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유롭지 못한…

서안지구 팔레스타인 사람들을 휩쓰는 폭력 본문

쟁점

서안지구 팔레스타인 사람들을 휩쓰는 폭력

때때로 2023. 10. 30. 23:05

이스라엘 군대가 가자지구에 대한 전면 침공을 개시했다. 이스라엘 군대의 목표는 팔레스타인 민간인 그 자체다. 그들은 불가피하게 민간인 피해를 감수하는 게 아니다. 팔레스타인 사람들을 그들의 땅에서 몰아내는 게 목표다. 제2의 '나크바(대재앙)'가 진행 중이다. 언론의 관심이 쏠린 가자지구만이 아니다. 팔레스타인 영토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예루살렘 서안지구에서도 이스라엘 군대는 정착민을 부추겨서, 정착민의 손을 잡고, 때론 정착민에 앞서 팔레스타인 사람들을 압박하고 있다. 이스라엘 정부는 '불법' 정착촌의 '합법적' 점령으로의 전환, 다른 말로 팔레스타인인에 대한 '인종청소'를 추진하고 있다. 다행히 전 세계 거리에선 이에 분노해 이스라엘 정부와 후원자 미국을 비난하며 즉각적인 휴전을 요구하는 목소리가 퍼지고 있다. 특히 유대인 청년들의 행동이 눈부시다. '평화를 위한 유대인 목소리(Jewish Voice for Peace)'는 이스라엘 정부의 전쟁에 맞선 대규모 저항행동을 조직하고 있다. 금요일(27일ㆍ현지시간) 미국 뉴욕에서 그들은 경찰의 반대를 뚫고 그랜드 센트럴역을 점거해 마비시켰다[링크]. 평화를 바라고 팔레스타인의 고통에 귀기울이는 유대인이 아주 소수인 건 아니다. 미국에 기반한 잡지 '유대인의 오늘(Jewish Currents)'은 서안지구 주민 다섯 명을 만나 팔레스타인 사람들의 설움과 고통을 기록한다. 그 기록을 옮긴다.

※Deepl.com을 이용해 초역한 후 다듬은 글입니다.

이스라엘 군대가 폐쇄한 팔레스타인 서안지구의 도로. 에밀리 글릭

+ + +

서안지구를 휩쓰는 반팔레스타인 폭력
무스타파, 루나, 마리암, 가산 나자르, 사브리|Jewish Currents|2023년 10월 20일|링크

서안지구에 사는 팔레스타인 사람들은 오랫동안 정착민들의 집요한 폭력을 일상으로 겪어왔다. 2022년 12월 우파 연정이 들어선 후 정착민들의 폭력은 급격히 고조됐다. 양떼를 모는 양치기를 향한 소규모 공격 그쳤던 폭력이 지역사회 전체를 향한 집단적 공격으로 확산했다.

지난 2월 팔레스타인 사람이 서안지구 후와라 마을 인근에서 이스라엘인 2명을 총격으로 살해하자 정착민들은 팔레스타인 마을에 난입해 팔레스타인 주민 1명을 살해하고 100여명을 부상입혔다. 집과 상가를 파괴하고 수백대의 차를 불태우기도 했다. 당시 베잘렐 스모트리히 이스라엘 재무장관 겸 서안지구 민정장관은 후와라를 "쓸어버려라"라고 촉구했다. 몇 달 후에도 비슷한 일이 반복됐다. 팔레스타인인이 엘리 정착촌 근처에서 이스라엘인 2명을 총격해 살해하자 수백명의 정착민이 인근의 팔레스타인 마을을 공격해 집과 재산을 파괴하는 '후와라식 난동'을 일으켰다.

정부는 이번에도 정착민을 자극했다. 이타마르 벤그비르 국가안보장관은 "건물을 폭파하고 테러리스트를 사살할, 한두명이 아니라 필요하다면 수백 수천명을 사살할 수 있는 군사작전"을 촉구했다. 이스라엘 경찰과 군대 또한 정착민의 폭력과 무관하지 않다. 그들은 방관하거나 직접 나서는 식으로 폭력에 관여하곤 한다.

지난해 12월 이래 서안지구에서 합법적 폭력과 비합법적 폭력, 정부의 정책과 정착민의 행동 사이에서의 경계는 점점 희미해져 갔다. 그나마 있던 경계는 10월 7일 하마스의 공격과 이스라엘의 전쟁 선포 이후엔 아예 사라졌다. 공격이 시작된지 사흘째 되는 날 벤그비르 장관은 국경의 마을과 유대인과 아랍계 시민이 혼재하는 도시의 정착민 '민병대'에 돌격소총 1000정을 지원하겠다고 밝혔고, 이로 인해 끔찍한 사태가 벌어지고 있다.

목요일(2023년 10월 19일) 일간지 '하아레츠'의 하가르 셰자프 기자는 서안지구의 와디알시크 마을의 팔레스타인 사람 3명이 이스라엘 군인과 정착민에 의해 몇 시간에 걸쳐 학대받은 사건을 상세히 보도했다
[링크]. 이는 미국의 한 병사가 아브그라이브 감옥 이라크 수감자를 고문한 악명 높은 사건을 떠올리게 한다. 그들은 벌거벗겨져 묶이고, 구타당하고, 오줌을 뒤집어썼다. 이스라엘 병사와 정착민은 그들의 항문에 이물질을 삽입하려고까지 했다.

이스라엘 좌파 활동가들 또한 구타와 약탈의 대상이 되곤 했다. 이스라엘 인권단체 '베첼렘(B'Tselem)'의 대변인인 드로르 사도트는 '알자지라'와의 인터뷰에서 서안지구 주민들은 그와 같은 폭력 앞에서 "방어할 그 어떤 수단도 없다"고 말했다. 베첼렘에 따르면 10월 7일 이후 8개 마을에서 550여 명이 살고 있던 집에서 강제로 쫓겨났다.

아래 다섯 명의 이야기는 지난 2주 동안 이러한 움직임이 더 고조되고 있음을 알려준다. 이들 서안지구 주민은 이스라엘 군복을 입은 정착민, 차단된 마을 사이의 도로, 무방비 상태서 직면한 일상적 폭력을 털어놓는다. 이로 인해 팔레스타인 마을 전체가 강제이주로 내몰리곤 하지만 많은 이들은 정착민과 군대의 점령을 늦추기 위해 서안지구에서 계속 살겠다고 다짐한다.

서안지구는 가자지구와 별개인 것처럼 말하곤 한다. 그러나 가까이서 지켜본 사람들은 가자지구에 대한 이스라엘의 대응 방식이 서안지구에도 천천히 자리잡아가고 있다고 오랫동안 알려왔다. 서안지구에서도 팔레스타인 사람들은 점점 더 작은 마을로 내몰렸고, 차단벽으로 고립됐고, 일상적 폭력에 직면해 왔다. 아래 이야기들은 서안지구의 '가자지구화'가 가속돼 수백 만 명의 팔레스타인 사람이 희생당하고 있다고 증언한다.


●"상황이 달라졌어요… 군인과 정착민들은 우리를 죽일 기회만 노리고 있죠"
-무스타파(가명), 마야 로젠 인터뷰, 헤브론 남부, 10월 17일

힘든 날들을 보내고 있어요. 정말 무서워요. 여기 헤브론 남부의 모든 곳이 마찬가지예요. 모두들 정착촌과 맞대어 있죠. 예전에도 상황은 나빴지만 지금은 완전히 다른 수준이에요. 많은 출입구와 도로가 폐쇄됐죠. 여기엔 병원이나 진료소, 큰 상점도 없는데 말이에요. 40분이면 병원이 있는 야타(헤브론 남부 도시)까지 갈 수 있었지만 지금은 5~6시간씩 걸리기도 하죠.

정착민들의 공격을 신고해도 전쟁 이후 경찰과 군대는 거의 대부분 아무 것도 하지 않고 있어요. 예전엔 정착민들이 폭력을 행사할 때 사진을 찍곤 했는데, 지금 그러면 그들이 총을 쏘며 위협하죠. 정착민들과 군인들은 고속도로에선 총격을 가하고, 마을에선 사람들을 폭행하고 있어요. 누구도 안전하지 못한 상황이죠.

몇 년 전 정착민의 습격으로 장애를 입은 친척이 있어요. 그는 정착촌에서 가까이 자리한 가족 텐트 옆의 같은 자리에 항상 앉아있어요. 전쟁 전부터 정착민들과 병사들은 그를 알고 있었어요. 그럼에도 지난 몇 주 동안 군대는 두 번이나 그를 공격했죠.

병사들은 그를 향해 "비켜" "손들어"라고 고함쳤지만 그는 알아듣지 못했어요. 가자지구 전쟁 이후 병사들은 평소와는 달랐어요. 군인들은 그에게 총을 쏘려 했고 마을 사람들은 멈추라고 외쳤죠. 마을 사람들의 설명을 듣고서야 군인들은 자리를 떠났어요. 사람들은 경찰에게 상황을 호소했지만 경찰은 군대와 얘기해보겠다고만 했어요. 하지만 이틀 전 군인들이 돌아와 똑같은 일을 반복했죠. 이웃 두명이 군인들에게 "제 친척은 장애가 있어 말을 알아듣지 못해요"라고 설명했지만 그들은 "한 마디라도 더 말하면 총을 쏜다"고 말했습니다.

우리 마을은 '비폭력' 신념을 지키며 수년 동안 저항해왔어요. 하지만 이젠 달라졌어요. 군인과 정착민은 우리를 죽일 기회만 노리고 있죠. 하지만 우리에겐 '수무드(sumudㆍ굳건함)'라는 오랜 전통이 있습니다. 우리는 대대로 우리 땅에서 굳건히 살아왔어요. 우리의 땅을 가꾸고 이웃을 돌보는 것은 우리 조상들의 가르침입니다. 우리는 다짐을 지킬 거예요. 우리는 떠나지 않을 거예요. '인샬라' 우리는 정의를 쟁취할 겁니다.

●"정착민들이 군복을 착용하고 있어요… 이건 전에 없던 방식입니다"
- 루나(가명), 아모스와 인터뷰, 투와니, 10월 17일

전쟁이 시작된 뒤 마스페르 야타(서안지구 점령지의 남쪽에 있는 작은 시골 마을) 마을 주민에 대한 정착민들의 공격은 나날이 심해지고 있어요. 저희는 농부일 뿐이고 우리 대부분은 동굴과 천막에 살고 있습니다. 열여덟살인 저는 이곳에서 태어나 지금껏 살아왔죠. 우리는 벤그비르 국가안보장관의 지원으로 완전무장한 정착민들로부터 방어할 그 어떤 수단도 없어요. 그들은 지금을 기회로 여기고 있죠. 마사페르 야타 마을을 보호해줄 그 어떤 사람도 없을 것이라고 생각하는 것입니다.

저희 투와니 마을과 5분 거리에 있는 아바트 마온 정착촌에서 온 그들은 군대의 보호를 받고 있었습니다. 그들은 양떼를 공격하고 천막을 부수고 우리의 집들을 습격했죠. 그들은 우리 가족을 공격했어요. 우리 집에 침입해 제 아버지를 총으로 쐈습니다. 다행히도 아버지는 살아남으셨지만 그들이 총의 개머리판으로 구타해 팔이 부러졌어요. 금요일(2023년 10월 13일)에는 제 사촌이 총격을 당해 아직도 병원에 있습니다. 정착민들은 군복을 창용하고 왔는데 이것은 전에 없던 방식입니다. 그들이 정착민이란 걸 알아볼 수 있었던 건 그들이 지난해에도 아버지를 습격했던 사람들이란 걸 기억하기 때문입니다.

정착민과 군대는 현재 투와니 주변의 모든 곳을 장악했죠. 그들은 인근에서 가장 높은 산에 이스라엘 국기를 세우고 이 지역을 드나드는 모든 도로를 봉쇄했습니다. 그들은 우리가 당나귀에서 음식이나 물을 주려 가는 것조차 허락하지 않아요. 그들은 이곳이 국유지이며 전쟁 중이라고 말합니다.

마을을 떠나는 것도 위험합니다. 병원에 가기 위해, 혹은 음식과 물을 구하기 위해 시장에 가기 위해 산길로 떠난 사람들이 있었죠. 하지만 그 험난한 산길로 나선 사람들도 총격을 당하곤 합니다. 밤에 잠들기도 어려워요. 정착민들이 침입해 집을 불태울까봐 두렵습니다.

●"정착민은 한 걸음 물러선 후에 제 남편의 배에 총을 쐈죠"
- 마리암(가명), 시라 볼켄펠트 인터뷰, 투와니, 10월 18일

10월 7일 토요일 전쟁이 시작되자 군인들은 검문소를 세우고 우리 마을 투와니서 나가는 대부분의 길을 폐쇄했습니다. 가까운 도시 야타와 들로 가는 길은 막혔지만 이웃 마을인 자와야로 가는 작은 농로는 열려 있었죠. 그곳엔 제 부모님과 형제자매가 살고 있습니다. 도로가 폐쇄된 후 며칠 동안 투와니 마을 사람들은 쇼핑을 하거나 필수품을 구하러 야타로 갈 때면 이 길을 이용했죠.

수요일 저는 네 아이를 데리고 자와야에 있는 부모 집에 갔죠. 저녁에는 돌아올 생각이었어요. 하지만 남편 자카리야가 기다리고 있는 제 집으로 돌아가기 전 정착민들과 군인들은 불도저를 이용해 이 길을 막았습니다. 길가에 자리잡은 그들은 길을 지나가려는 모든 차량을 공격했습니다. 실탄을 쏘아댔어요. 큰길에 있는 부모 집에서도 총소리가 들렸어요. 결국 투와니 마을로 돌아갈 수 없어 이후 며칠 동안 자와야에 머물러야 했죠.

금요일 자카리야의 여동생이 당황한 목소리로 전화했습니다. 그녀는 제 남편이 정착민의 총에 맞았다고 했어요. 저는 공포에 빠졌죠.

일분일초가 급했어요. 투와니 청년들이 자카리야를 야타로 데려가기 위해 다급히 막히지 않은 길을 찾아나섰다는 얘길 저는 나중에서야 들었어요. 야타로 가는 정비되지 않은 농로를 찾는 데 10분이 걸렸습니다. 20여분이 더 지나고 나서야 병원에 도착했지만 그곳 의사는 다시 헤브론의 더 큰 병원으로 자카리야를 이송하라고 곧바로 지시했어요. 그가 상태가 위중했기 때문이죠. 하지만 야타를 나오는 길에서 병사들은 위협사격을 하며 구급차를 불러세웠습니다. 구급차는 운전대를 돌려 야타의 병원으로 되돌아와야 했죠.

그 사이 저는 아버지와 함께 병원으로 달려갔습니다. 저는 상황을 조금씩 알아갔죠. 자카리야는 수술실로 들어갔고, 그는 구급차에서 헤매는 과정에서 너무 많은 피를 흘린 상황이었죠. 의사는 헌혈할 수 있는 사람들을 찾기 시작했습니다. 그는 복부에 총상을 입었죠.

병원 대기실에 앉아있는 동안 저는 상황을 이해하기 위해 노력했습닏. 그는 위독했죠. 그가 살아남을 수 있을지 걱정은 커져만 갔어요.

제 남편의 사촌 중 한 명이 총격 장면을 동영상으로 찎었다는 걸 나중에 알게 됐습니다. 그 장면은 제 기억에서 지워지지 않을 거예요. 금요일 기도를 마친 남편이 모스크를 나서고 있었습니다. 투와니 중심가에서 무장 정착민이 그를 향해 다가왔어요. 정착민은 소총을 자카리야의 가슴에 들이밀었습니다. 그 다음 한 발짝 물러서더니 그의 배를 겨눠 총을 쐈죠.

수술 후 이틀 동안 자카리야는 인위적 혼수상태에 있었습니다. 생명이 위태로운 상태였죠. 일주일이 지난 지금도 그는 여전히 병원에 입원해 있어요. 추가 치료를 받기 위해 헤브론의 병원으로 이송하는 것은 여전히 불가능한 상황입니다.

아이들과 저는 그가 무사히 회복해 우리에게 돌아오기를 기도하고 있어요.

●"올리브 수확은 목숨을 걸어야 할 일이 됐습니다… 무사히 집에 돌아올 수 있을지 밭에서 죽을지 알 수 없죠"
- 가산 나자르, 마야 로젠 인터뷰, 부린, 10월 19일

나블루스 남쪽에 있는 부린에선 보통 10월 10일께 올리브를 수확하기 시작합니다. 가장 중요한 수확기죠. 부린 사람 대다수는 생활에 필요한 돈을 이 수확에 기대고 있어요. 팔레스타인 사람에게 올리브를 따는 날은 성스러운 날입니다. 대개 함께 모여 요리하고 아침식사를 하고 올리브를 수확합니다. 하지만 올해는 그렇게 하지 못하고 있어요. 그심지어 마을 안 집 앞에 있는 나무에서도 올리브를 따지 못하고 있습니다. 그들(정착민)이 방해하기 때문이죠.

부린 토지ㆍ농업협동조합의 이사인 저는 나블루스 지역에서 정착민의 공격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불과 30분 전에도 올리브를 따려는 농민이 공격받았죠. 정착민과 군인들은 마을로 들어와 주민을 자신들의 땅에서 내쫓으려 하고 있습니다. 주민들이 이를 거절하면 군인은 전화를 겁니다. 그러면 10분도 채 안 돼 15명의 정민이 총을 들고 나타나죠. 정착민들이 실촌을 쏘아대어도 군인들은 수수방관할 뿐입니다.

지난 밤엔 백여 명의 정착민과 군인들이 함께 마을을 공격했습니다. 우리는 총이 없요. 우리를 지킬 그 어떤 수단도 없죠. 부린에서 걸어서 5분 거리에 있는 마다마에선 13살 소녀가 정착민에 의해 죽을 뻔 했습니다. 정착민들은 문을 부수고 집에 들어가 그녀를 공격했어요. 지금 그 소녀는 병원에 입원해 있습니다.

부린은 '이차르' '기바트 로넨' '하르 브라하' 세 개의 정착촌으로 둘러싸여 있습니다. 전쟁이 시작되자 싸우고 있는 게 군인인지 정착민인지 알 수 없게 됐습니다. 군인들은 정착민과 협력하고 있죠. 그리고 그 군인들은 정착민이기도 합니다. 이 지역 출신 군인 대부분은 가자지구로 보내졌고 이후 정착민들이 군인 차림새를 하고 있죠.

전쟁 전에도 올리브를 따러 갈 때면 정착민들이 습격하곤 했어요. 그럴 때면 군인들이 정민 편을 들기도 했지만 우리와 정착민이 충돌하지 않게 갈라놓으려 하기도 했죠. 군대는 정착민들과 농민의 갈등을 막기 위해 농민들과 협조해 일정 시간 동안 밭에 군인을 배치하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지금은 조율도 허가도 없어요. 이제 군인들은 정착민들과 함께 우리를 공격하고 있습니다.

어제였어요. 제 사촌이 올리브를 따러 언덕에 오르자 일곱 명의 병사가 다가와 그에게 경고했습니다. "지금은 전쟁 중이다. 여기 오면 안 된다." 그곳은 정착촌에서 멀리 떨어진 곳인데도 말입니다. 그들은 또 "당신이 이곳에 올 수 있는지는 전쟁이 끝난 후에 결정할 것"이라고 덧붙였죠.

그러나 그들은 우리를 우리 땅에서 내쫓는 데 성공하지 못할 것입니다. 우리는 매일 우리의 땅에 갈 계획입니다. 올리브를 따지 않더라도 차를 마시러 갈 것입니다. 우리가 갈 때면 정착민과 군인들은 실탄과 고무탄, 소음폭탄, 최루가스로 공격합니다. 올리브 수확을 마치고 무사히 집에 돌아올 수 있을지, 밭에서 목숨을 잃을지 알 수 없는 상황입니다. 하지만 우리가 가지 않으면 군대는 우리 땅을 점령할 것입니다. 그러고 난 후엔 정착민들이 우리 땅을 차지하겠죠.

매일, 매시간, 매분 우리는 공격받고 있어요. 하지만 아무도 우리를 신경쓰지 않죠. 전 세계의 사람들, 언론, 기자들은 가자지구 전쟁에만 주목하고 있죠. 가자지구 전쟁을 핑계로 고삐 풀린 군인과 정착민들의 공격이 서안지구를 휩쓸고 있지만 아무도 여기에 관심을 쏟지 않아요. 그들에겐 원하던 것을 이룰 기회겠죠.

자유를 옹호하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팔레스탕니 사람의 편에 서야 합니다. 오늘 팔레스타인에서 벌진 일이 내일엔 다른 나라에서 일어날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이건 시오니즘 혹은 팔레스타인 문제가 아니에요. 자본주의, 식민주의의 문제입니다. 우리 목숨이 붙어있는 한 이 땅을 지키고 싸워야할 이유죠. 우리에겐 두 가지 선택지가 있습니다. 땅을 포기하고 떠날 것이냐. 우리의 존엄을 지키느냐. 우리는 죽더라도 무릎 꿇지 않을 것입니다.

●"예전에는 평화를 원했죠… 이제는 아닙니다"
- 사브리(가명), 아모스 인터뷰, 아인 라샤시, 10월 17일

저희 가족은 1990년 이곳에 왔습니다. 저는 18가구 85명이 살고 있는 이 마을 아인 라샤시에서 태어났죠. 이 마을엔 예전에도 여러 문제가 있었지만 2018년 정착민들이 '평화의 천사'라는 정착촌을 만들면서 상황이 더 악화됐죠. 그들은 양떼를 몰아내기 시작했습니다. 우리는 한 때 3000마리의 염소를 키웠지만 지금은 600마리 정도 밖에 남지 않았어요. 목초지에 가는 것을 정착민들과 군대가 막았기 때문입니다. 군대와 경찰은 우리를 위협했죠.

2022년 12월 현 정부가 출범한 이후 상황은 매우 나빠졌어요. 넉달 전부터는 더 심해졌죠. 정착민들은 우리가 사는 곳 가까이까지 습격하기 시작했습니다. 여든다섯 살인 제 할아버지는 머리에 돌을 맞았습니다. 그들은 제 할아버지를 막대기로 때리고 최루가스를 눈에 뿌렸어요. 정착민들은 집을 불태우려고까지 했죠. 다행히 일부만 타고 꺼졌죠.

그들은 우리를 내쫓기 위해 겁주고 있는 겁니다. 어떤 경우에도 군대는 우리를 보호해주지 않아요. 군대는 정착민들을 도와 최루가스를 우리 주변으로 쏘아댔죠. 경찰은 군대보다도 3%정도는 더 나빠요. 그들은 정착민들 대신 우리를 체포합니다. 우리가 스스로를 지키려 했다는 이유로 말입니다.

전쟁 이후 이 마을에서 실제로 벌어진 일은 없지만 인근 마을 몇 곳에서 일어난 일에 대해 들은 게 있어요. 라말라 동부의 베두인족 마을인 와디 시크에 들어온 정착민들은 팔레스타인 사람들을 위협했습니다. 정민들은 그들의 자동차를 전부 훔쳐갔어요. 숨막히는 상황입니다. 잠들 수가 없어요.

우리는 정착민들이 군기지에 들어가 사격장에서 총을 쏘는 것을 목격했습니다. 총소리도 들었죠. 모든 정착민은 무장하고 있어요. 정착민들은 가자지구 전쟁을 핑계로 팔레스타인 사람을 모두 죽여도 된다고 생각하나 봐요. 그들이 우리 가족을 죽이러 올까봐, 그런데도 방어할 수단이 없기 때문에 우리는 겁에 질려있죠. 군대와 경찰에 여러 번 신고했지만 그들이 하는 말이라곤 "우리는 전쟁 중이다"뿐입니다. 그러곤 전화를 끊어버리죠. 우리는 우리와 아이들을 스스로 보호할 수단이 없을뿐만 아니라, 우리를 지켜주려는 이도 없죠. 우리 가족은 아직 여기 머물고 있긴 하지만 다른 곳으로 떠나기로 했습니다. 곧 돌아올 수 있길 바랄 뿐입니다.

많은 팔레스타인 공동체가 떠나고 있습니다. 아인 라샤시 북쪽에 있는 나시리야에선 정착민들이 들어와 주민에게 다음날까지 떠나지 않으면 죽이겠다고 협박했습니다. 아인 라샤시 남쪽의 사므야와 카분 사람들 또한 마을을 떠났죠. 정착민들은 알론 로드(서안지구 동부에서 남북으로 이어진 도로) 동쪽에 팔레스타인 사람들을 쓸어버리길 바라고 있어요. 이건 또 다른 '나크바(대재앙)'입니다. 75년 만에 돌아온 대재앙입니다.

예전에 저는 평화를 원했죠. 이제 더는 아니에요. 20년이 지나도 평화를 바라진 않을 거예요. 분노만 남아있겠죠. 저는 이스라엘 사람들을 좋아했었습니다. 이곳을 지나가는 이라면 누구라도 베두인 차를 대접했고 염소젖을 짜 우유를 내줬었죠. 하지만 이제는 아니에요. 오늘 누군가 와서 우유를 나눠주지 않겠느냐고 부탁해도 저는 안 그럴 거예요.

이스라엘이 점점 더 가까이 다가오고 있습니다. 가자지구에서처럼 이곳 팔레스타인 지역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이렇게 쫓겨나고 내몰리는 일이 계속되면, 결국 사람들은 폭발할 겁니다.

Commen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