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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롭지 못한…
나토(NATO)는 2000년대 동진 정책을 강화했다. 1999년 폴란드ㆍ체코ㆍ헝가리가 가입했고 2004년에는 러시아의 목 아래인 발트3국(에스토니아ㆍ라트비아ㆍ리투아니아)를 비롯해 7개 나라가 동시에 가입했다. 2009년에는 크로아티아와 알바니아가 가입했다. 1991년 소련 해체 후부터 계속된 나토의 동진 정책과 유럽연합의 지속적인 확장은 공공연하게 러시아의 고립을 목적으로 했다. 2000년대 러시아의 군사적 재무장과 옛 러시아 제국 부활의 꿈은 일차적으로 이에 대한 반발로 이해해야 한다. [그래픽=위키피디아] 우크라이나 사태 초기 반러시아 정서가 시위대를 지배했다. 2008년 조지아에서와 같은 러시아의 개입은 처음부터 주요 두려움이었다. 천연가스라는 목줄을 쥔 러시아는 몇 차례 가스 공급을 중단함으로써 ..
1월 22일에서 23일 사이 키예프 거리의 바리케이트. 1월 16일 집회와 시위를 강력하게 규제하는 '독재법'이 의회에서 통과된 후 거리 시위가 격화됐다. [사진 Ilya Varlamov] 지난해 11월 우크라이나 정부는 유럽연합과의 통상 강화 협상을 중단하고 친러시아 정책으로의 복귀를 천명했다. 대외정책 전환은 이후 3개월째 계속되고 있는 거대한 거리 시위를 촉발시켰다. 가라앉을 듯 보이던 시위는 새해에 다시 폭발하고 있다. 1월 16일 시위를 억압하는 강력한 법안들이 의회에서 통과하면서부터다. 바리케이트가 세워지고 화염병이 날라다니는 모습이 외신을 타고 있다. 그러나 우크라이나 시위는 지난해 터키ㆍ브라질ㆍ이집트와 달리 국제주의적 좌파에게 큰 관심을 받고 있지 않다. 시위 초기 외신을 탄 레닌의 동상을..
1990년대 초 현실 사회주의 국가의 붕괴는 좌파에게 큰 상처를 남겼습니다. 특히 대안 사회의 미래를 그리려는 시도를 꺼리게끔 했죠. 공산주의 혹은 사회주의는 마르크스의 말을 빌려 현실의 모순을 지양하는 운동쯤으로만 취급됐습니다. 이런 상황은 2000년대 들어와 조금씩 바뀌기 시작합니다. 자본주의 경제는 단속적으로 파탄의 위기를 맞았습니다. 이에 저항하는 목소리는 높아져갔죠. 특히 세계사회포럼의 성장과 베네수엘라에서의 격변은 좌파들에게 큰 영감을 줬습니다. 새롭게 성장한 젊은 세대는 현실 사회주의를 경험하지 않았고 그 만큼 사회주의에 대한 레드콤플렉스도 적었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좌파가 정치적 대안으로 성장하기 위해 보다 분명한 미래사회에 대한 청사진을 제기할 필요성이 제기됐습니다. 지역사회 차원에서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