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유롭지 못한…
2024년 쿠데타와 탄핵의 겨울, 첫번째 풍경 본문
2024년 겨울의 기록, 다시 벌어지리라 생각하지 못했었던 사건의 개인적 기록이다.
12월 3일 22시23분, 대통령실에 있던 윤석열씨가 비상계엄을 선포했다. 윤씨는 비상계엄의 적용 지역, 적용 일시, 계엄사령관이 누구인지도 밝히지 않은 채 6분 여간 담화를 발표했다. 그때 나는 마트에서 밤참을 고르던 중이었고 계산을 마치고 돌아오던 중 들여다본 휴대전화속 뉴스에 누군가 아주 고약한 농담을 하고 있다고 생각했다. 잠시 책상에 앉아있던 나는 정신없이 국회로 향했다. 23시30분쯤, 국회 정문은 이미 경찰에 봉쇄돼있었고, 그 앞엔 적은 수의 시민들만 있었다. 그조차 대부분 기자들이었다. 하지만 어느순간 시민이 급격히 늘었고 그들이 '계엄 철회'를 외치고 있던 중 헬기 소리가 들렸다. 검은 실루엣의 헬기가 국회 안으로 향했다. 어느 한쪽 갑작스러운 소란에 달려가보니 '대테러 초동조치'라는 배너를 붙인 수방사 소속 버스와 무장한 군인이 탑승한 SUV와 시민이 실강이를 벌이고 있었다. 사실 헬기의 등장과 국회 앞 군용 차량의 출몰 중 어느 것이 먼저인지는 흐릿하다.
2024년 12월 4일, 전날 밤 내려진 비상계엄 하 국회 앞 출동한 수방사 병사에게 한 노인이 "불법적인 명령에 복종하지 말라"고 호소하는 모습이 유리에 비친 모습(왼쪽)과 시민들 사이에 둘러싸인 수방사의 한 병사.
그 사이, 23시에는 뒤늦게 자신을 계엄사령관으로 소개한 박안수(대장) 육군참모총장은 비상계엄 포고령 1호를 발표했다. 헌법과 계엄법에는 국회의 계엄 해제 요구안 의결 권리를 보장하고 있고, 애초 헌법과 계엄법의 계엄 대상에 '국회, 지방의회, 정당 등의 정치활동 금지'는 포함돼있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이 모든 것을 금지했다. 이는 정확히 45년 만에 한국 사회에 재현된 쿠데타(정확히는 친위쿠데타)였다.
포고령 1호의 1. 국회와 지방의회, 정당의 활동과 정치적 결사, 집회, 시위 등 일체의 정치활동을 금한다.
뒤에 유튜브와 각종 SNS, 언론을 통해 알게된 일이지만 그 시각 국회 안에서는 더 격렬한 충돌, 정말 위험한 상황이 펼쳐지고 있었다. 특수전사령부 산하 제1공수특전여단과 제707특수임무단이 국회에 보장된 권한인 계엄 해제 요구안 처리를 막기 위해 투입됐다. 그러나 다행히, 병사 개개인들의 판단 때문인지, 지휘관들의 우유부단한 태도였던 때문인지 알수 없지만 4일 01시01분 국회의원 190명이 본회의장에 모여 전원 찬성으로 계엄령 해제 요구안을 가결시켰다.
헌법은 국회의 의결시 비상계엄이 사실상 무효화됨을 명기하고 있다. 계엄법에서도 '지체 없이 해제'해야 한다고 규정돼 있다.
헌법 제77조 ⑤국회가 재적의원 과반수의 찬성으로 계엄의 해제를 요구한 때에는 대통령은 이를 해제하여야 한다.
계엄법 제11조 ①…국회가 계엄의 해제를 요구한 경우에는 지체 없이 계엄을 해제하고 이를 공고하여야 한다.
그럼에도 윤씨는 국회의 의결로부터 3시간이 훌쩍 넘은 4일 04시27분에야 해제 '의사'를 밝혔고 그로부터 3분 뒤 국무회의를 열어 계엄 해제안을 의결해 발표했다. 3시간26분간 윤씨의 침묵. 나를 비롯한 전 국민은 긴장속에 밤을 지새야 했다. 이미 헌법과 계엄법을 어긴 윤씨가 친위쿠데타를 계속 이어갈 가능성에 사람들은 긴장했다.
2024년 12월 4일 01시 17분, 국회 본회의에서 비상계엄 해제 요구안 가결 소식이 전해진 뒤 국회 안에서 헬기가 빠져나오고 있다.
날이 밝은 4일, 계엄은 해제됐지만 쿠데타군의 주역인 국방부 장관, 특수전사령부 사령관, 수도방위사령부 사령관, 방첩사령부 사령관이 제자리를 지키고 있었다. 언제 다시 쿠데타가 반복될지 모르는 상황, 그렇게 긴장속 4일이 지나갔다.
그런데 이때부터 미국의 이례적인 메시지가 계속 전해졌다. '내정 간섭' 논란을 무릅쓰고 미국 국무부 백악관에서 잇따라 한국의 쿠데타(불법 비상계엄령) 세력에 경고 메시지를 공개적으로 보내왔다. 계엄 해제를 꾸물대던 윤씨가 불과 3분뒤에 열릴 국무회의(4일 04시30분)에 앞서 부랴부랴 TV에 나와(4일 04시27분) '밤 늦은 시간 국무회의가 늦어져 해제 발표는 늦지만, 어쨌든 해제할 것'이라는 이상한 기자회견을 한 이유에도 사전에 비상계엄 선포를 알리지 않아 기분나빴던 미국의 압박이 있지 않았을까 하는 의문이 들었다.
어쨌든 5일 김용현 국방부 장관은 사의를 표했고, 윤씨는 이를 곧 수용했다. 그순간 계엄사령관이었던 박안수 대장은 계엄 포고령도 자신이 작성하지 않았고, 국회 군투입도 지시하지 않았다고 변명하고 있었다. 국방장관이 했다는 것이었다. 즉 김용현은 비겁하게 도망쳤고 윤씨는 이를 도왔다. 김용현은 국민에게 혼란을 드려 죄송하다고 발표해놓고서는 일부 언론과의 인터뷰에서는 여전히 쿠데타가 옳았다고 주장했다. 정말 비겁한 일이다.
6일은 쿠데타 세력이 무너지는 듯했다. 더불어민주당 김병주 의원과 박선원 의원이 여전히 제자리를 지키고 있던 특전사령관과 수방사령관을 잇따라 찾아가 공개적으로 잘못의 인정과 헌법에 대한 충성을 받아냈다. 여전히 여러 변명으로 뒤덮여있음에도 불구하고 사건의 전모를 밝혀줄 여러 폭로들이 잇따르기도 했다.
그러나 7일 쿠데타 세력은 자신의 동조자들인 국민의힘의 도움을 받아 일단 얼마간의 시간을 벌게 됐다. 민주당을 비롯한 야 6당은 4일 대통령 탄핵안을 발의하고 5일 0시 보고해 윤씨 탄핵을 본격화했다. 쿠데타의 한 축인 군대 내에서 폭로가 이어지던 6일, 용산의 윤씨와 여의도의 한동훈 국민의힘 대표, 추경호 국민의힘 원내대표는 긴밀한 소통을 이어가며 구명줄을 검토했다. 전형적인 강남 마마보이인 한씨는 윤씨가 자신을 '체포 대상'에 넣었음을 확인하고도, 윤씨가 약간의 여지만 보여줘도 입장이 흔들렸다. 쿠데타 첫날 비상계엄을 '위헌'으로 스스로 규정했음에도 불구하고 '조속한 직무 정지' '조기 퇴진' 등 모호한 언어로 국민을 흔들고, 스스로도 흔들리고 있음을 가감없이 보여줬다. 결국 7일 17시부터 시작된 국회 본회의, 18시경에 시작한 탄핵안 표결에서 국민의힘은 의원 108명 중 105명이 아예 참여하지 않으면서 윤씨의 쿠데타에 동조하는 세력임을 자임했다.
7일 오후, 국민의힘이 국민의 마음을 거스르던 그 때 100만여 명의 국민의 국회 앞에 집결해 윤씨를 더 이상 대통령으로 인정하지 않음을 선포했다. 칠순의 어머니도, 60대의 동네 주민도 쿠데타 세력을 심판하기 위해 영하의 날씨에 국회 앞으로 향했다. 내가 도착한 14시30분경 이미 국회 앞은 인파로 가득차 움직이기 힘든 지경이었다. 예고한 집회 시간인 15시가 지나고 얼마후 사회자의 지휘로 민주노총 조합원들이 국회 앞 도로로 진출하며 약간의 숨통의 트였다. 내가 쓰는 통신사 SK텔레콤은 집회 내내 불통이었다. 내가 내내 투덜대고 있자 일면식도 없던 옆 자리의 어떤 분은 KT도 먹통이라며 한숨을 쉬었다. LG유플러스를 쓰는 아내는 간혹 연결된다며 투덜대면서도 진득하니 웹페이지가 로딩되는 것을 기다렸다. 이런 건 처음이었다. 100만 이상이 모였던 2016년 박근혜 탄핵의 겨울 광화문에서도 이러진 않았다. 집회 장소에 들어가며, 이후 국회를 두 바퀴 돌며, 다시 그 앞을 떠나며 계속 찾아봤지만 그 어디에서도 통신사 중계차는 보이지 않았다. 예상됐던 거대 인파에도 불구하고 말이다. 윤씨가 '식물 상태'가 됐다지만 반란에 대한 현 정부의 견제는 여전히 힘을 미치고 있는 것으로 보였다.
어느새 촛불보다 더 많아진 (아이돌 그룹) 응원봉의 모습이 시대의 변화를 상징적으로 보여주고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변하지 않는 그 가치, 폭압과 압제를 용인하지 않겠다는 저항정신은 과거와 달라지지 않은 모습으로 분출했다.
2024년 12월 7일 국회 앞 인파. K팝 스타 로제의 '아파트' 에스파의 '위플래시'에 맞춰 '윤석열 탄핵'을 외치고 있다.
2024년 12월 7일, 국민의힘과 윤씨는 생명줄을 연장했다. 이날 SNS에 띄워진 대구의 한 모습. "TK의 콘크리트는 TK의 딸들에 의해 부서질 것이다"라는 손팻말. 한국의 보수 우파는 전투에서 이겼을지언정 전쟁에서의 패배는 피할 수 없게 됐다. 민주주의는 그 자체로 정해진 것은 없다. 아무것도 말해주지 않는다. 이제 좀 더 진보한 내용의 민주주의가, 더 나아간 민주주의가 위선자들의 '자유민주주의'를 대체할 날이 멀지 않았다.
용산 대통령실에 자리한 윤석열씨에 대한 첫 탄핵안이 부결된 2024년 12월 7일 밤 국회 주변을 행진하는 노인과 젊은 여성들. 촛불보다 아이돌 그룹 응원봉이 더 많이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