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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프리카인 망명 신청자들이 1월 5일 사흘 간의 총파업을 시작했다. 이들은 이스라엘 정부의 체포와 구금 중단, 망명 신청 심사를 요구하고 있다. 파업 첫 날 텔아비브 라빈광장에 모인 아프리카 난민들. 이날 시위엔 3만여 명이 참여했다. [사진 Activestills.org]

이스라엘에서 아프리카 출신 난민들이 5일 시작한 총파업이 이틀 째 계속되고 있다. 5일 텔아비브 라빈광장에는 3만여 명이 모여 행진과 시위를 벌였다. 6일에는 미국ㆍ캐나다ㆍ독일ㆍ프랑스 등 외국 대사관과 유엔난민기구 이스라엘 사무소 앞에서 항의 시위를 이어갔다. AFPㆍ로이터에 따르면 미국 대사관 앞에는 1만여 명이 모였다고 한다.

시위를 벌인 난민은 대개 수단과 에리트레아에서 왔다. 이스라엘 전역에 5만~6만명이 체류하고 있는 것으로 추정된다. 주로 텔아비브 남부에 집단을 이뤄 거주하고 있으며 호텔과 식당, 카페에서 일을 하고 있다. 이들은 최저임금에도 못 미치는 돈을 받는 등 다양한 방식의 노동착취에 시달리고 있다. 수단과 에리트레아 출신 망명 신청자들은 난민지위에 대한 심사와 인정을 요구하고 있다. 또 지난해 12월 만들어진 법에 의한 체포와 구금에 반대하고 있다. 12월 17일에는 이스라엘 정부가 '개방형 수용소' 또는 난민을 위한 '주거 중심시설'이라고 부르는 홀롯 수용소를 탈출한 난민 150명이 예루살렘 크네세트
[이스라엘 의회] 앞까지 행진해 왔다. 이들은 곧 경찰에 의해 체포됐다. 난민들은 내전과 전쟁, 정부의 억압을 피해 가나안 땅을 찾아 왔다. 이스라엘 정부는 이들을 '침입자'로 부르며 쫓아낼 궁리만 하고 있는 것이다.

국제법 모르쇠 … 폐쇄적인 '개방형 수용소'

난민의 체포와 구금, 수용소 건설은 이스라엘 대법원의 판결에 어긋나는 것이다. 이스라엘 정부는 2012년 만든 법을 이용해 수단과 에리트레아 출신 난민을 그 해 6월부터 사하로님 수용소에 구금하기 시작했다. 이 법은 최대 3년까지 재판 없이 난민을 구금할 수 있게 했다. 이스라엘 대법원은 2013년 9월 이 법을 위헌으로 판결했다. 법원은 난민협약과 이스라엘 국내법에 의거해 강제 추방할 수 없는 난민을 12월 15일까지 석방하라고 명령했다. 이스라엘 정부는 꼼수로 대응했다. 크네세트는 법원이 정한 기한을 5일 남긴 12월 10일 새로운 '침입자 법'을 통과시켰다. 이 법은 정부가 새롭게 만든 '개방형 수용소'에 난민을 최대 1년까지 재판 없이 구금할 수 있게 했다. 새로운 법에 따르면 수용소의 규칙을 어기거나 '국가안보' 또는 '공공질서'를 위협한 망명 신청자는 사하로님의 폐쇄적 수용소에서 12개월까지 구금될 수도 있다. 사실상 무기한 구금이 가능하다. '개방형 수용소'의 규칙은 '개방형'이라는 이름에 걸맞지 않다. 밖으로 나갈 수 있다고 하지만 65㎞ 떨어진 베르셰바까지 수용소가 제공한 버스를 이용해서만 가능하다. 게다가 수용소 수감자는 하루 세 번 사무소에 보고해야 한다. 밤에는 떠날 수도 없다. '폐쇄형 수용소'와 다를 바 없는 처지다. 휴먼라이츠워치 난민조사 책임자 게리 심슨은 "당신이 만약 사막 한가운데서 일거수일투족을 무장한 경비원에게 감시당하며 오직 한 시간 거리의 마을을 방문하는 것만 가능하고, 그것도 보고를 위해 그 즉시 되돌아와야만 한다면 당신은 자유롭지 못하고 구금된 상태에 있는 것"이라고 이스라엘의 꼼수를 비판한다.

이러한 이스라엘의 조치는 난민 보호를 위한 국제사회의 노력을 정면으로 어기는 것이기도 하다. 유엔은 1951년 '난민의 지위에 관한 협약', 1967년 '난민의 지위에 관한 의정서'를 총회에서 채택해 난민을 보호하고 있다. 난민협약은 난민의 체류국 내에서의 '이동의 자유'를 인정하고 있다. 또한 법에서 정하지 않은 방법으로 입국했을지라도 형벌을 받지 않고 필요 이상의 제한을 받지 않을 권리를 보장하고 있다. 이스라엘 정부는 난민의 '이동의 자유'를 제한하고,  재판을 거치지 않고 형벌과 다를 바 없이 수용소에 구금하고 있다. 협약이 금지한 강제 추방과 모국으로의 송환도 시도하고 있다. 내전 중인 남수단과 권위주의적 지배로 고통받는 에리트레아로의 송환은 난민의 목숨을 실질적인 위험에 처하게 할 것이다. 이 난민협약에는 124개 나라가 동시에 가입해 있다. 이스라엘도 124개 나라 중 하나다. 그럼에도 이스라엘은 난민의 망명 신청을 심사하지 않는 등 이 협약에서 규정한 모든 난민의 권리를 부정하고 있다.

국제사회와 대법원의 판결에도 정부의 반응은 강경하다. 네타냐후 총리는 난민들이 "그곳
[홀롯 수용소]에 머무르거나 자신의 나라로 돌아가야 한다"고 말했다. 이민을 담당하는 고위 관계자는 자신들의 목적이 강제 추방임을 숨기지 않는다. 3월 초 내무부 장관은 난민을 '침입자'로 부르며 이들을 구금하고 잠잠해질 때까지 [그들을 수용할 것으로] 확인된 제3국으로 추방할 계획을 이스라엘 언론에 털어놨다. 지난해 12월 이민국은 난민에 대한 체포와 단속을 시작했고 내무부는 비자를 갱신하면서 임시 체류 허가서[conditional release visa]를 받은 이들에게 홀롯 수용소 입소를 명령했다. 정부는 에리트레아인과 수단인이 일하고 있는 기업들에 압박을 가하기 시작했고 지자체는 아프리카인이 소유한 가게와 식당을 폐쇄했다. 구금과 추방에 대한 공포가 텔아비브 남부의 아프리카인 공동체를 휩쓸면서 행동이 촉발됐다.


파업 이틀 째인 6일에는 미국 대사관 등 외국 공관 앞에서의 시위와 거리 행진이 이어졌다. 미 대사관 앞 카페 2층에서 한 남성이 난민들의 시위를 응원하는 팻말을 들어보이고 있다. [사진 Activestills.org]

확대되는 저항과 연대, 이스라엘 흔들다

이스라엘 정부는 새 침입자 법에 따라 사하로님 수용소의 난민을 12월 12일 홀롯 수용소로 이동시키기 시작했다. 사하로님 수용소에 구금돼 있던 1000여 명 중 480명이 우선 홀롯 수용소에 수용됐다. 홀롯 수용소의 열악한 처지는 5일 시작된 난민 총파업의 도화선이 됐다. 시위는 사막을 걸어서 탈출해 지난해 12월 17일 예루살렘까지 왔던 150명이 체포되면서 시작됐다. 17일의 시위는 아직 작은 규모였다. 이 시위가 이스라엘 정가를 뒤흔들 정도로 성장한 것은 그 주 토요일, 21일 텔아비브 남부의 레빈스키공원에서 열린 시위부터다. 2시간30분정도 진행된 이날 시위는 활기와 자신감으로 가득차 있었다. 6000여 명의 시위대는 경찰의 방해에도 불구하고 이스라엘 제1의 도시인 텔아비브 거리를 행진하며 '자유'를 목청껏 외쳤다.

에리트레아인과 수단인은 새해를 맞아 항의시위를 확대하고 있다. 4일 레빈스키공원에 수천 명이 모여 5일부터 사흘 간의 총파업을 결의했다. 파업과 거리행진, 외국 공관 앞에서의 항의 시위 등 다양한 시위들이 계획돼 진행되고 있다. 난민지위와 처우의 개선을 요구하는 이들의 목소리는 이스라엘 시민사회에도 작은 반향을 만들어내고 있다. +972 매거진에 따르면 적어도 두 명의 크네세트 의원이 5일 총파업 집회에 참여해 지지의 뜻을 밝혔다. 크네세트 이주노동자위원회 위원장인 미크할 로진
[메레츠당ㆍ이스라엘 시온주의 좌파 정당. 사회민주주의적 성향으로 2013년 총선에서 6석을 얻었다]은 "이제 행동할 때입니다. 죄 없는 수 만명이 수감돼선 안됩니다. 함께 일어나 외칩시다. '우리는 범죄자가 아닙니다'"고 연설했다. 에리트레아인과 수단인을 고용한 어떤 식당은 파업을 지지하기 위해 영업을 중단하기도 했다.

제국주의의 경비견으로 아랍 국가들을 견제해온 이스라엘은 자국 내에서도 권위주의적 지배를 유지해 왔다. 팔레스타인인에 대한 차별과 분리ㆍ고립 정책이 대표적이다. 이스라엘이 팔레스타인을 향해 세운 분리장벽이 전혀 예상치 못한 곳에서 균열을 드러내고 있다. 혼란에 빠진 동아프리카 국가들에서 탈출한 난민이 이집트 국경을 넘어 이스라엘에 유입되고 있다. 이들 다수는 지중해를 건너 유럽으로 직항하려다 목숨을 잃기도 한다
[지난해 10월 튀니지에서 이탈리아로 가는 길목의 람페두사 섬 앞바다에서 아프리카 난민 500명을 태운 배가 침몰해 194명이 사망하고 150여 명이 실종됐다]. 이들 21세기의 난민 물결이 가장 견고한 인종주의 국가의 정치에 균열을 일으키고 있다. 하가이 마타르[이스라엘 언론인이자 정치 활동가]는 +927 매거진에 기고한 글에서 "구금에 대한 저항과 단결할 권리에 대한 요구는 더 이상 정치적 논쟁의 대상에만 머물 수 없다. 이제 정치권의 과제가 됐다"며 난민들의 저항에서 "시민 불복종의 하나로써 정치적 행동주의의 새로운 양식"을 발견할 수 있다고 말한다. 이스라엘 정부는 중요한 인구 집단으로 부상하고 있는 이들 아프리카 난민에 대해 팔레스타인인에 대한 것과 같은 장벽을 세우려 하고 있다. 이 두 번째 장벽이 세워지기 전 첫 번째 장벽 안쪽의 사람들과 연대할 수 있다면 이스라엘의 견고한 지배체제는 예사롭지 않은 폭풍우를 마주치게 될 것이다.

참고할 만한 글
●유엔 난민협약: 난민의 지위에 관한 협약(1951), 난민의 지위에 관한 의정서(1967)
●+927 Magazine: 프리즌 브레이크… 아프리카 난민의 정치적 목소리
●+927 Magazine: 난민 총파업, 텔아비브 역사상 최대 규모 시위


6일 이스라엘 유엔난민기구(UNHCR) 책임자인 발푸르가 엥겔브레히트(오른쪽)가 텔아비브 사무실 앞에서 망명 신청서를 손에 쥔 난민과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사진 Activestills.org]


2013년 12월 28일 아프리카 난민들과 이스라엘 활동가들이 모든 난민의 석방과 난민지위 인정을 요구하며 시위를 하고 있다. [사진 요탐 로넨/Activestills.org]


※ 이스라엘 난민 상황에 대한 이해를 돕기 위해 휴먼라이츠워치 홈페이지의 기사를 아래 옮깁니다. 의역이 많고 오역이 있을 수 있습니다.

이스라엘은 위선적 구금 정책을 중단하라
2013년 12월 18일, 휴먼라이츠워치

(텔아비브) 이스라엘 당국은 대법원의 명령에도 불구하고 에리트레아인과 수단인 망명 신청자 수백 명을 실질적으로 구금하고 있다. 150명 이상의 이주민이 이동을 제한하는 규칙을 무시하고 네게브 사막에 있는 그들이 '개방형 수용소'라고 부르는 곳으로부터 탈출해 예루살렘까지 행진하며 시위를 벌였다. 2013년 12월 17일 예루살렘의 크네세트 앞에 도착한 그들은 그곳에서 경찰에 의해 체포됐다.

대법원이
[지난해] 9월 사하로님 수용소 인근에 난민을 구금하는 것은 불법이라고 판결한 후 이스라엘 정부는 네게브 사막에 대부분이 망명 신청자인 에리트레아와 수단 출신 수백 명을 수용할 홀롯 소용소를 건설했다. 이주민이 홀롯에 살려면 하루에 세 번 인증해야 하는 것은 물론 밤에도 그곳에 남아있어야 하는 등 실제로는 구금과 다름없다고 휴먼라이츠워치는 말한다.

휴먼라이츠워치의 난민조사 책임자 게리 심슨은 "이스라엘 당국이 이 사람들을 구금할 새로운 방법을 찾은 것 같다"고 말한다. "정부는 대법원 결정에 따리 이러한 대규모 제한조치가 구금이 아닌 것처럼 위장하는 가식을 그만두고 진정으로 이들을 풀어줘야 한다."

국제법과 유엔 가이드라인에 따르면 이스라엘 정부는 집단이 아닌 개인적 차원에서만 안보와 같은 합법적 목표 달성을 위한 엄격한 필요와 균형잡힌 조치를 통해 오직 마지막 수단으로써만 망명 신청자들을 구금할 수 있다.

12월 12일 당국은 사하로님에 구금돼 있던 1000명 이상의 아프리카인 이주민 중 480명을 홀롯으로 이동시켰다. 이스라엘 국방부는 홀롯
[수용소]을 건설하고 이스라엘 교도소는 망명 신청자와 그 밖에 수용자들을 감시한다. 수용소는 4m 높이의 담장과 네게브 사막에 둘러싸여 있다. 당국은 이주민이 가까운 마을, 이를테면 65㎞ 떨어진 베르셰바에 갈 수 있는 특별 버스를 제공할 것이라고 밝혔다.

2012년 6월 초 정부는 대부분 에리트레아와 수단 출신인 망명 신청자 2000여 명을 사하로님 수용소에 구금하기 시작했다. 대부분 모국에서의 박해를 피해 망명을 신청한 이들 다수는 이스라엘로 오던 중 이집트의 악덕 상인들에게 심한 괴롭힘을 받았다. 2012년 중반
[만들어진] 이스라엘의 새로운 법은 당국이 '침입자'를 최대한 3년까지, 그 어떤 개선의 여지없이 구금할 수 있도록 허락했다. 이스라엘은 '침입자'를 망명 신청자를 포함해 국경수비대 사무실을 통하지 않고 규칙에 어긋나게 입국한 모두로 정의했다.

이스라엘 대법원은 모국에서 신체의 자유를 위협받기 때문에 이스라엘 기본법에 의해 강제 추방할 수 없는 외국 국민의 장기간 구금에 대한 2013년 9월 판결에서 2012년 법을 폐지했다. 법원은 당국이 합법적으로 추방할 수 없는 모두를 석방할 시한을 2013년 12월 15일까지로 정했다.

정부는 이를 즉시 시행하지 않았고 10월 이스라엘 난민 담당 부서는 법원 명령을 무시할 방법을 모색했다. 그래서 당국은 겨우 700명을 넘는 수용자만 석방했다. 입법부는 새로운 법에 몰두해 2012년 10월 의회는 새롭게 들어오는 '침입자'를 1년 이상 구금할 수 있고 여기에 더해 2012년부터 구금된 '침입자'들을 '주거 중심시설'로 이동시킬 수 있는 권한을 정부에 주는 법을 만들어냈다.

새 법은 주거시설의 규칙을 위반-또는 이를 계획-하거나 '국가 안보' 또는 '공공의 안녕'을 위협한 망명 신청자를 정부가 사하로님 수용소에 12개월까지 구금할 수 있게 했다.

크네세트 내무환경위원회 의장인 미리 레게브는 12월 15일 정부가 예루살렘을 향해 행진해온 사람들을 하루에 세 번 인증해야 하는 의무를 다하지 않고 며칠 간 홀롯 수용소를 떠난 '새 법을 파괴한' '침입자'로 보고했다고 말했다. 이스라엘 일간지 하아레츠에 따르면 그녀는 "그들이 예루살렘에 도착했을 때 경찰이 그들을 위해 바로 폐쇄된 시설로 보내는 것을 기다려주길 바랐다"고 말했다.

12월 10일 법은 만약
[홀롯] 거주자가 규정된 만큼 보고하지 못하면 당국은 그를 48시간 후 수용소로 이송할 수 있도록 했다.

심슨은 "당신이 만약 사막 한가운데서 일거수일투족을 무장한 경비원에게 감시당하며 오직 한 시간 거리의 마을을 방문하는 것만 가능하고, 그것도 보고를 위해 그 즉시 되돌아와야만 한다면 당신은 자유롭지 못하고 구금된 상태에 있는 것"이라고 말한다.

유엔인권위원회는 누군가가 '특정하게 국한된 지역'에 제한돼있을 땐 언제나 구금된 것으로 말한다.
[2013년] 3월 휴먼라이츠워치는 이스라엘의 구금 정책이 에리트레아와 수단 출신의 구금자에게 그들을 모국으로 되돌려 보내는 데 대한 동의를 강제로 얻는 것을 목적으로 한다고 발표했다. 2월 25일 유엔난민기구(UNHCR)는 이스라엘이 구금된 에리트레아인을 "어떤 기준에서도 자발적이라고 할 수 없는 투옥하겠다는 최후통첩 하에 에리트레아로의 귀환"에 동의하게끔 압박했다고 비판한다.

이스라엘 당국에 따르면 2006년 이래 비합법적인 방식으로 입국한 에리트레아와 수단 출신 사람들 5만 명이 이스라엘의 도시에 살고 있다. 이스라엘은 비공식적으로 그들의 추방을 유보하고 있지만 고위 관계자는 반복해서 그들을 강제 추방하겠다고 위협하고 있다. 3월 초 이스라엘 언론은 내무부 장관은 그와 같은 모든 '침입자'를 구금하고 잠잠해질 때까지
[그들을 수용할 것으로] 확인된 제3국으로 추방할 계획을 털어놨다.

수단과 에리트레아 사람들이 모국으로 돌아간다면 실질적 위험에 직면한다. 수단의 법에 따르면 이스라엘을 방문한 누구라도 10년 이상 수감될 위험에 직면한다. 그리고 수단 정부는 법원이 그 법을 적용할 것이라고 말해 왔다. 에리트레아의 무기한 병역을 기피한 데 대한 처벌과 연관된 거의 확실한 박해 때문에 전 세계 에리트레아 출신 망명 신청자의 90%는 어떤 형태로든 보호를 제공받는다. 몇 년 간 이스라엘은 에리트레아와 수단 사람들의 망명 신청 처리를 거부해 왔다. 2월 당국은 망명 신청 등록을 시작했지만 여전히 대개의 경우는 판결에까진 이르진 못했다.

심슨은 "이스라엘 정부는 그 자신의 대법원과 국제적 의무를 거부하는 대신 당국이 망명 신청자에 대한 심사를 진하는 동안 그들을 풀어주고 되돌아갔을 때 심각한 위험에 처할 그 누구라도 보호해줘야 한다"고 말했다.


철도노동자 투쟁에서 용기를 얻은 청년들이 교학사 역사왜곡 교과서 채택에 반대해 행동에 나서고 있다. 박근혜정부와 단호하게 싸우는 법을 철도노동자로부터 배운 학생들은 '안녕들하십니까' 대자보에 이어 자신이 있는 곳에서 부당함에 맞서 투쟁을 조직하고 작은 승리를 쟁취하고 있다. 2013년 12월 19일 서울광장에서 열린 철도파업 지지 촛불시위에 참여한 젊은 여성. [사진 自由魂]

지난해 12월 9일 시작한 철도노동조합의 파업이 30일 막을 내렸다. 22일 간의 대담하고 단호한 투쟁은 박근혜정부에 실망해온 대중에게 큰 자신감을 전해줬다. 꺼져가던 부정선거 규탄 촛불시위가 다시 불타올랐다. '안녕들하십니까'라고 묻는 대학생들의 자보는 안녕한 삶을 위한 연대를 건설하는 것으로 이어지고 있다. 이 물음은 중ㆍ고등학생들에게까지 확산됐다. 특히 교학사의 역사왜곡 교과서 채택을 둘러싼 투쟁을 다시 불붙였다. 동우여고와 청문여고 학생들에서 시작된 저항은 하루만에 학교 측의 후퇴로 끝났다. 노동자 투쟁이 일으킨 파문이 일반 민주주의적 쟁점에 활기를 불어넣었다. 철도노동자들이 박근혜정부에 맞서 싸우는 법을 대중에게 보여줬고, 대중은 자신의 위치에서 수 많은 작은 박근혜에 맞서 싸우기 시작했다.

미국에선 우리와 정반대로 사회운동이 노동운동을 자극해 성장시키고 있다. 2011년 9월 뉴욕에서 '점령하라' 운동은 학생, 예술가, 전문직 종사자, 실업자들이 중심이 돼 시작됐다. 참여한 인원이 절대적으로 다수는 아니었다. 그러나 이는 곧 노동자 투쟁에 대한 연대로 발전했고, 노동자들이 스스로 투쟁에 나서는 것으로까지 이어졌다. 2011년 11월 2일 오클랜드 시민들은 총파업을 벌여 항구를 봉쇄했다. 그 다음달 12일에는 롱뷰 부두노동자들에 연대한 항만 봉쇄가 시도되기도 했다. 2012년 9월 10일 시카고에서는 교사들이 25년 만에 파업에 들어갔다. 교육 민영화에 반대하는 파업이었다(이 파업은 결국 패배했다). 2012년부터는 월마트와 맥도날드 등에서 일하는 저임금 노동자 투쟁도 확산되고 있다. 2012년 10월 미국 전체 12개 주 28개 월마트 매장에서 파업이 벌어졌다. 이는 월마트 50년 역사상 첫 파업이다. 맥도날드 등 패스트푸드점에서 저임금으로 고통받고 있는 노동자들도 최저임금 인상을 위한 투쟁을 벌이고 있다. 2012년 11월, 2013년 8월, 12월…. 패스트푸드노동자의 파업도 계속되고 있다. 지난해 12월에는 100개 도시에서 동시에 파업이 벌어졌다.

한국에서는 노동운동이 사회운동에, 미국에서는 사회운동이 노동운동에 힘을 불어넣어주며 함께 성장하고 있는 것이다. 한국에서 전통적인 조직 노동자 운동은 민주주의의 위축에도 사회의 다른 부문보다 단호하게 투쟁을 조직하며 자신감을 전해준다. 이들의 투쟁은 한국 사회에서 여전히 가장 중요한 역할을 맡고 있다. 이와 함께 청년들이 운동에 새로운 활력을 불어넣고 있다. 특히 정규직 일자리가 줄어들고 취업연령이 높아지면서 편의점, 카페, 패스트푸드점, 프랜차이즈 레스토랑 등에서 일하는 저임금 '아르바이트'가 청년의 '노동'문제로 부각되고 있다. 저임금 노동에 종사하는 사람들의 연령이 높아지면서 이는 더 이상 청년 문제 만은 아니게 됐다. 지난해 마지막 날 박근혜 퇴진과 특검 실시를 요구하며 분신한 이남종(40)씨도 저임금 노동에 종사했었다고 한다(이를 두고 '생계 비관' 운운하며 고인의 뜻을 모욕한 보수 언론의 기사들은 역겹기 그지 없다).

그러나 이와 같은 저임금 노동 분야에서 투쟁을 조직하기는 쉽지 않다고 알려져 있다. 소수의 사람들로 여러 곳에 흩어져 근무하고 있고, 저임금이라는 조건 자체가 단호하고 단결된 투쟁을 어렵게 만든다. 월마트 노동자들의 50년 만의 파업과 지난해 10월 한국에서 최초로 알바노조가 단체협약을 체결했던 것이 관심을 받은 이유다. 그러나 이러한 조건에 있는 노동자 투쟁이 역사상 없었던 것은 아니다. 1937년 대공황의 한가운데서 벌어진 디트로이트 울워스 노동자 투쟁이 대표적이다. 모두가 여성인 이 소매점 노동자들은 법원의 해산 명령에도 불구하고 일주일 동안 매장에서 강력한 점거파업을 이어갔다. 연대와 점거파업의 확산으로 당대의 월마트라 할 울워스는 결국 항복해야만 했다.

한국에선 1987년 노동자 대투쟁 이후 점거파업이 파업의 일반적 형태였지만 역사적으로 보면 그렇지 않다. 정부의 강력한 탄압에 대한 우려로 철도노조는 지난해 12월 파업에서 점거를 시도하지 않았다. 철도뿐 아니라 다른 사업장에서도 정부의 탄압 때문에 점거파업은 쉽지 않다. 1930년대 이전까지 파업은 보통 작업장에서 물러나 공장과 사무실 앞에서 파업 파괴자(대체인력) 투입을 막기 위한 피케팅을 하는 것이 일반적이었다. 1936년 12월에서 1937년 2월까지 진행된 GM 노동자들의 플린트 공장점거파업의 승리가 점거파업을 노동자 투쟁의 가장 강력한 무기 중 하나로 부각시켰다. 모든 조건에서 점거파업이 가능한 것은 아니다. 상황에 따라 파업전술은 유연할 수도 있다. 그렇지만 80여년 전 젊은 여성 노동자들의 단호한 투쟁은 우리에게 어떤 가능성과 영감을 전해줄 것이다. 마크 노튼이 2012년 나온 '파업 여성들, 매장을 점거하고 결국 승리하다(Women Strikers Occupy Chain Stores, Win Big: The 1937 Woolworth's Sit-Down)'를 소개한 글을 아래 옮긴다. 이 소책자는 역사학자 다나 프랭크가 썼다. 마크 노튼은 '유나이트히어!'와 '세계산업노동자연맹'의 조합원이다.

※ 의역이 많습니다. 오역이 있을 수 있습니다. 글 아래의 각주는 이해를 위해 옮긴이가 단 것입니다.


1937년 디트로이트 슈퍼마켓 연좌농성:
오늘날 저임금 파업 노동자를 위한 교훈, 마크 노튼*, 2013년 12월 11일

1937년 울워스는 오늘날의 월마트와 같은 것이었다._1 이회사는 주로 젊은 여성인 저임금 노동자에 의해 운영되는 전국적 점포망을 만들어 소매 시장을 변화시켰다. 값싼 음식을 판매하던 이 매장의 간이조리매장은 어떤 면에서 오늘날 거대 패스트푸드 기업의 선구자였다.

그렇기에 우리는 디트로이트 울워스 점거파업의 성공으로부터 오늘날 비슷한 상황의 저임금 노동자들에게 도움이 될 어떤 이야기를 들을 수 있다. 블랙프라이데이와 12월 5일의 월마트와 패스트푸드 노동자 파업 여파로 이 운동이 어디로 가야 하는가를 물어야할 때가 됐다. 목표는 무엇인가? 장기간의 투쟁에 노동자들이 계속 조직될 수 있을까? 우리는 승리를 향해 가고 있는 것일까?

디트로이트 연좌농성은 당시 전국적인 흥분을 불러일으켰다. 역사학 교수 다나 프랭크는 최근 발행한 소책자에서 이 역사와 그것의 교훈을 부활시키고자 한다.

범상찮은 토요일

"1937년 2월 27일 언뜻 보기에 가장 평범했던 토요일, 미국에서 가장 평범해 보이는 디트로이트 시내에 있는 붉은 벽돌로 만들어진 4층 건물에 있는 울워스의 5~10센트 상점
_2에서…"라는 말로 프랭크는 이야기를 시작한다.

"다른 울워스 매장이 그렇듯 이 매장도 붉은색과 초록색의 장식으로 꾸며져 있었고 굵고 큰 글씨의 체인점
[울워스] 간판이 앞에 걸려 있었다." 기업의 브랜드를 그와 같은 방식으로 표시하는 것은 당시에는 새로운 일이었다. 오늘날은 매우 흔한 일이지만 말이다.

그러나 '가장 평범한 토요일'은 아니었다. 바로 며칠 전 디트로이트 북부 플린트에서 GM 자동차 노동자들이 법원의
[공장을] 떠나라는 명령을 무시한 채 경찰의 공격에 맞서 싸우며 몇 주간 공장을 점거한 후 역사적 승리를 쟁취했다.

실제로 정부가 파업 노동자들을 보호하기 위해 주방위군을 보낼 정도로 노동자들은 많은 공감과 지지를 얻었다. 결국 GM은 굴복하고 이제 막 태어난 전미자동차노동조합(UAW)을 인정해야만 했다. 자동차 노동자들은 UAW로 몰려들어 그들
[아마 UAW]과 새로운 산업별노동조합회의(CIO)가 더 큰 승리로 나가는 데 도움을 줬다._3

울워스에는 "저가의 작은 상품들이 어마어마하게 많았다. 이를테면 머리빗, 뜨개질 바늘, 전등갓, 옷핀, 파이 접시, 얼굴 크림, 빳빳한 새 신발끈 같은 것들 말이다. … 가게 이름처럼 단지 5센트 혹은 10센트일 뿐이라고 … 단정하게
[가격이] 인쇄된 표시가 고객을 안심시키기 위해 가게 전체의 모든 상품에 달려 있었다. … 백인 고객들은 간이조리매장에서 얼마든지 바나나 스플릿을 즐길 수 있었다."

매장에서 일하는 여성들은 당연히 그들이 근무하는 곳이 어떻게 돌아가는 지를 잘 알았다. 회사 설립자인 프랭크 울워스는 퉁명스럽게 말했다. "우리에게 저렴한 종사자가 없었다면 값싸게 상품을 팔 수 없었을 것이다." 빙 크로스비의 히트곡 중 하나는 이에 대한 멋진 반박이 될 것이다. "나는 5~10센트 상점에서 100만달러짜리 물건을 발견했지~"

파업, 소녀, 파업!

토요일 아침 빈약한 급료를 받던 디트로이트 울워스의 젊은 여성들은 의심할 여지없이 마음속에 플린트의 승리
[GM 노동자의 공장 점거파업 승리]를 떠올렸다. 그 때 "디트로이트 식당 종업원ㆍ여급 노동조합 조직자인 플로이드 뢰브는 매장 1층의 한가운데로 성큼성큼 걸어가 … 호루라기를 가능한 크게 빽하고 불었다. 그리고 외쳤다. '파업! 파업!'(또 다른 보도에 따르면 '파업, 소녀, 파업!')"

"매장의 여러 곳에서 목소리가 울려퍼지고 함성이 터져나왔다. 간이조리매장의 하얀 유니폼을 입은 여성들이 처음으로 작업을 멈췄다. 그들은 매장의 통로를 통해 빠르게 이동했다. 곧 매장 3개 층의 모든 여성노동자들이 각자의 계산대에서 물러나거나 부엌에서 뛰쳐 나왔다. 그들은
[계산대와 조리대에서] 손을 떼고 작업을 멈췄다."

디트로이트뉴스에 따르면 "금전등록기의 쨍그렁거리는 소리가 그쳤다. 손님들은 5센트 또는 10센트 동전을 손에 쥐고 있어봤자 소용 없음을 깨닫고 당황했다. … (그러나) 어떤 소녀도 손님을 기다리려주지 않았다."

몇 분이 지나자 매장 관리자가 나타났다. 창고관리 소년까지 포함해 모든 여성들은 회의실로 안내받았다.

파업 참가가자들은 관리자에게 요구사항을 제시했다. 노동조합 인정, 현 25센트인 시급을 10센트 더 올려줄 것, 일일 8시간 노동, 일주일 48시간 근무 외에는 1.5배 지급, 간이조리매장 노동자에게 점심식사 식대 50센트, 자유로운 유니폼과 세탁, 선임권
_4, 노동조합을 통한 신규 고용, [파업에 대한] 보복의 금지.

관리자는
[노동자들에] 에워싸여 우물댔다. 하지만 아무것도 약속하지 않았다. 그래서 파업 참가자들은 그들의 요구가 들어질 때까지 매장 점거를 계속하기로 했다.

프랭크는 "108명의 평범한 젊은 여성이 위대하고 놀라운 일을 해냈다. 그들은 정확히 대공황의 한가운데서 파업을 한 것 뿐 아니라 미국에서 가장 큰 초국적 기업 중 하나의 사유재산을 점거했고 떠나라는
[법원의] 명령을 승리할 때까지 거부했다"고 쓰고 있다.

"이것은 고전적인 점거파업이다. 그러나 파업 참가자 모두가 공장의 남성이 아니라 다양한 매장에서 일하는 여성이었던 것은 처음이다. 시간이 흐르면서 이 여성들과 파업에 전국적 관심이 집중됐다. 그들은 세기적인 소비의 상징이고, 다섯 개 나라에 2000개의 매장을 지닌 가장 큰 기업 중 하나와 대결한 것이다. 이는 월마트, GAP, 맥도날드 모두에서 동시에 파업에 들어간 것과 같다."

계속된 조직

프랭크는 당시 여성들이 매장의 주방을 이용해 음식을 준비하고, 매트리스를 가져오고, 청소용품을 이용해 매장을 깔끔하게 유지하고, 가끔은 그들 스스로를 위해 사탕과 진통제를 사용하는 등 꽤 열심히 모두가 참여해 그들 스스로를 조직한 방법에 대해 말해준다. 매장의 전화 세 대는 친구와 지지자, 언론과 통화를 위해 사용됐다. 그들은 심지어 '응원위원회'를 만들기도 했다.
[이 위원회는] '처음엔 [점거파업에 대한] 비난을 감시하기 위한 것이었고, 곧 모든 비난이 사라졌다'.

파업이 시작되고 이틀이 지난 월요일, 호텔ㆍ식당 노동조합 705 지역 조직자인 미라 코마로프는 몇몇 노동자들과 함께 두 번째로 디트로이트 시내에서 위축된 울워스
[사측]를 만났다.

오래지 않아 두 번째 매장 점거됐다.

그날 밤, 705 지역의 사무국장이자 회계 담당자인 루이스 쾨니그는 울워스를 위협했다. 그는 만약 파업이 다음 토요일까지 해결되지 않는다면 전국의 모든 울워스 매장에서 진행될 "연좌농성 선언을 우리 조합 집행위원회에 요청할 것"이라고 말했다.

쾨니그가 이렇게 말한 것은 꽤나 놀라운 일이었다. 그는 시내의 약간 큰 호텔과 상류층 클럽에서 일하는 600명의 노동자가 가입한 노동조합을 이끄는 '전형적인 보수적 비즈니스 노동조합주의자'
_58로 알려졌었다. 그러나 시대는 과격한 연설을 끌어냈고 그는 기꺼이 그렇게 했다.

곳곳에서 답지한 연대

파업이 확산되면서 연대 활동도 맹렬히 속도를 올렸다. 아주 많은 수의 지역 호텔 노동자들이 참여하는 정기적인 피케팅이 매장
[앞]에서 조직됐다. 전국의 노동자 지도자들 사이에 지지의 표현이 확산됐다.

파업 여성 노동자들에 환호하는 전보가 전국에서 쇄도했다. 음식과 물품, 여성용품을 마련하는 데 쓸 모금도 이어졌다. 신문은 이 소식을 주요 뉴스로 전했고 극장에서는 뉴스영화가 상영됐다. 사람들은 파업에 대한 이야기를 나눴다.

화요일 뉴욕의 국제소매점원보호조합
_6은 기금 지원을 약속하며 노동조합은 "파업이 끝날 때까지 뉴욕의 울워스 매장에 대한 불매운동"을 쾨니그가 [협상의 마지노선으로] 선언했던 토요일 시위에서 시작할 것이라는 전보를 보내왔다.

디트로이트에서 다른 서비스 노동자들도 행동에 들어갔다. 스토우퍼스
_7의 여성종업원과 주방 노동자 60명은 화요일 점심식사가 한창인 때 그들이 일하던 식당을 점거했다. 하일러_8 식당 노동자들은 피셔 빌딩에서 연좌농성에 들어갔고 출입구에는 바리케이트를 설치했다. 아쉽게도 프랭크는 이 행동들의 결과에 대해서는 말해주지 않는다.

그러는 동안 지역 상점주들은 더 많은 연좌농성을 막기 위해 스스로 임금을 올려주던 것을 중단했다.

수요일 울워스는 마침내 협상에 동의했다.
[파업] 노동자들은 쾨니그와 요리사노조의 루이스 월터, 소매점원조합의 루이스 솔터를 대표로 내세웠다. 이들은 모두 남성이었다. 파업 노동자 중 누구도 뽑히지 않았다. 울워스는 뉴욕의 어떤 거물을 보내왔다.

금요일 오후 5시30분, 파업을 확대하고 뉴욕에서 불매운동을 벌이겠다고 경고한 시한인 토요일을 간신히 넘기지 않은 파업 6일째 울워스와 노동조합은 합의를 발표했다.

승리

"파업은 의심할 여지없이 완전하고 명백하게 승리했다"고 프랭크는 쓰고 있다. "그들은
[유니폼의] 세탁을 포함한 요구사항의 긴 목록 전체를 쟁취했다. 우선 회사는 모든 여성 노동자의 시간당 급료를 5센트 인상하는 것에 동의했다. … 모두는 주당 48시간 외 근무에 대한 1.5배 지급을 얻어냈다. 신규고용은 앞으로 노동조합을 통해서만 하기로 했다. 유니폼은 회사가 공짜로 제공하고 세탁까지 해주기로 했다. …"

"그 중 가장 놀라운 것은 그들이 매장을 점거한 동안 평상시 시급의 50%를 지급받기로 한 것이다(아마 하루 24시간에 대한 지급은 아니겠지만). … 게다가 합의안은 단지 점거파업이 이뤄진 두 개 점포만이 아니라 도시의 40개 매장 모두에 적용됐다."

울워스는 조합원이 비조합원을 괴롭히지 않겠다는 약속만 얻어냈을 뿐이다.

합의안에 대한 뉴스가 전해지면서 두 매장의 파업 노동자들이 주요 매장 안에 모여들었다. 그들은 기뻐하고 환호했다. 그들이 밖으로 나왔을 때 1000명 이상의 사람들이 인도를 가득 채우고 있었다. 그들은 쾨니그가 합의안을 낭독하는 지역 호텔로 행진했다. 그는
[합의안에 대한] 투표 요청에 개의치 않았다. 다른 누구도 [투표에] 관심을 갖지 않았다.

프랭크는 이어서 "울워스는 토요일에 특별 세일을 발표했다"고 적고 있다.

울워스의 파업은 이를 따라한 행동들로 이어졌다. 디트로이트, 세인트루이스, 뉴욕, 샌프란시스코, 오하이오주 애크론, 위스콘신주 슈피리어, 미네소타주 세인트폴과 덜루스, 워싱턴주 터코마와 센트레일리아의 소매점에서 점거파업이 일어났다. 프랭크는 "오늘날 전국에 있는 모든 노동조합의 존재는 부분적으로 울워스의 파업 덕"이라고 말한다.

그녀는 이렇게 요약한다. "어느날 디트로이트에서 점거파업에 들어가기로 결정한 이 108명의 매우 젊은 여성들은 모두 평범한 젊은 여성이었다. 그 투쟁이 빛났던 것은 신화적 영웅이 아니라 주요 프랜차이즈 매장을 7일 간 하루 24시간 점거해보기는 커녕 파업의 경험도 없는 젊은 여성들이 이끌었기 때문이다."

"그들은 당대 가장 큰 기업 권력 중 하나와 맞서 이겼고, 다른 수십 만 명의 점원들-과 이 파업을 알게 된 다른 사람들-이 그들의 권리를 지키고 최저임금을 요구하기 위해 일어서는 데 (또는 연좌농성에 들어가는 데) 영감을 불어넣었다. 그리고 그들은 오만한 울워스 사측에 큰 교훈을 줬다.

교훈?

프랭크는 다른 무엇보다도 "그들이 대담해졌고 스스로를 신뢰"했기 때문에 울워스 노동자들이 승리했다고 생각한다. 나는 여기에 대담함과 밀접하게 관계있는 용기를 추가할 것이다.

그녀는 또 "그들은 거대한 집합적 힘을 배후로 뒀기 때문에 승리했다"며 "예를 들면 (플린트의) GM 노동자들, 여론의 힘, 시장과 정부로부터의 중립, 지지자 수천 명의 극적인 연대"를 꼽았다.

몇몇은 이와 같은 조건이 오늘날 노동운동에도 존재한다고 주장한다. 많은 이들은 저임금에 시달리는 월마트와 패스트푸드점 노동자들이 플린트
[의 GM] 노동자들과 같은 사례를 만들 수 있기를 바란다. 물론 아직은 아니다.

그들에게 유리했던 조건에서조차 울워스의 승리는 순식간에 지나갔다.

프랭크는 에필로그에서 디트로이트 울워스 노동자들은 1937년 10월 재계약을 하면서 노조협약을 잃었다고 적고 있다. 그들이 승리한 지 불과 몇 개월 안됐을 때였다.

프랭크는 "매장에 남은 몇몇 여성에 따르면 경영진은 계획적으로 그들을 노동조합을 지키기 위해 싸우지 않을 반노조적 노동자와 교체했다." 여기에는 노동조합을 통한 채용 요구가 포함된 합의안을 강제하는 데 노동조합이 왜 실패했는지를 포함해 명백한 이유가 있다. 노동조합이 어쩔 수 없이 마지못해 몰두해야만 했던 울워스 사장의 반노조 활동, 일시적 성격의 저임금 노동이 그들에게 어떻게 타격을 입혔는지 떠올리는 것은 어렵지 않다.

그후로 모두가 행복하게 살았습니다는 식의 동화와 같은 이야기는 잠시 뿐이었다. 오늘날 디트로이트에서 승리가 결코 끝이 아니라는 것을 이해한다는 것은 노동계급 사람들에게 악몽으로 보일 뿐이다. 적어도 자본주의가 지배하는 동안은 말이다.

얄궂게도 울워스 간이조리매장은 1960년대 흑인 주민과 그들의 동조자들이 그곳에서
[흑인이 백인과의 차별 없이] 식사할 권리를 위해 벌인 연좌농성 등 또다른 성공한 투쟁 현장이 됐다. 투쟁은 승리했고 이렇게 [1937년 연좌농성에서] 전달받은 지혜는 이어졌다. 그러나 오늘날 디트로이트를 다시 살펴보면 흑인의 80%는 민권운동의 승리에도 불구하고, 심지어 흑인이 대통령으로 백악관에 입성했음에도 불구하고 그러한 평가보다 많이 모자란 [처지에 놓인] 것처럼 보인다.

노동자와 착취받는 인민이 곳곳에서 저항하고 있다. 노동조합ㆍ활동가ㆍ정치조직이 있든 없든 저항은 일어난다. 반란은 피할 수 없는 현실이다. 그러나 반란을 승리로 만들고, 승리를 유지하기 위해서는 전망과 용기를 지닌 조직을 만들어야 한다. 그것은 페이스북에 글쓰는 것, 트위터에서
[소식을] 전하는 것, 언론 보도와 여러 매체에서의 선전 이상의 것을 뜻한다.

울워스 파업 참가자들은 어렵지만 잘 싸웠다. 그들은 승리했었다. 그들의 대담함과 용기는 우리 모두에게, 특히 저임금 노동자에게 영감을 줄 수 있다. 그러나 승리를 지키기는 데 실패한 교훈으로부터 배울 필요도 있다.

* 마크 노튼은 유나이트히어!_9 2 지역, 1972년 출범한 샌프란시스코 호텔ㆍ식당 노동조합의 평조합원이다. 그는 세계산업노동자연맹(IWW)에 가입해있기도 하다. 그의 홈페이지는 www.MarcNorton.us다.

1_ 1879년 뉴욕주 유티카와 펜실베니아주 랭커스터에 세워진 염가 판매점. 1911년 경쟁업체 네 곳과 통합해 전국적인 점포망을 갖췄다. 1912년에 미국 전역에 596개의 매장이 울워스 이름으로 영업했다. 1998년 베나토르그룹으로 이름을 바꿨다.

2_ 한국의 1000원숍과 비슷한 저가 매장.

3_ 미국노동자협회(AFL)는 백인 숙련노동자 중심의 노동조합이었다. 1929년 대공황과 35년 만들어진 와그너법(단결권과 단체교섭권을 인정하고 최저임금제를 도입한)으로 AFL 내 일부에서 미숙련ㆍ반숙련 노동자까지 포함한 산업별 노조가 건설되기 시작한다. AFL이 이들 혁신파를 모두 제명하면서 1938년 탄광ㆍ의류ㆍ섬유ㆍ금속가공 등 8개 산업별 조직을 기반으로 산업별노동조합회의(CIO)가 결성된다. CIO는 한동안 진보적 노동운동을 대표했으나 메카시즘 열풍에서 예외는 아니었다. 1950년대 사회주의 계열 조직과 좌파 지도부가 축출됐고 결국 1955년 AFL과 다시 통합해 AFL-CIO를 만들어 오늘에 이른다. UAW는 1935년 설립됐다. 1968년 AFL-CIO를 탈퇴했다. 지금은 자동차뿐 아니라 헬스케어ㆍ카지노ㆍ항공우주산업 등에 종사하는 노동자들까지 포함하고 있다. 정식 명칭은 미국자동차항공우주농업기계노동조합(United Automobile, Aerospace and Agricultural Workers of America).

4_ 고용주가 해고할 때 근속년수가 오래된 사람의 권리를 존중해주는 고용관행. 해고는 근속년수가 짧은 노동자부터 순서대로 이뤄지고 복직할 때도 근속년수가 많은 사람부터 고용하는 것. 1930년대 발전했다.

5_ 비즈니스 노동조합주의는 노사협조와 특정 정치에 경도되지 않는 초당파주의, 사실은 사회주의 정치와의 거리를 핵심으로 한 미국의 보수적 노동조합 운동을 말한다.

6_ 1890년 AFL에 노동조합으로 인정받았다. 처음에는 전국소매점원보호조합(The Retail clerks' National Protective AssociationㆍRCNPA)으로 출발, 1899년 영국ㆍ콜럼비아ㆍ캐나다 지부가 승인되면서 국제소매점원보호조합(The Retail Clerks' International Protective AssociationㆍRCIPA)로 발전했다. 보통 국제소매점원노동조합(The Retail Clerks' International UnionㆍRCIU)으로 불린다. 1974년 의료 서비스 부문의 발달로 전문직종 본부가 생겼으며 1977년에는 부츠ㆍ신발노동조합이 병합돼 신발제조본부(The Footwear Division)가 설립됐다.

7_ 1914년 창립한 미국의 냉동식품 회사. 1973년 네슬레에 합병됐다.

8_ 미국의 사탕ㆍ식당 프랜차이즈 기업. 1883년 뉴욕 맨하탄의 사탕 공장으로 출발했다.

9_ UNITE HERE!. 미국과 캐나다에 26만5000명의 조합원을 둔 노동조합. 호텔ㆍ음식점ㆍ창고ㆍ카지노에서 일하는 노동자를 대상으로 한다. 2004년 유나이트(formerly the Union of Needletrades, Industrial, and Textile EmployeesㆍUNITEㆍ섬유ㆍ의류산업노동조합)와 히어(Hotel Employees and Restaurant Employees International UnionㆍHEREㆍ호텔ㆍ식당국제노동조합)가 합쳐 만들어졌다. 2005년 AFL-CIO를 탈퇴하고 승리를위한변화동맹(The Change to Win FederationㆍCtWㆍ2005년 AFL-CIO의 대안으로 건설됐다)에 참여했다.


12월 28일 서울광장에 모인 10만 명의 노동자는 단호하게 철도파업 지지를 선언했다. [사진 自由魂]

탑골공원에서 오후 2시에 열린 전교조의 사전집회부터 참여했다. 1000여 명의 조합원이 매우 좁은 장소에서 힘있게 사전집회를 진행. 참여한 전교조 조합원들의 열기는 매우 뜨거웠다. 사전집회 열기와 달리 서울광장까지 이동은 행진이 아닌 인도를 이용한 개별적 이동. 그러나 참여한 사람의 수가 있다보니 행진 아닌 행진. 산업은행 앞에서 대학생들의 '안녕들하십니까' 대열을 스쳐 지나가고 영풍문고 즈음부터는 건설노조의 연대파업 대열과 합쳐지면서 자연스럽게 거리행진으로 이어졌다.

30여분 쯤 지나 도착한 서울광장은 이미 집회에 참여한 사람들로 꽉차있었다. 족히 10만 명은 됐을 듯. 서울광장에서 서울시내로 향하는 도로마다 경찰의 차벽이 높게 서있었다. 경찰은 경찰버스가 모잘랐던지 관광버스까지 대절해 전국에서 모여들었다. 그러나 시위대는 위축되지 않았다. 가장 인상적인 대열은 건설노조.

집회가 중반쯤 지나면서부터 여러 노조가 이동을 시도했다. 사전에 중앙에서 계획된 것인지 각자의 의지인지는 모르겠으나 여러 방향으로 서울광장을 빠져나가 광화문을 향했다. 내가 향한 삼성 본관 앞 시위대에선 건설노조가 맨 앞을 차지하고 있었다.

전날 밤 정부는 이날 시위의 김을 빼기 위해 수서발KTX 법인 설립 면허를 발급했지만 시위대는 아랑곳 하지 않는 분위기였다. 김대중-노무현-이명박 정권 동안 여러번 정권 퇴진 구호가 나왔지만 이날처럼 자연스러웠던 적은 없는 것 같다. 정부가 강경한 상황에서 조직을 추슬리기 위해 일단 후퇴하자는 이야기가 트위터와 페이스북 등에서 나오고 있었지만, 그리고 전날 철도노조와 민주노총의 태도에서 그러한 머뭇거림이 보였지만 조직된 노동자들의 태도는 자신감으로 충만했다. 그래서였을까. 내가 있던 곳에서 경찰은 해산 명령을 '4차'까지 발했다. 보통은 '3차 경고' 이후 강경진압을 해왔던 것과는 사뭇 달랐다. 개인적으로 '4차 해산 명령'은 처음 들어봤다.

결국 이 투쟁의 해답은 여기 있다. 조직 노동자를 어떻게 동원할 것인가. 학생과 미조직 노동자들은 이미 충분히 그들의 의지를 보였다. 이제 민주노총으로 대변되는 조직 노동자들의 의지에 따라 이 투쟁은 더 확산될 수도, 가라앉을 수도 있다. 사실 가장 앞장서야할 것은 좌파 정치세력이지만 지금 상황에선 우선 민주노총에게 기댈 수밖에 없다. 민주노총 내 좌파의 건투가 필요하다.


26일 조계사에서 만난 박태만 철도노조 수석부위원장(왼쪽)과 최연혜 코레일 사장. [한겨레]

"기관사는 오히려 파업인원이 늘어나고 있다. 정부가 … 계속 탄압하려 하면
더 강도 높은 투쟁으로 전환할 수밖에 없으며 구체적인 방안을 논의하고 있다."
백성곤 철도노조 홍보팀장, 경향신문 12월 26일 6면

28일 시위에 대한 호응이 확산되면서 우파는 조금씩 분열되고 있다. 지만원이 박근혜를 버렸다는 주장이야 웃고 넘어갈 수 있지만 조선일보의 불만은 허투로 다룰 것은 아니다. 정부가 한사코 "민영화는 아니다"고 거짓부렁을 늘어놓자 조선일보는 "민영화는 안 하겠다는 말만 되풀이하다 보니 정부가 뭔가 떳떳하지 못한 일을 하려다가 물러선 게 아닌가 하는 인상마저 주고 있다"며 정부의 태도에 불만을 드러냈다. "정부가 노조 기세에 밀려 '민영화는 아니다'고 변명하는 사이 앞으로 공기업 민영화는 입도 뻥긋 못하게 돼 버렸다"는 것이다(조선일보 12월 24일 A35).

그렇다고 박근혜 정부가 탄압의 고삐를 놓지는 않을 것 같다. 해프닝으로 끝나버렸지만 전교조 위원장에 대한 구속영장 신청은 그 단초를 보여준다. 22일 진압작전의 무능력을 확인하고도 경찰은 당당하다. 정부와 경찰은 21일이 아닌 22일 일요일 진압작전을 실시함으로써 정부의 권위와 힘을 월요일 아침 언론을 통해서 스펙타클하게 보여주고자 했다. 이러한 시도, 즉 자신의 힘을 과시하려는 노력은 28일에도 다시 한 번 재개될 듯싶다. 왜냐면 경제의 회생이 아득한 상황에서 부르주아들이 양보할 여유가 거의 없기 때문이다. 일부 정책의 후퇴 혹은 임금인상, 노동조건의 개선 그 어떤 것에도 저들의 양보는 치명적 후퇴가 될 뿐이다. 조계사를 찾아 박태만 수석부위원장을 만난 최연혜 코레일 사장의 마뜩찮은 표정에서 양보는 전혀 없음을 미뤄 짐작할 수 있다. 게다가 최연혜 사장이 수석부위원장과 만난 지 30여 분 만에 현오석 부총리(기획재정부 장관)는 "정부는 투쟁에 밀려서 국민 혈세를 낭비시키는 협상은 결코 하지 않겠다"며 "타협을 통해서 해결될 수 있는 것이 아니다"고 대국민 담화를 발표했다
(한겨레). 강경책은 우파가 잡은 유일한, 하지만 썪었을 가능성이 높은 동아줄이다.

그럼 이런 정부와의 대치를 철도노조는 얼마나 버틸 수 있을까. 대중적 지지에도 불구하고 철도노조와 박근혜 정부의 대리전 양상은 계속되고 있다. 민주노총은 경찰의 강공에 총파업을 선언했지만 이것이 실질적인 총파업으로 이어질지는 아직 의문이다. 철도노조의 상황도 어렵다. 조합원들의 적극적인 참여에도 불구하고 산개투쟁을 펼치고 있기에 노조 지도부는 조합원과 분리돼 고립돼 있다. 산개투쟁은 조합원이 투쟁의 자신감을 지도부에 전달하는 걸 쉽지 않게 만든다. 한편 이러한 거리는 조합원이 지도부를 투쟁의 대열 속에 통제하는 걸 어렵게 만들기도 한다.

투쟁하는 평조합원과 분리된 노조 지도부는 조합원의 단결된 힘보다는 정치권ㆍ시민단체ㆍ종교계 등의 '중재'에 더 매력을 느끼기 쉽다. 수석부위원장이 조계사에 들어가 얼굴을 드러내고 26일 전격적으로 최연혜 사장과 만나게 된 것은 정부와의 대리전에 대한 부담감의 표현일 수 있다. 22일 경찰이 민주노총을 침탈한 후 사라졌던 김명환 위원장이 26일 저녁 다시 민주노총 사무실에 있음을 공식적으로 밝힌 것도 이런 불안감을 크게 한다. 한 번 침탈한 사무실을 다시 또 침탈하지 않을까. 결국 시민ㆍ사회 단체 또는 종교계가 어떤 '중재안'을 내놓았고 이 때문에 흔들리는 것은 아닐까? 물론 아직까지는 정부의 강경한 입장 때문에 중재안이 쉽게 제시될 수 있을 것 같지는 않다
(연합뉴스). 노조 지도부도 아직까지는 파업을 계속하겠다는 것을 분명히 하고 있다. 김명환 위원장은 26일 한겨레와의 인터뷰에서 "파업은 멈추지 않는다. 우리 요구는 변함이 없다. 김대중 정부 때부터 시도된 민영화에 반대하며 우리에겐 일종의 신념이 되어 있다. 그런데 이번엔 시민들도 지지하고, 예전처럼 돌만 던지진 않는다"고 말하고 있다(한겨레). 김 위원장은 27일 오전 어떤 입장을 발표할 예정이다.

한겨레나 경향은 모종의 타협이 가능한 것처럼 말한다. 그런데 이 경우 타협은 패배일 뿐이다. 2004년 철도파업 당시 공사화는 정부와 노조가 한발씩 양보한 것처럼 비췄지만 결국 민영화를 위한 정부의 일보 전진이었고 우리에겐 일보 후퇴였다. 현재 철도노조가 요구하고 있는 ▲수서발 KTX운영법인 설립 결정 철회 ▲수서발 KTX 운영법인 면허 발급 중단 ▲국회 교통위 산하에 철도발전을 위한 소위 구성 ▲사회적 논의기구 구성 ▲고소고발과 직위해제 등 노조탄압 중단 다섯 항에서 앞의 두 요구가 받아들여지지 않는다면 뒤의 세 요구가 100% 이뤄진다고 해도 우리에겐 명백한 후퇴가 될 것이다.

결국 적당한 타협은 우파에게 진열을 재정비할 여유를 주고 우리의 기세는 꺾는 악수가 될 수 있다. 투쟁ㆍ파업이라는 것은 노조 지도부가 원할 때면 언제나 불을 지필 수 있는 라이터가 아니다. 백성곤 철도노조 홍보팀장의 말대로 "더 강도 높은 투쟁으로 전환"하기 위한 "구체적인 방안을 논의"해야 한다. 이런 점에서 우리는 박근혜에게 배워야 한다.

"적당히 타협하면 미래 없다."

※2013년 12월 27일 오전 9시30분 수정

철도 노사는 26일 오후 4시30분부터 27일 오전 8시까지 실무교섭을 진행했다. 노조는 위에 제시한 다섯 개 요구 중 첫째 요구를 철회한 것으로 보인다. 철도노조의 실무교섭 보고에 의하면 노조 측 요구안은 이렇다.

①철도노사는 국민의 철도민영화에 대한 우려를 불식시켜야한다는 것에 인식을 같이한다.
②이를 위해 수서고속철도 면허 발급을 중단하고, 철도산업의 공공적 발전방안 마련을 위하여 노사민정이 참여하는 사회적 논의기구를 구성한다.
③철도산업의 공공적 발전방안 마련을 위하여 국회 국토교통위 산하에 소위원회 설치를 촉구한다.
④금번 파업과 관련하여 고소고발 등을 취하한다.
[12/26 보고] 노사 실무교섭 보고, 정책실

요구 ①은 의미 없는 수사에 불과하다. 핵심은 ②와 ③이다. 여기에 수서발KTX 운영법인 설립 결정 취소 요구는 빠져있다. ②의 요구는 현재의 상태, 면허 발급이 아직 이뤄지지 않은 상태를 유지한 채 사회적 논의기구를 통해 합의안을 도출하자는 것이다. 김명환 철도노조 위원장도 27일 오전 "정부가 수서발KTX 법인 면허 발급을 중단하고 철도 발전방안에 대해 사회적 논의에 나서겠다면 우리도 파업을 중단할 수 있다"는 입장을 발표했다(연합뉴스). 이것은 현 상태의 유지를 요구하는 것 뿐이다. 파업이 19일 째 진행되고 있는 상황에서 이러한 요구안은 명백한 후퇴다. 정부와 코레일이 마음먹는다면 이런 정도는 일단 받아들일 수도 있다. 눈치 보다가 잠잠해질 때 법인 설립 면허를 발급할 수 있다. 이른바 사회적 논의기구가 반발할 수 있지만 일단 설립돼 운영이 시작되면 투쟁의 동력을 현재 만큼 끌어내기는 쉽지 않다. 즉 정부가 지금보다 조금이라도 요령이 있다면 욕 한 번 먹고 얼마든지 자신의 뜻을 강제할 수 있다는 것이다.

사측은 여전히 강경하다. 정확히는 정부의 뜻일 게다. 코레일 측 안은 이미 이사회에서 설립 결정돼 면허 발급을 앞두고 있는 수서발KTX 자회사를 기정 사실로 전제하고 있다. "수서고속철도주식회사의 공공성 확보방안과 철도산업발전방안은 노사민정이 참여하는 사회적 논의 기구를 구성한다"는 것은 수사에 불과하다. 경쟁 체제 도입은 불가피한 낭비와 비효율을 초래할 뿐 아니라 사적 기업의 원리를 공기업에 강제하게 된다. 이런 상황에서 '공공성 확보'를 위한 '사회적 논의기구 구성'은 눈 가리고 아웅하는 식의 꼼수일 뿐이다.

12월 19일 서울광장에서 '민영화 저지를 위한 철도노조 파업 2차 결의대회'가 열렸다. '관건ㆍ부정선거 1년, 민주주의 회복 국민대회'가 같은 장소에서 뒤를 이어 계속됐다. 2만여 명이 참여했고 참가자의 구성도 그 어느 때보다 다양했다. 경찰의 방해와 공격에도 불구하고 전국에서 올라온 1만여 명의 철도노조 조합원이 광장의 중심에 자리했다. 소울드레서ㆍ쌍코ㆍ화장발, 소위 '삼국카페'라고 불리는 커뮤니티에서는 핫팩과 초코파이, 성금을 철도노조에 기부했다. 19일 촛불시위에 대한 간단치 않은 소회를 남긴다.


2013년 12월 19일 서울광장 [사진 自由魂]

1-1 2008년 촛불이 무엇을 했느냐고 하지만 이른바 '삼국카페'라고 불리는 것은 남겨놓았다(당연히 이들만 얘기하는 건 아니다). 물론 이 커뮤니티가 '정치' 커뮤니티는 아니다. 대표되는 어떤 정치를 정의하기 어려울 정도로 스펙트럼이 넓다. 대개는 민주당보다 약간 왼쪽의 경향이라고 해야겠다. 어찌됐든 이들 커뮤니티의 정치 '참여'는 좌파와 '상식적 시민'의 차이를 쉽게 넘나들곤 한다. 그런데 주목할 것은 이들이 6월부터 계속되던 부정선거 규탄 촛불시위가 아니라 철도노조 파업을 계기로 다시 광장에 나왔다는 것이다. 이들은 정확히 철도노조를 지지ㆍ지원하며 광장에 나섰다. 정봉주에 대한 젊은 여성들의 환호에도 불구하고 저들을 친노 세력으로 치부하는 것은 큰 실수가 될 것이다.

1-2 여전히 남는 아쉬움은 좌파가 이들에게 매력적으로 비치지 못했다는 점이다. 이들이 가장 환호한 이 중 하나는 정봉주다. 이를 진중권 교수식으로 20세기 초반에 머물러 있는 좌파의 구태 때문이라고 설명하는 것은 너무 안이한 주장이다. 정봉주가 대표하는 정서, 촛불시위가 대표하는 정서에는 '노찾사'처럼 지극히 1980년대스러운 분위기도 있다. 이날 2부로 진행된 민주주의 회복 국민대회에는 함세웅 신부와 정봉주씨가 연사로 나섰고 노찾사가 공연을 했다. '안녕들하십니까' 대자보의 스타일이 90년대 초중반의 화려한 붓글씨가 아닌 80년대에 가까운 매직글씨에 닮은 것도 그런 것 중 하나라고 할 수 있겠다.

2-1 민주노총은 여전히 머뭇거린다. 자신감 없음이다. 국토부의 수서발KTX 면허발급이 20일로 다가왔고 정부는 지도부 체포를 시도하며 여전히 강경하게 나오는 데 민주노총은 이 이상의 행동을 얘기하지 않는다. 기껏해야 "파업할 수 있는 곳은 파업하고 그렇지 못한 곳은 교육을 하겠다"고 한다. 이게 뭔가. 결국은 개별 노동조합들이 알아서 하라고 손놓고 있는 게 아닌가. 민주노총이 중앙집중적 조직이 아니라는 점은 대안을 제시하고 행동을 계획하는 데 어려움으로 작용할 것이다. 그러나 이걸 인정해버리면 애초 민주노총, 즉 전국의 노동자들이 공통된 이해(지금은 민영화)를 놓고 함께 싸우자고 만든 조직으로서 자격이 없는 것 아닌가.

2-2 더 중요한 것은 민주노총이 결국 타협을 전제로 하는 노동조합이라는 데 있을 것이다. 협상의 상대인 정부가 일체의 타협을 고려하지 않을 때 그들로서는 할 수 있는 게 없을 수도 있다. 이게 핑계가 될 수도 없다. 노동조합 운동의 초창기 기업주와 정부가 타협하려 했는가? 결국은 힘으로 그들을 협상장으로 끌어들이고 굴복시켜 인정받고 요구를 쟁취해왔던 게 아닌가. 결국은 자신감 없음이다. 왜? 지금 누리고 있는 '국민적 지지'를 놓치기 싫은 게 아닌가 싶다. 즉 여기서 더 나간 행동을 하면, 이를테면 철도의 전면파업이나 민주노총 전체의 연대파업을 하면 국민적 지지를 잃지 않을까 하는 두려움 말이다.

2-3 그래서 민주노총이 내놓은 게 21일의 대자보 번개다. 이게 뭔가. 애초 대자보가 철도노조 투쟁을 지지하며 시작된 건 새카맣게 잊고 바로 그 대자보에 편승해 가겠단다. 위력적인 거리행진도, 더 확대된 파업도 내놓지 않는다. 그래 오늘까진 '국민적 지지'가 확대되는 국면에서 그럴 수 있다고 본다. 21일 무엇을 내놓을지 기대해보겠다.


2013년 12월 19일 서울광장 [사진 自由魂]

3-1 사실 이런 것들을 민주노총에게만 요구하는 것은 무리다. 결국은 정치적 좌파가 제안하고 조직해야 할 것이다. 지금 필요한 정치적 과제들, 즉 우리가 무엇을 요구하고 어떻게 행동해야할 지를 내놓아야 하는 것은 좌파다. 안타깝게도 통진당은 온통 이석기건에만 매몰돼 있다. 정의당은 여전히 선도하기보다 뒤따라가기 급급하다. 노동당은 당원이 시작한 '안녕들하십니까' 운동이 이토록 성장하는 데 아무런 역할도 하지 못하고 있다. 소수 좌파가 전면 총파업 등 이 운동이 더 성장해 승리를 쟁취하는 데 필요한 것들을 제안하고 있지만 이들은 너무 소수라 큰 영향력이 없다.

3-2 그래서 문제는 1-2로 돌아간다. 좌파는 대중을 어떻게 매혹할 것인가. 다시 반복하자면 스타일의 문제는 사소하다. 대중 스스로 과거 운동 스타일을 따라하곤 하는 걸 우린 쉽게 확인할 수 있다. 촛불을 되돌아보며 떠올릴 수 있는 것은 새롭게 급진화하며 스스로 조직해나가는 대중에 손놓고 있거나, 그들을 지도해야 할 대상으로만 봐서는 안된다는 것이다. 오히려 그들이 운동을 스스로 조직하고 지도할 수 있게끔 해야 하지 않을까. 이미 일부는 그들 스스로 쟁점을 선택하고 행동을 계획하며 실천에 옮긴다. 삼국 카페의 철도노조 지지활동에서와 같이 말이다. 쟁점이 커질 때마다 형성되곤 하는 '범국민운동본부' 같은 것들에 기존 좌파나 시민운동 단체들만 참여할 것이 아니라 이들 다양한 커뮤니티들도 참여시키자는 것이다. '안녕들하십니까'는 스스로 연락을 취하고 공동의 행동을 모색하며 모양새를 만들어가고 있다. 이들과 어떻게 함께 행동할 것인지를 모색하는 게 좌파에게 가장 시급할 것이다. 그리고 조급해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좌파가 자신의 주장을 후퇴시키거나 쓸데 없는 '당의정'으로 애매모호하게 제시해선 안되겠지만 대중과 함께하는, 무엇보다 그들과 함께 실패하는 경험 없이는 공감을 얻고 앞으로 나가는 일은 힘들 것이다. 함께 실패하고 함께 교훈을 도출해내는 경험이 승리보다 더 중요하다.


2013년 12월 19일 서울광장 [사진 自由魂]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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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호를 외치고 있는 시위대. 들고 있는 팻말에 적혀있는 구호는 파업을 지원하는 '교사 분대'라는 뜻. [사진=Felipe Dana/AP]

브라질 교사 파업이 계속되면서 경찰과의 폭력 충돌이 격화되고 있다. 언론은 폭력 시위의 중심에 '블랙 블록'이 있다고 주장한다. 경향신문 29일자 11면에 실린 '두 얼굴의 '블랙 블록''기사도 마찬가지다. 제목에서는 '두 얼굴'이라 칭했지만 기사는 "평화로운 행진이 (블랙 블록에게) 납치됐다"며 교원노조 조합원들이 반발하고 있다고 주장한다. 이들 블랙 블록은 "무엇에 대해 항의하는지 정확하게 모르"며 상점과 현금인출기를 공격하는 등 폭력적 행위에만 천착해 "시위의 본질을 퇴색"시킨다는 것이다.

[경향신문] 두 얼굴의 '블랙 블록'

그러나 시위를 폭력적으로 만드는 게 블랙 블록의 청년들 때문일까.

가디언과 브라질 지역 언론에 실린 증언에 의하면 블랙 블록은 경찰의 폭력으로부터 시위대를 지키기 위해 폭력을 사용했다. 어나니머스 가면을 쓴(따라서 블랙 블록은 아닌) 26세의 학생 아리아네 산토스는 "블랙 블록은 경찰이 투입됐을 때 항상 시위대를 방어했다. 그들은 다양한 상황에서 교사들을 보호했다"고 말한다. 많은 교사들은 블랙 블록이 경찰의 과잉진압으로부터 시위대를 보호했으며 충돌이 일어났을 때 블랙 블록은 부상자들을 응급처치하는 걸 최우선으로 삼았다고 증언한다. 한 고등학교 교사는 "사람들은 (검은 옷을 입은) 소년들이 옳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거리로 나오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는다"고 증언했다. 이러한 동맹은 경찰의 과잉진압으로 의도치 않게 형성된 것이라고 가디언은 말한다.

[The Guardian] Violence at Rio de Janeiro protest

또다른 기사에서 블랙 블록의 한 명은 "우리가 그저 공격만 하려는 것은 아니다. 우리는 경찰의 과잉진압으로부터 사람들을 보호하고 우리의 저항할 권리를 보호하려는 것이다"고 분명히 밝혔다.

[The Guardian] Thousands join teachers' protest in Rio de Janeiro

게다가 우리는 이미 지난 6월의 브라질 반란에서 경찰이 먼저 시위대를 폭력적으로 공격한 것을 목격한 바 있다. 당시 브라질 경찰은 기자들을 노골적으로 공격해 세계를 경악하게 했었다. 경찰은 10월의 파업과 시위를 대응하는 과정에서도 총기를 사용해 과잉진압하고 있다(링크). 27일에는 경찰의 총격을 받은 19세 소년 더글라스 로드리게스가 결국 목숨을 잃었다(링크). 경찰이 시위대와의 물리적 충돌을 주도하고 있는 것이다. 이번 파업을 이끌고 있는 교원노조(SEPE)는 사복 경찰이 시위대에 잠입해 폭력을 선동했다고 주장하기도 했다(이 주장은 InSerbia라는 세르비아의 영자 인터넷 언론에 실린 것으로 다른 근거는 찾지 못했다ㆍ링크). 어찌보면 당연한 의심일 터이다.

브라질에서의 시위가 격렬히 충돌하는 것은 분명 사실일 것이다. 그러나 이것이 그림의 전부는 아니다. 평화적으로 자신의 권리를 주장하는 더 많은 사람들과 행진이 있었지만 언론에서는 상대적으로 적은 수인 블랙 블록의 폭력에만 관심을 쏟는다. 우리나라에서도 과거 흔히 겪은 일이다. 19일 이탈리아 로마에서 있었던 5시간의 평화적인 시위도 마찬가지였다. The Crisis Republic에서 스케치한 이날의 시위는 언론이 평화적으로 진행된 시위보다는 아주 잠깐의 긴장과 충돌에만 관심을 쏟는 과정을 자세히 보여준다
(링크).

언론이 시위의 폭력에만 관심을 쏟으며 이를 아나키스트와 공산주의자로 의심되는 '블랙 블록'의 탓으로 몰아가는 것은 운동의 급진화를 경계하기 위해서다. 연대를 위해 시위를 참여한 이들은 더 많은 사회적 불만을 투쟁에 결합시키기 때문이다. 따라서 언론과 정부의 블랙 블록에 대한 비난에 흔들려서는 안 된다. 물론 시위대 일부가 우리의 요구와 상관 없는 폭력 행위를 벌일지라도 말이다. 운동 자체의 힘으로, 토론과 논쟁을 통해 운동이 성공할 수 있는 최선의 전술을 합의해야 한다.

상황이 워낙 급히 돌아가고 있어 지금은 어찌 변했는지 모르나, 브라질 교사 노동자들의 초기 대응은 훌륭했다. 물리적 충돌과 블랙 블록에 대한 언론과 정부의 공격에도 불구하고 교사 알라이네 데 루카는 다시 또 시위에 참여하겠다고 가디언과의 인터뷰에서 말했다. "교사가 아닌 많은 사람들이 우리를 지지하고 있다. 지금과 같은 사회적 동원은 예전엔 볼수 없었던 것"이라며 "(교육제도) 개선은 희망적"이라고 주장했다. 또 교원노조(SEPE)는 거리에서 경찰과 블랙 블록의 폭력적 충돌이 있은 후 열린 한 회합에서 "교사들의 저항을 조직하는 것은 노동조합이지만 블랙 블록이 (연대를 위해) 참여하는 것은 항상 환영한다"고 분명히 밝혔다.

[O DIA] Teachers Union Officially Declares Unconditional Support for Black Bloc(영문 번역 기사)

화염병으로 상점을 공격하고 현금인출기를 깨뜨린다고 사회가 진보적으로 변화할리는 없다. 그러나 정부와 경찰은 우리 운동을 깨뜨리기 위해서는 언제든 과감히 폭력을 사용할 것이고 우리 운동을 방어하기 위한 최소한의 폭력은 불가피하다. 급진파의 배제는 운동의 요구와 행동 범위를 제한할 뿐이다. 저항을 평화롭게 만드는 것은 급진파의 배제가 아니라 운동을 더 크고 강력하게 성장시키는 것으로만 가능하다.

2008년 미국에서 시작된 경제위기가 유럽의 재정위기로 이어지는 신호탄을 올린 것은 그리스다. 치솟는 실업률과 계속되는 임금 삭감과 해고에 그리스 인민의 고통은 더해만 가고 있다.

지난해 총선에서 급진좌파연합(SYRIZA)를 제치고 집권에 성공한 범그리스사회주의운동당(PASOK)ㆍ신민당(ND)ㆍ민주좌파당(DIMAR) 연정은 이전 정부와 다르지 않은 정책을 계속하고 있다. 이 정책은 그리스의 부자와 기업을 구하기 위한 지원금을 유럽연합으로부터 얻기 위한 것이다. 이를 위해 정부는 노동자 등 가난한 인민을 위한 국가의 지원을 축소하고 있다. 집권 연정은 이전 정부보다 더 반노동적 정책을 시도하고 있다. 노동조합의 권한과 파업권을 크게 축소하는 정책을 시도하고 있다(
[참세상] 그리스 총리, 파업권 제한… 연정 내부 반발 확산, 붕괴 임박ㆍ링크).

다양한 부문의 노동자들이 투쟁을 계속하고 있다. 투쟁은 작업의 중단 만이 아니다. 이미 기업가들이 버리고 간 공장은 노동자의 의지와 상관 없이 활동이 중단돼 있다. 이러한 자본가들에 의한 사보타쥬는 그리 낯선 것 만은 아니다. 기업가들은 자신에게 이윤을 안겨주지 못할 때 공장을 닫는다. 때론 손해를 감수하고서라도 공장을 폐쇄하곤 한다. 노동자들에게 '본때'를 보여줘야 겠다고 생각할 때 그렇게 한다. 1970년 칠레에서 아옌데가 대통령에 당선된 뒤 벌어진 일이 그것이다(
'기억하라, 우리가 이곳에 있음을'… 무력으로 짓밟힌 사회주의 향한 평화적 길ㆍ링크).

노동자에게 본때를 보여주기 위한 것이든, 이윤이 남지 않아서 때문이든 그리스의 많은 공장과 기업은 그 활동을 멈췄다. 이는 고스란히 노동자들의 실업과 빈곤의 고통으로 이어지고 있다. 그리스 테살로니키에 있는 비오-미 공장도 그러한 곳 중 하나다. 사장은 공장과 노동자를 버리고 떠났다. 노동자들은 2011년 5월 이후 임금을 받지 못했다. 2013년 2월 12일 이 비오-미 노동자들이 공장을 스스로의 힘으로 돌리기 시작했다. 1970~1973년 자본가들의 사보타쥬에 맞서 칠레 노동자들 스스로 공장을 움직이고 유통을 연결하려 한 것처럼 말이다.

여느 투쟁처럼 이 노동자 자주관리 생산의 성패도 이 새로운 생산모델이 다른 공장과 사업장으로 얼마나 많이 확산되고 일반화되느냐에 달려있을 것이다. 당장에 공장을 돌리고 노동자와 가족의 생계를 유지하기 위한 종잣돈도 필요하다. 비오-미 노동자들의 제안은 정부와 노동조합 관료로부터 냉대를 받았지만 지역과 세계의 운동가들은 이 제안에 적극적인 지지로 대답하고 있다. 데이비드 하비, 나오미 클라인, 존 할러웨이, 조르지오 아감벤 등 저명한 지식인들이 공개적으로 지지했다.

비오-미 노동자들의 호소문은 viome.org에서 확인할 수 있다. 아래는 roarmag.org에 올라온 비오-미 공장 노동자들에 대한 이야기다.

※ 오역과 의역이 많은 글이니 참고하실 분은 꼭 원문과 대조해 읽기 바랍니다.




그리스 공장이 노동자 통제하에 생산을 시작하다
roarmg.org 2013년 2월 11일ㆍ링크

실업자와 사장이 없는 세계를 만들기 위해 싸우는 와중에 경제위기에 고통받고 있는 그리스 비오-미(the Vio.Me. Viomichaniki Metalleutiki) 공장이 노동자의 민주적 통제하에 생산을 시작했다.

빵 반죽을 하는 우리는 여전히 배고프고,
We are the ones who knead and yet we have no bread,
석탄을 캐는 우리는 여전히 춥다.
we are the ones who dig for coal and yet we are cold.
아무 것도 가진 게 없는
We art the ones who have nothing,
우리는 세계를 가질 것이다.
and we are coming to take the world.
- 타소스 리바디티스(Tassos Livaditis, 그리스 시인, 1922~1988)


비오-미의 노동자들, 위기의 심장에서 착취와 빈곤의 심장을 정조준하다

실업률이 30%대로 오르면서 노동자들의 수입은 '0'에 다다르고 있다. 과장된 말과 약속들, 더 많은 세금은 진절머리가 난다. 월급은 2011년 5월 이후로 나오지 않았고 현재도 그들에게 일은 주어지지 않는다. 고용주들에게 버림받은 공장에서 비오-미 노동자들은 그들의 대중집회(General Assembly)의 결정을 통해 끝없는 실업상태의 희생자로 남는 대신 그들의 손으로 공장을 점거하고 운영하기 위한 투쟁의 의지를 밝혔다.

2011년 10월부터 정식 제안을 통해 모든 노동자들의 참여로 통제되는 노동자 협동조합의 설립을 요청해 왔다. 뿐만 아니라 다른 모든 이들이 따라할 수 있도록 법적 인정을 요구했다. 동시에 그들은 공장을 움직이는 데 필요한 -사회의 부를 생산해온 노동자의 자격으로 그들에게 정당한 권리가 있는- 돈을 요구했다.

작성된 계획은 정부와 노동조합 관료의 무관심에 직면했다. 그러나 이 계획은 세계적 사회운동에 의해 열광적으로 받아들여졌고 지난 6개월 간 사회 전체에 비오-미의 주장을 확산시키기 위해 투쟁해온 테살로니키 연대를 위한 열린 제안(the Open Initiative of Solidarity in Thessaloniki)의 설립으로 이어졌다. 이후 많은 다른 도시들에서 비슷한 제안이 이어졌다.


이제 노동자들이 비오-미를 장악할 시간이다!

노동자들은 파산한 국가의 가능성 없는 지원 약속(그리스 노동부가 약속했던 1000유로 긴급지원조차 재정부의 승인을 얻지 못했다)의 실현을 더이상 기다릴 수 없다. 문을 닫거나 파산하거나 노동자를 정리해고 한 다른 공장들 뿐 아니라 옛 사장이나 새 소유주에 기대지 않고 노동자들에 의해 다시 문을 연 비오-미를 주목할 때다.

투쟁은 비오-미 노동자들이 승리하기까지 멈추지 말아야 할 것이다. 투쟁은 문 닫은 모든 공장과 업체들로 확산되고 일반화되어야 할 것이다. 왜냐하면 자주관리 공장의 연결망을 통해서 만이 비오-미의 시도는 번창할 수 있고 착취ㆍ불평등ㆍ계급 없는 생산과 경제의 다른 체제를 향한 길을 밝혀줄 것이기 때문이다.

공장이 연이어 문을 닫으면서 그리스에서 실업자의 수는 200만 명에 다다르고 있고 전 정부의 정책을 지속하고 있는 범그리스사회주의운동당(PASOK)ㆍ신민당(ND)ㆍ민주좌파당(DIMAR) 집권 연정에 의해 인구의 어마어마한 규모가 빈곤과 고통에 처하게 됐다. 노동자들에 의해 통제되는 공장 운영 요구는 우리가 매일 경험하고 있는 재앙에 대한 유일하고 합리적인 대응이자 실업에 대한 유일한 대답이다.


비오-미의 투쟁은 우리 모두의 투쟁이다

우리는 노동자, 실업자, 위기로부터 영향을 받는 모든 사람에게 호소한다. 비오-미 노동자들과 연대할 것과 노동자들이 사장 없이 할 수 있다는 신념을 실천하는 그들의 노력에 지지해줄 것을. 우리는 테살로니키에서 3일간 절정에 달할 투쟁과 연대의 행진에 참여해줄 것을 호소한다. 또한 우리는 노동자가 작업장 안에서 사장 없이 직접 민주적 과정을 통해 그들 스스로 조직하고 싸울 것을 주장한다.

우리의 삶을 파괴하는 이들을 몰아내기 위한 정치총파업에 모두를 초대한다.

우리가 바라는 더이상 지배자가 없는 경제ㆍ사회를 조직하기 위해 공장을 넘어 모든 생산에 노동자 통제가 수립되기는 것을 목표로!

이제 비오-미의 시간이다. 일하러 가자!
모든 곳에 노동자 자주관리를 도입하자!
지배자 없는 사회 건설을 시작하자!



비오-미 노동자 투쟁 연대와 지원을 위한 열린 제안
Open Initiative of Solidarity and Support to the struggle of the workers of Vio.Me.

2012.11.07 15:06

부메랑이 된 긴축정책 쟁점/12 OccupyWorld2012.11.07 15:06

6일부터 48시간 파업에 들어간 그리스 노동자들. [중앙일보/연합뉴스/AP]

그리스, 운명의 날

미국 대통령 선거 결과가 세계의 관심을 모으고 있는 오늘(7일), 또 하나의 중요한 표결이 지구 반대편에서 진행됩니다. 그리스가 구제금융을 받기 위한 긴축안에 대한 표결이 바로 그것입니다. 유럽연합ㆍ유럽중앙은행(ECB)ㆍ국제통화기금(IMF)으로부터(이하 트로이카) 구제금융을 받기 위한 추가 긴축안의 핵심은 정부 지출을 135억 유로(약 18조9000억원) 삭감하는 것입니다. 이는 그리스 국내총생산(GDP)의 4.5%에 달하는 규모죠. 트로이카는 이 긴축안이 통과되어야만 지급이 중단됐던 315억 유로(약 44조1000억원)의 구제금융을 제공할 예정입니다.

긴축이 통과될 경우 연금은 5~25% 삭감될 것입니다. 정년도 65세에서 67세로 연장됩니다. 공공부문 노동자의 월급과 해고자에 대한 보상금도 삭감됩니다. 아동지원비 지금 대상도 연 1800유로(약 2500만원) 미만 소득 가정으로 축소될 계획입니다.

안도니스 사마라스 총리는 "긴축안이 통과되지 않으면 이달 15일 이후 조국의 미래를 예측할 수 없게 된다"고 말했습니다. 그러나 노동자와 청년들은 강력히 반발하고 있습니다. 노동자들은 6일부터 48시간 총파업을 진행하고 있습니다. 교사ㆍ간호사ㆍ공무원 등 공공부문 노동자들의 파업이 줄을 잇고 있고 항공 관제사의 파업으로 항공기 운항도 일부 마비됐습니다.

노동자들의 저항으로 연립정부도 흔들리고 있습니다. 연정에 참여한 세 개 정당 중 16개 의석을 갖고 있는 민주좌파당은 반대표를 던지기로 결정했습니다. 민주좌파당을 빼도 연정의 의석수는 과반인 151석을 넘는 158석이긴 합니다. 하지만 또다른 연정 참여 정당인 사회당 의원도 긴축 반대를 선언 했습니다. 이로 인해 긴축안 통과가 어려울 것이라는 전망이 확산되고 있습니다. 지난 총선에서 원내 제2 당으로 부상한 시리자(Syriza)는 4일 긴축 반대 입장을 다시 확인하며 총선을 요구하고 있는 상황입니다.

●[중앙일보] 구제금융 vs 국가부도 … 그리스 운명의 날(링크)
●[참세상] 그리스 긴축 표결 앞두고 48시간 총파업(링크)


지난 3월 유로존의 마리아노 라호이 스페인 총리를 비롯한 유로존 지도자들은 스페인 위기설에 대해 "그리스와는 다르다"고 한목소리를 냈다. 하지만 재정위기는 계속되고 있고 그에 따른 긴축정책 등 모든 면에서 그리스를 닮아가고 있다. 물론 스페인 만은 아니다. 남부 유럽 전체가 그렇다. 왼쪽의 9월 말 스페인 시위 당시 부상당한 시민의 모습과 오른쪽의 4월 그리스에서 경찰 폭력에 의해 다친 시민의 모습이 놀라울 정도로 똑같다.

프랑스, 되돌아온 긴축

프랑스에서도 긴축은 최대의 정치 쟁점으로 부상하고 있습니다. IMF는 프랑스도 "스페인ㆍ이탈리아와 같은 정도의 노동ㆍ서비스 시장 개혁을 추진하지 않으면 경제 상황이 더 심각해질 것"이라고 5일 발표한 연례보고서에서 경고했습니다.

국가경쟁력위원회 위원장인 루이 갈루아는 소득세 삭감과 노동 유연성 강화를 핵심 내용으로 담은 산업경쟁력 강화방안 보고서를 정부에 제출했습니다. 유럽항공방위우주산업(EADS)의 회장을 지낸 갈루아 위원장은 "쇠락하는 기업 경쟁력을 되돌리기 위해서는 충격적인 대책이 있어야 한다"고 말해 그의 보고서가 '기업 살리기'에 방점이 찍혀있음을 분명히 했습니다.

갈루아 보고서는 5월 당선된 프랑수아 올랑드 대통령이 취해왔던 정책을 거스르고 있습니다. 올랑드는 취임 직후인 6월 최저임금 2% 인상, 연 100만 유로(약 14억원) 이상 고소득자 최고세율을 75%로 인상한 바 있습니다. 부가가치세 인상도 중단시켰었죠.

친기업적인 갈루아 보고서가 정부에 의해 채택되는 것은 아마 예정된 일이었을 것입니다 올랑드 대통령은 재정적자를 GDP의 4.5%에서 3%로 줄이기 위해 올해보다 300억 유로(약 42조원) 축소된 규모의 긴축 예산을 이미 의회에 제출했습니다. 그는 9월 9일 "이는 신념에 의한 행동"이라는 점을 밝혀 울며 겨자 먹기식 결정이 아님을 분명히 했죠.

부자와 기업들에 대한 감세와 재정지출 감축은 정부의 노동자ㆍ서민에 대한 지원이 축소되고 반대로 세금 부담은 늘어날 것임을 뜻합니다. 200억 유로(약 28조원) 규모의 감세로 인한 세수 부족은 부가가치세의 인상으로 메울 예정입니다. 중앙일보는 정부가 받아들인 갈루아 보고서가 전임 우파 대통령인 니콜라 사르코지의 개혁안을 상당 부분 포함하고 있다며 "올랑드 '사르코지 스타일'로 경제 살리기"라며 조롱하고 있죠.

●[조선일보] IMF "스페인처럼 안되려면 佛도 노동개혁하라"(링크)
●[중앙일보] 올랑드 '사르코지 스타일'로 경제 살리기(링크)
●[이코노미인사이트] 올랑드의 긴축, 그 잔혹한 배반의 결말은?(링크)


11월 14일 유럽 총파업 포스터. 'huelga' 'grève' 'strike' 등 '파업'을 뜻하는 각 나라의 단어로 유럽 지도를 그렸다. [European Strike 페이스북]

부메랑, 유럽 총파업

긴축에 반대한 행동이 유럽 전역으로 확산되고 있습니다. 남부 유럽의 네 개 나라, 스페인ㆍ포르투갈ㆍ이탈리아ㆍ그리스의 좌파와 노동조합이 주축이 돼 11월 14일 유럽 총파업을 준비하고 있죠.

9월 말 스페인에서 의회를 둘러싸려던 6000명 규모의 상대적으로 적은 규모의 시위가 있었죠. 이 시위는 경찰의 잔혹한 탄압으로 스페인 시민의 공분을 샀고 곧이어 이에 대한 항의는 스페인 전역은 물론 유럽 전체로 확산 됐습니다. 그리스와 스페인에서, 또 이탈리아에서 다르지 않았던 경찰의 폭력은 단지 결과였을 뿐입니다. 인민의 뜻에 정면으로 거스르는 긴축안을 강행하기 위해서는 사실상 경찰 폭력 외에 정부가 기댈 곳이 없지요.

14일 총파업을 준비하는 이들은 이 총파업을 끝이 아니라 시작으로 보고 있습니다. 한국의 다함께가 속해 있는 국제사회주의 경향(IST)은 5일 발표한 성명에서 "14일 파업이 그 자체로 목적이 돼서는 안 된다"며 이번 파업이 "부문별 파업, 점거, 봉쇄와 전투적 시위와 같은 앞으로의 투쟁을 위한 도약대가 돼야 한다"고 주장했습니다.

이번 총파업이 유럽을 당장 어떤 다른 세계로 변화시키진 않을 것입니다. 하지만 아이슬란드에서 그랬듯이 점점 더 다른 세계, 다른 삶에 대한 대중의 열망과 상상력이 커져가고 있음은 틀림 없습니다.

우리나라에서도 '경제민주화'가 대통령 선거의 중요한 쟁점으로 자리잡고 있습니다. 주요한 세 후보 모두 경제민주화를 내세우고 있죠. 우리는 이들의 공약에 부자와 기업에 대한 증세, 복지의 확대, 경제정책에 대한 민주적 참여가 포함돼 있는지 살펴야 할 것입니다. 그리고 무엇보다 우리 자신의 행동이 중요합니다. 프랑스 올랑드 대통령의 행보는 중요한 교훈을 줍니다. 비록 우리의 손으로 뽑은 대통령이라고 할지라도 우리가 행동하지 않으면 어느새 기업과 부자들을 위한 정책을 펼치기 마련입니다. 한국에서도 좌파가 지금까지의 지리멸렬을 이겨내고 다시 활발하게 움직일 수 있길 기대해봅니다.

●[참세상] 11월 14일 유럽 공동 총파업 분위기 활활(링크)
●[레프트21] 유럽 공동총파업은 투쟁의 도약대가 돼야 한다(링크)


새 정부가 들어선지 3개월. 실망하기에 이른 시간일 수도 있지만 프랑스 인민도 긴축정책에 대한 저항에 나서고 있다. 9월 30일 프랑스 좌파전선의 긴축정책 항의 시위. [페이스북]

9월 25일 스페인 시민 6000명이 의회봉쇄를 시도했을 때 사태가 이토록 커지리라고는 예상 못했었습니다. 긴축에 반대하는 시위대에 맞서 경찰은 상상 이상의 폭력을 휘둘렀고 많은 이들이 다쳤습니다. 반응은 즉각적이었습니다. 평온하던 스페인에 갑작스럽게 튀어나온 하나의 시위가 아니었기 때문이죠. 이미 지난해부터 분노한 사람들(인디그나도스 los indignados)의 항의가 나라 전체를 가득 메우고 있었습니다. 여름에는 광부들이 영웅적인 투쟁으로 시민들의 환영을 받으며 마드리드에 입성했었죠.


벼랑 끝에 선 마드리드: S25→S29
9월 25일부터 29일까지 스페인에서의 저항과 경찰 폭력을 담은 다큐멘터리. [globaluprising.org]

29일까지 이어진 항의 시위는 스페인을 넘어 프랑스, 이탈리아, 영국 등의 나라에까지 확산됐습니다. 이토록 손쉽게 저항이 유럽 전역을 흔들며 세계화 할 수 있었던 것은 유럽의 인민이 겪고 있는 문제가 같은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것은 바로 '긴축'입니다. 2008년 금융위기 이후 각 나라의 정부들은 자국의 은행을 구제하기 위해 막대한 자금을 투입했죠. 이는 결국 정부재정의 부실로 이어졌습니다. '복지' 때문에 정부재정이 위기에 처했다는 것은 새빨간 거짓말이죠. 정부부채 규모가 2007년을 전후해서 급등했다는 게 이를 간접적으로 증명합니다. 마르크스주의 정치경제학을 공부하고 있는 heesang님은 지난해 블로그에 적은 짧은 글에서 이를 지적했었죠.

"지금 (내 생각에는) 극복되고 있는 이 위기는 채권자들의 위기이다. 이 위기를 넘어서면 시민들의 위기가 시작된다. 미국 정치인들은 재정지출은 줄이되 세금은 늘리지 않기로 결정했다. 이탈리아는 연대세라는 이름으로 일종의 부유세를 신설했는데, 그런 점에서 유럽의 사정은 더 나을지 모르겠다. 하지만, 감세와 민영화와 정부지출 축소는 여전히 신자유주의의 전위이고, 긴축의 부담은 고스란히 노동자 계급의 몫일 것이다. 자본이 낳은 위기를 국가가 떠안았으며, 다시 이제 자본은 이를 본격적으로 일반 시민들에게 떠넘기려한다. 그런 점에서 긴축 정책에 반대하는 그리스 시민의 투쟁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긴축의 시대와 채권자의 승리ㆍ링크)

민간 부문의 부실을 떠안은 정부는 대규모 긴축으로 손실을 만회하려 하고 있죠. 유럽에서 EU와 유럽중앙은행(ECB), 국제통화기금(IMF)는 구제금융 무기로 각 나라에 긴축정책을 강요하고 있죠. 그리스에서 저 세 개의 기구가 트로이카로 불리며 분노의 촛점이 되는 이유입니다. 불안하게도 이러한 구도는 외국에 대한 증오를 불러일으키며 민족주의와 인종주의를 부추기고 있기도 합니다. 아직은 다행스럽게도 좌파 운동의 강력한 성장이 이를 저지하고 있습니다.

선거에서의 노골적인 개입도 주저하지 않았던 트로이카의 협박에도 그리스 인민은 투쟁을 이어나갔습니다. 정부를 구성하지 못해 몇 차례 반복된 총선에서도 급진좌파연합(시리자)의 지지는 꾸준히 성장했습니다. 지난달 말 스페인에서 긴축에 맞선 투쟁이 분출했을 때 그리스에서도 어김없이 저항이 폭발했습니다.

그리스 인민은 9월 26일 다시 총파업 공세에 나섰습니다. 전력 노동자들은 투쟁을 더 강력하게 확대할 것을 요구하며 48시간 파업 반복을 선언했습니다. 재무부 노동자는 이틀 더 파업을 벌였죠
(다시 총파업 공세에 나선 노동자들ㆍ레프트21). 10월 4일 조선소 노동자는 국방부로 쳐들어갔고 농부 수백 명은 트렉터로 공항 봉쇄를 시도했습니다. 이들 모두의 요구는 긴축정책의 중단이었습니다(스페인 수십만 긴축 반대ㆍ참세상).

지난달 말 투쟁을 앞장섰던 스페인의 공공부문 노동자들은 6일에도 시위를 벌였습니다. 분노한 인민의 항의에도 스페인 정부는 9월 27일 390억 유로 규모의 긴축을 결정하는 등 노동자 계급에게 고통을 전가하는 정책을 계속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이에 스페인 노동조합 연맹들은 11월 14일 파업을 준비하고 있죠
(스페인 수십만 긴축 반대ㆍ참세상).

유럽 뿐 아니라 남미와 북미에서 저항은 확산되고 있습니다. 캐나다 퀘벡 학생들은 등록금 인상에 맞선 투쟁에서 승리를 거뒀습니다. 승리 이후에도 무상교육을 위한 투쟁을 계속해나가겠다고 밝혔습니다. 칠레에서도 무상교육을 위한 학생들의 투쟁이 1년 넘게 계속되고 있습니다
(다시 점화된 칠레 학생시위 "교육은 권리다"ㆍ참세상). 올 초 경찰의 폭력적 진압에 잠시 숨고르기에 들어갔던 미국의 오큐파이 운동도 다시 기지개를 펴고 있습니다. InterOccpy.net을 만들어 세계적 운동을 연결하고 협력하며 조직하는 것(Connect, Collaborate, Organize)을 모토로 다양한 연대를 펼치고 있습니다. 이들 뿐 아니라 다양한 활동가들이 10월 13일 전 세계 공동 냄비시위, 매월 22일 공동행동 등을 제안하고 준비하고 있죠(OccupyWallst.org, interoccupy.net).

더해가는 경제 위기, 정확히는 위기의 대가를 노동자에게 전가하는 지배자들의 태도가 더 노골적으로 되면서 이에 맞선 저항도 더 활기를 띠고 있습니다. 한국은 경제와 정치적 상황 모두에서 다른 나라들과 같지는 않습니다. 하지만 우리 모두가 같은 자본주의 사회에서 살고 있다는 현실 때문에 우리도 결국 저들과 다르지 않은 문제를 겪으리라는 것은 너무도 분명한 사실입니다. 한겨레에 따르면 내년 정부 예산안에서 복지 지출 비중이 2005년 이후 처음으로 줄어들었다고 합니다
(복지시대 역주행ㆍ한겨레). 워낙에 부족한 복지이기에 실상 그리 큰 영향이 없어 보이죠.

기업들도 정부와 크게 다르지 않으리란게 문제입니다. 아직은 불분명하지만 부문별로 희망퇴직과 정리해고의 칼바람 조짐도 있습니다. 가장 불안한 곳은 건설업계죠. 정말 거의 마지막 한올까지 끊어버린 듯한 부동산 규제에도 주택시장은 요지부동입니다. 문제는 상업시설과 사무실입니다. 과잉공급으로 서울시내 중심가의 최신 건물에도 빈 사무실을 곧잘 찾아볼 수 있습니다. 용산 재개발은 난항을 겪고 있으니 예외로 치더라도 상암디지털미디어시티와 종로1가 등 대규모 개발지들이 기대 만큼의 수익을 만들어낼 지는 의문입니다.

위기가 어떻게 진행될 지 예측하는 것은 부질없을 겁니다. 2008년 촛불시위와 같은 갑작스러운 저항이 터져나올 수도 있죠. 지난해 희망버스의 놀라운 성공처럼 말입니다. 이에 대비할 때 만이 좌파는 물결에 휩쓸리지 않고 자신의 시대를 열게 되지 않을까 싶습니다.

● 참고한 기사와 글
[참세상] 스페인 56개 도시 수십만 긴축 반대
[참세상] 다시 점화된 칠레 학생시위 "교육은 권리다"
[레프트21] 다시 총파업 공세에 나선 그리스 노동자들
[한겨레] 복지시대 역주행 … 내년 예산안 복지비중 첫 감소
[SocialandMaterial.net] 긴축의 시대와 채권자의 승리

신대륙의 흔한 시위 코스 |2월 시작된 퀘벡의 학생파업이 진정될 기미를 보이지 않은채 4개월여를 이어가고 있다. 정부는 학생파업을 분쇄하기 위해 학생 시위 봉쇄 비상입법을 통과시켰다. 이에 항의하는 시위가 계속되는 가운데 퀘벡 학생시위대가 행진하겠다고 경찰에 신고한 코스가 '신대륙의 흔한 시위 코스'라는 제목으로 인터넷에서 소개되고 있다.

2008년의 경제위기가 4년 만에 더 큰 파도로 세계를 덮치고 있습니다. 민간 은행과 기업들을 구제하기 위한 정부의 지원은 위기의 근원을 치료하지 못한 채 경제위기를 공공부문으로 확산시키고 있습니다. 뻔뻔한 은행가들과 사장들은 자신들의 실패는 잊어버리고 정부의 방만한 재정운용, 특히 복지예산이 문제라고 목소리를 높이고 있습니다. EU와 ECB(유럽중앙은행), IMF는 그리스에 구제금융을 제공하는 대가로 끝을 알 수 없는 긴축을 요구했죠. 그리스 국민들은 일자리와 연금을 잃고, 교육과 각종 복지의 축소로 삶의 질이 후퇴하는 고통을 겪고 있습니다.

그리스만이 아니죠. 스페인도 예산 삭감 문제로 몸살을 앓고 있습니다. 스페인 정부는 GDP의 8.9%인 재정적자를 5.3% 수준으로 낮추기 위해 교육 예산을 30억유로(약 4조4600억원)로 삭감하기로 결정했습니다. 대학 등록금은 기존 평균 1000유로(약 150만원)에서 1500유로(약 220만원)로 오를 것으로 예상됩니다. 25세 이하 청년실업률이 52%에 달하는 상황은 스페인 청년들을 더욱 분노하게 만듭니다. 이미 지난해부터 주목받고 있는 인디그나도스(Indignados:분노한 시민들)의 저항도 계속되고 있습니다. 정부의 교육 예산 삭감에 항의하는 교사ㆍ학생ㆍ학부모가 참여한 대규모 시위가 5월 22일 열렸습니다. 이날 시위는 5개 교직원 노동조합이 함께 준비했고 스페인의 17개 자치주 중 14개 주에서 80%의 교사가 파업에 참여했다고 합니다. 노조에 의하면 마드리드에는 10만명, 바르셀로나에서는 15만명이 시위에 나섰다고 합니다.

● [경향신문] 스페인 교육 예산 삭감에 교사 파업, 수십만명 시위(링크)

대서양 건너 캐나다에서도 학생들의 등록금 인상 반대시위가 전국을 뒤흔들고 있습니다. 퀘벡 주정부는 현 2519달러(280여만 원) 수준의 등록금을 올 하반기부터 5년간 단계적으로 인상해 4144달러(470여만 원) 수준으로 올리겠다고 밝혔습니다. 이에 학생들은 2월부터 가두시위와 파업을 계속하고 있습니다.

캐나다의 학생파업이 주목받는 것은 경제위기 시기 선진 민주주의 국가의 민주주의가 후퇴할 수 있음을 보여주기 때문입니다. 학생들의 시위와 파업이 계속되자 퀘벡 주정부는 학생들의 시위를 금지하는 법안을 만듭니다. 우리 나라의 유신헌법과 긴급조치를 떠오르게 하는 법이죠. 5월 18일 주의회에서 통과된 비상입법안에서는 25명 이상이 참여하는 시위는 경찰의 '허가'를 받도록 하고 수업 방해, 등교 저지 시위에 참여한 개인에게는 1000~5000달러(110만~570만원)의 벌금, 시위 주동자에게는 7000~3만5000달러(800만~3980만원)의 벌금을 부과하는 내용을 담고 있습니다.

● [연합뉴스] 캐나다 퀘벡주, 학생 시위 봉쇄 비상입법(링크)

정부의 강경 조치에도 저항은 중단되지 않고 있습니다. 시민들도 시위에 동참해 5월 30일 1차 야간 냄비시위(the Casseroles Night in Canada), 6월 6일 2차 야간 냄비시위가 진행됐습니다. 다른 나라에서도 퀘벡 학생과 연대하는 시위가 확산되고 있습니다. OWS 홈페이지는 6월 6일 전 세계 130개 도시에서 연대시위가 열렸다고 알렸습니다.

특히 미국에서의 학생운동은 등록금 인상 반대투쟁과 이주민 운동이 결합되며 더 큰 힘을 받고 있는 듯 싶습니다. 이는 미국에서 노동운동이 서부의 이주노동자 운동의 활력으로 재기하고 있는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1960~70년대 아프리카계 미국인의 민권 운동이 미국의 급진적 사회운동 성장의 밑거름이 되었던 것을 상키시키기도 합니다.

샌프란시스코 금문교에서 출발해 워싱턴D.C.까지 3000마일(4800여㎞)을 행진하고 있는 이주민 청년들의 핵심 구호는 '추방이 아니라 교육이다(Education Not Deportation)'로 정리할 수 있습니다. 2008년 오바마 대통령의 대선 공약 중 하나였던 드림액트(
DREAM Act:주로 히스패닉계인 미등록 이주민 자녀 학비지원 등을 포함한 이민법 개정안. 오바마의 2008년 대선 공약 중 하나. 링크 1, 링크 2)의 의회 통과를 요구하는 행진이죠. 이와 함께 이 법이 통과됐을 때 혜택을 받을 것으로 예상되는 사람들을 대상으로 한 추방을 금지하는 대통령령을 요구하고 있습니다. 이 행진의 참여자들은 5일 콜로라도 덴버의 오바마 선거운동 본부를 점거하기도 했습니다. 두 명은 단식투쟁을 진행하고 있죠.

● [OWS] 학생ㆍ미등록 이주 청년이 국제적 교육운동 이끈다(링크)

6월 5일 치러진 위스콘신 주지사 소환선거에서의 패배는 점령하라 운동에 찬물을 끼얹는 소식입니다(링크). 미국의 우파들은 이 소식을 올 연말 대선에서의 승리를 예고하는 것으로 받아들이고 있습니다. 저도 의기소침해지는 소식임에는 틀림 없습니다. 하지만 위기는 더 심해지고 있습니다. 우리가 의기소침할 수록 경제위기는 우리의 삶을 더욱 갉아먹을 것입니다.

경제위기는 언제나 양방향으로 정치를 발전시킵니다. 이른바 '양극화'죠. 프랑스 대선에서 사회당의 올랑드가 당선됐지만, 극우파 장 마리 르펜의 선전은 좌파들에게 경악할 소식이었습니다. 그리스 극우파 황금새벽당의 대변인은 TV 생방송 토론에서 상대 토론자에게 폭력을 행사에 해외토픽에 실렸죠. 이 황금새벽당 또한 지난 5월 총선에서 급진좌파정당 시리자(SYRIZA)와 함께 약진했습니다.

분명히 경제위기는 현재의 세계를 변화시킬 것입니다. 하지만 그 방향은 정해져있지 않습니다. 인민을 위한 체제로 변할 수도 있고, 자본과 권력자들에게만 더 유리한 체제로 변할 수도 있습니다. 그리고 캐나다 퀘벡에서 민주주의를 제한하는 법안이 통과된 것에서 알 수 있듯이 극우 정치인들 뿐 아니라 현재 세계의 지배자들은 자신들에게 필요하다고 생각이 들 때는 반민주주의적 행동에도 거침없이 나설 것입니다. 우리 99% 인민의 정치가 투표장에서만 머물러서는 안되는 이유입니다.





※ 위에 링크한 OWS 홈페이지의 '학생ㆍ미등록 이주 청년이 국제적 교육운동 이끈다' 글을 제멋대로 아래 옮겨놓습니다. 제 영어실력이 요즘 초등생보다 못해 상당한 오역이 있으니 반드시 원문을 참조하세요. 원문 링크는 여기를 클릭하세요.

시카고에서 열린 퀘벡 연대 행진.

학생ㆍ미등록 이주 청년이 국제적 교육운동 이끈다

캐나다에서 두 번째 냄비시위(the Casseroles Night in Canada)가 진행되는 동안 전 세계 130개 도시에서 저항이 표출됐다. 시위대는 냄비와 후라이팬을 두드려 퀘벡 학생운동과 캐나다 역사상 가장 장기간 진행되며 긴축시대에 사회운동의 가능성을 재정립하는 학생파업에 연대했다. 무기한 총파업은 정치가들과 언론에 계속 충격을 주고 있다. 그것(학생파업)을 불법이라고 선언함으로써 운동을 파괴하려는 정부의 시도는 단지 캐나다에서 광범위한 시민불복종을 만들 뿐이고 전 세계적로 반란의 불꽃이 퍼지는 것을 도울 뿐이다.

전 세계적인 학생, 점령자들, 분노한 사람들, 사회운동은 거리를 점령하고 단지 퀘벡의 우리 동료들 만이 아닌 우리 모두를 위한 무상의 해방된 교육제도에 대한 지지를 보여줬다. 우리는 빚에 기반한 사회와 착취 경제에 저항하기 위해 봉기했다. 점점 더 우리의 다양한 지역 운동들은 거대한 국제연대 네트워크로 연결되고 있다. 그리고 우리는 지금 막 시작했다.

이주민 청년들, 오바마 선거캠프 점령

'드림액트(DREAM Act)'를 요구하며 [샌프란시스코의] 금문교에서 출발해 워싱턴D.C.까지 3000마일을 도보행진 중인 이주민 학생의 모임 '아메리칸 드림을 위한 캠페인(The Campaign for an American Dream)'이 콜로라도 덴버 서쪽 77번 도로 9번가의 오바마 선거운동(the Obama for America) 본부를 점령하기 위해 덴버에서 멈췄다. 시위대는 6월 5일 오후 5시30분쯤 선거운동본부에 들어가 경찰과 대치하는 대신 선거운동원과 함께 밤을 보냈다. 몇몇 청년들은 체포됐을 때 추방당할 위험이 있었다. 적어도 두 명의 시위대는 드림액트가 시행됐을 때 보호받을 수 있는 자격을 지닌 사람들의 추방을 중단시키는 대통령령에 오바마 대통령이 서명할 것을 요구하는 단식투쟁을 진행하고 있다. 오큐파이 덴버의 수백명의 사람들은 사무실 밖에서 시위를 했다. 이 시위는 사무실을 고립시키려는 작전을 막았다.

오레곤 학생들, 등록금 인상 반대 연좌시위

'빌어먹게도 비싼 등록금 동맹(the Tuition is Too Damn High Coalition)'은 최근 오레곤 대학의 등록금 6.1% 인상안 승인에 대한 대응으로 로버트 버달 총장과의 면담을 요구하며 "예산 삭감 반대, 등록금 반대, 무상교육 실시하라"는 구호를 외치며 존슨홀에서 행진했다. 버달 총장은 오늘(6월 7일) 학생 수십 명이 참여하는 비공개 면담을 승낙했다.

시카고ㆍ뉴욕 점령자들, 퀘벡 연대행진

시카고를 점령하라는 퀘벡의 무기한 총파업을 지지하는 소란스러운, 하지만 완벽하게 비폭력적인 행진을 진행했다. 엄청난 수의 경찰이 시위대를 뒤쫓아 마치 고양이 쥐 게임처럼 도시 곳곳을 누볐다. 경찰은 전에 미시건과 오하이오에서 시위대를 야만스럽게 공격한 것 처럼 학생들을 길가로 밀어내기 위해 노력했다. 시카고를 점령하라 활동가에 의하면 여성들이 길 위로 질질 끌려갔고 그 외에 많은 사람들도 경찰의 곤봉에 맞았다. 목표물이었던 것으로 드러난 12명의 핵심 조직자들은 체포됐다.

퀘벡 외에 가장 큰 시위 중 하나는 2000여 명이 행진한 토론토 시위다. 그 밖에도 지난밤 베를린, 프랑크푸르트, 샌프란시스코, 피닉스, 밴쿠버, 자그레브, 시애틀에서 있었다. 뉴욕에서는 10여 명이 체포됐다.

5월 30일 수요일 캐나다에서 첫번째 냄비시위(the Casseroles Night in Canada)가 열렸을 때에는 뉴욕, 토론토, 밴쿠버, 브뤼셀, 부에노스아이레스, 베를린, 런던 등지에서 연대시위가 열렸다. 미국에서는 워싱턴, 워싱턴D.C., 아틀란타, 오클랜드, 덴버, 리틀록에서 연대 행진이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