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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스라엘, 산산조각난 꿈

때때로 2023. 10. 25. 00:54

한국인들, 특히 개신교 신자들은 이스라엘에 대한 막연한 환상에 사로잡혀 있곤 한다. 사방에 적들만 가득한, 천연자원마저 빈약한 곳에서 근면과 협동을 통해 세계적인 선진국으로 성장했다는 신화 말이다. 꼭 한국인만 그런 건 아닌 듯싶다. 올해 3월 이스라엘 건국 75주년에 붙인 '이코노미스트'의 찬사를 보니 말이다. 이스라엘에 대한 환상은 다양하다. 나이먹은 이들이라면 '키부츠'라는 농업공동체를 떠올리며 그 사회주의적 성격에 매혹됐던 이들도 있을 것이다. 최근의 젊은이라면 '스타트업의 천국'이라는 찬사를 들어봤을 것이다. 그러나 이 모든 것은 미국의 원조라는 동아줄이 없었다면 불가능한 일일 수도 있다. 마이클 로버츠가 1948년 건국 이후 이스라엘 경제에 대해 간략히 설명한다.

※Deepl.com을 이용해 초역한 후 다듬은 글입니다.

미국 조사기관 '스타트업 지놈'은 올해 초 이스라엘 텔아비브의 기술생태계가 전 세계 도시 중 5위라고 발표했다. 게티이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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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스라엘, 산산조각난 꿈
마이클 로버츠│2023년 10월 18일│링크

지난 3월 이스라엘은 건국 75주년을 맞았다. '이코노미스트'는 "오늘날 이스라엘은 매우 부유하며 역사상 가장 안정적이다. 점령지를 제외한다면 민주적이기도 하다. … 그들은 불굴의 의지 외에는 누릴 만한 천연자원이 거의 없음에도 전쟁과 가뭄, 빈곤을 이겨냈다. 중동 지역에서 예외적인 이 국가는 혁신의 중심이자 세계화의 승자가 됐다"고 썼다. 지난 몇 주간의 사건을 본다면, 아니 이스라엘 국가의 진정한 역사를 살펴본다면 이는 매우 역겨운 농담이다.

이스라엘의 역사는 유대인 이민자들의 역사다. 아랍 주민이 살고 있는 유대인의 '고향'에 '안전한' 국가를 건설하겠다는 거대한 목표를 실현하기 위해 팔레스타인으로의 이주가 이어졌다. 이들 시오니스트 중 다수는 '사회주의 사회'의 건설을 꿈꿨다. 아랍 국가들의 왕권과 군부 통치에 맞선 민주적 대안으로 지역 공동체 또는 키부츠를 만들어 공동소유와 운영을 도모했다. 하지만 현실적으로 유대인 이민자들이 정착해 '사회주의' 국가를 건설하기 위해선 수십 만 명의 아랍 주민을 그들 집과 땅에서 폭력적으로 내쫓아야만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대규모 이민(유대인 인구가 두 배로 늘었다) △부유한 유대인 공동체, 특히 미국 자본으로부터 유입된 막대한 외국인 투자 △강력한 군사력 건설이 결합해 이스라엘 경제는 1948년 이래 매우 빠르게 성장했다. 이 시기는 이윤율이 높고 그만큼 투자도 활발했던 전후 자본주의의 '황금기'였다. 따라서 새로운 경제구성체가 매우 빠르게 자리잡을 수 있었다. 1948년부터 1972년까지 국민총생산(GNP)은 연평균 10.4% 성장했다. 이스라엘 경제 건설을 위한 자본은 미국의 원조와 대출, 독일의 배상금, 해외에서의 국채 판매로 조달됐다. 수익성을 높게 유지하기 위해 물가와 임금을 통제했기에 노동자의 실질소득은 그다지 많이 늘어나지 않았다.

하지만 다른 선진 자본주의 경제와 마찬가지로 이스라엘 자본의 수익성 1960년대 중반부터 1980년대 초까지 매우 빠르게 떨어졌다. 1974~1975년과 1980~1982년 세계경제가 침체하자 이스라엘 경제는 위기에 빠졌다. 1973년엔 아랍 국가들과의 새로운 전쟁
[욤키푸르 전쟁 또는 제4차 중동전쟁]에 돌입하기도 했다. 이점에서 이스라엘 경제를 이야기할 때 1960년대 이래 자본의 수익성 추이를 살펴볼 필요가 있다. '세계 수익성 통계(the World Profitability)'의 자료를 보자.

그래프 1 이스라엘 이윤율 추이

그래프1을 보면 세계경제가 침체에 빠진 1980~1982년 수익성이 급격히 하락해 최저치를 기록했다. 1973년에서 1985년 사이 GNP 성장률은 연간 약 2%로 감소했다. 1인당 GNP는 실질적으로 증가하지 않았다. 동시에 통제 불능 상태로 치솟은 인플레이션은 1984년 445%에 달했고 국제수지 적자도 최고치를 찍었다.

이스라엘 자본가들이 번창하기 위해선 소위 민주사회주의는 없어져야 했다. 따라서 다른 많은 자본주의 국가와 마찬가지로 선거로 뽑힌 이스라엘 정부는 역외 자본에 경제를 개방하고, 키부츠와 같은 공동체에 대한 지원과 '복지'를 축소했다. '사회주의'는 종식됐다. 이후 이스라엘은 향후 20~30년간 전 세계적으로 지속된 신자유주의 시기에 급격히 들어섰다.

1983년 텔아비브 증권시장이 붕괴하면서 몇 년간 커져온 금융시장의 거품이 꺼졌다. 우파 리쿠드당
[Likudㆍ현재 베냐민 네타냐후 총리가 소속된 제1당] 정부는 은행들에 책임을 물었다. 그들은 770여개 기업을 직간접적으로 지배하고 이스라엘 경제의 35%를 장악한 하포알림은행을 인수해 이 모든 국유자산을 민영화하겠다는 목표를 세웠다.[하포알림은행은 이스라엘 최대 노동조합인 히스타드루트ㆍHistadrut가 1921년 설립한 은행으로 1983년 정부가 인수해 1996년 민간에 매각했다] 결국 정부는 세 개의 주요 은행인 하포알림은행, 레우미은행, 디스카운트은행 민간 자본에 넘겼다. 통신과 항만도 민영화됐다.

이스라엘 정부는 미국 레이건과 영국 대처를 그대로 베낀 정책으로 1986~2000년 83개의 공기업을 87억달러를 받고 팔아치웠다. 국영 항공사 ELAL, 통신사 베젝(Bezeq), 모든 주요 은행들, 5대 대기업이 정부가 고른 구매자들에게 넘어갔다. 이스라엘 최고의 부자들, 부유한 미국 유대인들, 외국의 대기업이 정부가 뽑은 인수자였다. 정부는 매각 과정을 모두 비공개로 진행했다. 예를 들자면 정부는 이스라엘화학(Israel Chemicals Ltd.)을 1993년에서 1997년 사이 비공개 입찰을 통해 아이젠버그 가문에 넘겼다.

이러한 조치는 한동안 이스라엘 자본의 수익성을 높이는 데 도움이 됐다. 실제로 그래프1을 보면 1982년에서 2000년 사이 이윤율은 두 배로 올랐다. 하지만 수익성을 끌어올린 주요 원인은 붕괴한 소련과 아프리카 북부에서의 새로운 이민 물결이었다. 이민자들로 인해 고용비용이 감소했고, 오슬로협정 이후 아랍과의 '휴전'으로 외국인 투자도 크게 늘었다.

그래프 2 이스라엘의 GDP 대비 외국인 직접투자 비율

이 시기 이스라엘은 '첨단기술 스타트업'의 성장으로 주목받았고, 명백하게도 이스라엘 경제는 빠르게 세계화하고 있는 지구적 경제에 통합됐다. '스타트업 국가'라는 별명을 얻은 이스라엘엔 현재 7000개 이상의 스타트업이 활동하고 있다.

하지만 이는 오래가지 못했다. 21세기에 들어서면서 이스라엘 자본주의 경제는 다른 많은 '신흥국'들과 마찬가지로 점점 더 많은 어려움에 직면했다. 물론 가장 큰 차이점은 이웃 아랍국들과의 끊임없는 전쟁 속에서 이스라엘은 미국과 서방 자본의 전폭적 지원을 받는다는 것이다. 그렇기에 이웃 아랍국들과의 영구적인 분쟁, 추방된 팔레스타인 사람들의 봉기 속에서도 이스라엘은 경제를 유지할 수 있었고 강한 군사력도 구축할 수 있었다.

역설적으로 구소련으로부터의 대규모 이민, 외국인 노동자의 유입, 현지 아랍계 인구의 자연적 증가로 인구가 1000만명이 채 못 되는 이스라엘은 인구적인 측면에서 점점 더 '유대인 국가'라고 말하기 어려워졌다. 하지만 신자유주의 정책의 충격과 경제 둔화에도 불구하고
[이스라엘 정부의] 좌선회는 일어나지 않았다. 아랍으로부터 공격받을 수 있다는 두려움에 시달렸고 사회주의적 반대파가 대안세력으로 자리잡지 못했기에 종교적ㆍ민족주의적 정당들이 성장했다. 이스라엘 자본은 경제적ㆍ사회적 실패로 인한 갈등을 피하기 위해 인종과 종교를 카드로 사용했다.

21세기에도 경제위기는 주기적으로 반복되고 있다. 2003년 네타냐후는 복지혜택을 삭감했고, 더 많은 국유기업을 민영화했으며, 최고 소득세율은 인하했고, 공공부문 서비스를 감축했고, 반노동조합법을 제정했다. 2008~2009년 글로벌 금융위기와 2020년 코로나19 팬데믹으로 인한 침체로 GDP가 7% 위축됐다. 전후 황금기, 수익성 위기를 겪은 1970년대, 신자유주의 시기, 2010년 이후 계속되고 있는 장기 침체기의 실질GDP 성장률을 비교해보면 이스라엘 경제가 내리막길을 걷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래프 3 이스라엘 실질GDP 성장률

지난 10년 사이 키부츠 공동체는 빠르게 사라져갔고 그 자리엔 교외 고급 주택이 들어섰다. 부동산 투기로 땅값도 치솟았다. 의료 등 공공서비스 예산은 지속적으로 깎였다. 개인 의료비 지출은 커졌고 부자와 그렇지 않은 이들 사이의 서비스 접근성 격차는 더욱 벌어졌다.

이스라엘 초기 '사회주의적 꿈'의 자리는 자본주의적 현실이 대신 꿰찼다. 이스라엘 최하위 저소득층과 최상위 고소득층 사이의 격차는 산업국가 중 두 번째로 크고, 아동빈곤율은 선진국 중 멕시코 다음으로 높다. 이스라엘 아동 셋 중 한 명은 빈곤층이고 다섯 가구 중 한 가구는 빈곤선 이하로 생활하고 있다.

이스라엘은 고소득 국가 중 가장 불평등한 나라 중 하나다. 하위 50%의 연평균 소득이 5만7900뉴셰켈
[약 2000만원, 1985년 도입한 화폐로 1셰켈=331원 수준]에 그치는데 반해 상위 10%의 소득은 그 19배가 넘는다. 전체 국민소득에서 하위 50%의 몫이 13%에 그치는 데 반해 상위 10%는 49%나 차지한다. 이는 미국과 비슷한 수준의 불평등이다.

그래프 4 국가별 상위 10%와 하위 10% 처분가능소득 격차의 10년간(2006~2016년) 변동률

특히 이스라엘 인구의 20%를 차지하는 아랍계 시민은 더 심각한 빈곤과 불평등에 처해있다. 인구의 10분의 1인 정통파 유대인 공동체 또한 빈곤율이 높다. 가자지구와 서안지구도 정말 끔찍한 빈곤에 시달리고 있다.

그래프 5 유대인ㆍ아랍계 시민ㆍ정통파 유대인의 빈곤율(왼쪽)과 민족 거주지별 빈곤율

반면 이스라엘에서 부의 집중도는 서방 세계에서 두 번째로 높다. 악명이 자자한 가문은 다음과 같다 : 아리슨, 보로비치, 당커, 오페르, 비노, 함부르크, 비에스만, 베르트하임, 지스아펠, 르비우, 페델만, 사반, 피쉬만, 샤카르, 카스, 스트라우스, 쉬멜처, 추바 등. 이스라엘 주요 기업의 수익 5분의 1은 이 가문들의 몫이다. 이들이 지배하는 500개 기업은 국가 수입의 59%, 민간부문의 40%를 차지하고 있다.

이번 전쟁으로 이스라엘 경제가 쓰러지는 일은 없을 것이다. 미국이 군사적ㆍ재정적으로 후원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래프 6 2차 세계대전 이후 미국의 국가별 원조액

반복되는 전쟁으로 군수산업과 군대는 이득을 보겠지만 전쟁이 장기화하면 경제의 생산적인 부문의 수익성과 투자는 위축된다. 게다가 노동자들은 목숨을 잃는 끔찍한 일뿐만 아니라 성공과 자기계발의 기회도 가로막힌다.

이스라엘 자본주의 정부는 점령지와 이웃 나라의 아랍인들과의 끊임없는 분쟁에 대한 그 어떤 해결책도 갖고 있지 않다. 터무니없이 강력한 수준의 폭력과 응징을 수반한 또 하나의 전쟁이 이제 막 발발했다. 이런 상황에서 '이코노미스트'가 이스라엘 건국 75년에 부쳐 쏟아낸 달콤한 찬사들은 매우 씁쓸할뿐이다. 팔레스타인인은 물론 이스라엘인 모두에게 말이다.

다가올 75년도 이런 일이 이어져야 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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