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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앞에서 생산수단의 생산에 필요한 노동은 생산물의 생산을 위한 동일한 노동과정의 한 단계로 취급될 수 있음을 살펴봤다. 생산수단의 가치는 생산과정에서 보존되어 생산물로 이전한다. 면화는 방적노동에 의해 소멸되어 면사의 형성요소가 된다. "생산수단의 사용가치의 원래의 형태는 소멸되지만, 그것은 오직 새로운 사용가치의 형태로 다시 나타나기 위해 소멸될 뿐이다"(265쪽).

"노동자가 소비된 생산수단의 가치를 보존하는 것[즉, 그것을 생산물의 가치성분으로 생산물로 이전하는 것]은 노동자가 노동일반(勞動一般)을 첨가함으로써 그렇게 하는 것이 아니라, 이 첨가되는 노동의 특수한 유용성(有用性), 그것의 특수한 생산적 형태에 의해 그렇게 하는 것이다."(265쪽)

그러나 노동자가 생산수단에 가치를 첨가하는 것은 오직 추상적인 사회적 노동으로서만 그렇게 한다.

"노동의 단순한 양적(量的) 첨가에 의해 새로운 가치가 첨가되며, 첨가되는 노동의 질(質)에 의해 생산수단의 원래의 가치가 생산물에 보존된다. 노동의 이중성(二重性)으로부터 생기는 이러한 이중의 효과는 여러 가지 현상들에 명백히 나타난다."(266쪽)

생산조건의 변화로 방적노동이 동일한 시간에 여섯 배의 면화를 면사로 변화시킬 수 있다고 하자. 동일한 시간의 노동에 생산물로 이전되는 생산수단의 가치는 여섯 배가 된다. 그러나 여섯 배의 생산수단에 첨가된 노동량은 이전과 같다. 즉 1파운드의 면화는 이전의 1/6의 노동만이 첨가된다. 생산성이 변하지 않고 생산수단의 가치가 변하는 경우에도 마찬가지로 계산할 수 있다.

생산적 노동은 생산수단의 사용가치와 가치를 소멸시키고 가치를 새로운 생산물로 이전한다. 노동자는 원래의 가치를 보존하는 한에서만 새로운 노동을 첨가하고 새로운 가치를 창조할 수 있다. "왜냐하면 그가 첨가하는 노동은 반드시 특정의 유용한 형태이어야 하며, 생산물들을 새로운 생산물의 생산수단으로 사용해 그들의 가치를 새로운 생산물로 이전하지 않고서는 유용한 노동을 할 수 없기 때문이다"(273쪽).

"가치를 첨가하면서 가치를 보존한다는 것은 활동중의 노동력[살아 있는 노동]의 자연적 속성이다. 이 자연적 속성은 노동자에게는 아무런 비용도 들지 않으나 자본가에게는 현존하는 자본가치의 보존이라는 큰 이익을 가져다 준다. 경기가 좋은 동안에는 자본가는 돈벌이에 눈이 어두워 노동의 이 무상(無償)의 선물을 보지 못하지만, 노동과정의 강제적인 중단, 즉 공황(恐慌)은 자본가로 하여금 이것을 절실하게 느끼도록 만든다."(273~274쪽)

정리하면 생산과정에서 소모되는 것은 생산수단의 사용가치다. 가치는 소비되지 않는다. "생산수단의 가치는 생산물의 가치에 재현(再現)"된다.

그러나 노동과정의 다른 요소, 활동하는 노동력의 경우는 다르다. 노동은 구체적 유용노동으로서 생산수단의 가치를 새로운 생산물로 이전하는동안 새로운 가치를 창조한다. 앞의 7장의 예에서 방적공이 6시간의 노동을 하고 일을 마친다고 하자. 그는 12원의 생산수단에 3원의 가치를 덧붙인다. 이는 생산수단으로부터 이전된 가치(12원)를 넘는 가치다.

"이 가치는 이 생산과정 내부에서 발생한 유일한 본원적 가치(本源的 價値)이며, 생산물의 가치 중 이 과정 자체에 의해 생산된 유일한 부분이다."(275쪽)

물론 우리의 자본가는 자신이 노동력 구매를 위해 지출한 화폐(3원)를 들먹일 것이다. 지출된 화폐에서 보자면 3원이라는 새로운 가치는 재생산된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그것은 현실적으로 재생산된 것이고, 생산수단의 가치처럼 외관상으로만 재생산된 것【가치가 이전된 것】은 아니다. 한 가치의 다른 가치에 의한 대체는 이 경우 새로운 가치의 창조에 의해 이루어지고 있다."(276쪽)

당연히 우리의 자본가는 6시간을 넘겨 노동과정을 지속시킨다. "따라서 노동력의 활동은 자기 자신의 가치를 재생산(再生産)할 뿐 아니라 일정한 초과가치(超過價値)를 생산한다. 이 잉여가치는 생산물의 가치와 그 생산물의 형성에 소비된 요소들[즉, 생산수단과 노동력]의 가치 사이의 차이(差異)이다"(276쪽).

마르크스는 지금까지의 논의를 정리한다. 그는 생산수단과 노동력 구입에 들어간 자본 중 생산수단에 투입된 것을 불변자본이라고 부른다. 이는 생산수단의 가치가 변하지 않는다는 뜻이 아니다(시장에서 생산수단의 가치는 생산조건 등의 변화로 끊임없이 변동한다). 생산과정에서 생산수단은 그 가치를 보전하고 이전할 뿐이기 때문이다. 반대로 노동력 구입에 들어간 자본을 가변자본이라고 부른다. 노동력은 그 자신의 등가물을 재생산하고 그 이상의 초과분을 만들어내기 때문이다.

Posted by 때때로

제1절 노동과정 【또는 사용가치의 생산】

자본가는 으스대며 앞서 걸어가고 노동자는 풀이 죽어 뒤따라간다. 그들은 공장ㆍ농장ㆍ광산ㆍ공사장ㆍ상가ㆍ사무실로 들어간다. 자본가는 노동력을 소비하기 위해서 구매했다. "노동력(勞動力)의 사용이 바로 노동(勞動)이다"(235쪽). 노동자는 자신의 노동으로 우선 사용가치를 만들어야 한다. 사용가치의 생산은 사회형태가 달라진다고 해서 그 일반적 성질이 달라지진 않는다. 따라서 마르크스는 7장 1절에서 사용가치 생산의 일반적 성질, 즉 노동과정을 사회형태와 무관하게 검토한다.

노동은 인간과 자연 사이의 과정이다. 인간은 필요한 것을 얻기 위해 자신의 신체와 정신을 사용해 자연에 영향을 미치고 또한 자신도 변화시킨다. 자연과 영향을 주고받는 세계는 동물에게도 마찬가지다. 인간의 노동이 동물과 다른 것은 "노동과정의 끝에 가서는 그 시초에 이미 노동자의 머리 속에 존재하고 있던 [즉, 관념적으로 이미 존재하고 있던] 결과가 나오"(236쪽)기 때문이다.

"노동자는 자연물의 형태를 변화시킬 뿐 아니라 자기 자신의 목적(目的)을 자연물에 실현시킨다. 그 목적은 하나의 법(法)처럼 자기의 행동방식을 규정하며, 그는 자신의 의지(意志)를 이것에 복종시키지 않으면 안 된다. 그리고 이 복종은 결코 순간적인 행위가 아니다. 노동하는 신체기관들(organs)의 긴장 이외에도 합목적적(合目的的) 의지가 작업이 계속되는 기간 전체에 걸쳐 요구된다."(236쪽)

노동과정에서 인간의 의지ㆍ정신은 자연과 자기 자신에 동시에 영향을 미친다. 이는 타인 혹은 스스로에 의한 규제와 통제를 요구한다. "노동의 내용과 수행방식이" 노동자 자신에게서 독립적으로 결정될 수록 "더욱더 치밀한 주의가"(236쪽) 필요한 것은 당연하다. 따라서 마르크스에게 노동 일반은 인간 생존의 전제조건이긴 하지만 그것 자체가 예찬 받아야 할 어떤 이상적 상태는 아니다.

마르크스가 노동을 '육체노동'으로만 한정짓지 않았음도 알 수 있다. 신체의 활용은 '머리', 즉 정신 또는 관념의 사용도 포함된다. '합목적적 의지'는 타인에 의해서 주어지든, 자기 자신에 의해 강제되든 인간 노동의 핵심적인 특징이다.

노동과정에는 노동 그 자체(인간의 합목적적 활동)와 노동대상, 노동수단이 요소로 필요하다. 노동대상은 인간의 노동이 대상으로 하는 자연이다. 노동수단은 노동대상에 영향을 미치기 위해 필요한 노동자와 노동대상을 연결해주는(중개하는) '전도체(conductor)'다. 노동과정 수행에 필요한 다른 모든 개체적 조건들도 노동수단에 포함된다. 벌목꾼에게 숲의 나무는 노동대상이다. 나무를 베기 위한 톱과 도끼는 노동수단이다. 이렇게 만들어진 목재는 목수에게 노동대상이다. 목수는 망치와 대패 등의 노동수단을 이용해 노동대상인 목재를 책상과 의자로 만든다. 목수가 책상과 의자를 만드는 작업장(땅과 기둥ㆍ천장 등)도 노동수단이다.

"노동수단의 사용과 제조는 [비록 그 맹아적 형태는 약간의 동물들에서도 볼 수 있지만] 인간 특유의 노동과정을 특징짓는다. 그러므로 프랭클린(Benjamin Franklin)은 인간을 '도구(道具)를 만드는 동물'이라고 정의하고 있다. 멸종한 동물 종족을 결정하는 데 화석유골이 중요한 것처럼, 멸망한 경제적 사회구성체를 탐구하는 데 노동수단의 유물(遺物)이 중요하다. 경제적 시대를 구별하는 것은 무엇이 생산되는가가 아니고 어떻게, 어떠한 노동수단으로 생산되는가이다."(238쪽)

선사시대를 석기시대ㆍ청동기시대ㆍ철기시대로 구분한다. 여기서 '석기ㆍ청동기ㆍ철기'는 그 시기 인간이 사용한 주요 도구(노동수단)다. '자연과학적 연구'로 취급되긴 하지만 인간의 물질적 생산에 주의를 기울인다는 측면에서 올바르다.

지금까지를 요약하면 "노동과정에서는 인간의 활동이 노동수단을 통해 노동대상에 [처음부터 의도하고 있던] 변화(變化)를 일으킨다"(239쪽).

노동과정의 결과물인 생산물 입장에서 노동수단과 노동대상은 생산수단으로, 노동은 생산적 노동으로 나타난다. 이 생산물은 또 다른 노동과정에 투입돼 생산수단으로 되기도 한다. 따라서 "생산물은 노동과정의 결과(結果)일 뿐 아니라 노동과정의 조건(條件)이기도 하다"(240쪽). 생산의 결과인 사용가치가 다음 과정의 생산에 어떠한 역할을 할지는 가변적이다. 면화는 그 자체로 솜옷과 이불에 사용된다. 때론 실을 뽑아내기 위한 원료가 되기도 한다. "어떤 사용가치가 원료, 노동수단, 또는 생산물로 되는가는 전적으로 그 사용가치가 노동과정에서 행하는 특정한 기능[그것이 노동과정에서 차지하는 위치]에 의존하는데, 이 위치가 변하는 데 따라 그 사용가치의 규정도 변한다". 그러므로 "생산물은 생산수단으로서 새로운 노동과정에 들어가면 생산물이라는 성격을 상실하며, 다만 살아 있는 노동의 대상적 요소로 기능한다"(242쪽). 결함이 없는 생산물에는 과거의 노동이 드러나지 않는다.

노동은 노동대상과 노동수단을 '소비'한다. 마르크스는 이를 '생산적 소비(productive consu mption)'라고 부른다. 개인적 소비(individual consumption)는 소비자 자신을 만들어 내지만 생산적 소비의 결과는 소비자 자신과 구별되는 생산물을 만든다.

"우리가 지금까지 그것의 단순하고 추상적인 요소들에 대해 설명해 온 노동과정(勞動過程)은 사용가치를 생산하기 위한 합목적적 활동이며, 인간의 욕망을 충족시키기 위해 자연에 존재하는 것을 사용하는 것이고, 인간과 자연사이의 신진대사의 일반적 조건이며, 인간생활의 영원한 자연적 조건이다. 따라서 그것은 인간생활의 어떤 형태로부터도 독립하고 있으며, 오히려 인간생활의 모든 사회적 형태에 공통된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노동자를 다른 노동자들과의 관계에서 설명할 필요가 없었던 것이다. 한편에는 인간과 그의 노동, 다른 편에는 자연과 그 소재-이것만으로 충분했다. 밀죽의 맛을 보고 누가 그 밀을 경작했는가를 알 수 없는 것과 꼭 마찬가지로, 이 노동과정을 보아서는 그것이 어떤 조건 하에서 행해지는지 알 수 없다. 즉, 노예감시인의 잔인한 채찍 밑에서인지 또는 자본가의 주의깊은 눈초리 밑에서인지, 또는 킨킨나투스【Cincinnatus: 고대 로마의 장군, 은퇴 한 뒤 농사를 지었다.】가 자기의 작은 토지의 경작으로 이 과정을 수행하는지, 그렇지 않으면 돌로 야수를 쳐죽이는 미개인이 이 과정을 수행하는지 도무지 알 도리가 없다."(244쪽)

노동과정의 일반적 성격은 특수하고 역사적인 사회형태를 설명해주지 않는다. 노동력과 생산수단을 구입한 자본가의 공장에서도 노동과정의 일반적 성격은 동일하다(마르크스는 노동이 자본에 종속됨으로써 생산방식 그 자체가 변화할 수 있으며, 이에 대해서는 뒤에서 살펴보겠다고 말한다. 마르크스와 엥겔스의 '공산당 선언'은 부르주아의 생산방식에서의 혁신에 대한 찬사(?)로 유명하다).

마르크스는 다음 절(가치증식과정)로 넘어가기 전 자본가에 의한 노동력의 소비과정으로서 노동과정의 특징 두 가지를 지적한다. 첫째 "노동자는 자기의 노동을 소유(所有)하는 자본가의 감독 하에서 노동한다". 둘째 "생산물은 자본가의 소유물(所有物)이지 직접적 생산자인 노동자의 소유물은 아니다"(245쪽).


제2절 가치증식과정(valorization process)

노동과정의 결과물 그 자체를 위해 자본가가 노동력과 생산수단을 구매해 소비하는 것은 아니다. 그는 무엇보다 교환가치를 지닌 사용가치, 즉 판매를 위한 상품을 생산하려 한다. 또한 이렇게 만들어진 상품의 총액은 그 자신이 생산을 위해 투하한 화폐의 총액(노동력과 생산수단을 구매하는 데 든 총액)보다 커야 한다.

"상품생산에서 사용가치는 '그 자체로서 사랑받는' 물건은 아니다. 상품생산에서 사용가치가 생산되는 것은 오직 그것이 교환가치(交換價値)의 물질적 밑바탕, 그것의 담지자(擔持者)이기 때문이며, 또 담지자인 한에서다. …… 그는 사용가치를 생산하려고 할 뿐 아니라 상품을 생산하려고 하며, 사용가치뿐 아니라 가치(價値)를, 그리고 가치뿐 아니라 잉여가치(剩餘價値)를 생산하려고 한다."(247쪽)

우리가 앞에서 고찰한 노동과정은 상품 생산과정의 한 측면에 불과한 것이다. "상품 그 자체가 사용가치와 가치의 통일인 것과 마찬가지로, 상품의 생산과정도 노동과정과 가치형성과정(價値形成過程)의 통일이어야 한다"(247쪽). 이번 절에서는 바로 이 가치형성과정을 고찰한다.

마르크스는 면사의 생산과정을 예로 들어 가치형성과정을 살핀다. 10파운드의 면사 생산에 10파운드의 면화와 1개의 방추가 필요하다고 가정하자. 면화 10파운드의 가격은 10원, 방추 1개의 가격은 2원이라고 하면 면사 10파운드의 생산에 필요한 생산수단은 12원이다. 12원의 금량을 생산하는 데 2노동일(24시간)이 걸린다고 하면 생산수단 12원에는 2노동일의 사회적 노동이 응고되어 있는 것이다. 면화와 방추의 생산에 필요한 노동시간은 면사의 생산에 필요한 노동시간의 일부가 된다. "여러가지 특수한 [시간적으로도 공간적으로도 분리되어 있는] 노동과정들은 동일한 하나의 노동과정의 순차적인 각각의 단계로 간주할 수 있다"(249쪽).

이를 위해 두 가지 조건이 만족되어야 한다. 우선 면화와 방추가 실제 생산에 기여해야 한다. 둘째 면화와 방추의 생산에 (이후 면사의 생산에도) 지출된 노동시간은 주어진 사회적 생산조건에서 필요한 노동시간을 초과해선 안 된다. 금으로 만든 방추를 사용한다고 해서 면사가 더 많은 가치를 얻지는 않는다.

다음으로 살피는 것은 "방적공의 노동이 면화에 첨가하는 가치부분"이다.

노동과정으로서 면사의 생산을 살필 경우 방적공의 노동은 '합목적적 활동'으로서 특수한 사용가치를 만드는 노동이다. 그러나 방적공의 노동이 가치를 생산하는 한 그 노동은 대포를 만드는 노동과 다르지 않다. "면화재배ㆍ방추제조ㆍ방적이 면사의 가치라는 하나의 총가치(總價値)의 단순히 양적으로만 구별되는 부분들을 형성할 수 있는 것"(250쪽), 즉 동일한 노동과정의 각각의 단계로 취급할 수 있는 것은 이 때문이다.

노동자의 노동은 일정한 시간에 일정량의 면화와 방추를 면사로 변화시킨다. 즉 면화에 일정량의 노동이 첨가된다. 여기서도 다시 사회적으로 필요한 노동시간만 소비되어야 한다는 것을 강조한다.

"이제 일정한 [경험적으로 확정된] 양의 생산물은 오직 일정한 양의 노동[일정한 양의 응고된 노동시간]을 대표할 뿐이다. 그것은 이제 일정한 시간[또는 날]의 사회적 노동의 물적 형태일 따름이다."(251쪽)

이제 면사 10파운드에 들어있는 총가치를 검토하자. 우선 면사 10파운드 생산에는 면화 10파운드와 방추 1개가 필요하다. 이는 12원이고 모두 2노동일이 대상화돼 있다. 방적 노동자는 1시간에 1과2/3파운드의 면화를 1과2/3파운드의 면사로 변화시킨다고 가정하자. 10파운드의 면사를 생산하기 위해서는 6시간의 노동이 필요하다. 방적 노동자의 하루 노동력 가치는 3원이다. 따라서 면사 10파운드에는 모두 2와1/2노동일의 노동이 응고되어 있고, 그 가격은 15원이다. 면사 10파운드를 생산하는 데 투하한 가치 15원은 여전히 15원이다. 이래서는 자본가가 노동력과 생산수단을 구매해 생산에 나설 이유가 없다.

"투하된 가치는 증식(增殖)되지 않았고, 잉여가치(剩餘價値)를 생산하지 않았으며, 따라서 화폐는 자본(資本)으로 전환되지 않았다."(252~253쪽)



그러나 노동력 재생산에 6시간(3원, 1/2노동일)이 필요하다고 해서 우리의 자본가가 노동자를 6시간만 일을 시킬 이유는 없다.

"자본가에게 결정적으로 중요한 것은 이 상품의 독특한 사용가치[즉, 가치의 원천일 뿐 아니라 그 자신이 가지고 있는 것보다 더 많은 가치의 원천이라는 것]였다. …… 화폐소유자는 이미 노동력의 하루의 가치를 지불했다. 그러므로 노동력의 하루의 사용[즉, 하루의 노동]은 그에게 속한다. 노동력은 하루종일 활동하고 노동할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노동력을 하루동안 유지하는 데는 1/2노동일밖에 걸리지 않는다는 사정, 따라서 노동력의 하루의 사용에 의해 창조되는 가치가 노동력의 하루의 가치의 2배가 된다는 사정은, 구매자에게는 물론 특별한 행운이기는 하지만, 결코 판매자를 부당하게 대우하는 것은 아니다."(257쪽)

이제 자본가는 노동력을 12시간동안 사용하려 한다. 작업장에 들어간 노동자는 12시간의 노동에 필요한 생산수단을 발견한다. 노동자는 20파운드의 면화(20원, 3과1/3노동일), 2개의 방추(4원, 2/3노동일)을 발견한다. 24원의 생산수단과 3원의 노동력이 생산에 투입된다. 3원의 노동력은 추가된 6시간동안 3원의 가치(6시간, 1/2노동일)를 더한다. 이제 생산물의 총가치는 30원이 된다. "그리하여 27원은 30원으로 되었으며 3원의 잉여가치(剩餘價値)를 낳았다. 요술은 드디어 성공했다. 화폐는 자본으로 전환된 것이다"(258쪽).



"문제의 모든 조건은 충족되었으며 상품교환의 법칙은 조금도 침해되지 않았다. 등가물이 등가물과 교환되었다. 자본가는 구매자로서 어느 상품[면화·방추·노동력]에 대해서도 그 가치대로 지불했다. 그 다음 그는 다른 모든 상품의 구매자가 하는 일을 했다. 즉, 그는 그 상품들의 사용가치를 소비했다. 노동력의 소비과정은 동시에 상품의 생산과정이기도 한데, 30원의 가치가 있는 20파운드의 면사라는 생산물을 생산했다. 여기에서 자본가는 시장으로 되돌아가는데, 전에는 상품을 구매했지만 이번에는 상품을 판매한다. 그는 면사를 1파운드당 1.5원에, 즉 그 가치대로 판매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처음에 유통에 던져 넣었던 것보다 3원이나 더 많이 유통으로부터 끌어낸다. 그의 화폐가 자본으로 전환되는 이 전체 과정은 유통영역 내부에서도 수행되고 또한 그 외부에서도 수행된다. 그것은 유통을 매개로 수행된다. 왜냐하면 그것은 상품시장에서 노동력의 구매에 의해 조건지어지고 있기 때문이다."(258쪽)

가치증식과정은 가치창조과정이 노동력의 가치가 새로운 등가물로 보상되는 점을 넘어 계속되는 과정이다. 노동과정은 사용가치를 생산하는 유용노동에 의해 성립한다. 그러나 가치형성과정은 오직 양적 측면에서만 다뤄진다. "여기에서 문제가 되는 것은 노동자의 작업시간, 즉 노동력이 유용하게 지출되는 계속시간(繼續時間)뿐이다"(259쪽).

가치형성과정의 고찰에서 "사용가치의 생산에 지출된 노동시간은 사회적으로 필요한 것인 한에서만 계산에 들어간다"(259쪽). 즉 사회의 주어진 생산조건 하에서 평균적인 조건하에서 노동력이 활동할 수 있어야 한다. 뮬 자동 방적기가 지배적인 생산수단인 사회에서 물레로 방적을 해서는 안 된다. 물레를 이용해 면사를 생산할 때 더 들어가는 초과시간은 가치를 형성하지 못한다. "노동의 대상적 요소들이 정상적인 것인가 아닌가는 노동자에게 달려 있는 것이 아니라 전적으로 자본가에게 달려 있다"(260쪽). 하지만 현실에서 자본가들은 화폐를 아끼기 위해 정상보다 뒤쳐진 생산수단을 투입하면서도 노동력에게는 정상 이상의 활동을 요구하기도 한다(이는 한편 이윤을 위해 그들이 자신의 생산수단을 아껴야 하는 내적 동인으로부터 기인한다. 이에 대해선 뒤에서 다시 다룰 것이다).

한편 "노동력 자체가 평균적인 능률을 가지고 있어야 한다"(260쪽). 자본가는 시장에서 평균적인 능률 이상의 노동력을 구매하기 위해 노력한다(이는 두 가지로 나타난다. 고급 노동력에 대한 수요와 사회적 평균보다 낮은 가치를 지닌 노동력-이주노동자-을 구매하고자 하는 노력으로). 생산과정에서 능률을 유지하기 위해서도 노력한다. "자본가는, 노동자가 잠시라도 노동하지 않고 시간만 낭비하는 일이 없도록 세심하게 감시한다. 그는 노동력을 일정한 기간 구매했으므로, 자기의 것을 잃어버리지 않으려고 주의한다. 그는 도둑맞는 것을 원하지 않는다"(260쪽). 낭비된 원료와 생산수단도 생산물의 가치에 들어가지 않기에 자본가는 원료와 노동수단의 절약을 위해 노력한다.

마르크스는 1장에서 "상품의 분석을 통해 사용가치를 생산하는 노동과 가치를 창조하는 노동 사이의 차이를 발견"했다(261쪽). 이 차이는 생산과정의 두 측면으로 나타난다.

"노동과정과 가치형성과정의 통일이란 면에서 보면, 생산과정은 상품의 생산과정이다. 다른 한편으로 노동과정과 가치증식과정의 통일이란 면에서 보면, 생산과정은 자본주의적 생산과정이며 상품생산의 자본주의적 형태다."(261쪽)

Posted by 때때로

가치변화는 어디에서 일어나는 것일까? 우선 화폐 그 자체로는 가치변화가 일어날 수 없다. 구매수단과 지불수단으로서 화폐는 상품의 가격을 실현할 뿐이다. 화폐를 유통에서 빼내어 쌓아놓는 것(퇴장)이 가치변화를 일으키지 않는다는 것도 자명하다.

자본으로서 화폐의 유통을 다시 살펴보자. 구매한 상품을 다시 판매하는 과정(C-M)에서도 가치변화는 일어나지 않는다. 이는 상품을 현물형태로부터 화폐형태로 재전환시키는 것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가치변화는 구매(M-C)한 상품에 의해서만 일어날 수 있다. 이 상품의 가치에서 변화가 일어나는 것은 아니다. 구매 또한 오직 그 가치대로 지불되는 등가물끼리의 교한이기 때문이다.

"그리하여 이 가치변화는 오직 그 상품의 현실적인 사용가치(使用價値)로부터, 다시 말해 그 상품의 소비(消費)로부터 발생할 수 있다. 그런데 한 상품의 소비로부터 그 가치를 끌어내기 위해서는, 우리의 화폐소유자는 유통분야의 내부, 즉 시장에서 그것의 사용가치가 가치의 원천으로 되는 독특한 속성을 가진 상품[즉, 그것의 현실적 소비 그 자체가 노동의 대상화, 따라서 가치의 창조로 되는 그러한 상품]을 발견해야만 한다. 사실상 화폐소유자는 시장에서 이와 같은 특수한 상품을 발견하는데, 그것은 노동능력, 즉 노동력(勞動力: labour-power)이다."(218~219쪽)

화폐소유자가 노동력을 시장에서 상품으로 구매할 수 있기 위해서는 몇 가지 조건이 필요하다. 노동력의 소유자는 그것을 시장에 내놓기 위해서 자신의 노동력을 자유롭게 처분할 수 있어야 한다. 노예와 농노는 노예주와 봉건영주의 의지로부터 자유롭게 자신의 노동력을 시장에 내놓을 수 없다. 또한 노동력 소유자는 자신의 노동력을 오직 한정된 시간 동안만 판매해야 한다. 자신의 전 생애를 모두 판매하게 된다면 그는 더 이상 자유롭지 못한 노예 혹은 농노와 같은 상태에 처하게 될 것이다. 현대사회에서 노예적 강제 노동을 오직 일탈로서만 받아들이는 것은 이 때문이다(개별 자본가의 이해와 달리 보통 발전된 자본주의 국가의 정부는 노예적 강제 노동을 강력히 단속하려 한다).

노동력이 상품이 되기 위해서 필수적인 두 번째 조건은 노동력의 소유자가 그 자신을 시장에 상품으로 내놓는 방법 이외에 자신의 생활수단과 상품을 생산할 수단(생산수단)을 지니고 있지 않아야 한다는 것이다. 자신의 생활 유지 혹은 시장에 내놓을 상품의 생산을 위한 수단을 지닌 노동자는 그 자신의 노동력을 시장에 내놓지 않을 것이다.

"그러므로 화폐가 자본으로 전환되기 위해서는 화폐소유자는 상품시장에서 자유로운(free) 노동자를 발견하지 않으면 안 된다. 여기에서 자유롭다는 것은 이중의 의미를 가진다. 즉, 노동자는 자유인(自由人: free individual)으로서 자기의 노동력을 자신의 상품으로 처분할 수 있다는 의미와, 다른 한편으로는 그는 노동력 이외에는 상품으로 판매할 다른 어떤 것도 전혀 가지고 있지 않으며, 자기의 노동력의 실현에 필요한 일체의 물건(物件)을 가지고 있지 않다(free of)는 의미다."(221쪽)

자유로운 노동자가 시장에서 화폐소유자를 만나게 되는 사연은 뒤의 제8편 '이른바 시초축적'에서 다룰 것이다. 다만 짚고 넘어가야 할 것은 "이러한 관계는 자연사적 관계도 아니며 또한 역사상의 모든 시대에 공통된 사회적 관계도 아니다"는 것이다. "그것은 분명히 과거의 역사적 발전의 결과이며, 수많은 경제적 변혁의 산물이며, 과거의 수많은 사회적 생산구성체의 몰락의 산물이다"(221쪽).

분명히 어느 정도 발전한 사회적 분업을 기초로 한 상품의 생산과 유통은 다양한 경제적 사회구성체에서 발견할 수 있다. 그러나 "자본은 오직 생산수단과 생활수단의 소유자가 시장에서 [자기 노동력의 판매자로서의] 자유로운 노동자(勞動者)를 발견하는 경우에만 발생한다"(222쪽). 따라서 이 조건은 자본주의적 생산양식이 지배적인 새로운 세계사를 형성한다.

우리의 관심을 다시 노동력이라는 상품에 돌려보자. 이 상품도 다른 상품과 마찬가지로 가치를 지니고 그 가치는 "[다른 모든 상품의 가치와 마찬가지로] 이 특수한 상품의 생산과 재생산에 필요한 노동시간에 의해 규정된다"(223쪽). 노동력은 노동자와 분리될 수 없는 것이므로 이 상품의 재생산에 필요한 노동시간이라는 것은 결국 노동자가 생활을 유지하는 데 필요한 생활수단의 가치로 계산된다.

노동자가 정상적인 건강상태를 유지해 다음날 다시 노동과정에 투입될 수 있기 위해 필요한 생활수단의 총량은 육체의 물리적인 한계에 의해서만 규정되진 않는다.

"그의 자연적 욕구는 한 나라의 기후나 기타 자연적 특성에 따라 다르다. 다른 한편, 이른바 필수적인 욕구의 범위나 그 충족 방식은 그 자체가 하나의 역사적 산물이며, 따라서 대체로 한 나라의 문화수준에 따라 결정되는데, 특히 자유로운 노동자 계급이 어떤 조건 하에서 또 어떤 관습과 기대를 가지고 형성되었는가에 따라 결정된다. 그러므로 다른 상품들의 경우와는 달리 노동력의 가치규정에는 역사적 및 도덕적 【정신적】 요소(historical and moral element)가 포함된다. 그러나 일정한 시대의 일정한 나라에는 노동자들의 필요생활수단의 평균적 범위는 주어져 있다."(224쪽)

필요한 생활수단의 총량에는 또한 다음 세대의 노동자를 재생산하기 위한 생활수단들도 포함된다. 즉 출산과 육아를 위한 생활수단이 포함됨으로써 화폐소유자는 시장에서 노동력 판매자를 세대를 넘어 영원히 만날 수 있게 된다. 한편 작업의 숙련을 위한 교육 비용도 노동력 생산을 위해 지출되는 가치에 포함된다.

실제로 자본주의 국가들에서 최저생계비(빈곤선)를 결정하는 데는 육체적 지속을 위한 상품들의 가격과 함께 출산과 육아ㆍ교육, 문명의 발전 정도가 반영된다. 한국의 경우 과거에 포함돼 있지 않던 통신비가 최근에는 필수적 항목으로 포함된다. 나라에 따라서는 적당한 문화생활(영화, 공연, 스포츠)을 위한 비용을 포함하기도 한다.

역사적 도덕적 조건과 함께 상품가치 변동은 노동력의 가치를 변화시킨다. 임금수준을 결정하기 위한 갈등에서 물가가 중요한 요소로 등장하는 것은 그 때문이다. 한편 미국 노동자의 임금 1970년대 중반 이후 오르지 않았음에도 더 풍족한 생활을 누리는 것처럼 보이는 것은 중국산의 싸구려 상품 덕이다. 대형 마트의 저가 상품은 저임금을 유지하기 위해 핵심적 역할을 한다.

노동력 상품은 구매와 동시에 사용가치가 실현되지 않는다. 노동력의 사용가치, 즉 노동은 일정한 시간에 걸쳐서 실현된다. 보통은 노동계약 후 일정한 기간 노동력을 발휘한 다음에 후불로 임금을 지불받는다.

우리는 지금까지 노동력이라는 독특한 상품의 구매와 판매에 대해 살펴봤다. 노동력 사용가치의 실현은 상품의 생산과정이며 잉여가치의 생산과정이다. 노동력의 소비는 다른 모든 상품들과 마찬가지로 유통의 밖에서 이뤄진다. 이제 우리는 마르크스를 따라 바로 그 현장에 들어가야 한다.

"그러므로 우리는 화폐소유자 및 노동력소유자와 함께 [모든 것이 표면에서 일어나고 또 누구의 눈에나 쉽게 띄는] 이 소란스러운 유통분야를 벗어나 이 두 사람을 따라 '관계자외 출입금지'라고 입구에 쓰인 은밀한 생산의 장소로 들어가 보도록 하자. 이곳에서 우리는 자본이 어떻게 생산하고 있는가 뿐 아니라 어떻게 자본 그 자체가 생산되고 있는가도 알게 될 것이다. 이윤창조의 비밀도 드디어 폭로되고 말 것이다."(230쪽)

우리가 이 비밀을 파헤치기 전, 있는 그대로 보이는 상품교환과 유통분야의 모습은 천부인권이 지켜지는 참다운 낙원처럼 비춰진다. 노동력의 구매자도 판매자도 자신의 의지에 의해 자유롭게 행동한다. 그들은 동등한 상품소유자로서 평등하게 등가물끼리 교환한다. 이 상품소유자들은 자신이 소유한 것에 대해서만 처분권을 지닌다. 따라서 각자 자신의 이익에만 관심을 지닌 이 모든 행동은 벤담의 공리주의가 설파하듯이 신의 섭리처럼 서로간의 이익, 사회 전체의 이익이 되는 일이 된다. 오직 상품의 유통과 교환의 영역에만 관심을 지닌 주류 경제학이 세상의 모든 것이 예정된 조화를 이뤄낼 것이라는 장밋빛 전망으로 가득한 (따라서 위기와 파괴에 관심이 없거나 그것을 정상에서의 일탈로만 치부하는) 이유가 바로 이것이다.

다음 장부터 우리는 마르크스를 따라 생산영역에 따라 들어감으로써 가치와 잉여가치 생산의 비밀을 살펴볼 것이다. 우리가 가는 길에는 화폐소유자와 노동자가 앞서 가고 있다.

"이전의 화폐소유자는 자본가로서 앞장서 걸어가고, 노동력의 소유자는 그의 노동자로서 그 뒤를 따라간다. 전자는 거만하게 미소를 띠고 사업에 착수할 열의에 차 바삐 걸어가고, 후자는 자기 자신의 가죽을 시장에서 팔아버렸으므로 이제는 무두질만을 기다리는 사람처럼 겁에 질려 주춤주춤 걸어가고 있다."(23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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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장에서는 단순상품유통이 자본으로서의 화폐 유통으로 전환한 모습을 살핌으로서 자본의 일반공식을 이끌어냈다. 그러나 화폐로 상품을 구매해 다시 판매함으로써 화폐를 얻은 자본가가 아닌 다른 상품 판매자 내지 상품 구매자 입장에서는 판매와 구매 순서의 뒤바뀜은 나타나지 않는다. 언제나 판매는 판매, 구매는 구매일 뿐이다. 즉 "우리가 순서를 거꾸로 한다고 해서 그것 때문에 단순상품유통의 범위에서 벗어나는 것은 결코 아니다"(203쪽). 중요한 것은 등가교환에 의한 단순상품유통이 '화폐-상품-화폐' 유통에서의 더 큰 가치(잉여가치)를 허용하느냐는 것이다.

우선 단순상품유통을 사용가치의 측면에서 고찰해보자. 밀과 포도주를 교환한 당사자는 자기에게 쓸모없는 사용가치를 내놓고 필요한 사용가치를 얻는다는 측면에서 양자 모두 이익이다. 질적으로 나타나는 이익은 양적인 이익으로 나타날 수도 있다. 밀 생산자가 밀과 포도주를 모두 생산하는 것보다 오직 밀만 생산하고 남는 밀을 포도주와 교환함으로써 동일한 교환가치로 더 많은 더 많은 포도주를 획득할 수도 있다.

그러나 교환가치의 측면에서는 사태가 다르게 나타난다. 밀 생산자가 오직 밀만 생산함으로써 더 많은 밀을 만들어낸다고 해도 그가 생산한 상품의 교환가치(상품의 교환비율)는 변화하지 않는다. "상품의 가치는 상품이 유통에 들어가기 전에 그 가격으로 표현되어 있으며, 따라서 상품의 가치는 유통의 전제이지 그 결과가 아니"(204~205쪽)기 때문이다.

"동일한 가치[즉, 동일한 양의 대상화된 사회적 노동]가 동일한 상품소유자의 수중에서 처음에는 상품의 모습으로, 다음에는 [이 상품이 전환된] 화폐의 모습으로, 마지막에는 [이 화폐가 재전환된] 상품의 모습으로 존재한다. 이러한 형태변화는 가치량의 어떤 변화도 포함하지 않는다. …… 그리하여 상품의 유통이 상품가치의 형태변환만을 일으키는 한, 그것은 [만약 현상이 순수한 형태로 진행된다면] 등가물(等價物: equivalent)끼리의 교환임에 틀림없다."(205쪽)

이로부터 우리는 "상품교환은 그 순수한 형태에서는 등가물끼리의 교환이고, 따라서 가치증식의 수단으로 될 수 없다"(206쪽)는 것을 알게 된다. 구매자의 효용(사용가치의 획득과 소비) 증대를 이유로 유통이 더 많은 가치를 낳는다고 생각하는 것은 사용가치와 교환가치를 혼동하는 것에서 비롯한다. 효용은 구매자(소비자)에게만 유효한 것이며 그것은 유통을 마친 이후에 시작되는 것이다. 우리가 고려해야 할 것은 구매자가 상품에 대해 한 번은 사용가치로, 다른 한 번은 가치로서 지불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그렇기에 우리는 유통과정이 그 순수한 과정에서 오직 등가물끼리의 교환으로 나타나는 것으로 고려해야 한다.

그러함에도 등가로 교환되지 않는 경우를 고려해보자. 우선 판매자가 자신의 상품을 그 가치보다 더 큰 가격으로 판매할 수 있다고 생각해보자. 이러한 경우 판매자는 판매를 통해 상품의 가치보다 더 큰 가치(잉여가치)를 얻을 수 있다. 그러나 이 경우 판매자들의 특권은 상품들의 가치관계를 변화시키지 못한다. 이는 화폐단위 1000전을 100원으로 변환함으로써 가격이 변화하지만 상품들 사이의 관계는 변하지 않은 것과 마찬가지다. 구매자가 상품을 그 가치 이하로 구매할 수 있는 특권을 지녔다고 해도 마찬가지다.

"상품가격의 이와 같은 일반적인 명목적 인상(名目的 引上)은 상품가치가 에컨대 금 대신 은으로 평가되는 경우와 마찬가지다. 상품들의 화폐명칭, 즉 가격(價格)은 인상되겠지만 상품들의 가치관계(價値關係)는 여전히 변하지 않을 것이다."(209쪽)

여기서 더 생각해야 할 것은 판매자와 구매자는 일반적인 상품생산사회에서 모두 생산자라는 것이다. 판매자가 생산자라는 것은 보통 당연해 보인다. 구매자 또한 화폐로 실현된 상품의 생산자라는 것을 고려해야 한다.

"판매자가 그 상품을 자신이 직접 생산했거나 그 상품의 생산자를 대표하고 있듯이, 구매자 역시 [그의 화폐로 실현된] 상품을 자신이 직접 생산했거나 그 상품의 생산자를 대표하고 있다. 따라서 여기에서 서로 대립하는 것은 생산자와 생산자인데, 그들을 구별하는 것은, 한 쪽은 구매하고 다른 쪽은 판매한다는 것이다. 상품소유자는, 생산자[판매자]라는 이름에서 상품을 그 가치보다 비싼 값으로 판매하고, 소비자[구매자]라는 이름에서는 상품에 그 가치보다 높은 가격을 지불한다고 말해 보았자 우리는 한 걸음도 더 앞으로 나아가지 못한다."(210쪽)

즉 순수히 소비만 하는 구매자가 존재하는 상황을 고려하지 않는 이상 가격을 그 가치 이상으로 받는다고 해서 잉여가치를 획득할 수는 없다. 왜냐면 결국 생산자로서 판매자는 자신이 구매자의 위치에 섰을 때 그 가치보다 더 높은 가격을 상품에 지불해야 하기 때문이다.

이는 우리가 상품의 판매자와 구매자를 경제적 운동의 인격화된 범주로만 다뤄서인지도 모른다. 그렇다면 현실에서 살아 움직이는 생생한 개인, 즉 교활한 판매자를 고려하면 어떻게 될까? 교활한 연필 판매자가 100원짜리 연필을 200원에 판매했다고 가정해보자. 연필 판매자는 100원의 잉여가치를 얻었지만 연필 구매자는 100원 손해를 봤다. 결국 한 쪽에서의 이익은 다른 한 쪽에서의 손해다(제로섬 게임). 사회 전체로서는 그 어떤 잉여가치도 확인할 수 없다. 이것은 강탈의 경우와 마찬가지다. 도둑질은 사회적으로 그 어떤 잉여가치도 만들지 않는다. 오직 도둑에게만 이득을 줄 뿐이다(이는 다른 편에서의 손실을 뜻한다).

"[결국] 등가물끼리 서로 교환된다면 아무런 잉여가치도 발생하지 않으며, 또 비등가물끼리 서로 교환된다고 하더라도 잉여가치는 전혀 발생하지 않는다. 유통(流通), 즉 상품교환은 아무런 가치도 창조하지 않는다."(213쪽)

우리가 자본의 고전적 형태인 상인자본과 고리대자본을 자본형태의 분석에서 고려치 않는 이유는 이 때문이다. 마르크스에게 자본의 이 두 형태는 파생적인 형태로 다뤄진다(이에 대한 분석은 3권에서 계속된다).

지금까지 살펴본 바로 우리는 잉여가치가 유통에서 발생할 수 없다는 것을 확인했다. 그러나 유통의 밖에서 상품소유자에게 상품은 자신의 일정 노동량을 포함하고 있을 뿐이다. 거기에 어떤 더 큰 가치는 없다. "상품소유자는 자기의 노동으로 가치를 창조할 수 있지만 자기증식하는 가치를 창조할 수는 없다"(215쪽). 상품소유자는 가치를 증식시키기 위해 다른 상품소유자와 접촉해야만 한다.

즉, 등가물의 교환으로부터 출발한 더 큰 가치를 만들어내는 가치의 자기증식 운동은 유통영역에서 일어나야 하면서도 유통영역에서 일어날 수 없다. 우리가 4장에서 발견한 자본의 일반공식이 잉여가치를 획득하기 위해서는 다른 무엇인가가 필요하다.

"화폐의 자본으로의 전환은 마땅히 상품교환을 규정하는 법칙의 토대 위에서 전개되어야 할 것이며, 따라서 등가물끼리의 교환이 당연히 출발점으로 되어야 할 것이다. [아직까지는 애벌레 형태의 자본가에 불과한] 화폐소유자는 상품을 그 가치대로 구매해 그 가치대로 판매해야 하는데, 그러면서도 과정의 끝에 가서는 자기가 처음 유통에 투입한 것보다 더 많은 가치를 유통으로부터 끌어내지 않으면 안 된다. 그의 나비로의 성장[즉, 완전한 자본가로의 발전]은 반드시 유통영역에서 일어나야 하며, 또 그러면서도 유통영역에서 일어나서는 안 된다. 이것이 바로 문제의 조건이다. 여기가 로두스 섬이다. 자, 여기서 뛰어보라!"(216~217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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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3장까지 상품과 그 교환과정을 살펴봤다. 상품유통의 결과 화폐를 발견했다. 이 화폐는 자본의 최초의 형태다.

"상품유통은 자본(資本)의 출발점이다. …… 우리는 이 [상품유통] 과정의 최후의 산물로 화폐를 발견하게 된다. 상품유통의 이 최후의 산물은 자본의 최초의 현상형태(現象形態: form of appearance)이다."(189쪽)

우리가 살펴본 상품유통은 '상품-화폐-상품'의 과정이다. 앞으로 살펴볼 자본으로서 화폐의 유통 형태는 '화폐-상품-화폐'의 형태를 지닌다.

상품유통(단순상품유통): 상품→화폐→상품 (C-M-C)
자본으로서의 화폐 유통: 화폐→상품→화폐 (M-C-M)


상품유통과 자본으로서의 화폐 유통의 첫째 차이는 판매와 구매의 앞뒤가 바뀐다는 것이다. 자본의 유통은 구매가 판매를 앞선다. 둘째로 상품유통에서 화폐는 상품으로 전환돼 사용가치로 소비되어 사라진다. '화폐-상품-화폐'의 유통에서 화폐로 상품을 구매하는 것은 다시 화폐를 얻기 위해서다. 따라서 "화폐는 소비된 것이 아니라 투하(投下)된 것"(192쪽)이다. 셋째 단순상품유통(상품-화폐-상품)은 화폐가 교환을 매개하며 위치를 두 번 바꾸지만 자본으로서의 화폐 유통에서는 상품이 과정을 매개하며 두 번 위치를 바꾼다. 여기서 상품이 두 번 위치를 바꾼 결과는 화폐를 최초의 소유자 손으로 돌려보내는 것이다. 중요한 것은 화폐가 다시 돌아온다는 것이다. 돌아온 화폐의 양이 더 크거나 작은 것은 문제가 되지 않는다. 실제로는 문제가 되지만 이 '환류 현상' 자체가 더 큰 화폐를 보장하는 것은 아니다. 상품유통은 한 번의 과정으로 끝나지만 자본으로서 화폐 유통은 새로운 시작으로 이어진다. 이는 "화폐가 지출되는 방식 그 자체에 의해 주어지고 있다"(193쪽).

"순환 C-M-C는 어떤 한 상품의 극에서 출발해 다른 한 상품의 극에서 끝나는데, 이 상품은 유통에서 빠져나와 소비되어 버린다. 그러므로 소비[욕망의 충족], 한 마디로 말해 사용가치(使用價値)가 이 순환의 최종목적이다. 이와는 반대로 순환 M-C-M은 화폐의 극에서 출발하여 최후에는 동일한 화폐의 극으로 돌아간다. 따라서 이 순환을 야기시키는 동기 및 그것을 규정하는 목적은 교환가치(交換價値) 그 자체이다."(193쪽)

이로부터 자본으로서 화폐 유통의 목적이 파악된다. 상품유통은 질적으로 다른 사용가치를 교환함으로서 사회적 물질대사를 이룬다. 그러나 '화폐-상품-화폐'의 과정은 그 양극에서 질적으로 동일한 모습을 지닌다. 오직 양적인 차이만이 의미가 있을 뿐이다. 즉 "최초에 유통에 투입한 것보다 더 많은 화폐가 유통으로부터 끌려나와야 한다"(195쪽). 자본가가 100억 원을 투자할 때 오직 100억 원 만을 벌 것을 기대하지 않는다는 것은 우리에게 당연해 보인다. 우리가 이러한 사정을 고려해 이 과정을 다시 적는다면 이와 같다.

화폐 -> 상품 -> 다른 양의 화폐(M-C-M')

"이 증가분, 즉 최초의 가치를 넘는 초과분을 나는 잉여가치(剩餘價値: surplus-value)라고 부른다. 그러므로 최초에 투하한 가치는 유통중에서 자신을 보존할 뿐 아니라 자신의 가치량을 증대시키고 잉여가치를 첨가한다. 바꾸어 말해, 자기의 가치를 증식(增殖)시킨다. 그리고 바로 이 운동이 이 가치를 자본으로 전환시키는 것이다."(195쪽)

우리는 이곳에서 최초로 자본의 정의를 발견한다. 가치의 자기 증식 운동이 바로 자본이다. 더 큰 가치를 획득한 운동이 그로부터 멈춘다면 그 가치는 더 이상 자본이 아니다. 운동을 멈춘 화폐는 더 큰 가치(잉여가치)를 만들어내지 못한다. 지하 금고에 5만 원 권 100억 원어치를 넣어두면 10년 후에도 오직 100억 원어치의 5만 원 권만 발견할 수 있을 뿐이다.

더 큰 가치가 문제가 되는 한 이 운동은 멈출 수 없다. 한 번의 순환을 마친 가치는 여전히 한정된 크기만을 지닐 뿐이다. 100억 원보다 1000억 원이 크고, 1000억 원보다 1조 원이 크다. 한정된 양적 표현만이 가능한 자본의 자기 증식 운동은 그로부터 끊임없이 반복해야 하는 숙명을 부여받는 것이다. 게다가 하나의 순환은 그 출발점과 최종 지점에서 동일한 모습으로 나타난다(오직 화폐). 따라서 새로운 시작을 위한 적합한 형태로 하나의 순환을 마친다.

"그러므로 자본의 운동에는 한계가 없다."(196쪽)

이러한 가치의 자기 증식 운동을 자신의 의지로 받아 행동하는 화폐소유자는 자본가가 된다. 100억 원이 있어도 그것을 오직 자신의 생활ㆍ향락을 위해 사용하는 이, 또는 단 한 번의 거래를 통한 이윤을 목적으로 하는 이는 자본가가 아니다.

가치의 자기 증식 운동은 자동적인 것으로 비춰진다. 이 운동에서 "가치는 그 자체가 가치이기 때문에 가치를 낳는다는 신비스러운 성질을 얻었다"(199쪽). 우리는 은행에 맡겨놓은 돈에 이자(더 많은 돈)가 붙는 것을 당연하게 여긴다. 이 과정에서 자본은 한 번은 상품과 화폐의 형태를 번갈아가며 취한다. 그 출발점과 종착점에서는 화폐형태를 취하지만 상품형태를 취하지 않고서는 화폐가 자본이 될 수는 없다.

"이리하여 가치는 이제 과정 중의 가치(value in process), 과정 중의 화폐로 되며, 이러한 것으로서 가치는 자본이 된다. 가치는 유통에서 나와 다시 유통에 들어가며, 유통 속에서 자신을 유지하고 증식시키며, 더 커져서 유통으로부터 나오고, 그리고 이 동일한 순환을 끊임없이 되풀이한다."(200쪽)

'화폐-상품-화폐'의 운동이 상인자본에게만 해당하는 것은 아니다. 산업자본도 마찬가지로 화폐로 구매한 상품을 다시 판매해 더 많은 화폐로 재전환되는 화폐이다. 중간단계를 생략한 형태가 이자 낳는 자본(M-M')이다. 그러므로 자본의 일반공식은 M-C-M'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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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절 가치의 척도

가치로서 모든 상품은 추상적 인간노동의 응고물이다. 따라서 상품들의 가치 크기는 같은 단위로 측정될 수 있다. 하나의 특수한 상품이 측정을 위한 기준으로 등장한다. 이 특수한 상품 금은 상품세계 공통의 가치척도, 화폐가 된다. 화폐상품 금은 가치의 일반적 척도로 기능한다. 상품의 가격은 그 상품의 가치를 화폐상품으로 표현한 것이다.

상품 X량=화폐상품 Y량
스마트폰 1개=금 3돈(70만원)


가치등식은 이제 처음의 간단한 모양으로 돌아갔다. 이 등식을 거꾸로 읽으면, 즉 가격표를 거꾸로 읽으면(금 3돈은 스마트폰 1개다) 온갖 상품으로 표현된 화폐의 가치량(구매력)을 알 수 있다. 그러나 화폐는 가격을 갖지 않는다. 화폐상품을 일반적 등가물로 유지하기 위해선 그 자신의 가치를 표현하는 등가물로 자기 자신을 두어야만 하기 때문이다. 이는 동어반복일 뿐이다(금 3돈은 금 3돈이다).

“상품의 가격 또는 화폐형태는 …… 순전히 관념적인 또는 개념적인 형태이다”(122쪽). 무게나 부피와 같이 물리적으로 측정될 수 있는 것이 아닌, 화폐상품과의 관계(동등성)에 의해 표현되기 때문이다. 가격표에 얼마를 써넣을 지는 상품 판매자 마음이다. “그러므로 화폐는 가치척도의 기능에서는 다만 상상적인 또는 관념적인 화폐로서만 역할한다”(123쪽). 그러나 가격은 실제의 화폐재료에 달려있다. 즉 화폐로 사용되는 재료의 생산에 얼마만큼의 추상적 인간노동이 응고되었느냐에 따라 달라진다. 스마트폰 1개의 가격은 금 3돈으로 표시될 수도 있고, 은 50g으로 표시될 수도 있다. 두 개의 상품(금과 은)이 화폐상품으로 사용될 때 두 상품의 가치 비율이 동일할 때는 아무런 문제없이 두 상품 모두 가치척도로 기능할 수 있다. 그러나 두 상품의 생산조건의 변화로 가치 비율이 변할 때 가격의 서로 다른 표현 사이에 교란이 발생한다.

상품의 가격은 금의 양으로 표시된다. 일정한 금의 양이 가치의 도량단위가 된다. 이제 금의 중량을 표시할 때 사용되던 도량표준이 가격의 도량표준에도 적용된다(서구의 화폐 명칭에는 아직도 이러한 금 중량의 도량표준 흔적이 많이 남아있다. 영국의 ‘파운드’화가 대표적이다).

“가치의 척도 및 가격의 도량표준은 화폐의 전혀 다른 두 가지 기능이다. 화폐가 가치의 척도인 것은 인간노동의 사회적 화신(化身)이기 때문이고, 가격의 도량표준인 것은 고정된 금속무게를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가치척도로서 화폐는 다종다양한 상품의 가치를 가격[즉, 상상적인 금량]으로 전환시키는 데 봉사하며, 가격의 도량표준으로서 화폐는 이러한 금량을 측정한다.”(125쪽)

화폐의 가치척도로서의 기능과 도량표준으로서의 기능을 구분할 수 있어야 한다. “금이 가치척도로서 봉사할 수 있는 것은 오직 금 자체가 노동생산물”(125쪽)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금의 가치는 가변적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금가치의 가변성은 도량표준으로서 화폐상품의 기능에 영향을 주지는 않는다. 금의 가치 변화는 모든 상품에 동시에 영향을 미치기 때문이다. 예를 들면 금의 가치가 절반으로 떨어질 때 노트북컴퓨터의 가격 금 6돈, 스마트폰의 가격 금 3돈은 동시에 노트북컴퓨터 금 12돈, 스마트폰 6돈으로 변화한다. 하지만 노트북컴퓨터와 스마트폰 가치의 상호관계는 여전히 2대 1로 동일하다. 화폐가치의 변화가 언제나 상품 가격의 비례적 변화를 불러오는 것도 아니다. 화폐가치와 상품가치가 동일한 비율로 오르면 상품 가격은 그대로일 수 있다.

이제 가격형태를 살펴보자. 금속의 무게로부터 유래한 화폐 명칭은 이러저러한 사정으로 원래의 무게 명칭으로부터 분리된다.

“역사적 과정으로 말미암아 화폐 명칭이 그 무게 명칭으로부터 분리되는 것은 국민적 관습에 속하는 것으로 되었다. 화폐의 도량표준은 한편으로는 순수히 관습적인 것이며, 다른 한편으로는 일반적인 효력을 가져야 하는 것이므로, 결국은 법률에 의해 규제된다.”(127~128쪽)

따라서 다양한 “화폐 명칭에는 가치관계의 흔적이 조금도 남아 있지 않”(129쪽)게 됐다. 그러나 가치가 “물적일 뿐 아니라 순수히 사회적인” 화폐형태로 발전하게 된 것은 필연적이다. 이로써 가치량의 지표로서의 가격과 상품과 화폐의 교환비율로서의 가격에 모순에 처하게 된다.

“상품가치량의 지표로서의 가격은 그 상품과 화폐의 교환비율의 지표이기는 하지만, 그 상품과 화폐의 교환비율의 지표[즉, 가격]는 반드시 그 상품의 가치량의 지표로 되지는 않는다.”(130쪽)

우선 상품에 대한 수요와 공급의 변동은 상품의 가격(화폐와의 교환비율)과 가치량의 양적 불일치를 불러올 수 있다. 또 하나의 모순은 질적인 것이다. “그 자체로서는 상품이 아닌 것[예컨대 양심이나 명예 등]이 그 소유자에 의해 판매용으로 제공”돼 가격을 가질 수 있다.

지금까지 가치의 척도로서의 화폐를 살펴봤다. 그러나 가격표만 붙인다고 상품 판매자가 실제 화폐를 획득하는 것은 아니다. 상품은 무엇보다 화폐와 실제로 교환되어야만 한다.

“상품이 실제로 교환가치로 작용하기 위해서는 그 현물형태를 벗어버리고 단순한 상상적인 금으로부터 현실적인 금으로 전환되지 않으면 안 된다. …… 상품에 가격을 부여하기 위해서는 상상적인 금을 상품에 등치하면 되지만, 상품이 그 소유자에게 일반적 등가(물)의 역할을 하기 위해서는 실제로 금으로 대체되어야만 한다.”(131쪽)

따라서 우리는 2절 ‘유통수단’에서 상품이 어떻게 화폐로 변신하는 지 살펴보게 될 것이다.


제2절 유통수단

(a) 상품의 변태(變態: metamorphosis)
상품 판매가 성공해 그것을 필요로 한 사람(구매자)의 품에 들어가면 그것은 교환의 영역에서 떠나 소비의 영역으로 옮겨간다. 우리가 관심을 가져야 할 것은 바로 교환의 영역에서 이뤄지는 상품의 형태변환(변태)다. 금이라는 상품의 소재에서 비롯한 신비적 기능이 상품과 교환(혹은 상품의 변태)되는 것이 아니다. 무엇보다 금은 화폐형태로서 가격을 통해 상품과 관계를 맺는다.

상품이 교환과정에 들어가면 그 내적 대립(사용가치와 가치의 대립)은 외적 대립, 즉 사용가치로서의 상품과 교환가치로서의 화폐의 대립으로 나타난다.

“등식의 한 편에는 보통의 상품이 있는데, 그것은 현실적으로는 사용가치(使用價値)이다. 그것의 가치로서의 존재는 가격에서 다만 관념적으로 나타날 뿐이며, 이 가격을 통해 상품은 [상품가치의 진정한 화신인] 금과 관련을 맺고 있다. 그와는 반대로, 〔등식의 다른 한편에 있는〕 금이라는 물건은 오직 가치의 화신, 화폐로서만 나타난다. 따라서 금은 현실적으로 교환가치(交換價値)이다.”(134쪽)

이 등식을 도표로 표현하면 아래와 같다.



다시 관심을 상품 판매자자에게 돌려보자. (아직 이 상품 판매자 A는 화폐 자체를 모으기 위한 욕망-화폐 퇴장의 욕망은 없다.) 상품 판매자 A가 자신의 상품 스마트폰 1개를 무사히 금 3돈과 교환에 성공한다. 그 후 그 상품 판매자 A는 이제 구매자가 되어 자신의 수중에 있는 금 3돈을 지불하고 다른 상품 판매자 B의 태블릿PC를 구입한다. 즉 상품교환은 판매와 구매 두 과정으로 나뉘어진다. 첫 단계에서 상품은 화폐로 전환되며, 두 번째 단계에서 화폐는 다시 상품으로 전환한다.

상품(C) - 화폐(M) - 상품(C)

상품의 화폐로의 성공적인 변신(판매)이 언제나 쉬운 것은 아니다. 판매되기 위해 상품은 “우선 화폐소유자에게 사용가치로 되어야만 한다. 따라서 그 상품에 지출된 노동은 사회적으로 유용한 형태여야 한다. 다시 말해, 그 노동은 사회적 분업(分業)의 일환이어야 한다”(136쪽). 그러나 이 분업은 상품 생산자의 의도와 무관하게 조직된 것이다. 그리고 끊임없이 변화한다. 어제까지 상품 생산의 조직 작업 중 하나였던 것이 오늘은 독립된 상품으로 등장할 수도 있다(각종 부품산업의 발전, 아웃소싱과 같은 것들). 게다가 사회의 평균적인 생산조건은 생산자 개인의 사정과 무관하게 변할 수 있다. 즉 그의 노동지출이 사회적으로 필요한 노동보다 더 많거나 더 적을 수도 있다.

“분업은 노동생산물을 상품으로 전환시키며, 또 그렇게 함으로써 노동생산물의 화폐로의 전환을 불가피하게 한다. 동시에, 분업은 이 전환의 성공 여부를 우연적인 것으로 만든다.”(138쪽)

즉 판매는 “상품의 결사적인 도약”(136쪽)이고 그 과정은 진정한 사랑의 길처럼 결코 평탄하지 않다(138쪽). 그러나 우리는 이 상품의 결사적인 도약이 성공한 상황을 전제로 교환과정을 마저 살펴볼 것이다.

상품의 화폐로의 변화는 상품 소유자의 입장에서는 판매이다. 이 과정은 화폐 소유자 입장에서는 구매의 과정이기도 한다. 금의 생산지에서는 생산물이 처음부터 화폐형태로 이 과정에 들어선다. 다른 곳에서 화폐는 다른 생산물의 성공적인 판매의 결과물로서 소유자에게 주어지면서 이 과정에 들어선다. 앞의 스마트폰 생산자는 자신의 스마트폰을 금 3돈으로 교환한 후, 다시 그 금 3돈으로 태블릿PC를 구입한다. 여기서 금 3돈의 소유자, 즉 스마트폰 구매자를 돌아보자. 그가 금 생산자가 아니라면 그는 다른 무엇인가를 판매해 화폐를 미리 가지고 있어야 한다. 그가 바람막이 재킷을 판매해 금을 얻었다고 하자. 그럼 우리는, 애초의 스마트폰의 판매는 다른 운동, 즉 바람막이 재킷운동의 마지막 운동인 것이다.



마찬가지로 생산자 A(철수)에게 그의 상품 스마트폰 1개의 생애는 그 자신이 태블릿PC를 구입하는 것으로 끝나지만, 태블릿PC 생산자 B(정민)는 이 과정에서 얻은 금 3돈으로 또 다른 상품(디지털카메라)을 구매하게 될 것이다. 상품생산자의 생산 품목은 제한돼 있지만 그의 욕망은 보통 그보다 더 많은 분야에 걸쳐있다. “따라서 하나의 판매는 여러 가지 상품의 수많은 구매로 나누어진다. 그리하여 한 상품의 최종변태는 다른 상품들의 제1변태의 합계로 이루어지고 있다”(142쪽). “이와 같이 각 상품의 변태계열이 그리는 순환은 다른 상품들의 여러 순환과 뗄 수 없을 정도로 뒤엉켜 있다. 이러한 과정 전체가 상품유통(circulation of commodities)을 구성한다”(143~144쪽). 위의 교환과정을 역주(김수행)에 따라 표현하면 아래와 같다.



상품유통은 직접적인 물물교환과 형태 뿐 아니라 본질적으로 구별된다. 스마트폰 판매자 A(철수)에게 구매자 C(영희)가 어디서 어떻게 화폐를 얻게 됐는지는 중요치 않다. 마찬가지로 태블릿PC 판매자 B(정민)는 A(철수)가 지불한 화폐가 어떤 상품이 변태한 것인지 알지 못하고 관심도 없다.

“상품유통에서 우리들은, 한편으로는 상품교환이 어떻게 직접적인 생산물교환의 개인적 및 지방적 한계를 타파하고 인간노동의 물질대사를 발전시키는가를 보게 되고, 다른 한편으로는 상품교환이 어떻게 당사자들의 통제 밖에 있는 자연발생적인 사회적 연결망을 발전시키는가를 보게 된다.”(144쪽)

따라서 유통과정은 멈추지 않는다. 상품이 판매에 성공해 유통에서 탈락하면 화폐가 그 자리를 차지한다. “한 상품이 다른 상품을 대체하면 화폐상품은 제3자의 손에 붙게 된다. 유통은 끊임없이 화폐라는 땀을 쏟아낸다”(144~145쪽).

판매가 곧 구매라는 사실 때문에 이 둘이 언제나 균형을 이룰 것이라는 주장을 마르크스 시대는 물론 지금도 흔히 들을 수 있다. 앞에서 언급한 상품의 화폐로의 결사적 도약의 어려움을 다시 한 번 상기하는 게 필요하다. 또한 상품 판매자가 판매를 성공했다고 할지라도, 그가 곧바로 다른 구매를 할 것이라는 것은 오직 가정일 뿐이다. 화폐를 갖게 된 판매자가 다시 구매에 나서지 않는다면 다른 사람은 판매에 성공할 수 없다.

“유통은 물물교환에 존재하는 [자기 생산물의 양도와 타인 생산물의 취득 사이의] 직접적 동일성을 판매와 구매라는 대립적 행위로 분열시킴으로써 물물교환의 시간적·장소적·개인적 한계를 타파한다. 서로 독립적이고 대립적인 과정들[판매와 구매]이 하나의 내적 통일을 이루고 있다는 사실은, 또한 바로 그 과정들의 내적 통일이 외적 대립을 통해 운동하고 있다는 사실을 의미한다. 이 두 과정은 서로 보완하는 것이기 때문에 내적으로 독립되어 있지 않다. 따라서 이 두 과정의 외적 독립화가 일정한 점에 도달하면 그 내적 통일은 공황(crisis)이라는 형태를 통해 폭력적으로 관철된다.”(145~146쪽)

우리는 공황의 시기 한쪽의 넘칠 만큼 가득한 화폐와 다른 한쪽의 팔리지 않는 상품 더미를 동시에 발견할 수 있다. 그러나 유통에서의 모순은 아직 공황의 가능성을 암시하고 있을 뿐이다.

(b) 화폐의 유통
상품유통의 결과 화폐는 그 출발점으로부터 끊임없이 멀어진다. 화폐는 상품 소유자의 품에서 다른 상품 소유자의 품으로 옮겨간다. 상품은 유통의 첫 단계에서 화폐와 그 위치를 바꾼다. 이제 상품유통의 후반은 화폐의 모습으로 통과한다. 상품 입장에서는 판매(상품의 화폐로의 전환)와 구매(화폐의 상품으로의 전환)의 반대 과정을 포함하지만 화폐 입장에서는 언제나 같은 과정(화폐와 상품의 자리바꿈)이다.

“상품유통의 결과[즉, 다른 상품에 의한 한 상품의 교체]는 마치 그 상품 자신의 형태변환에 의해 매개된 것이 아니라 유통수단으로서의 화폐의 기능에 의해 매개된 듯이 보이며, 마치 화폐가 [그 자체로서는 운동하지 않는] 상품을 유통시켜, 상품을 [그것이 비사용가치인] 사람의 손으로부터 [그것이 사용가치인] 사람의 손으로, 언제나 화폐 자신의 진행과는 반대의 방향으로 이전시키는 듯이 보인다. …… 그러므로 화폐유통은 사실상 상품유통의 표현에 지나지 않지만, 외관상으로는 반대로 상품유통이 화폐운동의 결과에 지나지 않는 듯이 보인다.”(148쪽)

어떠한 상품이라도 유통에 들어와 제1의 형태변환을 겪은 후 유통으로부터 떨어져나간다. 그러나 화폐는 여전히 유통에 남아있다. 그렇다면 유통영역은 얼마만큼의 화폐를 흡수하는가?

유통과정에 들어온 각 상품은 가격에 의해 그 상상적인 화폐량을 등치하고 있다. 따라서 유통에 필요한 화폐량은 상품들의 가격총액이다. 상품가치가 변하지 않더라도 금의 가치 변화에 따라 가격이 그 반대방향으로 변한다는 것을 이미 앞에서 살펴봤다. 따라서 금의 가치가 변하면 그에 따라 유통에 필요한 화폐량도 증가하거나 감소한다. “이 경우 유통수단의 양의 변동은 분명히 화폐 그 자체에 의해 야기되는 것이기는 하지만, 그것은 유통수단으로서의 화폐의 기능에 기인하는 것이 아니라 가치척도로서의 화폐의 기능에 기인하는 것이다”(150쪽).

화폐상품은 최초의 생산지에서 지속적으로 유통에 유입된다. 덜 발전된 상품교환에서 관습적으로 이뤄졌던 상품의 상대적 가치가 금의 가치에 의해 따라 평가되기 시작한다.

“이와 같은 조정과정은, [귀금속과 직접 교환되는] 상품의 대금으로 귀금속이 유입되기 때문에, 귀금속량의 계속적인 증대를 수반한다. 그러므로 상품들의 가격이 조정되어 가는 데 비례하여, 다시 말해 상품들의 가치가 귀금속의 새로운 가치(이미 떨어졌거나 어느 수준까지는 계속 떨어지고 있다)에 따라 평가되는 데 비례하여, 그것과 같은 속도로 이 새로운 가격의 실현에 필요한 귀금속의 추가량도 이미 존재하게 되는 것이다.”(151쪽)

즉 유통수단으로서 금의 양이 늘어나서 상품 가격이 오르는 것이 아니다.

다시 유통수단의 양 문제로 돌아가자. 각 2원인 네 개의 상품이 동시에 다른 곳에서 판매된다고 보자. 가격총액은 8원이고 유통에 필요한 화폐량도 8원이다. 그런데 이 네 개의 상품이 순차적으로 판매된다고 보자.

밀 1쿼터 – 2원 – 아마포 20m – 2원 – 성경책 1권 – 2원 – 위스키 2갤론 – 2원

2원의 돈이 여러 상품의 가격을 순차적으로 실현시키고 마지막에 위스키 생산자의 손에 들어갔다. 이 때 유통에 필요한 화폐량은 2원이다. 즉 화폐의 회전회수에 따라 주어진 기간동안 유통에 필요한 화폐량은 달라진다. 정리하면 아래와 같다.



즉 일정 기간에 유통수단으로 기능하는 화폐의 총량은 가격, 유통상품의 양, 화폐의 유통속도 이 세 가지 요소에 의존한다.

“화폐유통은 일반적으로 상품들의 유통과정[즉, 대립적인 변태들을 통한 상품들의 순환]을 반영하는 것”이다. 따라서 화폐의 유통속도는 상품의 유통속도-형태변환 속도, 각 변태계열들의 연속, 사회의 물질대사의 속도, 상품의 소멸과 유입 속도 등-를 반영한다. 상품유통의 정체 원인을 화폐량의 부족으로부터 찾는 것은 본말을 전도한 진단이다. 물론 “정부의 졸렬한 ‘통화조절(通貨調節)’로 말미암은 유통수단의 현실적 부족이 정체를 야기할 수 없다는 것은 결코 아니다”(155쪽).

(c) 주화(coin). 가치의 상징
“화폐는 유통수단으로서의 기능에 의해 주화의 형태를 취한다”(159쪽). 가격의 도량표준을 정하는 것과 마찬가지로 주화를 제조하는 것 또한 국가의 일이다. 조폐소로부터 나오자마자 금화의 명칭(법정 무게)과 실체(실질적 무게)가 분리되기 시작한다.

“유통수단으로서의 금의 무게는 가격의 도량표준으로서의 금의 무게로부터 이탈하고, 그리하여 가격을 실현할 상품들의 진정한 등가물로 될 수 없게 된다.”(160쪽)

몇 가지 사정이 화폐유통에서 금속화폐를 다른 재료로 만든 토큰(token: 주화의 기능을 수행하는 상징)으로 대체하게 만든다. 우선 기술적으로 금을 아주 작은 단위의 주화로까지 만들기 어렵다. 또한 유통속도가 빠른 소규모 상품유통 영역(시장과 동네 구멍가게에서는 동전이 많이 사용되지만 백화점에서 동전을 보긴 어렵다. 회사 간 거래, 국가 간 거래와 같은 큰 규모의 거래에서도 마찬가지다.)에서는 금의 마모가 더 빨리 일어나므로 상징적 주화 혹은 저급 금속이 금화를 대체한다. 이는 애초에 저급 금속이 가치척도로 기능하다가 고급 금속이 대체한 역사적 사정도 이러한 가능성을 설명해준다. “금은 끊임없이 소액유통에 들어오지만, 은·동제의 토큰과 교체되어 끊임없이 거기에서 쫓겨난다”(161쪽). 토큰의 금속 무게는 법률로 정한다. 이들 소액유통에서 금속의 마멸이 더 빨리 일어남으로 주화기능은 사실상 그것들의 중량(가치)과는 관계없다. “금의 주화로서의 기능은 금의 금속적 가치로부터 완전히 분리된다”(162쪽). 주화의 상징적인 성격은 지폐에서 뚜렷하게 나타난다. 지폐는 화폐의 유통수단으로서의 기능으로부터 발생한다.

국가에 의해 유통에 투입된 지폐가 동일한 양의 금을 대신하는 한 그것의 운동은 화폐유통의 법칙을 반영한다. 그러나 지폐가 모든 유통수단으로서 모든 금을 대체할 때 가격의 도량표준에 문제가 발생한다. 지폐가 법률에 의해 규정된 금량보다 더 많이 유통된다면 “지폐는 상품유통의 내재적 법칙에 의해 규정되는 금량만을 대표하게 될 것이다”(163쪽).

아무런 가치도 지니지 않은(혹은 그 표기량보다 더 적은 가치만 지닌) 주화와 지폐는 유통의 영역에서 금을 대체할 수 있는 것으로 보인다. 그렇다면 화폐상품 자체를 이러한 상징으로 대체할 수 있을까? 유통수단으로서 화폐를 볼 때 가능해 보인다. “화폐를 끊임없이 한 사람의 손에서 다른 사람의 손으로 이전시키는 과정에서는 화폐의 단순한 상징적인 존재만으로도 충분하다. 이를테면, 화폐의 기능적 존재가 화폐의 물질적 존재를 흡수하는 것이다”(164~165쪽). 그러나 화폐의 상징(주화나 지폐)이 사회적 정당성을 얻기 위해서는 강제적인 통용력이 필요하다. 이는 국가의 강제 아래서 국내 유통 분야 안에서만 유효한 것이다.

“이 유통분야 안에서만 화폐는 오로지 유통수단의 기능에 전념하며, 따라서 지폐의 형태로 순수히 기능적인 존재양식[이 경우 화폐는 금속실체와 외부적으로 분리된다]을 얻을 수 있다.”(165쪽)


제3절 화폐

마르크스는 지금까지의 논의를 정리해 다시 한 번 화폐를 정의한다.

“가치척도로 기능하고, 따라서 또한 자신이 직접 또는 대리물을 통해 유통수단으로 기능하는 상품이 화폐(貨幣)이다.”(165쪽)

가치척도 기능에서 화폐는 관념적이고, 유통수단 기능에서는 다른 것(주화와 지폐)이 대리 가능하다. 그러나 금이 화폐로 기능하기 위해 그 몸체 그대로 나타나야만 하는 경우가 있다.

(a) 퇴장화폐
상품유통의 발전과 함께 상품의 제1변태의 산물, 즉 화폐를 확보하려는 필요성과 열망이 발생한다. 자신에게 비사용가치인 상품을 사용가치인 다른 상품으로 교환(즉 구매를 위한 판매)하고자 하는 것이 아니라 오직 화폐의 취득 자체가 목적인 판매가 나타난다.

“이제 상품이 변화한 형태〔화폐〕는 상품의 절대적으로 양도가능한 모습[또는 오직 순간적인 화폐형태]으로 기능하지 못하게 되고, 이리하여 화폐는 퇴장화폐(退藏貨幣: hoard)로 화석화되며, 상품판매자는 화폐퇴장자로 된다.”(166쪽)

상품유통의 첫 단계에서는 사용가치의 잉여분이 상품으로 판매된다. 따라서 판매에 따른 대금, 금과 은 자체가 여유분으로 표현된다. 이러한 소박한 형태의 화폐퇴장은 금과 은에 대한 전통적인 열망을 설명한다. 상품생산의 발전은 다른 이유에서 화폐퇴장의 열망을 발전시킨다. 상품의 생산과 판매에서 걸리는 시간 때문에 구매를 위한 여유분의 화폐가 먼저 준비되어 있어야 한다.

“상품유통의 확대에 따라 언제라도 이용할 수 있는, 절대적으로 사회적인 형태의 부(absolutely social form of wealth)인 화폐의 권력이 증대한다.”(168쪽)

화폐는 무엇이 변화한 것인지 드러내지 않는다. 화폐에서는 상품의 모든 질적 차이가 사라지기 때문이다. 또한 화폐는 “누구의 사유물(私有物)도 될 수 있는 외적인 물건이다. 그리하여 사회적 힘이 개인의 사적인 힘으로 된다”(169쪽). 화폐의 가치가 변동될 수 있다는 사실이 퇴장의 욕구를 방해하진 않는다. 100돈의 금이 50돈의 금보다 더 큰 가치를 갖는 것은 변하지 않기 때문이다. 또한 그러한 사정이 금을 모든 상품의 일반적 등가물이 되는 것을 방해하지도 않는다.

“화폐는 어떤 상품으로도 직접 전환될 수 있기 때문에 물질적 부(富)의 일반적 대표라는 점에서 질적으로나 형태상으로 아무런 제약도 받지 않는다. 그러나 동시에 현실의 화폐액은 모두 양적으로 제한되어 있고, 따라서 구매수단으로서 한정된 효력만을 가진다. 화폐의 이러한 양적 제한성과 질적 무제한성 사이의 모순은 화폐퇴장자를 축적의 시지프스적 노동으로 끊임없이 몰아넣는다.”(170쪽)

화폐를 보유하기 위해선 화폐의 유통을 막아야 한다. 즉 상품의 변태는 판매에서 멈춰야 한다. 따라서 화폐퇴장자는 금욕을 중요한 덕목으로 삼는다.

화폐퇴장이 금에 대한 오도된 욕망으로부터 비롯한 것만은 아니다. “퇴장화폐는 금속유통의 경제에서 여러 가지 기능을 수행한다”(171쪽). 상품의 유통속도와 가격의 변동으로부터 화폐유통량은 끊임없이 변화한다는 데서 퇴장화폐가 중요한 기능을 수행한다.

“퇴장화폐의 저수지는 화폐가 유통으로 흘러 들어가고 유통으로부터 흘러 나오는 수로로 되며, 이리하여 유통하고 있는 화폐는 결코 그 유통수로에서 범람하지 않는다.”(171쪽)

(b) 지불수단
상품유통의 발전과 함께 상품의 양도와 가격의 실현이 시간적으로 분리된다. 이 경우 화폐는 지불수단이 된다.

“유통수단이 퇴장화폐로 전환된 것은 유통과정이 제1단계 이후에 곧 중단되었기 때문이다. …… 그런데 지불수단이 유통에 들어가는 것은 상품이 이미 유통에서 빠져나온 이후의 일이다. 화폐는 이제 과정을 매개하는 것이 아니라, 교환가치의 절대적 존재형태[즉, 일반적 상품]로서 독립적으로 개입해 유통과정을 종결짓는다.”(174쪽)

즉 판매(상품-화폐)의 과정에 앞서 구매(화폐-상품)가 수행된다. 가격은 화폐청구권(채권)으로 실현된다. 그 상품은 화폐로 실현되기에 앞서 사용가치로 전환된다. 제1변태(판매)는 나중에 완성된다.

수많은 판매가 동시에 일어난다. 따라서 유통화폐량이 유통속도를 못 따라갈 수 있다. 따라서 지불수단의 절약을 위한 방법들이 만들어진다. 일정한 장소에 일정한 날짜로 지불의 결제를 정하게 되는 것이다. 채무의 연쇄에 따라 지불해야 할 실제 화폐는 상소되며 유통되는 지불수단의 양은 더 절약된다. 이렇게 지불이 상쇄되는 한 “지불수단으로서의 화폐는 계산화폐(計算貨幣) 또는 가치척도로서 오직 관념적으로 기능할 뿐이다”(175쪽). 그러나 현실적으로 지불이 이뤄져야 하는 한 화폐는 유통수단이 아닌 “사회적 노동의 개별적 화신, 교환가치의 독립적 존재형태, 일반적 상품으로 등장”(176쪽)한다.

“이 모순은 산업·상업의 공황 중 화폐공황(貨幣恐慌: monetary crisis)으로 알려진 국면에서 폭발한다. 이 화폐공황은, 지불들의 연쇄와 지불결제의 인위적 조직이 충분히 발전한 경우에만 일어난다.”(176쪽)

원인이 무엇이든 교란이 전면적으로 나타났을 때 화폐는 계산화폐라는 관념적인 모습을 벗고 실제로 지불해야 할 ‘경화’로 변한다. 얼마든지 화폐로 변환 가능해보였던 자산들은 더이상 화폐를 대신할 수 없게 된다. “조금 전까지만 해도 부르주아는 호경기에 도취되어 자신만만하게 ‘상품이야말로 화폐’라고 하면서, 화폐를 순전히 관념적 산물이라고 선언했다. 그런데 이제는 모든 시장에서 화폐만이 상품이라고 외치는 소리가 들려온다”(176쪽).

우리는 이러한 화폐공황의 고전적인 예를 2008년 미국에서 발견할 수 있다. 부동산 가격이 계속 상승하고, 언제든 현금으로 전환 가능할 것이라는 믿음이 광범위한 부동산 대출(서브프라임모기지)의 증가로 이어졌다. 원인이 어찌됐든 채무자들이 더이상 채무를 지불하지 못하게 됐을 때 월스트리트의 금융가는 화폐의 부족에 시달렸다. 미국 연방준비은행은 조폐공장에서 돈을 찍어내 헬리콥터로 뿌리듯 금융가에 살포해야 했다.

“공황에서는 상품과 그 가치형태인 화폐 사이의 대립은 절대적 모순으로까지 격화된다. 그러므로 여기에서는 화폐의 현상형태가 어떠하든 상관이 없는데, 지불을 금으로 하든 은행권과 같은 신용화폐로 하든 화폐기근(貨幣饑饉: monetary famine)은 여전히 완화되지 않는다.”(176~177쪽)

신용화폐는 지불수단으로서의 화폐의 기능으로부터 발생한다. 이때는 채무증서 자체가 화폐를 대리해 유통된다. 월스트리트에서 최신의 금융공학을 이용해 자산을 유동화시킨다는 것이 바로 이것이다. 한편 지불수단으로서 화폐를 확보하기 위해서도 준비금이라는 형태로 퇴장화폐가 필요하게 된다.

(c) 세계화폐
국경을 넘어선 화폐는 그 국내적 기능-가격의 도량표준, 주화·지폐 등의 국지적 기능-을 벗어버린다. 세계무역에서 상품은 가치형태를 세계적 차원으로 전개한다. 따라서 “상품의 독립적인 가치형태도 세계화폐로서 상품에 대립한다”(181쪽). 추상적 인간노동이 현물형태로 실현된 상품으로서 화폐는 그 자신을 완전하게 드러낸다. 즉 국내에서는 오직 국경 내의 인간노동에 의해 계산된 가치가, 이제 인류 전체의 노동에 의해 완전히 추상적으로 실현되는 것이다. 따라서 세계시장에서 상품의 가치척도로서 금(혹은 은)만이 화폐가 되는 것은 당연하다.

세계화폐는 보통 국제수지의 결제를 위한 지불수단으로 기능한다. 국내 유통을 위해 준비금이 필요하듯 세계시장에서의 유통을 위해서도 준비금이 필요하다. 국내에서 지불수단으로서의 화폐의 기능으로부터 퇴장화폐가 발생했듯이 세계화폐의 기능으로부터 다시 퇴장화폐의 기능이 발생한다.

“이 후자의 역할을 위해서는 언제나 현실적인 화폐상품, 즉 금과 은의 실물이 요구된다.”(183~184쪽)

1997년 경제위기에서 국제적인 준비금(달러화)의 부족을 심하게 겪은 한국 정부는 이후 외환 보유를 무척 중시하게 된다. 한국뿐 아니라 1980년대 이후 ‘현실적인 화폐상품’, 즉 달러화의 부족을 겪은 여러 나라들은 달러화 확보에 나선다.

“부르주아적 생산이 어느 정도 발전한 나라에서는 [은행의 금고에 집적되는] 퇴장화폐는 자기의 독특한 기능에 필요한 최소한도로 제한된다. 약간의 예외는 있지만, 이 퇴장화폐가 그 평균 수준을 크게 능가하는 것은 상품유통의 정체[즉, 상품변태의 진행의 중단]를 가리킨다.”(184~185쪽)

한국·일본·대만·중국 등의 높은 달러화 보유고가 문제시 되는 것은 이 때문이다. 특히 중국의 높은 달러화 보유고는 ‘글로벌 불균형’의 한 축으로 세계경제에서 해소되어야 할 가장 중요한 문제 중 하나로 꼽힌다. 한편 2008년 세계경제위기 이후 한국에서 대기업들이 기업 내부에 준비금(유보금)을 쌓아놓는 것에 대한 경제 전문가의 불만 섞인 논평을 쉽게 찾아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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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마르크스와 함께 1장에서 상대적 가치형태와 등가형태의 발전을 통해 화폐의 기원을 밝혔다. 우리는 2장에서 화폐가 “종류가 다른 노동생산물이 실제로 서로 동등시되고, 따라서 상품으로 전환되는 교환과정의 필연적인 산물”(112쪽)임을 살펴볼 것이다.

그러나 상품은 스스로의 발로 시장에 나가 교환을 할 수 없다. 상품은 소유자들에 의해 시장에서 판매되고 구입된다. 상품의 소유자는 교환을 위해 서로의 소유를 인정해야만 한다. 철수가 영희의 연필에 대한 소유권을 인정하지 않는다면 교환은 불가능하다. 철수는 영희의 연필을 폭력적이거나 몰래 갈취할 수 있지만, 동등한 교환은 이뤄지지 않는다. 자본주의 사회의 “법적 관계[또는 의지 관계]의 내용은 경제적 관계 그 자체에 의해 주어지고 있다”(108~109쪽).

“사람들은 여기에서 다만 상품의 대표자, 따라서 소유자로서 존재할 뿐이다. 연구가 진행됨에 따라 우리는 일반적으로 경제무대에 등장하는 인물들은 경제적 관계들의 인격화(人格化: personification)에 지나지 않으며, 그들은 이 경제적 관계들의 담지자(擔持者)로 서로 상대한다는 것을 보게 될 것이다.”(109쪽)

상품은 소유자와 달리 다른 상품의 물리적 특징, 유용성을 파악할 수 없다. 상품은 다른 상품을 오로지 자신의 가치를 표현할 소재(등가형태)로서만 대한다. 그러나 상품소유자에게 그 자신의 상품은 사용가치가 아니다. 자신의 생존이나 다양한 욕구의 충족을 위한 사용가치를 구하기 위해 그는 시장에 가서 다른 이의 상품과 자신의 상품을 교환해야 한다.

“그의 상품은 다른 사람에 대해 사용가치(使用價値)를 가지고 있다. 상품소유자에게는 상품은 교환가치(交換價値)의 담지자[따라서 교환수단]라는 점에서만 직접적 사용가치를 가지고 있다.”(109쪽)

즉 상품이 누군가의 욕구를 충족시켜주기 위해서는 먼저 시장에 나가 다른 상품과 교환될 수 있어야 한다. “상품은 사용가치로 실현될 수 있기 전에 먼저 가치로 실현되어야 한다”(110쪽)는 것이다.

그러나 상품이 교환되기 위해서는 몇 가지 어려운 점이 있다. 우선 상품은 자신이 다른 이에게 사용가치임을 보여주어야 한다. 그러나 이는 교환된 후에만 입증할 수 있다. 즉 사용해봤을 때만 그 사용가치를 확신할 수 있다(타인에게 사용가치의 입증을 위한 홍보-광고의 발전은 필연적이다).

더 중요한 것은 상품소유자는 자신의 욕구를 충족시켜줄 수 있는 사용가치(상품)을 얻기 위해서만 자신의 상품을 양도하려 한다는 점이다. 이럴 때 교환은 순전히 개인적 과정이다. 그러나 시장에 내놓은 자신의 상품은 타인에게 사용가치인지 아닌지 중요치 않다. 오직 동일한 가치를 지닌 다른 상품과 교환되는 것만이 중요하다. 이는 사회적 과정이다. 상품소유자는 개인적 과정으로서 교환에서 다른 모든 상품을 자기 상품의 특수한 등가물로 간주하며, 동시에 자신의 상품은 다른 모든 상품의 일반적 등가물로 간주된다(1장 등가형태의 두 번째 형태). 이는 모든 상품소유자에게 마찬가지이므로 “어떤 상품도 사실상 일반적 등가(물)로 되지 못하며, 따라서 상품들은 [서로 가치로 동등시되며 가치량으로 서로 비교되는] 일반적 상대적 가치형태를 가지지 못한다”(111쪽).

이 곤경을 헤쳐나가기 위해 상품소유자들은 하나의 특수한 상품을 선출한다. “이 선발된 상품의 현물형태가 사회적으로 통용되는 등가형태로 된다. 사회적 과정을 통해 일반적 등가(물)는 이 선발된 상품의 독자적인 사회적 기능으로 된다. 그리하여 이 상품은 화폐(貨幣)로 된다”(111쪽).

이러한 과정, 노동생산물이 상품으로 전환되고 원활한 교환을 위해 독립적인 가치형태를 만드는 과정은 거의 동시에 일어난다. “노동생산물이 상품으로 전환되는 것에 발맞추어 특정상품이 화폐로 전환된다”(112쪽).

이 과정을 좀 더 자세히 살펴보자. 우선 위에서 우리는 상품이 소유자에게 비(非)사용가치임을 확인했다. 상품은 우선 소유자에게 필요한 것보다 더 많이 생산된 사용가치로부터 비롯한다. 이 초과분의 사용가치는 양도할 수 있어야 하고, (앞에서 확인했듯이) 상품소유자 서로를 독립된 인격으로 대해야 한다. 이러한 (타인을 독립적 인격으로 대하는) 태도는 자연발생적인 공동체에선 존재하지 않는다(가족을 떠올려도 된다). 따라서 상품의 교환은 공동체의 경계에서 시작된다. 공동체 사이의 교환은 욕망의 확대와 함께 정상적인 사회적 과정으로 교환된다. 이 과정에서 교환을 위한 생산이 확대된다. 사용가치와 교환가치의 구별이 시작되는 것이다.

직접적인 생산물 교환에서는 독립적인 가치형태가 아직 등장하지 않는다. 교환의 확대는 보편적 등가물을 제3의 상품 형태로 등장시킨다. 우연적인 교환에서 보편적 등가물은 일시적으로만 존재한다. 그러나 상품 교환의 발달은 이 보편적 등가형태를 배타적인 특수한 상품 종류에 고정시킨다. “즉, 화폐형태(貨幣形態)로 응고한다. 화폐형태가 어떤 종류의 상품에 부착되는가는 처음에는 우연이다”(114쪽). 상품 교환의 확대로 화폐형태는 귀금속에 부착되게 된다.

“상품교환이 좁은 국지적(局地的) 한계를 타파하고, 따라서 상품가치가 인간노동 일반의 체현물로 발전해 감에 따라 화폐형태는 [일반적 등가(물)이라는 사회적 기능을 수행하는 데 자연적으로 적합한 상품인] 귀금속으로 옮아간다.”(114쪽)

그러나 화폐를 상품이라고 부르는 것만으로는 부족하다. “어려움은 화폐가 상품이라는 것을 이해하는 데 있는 것이 아니라 어떻게·왜·무엇에 의해 상품이 화폐로 되는가를 발견하는 데 있는 것이다”(118쪽). 교환이 화폐상품에 ‘가치’를 준 것은 아니다. 교환과정은 화폐가 된 상품에 ‘가치형태’를 준 것이다. 즉 화폐가 된 금과 은이 교환의 필요에 의해 상징적인 가치를 부여받은 것은 아니다.

“모든 상품처럼 화폐도 그 자신의 가치량을 상대적으로 다른 상품들로 표현할 수밖에 없다. 화폐 자신의 가치는 화폐의 생산에 소요되는 노동시간에 의해 결정되며, 동일한 양의 노동시간이 응고되어 있는 다른 상품의 양으로 표현된다.”(117~118쪽)

화폐의 상대적 가치는 원산지에서 물물교환에 의해 정해진다. 따라서 “화폐상품이 화폐로서 유통에 들어갈 때 그 가치는 이미 주어져 있다”(118쪽).

여기서 상품물신은 화폐물신으로 이어진다. “일반적 등가형태가 하나의 특정 상품의 현물형태와 동일시되어 화폐형태로 고정될 때 …… 다른 모든 상품들이 자기들의 가치를 하나의 특정한 상품으로 표현하기 때문에 그 특정 상품이 화폐로 되는 것이 아니라, 반대로 한 상품이 화폐이기 때문에 다른 모든 상품들이 일반적으로 자기들의 가치를 그 상품으로 표현”(119쪽)하는 것으로 나타난다. 금이 채굴 되자마자 가치의 기준(인간노동의 화신)으로 되는 것은 이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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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절 상품의 두 요소: 사용가치와 가치(가치의 실체, 가치의 크기)

마르크스는 자본주의적 생산양식이 지배하는 사회(간단히 자본주의 사회)의 부(富)는 “상품의 방대한 집적(集積)”(43쪽)으로 나타난다고 말한다. 개개의 상품은 이러한 자본주의 사회 부의 기본형태다. 따라서 마르크스는 상품의 분석으로부터 연구를 시작한다.

상품은 우선 사용가치다. 상품은 인간의 욕망을 충족시키는 유용한 성질을 지니고 있어야만 한다. 유용성은 상품의 물리적 속성에 의해 주어지고 상품 자체와 떨어질 수 없다. 상품의 자연적 속성은 유용성에 영향을 미치기에 상품을 사용가치로 만드는 한에서만 관심의 대상이 된다. 하지만 교환관계에서 상품은 그것이 어떠한 것이든 사용가치이기만 하다면 교환될 수 있다. 그것이 지닌 유용한 속성이 어떠한 종류의 것인지는 중요치 않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상품은 그 유용한 속성을 욕망하는 이에게 교환될 수 있어야 한다. 이때 상품은 다양한 다른 상품들과 다양한 교환비율로 교환된다. 여기서 상품이 교환되는 양적 관계 또는 비율이 교환가치다. 상품이 다양한 상품들과 다양한 비율들로 교환될 수 있다는 것은 “첫째 특정한 상품의 서로 다른 교환가치들은 동일한 그 무엇을 표현하고 있으며, 둘째 교환가치는 교환가치와는 구별되는 그 어떤 내용의 표현양식 또는 ‘현상형태(現像形態: form of appearan ce)’에 지나지 않는다는 점이다”(45쪽).

상품은 사용가치라는 측면에서 그것의 소재, 물리적 특성, 유용성 등 질적으로 구별된다. 하지만 교환가치는 양적 차이만 지닐 뿐이다. 그렇기에 사용가치는 교환가치가 표현하는 상품들의 동일한 그 무엇(속성)일 수 없다. 이 사용가치를 제외할 때 상품에 남는 유일한 속성은 노동생산물이라는 것이다.

“ 사용가치로서의 상품은 무엇보다도 질적으로 구별되지만, 교환가치로서의 상품은 오직 양적 차이를 가질 뿐이고, 따라서 거기에는 사용가치가 조금도 포함되어 있지 않다. 만약 상품의 사용가치를 무시한다면, 거기에는 오직 하나의 속성, 즉 그것이 노동생산물(勞動生産物)이라는 속성만 남는다.”(47쪽)

이제 상품의 노동생산물이라는 속성을 살펴보자. 우리가 상품의 사용가치를 무시한다면 그것은 특별한 목적과 방법에 따른 특정한 노동의 생산물이 아니게 된다. 스마트폰과 연필을 만드는 노동은 상이한 노동이지만 노동생산물이라는 공통의 속성에서 더 이상 그 특정한 노동의 종류는 문제가 되지 않는다. 즉 그 둘은 오직 인간노동의 산물이라는 점 때문에 교환될 수 있는 것이다.

“이들 노동은 더 이상 서로 구별되지 않고 모두 동일한 종류의 노동, 즉 추상적 인간노동(abs tract human labour)으로 환원된다. 이제 노동생산물들은 유령 같은 형상[즉, 동질적인 인간노동이 응고되어 있는 형상]을 띠게 된다. 다시 말해, 노동생산물들은 인간노동력이 그 지출형태와는 관계없이 지출되어 응고된 것에 불과하다. 이 모든 것이 우리에게 말해주는 것은, 그들의 생산에 인간의 노동력이 지출되었다는 것, 인간노동이 그들 속에 체현되어 있다는 것이다. 모든 노동생산물은 그들에게 공통적인 이러한 사회적 실체의 결정체(結晶體: crystal)로서 가치(價値), 상품가치이다.”(47쪽)

우리는 짧지만 복잡한 마르크스의 길을 따라 상품의 가치를 만나게 됐다. (상품)가치는 ‘추상적 인간노동’이 “그 지출형태와는 관계없이 지출되어 응고된 것”이다.

“가치의 실체를 이루는 노동은 동등한 인간노동이며, 동일한 인간노동력의 지출이다. 상품세계의 가치로 자기를 표현하는 사회의 총노동력(總勞動力)은 …… 거대한 하나의 동질의 인간노동력으로 간주된다. 각 단위의 노동력은 …… 한 상품의 생산에 평균적으로 필요한 (즉, 사회적으로 필요한) 노동시간만 걸리는 한 서로 다름이 없는 동일한 인간노동력이다. 사회적으로 필요한 노동시간(socially necessary labour-time)이란 주어진 사회의 정상적인 생산조건과 그 사회에서 지배적인 평균적 노동숙련도와 노동강도 하에서 어떤 사용가치를 생산하는 데 걸리는 노동시간이다.”(48쪽)

가치의 크기는 노동의 계속시간으로 측정된다. 동일한 노동량이 들어 있는 상품들, 즉 같은 시간에 생산할 수 있는 상품들은 같은 가치량을 가진다. “가치로서는 모든 상품은 일정한 크기의 응고된 노동시간(勞動時間)에 불과하다”(49쪽). 따라서 노동생산성의 변화는 상품의 가치 크기를 변화시킨다.

다음 절로 넘어가기 전 상품이 사용가치이자 가치임을 정리해보자. 어떤 물건이 사용가치라는 것이 곧 상품임을 뜻하진 않는다. 공기와 물·자연의 많은 것들은 사용가치이지만, 즉 인간에게 유용한 속성을 지닌 물건이지만 상품은 아니다. 사용가치로서 상품은 생산자 자신의 소비를 위한 것이 아니어야 한다. 그러나 이것만으로도 부족하다. 왕을 위한 진상품은 타인을 위한 사용가치이지만 상품은 아니다. 상품이 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교환되어야 한다.


제2절 상품에 투하되어 있는 노동의 이중성

상품의 이중성(사용가치와 가치)에 따라 노동의 이중성이 나타난다. 하나의 상품은 특정한 욕망을 충족시키는 사용가치다. 상품을 사용가치로 만드는 노동은 질적으로 구분되는 노동으로서 유용노동이라 부른다. 아마포를 만드는 노동(직포)과 저고리를 만드는 노동(재봉)은 다른 것이다. 상품이 교환되기 위해서는 서로 다른 인간의 욕망을 충족시킬 수 있어야 한다. 즉 서로 다른 생산활동에 의해 만들어져야 한다. 서로 구분 되는 사용가치들의 총체는 사회적 분업을 반영한다.

“다양한 사용가치들[또는 상품체들]의 총체는 다양한 유용노동들[유(類)·속(屬)·종(種)·변종(變種)으로 분류된다]의 총체, 즉 사회적 분업을 반영한다. 이 사회적 분업은 상품생산의 필요조건이다. 그러나 반대로 상품생산이 사회적 분업의 필요조건은 아니다.“(52~53쪽)

요약하면 이렇다.

“각 상품의 사용가치에는 유용노동[즉, 일정한 종류의 합목적적인 생산활동]이 들어 있다. 여러 가지 사용가치는, 만약 거기에 질적으로 다른 유용노동이 들어 있지 않다면, 상품으로 서로 대면할 수 없다. 생산물이 일반적으로 상품의 형태를 취하고 있는 사회[즉, 상품생산자 사회]에서는, [개별 생산자들이 상호 독립적으로 사적으로 수행하는] 여러 가지 형태의 유용노동 사이의 질적 차이는 하나의 복잡한 체계[즉, 사회적 분업(Social division of labour)]로 발전한다.”(53쪽)

이러한 유용노동으로서의 노동은 인간 생활을 유지하기 위해 필수적이다. 자연에서 그대로 주어지지 않는 것들은 인간의 욕망을 충족시키기 위해 특수한 목적을 지닌 생산활동에 의해 만들어져야 한다. 이는 인간사회의 역사적 변화와 무관한 인간의 생존 조건이다. 또한 사용가치는 유용노동과 자연소재의 결합이다. 사용가치의 원천이 노동만은 아닌 것이다.

상품의 가치에서는 사태가 달라진다. 아마포와 저고리는 모두 교환될 수 있는 동질한 가치일 뿐이다. 가치로서 두 상품을 생산하는 노동은 동일한 인간노동력의 지출일 뿐이다. 물론 ‘단순한 평균 노동’은 나라와 문화의 발전에 따라 달라진다. 한 사회에서도 더 복잡한 노동과 더 간단한 노동이 있다. 그러나 “더 복잡한 노동은 강화된 또는 몇 배로 된 단순노동(intensified or rather multiplied simple labour)으로 간주될 뿐이며, 따라서 적은 양의 복잡노동(複雜勞動)은 더 많은 양의 단순노동(單純勞動)과 동등하게 간주된다”(56쪽).

아마포와 저고리는 서로 다른 크기의 가치를 지닌다. 이는 각각의 상품을 만드는 데 서로 다른 크기의 추상적 인간노동이 지출됐기 때문이다. 저고리가 아마포의 두 배의 가치를 지니는 것은 저고리 생산을 위해 아마포 생산의 두 배의 노동력 지출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상품에 투하되어 있는 노동은 사용가치와의 관련에서는 질적으로만 고려되고, 가치와의 관련에서는 [노동이 벌써 순전한 인간 노동으로 환원되어 있으므로] 양적으로만 고려된다. 전자의 경우에는 노동이 ‘어떻게’ 수행되며, 또 ‘무엇을’ 생산하는가가 문제로 되며, 후자의 경우에는 노동력이 ‘얼마나’ 지출되는가, 즉 노동의 계속시간이 문제로 된다. 상품 가치의 크기는 그 상품에 들어 있는 노동량만을 표시하기 때문에, 상품들은 어떤 일정한 비율을 취하면 그 가치가 동일하게 된다.”(57쪽)

2절의 마지막에서 마르크스는 상품의 생산성과 관련해 중요한 고찰을 한다. 생산성이란 “특수한 생산활동이 주어진 시간에 주어진 목표를 얼마나 잘 달성하는가를 가리키는 것이다”(58쪽). 그러므로 생산성은 언제나 ‘유용노동’의 생산성을 뜻한다. 생산성이 향상될 때 우리는 주어진 시간에 더 많은 상품을 생산할 수 있다. 이는 더 많은 물적 부(사용가치)를 이룬다. 그러나 가치량 자체는 줄어들 수 있다. 왜냐면 상품의 가치량은 추상적 인간노동 지출의 계속시간에 의해 정해지기 때문이다. 자세히 설명하면 이렇다. 생산성 향상은 더 많은 상품의 생산으로 이어진다. 즉 주어진 시간에 더 많은 상품을 생산할 수 있다. 반면에 기존에 필요한 양 만큼 상품을 생산하는 데 더 적은 노동만 필요하게 된다.

“ 노동의 성과[따라서 노동에 의해 생산되는 상품량]를 증대시키는 생산성의 상승이, 이 증대된 상품 총량의 생산이 필요한 노동시간 총계를 단축시킨다면, 상품 총량의 가치량을 감소시키게 된다. 반대의 경우에는 반대로 된다.”(58쪽)

마지막으로 이번 절을 한 번 더 정리하고 넘어가자.

“ 모든 노동은 생리학적 의미에서 인간노동력의 지출이며, 이 동등한 또는 추상적 인간노동이라는 속성에서 상품의 가치(價値)를 형성한다. 다른 한편으로, 모든 노동은 특수한 합목적적 형태로 인간노동력을 지출하는 것이며, 이러한 구체적 유용노동이라는 속성에서 사용가치(使用價値)를 생산한다.”(58쪽)


제3절 가치형태 또는 교환가치

“ 상품은 철·아마포·밀 등과 같은 사용가치 또는 상품체의 형태로 세상에 나타난다. 이것이 상품의 평범한 현물형태(現物形態)이다. 그러나 그것들이 상품인 것은 그것들의 이중적인 성격, 즉 사용의 대상임과 동시에 가치의 담지자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그것들은 오직 이중적 형태[현물형태와 가치형태]를 가지는 경우에만 상품으로 나타난다. 다시 말해 상품이라는 형태를 가지게 된다.”(59쪽)

그러나 상품의 현물형태와 달리 가치로서의 객관적 실재는 눈으로, 혹은 촉감으로, 또는 맛으로 확인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우리가 기억해야 할 것은 “상품은 인간노동이라는 동일한 사회적 실체의 표현일 경우에만 가치로서의 객관적 성격을 가지게 된다는 것, 따라서 가치로서의 상품의 객관적 성격은 순수히 사회적인 것”이다. 따라서 “가치는 오직 상품과 상품 사이의 사회적 관계에서만 나타날 수 있다”(60쪽). 우리는 이번 절에서 마르크스가 가치형태, 즉 화폐형태의 기원을 밝히는 과정을 따라갈 것이다.

A. 단순한, 개별적인 또는 우연적인 가치형태

아마포 20m=저고리 1개

우리는 마르크스와 함께 화폐형태의 기원을 위 등식으로부터 추적할 것이다. 길을 잃지 않기 위해서는 위 등식을 사려 깊게 다뤄야 한다. 수학적 훈련을 받은 사람이라면 등호(=)가 등식의 양변이 ‘같음’만을 의미하지 않는다는 것을 알 것이다. 그것은 무엇보다 ‘정의’이기도 하다. 양변의 위치가 바뀜으로서 의미가 달라지는 경우가 있음을 기억해야 한다.

1. 가치표현의 두 극: 상대적 가치형태와 등가형태
아마포 20m는 저고리 1개와 같다. 아마포 20m의 가치는 저고리 1개로 표현된다. 아마포 20m는 자신의 가치를 자기 자신이 아닌 다른 상품에 의한 상대적 가치로 표현한다. 즉 아마포 20m는 상대적 가치형태다. 반대편의 저고리 1개는 아마포 20m의 등가물이다.

이렇게 되는 이유는 아마포 20m의 가치를 아마포 20m로 표현할 수 없기 때문이다(이것은 동어반복일 뿐이다). 지금 자신이 가지고 있는 아이폰을 다른 사람의 (앱이라든지 각종 부가 장착물의 차이, 사용기간 등을 무시했을 때) 동일한 아이폰과 교환하는 게 무슨 의미가 있겠는가. 왼쪽 변의 아마포 20m가 상대적 가치형태라고 함은, 그 자신의 가치를 다른 상품으로 표현하기 때문이다. 오른쪽 변의 저고리 1개는 아마포 20m의 가치를 표현하는 재료로서 왼쪽 변 아마포의 등가물(등가형태)이다.

물론 우리는 위 등식의 좌우를 바꿀 수 있다. 그럴 때 아마포와 저고리의 역할은 서로 바뀐다. 하지만 등식의 좌우를 바꾸기 전, 상품은 동시에 상대적 가치형태와 등가물일 수 없다. 두 사람이 대화를 할 때 두 사람이 모두 말할 수 있지만, 말하는 사람은 ‘화자’ 듣는 사람은 ‘청자’라고 부르는 것과 같다. 이 대화의 규칙은 둘이 동시에 말할 수 없다는 것이다.

2. 상대적 가치형태
(a) 상대적 가치형태의 내용
우선 양적 측면으로부터 떠나 가치관계를 살펴보자. 아마포 20m가 얼마만한 양의 저고리로 표현되든 이러한 비율의 존재 자체는 가치량으로서 아마포와 저고리가 동일한 성질이라는 것을 전제한다. “아마포=저고리라는 것이 이 등식의 기초”(63쪽)다. 앞에서 살폈듯이 양변은 서로 다른 역할을 한다. 저고리는 가치의 존재형태로 간주된다. 아마포는 저고리라는 자신으로부터 독립적인 가치 표현을 얻게 된다.

상대적 가치형태(아마포)가 등가형태(등가물: 저고리)로 자신의 가치를 표현할 수 있다는 것은, 그 상품의 가치를 형성한 노동(직포)이 등가형태에 놓여있는 상품을 만든 노동(재봉)으로 환원됨을 알려준다. 즉 추상적 인간노동이 실재함을 보여준다.

“ 상이한 상품들 사이의 등가의 표현이 상이한 상품들에 들어 있는 각종 노동을 그것들에 공통된 것[즉, 인간노동 일반]으로 실제로 환원하고 있기 때문에 가치형성 노동의 독자적인 성격이 드러나게 된다.”(64쪽)

그러나 노동 그 자체가 가치는 아니다. 아마포의 가치를 표현하는 저고리 그 자체는 순수히 사용가치다. 이 사용가치가 아마포의 가치를 표현할 수 있기 위해서는 가치관계에 들어가야만 한다.

“이와 같이 가치관계를 매개로 상품 B의 현물형태는 상품 A의 가치형태로 된다. 다시 말해, 상품 B의 물체는 상품 A의 가치의 거울로 된다. 상품 A는 [가치체이자 인간노동의 체현물인] 상품 B와 관계를 맺음으로써, 사용가치 B를 자기 자신의 가치의 표현재료로 삼는다. 상품 A의 가치는 이와 같이 상품 B의 사용가치로 표현되어 상대적 가치형태를 얻게 된다.”(67쪽)

(b)상대적 가치형태의 양적 규정성
가치형태는 또한 인간노동의 응고물로서 상품의 동일한 성격뿐 아니라 양적 관계도 표현한다. 우리는 ‘아마포=저고리’라는 등식에서 다시 ‘아마포 20m=저고리 1개’라는 등식으로 돌아와야 한다. 이 등식은 아마포 20m 생산에는 저고리 1개 생산에 걸리는 것과 같은 노동시간이 필요함을 뜻한다. 여기서 양변에 위치한 상품의 생산성 변동이 가치량의 상대적 표현에 미치는 영향을 살핀다.

아마포의 가치가 변하면서 저고리 가치는 불변일 때=이러저러한 원인으로 아마포 생산에 두 배의 시간이 걸리게 되면 아마포의 가치는 두 배가 된다. 즉 ‘아마포 20m=저고리 2개’개 된다. 아마포의 생산성이 절반으로 되면 반대로 ‘아마포 20m=저고리 1/2개’가 된다.

아마포의 가치가 불변이면서 저고리 가치가 변할 때=저고리의 생산성이 증가하면, 즉 저고리 1개를 만드는 시간이 이전보다 줄 때, 저고리 1개에 체화되는 노동시간도 줄어든다. 따라서 저고리의 가치가 줄어들 때 아마포 20m를 저고리로 표현하기 위해서는 더 많은 저고리가 필요하게 된다.

우리는 마찬가지 방법으로 양변의 상품 생산성 변동에 따라 가치량의 상대적 표현 변화를 추적할 수 있다. 이로부터 우리는 다음과 같은 사실을 알 수 있다.

“가치량의 현실적 변동은 가치량의 상대적 표현[즉, 상대적 가치의 크기]에 명확하고 완전하게 반영되지는 않는다. 한 상품의 상대적 가치는 자기의 가치가 불변이라도 변동할 수 있으며, 또한 자기의 가치가 변동하더라도 여전히 불변일 수도 있다. 끝으로, 그 상품의 가치량과 이 가치량의 상대적 표현이 동시에 변동하더라도 그 변동이 반드시 일치하지도 않는다.”(70쪽)

3. 등가형태
상품 B(저고리)가 상품 A(아마포)의 등가물로 있을 때 등가형태의 상품 B는 다른 상품과 직접 교환될 수 있다. 상품 A의 가치량이 정해져 있을 때 상품 B의 가치량에 따라 상품 A와 교환될 수 있는 상품 B의 양이 결정된다. 즉 다시 ‘아마포 20m=저고리 1개’의 관계를 확인한다. 여기서 우리는 상품 B(저고리)의 사용가치가 상품 A(아마포) 가치의 현상형태로 되는 것을 볼 수 있다. 다시 잊지 말아야 할 것은 상품 B의 현물형태가 (상품 A의) 가치형태가 될 수 있는 것은 오직 상품 A와 가치관계를 맺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어떤 상품도 자기 자신에 대해 등가(물)로 관계를 맺을 수 없으며, 따라서 자기 자신의 현물형태를 자기 자신의 가치의 표현으로 삼을 수는 없기 때문에, 상품은 반드시 다른 상품을 등가(물)로 삼아 그것과 관계를 맺어야 한다. 즉, 다른 상품의 현물형태를 자기 자신의 가치형태로 삼아야 한다.”(72쪽)

어떤 상품이 다른 상품의 현물형태를 자신의 상대적 가치로 표현한다는 것은 그것의 배후에 사회적 관계가 있음을 보여준다. 그러나 등가형태는 그 자체로 가치형태이기에 사회적 관계는 숨겨진다.

또한 등가형태는 구체적 유용노동이 어떻게 추상적 인간노동으로 전화하는지 보여준다. 상품 B(저고리)를 만드는 노동은 언제나 구체적인 유용노동이다. 그러나 등가물로서 상품 B는 상품 A(아마포)의 상대적 가치를 표현한다. 상품 A에게 중요한 것은 상품 B가 가치를 표현하는 (추상적 일반)노동의 응고물이라는 것이다. 따라서 상품 A에게 상품 B의 구체적 유용노동은 추상적 인간노동의 실현형태다.

“등가형태의 제2의 특징은 이와 같이 구체적 노동이 그 대립물인 추상적 인간노동의 현상형태로 된다는 것이다. 이 구체적 노동[즉, 재봉]이 무차별적인 인간노동의 표현으로 인정되기 때문에, 이 노동은 다른 노동[즉, 아마포에 들어 있는 노동]과 동일하다는 성질을 가지게 된다. 따라서 이 노동은 다른 모든 상품생산 노동처럼 사적 노동이지만 또한 직접적으로 사회적인 형태의 노동인 것이다. 바로 그렇기 때문에 이 노동은 [다른 상품들과 직접 교환될 수 있는] 생산물의 모습으로 우리에게 나타나는 것이다. 이와 같이 사적 노동이 그 대립물의 형태[즉, 직접적으로 사회적인 형태의 노동]로 된다는 것이 등가형태의 제3의 특징이다.”(75쪽)

마지막으로 마르크스는 아리스토텔레스로부터 등가형태의 중요한 마지막 두 특징을 말한다. 우선 등가형태, 즉 상품이 교환될 수 있음은 그것이 동일한 무엇인가를 갖고 있기 때문이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이로부터 자신의 시대적 한계로 인해 그 동등성이 무엇인지 밝히지 못했지만 이제 우리는 말할 수 있다. 그 동등성은 바로 인간노동이다. “인간의 동등성(同等性)이라는 개념이 대중의 선입관으로 확립되었을 때”(77쪽) 우리는 비로소 무차별적 인간노동이 가치관계의 배후에 있음을 밝힐 수 있다.

4. 단순한 가치형태의 총체
마르크스는 이제까지의 내용을 다시 한 번 정리한다.

“상품은 사용가치[즉, 유용한 물체]임과 동시에 가치(價値)인 것이다. 상품은, 자기의 가치가 자기의 현물형태와는 구별되는 하나의 독특한 표현형태[즉, 교환가치]를 가지게 될 때, 그 이중성을 드러낸다. 상품은 고립적으로 고찰할 때에는 교환가치라는 형태를 취하는 일이 없고, 그와 종류가 다른 한 상품에 대한 가치관계 또는 교환관계에서만 이 형태를 취한다.”(77쪽)

가치관계의 등식을 상세히 고찰하면 상품의 내적 모순(이중성)이 외적으로 표현됨을 발견할 수 있다. 상대적 가치형태인 왼쪽 변의 상품 A(아마포)의 현물형태는 오직 사용가치로만, 오른 쪽 변의 등가물 상품 B(저고리)는 가치형태로만 나타난다. 즉 하나의 상품은 사용가치로, 다른 하나의 상품은 교환가치로 대립하게 된다.

단순한 가치형태가 화폐형태로 발전하기 위해서는 몇 단계를 더 거쳐야 한다. 우리는 이제 마르크스와 함께 이제까지의 단순한 가치형태가 전개되는 모습을 살필 것이다.

B. 전체적 또는 전개된 가치형태



1. 전개된 상대적 가치형태
하나의 상품 가치는 무수히 많은 다른 상품으로 표현된다. 이제야 말로 우리는 무차별적인 인간노동에 대해 말할 수 있다. 그것이 어떤 노동이 되었든 인간노동의 응고물로서 상품은 다른 상품의 가치를 표현할 수 있기 때문이다. 전개된 가치형태에서 두 상품의 우연적 관계는 소멸한다. 이로써 교환에서 가치가 만들어지는 않는다는 것도 분명해진다.

“상품의 교환이 상품의 가치량을 규제하는 것이 아니라, 반대로 상품의 가치량이 상품의 교환비율(交換比率)을 규제한다는 것이 명백해진다.”(81쪽)

2. 특수한 등가형태
저고리·차·밀·금·철은 원단의 상대적 가치를 표현하는 각각의 특수한 등가형태다. 이것이 특수한 이유는 각각 개별적으로만 왼쪽 변의 상품 A(아마포)의 가치를 표현하기 때문이다. 이들 각각의 특수한 등가형태들은 아직까지 서로의 가치를 표현하지 못한다.

3. 전체적 또는 전개된 가치형태의 결합
그러나 이러한 방식으로는 등가물의 목록이 무한히 이어질 수밖에 없다. 그리고 오른쪽 변의 등가형태들은 오직 왼쪽 변의 상품과만 관계를 맺는다. 특수한 등가형태에 들어 있는 구체적 유용노동 또한 특수한 종류의 인간노동일 뿐이다. “인간노동은 통일적인 현상형태를 가지지 못한다”(82쪽).

이제 전개된 가치형태의 좌우를 바꿔보자. 이제 아마포 20m가 각각의 다른 상품들의 관계를 연결해주는 역할을 하게 됨을 알 수 있다. 저고리 1개를 가진 사람은 우선 아마포 20m와 바꾼 후, 이 아마포를 다시 차 10g을 가진 사람과 교환할 수 있게 됐다.

C. 일반적 가치형태



1. 가치형태의 변화된 성격
우리는 일반적 가치형태에서 여러 상품들이 단 하나의 상품으로 단순하게 가치를 표현하고 있음을 볼 수 있다. 또한 여러 상품은 동일한 상품으로 가치를 통일적으로 표현한다. 즉 우리는 일반적 가치형태를 갖게 됐다. 상품세계의 시민들은 이제 자신을 표현해줄 대표자를 찾게 된 것이다.

“일반적 가치형태는 오로지 상품세계 전체의 공동사업으로 생길 수 있을 뿐이다. 하나의 상품이 자기의 가치를 일반적으로 표현할 수 있는 것은, 다른 모든 상품이 자기들의 가치를 동일한 등가(물)로 표현하기 때문이며, 그리고 새로 등장하는 상품종류도 반드시 그렇게 하기 때문이다. 가치로서의 상품들의 객관적 실재는 순전히 이 물건들의 ‘사회적 존재’에 의거하는 것이므로, 이 객관적 실재는 상품들의 전면적인 사회적 관계에 의해서만 표현될 수 있으며, 따라서 상품들의 가치형태는 반드시 사회적으로 인정되는 형태이어야 한다는 것이 명백해진다.”(85쪽)

이제 이 세 번째 가치형태에서 모든 상품들은 질적으로 동등한 것으로 나타나고, 양적으로는 비교할 수 있는 가치량으로 나타난다. 이제 아마포는 상품세계에서 ‘일반적 등가물’이 된다. 아마포의 현물형태는 모든 상품들의 가치를 표현하고, 따라서 모든 상품과 직접 교환될 수 있다.

“아마포의 현물형태는 온갖 인간노동의 눈에 보이는 화신(visible incarnation), 즉 온갖 인간노동의 사회적 번데기 상태로 간주된다. 직포[아마포를 생산하는 사적 노동]는 이리하여 일반적인 사회적 형태[즉, 다른 모든 종류의 노동과 동등하다는 형태]를 획득한다. …… 직포를 무차별적인 인간노동의 일반적 현상형태로 만든다.”(86쪽)

2. 상대적 가치형태의 발전과 등가형태의 발전 사이의 관계
우리는 지금까지 단순한 상대적 가치형태의 발전이 일반적 등가물의 형태를 취하는 과정을 추적했다. 이 발전에 따라 처음의 단순한 가치형태는 등가형태와 대립 또한 발전한다. 제1형태에서 상대적 가치형태와 등가형태는 대립하지만 서로 위치를 바꿀 수 있다. 제2형태에서는 양변을 바꿀 수 없다. 양변을 바꾼 형태가 제3형태이다. 이 때 단 하나의 상품(아마포)이 일반적 등가물이 될 수 있는 것은 “다른 모든 상품들이 이러한 형태를 얻지 못하기 때문이며, 그리고 그때에만 그렇다”(88쪽). 한편 이 상품은 상품세계로부터, 상대적 가치형태로부터 제외된다. 이 상품(아마포)이 상대적 가치형태에 참여할 때 그것의 가치형태를 표현하기 위해 자기 자신을 대립시켜야 하거나, 제2형태(전개된 상대적 가치형태)를 취해야 하기 때문이다.

3. 일반적 가치형태로부터 화폐형태로의 이행

“어떤 한 상품이 (제3형태에서) 일반적 등가형태로 되는 것은, 그 상품이 다른 모든 상품에 의해 그들의 등가(물)로 선출되어 배제되기 때문이며, 또 그렇게 될 때에 한해서다. 이러한 배제가 최종적으로 하나의 특수한 상품 종류에 한정되는 그 순간부터, 비로소 상품세계의 통일적인 상대적 가치형태는 객관적인 고정성과 일반적인 사회적 타당성을 획득한다.”(89쪽)

이 특수한 상품 종류가 화폐상품이 된다. 금이 이러한 특권적 지위를 역사적으로 획득했다.

D. 화폐형태



이 제4형태는 제3형태에서 아마포의 위치를 금이 차지했을 뿐이다.

“진보한 것은, 직접적인 일반적 교환가능성의 형태[즉, 일반적 등가형태]가 이제는 사회적 관습에 의해 최종적으로 상품 금이라는 특수한 현물형태와 일체화되었다는 점뿐이다.”(90쪽)


제4절 상품의 물신적 성격과 그 비밀

상품이 사용가치이기만 할 때는 모든 것이 명백하다. 그러나 그것이 상품으로 나타날 때 신비로운 장막이 우리의 눈앞에 나타난다. 상품의 신비한 성격은 상품형태 자체로부터 비롯한다.

“왜냐하면, 각종 인간노동이 동등하다는 것은 노동생산물이 가치로서 동등한 객관성을 가진다는 구체적 형태를 취하며, 인간노동력의 지출을 그 계속시간에 의해 측정하는 것은 노동생산물의 가치량(價値量)이라는 형태를 취하며, 끝으로 생산자들 사이의 관계[그 속에서 그들의 노동의 사회적 성격이 증명된다]는 노동생산물 사이의 사회적 관계라는 형태를 취하기 때문이다.”(91쪽)

즉 상품형태에서 모든 인간의 노동이 동등하다는 것은 상품이 서로 교환될 수 있다는 것으로부터 설명된다. 우리가 얼마나 일을 했고, 앞으로 얼마나 더 일을 해야 할지도 마찬가지로 상품의 가치로서만 측정되고 계획된다. 끝으로 생산자들 사이의 직접적 관계는 사라지고 상품들 사이의 관계만 남는다. 내가 오늘 먹은 이 쌀을 누가 어떻게 만들었는지는 중요치 않다.

“비슷한 예를 찾아보기 위해 우리는 몽롱한 종교세계로 들어가 보지 않으면 안 된다. 거기에서는 인간 두뇌의 산물들이 스스로의 생명을 가진 자립적인 인물로 등장해 그들 자신의 사이 그리고 인간과의 사이에서 일정한 관계를 맺고 있다. 마찬가지로 상품세계에서는 인간 손의 산물들이 그와 같이 등장한다. 이것을 나는 물신숭배(物神崇拜: fetishism)라고 부르는데, 이것은 노동생산물이 상품으로 생산되자마자 거기에 부착되며, 따라서 상품생산과 분리될 수 없다.”(94쪽)

개인적인 유용노동이 사회적 성격을 획득하는 것은 오직 상품의 교환을 통해서 만이다. 노동의 동등성은 상이한 생산물이 서로 가치로서 교환될 수 있다는 것에 의해 비롯하는 것처럼 느껴진다. 이제 노동생산물의 교환 비율은 그 자체에 고유한 어떠한 성질(예를 들면 무게와 같은 것)에서 비롯한 것처럼 느껴진다. 노동생산물의 가치로서의 성격은 그것의 끊임없는 변동에서 분명해진다. “노동시간에 의한 가치량(價値量)의 결정은 상품의 상대적 가치의 현상적인 배후에 숨어 있는 하나의 비밀이다”(96~97쪽).

이러한 상품세계의 물신적 성격으로 인해 상품의 역사적 성격은 사상되고 일부 경제학자는 상품의 교환가치를 그 자연적 소재로부터 이끌어내는 혼동에 빠지곤 한다.

Posted by 때때로

마르크스 '자본론 : 정치경제학 비판' 1권 발췌ㆍ요약을 진행합니다. 전공 선생님의 지도 없이 제 자신이 명료하게 이해하는 것을 목적으로 자본론 1권의 내용을 정리한 것입니다. 따라서 잘못 이해한 부분이 반드시 있을 것입니다. 섣부른 현실과의 유비를 피하고 가능하면 마르크스 자신의 언어로 이해하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습니다. 그럼에도 책을 읽어가면서 떠오르는 영감에 흥이 겨워 무모한 시도를 한 부분이 있습니다. 언제나 배우는 자세로 제가 잘못 이해한 것에 대한 지적을 받아들일 준비가 돼 있습니다. 책은 김수행 교수가 번역한 비봉판을 이용했습니다.

………

제1판 서문 발췌

“첫부분이 항상 어렵다는 것은 어느 과학에서나 마찬가지다. 그러므로 여기에서도 제1장, 특히 상품분석이 들어 있는 절을 이해하기가 가장 힘들 것이다. 나는 가치의 실체와 가치량의 분석을 될 수 있는 한 쉽게 했다. 화폐형태로 완성되는 가치형태는 매우 초보적이고 단순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인간의 지혜는 2000년 이상이나 이 화폐형태를 해명하려고 시도했지만 실패한 반면에, 훨씬 더 내용이 풍부하고 복잡한 형태들의 분석에는 적어도 거의 성공했다. 무슨 까닭인가? 발달한 신체는 신체의 세포보다 연구하기가 쉽기 때문이다. 그뿐만 아니라 경제적 형태의 분석에서는 현미경도 시약도 소용이 없고 추상력이 이것들을 대신하지 않으면 안 된다. 그런데 부르주아 사회에서는 노동생산물의 상품형태 또는 상품의 가치형태가 경제적 세포형태이다. 겉만 관찰하는 사람에게는 이 형태의 분석은 아주 사소한 것을 늘어놓는 것처럼 보일 것이다. 사실 그것은 아주 작은 것을 다루고 있다. 그러나 그 작은 것들은 미생물 해부학이 다루고 있는 그러한 종류의 작은 것이다.”
- 제1판 서문, 3~4쪽

“이 책에서 나의 연구대상은 자본주의적 생산방식 및 그것에 대응하는 생산관계와 교환관계이다. 이 생산양식이 전형적으로 나타나고 있는 나라는 지금까지는 영국이다. 영국이 나의 이론전개에서 주요한 예증으로 되는 이유는 이 때문이다.”
- 제1판 서문, 4쪽

“만약 독일의 독자가 누구든지 영국의 공업·농업 노동자들의 형편에 대해 위선적으로 눈살을 찌푸리든가, 독일에서는 사태가 결코 그렇게는 나쁘지 않다고 낙관적으로 자기를 위안하려 한다면, 나는 그에게 “이것은 너를 두고 하는 말이다!”라고 외칠 것이다.”
- 제1판 서문, 4~5쪽

“자본주의적 생산의 자연법칙들로부터 발생하는 사회적 적대관계의 발전정도가 높은가 낮은가는 여기에서는 문제가 되지 않는다. 문제는 이 법칙들 자체에 있으며, 움직일 수 없는 필연성을 가지고 작용해 관철되는 이 경향들 자체에 있다. 공업이 더 발달한 나라는 덜 발달한 나라에게 후자의 미래상을 보여주고 있을 따름이다.”
- 제1판 서문, 5쪽

“우리나라[독일]에서 자본주의적 생산이 완전히 확립되어 있는 곳[예컨대 진정한 공장]에서는, 공장법이라는 규제가 없기 때문에 사태는 영국보다 훨씬 더 나쁘다. …… 자본주의적 생산의 발전에 의해서 뿐 아니라 그 발전의 불완전성에 의해서도 고통을 받고 있다.”
- 제1판 서문, 5쪽

“독일과 서유럽 대륙의 기타 나라들이 사회통계는 영국의 통계에 비하면 형편이 없다. 그렇지만 그 통계는 메두사(Medusa)의 대가리가 보일 만큼은 면사포를 걷어 올려주고 있다.”
- 제1판 서문, 6쪽

“자본가와 지주를 나는 결코 장밋빛으로 아름답게 그리지는 않는다. 그러나 여기서 개인들이 문제로 되는 것은 오직 그들이 경제적 범주의 인격화, 일정한 계급관계와 이익의 담지자인 한에서다. 경제적 사회구성의 발전을 자연사적 과정으로 보는 나의 입장에서는, 다른 입장과는 달리, 개인이 이러한 관계들에 책임이 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또한 개인은 주관적으로는 아무리 이러한 관계들을 초월하고 있다고 하더라도, 사회적으로는 여전히 그것들의 산물이다.”
- 제1판 서문, 6~7쪽

“경제학이 취급하는 문제의 독특한 성격 때문에, 사람의 감정 중에서 가장 맹렬하고 가장 저열하며 가장 추악한 감정-즉 사리사욕(私利私慾)이라는 복수의 여신-이 자유로운 과학적 연구를 저지하는 투쟁 마당에 들어오게 된다.”
- 제1판 서문, 7쪽

“나는 과학적 비판에 근거한 의견이라면 무엇이든 환영한다. 그러나 내가 한 번도 양보한 일이 없는 이른바 여론이라는 편겨에 대해서는 저 위대한 플로렌스사람[단테]의 다음과 같은 말이 항상 변함없이 나의 좌우명이다. “제 갈 길을 가라, 남이야 뭐라든!””
- 제1판 서문, 8쪽


제1판 서문 요약

마르크스는 ‘자본론’이 상품의 분석에서부터 시작하는 이유를 제1판 서문에서 밝히고 있습니다. 그는 “부르주아 사회에서는 노동생산물의 상품형태 또는 상품의 가치형태가 경제적 세포형태”(4쪽)라면서 자신의 연구를 생물학에서의 ‘미생물 해부학’에 비유하고 있습니다.

마르크스는 이 책을 독일의 독자를 위해 독일어로 썼습니다. 그럼에도 이 책에서 이론 전개에 필요한 중요한 예증으로 영국의 사례를 사용하고 있습니다. 물리학자가 “자연과정이 가장 명확한 형태로 나타나며 교란적인 영향을 가장 적게 받는 곳에서 …… 관찰하든가, …… 순수하게 진행될 수 있는 조건 밑에서 실험”을 하듯 “[자본주의] 생산양식이 전형적으로 나타나고 있는 나라는 …… 영국”(5쪽)이기 때문입니다. 자본주의적 발전의 정도는 큰 문제가 아닙니다. “움직일 수 없는 필연성을 가지고 작용해 관철되는 이 경향들 자체”(5쪽)가 중요하기 때문입니다. 영국에 비해 형편없이 부정확하고 부족한 당시 다른 나라들의 통계를 살피더라도 자본주의 발전 경향의 필연성을 어느 정도 확인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합니다.

자본주의의 자연법칙을 발견했다고 해서 현실에 순응하는 것만이 정답은 아니라는 것을 지적하기도 합니다. 1775년의 미국혁명이 18세기 말 대륙의 부르주아지들에게 영감을 주었듯이, 1861~1865년의 미국 남북전쟁은 대륙의 노동자계급에게도 영감을 줄 것이라고 말합니다. 영국에서는 자본주의 발전에 따르는 변혁과정이 뚜렷이 나타나기 시작했다는 것이죠(마르크스가 말하는 ‘변혁과정’은 아마도 1830대 시작된 차티스트운동과 그 결과인 선거법 개혁을 말하는 듯합니다). 마찬가지로 “대륙에서의 변혁과정은 노동자계급 그 자체의 발전 정도에 따라 더 가혹한 형태를 취하든가 더 인도적인 형태를 취할 것”이기 때문입니다. 마르크스는 “어떤 국민이든 다른 국민으로부터 배워야 하며, 또 배울 수 있다”고 말합니다. “한 사회가 비록 자기 발전의 자연법칙을 발견했다 하더라도 자연적인 발전단계들을 뛰어넘을 수도 없으며 법령으로 폐지할 수도 없”지만 “그 사회는 그러한 발전의 진통을 단축시키고 경감시킬 수는 있다”(6쪽)고 강조합니다.

마르크스는 자본가와 지주 개인을 “경제적 범주의 인격화, 일정한 계급관계와 이익의 담지자”(6쪽)로서만 다룬다는 것을 지적해둡니다.

마지막으로 경제학이 취급하는 독특한 성격 때문에 “자유로운 과학적 연구”는 투쟁의 장에 들어서게 됐다고 강조합니다. 영국과 미국에서의 지배계급은 “오늘날의 사회가 딱딱한 고체가 아니라 변화할 수 있으며 또 끊임없이 변화하고 있는 유기체(有機體)”(7쪽)라는 것을 인식하기 시작했다는 것이죠. 그렇기에 그는 여론의 편견에 흔들림 없이 과학적 연구에 기반해 “제 갈 길”을 갈 것이라며 서문을 마무리 합니다.


제2판 후기 발췌

“1848년 이래 자본주의적 생산은 독일에서 급속히 발전했고 현재는 벌써 투기와 협잡이 성행하는 시기에 들어섰다. 그러나 운명의 여신은 아직도 독일의 경제학 교수들에게 미소를 짓지 않고 있다. 그들이 편견없이 경제학을 연구할 수 있었을 때에는 독일의 현실에 근대적 경제관계가 존재하지 않았고, 이러한 관계가 나타났을 때에는 [부르주아적 시야를 가지면서도 그것을 편견없이 연구하는 것을 더 이상 허용하지 않는] 환경이 조성되어 버렸던 것이다. 경제학이 부르주아적인 한, 즉 그것이 자본주의제도를 사회적 생산의 하나의 과도적인 역사적 발전단계로 보지 않고 사회적 생산의 절대적이고 궁극적인 형태로 보는 한, 부르주아 경제학은 계급투쟁이 아직 잠재적 상태에 있거나 오직 고립적이고 불규칙적인 현상으로 나타나는 동안만 과학으로 존속할 수 있다.”
- 제2판 후기, 11쪽

“1830년에는 최종적인 결정적 위기가 닥쳐왔다.
프랑스와 영국에서는 부르주아지가 정권을 쟁취했다. 이 순간부터 계급투쟁은 실천과 이론 모두에서 더욱더 공개적이고 위협적인 형태를 취했다. 그와 더불어 과학적인 부르주아 경제학은 조종을 울렸다. 그 뒤부터는 벌써 어떤 이론이 옳은가 옳지 않은가가 문제로 되는 것이 아니라, 그것이 자본에 유리한가 불리한가, 편리한가 불편한가, 정치적으로 위험한가 아닌가가 문제로 되었다.”
- 제2판 후기, 12쪽

“마르크스에게 중요한 것은 …… 현상들을 지배하는 법칙만이 아니다. 그에게 더 중요한 것은 현상들의 변화의 법칙, 현상들의 발전의 법칙, 즉 한 형태로부터 다른 형태로의 이행의 법칙, 상호관계의 한 질서로부터 다른 질서로의 이행의 법칙이다. …… 사람들이 이 필연성을 믿든 안 믿든, 의식하든 의식하지 않든 전혀 상관이 없다. …… 조사의 출발점으로 될 수 있는 것은 관념이 아니고 오직 외부현상이다. …… 조사에서 중요한 것은 …… 사실을 가능한 한 정확하게 탐구하고 실제로 그것들이 발전의 상이한 계기를 이루고 있다는 것을 알아내는 일이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중요한 것은 상이한 발전단계를 표현하는 일련의 순서·순차성·관련성을 정확하게 분석하는 것이다. …… 현재에 적용되든 과거에 적용되든 동일[한] …… 추상적 법칙은 존재하지 않는다…반대로 각각의 역사적 시기는 자기 자신의 법칙을 가지고 있다…경제생활이 일정한 발전시기를 경과해 일정한 단계로부터 다른 단계로 이행하자마자, 경제생활은 다른 법칙에 의해 지배받기 시작한다. …… 마르크스는 예컨대 인구법칙이 어느 시대, 어느 곳에서나 동일하다는 것을 부인한다. 그는 반대로 각각의 발전단계는 자기 자신의 인구법칙을 가지고 있다고 주장한다. …… 이와 같은 연구의 과학적 가치는 일정한 사회유기체의 발생·생존·발전·사멸과 더 높은 다른 사회유기체에 의한 교체를 규제하는 특수법칙들을 해명하는 데 있다.”
- 제2판 후기, 16~18쪽

“물론 발표 방법은 형식의 면에서 조사 방법과 다르지 않을 수 없다. 조사는 마땅히 세밀하게 소재(素材: material)를 파악하고, 소재의 상이한 발전형태들을 분석하고, 이 형태들의 내적 관련을 구명해야 한다. 이 조사가 끝난 뒤에라야 비로소 현실의 운동을 적절하게 발표할 수 있다. 조사가 잘 되어 소재의 일생이 관념에 반영된다면, 우리가 마치 선험적인 논리구성을 한 것처럼 보일 수도 있다.”
- 제2판 후기, 18쪽

“변증법은 그 합리적인 형태에서는 부르주아지와 그 이론적 대변자들에게 분노와 공포를 줄 뿐이다. 왜냐하면, 변증법은 현존하는 것을 긍정적으로 이해하면서도 동시에 그것의 부정[즉, 그것의 불가피한 파멸]을 인정하기 때문이며, 또 변증법은 역사적으로 전개되는 모든 형태들을 유동상태·운동상태에 있다고 가주함으로써 그것들의 일시적 측면을 동시에 파악하기 때문이며, 또한 변증법은 본질상 비판적·혁명적이어서 어떤 것에 의해서도 제약을 받지 않기 때문이다.”
- 제2판 후기, 19쪽


제2판 후기 요약

마르크스는 제1판에서 무엇을 변경했는지 후기에서 밝히고 있습니다. 이어 독일 노동자계급 사이에서 자신의 이론이 급속히 흡수되는 데 반해 독일의 부르주아 경제학이 독창적인 발전이 불가능한 이유를 설명합니다. “그들이 편견없이 경제학을 연구할 수 있었을 때에는 독일의 현실에 근대적 경제관계가 존재하지 않았고, 이러한 관계가 나타났을 때에는 [부르주아적 시야를 가지면서도 그것을 편견없이 연구하는 것을 더 이상 허용하지 않는] 환경이 조성되어 버렸”기 때문입니다(11쪽). 이는 제1판 서문에서 경제에 대한 “자유로운 과학적 연구” 자체가 투쟁의 마당에 들어왔다는 설명과 이어지는 분석입니다.

마르크스는 이러한 부르주아적 시야의 한계를 영국에서의 경제학 발전 과정을 예로 들며 설명합니다. 1830년대 영국과 프랑스에서는 자본주의 발전이 본격화되었고(1925년 산업공황의 첫 발발) “부르주아지는 정권을 쟁취”했습니다. 따라서 그 때부터 경제학의 핵심 문제는 “자본에 유리한가 불리한가, 편리한가 불편한가, 정치적으로 위험한가 아닌가”(12쪽)가 되었다는 것이죠. 결국 부르주아 경제학은 이후 “총명한 실무가”의 길을 걷거나 존 스튜어트 밀의 뒤를 따라 “천박한 절충주의”의 길을 따르게 됩니다.

이어 그는 독일 부르주아의 묵살과 무시에도 불구하고 ‘자본론’과 그 이론이 성공하고 있음을 주장합니다. 한편 파리에서는 그의 이론이 ‘형이상학적’이며 ‘사실의 비판적 분석’에만 머물고 있다는 모순적인 비난을 받고 있다고 지적하며, 그에 대한 대답으로 러시아의 지베르 교수의 답변을 제시합니다. 또한 마르크스는 ‘헤겔식 궤변’이라고 비난한 카우프만의 논문을 발췌해 “나 자신의 방법이라고 생각하는 것을 아주 정확하게 묘사하고 있”으며 그것이 바로 “변증법적 방법”이라고 되받아치기도 합니다(16~18쪽).

덧붙여 그는 자신의 변증법적 방법이 헤겔과 다를 뿐 아니라 정반대임을 설명합니다. 그럼에도 그는 변증법의 핵심을 설명한 것은 헤겔임을 강조하며 자신을 “이 위대한 사상가의 제자라고 공언하고 가치론에 관한 장에서 군데군데 헤겔의 특유한 표현방식을 흉내내기까지 했다”며 1장에 표현방식에 대해 설명합니다. 마르크스는 헤겔의 변증법에서 “신비로운 껍질 속에 들어 있는 합리적인 알맹이를 찾아”내 바로 세우는 것의 중요함을 강조합니다. 왜냐면 “변증법은 현존하는 것을 긍정적으로 이해하면서도 동시에 그것의 부정[즉, 그것의 불가피한 파멸]을 인정하기 때문이며, 또 변증법은 역사적으로 전개되는 모든 형태들을 유동상태·운동상태에 있다고 가주함으로써 그것들의 일시적 측면을 동시에 파악하기 때문이며, 또한 변증법은 본질상 비판적·혁명적이어서 어떤 것에 의해서도 제약을 받지 않기 때문”이죠(19쪽).

한편 “산업활동의 주기적 순환”이 본격화되면서 “신성 프러시아-독일제국의 졸부들의 머리 속까지 변증법을 새겨넣을 것”이라고 말합니다(20쪽).


프랑스어판 서문·후기 발췌

“학문에는 지름길이 없습니다. 오직 피로를 두려워하지 않고 학문의 가파른 오솔길을 기어 올라가는 사람만이 학문의 빛나는 정상에 도달할 수 있습니다.”
- 프랑스어판 서문, 21쪽

“이 프랑스어판에 어떤 문장상의 결함이 있다 하더라도, 프랑스어판은 원본과는 독립적인 과학적 가치를 가지므로 독일어판을 읽은 독자들도 이 프랑스어판을 참조하는 것이 필요할 것입니다.”
- 프랑스어판 후기, 22쪽

제3판 서문 요약

제3판은 엥겔스의 책임 하에 출간됐습니다. 1883년 3월 14일 마르크스가 세상을 떴기 때문입니다. 엥겔스는 제3판 서문에서 편집 원칙을 밝힙니다. 이와 함께 마르크스의 인용 방식에 대한 비난에 답합니다.


영어판 서문 요약

제3판 서문에서와 마찬가지로 엥겔스는 영어판의 번역작업, 편집 원칙을 설명합니다. 또한 엥겔스는 마르크스가 사용한 용어에 대한 간단한 설명을 덧붙입니다. “경제학은 일반적으로 상공업계의 용어들을 그냥 그대로 받아들여 사용하는 것에 만족해 왔는데 경제학은 그렇게 함으로써 그 용어들이 표현하는 관념들의 좁은 범위 안에 자신을 국한시키고 있다”(29쪽)며 마르크스의 용어가 일상생활과는 물론 경제학에서의 용어와도 다른 의미로 사용되고 있음을 지적합니다. 이어 그는 제3판에서와 마찬가지로 마르크스 인용의 두 가지 방식(예증, 혹은 이론의 발전 관계를 표현)을 다시 언급하며, 마르크스가 인용의 주장을 마르크스가 인정하는 것과는 상관이 없음을 강조합니다.

마지막으로 그는 ‘자본론’이 유럽에서 ‘노동자계급의 성경’으로 받아들여지고 있다며, 다가올 변혁에 큰 영향을 미칠 것이라고 주장합니다.

“[마르크스는] 전 생애에 걸쳐 영국의 경제사와 경제사정을 연구한 뒤 자기의 전체 이론을 수립했고, 이 연구에 의거해 적어도 유럽에서는 영국만이 전적으로 평화적·합법적 수단에 의해 필연적인 사회혁명을 수행할 수 있는 유일한 나라라는 결론에 도달한 것이다. 그러면서도 그는 영국의 지배계급들이 ‘노예제도를 옹호하는 반란’ 없이 이 평화적·합법적 혁명에 굴복하리라고는 거의 기대할 수 없다고 첨언하는 것을 결코 잊지 않았다.”(31~32쪽)


제4판 서문 요약

엥겔스는 제4판의 편집원칙을 설명합니다. 이와 함께 마르크스의 인용의 정확성에 대한 그의 생존 당시로부터의 비난과 논쟁(?)에 대해 설명을 합니다.

Posted by 때때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