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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롭지 못한…

러시아혁명 100주년 자코뱅 JACOBIN 온라인 시리즈 ⑧ 볼셰비키와 반유대주의 혁명의 해에도 반유대주의는 러시아의 정치적 분열 전반에서 확인된다 브렌든 맥기버_ 영국 런던대학교 버크벡 칼리지에서 인종주의와 반유대주의의 사회학을 강의하고 있다. 그는 'Antisemitism and the Russian Revolution(반유대주의와 러시아혁명ㆍ2019년)'을 썼다. ※ 2017년 러시아혁명 100주년을 기념한 JACOBIN 온라인 시리즈를 번역한 것이다. 다른 동료와 함께 작업을 진행하다 멈췄다. 번역한 글은 참세상에 연재됐고 일부는 Marxists Internet Archive의 관련 페이지에 실렸다. 마무리 못한 작업이지만 온라인에서 잊혀지기 전에 내가 초벌번역한 것들을 개인 블로그인 이곳에 백업..

러시아혁명 100주년 자코뱅 JACOBIN 온라인 시리즈 ⑤ 핀란드의 혁명 핀란드의 잊혀진 혁명이 1917년 러시아혁명보다 오늘날 우리에게 더 큰 교훈이 될 수 있다 에릭 블랑_ 캘리포니아 오클랜드에서 활동하는 활동가이자 역사가다. 저서로는 'Anti-Colonial Marxism: Oppression & Revolution in the Tsarist Borderlands'가 있다. ※ 2017년 러시아혁명 100주년을 기념한 JACOBIN 온라인 시리즈를 번역한 것이다. 다른 동료와 함께 작업을 진행하다 멈췄다. 번역한 글은 참세상에 연재됐고 일부는 Marxists Internet Archive의 관련 페이지에 실렸다. 마무리 못한 작업이지만 온라인에서 잊혀지기 전에 내가 초벌번역한 것들을 개인 블로그..

러시아혁명 100주년 자코뱅 JACOBIN 온라인 시리즈 ④ 그람시와 러시아혁명 젊은 날의 안토니오 그람시는 러시아혁명을 목격하고 무슨 생각을 했을까 알바로 비앙치_ 국립 캄피나스대학 정치학 교수다. 저서로는 'Laboratório de Gramsci'(Alameda, 2008)가 있다. Blogjunho.com.br의 편집자다 다니엘라 무시_ 상파울루대학 박사후 과정 연구원이다. Outbrorevista.com.br을 운영하고 있다. ※ 2017년 러시아혁명 100주년을 기념한 JACOBIN 온라인 시리즈를 번역한 것이다. 다른 동료와 함께 작업을 진행하다 멈췄다. 번역한 글은 참세상에 연재됐고 일부는 Marxists Internet Archive의 관련 페이지에 실렸다. 마무리 못한 작업이지만 온라인..

러시아혁명 100주년 자코뱅 JACOBIN 온라인 시리즈 ② 2월혁명의 진행 케빈 머피_ 매사추세츠 주립대 보스톤 캠퍼스에서 러시아사를 가르치고 있다. 그의 책 '혁명과 반혁명:모스크바 금속공장에서의 계급투쟁'은 2005년 도이처상을 받았다. ※ 2017년 러시아혁명 100주년을 기념한 JACOBIN 온라인 시리즈를 번역한 것이다. 다른 동료와 함께 작업을 진행하다 멈췄다. 번역한 글은 참세상에 연재됐고 일부는 Marxists Internet Archive의 관련 페이지에 실렸다. 마무리 못한 작업이지만 온라인에서 잊혀지기 전에 내가 초벌번역한 것들을 개인 블로그인 이곳에 백업해놓는다. 대괄호[ ] 안은 이해를 돕기 위해 첨가한 것이고 설명이 필요한 것은 역자 주로 글의 맨 뒤에 붙였다. 볼셰비키 페테르..
자코뱅매거진은 러시아혁명 100주년을 맞아 1917년 혁명의 여러 쟁점을 다양한 활동가ㆍ연구자들의 기고를 받아 연재하고 있다. 100여 년이 지난 지금도 러시아혁명은 논쟁적일 수밖에 없다. 아래 글은 자코뱅매거진에 실린 에릭 블랑의 '핀란드 혁명'[링크]에 대한 반박 글이다. 블랑의 글을 직접 옮기며 쌓인 여러 의문을 아래 글은 일부 해소해주고 있다. 참세상에 게재된 블랑의 글을 읽은 독자들이 가진 의문을 이 글이 일부 해소해주길 바라며 여기에 옮긴다. + + + 핀란드의 교훈: 에릭 블랑에 대한 이견 던컨 하트ㆍ2017년 7월 11일(링크) 에릭 블랑의 글 '1917년 핀란드 혁명의 교훈'은 핀란드의 경험이 주로 카우츠키주의적 사회민주주의 전략을 정당화하는 혁명이라는 주장을 펼침으로써 오늘날 좌파에게 ..
혁명 직전 러시아사회민주노동당의 사회주의자들은 흔히 알려진 대로 볼셰비키와 멘셰비키로 나뉘어있던 상태였다. 1917년 당시 혁명의 과제에 대한 이들의 입장 차이는 현실에서 당시 정부와 갈등을 빚던 자유주의자들, 자본가들에 대한 입장 차이로 드러났다. 아래의 두 호소문은 이 차이를 명확하게 보여준다. 멘셰비키가 관여하고 있던 전쟁산업위원회 산하 노동위원회는 1월 24일[구력] 차르의 전제정과 부르주아지의 갈등이 노동계급에게도 유리한 상황을 전개할 것이라며 두마[의회]를 지지하는 행동에 나설 것을 노동자들에게 호소한다. 노동계급 대중의 지지가 없다면 아무런 힘도 없을 의회를 위해서 말이다. 러시아사회민주노동당 페테르스부르크 위원회[혁명 당시 러시아 수도의 지명은 '페트로그라드'였다. 원래 이에 맞춰 통일해 ..
1905년 1월 9일, 러시아 페테르스부르크의 겨울궁전 앞 학살과 이후 전국을 뒤흔든 1년여간의 사건을 빼놓고 1917년의 혁명을 이해하기란 어렵다. 당장 아래 소개할 러시아사회민주노동당 페테르스부르크 지구연합위원회의 1월 22일 시위 호소문만 해도 그렇다. 1917년 1월 러시아 노동자들은 3년째 계속되고 있는 세계대전의 핏빛 행진에 지쳐있었고 하루하루 더해가는 슬픔에 분노의 도화선은 짧아져만 가고 있었다. 1917년의 노동계급 활동가들은 현재의 비극을 1905년의 비극과 겹쳐 회상한다. 전쟁에서의 잇따른 패배와 노동계급의 희생, 이와 대비되는 지배계급의 호의호식과 귀족ㆍ관료집단의 무능은 1905년에도 마찬가지였다. 1904년 2월 시작된 러일전쟁은 러시아 지배계급이 허우대만 멀쩡한 종이 호랑이임을 세..
올해로 러시아혁명 100년이다. 혁명은 1차 세계대전의 전쟁과 살육 사이에서 자본주의 체제에 대한 분노를 자양분 삼아 성장했다. 체제에 대한 불만과 분노 만으로 혁명이 성공할 순 없었다. 다가올 사건을 대비하고, 노동계급 대중을 단결시킬 혁명적 조직 또한 준비돼있어야 했다. ●세계대전의 발발과 인터내셔널의 붕괴 1914년 8월 1차 세계대전의 발발은 그런점에서 혁명을 향한 결정적 사건이었다. 유럽과 세계의 인민에게 재앙이었던 이 사건은 노동계급 혁명 조직에게도 악몽과 같은 사건이었다. 유럽 최대의 사회주의 조직인 독일사회민주당은 1914년 8월 4일 제국의회에서 전시공채 발행에 ‘찬성’표를 던진다. 제2인터내셔널이 1907년 슈투트가르트대회와 1912년 바젤대회에서 연이어 전쟁 반대를 위한 전 세계 노동..
아래 글은 10월 20일 올린 '스티커를 붙이는 시민, 떼는 시민'을 다시 고쳐쓴 글이다. 페이스북에 처음 올린 글로부터 따지면 세 번째 글이다. 역사적 사례를 보충하는 데 중점을 뒀다. 논점도 살짝 달라졌다. "아마 여기가 지금까지 우리가 걸어 도착한 자리일 것이다"라는 문장을 "아마 여기가 우리의 촛불이 첫걸음을 시작한 자리일 것이다"라고 바꾼 부분이 이 달라진 논점을 가장 명확히 보여줄 것이다. 대중적 운동의 첫걸음에 좌파들이 불만을 갖는 일은 흔하다. 2004년 탄핵반대 촛불시위에 대한 좌파의 (지금도 달라지지 않은) 경계, 2008년 미국산 쇠고기 수입 반대 촛불시위에 대한 패배적 평가가 대표적이다. 좌파의 다수는 기존 체제의 지배적 이데올로기를 벗어나지 못한 운동에 대해 이러저러한 한계를 지적..
11월 19일 서울 광화문 광장에 밝혀진 촛불의 하나. 시민들은 스스럼 없이 노동조합이 준비한 촛불시위 용품을 자신의 의사표현에 사용했다. 서울지하철노동조합이 준비한 촛불을 든 시민. [사진 自由魂] 박근혜 퇴진을 위한 4차 범국민 행동이 11월 19일 있었다. 시위대의 평화시위와 질서 집착에 대한 비판이 이미 나오고 있던 상황에서 경찰버스에 붙인 항의 스티커를 제거한 일이 마음을 불편하게 한다. 하필이면 이날 전인권은 무대에 나와 애국가를 불렀다. 몇몇 젊은이들은 태극기를 들고 나왔고, 어떤 노인은 연사에게 '박근혜 퇴진' 외에 다른 얘기들, 이를테면 '사드'라든가 '한일군사정보보호협정'과 같은 얘기는 하지 말라고 소리지르기도 했다. 아마 여기가 지금까지 우리가 걸어 도착한 자리일 것이다. 가퐁 신부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