이 미쳐 고려하지 못하는 것은 비정규직 노동기본권의 보장이 비정규직 부문에서 갈등 분출의 계기가 될 수도 있다는 점이죠. 전태일이 사문화됐었던 근로기준법 이정표로 삼았던 것처럼, 2010년 현대차 비정규직 노동자의 25일간 파업
(2010년 11월 15일~12월 9일)이 대법원의 판결에 기초했던 것처럼, 법적 제도적 권리의 확대는 노동자 투쟁에 큰 자심감을 부여할 가능성이 있습니다.

따라서 그가 원하는 변화가 이뤄지기 위해서는 (비정규직) 노동자 투쟁에 대한 강력한 탄압이 기본 전제로 필요합니다. 대처 시절 영국과 레이건 시절 미국에서처럼 말이죠.

송희영과 한국의 지배계급에게는 안타깝게도 그러한 강력한 국가 탄압을 실행하기 위한 조건은 부족하기 그지 없습니다. 특히 여권이 분열해 있고, 대중적 지지를 잃고 있는 상황에서 강력한 국가 탄압은 정권 자체를 날려버릴 수도 있습니다. 이명박과 한나라당은 대처와 레이건 만큼 사랑받지 못하고 있는게 문제인 것이죠.

다음 정권을 잡을 것이 확실해 보이는 민주통합당의 경우, 한국노총이 한 축을 이루는데서 보이 듯, 노동계급으로부터 완전히 독립적인 위치를 지니고 있지 못합니다. 한국노총이 우파 노조이긴 해도 이들 노동조합 세력의 (부분적인) 지지 없이는 완전한 정권 탈환을 기대할 수 없는게 민주통합당의 현실이죠.

결국 송희영(한국 지배계급)의 바람이 이루어지기 위해선, 즉 개선된 착취 체제를 만들어내기 위해선 어느 정당이 집권을 하든 '정규직 중심'의 한국노총과 민주노총 길들이기가 필수적일 겁니다. 이러한 길들이기가 (한국노총은 가능하다 할지라도) 가능할지는 의심스럽습니다. 설사 가능하다고 하더라도, 이는 공식 노동조합이 노동운동에서 지도적 역할을 잃게 할 가능성이 크죠. 사태가 이렇게 발전한다면 1930년대 미국에서 노동기본권이 확대되는 와중에 CIO(산업별노동조합회의)가 AFL(미국노동자협회)로부터 분리해 만들어졌던 것과 같이 제3노총이 만들어질 가능성도 있습니다
(미국에서 1935년 뉴딜 정책의 일환으로 만들어진 와그너법은 단결권ㆍ단체교섭권을 인정하고 최저임금제를 도입하는 내용을 담고 있습니다). 전국적 노동조합의 건설 없이 기업별 노동조합의 각개약진이 이뤄질 가능성도 있고요.

너무 먼 미래까지 나간 듯 합니다. 중요한 것은 한나라당이든 민주통합당이든 한국 자본주의의 '개선'을 과제로 삼는 한, 공식 노동조합에 대한 유화책과 함께 급진적 노동운동에 대한 강력한 탄압을 유지ㆍ강화하려는 시도를 할 것이라는 거죠. 이 와중에 정규직/비정규직에 대한 분리지배 전략은 더욱 기승을 부릴 겁니다. '비정규직 노동기본권' 보장과 함께 정규직에 대한 도덕적 공격을 기초로 일반적인 노동기본권 축소가 시도될 수도 있다고 봅니다.

조선일보의 지배계급 내 위상이 예전만 못한 상황에서 송희영과 조선일보의 구상이 얼마나 현실이 될지는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우파 언론인 중 가장 명민한 송희영의 주장은 꼼꼼히 따져볼 필요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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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때때로

정치가 우선한다 : 사회민주주의와 20세기 유럽의 형성
셰리 버먼 지음|김유진 옮김|후마니타스

이 책의 저자는 사회민주주의를 자유주의와 마르크스주의 양자의 극복이라고 주장합니다. 마르크스주의의 '유물론'과 '계급투쟁'을 반대하고, 자유주의가 조성한 사회 구성원의 원자화ㆍ파편화를 극복한 이데올로기라는 것이죠. 경제를 우선시하는 유물론과 달리 정치적 우선성을, 계급투쟁과 같은 갈등의 전략 대신 계급교차(계급간 연대) 전략을, 개인들의 파편화를 극복하기 위해 공동체주의를 앞세운 것이 사회민주주의의 주요 특징이라고 주장합니다.

이러한 사회민주주의의 특징은 가장 안정되고 성공한 체제인 스웨덴을 만들어냈고, 비록 '사회민주주의'를 내세운 정당들은 실패의 길을 걸었음에도 유럽 전역에서 사회민주주의적 의제가 받아들여져 전후 유럽의 빛나는 시절을 이끌었다고 말합니다.

속류 마르크스주의의 경제결정론에 대한 비판적 태도에도 불구하고 저자인 셰리 버먼은 정치/경제의 이분법적 태도를 벗어나지 못합니다. 정치는 오직 각 정당의 행위로만 축소돼 이해됩니다. 경제 또한 시장의 행위로만 이해되죠. 그 스스로는 구조와 행위에 대한 종합적 이해를 목적으로 한다고 하지만 경제와 정치에 대한 편협한 이해 때문에 20세기 유럽을 형성한 주요 사건, 1ㆍ2차 세계대전과 68년의 세계적 반란은 오직 정치 행위자들이 직면하는 외부적 사건으로만 그려집니다. 마치 인간이 개입할 수 없는 날씨의 변화와 같이 말입니다.

셰리 버먼의 이해에 기반해서는 스웨덴의 성공조차 온전히 이해하기 힘듭니다. 그의 설명에 따르면 그저 스웨덴의 사민당이 잘 준비돼 있었고 훈련돼 있었기 때문이죠. 결국 그들이 잘해서라는 말 외에는 설명할 길이 없습니다. 왜냐면 그의 정치에 대한 편협한 이해에 기반해서는 1920~30년대 스웨덴의 격렬한 노동계급 투쟁이 사민당의 성공에 어떤 역할을 했는지 설명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저자에게 정치란 오직 정치인들의 행위이며 노동계급을 비롯한 대중은 그들에게 표를 던지는 수동적 입장에 머물기 때문입니다.

그렇기에 그는 사회민주주의를 여전히 중요한 정치적 대안으로 강조하기 위해 파시즘과 사민주의의 경제정책에 있어서 공통점을 강조합니다. 하지만 그 스스로의 서술에서 드러나듯 파시즘의 경제정책이라고 할 만한 것들은 온갓 것들의 잡탕입니다. 결코 하나의 일관된 이념으로 서명하기 어렵죠. 저자 자신이 설명하는 바지만 자본주의와 사적소유에 대한 급진적 반대를 수사로 해서 성장한 파시즘은 성공을 위해 공산주의에 대한 반감을 공유하는 대자본가들과 손을 잡을 수밖에 없었고 그들의 사유재산 몰수 조항들은 오직 유대인에게만 해당되는 것으로 변형됩니다.

하지만 1929년 경제위기 이후 2차세계대전까지 경제에 대한 국가의 강력한 통제는 결코 사회민주주의 정당과 파시즘만의 공통점은 아닙니다. 그것은 당시 전쟁에 참여했던 거의 모든 국가가 공통적으로 실천했던 바죠. 전간기 사회민주주의적 주장이 주요 정치세력에서 의미있는 행동을 하지 못했음에도 사회민주주의적 정책이 실현됐다? 이데올로기의 중요성과 그 매개체로서의 정당을 강조하고자 하는 저자 입장에서 이러한 사실은 그 자신의 주장과 모순될 뿐입니다.

저자는 사회민주주의를 현재의 위기에 여전히 유효한 이데올로기라고 주장합니다. 이 주장이 유효하기 위해서는 행동으로서 사회민주주의를 받아들였던 유럽이 68년 거대한 사회적 반란에 직면한 이유를 설명할 수 있어야 할 것입니다. '자본주의 길들이기'에 성공한 사회민주주의적 유럽이 70년대 다시 자본주의의 고질병인 세계적 경제위기에 직면한 이유와 함께 이후 자유주의의 거대한 부활, 즉 신자유주의의 등장 또한 설명할 수 있어야 할 겁니다.

더 생각해볼 것 1 스웨덴이 성공할 수 있었던 이유에는 1930년대 활발한 노동자 투쟁을 빼놓아선 안 됩니다. 1917년 러시아 혁명 이후 동쪽에 거대한 '사회주의 제국'이 존재하는 상황, 국내에서의 격렬한 노동자 투쟁은 당시 스웨덴 자본가들이 한 발 양보할 수밖에 없는 조건으로 고려해야 합니다. 또한 스웨덴에서 노동조합은 사민당의 주도로 만들어져 당에 대한 높은 충성도를 지니고 있었습니다. 조직률 또한 높아, 노동조합과 당의 지도자들이 대중을 '통제'하기 유리한 조건이었죠(확인이 필요하지만 당시 30~40%, 이는 현재 80% 전후에 이르는 조직률에 비하면 낮은 수치이긴 합니다. 하지만 한국과 프랑스는 현재에도 10% 내외의 조직률을 가지고 있다는 걸 고려하면 높은 수준이죠). 스웨덴 사민당의 계급교차 전략에 대해서도 더 고려할 것이 있습니다. 지금껏 그 어떤 사민주의, 공산주의 정당도 '계급연합', 특히 노동자와 농민의 연대ㆍ연합을 명시적으로 부정해오지 않았습니다. 중요한 건 노동계급의 주도성이 얼마나 관철되느냐죠. 이 점에 있어 저자 셰리 버먼의 주장은 불충분합니다. 다른 연구에서는 스웨덴 사민당이 계급교차적 전략(1930년대 자유당과의 연합, 농민에게의 양보)에도 불구하고 노동계급 중심성을 놓친 적 없음을 강조하기도 하니까요.

더 생각해볼 것 2 위의 '더 생각해볼 것 1'에서도 언급했지만 공산주의를 앞세운 '사회주의 제국' 소련의 존재는 사민주의 정치의 발전에 커다란 영향을 미칩니다. 현대 사민주의 정당은 '반공주의'를 주된 특징으로 하고 있기 때문이죠. 저자가 강조하는 '마르크스주의와의 단절' 또한 이 연장선상에서 파악되어야 합니다. '마르크스주의'의 역사유물론과 계급투쟁의 강조가 대표하는 것처럼 보이는 기계적 경제결정론 또한 (저자도 잠시 언급하고 넘어갑니다만) 레닌에 의해 발전된 형태의 마르크스주의의 특징으로 볼 수 없습니다. 마르크스와 엥겔스의 책과 말에 그러한 의심의 여지(기계적 결정론)가 있는 것은 사실이지만, 그것을 전적으로 마르크스의 탓으로 돌려야 하는지는 의문입니다. 저자는 카우츠키와 베른슈타인의 대립을 강조하지만, 베른슈타인의 수정주의와 카우츠키의 사민주의는 모두 역사적 진보는 예정되어 있다는 식의 속류화된 유물론(원시공산주의-노예제-봉건제-자본주의-공산주의의 역사발전 5단계론)에 기초해 사민당의 혁명적 역할을 부정했다는 공통점이 있죠. 마르크스의 핵심적 주장을 무엇으로 볼 것인가에 대해선 여전히 논란의 여지가 있습니다. 하지만 그의 여러 글을 종합해볼 때 그와 반대되는 면모 또한 무수히 많은 글에서 확인할 수 있죠. 당장에 포이어바흐에 관한 테제만 봐도 그렇습니다. 이 테제의 마지막 문장은 역사에서 인간의 혁명적 역할의 중요함, 셰리 버먼에 따르면 정치의 우선성을 선언함과 다를 바 없으니까요. 마르크스를 기계적 유물론자로 모는 것은 저자인 셰리 버먼이 마르크스주의에 대해 천박한 이해만 하고 있다는 것을 증명할 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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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때때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