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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주주의의 발걸음, 여의도에서 멈춰선 안 된다

때때로 2024. 12. 14. 22:58

윤석열이 탄핵됐다. 2024년 12월 14일 국회의원 300명 전원이 표결에 참여해 찬성 204명, 반대 85명으로 '대통령(윤석열) 탄핵소추안'을 가결시켰다. 국회는 이를 곧 대통령실과 헌법재판소에 통고했고 윤씨의 대통령으로서의 권한은 이날 19시 24분 정지됐다. 국회의 '대통령(윤석열) 탄핵소추의결서'를 전달받은 헌재는 '사건번호 2024헌나8'을 부여했다.

2024년 12월 24일, 국회 본회의에서 '대통령(윤석열) 탄핵소추안'이 찬성 204명으로 가결되자 국회 앞에 모여있던 시민이 환호하고 있다. [사진 自由魂]

곧이어 한동훈 국민의힘 대표도 당내 친윤 세력에 의해 사실상 탄핵당했다. 한동훈은 "집권 여당 대표로서 국민과 함께 잘못을 바로잡고 헌법과 민주주의를 지키겠다"며 탄핵 가결을 독려한 것에 대해 "후회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당대표의 "직무를 수행할 것"이라고도 했다. 하지만 바로 최고위원들의 사퇴가 이어졌다. 선출직 최고위원 5명 전원이 사퇴 의사를 밝혔다. 이로써 한동훈 대표 체제는 무너졌다. 국민의힘은 당헌당규상 선출직 최고위원 중 4명이 사퇴하면 기존 지도부를 해체하고 비상대책위원회로 전환한다.

윤씨가 비상계엄을 선언한지 불과 11일 만의 일이다. 탄핵 표결 이틀전인 12월 12일 윤씨의 29분 담화는 끓는 물에 기름을 부은 격이었다. 사실상 보수 언론까지 혀를 내두르게 했다. 아니 이들로서는 자존심 상할 일이었다. 그래서 과감히 등돌렸을 것이다. 문화일보마저 1면에 '불법계엄'이라고 못박아 말할 정도였다. 이날 담화는 윤씨가 소수 극우 유튜버의 음모론을 매우 진지하게 신봉하고 있다는 것을 가감없이 드러냈다. 이른바 '틀튜브' 말이다. 윤씨를 옹호하며 정부와 유관 단체, 기업들로부터 떨어지는 떡고물에 취해있던, 그러면서도 마치 '나라를 위해 고상한 조언'을 '용산'에 하고 있다는 착각에 빠져있던 언론은 이날 윤씨의 담화를 통해 틀튜브만도 못한 자신의 처지를 깨닫고 분노했다. 사실 '벌거벗은 임금님'은 윤씨가 아니라 조중동을 비롯한 언론이었다.

한국 정치에서 크나큰 지분을 차지하고 있는 TK당 국민의힘의 정치 의식이 여전히 '민주주의'를 체화하고 있지 못함을 보여주기도 했다. 윤씨의 쿠데타 시도는 대화의 정치인 민주주의를 포기하겠다는 선언이었다. 즉 대통령이 자신의 의도가 통하지 않을 때 자신의 의도를 관철하기 대화와 설득이 아닌 폭력을 사용하겠다고 전 국민 앞에서 선포했음에도 불구하고 국민의힘 국회의원들은 '대통령이 오죽 갑갑했으면 그리 했겠나'라며 옹호하기 바빴다. 그들 스스로가 국민의 투표에 의해 뽑힌 존재임에도 불구하고 말이다.

대통령직의 최종 파면까진 아직 헌재의 판단이 남아있다. 비상계엄 선포 첫날부터 적극적인 저항으로 쿠데타를 저지한 시민이 가만히 있진 않을 것이다. 그러함으로 헌재의 판단이 어떻게 나오든 현재의 한국 민주주의 정치 지형의 어떤 급격한 후퇴가 있을 것 같진 않다.

하지만 우리는 목격했다. 1987년 민주화 이후 40여 년, 이미 공고화됐다고 믿었던 민주주의가 순식간에 무너질 수 있다는 것을 말이다. 언론과 지식인들은 민주주의를 번거럽고 귀찮은 어떤 것으로 취급해왔음을 솔직히 인정해야 한다. 그러한 서사의 구축이 결국 윤씨와 같은 괴물을 키웠음을 분명히 해야 한다. 저 광화문에서, 유튜브에서 쿠데타를 옹호하던 이들을 키운 건 결국 그 잘난 언론과 지식인들이다. 그들은 민주적 리더십을 반복해서 부정해 왔다. 정치를 다수 서민의 삶과 무관한, 아니 되레 경제를 어렵게 해 서민의 삶을 피폐하게 만드는 무언가로 규정해 왔다. 잘못된 정치가 아닌 정치 그 자체를 문제시 삼았다. 그래서 그들은 정치, 즉 민주적 과정으로부터 무관한 기계적인 판단을 최선의 것으로 그려왔다. 결국 기업의 이익에 따른 독재를 마치 이상적인 무언가로 그려왔다. 그 결과가 윤씨의 쿠데타였다.

시민은 처음부터 주역이었다. 윤씨의 쿠데타 첫날부터 국회 안팎에서 저항했다. 민주적 절차를 부정한 대통령의 탄핵을 거리에서부터 밀어붙였다. 그리고 열흘여가 지난 12월 14일 관철시켰다. 하지만 우리는 박근혜 국정 농단 사태로부터 10여 년도 지나지 않았다는 것을 잊어선 안 된다. 우리가 '민주 시민'으로서의 의무를 다했다고 여기고 거리에서 다시 각자의 일터, 학교, 가정으로 돌아갔을 때 저들은 손쉽게 자신의 자리를 다시 되찾는다. 정치를 여의도에만 맡길 때 우리는 여의도에서부터 민주주의가 부정될 수 있음을 이해해야 한다. 일터, 학교, 가정이 민주주의적이지 않은데 여의도가 민주주의적이면 무슨 의미가 있겠는가. 여의도가 우리 민주주의의 최종 종착지일 수는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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