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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랙프라이데이 세일이 한창이다. 한국에서도 이 기간에 미국으로부터 직접 구매를 하는 사람들이 늘고 있다. 딱히 벌이가 많지도 않은 동생도 미국 GAP에서 후드티를 구입했다고 한다. 이 GAP은 한국인 구입자들이 많자 한국에서의 접속을 차단하기까지 했다고 한다(내 동생은 그 직전에 구입했다).

이 블랙프라이데이 세일을 우리가 마냥 즐길 수 있을까.

우선 이 세일은 '추수감사절'을 즈음한 행사다. 영국 청교도가 '신대륙'에서의 첫 수확을 감사드린 날에서 비롯한 날. 전해지는 말에 따르면 낯선 대륙에서의 경작법을 알려준 인디언들을 초청해 칠면조 고기를 대접했다고도 한다. 이 추수감사절을 즈음한 세일이 '블랙프라이데이'란 이름을 얻은 것은 비교적 최근의 일이다. 이 세일 기간에 판매가 많이 이루어져 그 전까지 적자를 면치 못하던 곳도 흑자로 돌아선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다.

하지만 우리가 익히 아는 바와 같이 그 후 인디언은 인류 역사상 최악의 학살을 당한다. 바로 그들이 경작법을 알려준 유럽 대륙의 백인들에 의해서 말이다. 그곳은 '신대륙'이었는가? 이스라엘이 팔레스타인을 점령하기 오래전부터 그곳에 많은 사람이 살았 듯이 '신대륙'에도 많은 사람들이 살았다. 그들은 지금 어떻게 됐는가?

자본가들에 의해 고혈을 빨리고 있는 노동자들, 특히 악명 높은 노동착취 사업장인 월마트 노동자들이 블랙프라이데이에 맞춰 사보타쥬를 벌인 것은 그들이 의도했든 안했든 과거의 비극적 학살의 역사를 돌이켜보게 한다. 상품을 만드는 공장에서의 저임금 노동과 유통하는 시장에서의 가혹한 서비스 노동이 블랙프라이데이 세일의 저렴한 상품을 가능케 한다. 게다가 '신대륙'에서 발견한 금과 은은 유럽 대륙의 자본주의적 교역을 확대시켰고, '신대륙'에서 확산된 가혹한 노예노동은 유럽의 '기계제 공장제도'에 유용한 경험을 전해줬다.

'블랙프라이데이 세일'은 이미 한국의 많은 사람들에게도 큰 영향을 미치고 있다. 좌파라면 과거의 역사를 돌아보며 우리의 현재를 반성할 수 있어야 할 것이다. '블랙프라이데이'는 "지나간 시대의 어둠"(뮤지컬 '레 미제라블' 중 'Red and Black'에서)으로 묻어야 할 현재다.

2009.05.06 09:23

超時空思想 MARX 잡담2009.05.06 09:23

초시공사상 마르크스라니…. 멋진데.


2009.04.05 23:02

봄꽃 잡담2009.04.05 23:02

집 앞에 핀 목련과 벚꽃. 봄이면 누구나 찍는 사진.








TAG 목련, 벚꽃,
2009.02.06 09:31

연필 잡담2009.02.06 09:31

시내의 모 대형 서점에 자주 갑니다. 책을 몇 권 사니 연필을 주더군요. 사실 며칠전에도 책을 사면서 받았었습니다. 그때 받은 연필은 집 책상에 고이 모셔져 있죠.

전 회사에서 연필을 씁니다. 업무 특성 때문이기도 하지만 고등학교 시절부터 연필로 써오던 버릇을 쉽게 버리지 못합니다. 전 칼로 연필을 깎아서 사용해요. 연필을 사용하면서 연필깎이를 사용하는 이유는 이해하기 어렵습니다. 마음을 닦듯 나무를 깎아나가면 살며시 드러나는 검은 속살이 연필의 매력이죠. 연필깎이로는 이 매력을 느낄 수 없죠.

회사에선 노란색의 중국산 스테들러 연필을 씁니다. 다른 한 쪽엔 지우개가 달려있죠. 제가 스테들러 사장이라면 중국 공장은 당장에 정리해버리겠습니다. 이 중국산 연필은 스테들러의 명성을 깎아내릴 뿐이죠. 약간 비싸지만 독일산 스테들러 연필을 깎고 사용해보면 단박에 그 차이를 느낄 수 있습니다.

연필의 질을 따질 때 전 두 가지를 꼽아요. 우선 심을 둘러싼 나무(뭐라 부르는 지 잘 모르겠네요)의 질입니다. 좋은 연필은 이 나무의 결이 고와서 칼날에 거스르지 않고 제 살을 내줍니다. 그런데 중국산 스테들러는 곳곳에 드러나는 거친 나뭇결 때문에 고르게 깎기가 힘듭니다. 깎는 손에 힘을 더 줘야만 하죠. 두번째는 심 자체의 품질입니다. 같은 HB라도 고급 제품은 더 부드럽게 써지죠. 중국산 스테들러는 고르지 않게 거친 입자가 포함돼 있어 글을 쓰다보면 걸리는 곳이 느껴지곤 합니다. 뭐 이렇게 불평을 늘어놓지만 비싼 독일제는 집에서나 사용하고 회사에선 사주는게 중국산이니 그냥 아무 소리 않고 사용하죠.

시내의 모 대형 서점에서 받은 연필은 나무 대신에 종이(재생 종이일까요?)를 사용했더군요. 사무실에 들어자마자 칼을 들고 바로 깎아봤습니다. 결이 없어 모양은 고르게 깎을 수 있었는데 중국산보다도 더 힘이 드네요. 심은 본격적으로 사용해보지 않아서 잘 모르겠는데, 깎으면서 두 번이나 부러진 걸로 봐서는 그리 좋은 질의 것이라고 할 순 없을 것 같습니다. 뭐 공짜로 얻은거니까 고맙게 사용할 뿐이죠.

연필 얘기에 김훈이 빠질 순 없겠죠. 전 소설가 김훈을 잘 모릅니다. 그의 소설이라곤 단편집 '강산무진' 하나 읽은게 다죠. 김훈은 무엇보다 '기자'로서 먼저 다가왔습니다. 그의 군더더기 없는 간결한 기사에서 '사실(fact)이 스스로 말하게 하라'는 것이 어떤 것인지를 느꼈습니다. 물론 그렇다고 그의 기사가 정치적 편향이 없다는 건 아니에요. 어떤 사건과 사실이 글로 옮겨지고 배열되는 순간 거기엔 정치적 판단이 들어가기 마련이죠. 김훈 기사가 매력적이었던 건 그 정치색을 정치적이지 않은 언어로 표현했다는 거죠. 말 그대로 여백의 미. 그의 글은 쓰여진 것보다 쓰여지지 않은 행간에서 더 큰 이야기가 울려나오죠. 이건 지금 대다수의 우파와 좌파가 공히 김훈에게 배워야 할 것이라고 생각해요.

그의 기사에 대해 주저리주저리 읊었지만 사실 김훈에게 반한 딱 한 가지 이유는, 그가 저와 비슷하게 연필을 사용하기 때문이죠. 심지어 같은 종류의 연필을. 연필로 글을 쓴다는 건 여간 고역이 아니죠. 더군다나 요즘은 연필로 원고지에 쓴다고 해도 결국엔 다시 키보드로 입력해야만 하니 두 번 일해야 하는 셈입니다. 저도 지금 이 글은 그냥 키보드로 쓰고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러한 고역을 이겨내고 연필로 글을 쓰다보면 한 번 더 생각하고 글을 쓰게 돼요. 내가 사용하는 이 표현이 너무 과도한 건 아닌지, 이게 정확한 건지. 글을 쓰다 막힐 때, 연필을 깎으며 생각을 다듬을 수도 있죠.

연필을 한 번 사용해보세요. 아마 디지털 시대라 이 연필의 매력이 더 도드라져 보일 겁니다.

Posted by 때때로
2008.09.11 14:11

9ㆍ11 아옌데를 추모하며 잡담2008.09.11 14:11

매년 어김없이 다가오는 9월 11일이면 무엇을 생각하십니까? 전 칠레, 아옌데, 피노체트를 생각합니다.



살바도르 아옌데(1908.7.26~1973.9.11)는 1970년 대통령 선거에서 파블로 네루다(시인)와 공산당의 양보에 힘을 얻어 대통령에 당선됩니다. 최초로 선거를 통해 사회주의자가 대통령에 당선된 것이죠. 당선 후 아옌데는 자본가들과 외국, 특히 미국의 반격에 직면합니다. 자본가들은 자본을 해외로 빼돌리거나 자신들 공장의 생산시설을 파괴하고, 생산된 상품을 숨기고, 미국은 칠레의 최대 수출품인 구리의 국제시장 교란을 위해 미국에서 생산된 구리를 국제시장에 덤핑가에 내놓습니다. 보수적인 칠레 군부에 대한 군사적 지원은 말할 것도 없죠.



미국과 자본가들의 공격에 맞서 칠레 민중들과 아옌데 정부는 영웅적으로 투쟁합니다. 생산이 중단된 공장을다시 가동하고 숨겨진 상품을 찾아내 배급망을 구축합니다. 하지만 1973년 9월 11일, 군부의 쿠데타에 의해 아옌데 대통령은 대통령궁에서 폭격에 의해 사망하고 이후 일주일간 3만여명의 사람이 학살당하죠. 이후 피노체트 집권 기간 중 10만 명이 넘는 사람이 고문에 의해 불구자가 되고 1천여 명이 행방불명되죠.

더 자세한 건 황해문화 편집장인 바람구두 전성원님의 '바람구두연방의 문화망명지 - 사람으로 본 20세기 문화예술사'에서 '살바도르 아옌데' 항목을 참조하시기 바랍니다.(클릭하시면 '살바도르 아옌데' 항목으로 이동합니다.)

오늘 하루만이라도 그와 칠레 민중들이 꿈꾸었던 이상을 돌아보며 그들의 희생을 기렸으면 합니다.


1973년 9월 11일 살바도르 아옌데 대통령은 그의 보좌관들과 함께 소총으로 무장한 채 군부의 쿠데타에 저항했다. 피노체트의 쿠데타군이 망명을 권유했으나 아옌데 대통령은 거부했고 곧 공군의 폭격으로 목숨을 잃었다. 가운데 철모를 쓴 사람이 아옌데 대통령.

"이번이 제가 여러분에게 말하는 마지막이 될 것입니다. 곧 마가야네스 라디오도 침묵하게 될 것입니다. 그리고 여러분에게 용기를 주고자 했던 나의 목소리도 닿지 않을 것입니다. 그것은 중요하지 않습니다. 여러분은 계속 들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나는 항상 여러분과 함께 할 것입니다. 적어도 나에 대한 기억은 이 나라에 온 몸을 바쳤던 사람.

내가 이제 박해받게 될 모든 사람들을 향해 말하는 것은, 여러분들에게 내가 물러서지 않을 것임을 이야기하기 위한 것입니다. 나는 민중의 충실한 마음에 대해 내 생명으로 보답할 것입니다. 나는 언제나 여러분과 함께 있을 것입니다. 나는 우리나라의 운명과 그 운명에 믿음을 가지고 있습니다. 또 다른 사람들이 승리를 거둘 것이고, 곧 가로수 길들이 다시 개방되어 시민들이 걸어다니게 될 것이고, 그리하여 보다 나은 사회가 건설될 것입니다.

칠레 만세! 민중 만세! 노동자 만세! 이것이 나의 마지막 말입니다. 나의 희생을 극복해내리라 믿습니다. 머지않아 자유를 사랑하는 사람들이 보다 나은 사회를 향해 위대한 길을 열 것이라고 여러분과 함께 믿습니다. 그들은 힘으로 우리를 우리를 지배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무력이나 범죄행위로는 사회변혁 행위를 멈추게 할 수는 없습니다. 역사는 우리의 것이며, 인민이 이루어내는 것입니다. 언젠가는 자유롭게 걷고 더 나은 사회를 건설할 역사의 큰 길을 인민의 손으로 열게 될 것입니다."
-1973년 9월 11일 아옌데 대통령의 마지막 연설

※ 마침 오늘 별라디오(http://www.staradio.net)란 곳에 오랜만에 들어가보니 9ㆍ11 관련 방송이 올라왔더군요. 아옌데의 마지막 연설 육성 녹음을 들을 수 있습니다. 피노체트에 의해 죽은 빅토르 하라의 Venceremos(우리는 승리하리라)도 들을 수 있습니다(아마 노래는 다른 가수가 부른 듯 해요). 여기를 클릭하면 해당 방송으로 이동합니다.

Posted by 때때로
2008.08.25 12:52

why so serious? 잡담2008.08.25 12:52

얼마전 개봉해서 흥행하고 있는 영화 '다크 나이트'의 가장 인상적인 대사입니다. 히스 레저가 분한 조커는 시종일관 'why so serious?'라고 묻죠. 하지만 제가 보기에 이 영화에서 가장 'serious'한 사람은 조커입니다. 고담 시티의 어두운 반쪽을 지배하고 있는 갱들의 돈을 찾아준 조커는 자기 몫의 반을 불태우며 가장 순수한, 그래서 가장 잔혹할 수 밖에 없는 '폭력'에의 열망을 아낌없이 표출합니다.

순수하고 이상적인 사람은 serious-진지합니다. 그래서 그들은 시종일관 현실적 욕망에 타협하고 굴복하는 이들의 존재를 견뎌내지 못합니다. 오늘 제가 영화 '다크 나이트'에 대해 말하고자 하는 건 아닙니다.

정치적 이상에 눈을 뜨고 레닌을 사랑하게 된 순간부터 몇 년간 항상 칼날과 같은 정치적 각성 상태를 유지하고자 노력해왔습니다. 이건 참으로 피곤하고 힘든 일입니다. 대다수의 사람들에게 있어 지극히 일상적인, 당연한 모든 것들에 대해 경계하고 의심하고 물음을 던지는 건 단순히 '의식'에 국한된 것만은 아닙니다. 어린 시절 국가간 축구 경기를 보고자 새벽에 일어나 TV를 켰던 자신을 억압하며 축구의 자본주의적 본질을 스스로에게 재인식 시키는 과정은 매우 피곤한 일이죠. 또한 제 친구들과의 관계를 소원하게 만드는 데도 일조한 듯 싶네요. 스포츠, 드라마, 영화, 만화, 소설…. 쉽게 여흥을 즐기기 위한 모든 것에 의문을 제기하는 친구와 어떤 공통의 감정, 정서를 교류하기란 쉽지 않겠죠. 이 모든걸 그때는 즐겼었죠. 내 스스로를 이상에 맞춰가는 과정은 한편 마약과도 같은 중독성이 있기도 합니다.

언젠가부터 이 모든게 너무 힘이 들더군요. 그러기 위해 제가 희생해야만 하는 것도 너무 많았고요. 아마도 제 첫 연인과 헤어진 것도 그런 연유였던 것 같습니다. 그녀와는 정치적 이상을 함께 했었죠. 지금도 만나면 가장 많은 걸 공감하고 공유하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연인 관계'에서조차도 그런 정치적 제한에서 벗어나지 못할 때, 날카롭게 벼려진 두 칼날은 충돌에서 서로에게 상처입히기 쉽죠. 그래서 떠났던 것입니다.

그렇지만 이런 '두루뭉술'한 삶도 그리 쉽지만은 않더군요. 10여 년 넘게 벼려온 칼날이 무뎌졌다 한들 칼이 어디가겠습니까. 그래요 사실은 10 몇일 간의 올림픽이 끝난 이제서야 그  숨막히던 민족주의적 제전의 갑갑함을 토로하는 것이죠. 단지 민족주의만이 문제는 아닙니다. 자본주의를 유지하는 핵심 이데올로기인 '경쟁'과 '노력에 대한 댓가' 이 모든게 가장 정밀하게 짜맞춰진 각본하에 선전되는 장인 올림픽을 그저 즐기기만 하기에는 너무 힘듭니다.

영화 '괴물'의 가족들은 왜 한강변 매점에서 생활해야만 했을까요? 88 서울 올림픽을 앞두고 대규모 판자촌과 달동네가 밀집해있던 상계동에 대한 개발이 본격적으로 추진되죠. 갈곳 잃은 그들에게 그나마 주어진 건 바로 서울 안의 외딴 사막 한강 고수부지의 매점입니다. 중국에서도 빈민촌과 노점상에 대한 대규모 단속과 개발이 잇따랐죠. 티벳과 소수민족에 대한 탄압은 이루 말할 것도 없죠. 이건 단지 올림픽의 '이면'일 뿐일까요? 사실은 국가의 체제 '안전성'을 선전하는 최선의 장인 올림픽에서 그것이 '이면'에 불과할리는 없습니다. '본질'인 것이죠.

스포츠에서의 공정한 경쟁 이것도 참 웃긴 얘깁니다. 끊임없이 이어지는 오심과 편파 판정 시비, 약물복용 의혹, 특정 국가에 유리하거나 불리하게끔 바뀌어지는 '규칙'. 68년 멕시코 올림픽에서 흑인 민권운동을 지지하면서 시상대에서 블랙파워를 상징하는 붉끈 쥔 주먹을 들어올렸던 미국 흑인 선수들은 '올림픽 정신'을 더럽혔다는 이유로 아직도 복권되지 못하고 있습니다.

물론 선수 개개인들의 노력의 결과로 펼쳐지는 '드라마'는 감동적이기 그지 없습니다. 하지만 한 CF의 표현처럼 대다수의 관객에게, 선수에게 올림픽은 단지 그들의 노력을 표현하고 '즐기'는 자리만으로 남진 않습니다. 만약 그런 자리라면 굳이 '국가 대표'라는 것도 의미가 없겠죠. '쿨러닝' '우생순'의 감동은 거짓이 아닙니다. 하지만 그들의 '감동'은 더 큰 '부조리'를 감춰주는 역할 이상을 하지 않습니다. 그 '감동'이 사람들에게 '정의'와 '공동선'에 대한 '공감'을 뜻하진 않습니다.

네 당연히 저도 야구를 보며 특정 팀을 응원하고 게임이 만들어내는 드라마를 즐깁니다. "why so serious?"란 질문은 이런 모순적인 제 자신에 대한 질문일 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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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마스 휩커|남산

한겨레 창간 20돌을 맞아 7월 4일부터 예술의 전당 한가람 미술관에서 '매그넘 코리아' 사진전이 열리고 있습니다. 매그넘 사진가 20명이 지난 1년간 한국 곳곳을 돌아다니며 찍은 사진을 전시하고 있는 거죠.

브레송과 카파의 뒤를 잇는 사진가들이 찍은 한국은 어떨까? 이런 궁금증에 지난 토요일(12일) 예술의 전당으로 향했습니다. 역시나 많은 사람들이 전시회를 관람하고 있었죠. 전시는 작가전과 주제전으로 나뉘어서 진행되고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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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이비드 앨런 하비|제주도 우도

역광과 유리의 반사를 이용한 아뤼 그뤼에르, 무채색의 유화적 느낌이 강했던 게오르기 핀카소프의 사진들은 분명 새로운 시각적 경험을 안겨줬습니다. 멀리 보이는 남산을 콘크리트 구조물의 프레임으로 감싼 토마스 휩커의 사진도 남산을 새롭게 바라보게 해줬죠. 그 느낌은 아마도 서울을 하늘에서 바라본 느낌이었을 겁니다. 잿빛 콘크리트 덩이들에 둘러쌓인 작은 섬의 처량함 그것을 날카롭게 보여주고 있었습니다. 임신한 한 여성이 바다와 등대를 배경으로 관광 표지판 옆에 서있는 데이비드 앨런 하비의 사진은 깊이 있는 유머를 머금고 있었습니다. 그 관광 표지판에 그려진(또는 찍혀있는) 잠수정의 둥근 창을 통해 바다를 바라보며 즐거워하는 아이의 모습은 마치 그녀의 뱃속에서 자라고 있을 태아를 연상케 했죠. 불교에 대한 조예가 깊은 스티브 매커리가 찍은 스님의 모습은 선을 향한 정진의 길에 대한 남다른 울림을 전해주기도 했습니다.

특히 알렉스 웹이 삼성생명 본관 앞에서 찍은 사진은 이번 전시회 전체에서 가장 한국에 대한 이해가 깊은 작품이라고 생각합니다. 삼성생명 앞에서 인도와 삼성 사유지의 경계를 나누고 있는 철제 구조물 사이로 세 남성이 서로 엇갈려서 다른 방향을 향해 움직이거나 응시하고 있습니다. 그 세 남자를 건물에 걸린 거대한 간판에 그려진 '눈'이 바라보고 있죠. 점점 더 빅브러더의 모습이 되가고 있는 삼성의 모습을 이보다 더 잘 잡아내진 못하리라 생각합니다. 저도 만날 그 앞을 지나다니면서 어떻게 하면 삼성의 본질을 담아낼 수 있을까 고민하지만 이런 사진이 가능하리라곤 생각지 못했었습니다. 제가 이번 전시회에서 거둔 가장 큰 수확이죠.

하지만 딱 거기까지. 아쉽게도 전시장 벽을 가득 채운 사진들 속에 한국은 관광객이 찍은 사진 이상이 아니었습니다. 물론 거장들답게 그들 특유의 시선과 노하우로 잡아낸 한국의 곳곳은 흥미롭긴 했습니다. 하지만 몇몇 사진클럽 아마츄어 사진가들의 잘 찍은 사진 이상은 아니었던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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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티브 매커리|충남 보령

특히 리즈 사르파티가 한국의 골목들을 배경으로 찍은 여인들의 사진은 그가 과연 한국이라는 배경과 한국 여인이라는 대상을 제대로 이해하고 찍었는가 의문이 들 정도였습니다. 그정도의 사진이라면 당장 인터넷만 봐도 무수히 많이 찾아낼 수 있을 거라 생각합니다. 스티브 매커리가 보령에서 촬영한 여성의 포트레이트는 사람을 더 불편하게 만듭니다. 아마도 그것은 유색인종, 원주민에 대한 내셔널지오그래픽적, 백인적 시각 때문인 것 같네요. 마틴 파의 사진도 마찬가지였습니다. 한국인 관광객들의 '특이한 모습'만 담았을 뿐 그로부터 한국적인 것에 대한 어떤 '통찰'을 발견하긴 어려웠습니다.

아마도 그들이 한국을 이해하기엔 한국에서 보낸 시간이 너무 짧았던 듯 싶습니다. 거장이라 불리긴 하지만 겨우 몇 일에서 몇 주일을 한국에서 머물렀던 이들에게 그 이상을 바라는 것은 무리일 듯도 싶습니다.

하지만 더 아쉽게 했던 건 전시의 구성과 사진의 위치, 조명의 밝기와 위치 때문입니다. 작가전의 경우엔 그런대로 봐줄만 했습니다. 물론 강한 조명으로 인해 사진이 들어있는 유리 액자에 빛이 반사대곤 해서 거슬리긴 했지만요. 특히 주제전으로 가면서는 (부족한 공간 탓도 있겠지만) 적게는 수 장에서 많게는 수 십장의 작은 사진들을 여백도 없이 붙여놔 사진을 파악하기 힘들게 전시해놓았습니다. 또 맨 위에 전시된 사진은 조명을 바로 받아 거의 어떤 사진인지 파악하기 힘들었고, 아래쪽은 사진을 너무 낮게까지 걸어놔서 주저앉지 않고서는 제대로 보기 힘들었습니다. 주제의 구성도 그렇습니다. 특히 '사랑과 결혼'이란 주제들로 묶인 사진들은 절반 정도가 드레스 카페에 놀러온 여성들의 사진들로 채워졌더군요. 그들이 레즈비언 커플이었다면 제가 잘못 판단한 것일 수 있겠지만, 그 사진들이 결코 '사랑'에 관한 사진들로는 안보이더군요. '우정'도 '사랑'에 포함된다고 하면 할 말이 없지만요. 도대체 큐레이터는 무슨 생각으로 이렇게 전시를 해놨는지 모르겠네요.

이래저래 아쉬운 점이 많은 사진전이긴 했습니다. 하지만 분명 매그넘의 사진가들이 한국을 담을 일이 그리 자주 있는 일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게다가 한국에 대한 외국인들의 이해는 아직 그 수준이 많이 낮죠. 거장들로부터 시작해서 한국을 그 안에서 바라볼 기회를, 그리고 우리에겐 타인의 시선으로 우리 스스로를 돌아볼 기회를 줬다는 점에서 한겨레의 이번 사진전은 충분히 의미가 있을 겁니다. 전시는 8월 24일까지 열립니다. 불평을 많이 늘어놓긴 했어도 충분히 좋은 사진전이니 많은 분들이 가서 직접 느껴보셨으면 좋겠습니다.

뭐 재미로 보는거죠. 설마 이런걸 믿을 사람은 없겠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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뭐 우연이겠지만... 나름 아래와 같은 결과가 나오니 그럴 듯 하게 느껴져요^^ 어쩐지 제가 마르크스를 좋아하는 이유가 이래서인 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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